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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버카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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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버카스텔은 1761년 독일에서 시작된 필기구 및 미술용품 제조 회사이다. 카스파르 파버가 연필 제조를 시작하여 성장했으며, 로타르 폰 파버 시기에 연필의 표준을 제정하고 브랜드화했다. 이후 세계 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며 여러 제품을 출시하고 국제적으로 확장했다. 현재는 약 8,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육각형 연필, 카스텔9000, 그립2001, 폴리크로모스 색연필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친환경적인 생산 방식을 추구하며, 한국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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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버카스텔 - [회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파버카스텔 공장
슈타인에 있는 파버카스텔 공장
이전 이름A.W. 파버 회사
종류주식회사 (Aktiengesellschaft)
설립일1761년
설립자카스파르 파버
본사 위치독일 바이에른주 슈타인
서비스 제공 지역전 세계
핵심 인물슈테판 라이츠 (CEO)
콘스탄틴 노이베크 (CFO)
시몬 하우저 (CTO)
디르크 엔게하우젠 (감독 이사회 의장)
제품미술 재료, 필기구
브랜드그라프 폰 파버카스텔
직원 수6,500명 (2024년)
매출€ 6억 4920만 유로 (2022/2023년)
웹사이트faber-castell.com
추가 정보
산업문구류

2. 역사

1660년대부터 독일 뉘른베르크를 중심으로 연필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스타인 지역은 상업적 자유로움 덕분에 많은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파버카스텔의 창립자 카스파르 파버 역시 캐비닛 제조업자였으나, 연필 생산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이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그의 아들 안톤 빌헬름 파버가 회사를 물려받아 현재의 본사인 뉘른베르크에 정착했다.[25]

3대 CEO 게오르그 레온하르트 파버 시대에는 프랑스의 새로운 흑연 제조법과 영국산 제품에 밀려 잠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의 아들 로타르 폰 파버가 파리런던에서 선진 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기업을 혁신하고 글로벌화했다. A.W.Faber라는 상표를 등록하여 필기구 브랜드화를 이끌었으며, 공장 현대화, 직원 복지 제도 마련, 재산권 보호 법률안 통과 청원서 제출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25]

로타르 폰 파버의 외아들 빌헬름 폰 파버는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그의 미망인 오틸리에가 잠시 회사를 운영했다. 이후 빌헬름의 장녀 오틸리에 폰 파버가 알렉산더 카스텔 뤼덴 하우젠 백작과 결혼하면서 알렉산더 백작이 경영을 맡게 되었고, 이때 카스텔9000 연필과 말 타는 중세기사 로고가 등장하며 회사는 더욱 성장했다. 로타르 폰 파버의 유언에 따라 파버카스텔이라는 성을 유지하게 되었다.[25]

1905년 알렉산더 백작이 출시한 카스텔 9000번 연필은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7대 CEO 롤란드 폰 파버 카스텔 백작은 요한 파버 연필 공장과 브라질의 라피스 요한 파버를 인수하고, 1960년대부터 해외 지사를 설립하며 회사를 확장했다.[25]

현재 CEO인 안톤 볼프강 파버 카스텔 백작은 화장품 산업용 연필 생산, 친환경 기술 개발, 고급 제품 라인 (그라프 폰 파버카스텔) 출시 등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높였다.[25][26]

현재 파버카스텔은 전 세계 18개 판매 사무소와 15개 공장을 운영하는 국제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연간 18억 자루 이상의 목재 연필을 생산하고 있다.

2. 1. 초기 역사 (1761-1896)

1660년대독일 뉘른베르크에서는 연필 생산업자들이 최초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근처 스타인 지역은 상업이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에 많은 장인들이 그 지역에서 연필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파버카스텔의 창립자인 카스파르 파버(1730년~1784년)는 원래 캐비닛 제조업자였으나, 연필을 생산하여 성공하게 되자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아들인 안톤 빌헬름 파버(1758년~1819년)가 회사를 물려받았고 지금의 본사인 뉘른베르크에 정착하게 되었다.[25]

3대 CEO로 게오르그 레온하르트 파버(1788년~1839년)가 취임한 뒤, 회사는 프랑스의 새로운 흑연제조법과 우수한 영국산 제품에 밀려 잠시 사업이 쇠퇴하였다. 하지만 게오르그는 그의 아들들인 로타르와 요한을 파리런던으로 보내어 공부하게 하였다. 로타르 폰 파버(1817년~1896년)는 기업을 이어받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며 기업을 글로벌화 시켰다. 그는 A.W.Faber라는 상표를 등록시키며 역사상 최초로 필기구의 브랜드화를 이루어 냈다.

로타르 폰 파버의 업적은 다양하다. 그는 공장을 현대화시켜 더 나은 생산 환경을 제공하였으며, 남녀의 역할분담을 확실히 함으로써 일의 효율성을 늘렸다. 또한 직원들을 위한 다양한 제도(예를 들면 연금제도와 건강보험)도 마련하였다. 독일에서 유치원을 최초로 설립했으며 모조품이 드러나자 직접 법원재산권 보호 법률안 통과 청원서를 제출하였고 시행시켰다. 1851년에는 연필의 길이, 굵기, 경도의 기준(육각형 디자인의 연필)을 제작하였는데, 이 기준은 150년 이상 지난 지금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881년 바이에른 왕국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수여받았다. 1894년 뉴욕에 지사를 열기도 하였다.[25]

위조 A.W. 파버 제품에 대항하기 위해 로타르는 독일 국회에 독일 내 상표 보호를 시행하도록 청원했다. 그 결과 1875년 상표 보호법이 발효되었고, 1894년 상표 보호법에 따라 보호 범위가 확대되었다. 로타르의 첫 번째 상표는 1894년에 등록되었으며 등록 번호는 DE 43이었다.[10][11] 독일 외에도 로타르가 회사를 이끌던 시기에 미국(최초로 등록된 상표 중 하나), 러시아, 영국,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에도 상표가 등록되었다.[10]

로타르 파버의 외동아들인 빌헬름 폰 파버(1851년~1893년)가 회사를 물려받았지만 그는 4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고, 그의 미망인인 오틸리에가 잠시 회사를 운영하였다.

2. 2. 카스텔 9000 연필과 기사 로고 (1898-1908)

1898년 로타 폰 파버의 손녀이자 상속녀인 오틸리에 폰 파버가 알렉산더 카스텔 뤼덴하우젠 백작과 결혼하면서, 알렉산더 백작이 회사를 이끌게 되었다.[25] 이 결혼으로 알렉산더는 파버카스텔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7] 로타르 폰 파버는 회사의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해 상속녀가 결혼하더라도 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왕실의 승인을 얻어 오틸리에와 알렉산더는 파버카스텔이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다.[25]

1905년, 알렉산더 백작은 "카스텔"이라는 새로운 연필 라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카스텔9000 연필이다.[12][25] 이 연필은 알렉산더의 군대 연대 색상인 녹색을 띠고 있었으며, 성을 묘사한 로고와 함께 두 명의 격구 기사 모티프가 포장과 광고에 사용되었다.[12][13] 이 기사 모티프는 알렉산더가 의뢰한 연필로 격구하는 두 기사 그림에서 유래되었으며, 현재 회사 로고의 영감이 되었다.[12][13]

1908년에는 현재까지 널리 사용되는 폴리크로모스 색연필이 출시되었다.[12]

2. 3. 세계 대전과 대공황 (1914-1945)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 회사인 파버카스텔의 여러 해외 자회사 및 연합국 지점은 몰수되었다.[13][14] 그 중 뉴욕과 파리의 파버카스텔 자산은 결국 매각되었다.[1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살아남았고, 전쟁 이후 새로운 확장된 제조 시설 건설과 새로운 회사 인수를 통해 추가 성장을 이루었다. 1928년 알렉산더가 사망한 후 회사의 이름도 공식적으로 'A.W. Faber "Castell" Bleistiftfabrik'(연필 회사)이 되었다.[13]

1930년대 초, 대공황이 세계 경제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자 알렉산더의 아들인 롤란트 폰 파버카스텔이 회사를 물려받았다.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롤란트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모색했다. 1932년, 로타 파버의 동생이 설립한 경쟁 연필 회사인 요한 파버와의 협력이 이루어졌다.[15] 두 회사는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자원을 공유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롤란트는 요한 파버의 주식을 점차 매입하여 1942년에는 (브라질 자회사와 함께) 완전히 인수했다. 이러한 전략적 움직임으로 인기 있는 골드파버 색연필 라인이 파버카스텔의 사업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이 기간 동안 유명한 만년필 제조업체인 오스미아를 인수하여 추가적인 확장을 이루었다.[15][16]

1939년, 제3제국은 파버카스텔 연필 제조업체의 7대 회장인 롤란트 폰 파버카스텔 백작 소유의 뉘른베르크 인근 슈타인 성을 점령했다.[17] 나치는 롤란트 폰 파버카스텔 백작을 그의 리더십 자리에서 해임했고, 성의 종탑을 연합군의 폭격 요격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17] 롤란트 폰 파버카스텔 백작은 독일군에 징집되었고, 이로 인해 파버카스텔 회사의 리더십이 바뀌었다. 이때 나치당에 의해 최초의 비(非)가족 출신 CEO가 임명되었다.[18] 경영 변화 속에서 롤란트 백작의 아내 니나는 회사를 개인 기업으로 전환하여 실질적인 통제권을 되찾았다. 1942년까지 회사는 A. W. 파버카스텔로 개명되었다.[13][18]

2. 4. 전후 확장과 현대 (1945-현재)

2차 세계 대전 이후, 7대 CEO인 롤란트 폰 파버 카스텔 백작(1905년~1978년) 경영 아래 파버카스텔은 크게 확장되었다. 로타르 폰 파버의 형제인 요한 폰 파버가 설립한 요한 파버 연필 공장과 브라질에 있는 라피스 요한 파버를 인수하였다.[25] 1960년 프랑스 판매 회사를 시작으로, 1962년 오스트리아, 1965년 아르헨티나페루에 공장을 설립하는 등, 1960년부터 1977년까지 해외 지사들을 설립하였다.[25] 브라질 상파울루에 있는 지사는 2차 세계 대전 때 잠시 주식을 압수당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파버카스텔 연필 공장이다.[25]

1978년 대표로 임명된 현재 CEO 안톤 볼프강 파버 카스텔 백작은 화장품 산업을 위한 연필을 생산하였고, 20년 동안 여러 해외 지사와 말레이시아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우개 공장을 설립하였다.[25] 친환경 모토를 내세워 다양한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고 코스타리카에 제조 공장을 설립하였으며, 1993년 제품 분류를 통해 회사 이미지를 재정립하였다.[25] 2000년에는 독일 금속노조와 사회 협약서를 준비하고 전 세계적으로 적용할 것을 약속하였다.[25] 또한 고급 만년필 등 프리미엄 제품 라인으로 구성된 그라프 폰 파버카스텔을 만들면서 브랜드 이미지 고급화에 기여하였다.[26]

1905년에는 5대 CEO였던 알렉산더 카스텔 뤼덴 하우젠 백작이 카스텔 9000번(''CASTELL 9000'')을 출시했는데, 이 제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필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파버카스텔은 전 세계에 18개의 판매 사무소와 15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종업원 5500명이 일하는 국제적인 기업이다. 목축 펜슬은 연간 18억 자루 이상 생산되고 있다.

3. 브랜드 철학

알렉산더 파버카스텔 백작이 의뢰한 두 명의 연필 기사 그림은 수십 년간 박스와 케이스 디자인 모티브가 되었고, 이것이 현재 로고의 기원이다. 한 기사가 창처럼 보이는 연필을 들고 다른 기사를 이기는 장면은 파버카스텔의 품질 철학을 보여준다.[28] 이 연필은 창처럼 단단한 연필을 만들겠다는 파버카스텔의 신념을 담고 있다.[29] 이 로고는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으나, 1990년대 안톤 볼프강 파버카스텔이 회사 이미지를 재창조하면서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28] 만년필의 경우 펜촉에 로고가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파버카스텔의 대표 안톤 볼프강 파버카스텔 백작은 "우리는 단순히 쓰는 필기구만 만들지 않고, 창조적 활동과 관련된 도구를 개발하여 미래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연필은 아무 회사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평범한(ordinary) 일을 비범하게(extraordinary) 잘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회사의 철학입니다."라고 말했다.[26]

파버카스텔의 목표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항상 의문을 가지고 시대 변화에 최적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소비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혁신을 가져오는 것이다. 또한 '그라프 폰 파버 카스텔 컬렉션'처럼 제품마다 식별 숫자가 있고 보증서와 케이스가 있는 한정 판매 제품을 만들어 수집가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키우는 것도 회사가 제시한 혁신 중 하나이다.[30]

언제나 우수한 품질의 필기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좋은 연필은 잘 부러지지 않고 긁히지도 않으며 오랫동안 보존되어야 한다.[30]

친환경을 모토로 매년 브라질에 2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는 등 인간적인 미덕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기업과 차별화한다.[30]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친환경적 생산 과정과 재료, 기술 확보를 우선시하며, 회사 내부뿐만 아니라 사업 동반자들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사회적 책임감을 실천하고 있다.[31]

4. 특징


  • 최초로 현대 연필의 표본이 된 육각형 연필을 고안했다.[32]
  • 연필 길이를 18cm로 표준화했다.[32]
  • 1794년 로타르 폰 파버가 B(짙기)와 H(강도)로 나뉜 18단계 경도 체제를 만들었다.[33]
  • 히말라야삼나무를 사용하고, 흑연과 점토 배합 비율 특허를 냈으며, 재료의 90% 이상이 지속가능하다.[33]
  • 값싼 아세톤이나 휘발성 물감 대신 친환경 수성 페인트를 사용하고, 1992년 세계 최초로 광택을 내고 세균 번식을 막으면서 인체에 해가 없는 수용성 레커를 발명했다.[33]
  • 매년 브라질에 2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34]
  • 100여 년 전 빈센트 반 고흐가 썼던 연필로 유명하며, 현재 칼 라거펠트 같은 유명 디자이너, 오스카 코코쉬카, 네오 라우흐 같은 현대 화가, 권터 그라스 같은 노벨상 수상 작가도 파버카스텔 연필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32]

5. 제품

카스텔9000


카스텔9000은 그립2001과 함께 연필 매니아들이 꼽는 명품 연필 중 하나로, 육각형 연필의 시초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빈센트 반 고흐가 애용하던 연필이기도 하다.[35] 1905년 출시되어 현재까지 연필계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단단한 연필심 덕분에 다른 연필보다 2~3배 오래 쓸 수 있으며, 특수 공법으로 연필심과 나무가 들뜨지 않아 떨어뜨려도 심이 부러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36]

  • 2000년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에서 '올해의 10대 상품'으로 선정되었다. 삼각 그립 모양이 특징이며,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표면을 점선으로 처리하였다.[37]


파버 카스텔 폴리크로모스 24색

  • 폴리크로모스 유성 색연필초현실주의 대가 코코슈카, 패션 디자이너 볼프강 윱 등 예술가들이 애용했다. 2008년 5월 한국에서 폴리크로모스 색연필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로 이두식 홍익대 교수 드로잉 작품을 모은 '이두식 소묘 일기전'이 열렸다.[38]

  • 현재 대표인 볼프강 백작은 브랜드 고급화를 위해 그라 폰 파버 카스텔 시리즈를 선보였다. 2011년 11월 출시된 이 제품은 뉘른베르크 나무 장인들이 고급 오리나무를 사용해 만든 필기구이다. 퍼펙트 펜슬은 백금 도금, 교체 가능한 네 자루 포켓펜슬, 네 개 예비용 지우개로 구성된 세트이며 가격은 85만원이다.[39]


지우개

  • 파버카스텔 지우개


1850년대부터 파버는 시베리아산 흑연과 플로리다산 향나무를 사용해 연필을 생산했다.[4]

파버-카스텔은 PITT Artist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아담 휴즈 등 만화 작가들이 사용하는 이 펜[19]에는 산성 성분이 없고 보존성이 있는 인도 잉크가 포함되어 있으며, 다양한 색상으로 제공된다.[20]

다음은 파버-카스텔의 모든 제품 라인을 나타낸 표이다.[21]

카테고리제품
전문 미술 및 그래픽 (녹색 라인)연필(흑연 및 색상), 파스텔, 목탄, 지우개, 연필깎이
어린이 및 학교 미술 및 그래픽 (빨간색 라인)연필, 수채화, , 마커 펜, 크레용, 지우개, 연필깎이, 모델링 점토, 오일 파스텔, 종이, 커넥터 펜
기술 제도 (녹색 라인)샤프 펜슬, 리필
만년필, 볼펜, 리필
럭셔리 펜만년필, 볼펜
종이노트, 다이어리, 크리에이티브 용지, 매수, 달력



1880년경부터 1975년까지 파버-카스텔은 세계 주요 계산자 제조업체 중 하나였으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2/83N이었다.

참조

[1] 간행물 Office Products https://www.faber-ca[...] 2009-12-16
[2] 간행물 Products for FineArts and FineWriting https://www.faber-ca[...] 2009-12-15
[3] 웹사이트 Faber-Castell International: Facts & Figures https://www.faber-ca[...] 2022-04-17
[4] 웹사이트 Inside the oldest pencil company in the world https://edition.cnn.[...] CNN 2018-10-31
[5] 웹사이트 History http://www.fabercast[...] 2019-04-17
[6] 웹사이트 Baroness Ottilie von Faber (1831-1903): "Life is fleeting like a dream" https://www.faber-ca[...] 2022-12-05
[7] 웹사이트 The sixth generation https://www.faber-ca[...] 2022-12-05
[8] 서적 Les 250 Ans de Faber-Castell https://issuu.com/fa[...] 2011-07-05
[9] 웹사이트 Baron Lothar von Faber (1817 - 1896) https://www.faber-ca[...] 2022-12-05
[10] 웹사이트 The Imperial Patent Office from 1891 to 1900 https://www.dpma.de/[...] 2022-12-06
[11] 웹사이트 Marken - Registerauskunft https://register.dpm[...] 2022-12-06
[12] 서적 Les 250 Ans de Faber-Castell https://issuu.com/fa[...] 2011-07-05
[13] 웹사이트 Count Alexander von Faber-Castell (1866–1928) https://www.faber-ca[...] 2022-12-05
[14] 웹사이트 1881, usine A.W Faber de Noisy-le-Sec http://www.noisylese[...] 2016-02-20
[15] 서적 Les 250 Ans de Faber-Castell https://issuu.com/fa[...] 2011-07-05
[16] 웹사이트 Count Roland von Faber-Castell (1905–1978) https://www.faber-ca[...] 2022-12-05
[17] 뉴스 The blue blood that runs through the world's oldest pencils https://www.thetimes[...] 2024-02-18
[18] 웹사이트 Faber-Castell: Pens, Pencils and a Whole lot of History! https://www.hamilton[...] 2024-02-18
[19] Youtube Adam Hughes – Anatomy of a sketch, Pt3 – The Tools https://www.youtube.[...] 2019-05-09
[20] 웹사이트 Basic techniques with Pitt Artist Pens https://www.faber-ca[...] 2022-12-04
[21] 웹사이트 Faber Castell products http://www.faber-cas[...]
[22] 웹사이트 The international Faber-Castell Production Sites http://www.faber-cas[...] Faber-Castell 2016-05-15
[23] 웹사이트 ファーバーカステル https://fun.shachiha[...] シヤチハタ公式サイト 2024-07-05
[24] 문서
[25] 웹인용 파버카스텔 역사 http://www.faber-cas[...] 2012-04-27
[26] 뉴스 '연필 제국' 이끄는 파버카스텔 회장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1-11-12
[27] 뉴스 파버카스텔 250주년 맞아 안톤 볼프강 백작 첫 방한…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잇는 연필 http://news.mk.co.kr[...] 매일경제 2011-11-15
[28] 웹인용 파버카스텔 로고 http://www.faber-cas[...] 2012-04-27
[29] 뉴스 고흐를 감동시켰던 영감의 디자인 - 파버카스텔 https://news.naver.c[...] 한국경제매거진 2007-07-25
[30] 뉴스 디지털이 연필을 위협? 고급만년필,화장펜슬...새 비즈니스 기회 열었죠 http://www.hankyung.[...] 한국경제 2011-06-16
[31] 웹인용 파버카스텔 브랜드 철학 http://www.faber-cas[...] 2012-04-27
[32] 뉴스 '연필 제국' 이끄는 파버카스텔 회장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1-11-12
[33] 뉴스 고흐를 감동시켰던 영감의 디자인 - 파버카스텔 https://news.naver.c[...] 한국경제매거진 2007-07-25
[34] 뉴스 디지털이 연필을 위협? 고급만년필,화장펜슬...새 비즈니스 기회 열었죠 http://www.hankyung.[...] 한국경제 2011-06-16
[35] 뉴스 남자의 액세서리 ⑥ 추억을 자극하는 연필 중앙일보 2012-04-03
[36] 뉴스 고흐를 감동시켰던 영감의 디자인 - 파버카스텔 https://news.naver.c[...] 한국경제매거진 2007-07-25
[37] 뉴스 남자의 액세서리 ⑥ 추억을 자극하는 연필 http://article.joins[...] 중앙일보 2012-04-03
[38] 뉴스 서울대 김춘추 교수 개인전 외 http://www.segye.com[...] 세계일보 2008-05-06
[39] 뉴스 Luxmen 제14호(2011년 11월) Style http://news.mk.co.kr[...] 매일경제 20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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