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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모델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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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드 모델 T는 1908년 출시되어 1927년까지 생산된 헨리 포드의 대표적인 자동차이다. 이 모델은 대량 생산 방식을 통해 자동차 가격을 낮춰 자동차를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모델 T는 직렬 4기통 엔진, 유성 기어 변속기, 가로 배치 판스프링 서스펜션 등 실용적이고 혁신적인 특징을 갖췄으며, 다양한 용도로 개조되어 활용되기도 했다. 모델 T는 미국의 경제, 사회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산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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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모델 T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제조사포드 자동차 회사
생산 기간1908년 10월 – 1927년 5월
조립 장소미국: 디트로이트, 미시간
미국: 하일랜드 파크, 미시간
미국: 도선, 앨라배마
미국: 애틀랜타, 조지아
미국: 덴버, 콜로라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미국: 미니애폴리스, 미네소타
미국: 세인트폴, 미네소타
미국: 세인트루이스, 미주리
미국: 캔자스시티, 미주리
미국: 시애틀, 워싱턴
미국: 포틀랜드, 오리건
미국: 오마하, 네브래스카
미국: 버펄로, 뉴욕
미국: 롱아일랜드시티, 뉴욕
미국: 신시내티, 오하이오
미국: 클리블랜드, 오하이오
미국: 콜럼버스, 오하이오
미국: 해밀턴, 오하이오
미국: 댈러스, 텍사스
미국: 휴스턴, 텍사스
미국: 포트워스, 텍사스
미국: 잭슨빌, 플로리다
미국: 뉴올리언스 루이지애나
미국: 디모인, 아이오와
미국: 케임브리지, 매사추세츠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
미국: 샬럿, 노스캐롤라이나
미국: 파고, 노스다코타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애나
미국: 루이빌, 켄터키
미국: 멤피스, 테네시
미국: 밀워키, 위스콘신
미국: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
미국: 피츠버그, 펜실베이니아
미국: 카니, 뉴저지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오클라호마
미국: 알렉산드리아, 버지니아
미국: 노퍽, 버지니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오스트레일리아: 질롱, 빅토리아
브라질: 상베르나르두두캄푸, 상파울루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
캐나다: 워커빌, 온타리오
캐나다: 위니펙, 매니토바
캐나다: 몬트리올, 퀘벡
캐나다: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
칠레: 산티아고
덴마크: 코펜하겐
프랑스: 보르도, 아니에르쉬르센
독일: 베를린
아일랜드: 코크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일본: 요코하마
멕시코: 멕시코시티
노르웨이: 베르겐
스페인: 카디스, 바르셀로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
영국: 맨체스터
설계자차일드 해럴드 윌스, 수석 엔지니어 조셉 A. 갈람, 유진 파카스
차종경제차
차체 스타일2도어 투어링 (1909–1911)
3도어 투어링 (1912–1925)
4도어 투어링 (1926–27)
무도어 로드스터 (1909–1911)
1도어 로드스터 (1912–1925)
2도어 로드스터 (1926–27)
로드스터 픽업 (1925–1927)
2도어 쿠페 (1909–1912, 1917–1927)
2도어 쿠플릿 (1915–1917)
타운카 (1909–1918)
C캡 왜건 (1912)
2(중앙) 도어 세단 (1915–1923)
2도어 세단 (1924–1927)
4도어 세단 (1923–1927)
독립적인 차체 제작자에서 모든 연도에 별도 차대 사용 가능
레이아웃FMR 레이아웃
엔진177 C.I.D. (2.9 L) 20 마력 I4
변속기2단 유성기어
축간거리100.0 인치 (2540 mm)
길이134 인치 (3404 mm)
너비1676 mm (1912년형 로드스터 기준)
높이1860 mm (1912년형 로드스터 기준)
무게1200-1650 lb (544-748 kg)
선대 모델포드 모델 N (1906–1908)
후속 모델포드 모델 A (1927–31)
모델 T 명칭
별칭틴 리지
기타달리는 농장
주요 특징
특징대량 생산 방식 도입
표준화된 부품 사용
저렴한 가격
다양한 차체 형식
기술 혁신
기술 혁신플래닛터리 기어 변속기
전진 2단 변속기, 후진 1단 변속기
내구성이 뛰어난 엔진
유연한 서스펜션
생산량 및 판매
총 생산 대수1,500만 대 이상
판매 대수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 중 하나
가격 정보
1910년 가격780 미국 달러 ( )
1924년 가격290 미국 달러 ( }} )
기타 정보
관련 인물헨리 포드
수상20세기 최고의 자동차

2. 역사

1880년대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초기 자동차는 대부분 희귀하고 값비쌌으며, 종종 신뢰성이 떨어졌다. 자동차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델 T는 최초로 신뢰할 수 있고, 유지보수가 용이하며, 대량 시장을 위한 자동차였기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출시 후 며칠 만에 1만 5천 대의 주문이 접수되었다.[26]

최초의 모델 T는 1908년 8월 12일에 제작되었고,[27] 같은 해 9월 27일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포드 피케트 애비뉴 공장에서 출고되었다. 1927년 5월 26일, 헨리 포드는 미시간 주 하이랜드 파크에 있는 자신의 공장에서 1천 5백만 번째 모델 T 포드가 조립 라인을 벗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28]

모델 T는 포드의 첫 번째 대량 생산 자동차였으며, 완전히 호환 가능한 부품을 사용한 이동식 조립 라인에서 생산되어 중산층에 판매되었다.[30] 헨리 포드는 이 자동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저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 것입니다. 가족에게는 충분히 크지만, 개인이 운전하고 관리하기에도 충분히 작을 것입니다. 최고의 재료로, 고용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람들에 의해, 현대 공학이 고안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디자인으로 제작될 것입니다. 하지만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 괜찮은 급여를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소유할 수 있고, 그의 가족과 함께 하나님의 넓은 자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31]

랜섬 E. 올즈가 1901년에 최초의 대량 생산 자동차인 올즈모빌 커브드 대시의 생산을 시작하면서 조립 라인 개발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지만,[32] 모델 T의 수명 동안 시스템 효율성의 엄청난 향상은 거의 전적으로 포드와 그의 엔지니어들에게 돌아간다.

2. 1. 모델 T 이전

1880년대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초기 자동차는 대부분 희귀하고 값비쌌으며, 종종 신뢰성이 떨어졌다. 자동차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헨리 포드1903년 자신이 사장을 맡는 새로운 자동차 회사 포드 자동차를 설립하고, 디트로이트에 첫 공장인 피켓 공장을 개설했다.[93]

초기에는 차체 중앙부 바닥 아래에 2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체인으로 후륜을 구동하는 "버기"라고 불리는 소형차를 생산했다. 당시 미국의 도로는 험한 길이 많았고, 유럽 자동차에 비해 세련되지 않은 형태의 "버기"형 자동차가 오히려 당시 상황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1903년의 "모델 A", 1904년의 "모델 C", 1905년의 "모델 F"가 "버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곧 본격적인 자동차가 요구됨에 따라, 1905년의 "모델 B"에서는 포드의 양산차로서는 처음으로 직렬 4기통 엔진을 프런트에 탑재하고 프로펠러 샤프트로 후륜을 구동하는 일반적인 레이아웃으로 전환했다. 1906년에는 출자자인 알렉산더 말콤슨 등의 의향으로 대형 6기통 40HP 고급차 "모델 K"도 개발했지만, 생산의 주류는 되지 못했다. 포드사는 당시부터 소형 대중차 생산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93]

헨리 포드는 1903년 회사 설립과 모델 T 출시 사이에 여러 자동차를 구상했다. 포드는 자신의 첫 번째 자동차를 모델 A라고 명명하고, 모델 T까지 알파벳 순서대로 모델명을 지었다. 총 20개의 모델이 있었지만, 모두 생산된 것은 아니다. 모델 T 바로 이전의 생산 모델은 모델 S였으며,[29] 당시 회사의 가장 큰 성공작인 모델 N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2. 2. 모델 T 개발

1880년대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초기 자동차는 대부분 희귀하고 값비쌌으며, 종종 신뢰성이 떨어졌다. 자동차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델 T는 최초로 신뢰할 수 있고, 유지보수가 용이하며, 대량 시장을 위한 자동차였기에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출시 후 며칠 만에 1만 5천 대의 주문이 접수되었다.[26]

최초의 모델 T는 1908년 8월 12일에 제작되었고,[27] 1908년 9월 27일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포드 피케트 애비뉴 공장에서 출고되었다.

헨리 포드는 1903년 회사 설립과 모델 T 출시 사이에 여러 자동차를 구상했다. 포드는 자신의 첫 번째 자동차를 모델 A라고 명명하고, 모델 T까지 알파벳 순서대로 모델명을 지었다. 총 20개의 모델이 있었지만, 모두 생산된 것은 아니다. 모델 T 바로 이전의 생산 모델은 모델 S였으며,[29] 당시 회사의 가장 큰 성공작인 모델 N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1906년 말에는 "버기" 모델 F를 대체할 본격적인 4기통 소형차 "모델 N"을 출시했다. 2기통 12HP의 모델 F가 1000USD였던 데 비해, 4기통 17HP의 모델 N은 양산 단계에서 원가 절감이 이루어져 절반 가격인 500USD에 판매되었다. 곧 파생 모델로 "모델 R", "모델 S"도 개발되었다. 모델 N은 매우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우수하여 판매량이 좋았고, 그 성공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 때문에 부분적인 흐름 작업 방식의 도입이 시도되었고, 공장 확장도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처음부터 양산을 고려하여 개발된 모델 N 시리즈였지만, 더 많은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기존 체제로는 한계가 있었고, 포드는 생산성의 근본적인 향상을 추진해야만 했다. 그래서 모델 N의 설계를 많이 참고하면서도, 전체를 새롭게 하여 성능을 향상시키고, 더욱 대량 생산에 적합한 신형차 개발을 1907년 초부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후일의 모델 T이다.

당시 포드의 혁신적인 부분으로 부품 호환성 달성을 들 수 있다. 1900년대 많은 자동차들이 개별 부품의 균일한 가공 정밀도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최종 조립 단계에서 수작업으로 조정해야 했던 반면, 포드는 이미 캐딜락의 헨리 리랜드(Henry Leland) 방식을 본받아 마이크로게이지를 기준으로 한 규격화를 통해 부품 호환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여기서 미싱 제조업체인 싱거社 출신으로 포드의 생산 관리자를 잠시 역임했던 월터 플랜더스(Walter E. Flanders)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부품 호환성의 실현은 대량 생산의 전제 조건이었고, 포드는 이 점에서 대중차 업계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한편 같은 무렵, 야금학 연구가 진행되던 영국에서 신종 고속도강인 "바나듐강"이 개발되었다. 기존 강재의 두 배에 달하는 장력을 지니면서도 가볍고 고속 절삭 가공이 가능한, 자동차용 소재로 이상적인 재질이다. 헨리 포드는 이를 알고 신형차에 바나듐강을 다량 사용하여 생산성 향상과 경량화를 도모하기로 했다.[94]

모델 T의 개발 작업은 1907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헨리 포드 자신을 수석으로 하고, C. 해롤드 윌리스(Childe Harold Wills), 찰스 소렌슨(Charles Sorensen) 등 사내 소수 직원만으로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작업에는 피켓 공장 내의 특별한 방을 할애하여, 헨리의 지시에 따라 헝가리 출신의 조셉 갈람(Joseph Galamb)이 설계를 하고, 다른 방에서는 19세의 기계공 찰스 J. 스미스(Charles J. Smith)가 실제 부품 제작을 담당했다. 헨리는 종종 오랜 시간 흔들의자에 기대앉아 부하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실험 단계 초기 시험대에는 실적이 있는 모델 N 섀시가 사용되었다.[93]

2. 3. 모델 T의 성공

1880년대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초기 자동차는 대부분 희귀하고 값비쌌으며, 종종 신뢰성이 떨어졌다. 자동차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델 T는 최초로 신뢰할 수 있고, 유지보수가 용이하며, 대량 시장을 위한 자동차였기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출시 후 며칠 만에 1만 5천 대의 주문이 접수되었다.[26]

최초의 모델 T는 1908년 8월 12일에 제작되었고,[27] 1908년 9월 27일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포드 피케트 애비뉴 공장에서 출고되었다. 1927년 5월 26일, 헨리 포드는 미시간 주 하이랜드 파크에 있는 자신의 공장에서 1천 5백만 번째 모델 T 포드가 조립 라인을 벗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28]

모델 T는 포드의 첫 번째 대량 생산 자동차였으며, 완전히 호환 가능한 부품을 사용한 이동식 조립 라인에서 생산되어 중산층에 판매되었다.[30] 헨리 포드는 이 자동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저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 것입니다. 가족에게는 충분히 크지만, 개인이 운전하고 관리하기에도 충분히 작을 것입니다. 최고의 재료로, 고용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람들에 의해, 현대 공학이 고안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디자인으로 제작될 것입니다. 하지만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 괜찮은 급여를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소유할 수 있고, 그의 가족과 함께 하나님의 넓은 자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31]

1910년형 모델 T 투어링. 초기의 전형적인 모델 T이다


모델 T는 1907년 10월에 최초의 프로토타입 2대가 완성되었고, 다음 해인 1908년 3월에 발표되었지만, 시판은 같은 해 10월부터였다. 디트로이트의 피켓 공장에서 최초의 시판 모델 T가 생산 라인에서 나온 것은 1908년 9월 27일이었다.

모델 T는 당시 미국에서 소형차 범주에 해당했으며, 처음에는 600달러의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원가 절감이 따라잡지 못하여, 모델 N보다 약간 상급 클래스로 850달러 이상의 가격으로 출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급 자동차가 1,000달러대였기 때문에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듬해인 1909년 4월까지는 3개월치의 주문 잔량(백오더)을 안게 되어, 7월까지 주문을 중단해야 했다. 1909년 한 해에만 1만 대가 넘는 모델 T가 생산되어 당시로서는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러한 대히트를 맞이한 헨리 포드는 병행 생산하던 소형차 모델 N, R, S와 고급차 모델 K의 생산을 중단하고, 모델 T 단일 차종에 집중하는 대량 생산을 결정했다.

이후 모델 T의 역사는 모델 T라는 단일 자동차 자체의 발전 이상으로, 대량 생산 기술 발전의 역사였다. 헨리 포드와 그의 두뇌 집단들은 원래 완성도가 높은 실용적인 대중차인 모델 T를 더 빠르고, 대량으로, 효율적으로, 그리고 더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

포드사는 판매 후 서비스 체계에도 신경을 썼다. 미국 전역에 걸쳐 광범위한 서비스망을 구축하고, 수리 부품을 비축하는 데포를 각지에 설치했다. 모델 T는 원래 튼튼하고 고장도 적었으며, 구조가 단순하여 아마추어도 정비하기 쉬웠지만, 애프터서비스의 충실은 사용자들의 신뢰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초기 모델 T의 "Ford, the universal car (만능차 포드)", "Watch the Fords go by (포드의 방식을 보라)"와 같은 광고 문구[95]에서도 헨리 포드가 모델 T에 대해 가지고 있던 큰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93]

1910년에는 60acre의 면적을 차지한 하일랜드 파크 공장이 완공되어 모델 T의 주력 생산 거점이 되었다.

2. 4. 모델 T의 쇠퇴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포드 모델 T는 점차 시대에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도로 정비가 진전되고 포장도로가 늘어나면서 자동차의 고속화와 엔진의 고출력화가 이루어졌지만, 모델 T는 여전히 낮은 출력과 속도를 유지했다.

1924년 포드 자동차 생산 누계 1,000만 대 달성 기념 사진. 헨리 포드 양쪽에는 1896년 최초의 가솔린 엔진 시제품과 1,000만 대 기념 모델 T가 나란히 있다.


다른 고성능차들은 6기통에서 8기통, 심지어 12기통 엔진을 탑재하여 최고 속도가 70~80마일/h에 달했고, 4기통 대중차들도 성능 향상으로 55~60마일/h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모델 T의 최고 속도는 40~45마일/h에 불과했다.[93]

또한, 장비 추가와 차체 변화로 인해 차량 중량이 증가했다. 기본 모델인 투어링 타입의 경우, 1908년에는 1250파운드(545kg)였던 차체 중량이 1926년에는 1728파운드까지 늘어났다.

연도투어링 타입 중량
1908년1250 파운드 (545kg)
1916년1400 파운드 (635kg)
1918년1500 파운드 (680kg)
1923년1650 파운드 (748kg)
1926년1728 파운드 (784kg)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지붕이 있는 클로즈드 바디가 인기를 얻었지만, 모델 T의 클로즈드 바디 모델은 투어링 타입보다 200~300파운드 더 무거웠다. 그러나 엔진은 여전히 20HP였고, 변속기도 2단식 그대로여서 성능이 차체 무게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을 빗대어 "틴 리지(모델 T)는 절대 추월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추월해도 앞에 또 다른 T형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농담이 생겨났다. 이는 모델 T가 매우 많다는 점과 동시에 매우 느리다는 것을 의미했다.

2. 5. 모델 T 이후

1927년 5월 26일, 하일랜드 파크 공장에서 1,500만 대째 모델 T(투어링)가 완성되면서 모델 T의 생산은 종료되었다.[96] 하지만 자동차 이외의 용도로 사용될 모델 T 엔진 생산은 같은 해 8월까지 계속되었고, T형 부품 생산도 이어졌다.[96]

19년간 미국 본국 및 여러 국가에서 생산된 모델 T 및 모델 TT의 총 생산 대수는 1,500만 7,033대였다. 이는 1972년 2월 17일 폭스바겐 비틀(Volkswagen Beetle)이 총 1,500만 7,034대를 달성할 때까지 약 44년 9개월 동안 단일 모델 최다 생산 기록이었다.[96] 모델 T 4기통 엔진은 1941년 8월까지 산업용 엔진으로 생산이 계속될 정도로 수명이 길었다.

헨리 포드는 모델 T 제조 종료 시점까지 후속 모델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97] 이로 인해 포드의 대중차 생산은 약 반년 이상 중단되었고, 2억 달러 이상의 가동 중단 비용이 발생했다. 판매점에 대한 신차 공급은 9개월이나 중단되었으며, 포드 딜러들은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회사 대리점이 되기도 했다.

포드사는 헨리 포드의 지휘 아래 신차 개발을 서둘렀고, 1927년 10월 21일 첫 시험차가 완성되었다. 1927년 12월 2일, 포드 모델 A가 모델 T의 후속으로 발표되었다. 모델 A는 40마력 4기통 엔진, 셀프 스타터, 3단 변속기, 4륜 브레이크를 갖추고, 린컨의 영향을 받은 차체를 가진, 당시 대중차로서 높은 수준의 신형차였다. 상용 섀시인 "모델 AA"도 개발되어 상용차 시장 유지와 엔진 공용을 통한 대량 생산 효과를 확보했다.

포드 모델 A(1928년) 횡배치 리프 스프링 방식의 서스펜션은 T형과 같았지만, 크게 현대화되었고 링컨 스타일을 갖추었다.


하지만 모델 A의 본격적인 양산은 1928년에 들어서야 시작되었다. 포드 공장의 모든 생산 설비는 모델 T/TT에 최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대적인 개조가 필요했다. GM은 이 공백을 틈타 시보레 차량 판매를 강화했다. 허드슨의 에섹스, 크라이슬러의 프리무스도 성장했다. 알프레드 슬론은 이 장기 가동 중단이 포드사의 몰락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시보레 시리즈 AA 캐피털(1927년) 포드가 모델 T의 생산을 종료한 1927년, 시보레는 연간 생산량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시보레 시리즈 AC 인터내셔널(1929년) 포드의 모델 A에 대응하듯 동급 가격과 배기량으로 한 등급 위인 6기통 46마력 엔진을 탑재하여 상품력으로 차별화했다.


포드 모델 A는 실용적이고 경쟁력 있는 대중차였지만, GM은 더욱 강력하게 반격했다. 1928년에 발표된 시보레 1929년형은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하여 포드 모델 A를 능가하는 성능을 제공하면서도 가격은 비슷하게 유지하여 대중차 시장의 주도권을 쥐었다. 대공황 시기에는 GM이 생산 조정에 조기에 착수하여 불황에 대처했지만, 포드는 적절한 이익 관리 방법을 소홀히 하여 큰 손실을 보았다.

모델 A는 GM의 연식 변경 압력에 1930년형의 큰 마이너 체인지를 거치더라도 1932년에 V형 8기통 엔진을 도입한 후속 차량 "모델 B" 계열로 이행할 때까지 4년밖에 생산할 수 없었다.

1920년대-30년대를 거치면서 자동차 업계의 최고 자리는 포드에서 GM으로 옮겨갔고, 이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포드사는 모델 T와 함께 발전했지만, 결국 모델 T 때문에 발목을 잡히게 된 것이다.

3. 특징

모델 T는 차일드 해롤드 윌스가 설계했으며, 헝가리 이민자 조셉 A. 갈람브[20][33]와 유진 파르카스가 참여했다.[34] 헨리 러브, C. J. 스미스, 구스 드그너, 피터 E. 마틴도 팀의 일원이었으며,[35] 갈람브와 함께 헝가리 이민자인 율라 하르텐버거와 카롤리 발로그도 참여했다.[20]

포드 모델 T의 현가 장치 구성 요소. 코일 스프링 장치는 "해슬러 쇼크 흡수기"라는 애프터마켓 액세서리이다.


모델 T의 현가장치는 앞뒤 빔 액슬 각각에 가로로 장착된 반타원형 스프링을 사용하여 당시의 비포장 도로에 대처하기 위해 휠의 움직임을 크게 허용했다. 프런트 액슬은 단일 조각의 바나듐강으로 단조되었으며, 포드는 많은 액슬을 8회전(2880도) 비틀어서 판매점에 전시하여 우수성을 입증했다.

모델 T에는 현대식 서비스 브레이크가 없었다. 오른발 페달은 변속기의 드럼 주위에 밴드를 적용하여 뒷바퀴가 회전하는 것을 멈췄다. 앞서 언급한 주차 브레이크 레버는 뒷바퀴 허브의 일체형 부품인 뒷 브레이크 드럼 안쪽에 작용하는 밴드 브레이크를 작동했다. 브레이크 드럼 바깥쪽에 작용하는 선택적 브레이크는 애프터마켓 공급업체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휠은 목재 포병용 바퀴였으며, 1926년과 1927년에는 강철 용접 스포크 휠을 사용할 수 있었다. 타이어는 공기 타이어 클린처 타입으로, 지름이 약 76.20cm, 뒷바퀴 너비가 약 8.89cm, 앞바퀴 너비가 약 7.62cm였다. 클린처 타이어는 오늘날의 타이어보다 훨씬 높은 압력(일반적으로 60psi)이 필요했는데, 이는 고속으로 주행할 때 림에서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펑크는 흔한 문제였다. 1925년에는 풍선 타이어가 출시되었는데, 전후 모두 21x였다. 풍선 타이어는 타이어 비드를 강화하는 강철 와이어를 사용하여 오늘날의 타이어 디자인과 유사했고, 더 낮은 압력(일반적으로 35psi)을 가능하게 하여 더 부드러운 승차감을 제공했다. 풍선 타이어가 도입되면서 스티어링 기어 비율이 4:1에서 5:1로 변경되었다.[50]

휠베이스는 약 254.00cm이고 표준 트랙 너비는 약 142.24cm였다. 약 152.40cm 트랙은 "남부 도로용"으로 특별 주문할 수 있었는데, 이는 남북 전쟁 이전의 트랙 게이지와 동일하여 당시 남부 연합의 많은 철도에서 사용되었다. 표준 56인치 트랙은 약 1.22m 인치 표준 철도 트랙 게이지와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모델 T는 플랜지 휠을 장착하고 자동차 철도 차량 또는 "스피더"로 사용될 수 있었고 실제로 자주 사용되었다.

모델 T는 1908년 당시 필요로 하는 성능 수준을 충분히 만족하는 자동차였으며, 대량 생산과 대중 사용자에 의한 실용을 염두에 둔 독창적이고 매우 완성도가 높은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생산된 것이 말기의 구식화와 그에 따른 쇠퇴를 초래했을 뿐이다. 조종이 용이하고, 악천후에서 필요로 하는 내구성, 주행 성능을 만족하며, 기본적인 공구와 설명서만으로도 아마추어가 상당 부분을 수리할 수 있도록 배려되었다.

1900년대 후반 이미 일반화되었던, 강철 재료를 사용한 사다리꼴 프레임을 기반으로 하는 레이아웃으로, 바나듐 강 등 새로운 재료를 채용하고, 압연 부재를 사용하는 등 전체적으로 경량화·강화되었다.

레이아웃에서는 기존 포드차가 오른쪽 핸들 사양이었던 것을 모델 T부터 왼쪽 핸들 표준 사양으로 한 것이 큰 변경점이다. 헨리 포드는 오른쪽 통행인 미국에서는 왼쪽 핸들이 조종상의 시야에서 더 편리하다고 판단하여 이 변경을 실시했다. 모델 T는 영국을 대표로 하는 오른쪽 핸들 표준 국가에 수출하는 것을 고려하여, 오른쪽 핸들 사양으로의 설계 변경도 가능한 구조이며, 실제로 영국 공장 생산차나 일본 공장 조립차 등은 오른쪽 핸들 사양으로 제작되었다.

조향장치는 섀시에서 비스듬히 위로 뻗은 두꺼운 강철 파이프의 스티어링 컬럼에 의해서만 지지된다. 모델 T는 스티어링 휠 바로 아래에 유성 기어식 감속 기구를 갖추고 있었다.

장착된 브레이크는 후륜 드럼 브레이크와 변속기에 일체화된 드럼 조임식 센터 브레이크이다. 주 브레이크는 센터 브레이크이며, 프로펠러 샤프트와 후차축을 통해 후륜으로 제동력을 전달했다. 후륜 드럼 브레이크는 주로 주차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모두 와이어나 로드를 통해 작동하는 단순한 기계식이었다.[93]

3. 1. 엔진 및 구동 방식

모델 T는 전면에 장착된 177cuin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하여 최고 20hp의 출력을 내며 최고 속도는 42mph에 달했다.[37] 포드 자동차 회사에 따르면 모델 T의 연비는 였다.[38] 이 엔진은 휘발유를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지만, 등유 또는 에탄올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39][40][41] 하지만 휘발유 가격의 하락과 이후 금주법 시행으로 대부분의 사용자에게 에탄올은 비실용적인 연료가 되었다. 초기 2,447대의 엔진은 워터 펌프로 냉각되었지만, 2,448대 이후의 엔진은 2,500대 이전의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써모사이폰 작용으로 냉각되었다.[42]

모델 T 엔진


모델 T에 사용된 점화 장치는 독특한 방식으로, 플라이휠에 저전압 마그네토가 통합되어 교류를 트렘블러 코일에 공급하여 점화 플러그를 작동시켰다. 이는 다른 자동차에 사용된 고가의 고전압 점화 마그네토보다는 고정식 가스 엔진에 사용되는 방식에 더 가까웠다. 이러한 점화 방식은 모델 T가 사용하는 연료의 종류나 품질에 대한 유연성을 높였다. 이 시스템은 시동 배터리가 필요하지 않았는데, 적절한 수동 크랭킹으로 시동에 충분한 전류를 생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그네토로 구동되는 전기 조명은 1915년에 채택되어 아세틸렌 가스 불꽃 램프와 기름 램프를 대체했지만, 전기 시동은 1919년까지 제공되지 않았다.[43]

1920년형 모델 T의 운전석 조작 장치


모델 T 엔진은 모델 T의 생산이 종료된 후에도 1941년까지 예비 부품 및 고정식 및 선박용으로 생산되었다. 약 10년 후에 설계된 포드슨 모델 F 트랙터 엔진은 모델 T 엔진과 매우 유사했지만 더 컸다.[44]

모델 T의 클러치, 브레이크, 후진 페달 세 개


모델 T는 후륜구동 자동차이다. 변속기는 당시 "3단"으로 알려진 유성 기어 방식이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후진 기어 하나를 포함하여 2단 변속기로 간주된다.

모델 T의 변속기는 바닥에 장착된 세 개의 페달(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능[45])과 운전석 도로 쪽에 장착된 레버로 조작된다. 스로틀핸들에 있는 레버로 조작한다. 왼쪽 페달은 변속기를 작동하는 데 사용된다. 바닥 레버가 중간 위치 또는 최전방 위치에 있고 페달을 앞으로 밟고 있으면 저속 기어가 작동된다. 중간 위치에 있으면 중립 상태이다. 왼쪽 페달을 놓으면 모델 T는 고속 기어에 들어가지만, 레버가 최전방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다른 위치에서는 페달이 중앙의 중립 위치까지만 올라간다. 이를 통해 운전자가 수동으로 엔진을 크랭크할 때 중립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운전자는 페달을 밟지 않고도 주행할 수 있다.

초기 800대에서는 레버로 후진 기어를 작동했지만, 그 이후 모델은 중앙 페달을 사용하여 차량이 중립 상태일 때 후진 기어를 작동한다.[42] 오른쪽 페달은 변속기 브레이크를 작동한다. 바퀴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바닥 레버는 주차 브레이크도 조절하는데, 레버를 완전히 뒤로 당겨 작동시킨다. 이것은 비상 브레이크 역할도 한다.

모델 T 롤링 섀시 – 위쪽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구동 벨트가 조정에서 벗어나 차량이 특히 추울 때 서서히 움직일 수 있었다. 이는 시동을 걸려는 시도에 또 다른 위험을 더했다. 엔진을 크랭크하는 사람은 차가 앞으로 서서히 움직이면서도 크랭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뒤로 밀릴 수 있었는데, 이때는 명목상 중립 상태였다. 차량이 습식 클러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걸쭉해진 오일이 클러치 디스크가 자유롭게 미끄러지는 것을 방해하는 추운 날씨에도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동력은 토크 튜브에 부착된 단일 유니버설 조인트를 통해 차동 장치에 전달되며, 후륜 액슬을 구동한다. 일부 모델(일반적으로 트럭이지만 승용차에도 사용 가능)에는 언덕길 주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언더드라이브 기어를 제공하는 선택 사양인 2단 속도 Ruckstell 액슬을 장착할 수 있었다. 이는 바닥에 장착된 레버로 변속한다.

밴드 라이닝 재료는 두 가지 주요한 종류가 사용되었다.[46]

  • 면(Cotton) – 면으로 짠 라이닝은 포드에서 처음으로 장착하고 지정한 유형이다. 일반적으로 면 라이닝은 드럼 표면에 더 "부드럽다". 드럼 손상은 고정 리벳이 드럼 표면에 자국을 남기는 것에 의해서만 발생한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부적절한 조정으로 인해 밴드가 끌리면 변속기와 엔진이 과열되고 동력이 감소하며, 면 라이닝의 경우 밴드 라이닝이 빠르게 파손된다.
  • 목재(Wood) – 목재 라이닝은 원래 모델 T의 수명 동안 "수명이 더 긴" 부속품으로 제공되었다. 이들은 일반적인 모델 T 변속기 밴드에 장착된 증기로 구부린 나무와 금속 와이어로 된 일체형이었다.[47] 이러한 밴드는 페달에 매우 다른 느낌을 주며, 훨씬 더 강한 "물림" 느낌을 준다. 드럼을 확실히 "잡는" 느낌이 나며, 특히 브레이크 드럼의 느낌을 현저하게 향상시키는 것 같다.

3. 2. 차체

모델 T는 생산 기간 동안 차체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으며, 여러 스타일 세대로 분류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후드와 카울 영역에 있었지만, 차량에도 많은 수정이 이루어졌다.

  • 1909년~1914년 – 거의 직선인 다섯 면의 후드가 특징이며, 중앙 경첩이 있는 평평한 상단과 접이식 경첩이 있는 두 개의 측면 경사면이 있다. 방화벽은 앞 유리 아래쪽부터 평평하며 뚜렷한 카울이 없다. 이 시기에는 불꽃이 바람과 비에 강하기 때문에 아세틸렌 가스 불꽃 전조등이 사용되었다. 두꺼운 오목 거울과 확대 렌즈를 결합하여 아세틸렌 불꽃 빛을 투사했다. 연료 탱크는 앞좌석 아래에 배치되어 있다.
  • 1915년~1916년 – 후드 디자인은 거의 동일한 다섯 면 디자인이며, 눈에 띄는 유일한 변화는 수직면에 루버가 추가된 것이다. 카울 영역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는데, 앞 유리가 방화벽 뒤쪽으로 상당히 재배치되고 복합 윤곽의 카울 패널과 결합되었다. 이 시기에는 카바이드 전조등을 대신하여 전기 전조등이 사용되었다.
  • 1917년~1923년 – 후드 디자인이 곡선형 상단이 있는 테이퍼형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접이식 경첩은 이제 평평한 면과 곡선형 상단 사이의 이음매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것은 때때로 이후의 후드와 구별하기 위해 "낮은 후드"라고 불린다. 후드의 뒷 가장자리는 이제 카울 패널의 앞 가장자리와 만나 후드 외부에 방화벽의 평평한 부분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디자인은 가장 오래 사용되었고 생산량이 가장 많은 시기에 사용되어 총 모델 T 수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 1923년~1925년 – 이 변경은 1923년 달력 연도에 이루어졌으므로, 그 해 초에 제작된 모델은 이전 디자인을 가지고 있고, 후반부에 제작된 차량은 새로운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후드의 테이퍼가 증가되었고, 방화벽의 후면 부분은 이전 디자인보다 약 1인치 더 높고 몇 인치 더 넓다. 이것은 비교적 사소한 변화이지만, 3세대와 4세대 사이의 부품은 호환되지 않는다.
  • 1926년~1927년 – 이 디자인 변경은 자동차의 외관에 가장 큰 차이를 만들었다. 후드가 다시 커졌고, 카울 패널은 더 이상 복합 곡선이 아니었으며 후드의 라인과 훨씬 더 잘 어울렸다. 방화벽과 앞 유리 사이의 거리도 상당히 증가했다. 이 스타일은 때때로 "높은 후드"라고 불린다.


마지막 "세대"의 스타일은 다음 모델 A를 위한 예고편이었지만, 두 모델은 시각적으로 상당히 다르다. A의 차체는 훨씬 더 넓고 T의 평평한 도어와는 달리 곡선형 도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21년식 모델 T 센터도어 세단. 중앙 도어를 통해 전후좌석을 공용하여 비용을 절감한 클로즈드 바디. 라디에이터까지 이르는 전면 검정 도장은 후기형 모델 T의 전형적인 외관이라고 할 수 있다.


5인승으로 측면 창문이 없고 접이식 후드를 갖춘 투어링형 바디가 생산 기간 전반에 걸쳐 모델 T의 주류 바디였다. 1900년대의 자동차는 아직 오픈 바디가 일반적이었고, 모델 T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 초기에는 뒷좌석에만 문이 있었고, 앞좌석은 문이 없었지만, 1912년경부터는 앞좌석에도 문이 달리게 되었다. 오픈 타입으로는 그 외에 "쿠페렛", "런어바웃"과 같은 2인승 모델이 있었다. "런어바웃"은 저렴한 2인승 오픈 모델로 가장 기본적인 등급이었다. "쿠페렛"은 포드 T형에서만 사용된 2인승 카브리올레의 명칭이다.

투어링의 윈드실드 구조는 상하 2분할식으로, 등받이를 낮추는 접이식이었지만, 후기형은 위쪽 창문을 열고 닫아 환기를 하는 구조가 되었고, 실드가 놓이는 카울 부분을 낮추는 동시에, 수직으로 서 있던 실드를 경쟁 차량처럼 약간 뒤쪽으로 기울여 현대적으로 만들었다.

지붕과 측면 유리를 갖춘 "클로즈드 바디"는 1910년대 중반 이후 로드스터의 발전형으로 2인승 쿠페 바디가 장착되면서 상당한 대수가 판매되었다. 또한 포드만의 시도로 저렴한 세단 바디 공급을 목표로, 측면 중앙에 전후좌석에서 공용하는 "센터 도어"를 배치한 5인승 세단이 있었다. 소량 제작된 독특한 예로는, 리무진처럼 뒷좌석만 완전 클로즈드 바디, 운전석은 측면이 오픈된 택시용 "타운카"형도 있었다. 윈드실드는 상하 2분할식으로, 상단이 앞쪽으로 열려 환기가 가능했다.

1923년 마지막 마이너 체인지에서 4도어와 2도어의 일반형 세단이 추가되었다. 앞문은 앞쪽 경첩이지만, 4도어 차량은 뒷문이 뒤쪽 경첩이 되어 소위 "갈매기 날개" 배치이다. 뒷문 바로 뒤에도 창문을 설치한 6라이트 세단이었다. 무게가 늘어나 주행 성능은 저하되었다.

이 외에도 포드 사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니즈에 따라 다채로운 바디 장착이 이루어졌다.

보닛과 차체 사이의 성형은 초기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각진 보닛이 평평한 대시보드와 바로 맞닿은 형태로, 펜더도 앞뒤 바퀴 위에서 수평으로 잘리고, 전체적으로 투박한 형태였다.

그 후, 1914년경부터는 보닛과 대시보드 사이가 곡면의 카울로 성형되었고, 펜더 앞뒤 끝도 약간 길어지면서 더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형태가 되었다.

1917년 이후, 라디에이터에 맞춘 보닛 상부의 곡면화와 라디에이터의 검은색 도장으로 외관은 다소 모던하지만 수수한 모습이 되었다.

1923년 이후 후기형은 라디에이터가 높아진 만큼 보닛도 높아지고, 카울 부분의 성형도 더욱 세련되었다. 카울 상단에는 통풍구도 설치되어 있다. 후기 투어링 모델은 카울 높이를 낮추고 프런트 윈드실드를 넓혔기 때문에, 기존 모델 T에서 강했던 높고 껑충한 인상은 상당히 완화되었고, 동시대 다른 회사의 신형차에 가까운 스타일이 되었다. 1926년 이후 최종기에는 옵션으로 프런트 범퍼도 준비되었다.

3. 3. 생산 방식

모델 T의 생산 기간, 특히 1916년 이후에는 30개 이상의 제조업체가 모델 T의 동력 전달 장치 기어를 대체하거나 향상시키기 위한 보조 변속기 또는 구동 장치를 제공했다.[48][49] 이 장치들은 더 빠른 속도와 효율을 위한 오버드라이브나, 더 큰 하중을 운반하거나 끌 수 있도록 더 큰 토크를 위한 언더드라이브를 제공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들 중에는 Ruckstell 2단 후방 차축과 Muncie, Warford, Jumbo의 변속기가 있었다.[48][49]

애프터마켓 변속기는 일반적으로 다음 네 가지 범주로 나뉜다.[49]

  • ''변속기 교체용'' – 포드의 유성 기어 변속기를 직접 교체하기 위한 슬라이딩 기어/선택 변속기.[49]
  • ''전면 장착 보조 변속기'' – 엔진과 포드의 변속기 사이에 장착되어 추가 기어비를 제공.[49]
  • ''후면 장착 보조 변속기'' – 후방 차축 하우징에 장착되고, 드라이브 샤프트와 연결되어 추가 기어비를 제공.[49]
  • ''다단 차축'' – 디퍼렌셜 하우징 ''내부''에 장착되어 추가 기어비를 제공.[49]


모델 T 시대의 포드 전문가인 머레이 파네스톡은 포드 세단과 쿠플레트와 같이 밀폐형 모델 T에 보조 변속기를 사용하는 것을 세 가지 이유로 권장했다. 더 무거운 무게는 동력 전달 장치와 엔진에 더 큰 부담을 주는데, 보조 변속기는 이를 완화할 수 있었다. 차체는 공명판 역할을 하여 고속으로 엔진 소음과 진동을 증폭시켰는데, 중간 기어를 사용하면 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밀폐형 자동차 소유자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했으므로, 차량을 개선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쓸 가능성이 있었다.[48]

그는 또한 보조 변속기가 상업용 포드 톤 트럭에 유용하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다양한 하중(특히 빈 차로 돌아올 때)에 따라 주행 속도를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하여, 돌아오는 운전 시간을 최대 50%까지 절약할 수 있게 해준다.[48]

모델 T가 설계되고 출시되었을 당시 세계의 인프라는 오늘날과는 매우 달랐다. 헨리 포드는 당시 상황을 바탕으로 모델 T의 요구 사항과 설계를 감독했다. 그 결과 모델 T는 자동차일 뿐만 아니라 트랙터와 휴대용 엔진과 거의 같았다. 모델 T는 바위투성이 진흙투성이의 농장 길을 여행하고, 얕은 개울을 건너고, 가파른 언덕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지형에서의 주행 능력과 견고성이 뛰어났다. 또한, 바퀴 하나를 제거하고 허브에 풀리를 고정하여 평벨트를 사용하여 벅소, 탈곡기, 옥수수 저장고 또는 건초 창고 채우기용 컨베이어, 베일러, 워터 펌프, 발전기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 모델 T의 독특한 용도 중 하나는 1922년 10월호 ''포드슨 파머'' 잡지에 소개되었는데, 이 잡지는 모델 T를 작은 오르간이 있는 이동식 교회로 개조한 목사를 소개했다.[56]

이 시대 동안 소유주들은 수천 대의 모델 T를 포함한 전체 자동차를 분해하여 수제 트랙터와 얼음톱과 같이 특정 목적에 영구적으로 전용되는 맞춤형 기계로 재구성했다.[57] 수십 개의 애프터마켓 회사들이 T를 자동차에서 트랙터로 개조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조립식 키트를 판매했다.[58] 모델 T는 포드슨 트랙터(1917~18년)가 출시되기 10년 전에 이미 존재했으며 많은 T가 현장 작업용으로 개조되었다. 다음 10년 동안 포드슨과 그 후 팜올(1924년) 및 기타 경량 및 저렴한 트랙터가 농업 시장을 담당하면서 모델 T 트랙터 개조 키트는 판매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대공황(1930년대) 동안 중고 모델 T와 그 부품이 풍부하고 저렴해짐에 따라 모델 T 트랙터 개조 키트가 다시 유행했다.[59]

당시의 많은 인기 자동차 엔진과 마찬가지로 모델 T 엔진도 피텐폴 스카이 스카우트와 같은 자작 항공기와 모터보트에도 사용되었다. 장갑차 변종(FT-B)은 1920년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당시 수요가 많아 폴란드에서 개발되었다.

많은 모델 T가 후륜에 키트를 장착하여(때로는 추가 후륜 한 쌍과 두 세트의 무한궤도를 현재 탠덤식 후륜에 장착하여 기본적으로 반궤도차량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음) 눈길을 주행할 수 있는 차량으로 개조되었고, 앞바퀴는 스키로 교체되었다. 한때 이것은 시골 우편 배달에 인기가 많았다. 이러한 자동차와 소형 트럭 개조의 일반적인 이름은 "스노우플라이어"였다. 이러한 차량은 공장이 설립되어 이를 생산하는 캐나다 북부 지역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60]

몇몇 회사들이 모델 T 기반의 철도차량을 제작했다.[61] 뉴질랜드 철도부의 RM 클래스에는 몇 대가 포함되어 있다. 아메리칸 라프랑스 사는 탱크, 호스, 공구 및 종을 추가하여 소방용으로 900대 이상의 모델 T를 개조했다.[62] 모델 T 소방차는 북미, 유럽 및 호주에서 사용되었다.[63][62] 화학 화재 진압을 위해 장비된 1919년 모델 T가 복원되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찰스턴 소방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64]

포드 조립 라인, 1913년


포드 피케트 애비뉴 공장은 T형 자동차에 대한 수요를 따라갈 수 없었고, 생산 첫 달에 단 11대만 생산되었다. 1910년, 약 1만 2천 대의 T형 자동차를 조립한 후, 헨리 포드는 회사를 새로운 하일랜드 파크 단지로 이전했다. 이 기간 동안 T형 자동차 생산 시스템(을 포함한) 공급망은 조립 라인 생산의 상징적인 사례로 전환되었다.[30][65]

그 결과 포드 자동차는 3분 간격으로 생산 라인에서 나왔고, 이는 이전 방식보다 훨씬 빨랐으며, 1914년까지 생산 시간을 12시간 30분에서 93분으로 단축하는 동시에 인력을 줄였다.[66] 1914년 포드는 다른 모든 자동차 제조업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했다. T형 자동차는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포드가 1천만 번째 자동차를 생산했을 때 전 세계 자동차의 절반이 포드 자동차였다. 총 1,500만 대 이상의 T형 자동차가 생산되었고, 1925년에는 하루 9,000~1만 대, 연간 200만 대[67][68][69]의 속도에 도달했는데, 이는 당시 다른 어떤 모델보다 많았고 가격은 단 260USD였다.

헨리 포드의 T형 자동차 설계에 대한 이념적 접근 방식은 그것을 제대로 만들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T형 자동차가 사람이 필요로 하거나 필요로 할 수 있는 모든 자동차라고 믿었다. 결국 1927년 5월 26일, 포드 자동차는 미국 내 생산을 중단[70][71][72]하고 모델 A를 생산하기 위한 변경을 시작했다.[73] 마지막 T형 자동차는 1927년 12월 아일랜드 코크 공장에서 생산되었다.[75]

T형 엔진은 1941년 8월 4일까지 계속 생산되었다. 자동차 생산이 중단된 후에도 약 17만 대가 생산되었는데, 기존 차량을 수리하기 위해 교체 엔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T형 자동차는 바나듐 강 합금을 사용한 것과 같이 몇 가지 첨단 기술을 채용했다. 내구성이 뛰어났고, 일부 T형 자동차와 부품은 1세기가 지난 후에도 작동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2002년 포드는 2003년 10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마지막 6대의 T형 자동차를 제작했다. 이 자동차들은 남은 신품 부품과 원래 도면으로 제작된 다른 부품으로 조립되었다. 포드는 더 이상 T형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지 않지만, 많은 부품은 오늘날에도 운영 중인 수천 대의 T형 자동차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립 회사를 통해 복제품으로 제조되고 있다.

1927년 5월 26일, 헨리 포드와 그의 아들 에드셀은 1,500만 번째 T형 자동차를 공장에서 몰고 나왔다.[28] 이는 이 유명한 자동차의 주요 공장에서의 마지막 생산일을 의미했다.

1919년 포드 모델 T 피닉스 경찰 순찰차


1913년 10월 7일에 시작된 이동식 조립 라인 시스템을 통해 포드는 자동차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76]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미세 조정함에 따라 포드는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77]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더 많은 차량에 고정비가 분산됨에 따라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65] 1909년 런어바웃(Runabout)의 가격은 825USD부터 시작했다. 1925년에는 260USD로 낮춰졌다.

다음은 미국 생산량 표이다.

연도생산량런어바웃 가격현재 가치비고
190910,666$825$투어링카는 $850.
191019,050$900$
191134,858$680$
191268,733$590$
1913170,211$525$
1914202,667$440$종료일이 9월 30일에서 7월 31일로 변경되어 회계연도가 10개월이었다.
1915308,162$390$
1916501,462$345$[78]
1917735,020$500$
1918664,076$500$
1919498,342$500$
1920941,042$395$1920 회계연도(1919년 8월 1일~1920년 7월 31일) 생산량. 3월에는 $550이었지만 9월에 가격이 하락했다.
1920463,451$395$8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달력 연도 생산량. 총 1920년 생산량(17개월) = 1,404,493
1921971,610$325$6월에는 $370이었지만 9월에 가격이 하락했다.
19221,301,067$319$
19232,011,125$364$
19241,922,048$265$
19251,911,705$260$투어링카는 $290.
19261,554,465$360$
1927399,725$360$모델 A 생산을 위해 재장비를 하기 위해 중반 이전에 생산이 종료되었다.



위 집계에는 총 14,689,525대의 차량이 포함된다. 포드는 마지막 모델 T가 1500만 번째 생산 차량이라고 밝혔다.[28] 헨리 포드는 모델 T 생산 과정에서 나온 나무 부스러기로 참숯 브리켓을 만들었다. 원래 포드 참숯(Ford Charcoal)이라는 이름이었지만, 킹스포드 참숯으로 이름이 바뀌었다.[79]

1910년, 피켓 공장을 대체할 주력 생산 거점으로 당시 세계 최대급 자동차 공장인 하일랜드 파크 공장이 디트로이트 교외에 완공되었다. 의 면적을 차지한 밝은 공장은 대출력 가스 엔진과 전기 모터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현대적인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 무렵 포드에서는 부품의 대규모 내제화를 시작했다. 외주 부품의 공급 상황에 따라 생산 효율이 좌우되고, 결과적으로 비용이 상승하는 것을 헨리 포드가 싫어했기 때문이다.

모델 T는 1912년형부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3가지였던 차체 도색을 검정색 에나멜 도색 하나로 줄였다. 검정색 도색을 선택한 것은 검정 도색이 가장 빨리 마르고 작업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포드의 피켓 공장에서 초기 자동차 생산은 기본적으로 한 곳에 고정된 자동차 섀시에 각 공정을 담당하는 작업자가 교대로 부품을 조립하는 형태였다. 당시에는 어떤 자동차 제조업체도 비슷한 제조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생산량이 매우 적을 때는 이것으로도 충분했지만, 포드처럼 대규모 양산에 나서는 경우 고정식 조립은 효율이 매우 나빴다.

포드는 이미 1908년부터 공장 내 부품 공급 및 이동의 합리화를 통해 생산 효율을 높이는 노력을 시작했지만, 마지막으로 생산 효율 개선의 걸림돌이 된 것은 조립되는 제품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찰스 솔렌센(Charles Sorenson)을 비롯한 포드의 엔지니어들은 섀시를 썰매에 실어 이동 효율을 개선하는 등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다. 한편, 여러 공정을 동시에 진행하여 조립 효율을 높이는 "라인 동기화"에 대한 시도도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흐름 작업 도입의 시작은 엔진의 플라이휠이었다. 1913년 4월 시점에서 모델 T의 마그네토 내장형 플라이휠 생산은 한 명의 작업자가 모든 공정을 전담했을 경우, 하나의 완성까지 20분이 걸렸다. 벨트 컨베이어의 흐름 작업 방식에 의한 분업 체제를 사용하고 각 공정에서 작업자의 움직임에 낭비가 발생하지 않는 위치를 취하도록 하는 등의 대책을 취하자 플라이휠 하나의 완성 소요 시간은 13분으로 줄었고, 더욱 개선하여 1914년에는 플라이휠 하나를 5분 만에 조립할 수 있게 되었다. 전년도의 4배의 효율이다.[93]

이 방법으로 다른 공정에도 유사한 분업에 의한 흐름 작업 방식을 도입해 나갔다. 1913년 8월부터 섀시 조립의 벨트 컨베이어 방식 전환을 시작했고, 같은 해 11월부터 엔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라인 생산화에 착수했다.

헨리 포드가 “일당 5달러”를 선언한 것은 1914년이었다. 단순 노동자라도 어느 정도 계속 근무하면 당시 임금 수준(기존 포드사의 최저 일당은 2달러대)의 두 배 정도에 해당하는 일당 5달러를 지급한다는 놀라운 선언이었다.

일당 5달러는 연봉으로 환산하면 1,000달러가 넘는 금액으로, 당시 모델 T 한 대를 구입해도 노동자 가족이 검소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포드 공장에는 취업을 희망하는 노동자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 높은 임금은 생산 라인에서의 단조로운 노동에 견디는 대가였다. 생산 라인을 착실하게 가동하는 것이 우선시되었고, 공장 가동 시간 동안 노동자는 생산 라인의 진행 속도에 뒤처지지 않고, 자극적인 요소가 없는 단조로운 작업을 쉴 새 없이 계속해야만 했다. 포드 공장의 노동자는 오히려 일반 공장 노동자보다 더 심한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5달러를 받는 시기에 이르기 전에 직장을 그만두는 미숙련 노동자도 많았지만, 퇴직자가 생겨도 “일당 5달러”에 이끌리는 새로운 취업 희망자는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단순 노동의 방대한 집합체로 변모한 포드의 생산 체제에는 지장이 없었다.

모델 T의 대량 생산 이면에는 이처럼 가혹한 현실이 있었다. 컨베이어 방식은 후에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1936) 등에서 풍자되었고, 인간을 생산 시스템의 일부로서 기계와 같이 다루는 비인간성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된다.

모던 타임스


반면, 컨베이어 방식을 대표로 하는 대량 생산 시스템의 발전으로 생산 효율이 현저하게 높아짐에 따라 수익이 증가하고, 비숙련 노동자에게도 임금 인상이라는 형태로 환원되기도 했다. 처분 가능 소득이 증가한 많은 노동자가 포드 모델 T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것은 노동 계급을 포함한 거대한 대중층을 주역으로 한 대량 생산・대량 소비 시대의 서막이었다.

당시 포드의 혁신적인 부분으로 부품 호환성 달성을 들 수 있다. 1900년대 많은 자동차들이 개별 부품의 균일한 가공 정밀도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최종 조립 단계에서 수작업으로 조정해야 했던 반면, 포드는 이미 캐딜락의 헨리 리랜드(Henry Leland) 방식을 본받아 마이크로게이지를 기준으로 한 규격화를 통해 부품 호환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여기서 미싱 제조업체인 싱거社 출신으로 포드의 생산 관리자를 잠시 역임했던 월터 플랜더스(Walter E. Flanders)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편 같은 무렵, 야금학 연구가 진행되던 영국에서 신종 고속도강인 "바나듐강"이 개발되었다. 기존 강재의 두 배에 달하는 장력을 지니면서도 가볍고 고속 절삭 가공이 가능한, 자동차용 소재로 이상적인 재질이다. 헨리 포드는 이를 알고 신형차에 바나듐강을 다량 사용하여 생산성 향상과 경량화를 도모하기로 했다.[94]

모델 T의 개발 작업은 1907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헨리 포드 자신을 수석으로 하고, C. 해롤드 윌리스(Childe Harold Wills), 찰스 소렌슨(Charles Sorensen) 등 사내 소수 직원만으로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모델 T는 1907년 10월에 최초의 프로토타입 2대가 완성되었고, 다음 해인 1908년 3월에 발표되었지만, 시판 개시는 같은 해 10월부터였다. 디트로이트의 피켓 공장에서 최초의 시판 모델 T가 생산 라인에서 나온 것은 1908년 9월 27일이었다.

모델 T는 당시 미국에서 소형차 범주에 해당하는 클래스였으며, 처음에는 600달러의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원가 절감이 따라잡지 못하여, 모델 N보다 약간 상급 클래스로 850USD 이상의 가격으로 출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급 자동차가 1,000달러대 가격대였기 때문에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듬해인 1909년 4월까지는 3개월치의 백오더(주문 잔량)를 안게 되어, 7월까지 주문을 중단해야 했다. 1909년 한 해에만 1만 대가 넘는 모델 T가 생산되어 당시로서는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러한 대히트를 맞이한 헨리 포드는 병행 생산하던 소형차 모델 N, R, S와 고급차 모델 K의 생산을 중단하고, 모델 T 단일 차종에 집중하는 대량 생산을 결정했다. 이후 모델 T의 역사는 모델 T라는 단일 자동차 자체의 발전 이상으로, 대량 생산 기술 발전의 역사였다. 헨리 포드와 그의 두뇌 집단들은 원래 완성도가 높은 실용적인 대중차인 모델 T를 더 빠르고, 대량으로, 효율적으로, 그리고 더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

포드사는 판매 후 서비스 체계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미국 전역에 걸쳐 광범위한 서비스망을 구축하고, 수리 부품을 비축하는 데포를 각지에 설치했다. 모델 T는 원래 튼튼하고 고장도 적었으며, 구조가 단순하여 아마추어도 정비하기 쉬웠지만, 애프터서비스의 충실은 사용자들의 신뢰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4. 한국에서의 모델 T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도쿄 시내의 노면 전차망이 파괴되자, 도쿄시 전기국은 포드 TT 섀시에 간이 차체를 얹은 엔타로 버스를 운행하여 시가지 복구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모델 T는 저렴한 가격과 쉬운 조작성으로 인해 택시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4. 1. 도입

1909년 제약회사 삼성합자회사가 모델 T의 공식 수입을 시작했지만, 자동차에 필요한 애프터서비스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곧 포기했다. 1910년 12월부터 도쿄의 “만변사”가 T형 로드스터를 할부 판매 방식으로 예약 판매를 시작했지만, 이 또한 잘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1911년 도쿄에 있던 외국계 상사인 세일·프레이저 주식회사( “세일·프레이저 상회”라고도 함)로 수입 대리점 권한이 넘어갔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포드(및 포드슨 트랙터)의 일본 총대리점을 맡았다.[98]

1912년 도쿄에서 일본 최초의 택시로 모델 T가 운행되었으며, 운영 회사인 “택시자동차 주식회사”는 설립 당시 세일·프레이저로부터 55대의 모델 T를 구입했다. 이후 1920년대까지 일본에서 자동차의 주류로 남았다. “현내 최초의 자동차”가 모델 T였던 지역도 볼 수 있다. 각 도도부현마다 자동차 면허 제도가 달랐던 시대에는 운전이 쉽다는 이유로 다른 차와는 별도로 “포드 전용” 면허를 두었던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는 1919년 내무성 성령 “자동차 단속령”에서 일반 자동차용 갑종 면허와는 별도로 오토바이와 오토 삼륜차, T형 포드 등의 운전을 허용하는 “을종 면허”로 제정되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도쿄 시내의 노면 전차망이 파괴되자, 도쿄시 전기국은 포드 TT 섀시에 간이 차체를 얹은 엔타로 버스를 급조하여 같은 해 안에 운행을 시작해 시가지 복구 수송을 담당했다. 포드는 1,000대 주문에 800대를 즉시 대응했지만, 이는 긴급 수송 수단으로서 큰 공적을 남겼다.

이처럼 대량 주문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자동차 제조사는 당시 세계에서 포드뿐이었고, 이는 대량 생산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도쿄시의 주문에서 사업 기회를 포착한 포드는 1925년 2월, 요코하마에 일본 법인인 “일본 포드 자동차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세일·프레이저와의 일본 총대리점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일본 포드는 전전까지 일본 국내 각지의 대리점에 대한 계약 관리 및 총괄을 담당했다. 당시 일본 전국에 있던 4륜 자동차는 2만 6,000대 남짓이었는데, 이 중 포드 차량의 점유율은 승용차에서 2위인 뷰익(1,938대)의 4배가 넘는 8,141대(44%), 화물차에서는 2위인 리퍼블릭(225대) 등을 훨씬 앞서는 4,750대(60%)로 압도적이었다.[99] 제조 연도로 보아 대부분 모델 T·TT였을 것이다.

같은 해 포드는 요코하마에 조립 공장을 설립하고, 미국에서 생산된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노크다운 생산 방식으로 모델 T·TT 완성차 및 섀시를 일본 시장에 대량 공급했다. 1927년에는 포드에 이어 오사카에 조립 공장을 설립한 GM이 쉐보레의 노크다운 생산을 시작했다.

모델 T와 쉐보레가 저렴하게 공급되면서, 당시 일본 자동차 시장, 특히 택시 시장은 한때 포드와 GM에 의해 거의 장악되었다.

4. 2. 활용

모델 T는 저렴하고 조작이 쉬워 농업용으로 많이 개조되었다. 후륜을 개조하고 경운용 쟁기를 부착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간이 트랙터 용도는 1910년대 후반 포드슨 트랙터 및 경쟁사의 본격적인 내연기관 트랙터가 등장하면서 쇠퇴했지만, 1920년대 후반 이후 불황기에 미국 중고차 시장에서 모델 T가 저렴하게 유통되면서 다시 유행했다.

중고 모델 T의 파워 유닛은 저렴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정치 동력(定置動力), 소방 펌프, 소형 선박, 소형 철도 차량 등에 많이 사용되었다. 1920년대에는 중고 모델 T에서 떼어낸 파워 유닛을 오버홀하여 미국에서 수출하는 사업도 있었다. 구조가 간단하고 수리 부품도 풍부하여 간편한 용도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특이한 사례로는 아마추어가 직접 만든 비행기의 동력으로 모델 T 엔진을 사용한 것이 있다. 미국의 아마추어 비행기 제작자 버나드 피텐폴(Bernard Pietenpol)이 1933년에 제작한 1인승 단엽기 피텐폴 스카이스카웃(Pietenpol Sky Scout)이 그 예시 중 하나이다. 스카이스카웃은 지상을 달리는 모델 T보다 빠른 약 88.51km/h로 순항할 수 있었으며, 여러 대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1910년대 이후, 모델 T용 4륜구동 키트와 SOHC, DOHC 교환용 헤드 등이 애프터마켓 부품으로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교환용 헤드는 아마추어 레이스의 튜닝에 많이 사용되었다. 1930년대 이후 유행한 "핫로드"라 불리는 과격한 개조차 취미에서도 중고 모델 T가 많이 사용되었다(모델 T의 섀시에 강력한 V8 엔진을 탑재하는 등의 개조가 성행했다).

4. 3. 일본 포드

1909년 제약회사 삼성합자회사가 모델 T의 공식 수입을 시작했지만, 자동차에 필요한 애프터서비스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곧 포기했다. 1910년 12월부터 도쿄의 “만변사”가 할부 판매로 T형 로드스터 예약 판매를 시작했지만, 이 또한 잘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수입 대리점 권한은 1911년 도쿄에 있던 외국계 상사인 세일·프레이저 주식회사( “세일·프레이저 상회”라고도 함)로 넘어갔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동사가 포드(그리고 포드사의 계열 제품인 포드슨 트랙터)의 일본 총대리점이 되었다.[98]

1912년 도쿄에서 일본 최초의 택시가 운행되었는데, 이는 모델 T였다. 운영 회사인 “택시자동차 주식회사”는 설립 당시 세일·프레이저로부터 무려 55대의 모델 T를 구입했다. 이후 1920년대까지 모델 T는 일본에서 자동차의 주류로 남았다. “현내 최초의 자동차”가 모델 T였던 지역도 있었다. 각 도도부현마다 자동차 면허 제도가 제각각이던 시대에는 운전의 용이성 때문에 다른 차와는 별도로 “포드 전용” 면허를 두었던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는 “을종 면허”로 제정되었다(1919년 내무성 성령 “자동차 단속령”에서 일반 자동차용 갑종 면허와는 별도로 오토바이와 오토 삼륜차, T형 포드 등의 운전을 허용하는 면허로 제정).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도쿄 시내의 노면 전차망이 파괴되자, 노면 전차를 운행하던 도쿄시 전기국은 포드 TT 섀시에 간이 차체를 얹은 소위 엔타로 버스를 급조하여 같은 해 안에 운행을 시작해 시가지 복구 수송을 담당했다. 1000대 주문에 대해 포드가 즉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800대에 그쳤지만, 그래도 긴급 수송 수단으로서 큰 공적을 남겼다.

도쿄시의 주문에 사업 기회를 본 포드는 1925년 2월, 이미 요코하마에 일본 법인인 “일본 포드 자동차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세일·프레이저와의 일본 총대리점 계약을 해지하고, 이후 전전까지 일본 포드가 일본 국내 각지의 대리점에 대한 계약 관리 및 총괄을 담당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일본 전국에 4륜 자동차는 2만 6000대 남짓밖에 없었는데, 이중 포드 차량의 점유율은 승용차에서 2위인 뷰익(1,938대)의 4배가 넘는 8,141대(44%), 화물차에 이르러서는 2위인 리퍼블릭(225대) 등을 훨씬 앞서는 4,750대(60%)라는 압도적인 것이었다.[99]

같은 해 요코하마에 조립 공장을 설립하고, 미국에서 생산된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노크다운 생산을 시작하여 모델 T·TT 완성차 및 섀시가 일본 시장에 대량 공급되었다. 2년 후인 1927년에는 포드에 이어 오사카에 조립 공장을 설립한 GM이 쉐보레의 노크다운 생산을 시작했다.

모델 T와 쉐보레가 저렴하게 공급됨에 따라 당시 일본 자동차 시장, 특히 택시 시장은 한때 포드와 GM에 의해 거의 장악되었다.

5. 영향

모델 T는 미국의 경제·사회 시스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철도망과 마차 중심이었던 미국의 교통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도로 건설을 비롯한 인프라 정비를 촉진했으며, 자동차 수리업, 주유소, 드라이브인, 중고차 시장 등 새로운 사업을 육성했다. 도시에서 미개척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미국인의 일상생활은 자동차에 의해 지탱되었다.[84]

모델 T의 대량 생산은 자동차 대량 생산의 선구자였으며, 미국 내 경쟁 업체들과 시트로앵, 피아트, 오펠 등 유럽의 여러 제조업체들이 포드의 방법을 본받아 대중차 대량 생산에 매진하게 되었다. "흐름 작업 방식"을 대표하는 체계적으로 구축된 대량 생산 기술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모든 공산품의 대량 생산에서 표준적인 방법이 되었으며, 과거 숙련공의 기술이 중시되었던 노동 시장의 형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14년 헨리 포드가 “일당 5달러”를 선언했는데, 이는 단순 노동자라도 어느 정도 계속 근무하면 당시 임금 수준의 두 배 정도에 해당하는 일당을 지급한다는 놀라운 선언이었다. 이는 노동자들의 이직률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생산 라인에서의 단조로운 노동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풍자될 정도로 가혹했으며, 인간을 생산 시스템의 일부로 취급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모델 T의 연간 생산량은 1910년 1만 8,600여 대에서 1923년 205만 5,300여 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대량 생산 체제 덕분에 모델 T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25년에는 290달러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었다. 이는 당시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절반 이상이 포드 모델 T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모델 T가 얼마나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는지를 보여준다.

5. 1. 세계적 영향

포드 모델 T는 1908년에 출시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산업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80년대부터 자동차가 생산되기 시작했지만, 초기 자동차들은 비싸고 희귀했으며, 신뢰성도 낮았다. 하지만 모델 T는 최초로 신뢰성이 높고 유지보수가 쉬우며,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을 낮춰 대중 시장을 공략한 자동차였다. 출시 며칠 만에 1만 5천 대의 주문이 몰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26]

모델 T는 포드의 첫 번째 대량 생산 자동차였으며, 완전히 호환 가능한 부품을 사용한 이동식 조립 라인에서 생산되어 중산층에게 판매되었다.[30] 이러한 혁신적인 생산 방식 덕분에 모델 T는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생산될 수 있었고, 이는 자동차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포드 모델 T는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생산된 최초의 자동차이기도 하다. 1911년부터 캐나다 워크빌과 영국 그레이터 맨체스터 트래퍼드 파크에서 생산이 시작되었고,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는 독일, 아르헨티나,[81]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브라질,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일본에서도 조립되었다. 1925년에는 미국 공장에서 303,000대가 수출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말의 막대한 손실은 유럽 농부들에게 모델 T를 새로운 동력원으로 주목하게 만들었다.[82] 농부들은 모델 T를 이용하여 쟁기질을 하고, 마차를 끌고, 농업 기계에 동력을 공급하여 농산물 운송 효율을 높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불군이 사용한 1916년형 모델 T 기반 야전구급차. 우핸들 사양으로 영국 공장 생산 차량이며, 후륜 차동 장치가 웜 기어이기 때문에 모델 T 섀시로 판단할 수 있다. 모델 T는 유럽 전선에서도 군용 차량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모델 T의 대량 생산은 자동차 대량 생산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으며, 미국 내 경쟁 업체들과 시트로앵, 피아트, 오펠 등 유럽의 많은 제조업체들이 포드의 방법을 본받아 대중차 대량 생산에 뛰어들었다. "흐름 작업 방식"으로 대표되는 체계적인 대량 생산 기술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모든 공산품의 대량 생산에 표준적인 방법이 되었고, 노동 시장의 형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모델 T는 미국 내 자동차 보급을 촉진하여 미국의 경제·사회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철도와 마차 중심이었던 미국의 교통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왔고, 도로 건설 등 인프라 정비를 촉진했으며, 자동차 수리업, 주유소, 드라이브인, 중고차 시장 등 새로운 사업을 육성했다.

5. 2. 한국에 미친 영향

1909년 제약회사 삼성합자회사가 모델 T의 공식 수입을 시작했지만, 자동차에 필요한 애프터서비스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곧 포기했다.[98] 1910년 12월부터 도쿄의 “만변사”가 할부 판매로 T형 로드스터 예약 판매를 시작했지만, 이 또한 잘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수입 대리점 권한은 1911년 도쿄에 있던 외국계 상사인 세일·프레이저 주식회사( “세일·프레이저 상회”라고도 함)로 넘어갔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이 회사가 포드(그리고 포드사의 계열 제품인 포드슨 트랙터)의 일본 총대리점이 되었다.[98]

1912년 도쿄에서 일본 최초의 택시로 운행된 모델 T는, 운영 회사인 “택시자동차 주식회사”가 설립 당시 세일·프레이저로부터 무려 55대를 구입했다. 이후 1920년대까지 일본에서 자동차의 주류로 남았다. 각 도도부현마다 자동차 면허 제도가 제각각이던 시대에는 운전하기 쉬운 모델 T의 특성 때문에 다른 차와는 별도로 “포드 전용” 면허를 두었던 경우도 있었다. 이는 나중에 “을종 면허”로 제정되었다(1919년 내무성 성령 “자동차 단속령”에서 일반 자동차용 갑종 면허와는 별도로 오토바이와 오토 삼륜차, T형 포드 등의 운전을 허용하는 면허로 제정). “현내 최초의 자동차”가 모델 T였던 지역도 있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도쿄 시내의 노면 전차망이 파괴되자, 도쿄시 전기국은 포드 TT 섀시에 간이 차체를 얹은 엔타로 버스를 급조하여 같은 해 안에 운행을 시작해 시가지 복구 수송을 담당했다.

포드는 1000대 주문에 즉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800대에 그쳤지만, 그래도 긴급 수송 수단으로서 큰 공적을 남겼다. 당시 세계에서 이렇게 막대한 양의 주문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자동차 제조사는 포드 단 한 곳뿐이었고, 이는 대량 생산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도쿄시의 주문에서 사업 기회를 본 포드는 1925년 2월, 요코하마에 일본 법인인 “일본 포드 자동차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세일·프레이저와의 일본 총대리점 계약을 해지하고, 이후 전전까지 일본 포드가 일본 국내 각지의 대리점에 대한 계약 관리 및 총괄을 담당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일본 전국에 있던 4륜 자동차는 2만 6000대 남짓이었는데, 포드 차량의 점유율은 승용차에서 2위인 뷰익(1,938대)의 4배가 넘는 8,141대(44%), 화물차에 이르러서는 2위인 리퍼블릭(225대) 등을 훨씬 앞서는 4,750대(60%)라는 압도적인 것이었다.[99] 제조 연도로 보아 대부분 모델 T·TT였을 것이다.

같은 해 요코하마에 조립 공장을 설립하고, 미국에서 생산된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노크다운 생산을 시작하여 모델 T·TT 완성차 및 섀시가 일본 시장에 대량 공급되었다. 2년 후인 1927년에는 포드에 이어 오사카에 조립 공장을 설립한 GM이 쉐보레의 노크다운 생산을 시작했다.

모델 T와 쉐보레가 저렴하게 공급됨에 따라 당시 일본 자동차 시장, 특히 택시 시장은 한때 포드와 GM에 의해 거의 장악되었다.

6. 기타

오늘날, 이 자동차의 보존과 복원을 지원하는 여러 클럽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클럽으로는 모델 T 포드 클럽 인터내셔널[88], 모델 T 포드 클럽 오브 아메리카[89], 그리고 호주의 통합 클럽들이 있다. 특히 모델 T 포드 클럽 오브 빅토리아[90]는 독특한 호주산 자동차를 보유한 회원들이 많다. 호주에서는 자체적으로 자동차 차체를 생산했기 때문에, 호주산 투어러[91]와 미국/캐나다산 자동차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영국에서는 모델 T 포드 레지스터 오브 그레이트 브리튼이 2010년에 50주년을 기념했다.

많은 강철 모델 T 부품들이 여전히 제조되고 있으며, 섬유강화플라스틱 복제품도 생산되어 T-버킷 스타일의 핫로드에 인기가 있다. 1949년, 생산 종료 후 20년이 넘었음에도 미국에서는 20만 대가 넘는 모델 T가 등록되었으며[92], 2008년에는 약 5만~6만 대의 포드 모델 T가 주행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되었다.[92]

6. 1. 다양한 활용

모델 T 생산 기간, 특히 1916년 이후에는 30개 이상의 제조업체에서 모델 T의 동력 전달 장치 기어를 대체하거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보조 변속기 또는 구동 장치를 제공했다.[48][49] 이 장치들은 더 빠른 속도와 효율을 위한 오버드라이브나, 더 큰 하중을 운반하거나 끌 수 있도록 더 큰 토크를 위한 언더드라이브를 제공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들로는 Ruckstell 2단 후방 차축과 Muncie, Warford, Jumbo의 변속기가 있었다.[48][49]

애프터마켓 변속기는 일반적으로 다음 네 가지 범주 중 하나에 속했다.[49]

  • 변속기 교체용 – 포드의 유성 기어 변속기를 직접 교체하기 위한 슬라이딩 기어/선택 변속기.
  • 전면 장착 보조 변속기 – 엔진과 포드의 변속기 사이에 장착되어 추가 기어비를 제공.
  • 후면 장착 보조 변속기 – 후방 차축 하우징에 장착되고, 드라이브 샤프트와 연결되어 추가 기어비를 제공.
  • 다단 차축 – 디퍼렌셜 하우징 ''내부''에 장착되어 추가 기어비를 제공.


모델 T 시대의 포드 전문가인 머레이 파네스톡(Murray Fahnestock)은 포드 세단과 쿠플레트와 같이 밀폐형 모델 T에 보조 변속기를 사용하는 것을 세 가지 이유로 권장했다.[48] 첫째, 더 무거운 차체는 동력 전달 장치와 엔진에 더 큰 부담을 주었는데, 보조 변속기가 이를 완화할 수 있었다. 둘째, 차체는 공명판 역할을 하여 고속에서 엔진 소음과 진동을 증폭시켰는데, 중간 기어를 사용하면 이를 줄일 수 있었다. 셋째, 밀폐형 자동차 소유자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했으므로, 차량을 개선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쓸 가능성이 있었다.[48]

파네스톡은 또한 보조 변속기가 상업용 포드 톤 트럭에도 유용하다고 언급했는데, 다양한 하중에 따라 주행 속도를 조절하여 운전 시간을 최대 50%까지 절약할 수 있게 해주었다.[48]

모델 T는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생산된 최초의 자동차였다. 1911년부터 캐나다 워크빌과 영국 그레이터 맨체스터 트래퍼드 파크에서 생산이 시작되었고,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는 독일, 아르헨티나,[81]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브라질,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일본에서 조립되었다. 1925년에는 미국 공장에서 303,000대가 수출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말의 막대한 손실은 유럽 농부들에게 모델 T를 새로운 동력원으로 만들었다. 농부들은 모델 T를 이용하여 쟁기질, 마차 견인, 농업 기계 동력 공급을 하였고, 이를 통해 제품을 시장에 더 효율적으로 운송할 수 있었다.[82]

에어로포드는 1920년부터 1925년까지 런던 베이즈워터에서 제조된 영국의 자동차였다. 이는 모델 T를 기반으로 독특한 후드와 그릴을 가진 모델이었는데, 이후 뱃지 엔지니어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에어로포드는 1920년에 288파운드에 판매되었고, 1925년에는 168파운드에서 214파운드 사이로 가격이 인하되었다. 2인승, 4인승 또는 쿠페로 이용할 수 있었다.[83]

파리의 포드 딜러인 샤를 몽티에(Charles Montier)와 그의 매형인 알베르 우리우(Albert Ouriou)는 개조된 모델 T("몽티에 스페셜")을 처음 세 번의 르망 24시 레이스에 출전시켰다.[85][86] 그들은 1923년 첫 대회에서 14위를 기록했다.[87]

모델 T는 저렴하고 조작이 쉬워, 후륜을 개조하고 경운용 쟁기를 부착하는 등 농업용으로 개조된 사례가 많았다. 이러한 간이 트랙터 용도는 1910년대 후반에 포드슨 트랙터(Fordson Tractor) 및 경쟁사의 본격적인 내연기관 트랙터가 등장하면서 한동안 쇠퇴했지만, 1920년대 후반 이후 불황기에 미국 중고차 시장에서 중고 모델 T가 저렴하게 유통되면서 다시 유행하여 한동안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모델 T의 중고 파워 유닛은 저렴했기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정치 동력(定置動力), 소방 펌프, 소형 선박, 소형 철도 차량에 즐겨 사용되었다. 1920년대에는 중고 모델 T에서 떼어낸 파워 유닛을 정비하여 미국에서 수출하는 사업까지 있었다. 구조가 간단하고 수리 부품도 풍부하여 간편한 용도에 적합했다.

특이한 사례로는 아마추어가 직접 만든 비행기의 동력으로 모델 T 엔진을 사용한 것이 있다. 미국의 아마추어 비행기 제작자 버나드 피텐폴(Bernard Pietenpol)이 1933년에 제작한 1인승 단엽기 피텐폴 스카이스카웃(Pietenpol Sky Scout)이 그 예시 중 하나이다. 피텐폴의 처녀작인 1929년의 에어캠퍼(Air Camper)가 포드 모델 A 엔진을 탑재했던 것에 비해, 당시 시장에 중고로 많이 유통되고 있는 모델 T 엔진에 맞는 기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술 잡지 편집자의 제안에 따른 개발이었다. 스카이스카웃은 지상을 달리는 모델 T보다 빠른 55마일로 순항할 수 있으며, 여러 대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또한 1910년대 이후, 모델 T용 4륜구동 키트와 SOHC, DOHC 교환용 헤드 등이 애프터마켓 부품으로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교환용 헤드는 아마추어 레이스의 튜닝에 즐겨 사용되었다. 그리고 1930년대 이후에 성행하기 시작한 "핫로드"라고 불리는 과격한 개조차 취미에서도 중고 모델 T가 많이 기반으로 사용되었다(모델 T의 섀시에 강력한 V8 엔진을 탑재하는 등의 개조가 성행했다).

6. 2. 대중문화

모델 T는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 등장하여 그 상징성을 드러냈다.

  • 런던 명령 X: 주인공 스탠리 신부의 애차로 등장한다. 1917년식 노란색 차체를 가진 이 모델 T는 미니마이저로 크기가 줄어들거나 꿈속에서 하늘을 나는 등 특별한 능력을 보여준다.
  • 레드 데드 리뎀션: 일부 미션에서 연방 수사관이 사용하는 차량으로 등장하지만, 플레이어가 직접 운전할 수는 없다.
  • 마피아: 로스트 헤븐의 도시: 모델 T를 기반으로 한 차량이 등장하며, 실제 차량의 특징을 일부 반영하여 운전 가능하다.
  • 히탄의 아리아: 네바다 사막의 에어리어 51에 비밀리에 보관된 루루색금(루루이로카네)이 T형 포드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 플라버: 우연한 박사의 대발명: 주인공 브레이너드 교수의 소유 차량으로, 발명품 플라버를 장착하여 하늘을 나는 특별한 기능을 선보인다. 이로 인해 미확인 비행 물체로 오인되어 미 공군이 스크램블(긴급발진)하기도 한다.
  • 그란 투리스모 4: 비매품 차량으로, 슈퍼 라이선스 올 골드 클리어를 달성해야만 획득 가능하다.
  • Mafia Driver Omerta: 안드로이드 게임에 등장한다.
  • 엄마는 28년형: 죽은 어머니가 포드 모델 T(극중에서는 가공 브랜드명)에 빙의한다는 설정의 미국 시추에이션 코미디 드라마이다.
  • 놀이기구맨: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야자와 아키코가 목소리를 연기했다. 차체 색깔은 검은색이다.
  • 골든 카무이: 미국인 목장 경영주 에디 댄이 소유한 차량으로, "친구인 포드 군"에게서 받았다는 시제품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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