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풀케는 멕시코에서 유래된 전통 발효 음료로, 아가베(특히 Agave atrovirens) 식물의 수액인 아구아미엘을 발효시켜 만든다. 풀케는 200년경 촐룰라 피라미드 벽화에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아즈텍 신화에서는 마야우엘 여신과 관련되어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식민지 시대에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도 음용되었으나, 17세기 공공 음주 문제로 소비가 제한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풀케 생산이 번성하며 멕시코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20세기 초 맥주의 등장과 부정적 인식 확산으로 인해 쇠퇴했다. 최근에는 젊은층과 관광객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캔 형태로도 판매되고 있다. 풀케는 풀케리아라는 술집에서 주로 소비되며, 영양학적 가치도 높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아즈텍 신화 - 옥토끼
옥토끼는 동아시아를 포함한 여러 문화권에서 달에 산다고 전해지는 토끼로, 불교 설화에서는 희생의 상징, 중국 신화에서는 영약을 찧는 존재로 나타나며, 달을 기념하는 명절 및 현대 문화의 모티브로 활용된다. - 아즈텍 신화 - 아즈텍의 쌍두사
아즈텍의 쌍두사는 삼나무와 터키옥으로 제작되었으며, 뱀의 두 머리는 지상과 지하 세계를 상징하고, 멕시코 신화 속 뱀의 상징성을 나타내며,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아즈텍 제국과 스페인의 침략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 멕시코의 술 - 미첼라다
미첼라다는 맥주에 라임 주스와 소금 등을 넣어 만드는 멕시코의 대중적인 음료로, 1960년대 멕시코의 한 클럽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스페인어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다양한 소스와 향신료를 첨가하여 즐길 수 있고, 2010년대 이후 여러 국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 멕시코의 술 - 칼루아
칼루아는 1936년 멕시코에서 생산된 커피 리큐어로, 아라비카 커피 원두와 사탕수수 증류주를 사용하며, 칵테일, 디저트 등에 사용된다.
풀케 - [음식]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종류 | 발효 알코올 음료 |
기원 | 멕시코, (메소아메리카) |
색 | 밀키 화이트 |
알코올 도수 | 2–7% |
도입 시기 | 기원후 200년 이전 (고대) |
재료 | Agave americana의 수액 |
관련 음료 | 메스칼, 바카노라, 라이실라, 데킬라 |
명칭 | |
이름 | 풀케 |
로마자 표기 | Pulque |
IPA(국제음성기호) | /'pulke/ |
나와틀어 | metoctli |
추가 정보 | |
설명 | 아가베로 만든 알코올 음료 |
2. 역사
풀케는 1000년 이상 전에 발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풀케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용설란을 숙주로 하는 식용 곤충인 구사노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설과, 꽃눈을 두드리는 기술 등 야자주의 발전 과정과 공통점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야자주의 응용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촐룰라의 피라미드 벽화에서는 서기 200년경에 풀케를 마시는 모습이 발견되었으며, 원주민들은 풀케를 종교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아즈텍 신화에는 용설란의 신 마야우엘이 묘사되어 있고, 원숭이 모양을 한 아즈텍 시대의 풀케 용기도 많이 남아 있다.
2. 1. 신화적 기원

풀케는 적어도 2000년 동안 마셔왔으며, 그 기원은 다양한 이야기와 신화의 주제가 된다. 대부분은 마게이 여신인 마야우엘과 관련이 있다. 식물 중앙에 모이는 아구아미엘은 그녀의 피로 여겨졌다. 센촌 토토친(400마리의 토끼)과 같은 다른 신들은 음료의 효과를 나타내며 마야우엘의 자녀로서 풀케와 관련이 있다.[5][6] 마야우엘과 관련된 또 다른 버전은 그녀를 아구아미엘을 수집하는 방법을 발견한 인간 여성으로 묘사하지만, ''판테카틀'' panˈtekat͡ɬ|판테카틀nah이라는 사람이 풀케를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다.[12]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풀케는 주머니쥐가 발견했는데, 그는 인간과 같은 손으로 마게이를 파서 자연 발효된 즙을 추출했다. 그는 최초의 술 취한 사람이 되었다. 주머니쥐는 강의 흐름을 설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가 설정한 강은 그가 취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직선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주머니쥐가 선술집에서 선술집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른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아구아미엘의 발견은 톨텍 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파판친이라는 귀족이 황제에게 자신의 딸 소치틀과 결혼하도록 하려고 했다. 그는 아가베 식물의 꿀인 ''아구아미엘''을 바치며 그녀를 수도로 보냈다. 황제와 공주는 결혼했고, 그들의 아들은 ''메코네친'' mekoˈnet͡sin|메코네친nah(마게이 아들)으로 명명되었다.[16] 이야기의 다른 버전에서는 소치틀이 풀케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6]
풀케의 기원에 대해서는, 용설란을 숙주로 하는 식용 곤충인 구사노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설이나, 꽃눈을 두드리는 기술 등 야자주의 발전 과정과 공통점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야자주의 응용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설 등 몇 가지 설이 있다. 적어도 1000년 이상 전에 발명된 것으로 생각된다.
서기 200년경의 촐룰라의 피라미드 벽화에서 풀케를 마시는 벽화가 발견되었다. 원주민 사이에서는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아즈텍 신화에는 용설란의 신으로 마야우엘이라는 신이 묘사되어 있으며, 원숭이를 본뜬 아즈텍의 풀케 용기가 많이 남아 있다.
2. 2. 고대 시대


마게이(용설란)는 고대 멕시코에서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식물 중 하나로, 신화, 종교 의식, 그리고 메소아메리카 경제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풀케는 기원후 200년경의 석조 조각을 시작으로 식민지 이전 시대의 여러 그래픽 묘사에 등장한다. 풀케와 관련된 최초의 주요 작품은 1968년 푸에블라의 촐룰라 대피라미드에서 발굴된 "풀케를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대형 벽화이다. 아구아미엘(aguamiel, 용설란 수액)과 발효된 풀케를 발견한 가장 유력한 방법은 식물의 즙을 마시기 위해 갉아먹고 긁는 설치류를 관찰한 것이다. 아구아미엘의 발효는 식물 자체 내에서 일어날 수 있다.[17]
멕시코 중앙 고원 지대의 토착민들에게 풀케를 마시는 것은 특정 조건 하에 특정 사람들만 가능했다. 풀케는 의식용 음료였으며, 여신 마야우엘과 신 믹스코아틀의 축제와 같은 특정 축제 기간에 소비되었다. 사제의 열정을 북돋우고 희생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제와 희생자들이 풀케를 마셨다.[5] 아즈텍 코덱스(예: 보르보니쿠스 코덱스)에는 귀족과 사제들이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풀케를 사용했다는 많은 언급이 있다. 평민들 사이에서는 노인과 임산부에게만 허용되었다.[18] 풀케의 생산은 의례화되었고 양조자들은 미신을 믿었다. 그들은 발효 기간 동안 성관계를 금했는데, 성관계를 하면 발효 과정이 상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13]
풀케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용설란을 숙주로 하는 식용 곤충인 구사노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설이나, 꽃눈을 두드리는 기술 등 야자주의 발전 과정과 공통점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야자주의 응용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적어도 1000년 이상 전에 발명된 것으로 생각된다.
서기 200년경 촐룰라의 피라미드 벽화에서 풀케를 마시는 벽화가 발견되었다. 원주민 사이에서는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아즈텍 신화에는 용설란의 신으로 마야우엘이라는 신이 묘사되어 있으며, 원숭이를 본뜬 아즈텍의 풀케 용기가 많이 남아 있다.
2. 3. 식민지 시대
스페인의 정복 이후, 풀케는 신성한 성격을 잃었고, 원주민과 스페인 사람들 모두 그것을 마시기 시작했다.[6] 스페인 사람들은 처음에는 풀케 사용에 대한 법을 만들지 않았다. 풀케는 수익성이 좋은 세수원이 되었지만, 1672년까지 공공 음주가 심각한 문제가 되어 부왕 정부는 풀케 소비를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멕시코 시티에는 최대 36개의 풀케리아만 허용되었으며, 이들은 야외에 위치해야 하고, 문이 없어야 하며, 해 질 녘에 문을 닫아야 했다. 음식, 음악, 춤, 남녀 혼합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풀케는 식민지 시대와 멕시코 독립 전쟁 초기 몇 년 동안 멕시코의 사회 경제적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 수행했다.[19] 이 기간 동안 풀케는 네 번째로 큰 세수원이었다. 17세기 말, 예수회는 교육 기관의 자금 조달을 위해 대규모 풀케 생산을 시작했다. 이처럼 풀케 제조는 가정 양조에서 상업적으로 생산되는 것으로 바뀌었다.[6]2. 4. 독립 이후


멕시코 독립 이후, 풀케 생산자에 대한 규제가 사라지고 멕시코 민족주의가 성장하면서 풀케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12] 1860년대까지 풀케 아시엔다가 급증했는데, 특히 이달고 주와 틀락스칼라 주에서 두드러졌다. 1866년, 베라크루스와 멕시코 시티를 잇는 첫 번째 철도가 이달고를 지나 개통되었다. 이 철도는 매일 수도로 풀케를 공급하면서 "풀케 기차"라는 별칭을 얻었다. 풀케 생산과 운송의 발달은 이달고 지역 경제를 부흥시켰고, 토레스 아달리드, 피멘타 이 파고아가, 마세도 등 "풀케 귀족"이라 불리는 유력 가문들을 탄생시켰다. 전성기에는 약 300개의 풀케 아시엔다가 존재했으며, 일부는 이달고 주의 아판과 셈포알라 평원에 남아있다.[6][7][11] 19세기 후반, 풀케는 빈부 격차 없이 모든 계층에게 사랑받으며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15]
포르피리오 디아스 시대 후반, ''tlaquicheros'', 풀케리아, 풀케 아시엔다의 모습은 C. B. Waite, 휴고 브레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등 여러 사진 작가들의 주요 소재였다. 특히 ''tlaquichero''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가장 널리 알려지고 성공적인 이미지"였다.[26]
1953년까지 이달고와 트라칼라는 각각 총 수입의 30%와 50%를 풀케 산업에서 얻었다. 그러나 관개 시설, 도로 등 기반 시설 확충으로 다른 수익성 높은 산업들이 발전하면서 풀케 산업은 점차 쇠퇴했다.[27]
2. 5. 쇠퇴와 부흥
과거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풀케는 오늘날 멕시코에서 소비되는 알코올 음료의 10%만을 차지한다.[7] 풀케는 여전히 멕시코에서 소비되지만, 주로 중앙 고지대와 농촌 및 빈곤 지역에서 주로 소비된다. 이는 하층민을 위한 음료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심어주었고, 반면 유럽 스타일 맥주의 소비는 20세기 동안 번성했다.[28]풀케의 복잡하고 섬세한 발효 과정은 제품의 유통을 항상 제한해 왔는데, 이는 보관 기간이 짧고 운송 중의 흔들림이 품질 저하를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복 이전 시대부터, 풀케의 소비는 대부분 멕시코의 중앙 고지대에 국한되어 왔다.[28]
풀케의 쇠퇴는 멕시코 혁명으로 인해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6] 1930년대에는 라사로 카르데나스 정부가 전반적인 알코올 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풀케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나 풀케 쇠퇴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맥주의 도입이었다.[15][28]
20세기 초 유럽 이민 맥주 양조업자들은 풀케 생산자들이 발효 과정을 가속화하기 위해 '무네카'(인형)라고 불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이 담긴 직물 주머니를 '아구아미엘'에 사용한다고 주장하며, 토착 풀케에 반대하는 자체 캠페인을 벌였다. 일부 풀케 생산자들은 '무네카'가 완전한 신화라고 주장했지만, 현대 역사가들은 드물게나마 실제로 일어났다고 시사한다.[29] 맥주 생산자들은 풀케가 일반적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아이디어를 입소문과 암시를 통해 홍보했다. 이는 풀케 판매를 억제하고, 그들이 "엄격하게 위생적이고 현대적"이라고 주장하는 맥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이루어졌다.[28][30]
이러한 전략으로 인해, 풀케는 이제 일반적으로 경멸의 대상이 되었고,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이 마시게 되었으며, 멕시코에서 양조된 맥주는 어디에나 있고 매우 인기가 많다.[28][30] 풀케의 인기는 낮고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1992년 이전에는 약 20대의 트럭이 3일마다 소치밀코(멕시코시티 남부에 위치)에 와서 풀케를 배달했지만, 2007년에는 한두 대에 불과했다. 이 지역에는 18개였던 풀케리아가 5개만 남았다.[8] 상황은 멕시코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하다. 남은 풀케리아는 매우 작은 규모의 시설로, 소규모 생산자가 만든 제품을 판매한다.[6]
대부분의 마구에이가 재배되는 이달고 주에서는 이 식물의 밭이 사라지고 있으며, 보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의 대부분의 마구에이 식물은 재산 경계 표지 역할을 한다. 이 식물 중 다수는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데, 종종 훼손되기 때문이다. 매주 약 10,000 그루의 식물이 바르바코아용으로 하부 잎을 잘라내거나, 식용 흰색 유충이나 개미 알을 찾기 위해 완전히 파괴되어 훼손되는 것으로 추정된다.[6]
최근에는 풀케가 다시 매우 인기 있는 음료가 되었고, 멕시코 유산을 확립하려는 젊은이들이 이 음료를 대량으로 마시는 복고 운동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풀케는 젊은이들과 뿌리 찾기 유형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음료가 되었다. 여성 음주자에 대한 금지도 해제되어 남녀 혼성 풀케리아가 이제 일반화되었다. 또한, 맛을 낸 시럽, 조미료 등이 이제 일반화되었으며, 한 풀케리아는 48가지의 다양한 맛을 제공한다고 한다.
3. 제조 방법
풀케는 엷은 거품을 생성하는 우유빛의 다소 점성이 있는 액체이다. 특정 종류의 용설란(아가베) 식물의 수액을 발효시켜 만드는데, 메스칼은 특정 용설란 식물의 익힌 심장에서 만들고, 데킬라는 전부 또는 대부분 블루 아가베로 만든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약 6가지 종류의 용설란이 풀케 생산에 가장 적합하다.[8][5] '풀케'라는 이름은 나와틀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원래 이름은 ''iztāc octli'' (흰색 풀케)였다. 풀케라는 용어는 스페인인들이 ''octli poliuhqui'' (상한 풀케)에서 실수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9]
풀케는 유럽인과의 접촉 당시 멕시코에서 알려진 두 종류의 발효 아가베 음료 중 하나였다. 풀케는 줄기에서 채취한 수액으로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구덩이 구이로 구운 줄기와 잎 기부로 만들었다.[10]
풀케 제조는 크게 마게이(용설란) 재배, 아구아미엘 채취, 발효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3. 1. 마게이 (용설란)

마게이는 멕시코가 원산지이며, 영어로는 "세기 식물"이라고도 불린다. 멕시코시티 북동부의 춥고 건조하며 바위가 많은 중앙 고지대, 특히 이달고주와 틀락스칼라주에서 가장 잘 자란다. 마게이는 적어도 서기 200년부터 툴라, 툴란싱고, 테오티우아칸에서 재배되었으며, 야생 식물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이 식물은 역사적으로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두꺼운 잎에서 섬유를 추출하여 로프나 천을 만들 수 있고, 가시는 바늘이나 펀치로 사용할 수 있으며, 잎을 덮고 있는 막은 종이나 요리에 사용할 수 있다.[6][11] ''마게이''라는 이름은 스페인인들이 타이노족에게서 따온 것이다. 이것은 스페인어로 여전히 일반적인 이름이며, ''아가베''는 과학적인 일반 이름 또는 기술적인 이름이다. 나와틀어로 이 식물의 이름은 ''메틀''이다.[12]
풀케 제조 과정은 복잡하며, 마게이 식물의 죽음을 필요로 한다.[13] 식물이 성숙기에 가까워지면 중앙 부분이 팽창하고 길어지면서, 식물에 저장된 당분을 모아 최대 약 6.10m 높이에 달하는 단일 꽃줄기를 내보낸다. 그러나 풀케 생산을 위한 식물은 이 꽃줄기를 잘라내어 직경 약 30.48cm~약 45.72cm의 움푹 들어간 표면을 남긴다. 이 중앙 부분에 ''아구아미엘''(꿀물)로 알려진 마게이 수액이 모인다.[14] 마게이 식물이 풀케용 수액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는 데는 12년이 걸린다.[15]
멕시코에서는 용설란을 통틀어 마게이(maguey)라고 부르며, 고전 나와틀어로는 메틀(metl)이라고 한다. "maguey"라는 품종명은 스페인인들이 붙인 것으로, 카리브해 원주민 타이노족의 언어에서 유래했다.
풀케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마게이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아가베 (특히 Agave atrovirens|아가베 아트로비렌스영어)가 있다. 건조하고 서늘한 고원 지대를 선호하며, 이달고주나 트라스칼라주에 자생한다. 서기 200년경에는 이미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술을 만드는 것 외에도 섬유로 로프를 만들거나, 가시를 바늘로, 잎의 얇은 막을 요리용 종이로 이용하기도 했다.
마게이 줄기가 충분히 성장하면 중앙부가 뻗어 나오는데, 이것이 꽃줄기로 당분을 꽃으로 보내기 위한 것이다. 이 줄기는 약 6.10m 정도까지 자라지만, 이 줄기를 꺾어 안에 든 당분이 풍부한 액체를 아코코테라는 피펫을 사용하여 채취한다. 이것을 발효시켜 풀케를 만든다. 발효는 짧게는 1일 반, 길게는 2주가 걸리며, 이 과정은 양조장마다 차이가 있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비밀이다.
3. 2. 아구아미엘 채취
생산 과정은 길고 섬세하다.[15] 마게이 식물은 수액, 즉 '아구아미엘'(aguamieles)을 추출하기 전에 12년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지만, 좋은 식물은 최대 1년 동안 생산할 수 있다.[5] 이 아구아미엘은 그대로 마실 수 있지만, 식물 자체에서 시작될 수 있는 발효 과정을 거쳐야만 알코올 성분을 띠게 된다.[6] 이 액체는 하루에 두 번 식물에서 수집되며, 하루에 약 5L~6L가 생산된다. 오늘날 이 액체는 강철 국자로 수집되지만, 과거에는 길쭉한 조롱박을 관으로 사용하여 즙을 빨아냈다. 수집 사이에 식물의 잎을 즙이 모이는 중앙으로 구부려 벌레와 먼지를 막았다. 이 중앙 부분을 정기적으로 긁어내어 식물의 수액 생산을 활발하게 유지한다. 대부분의 마게이 식물은 결국 죽기 전 약 4~6개월 동안 이 '아구아미엘'을 생산한다.[5][14] 일부 식물은 최대 600L의 풀케를 생산할 수 있다.[31]
thumb, 멕시코)]]
3. 3. 발효
풀케의 생산 과정은 길고 섬세하다.[15] 마게이 식물은 수액, 즉 '아구아미엘'(aguamiel)을 추출하기 전 12년 동안 숙성되어야 하며, 좋은 식물은 최대 1년 동안 아구아미엘을 생산할 수 있다.[5] 이 아구아미엘은 발효 과정을 거쳐야 알코올 성분을 띠게 된다.[6]
thumb, 멕시코)]]
수집된 즙은 '티나스'(tinas)라고 불리는 발효조로 운반된다. 티나스는 '티나칼'(tinacal)이라는 특별한 건물에 있는데, '티나칼'은 스페인어 '티나'(tina)와 나와틀어 '칼리'(calli)에서 유래된 '통의 집'을 의미한다. 풀케 농장이 전성기를 맞이했던 19세기 후반, 농장 생활은 이 티나칼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티나칼은 일반적으로 돌로 된 직사각형 창고에 나무 지붕이 있는 형태였다. 벽 윗부분은 공기 순환을 위해 열려 있었고, 정면은 원주민 디자인이나 풀케 제조와 관련된 이미지로 장식되기도 했다. 내부에 있는 통은 소가죽을 씌운 나무 프레임으로 만들어졌으며, 오늘날에는 참나무, 플라스틱 또는 섬유유리로 만들어지며 각각 약 1,000리터를 담을 수 있다.[6][14]
즙을 발효조에 넣은 후, 숙성된 종자 풀케(''세미야'' 또는 ''자나스트리'')를 첨가하여 발효를 시작한다. 풀케에 존재하는 발효제는 효모가 아닌 ''Zymomonas mobilis''(동의어 ''Thermobacterium mobile''[32]) 박테리아이다. 발효는 7~14일이 소요되며, 온도, 습도, ''아구아미엘''의 품질 등 여러 요인이 풀케 발효에 영향을 미친다.[14] 완성된 풀케는 일반적으로 2~7% 알코올 도수 (ABV)에 이른다.[33]
발효 과정은 복잡하고 섬세하여, 종교적인 노래와 기도를 드리거나 여성, 어린이 및 낯선 사람은 ''티나칼'' 내부에 들어갈 수 없는 등의 의식과 금지가 존재한다.[6] 발효가 최고조에 달하기 직전에 풀케는 통에 담겨 시장으로 신속하게 운송된다. 풀케는 발효 과정이 지속적이므로 상하기 전에 일정 시간 내에 소비되어야 한다.[7]
4. 소비
대부분의 풀케는 ''풀케리아''라고 불리는 술집에서 소비된다. 20세기 초 멕시코시티에만 1,000개 이상이 있었으며,[7] 당시 ''풀케리아''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장소였고, 일부는 매우 화려했다. ''풀케리아''의 특징은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이름과 벽을 장식하는 벽화였다. 이름에는 "나의 사무실", "미래의 기억", "마시고 가세요", "나는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등이 있었고, 국가 하원 건너편에는 "맞은편 사람들의 레크리에이션 센터"라는 이름을 가진 ''풀케리아''도 있었다.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 회화의 가장 중요한 표현 중 하나가 ''풀케리아''의 내외부를 장식한 벽화라고 언급했다. 20세기 초 모든 ''풀케리아''에서 유지되었던 전통 중 하나는 바닥에 톱밥을 뿌리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풀케를 마시기 시작할 때 땅이나 바닥에 약간 흘려 대지에 바치는 것이 관례였다.[34]
전통적인 ''풀케리아''는 폐쇄적인 회원제 클럽과 같아서, 가끔 방문하는 사람들은 무시당하거나 쳐다보는 경우도 있었다. 술을 자주 방문하고 많이 마시는 것이 호감을 얻는 방법이었다.[7] 일부 시설에서는 여성을 금지하기도 했지만,[7] 여성들을 위한 별도의 좌석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 남녀 간의 혼합은 허용되지 않았다.[35][36][37] 대부분의 풀케가 만들어지는 이달고와 틀락스칼라의 시골 지역에서는 풀케가 더 신선하고 좋다고 여겨진다. 신선한 풀케가 도착하면 판매자는 보통 문 위에 흰 깃발을 걸어둔다.[7]
thumb에 있는 ''풀케리아''(풀케 바) (2007년) in 멕시코시티]]
전통적으로 풀케는 얼음 위에 있는 큰 통에서 제공되며,[35] 조롱박 나무 열매의 반쪽인 ''히카라''를 사용하여 잔에 담아 제공한다. 바텐더는 ''히카레로''라고 불린다. ''풀케리아''에서는 "바닥까지"를 의미하는 ''크루자도''가 자주 사용되는 인사말이다.[7] 술잔은 다채로운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고객의 풀케를 마시는 능력을 반영한다.
| 크기 (리터) | 이름 |
|------------|-----------------|
| 2 | ''마세타스''(화분) |
| 1 | ''카뇨네스''(대포) |
| 0.5 | ''치비토스''(작은 염소) |
| 0.25 | ''카트리나스''(멋쟁이) |
| 0.125 | ''토르닐로스''(나사) |
전통적으로 이 잔들은 녹색의 수제 유리로 만들어진다.[7] 풀케는 통에서 바로 마시거나 과일이나 견과류와 같은 첨가물을 넣을 수 있는데, 이렇게 준비된 풀케는 ''쿠라도'' 또는 숙성된 풀케라고 불린다.[35]
풀케는 보존성이 낮아 오랫동안 보관하거나 멀리 운송하기 어려웠다. 최근 풀케 제조업체들은 음료를 캔에 보존하는 방법을 찾았지만, 풍미가 변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혁신을 통해 풀케가 멕시코에서 잃어버린 시장을 되찾고, 테킬라처럼 수출 품목으로 성공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15] 이미 볼더 임포트에서 "넥타 델 라소"라는 브랜드로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멕시코계 미국인 남성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운동선수와 보디빌더가 찾는 건강 식품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한다.[38]
알코올 도수는 4% 전후이며, 보존성이 낮아 대부분 생산지 근처에서 소비된다. 아가베로 만들어진 고급 풀케는 풀케 피노라고 불리며, 그 외의 종류로 만들어진 풀케는 풀케 코리엔테(일반 풀케), 트라치케라고 불린다. 양조된 풀케는 점액질의 흰 액체이지만, 아니스나 고추 등 향신료를 넣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되어 마신다. 또한, 당밀이나 과즙을 섞은 달콤한 풀케는 테파체라고 불린다.
과거에는 풀케를 증류한 메스칼 데 풀케가 만들어졌지만, 기본이 되는 풀케의 알코올 도수가 낮아 옅은 증류주밖에 만들 수 없었고, 메스칼에 밀려 오늘날에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5. 영양 가치
풀케에 관해서는 "풀케는 고기가 되기까지 단 1도만 부족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풀케의 영양학적 가치를 언급하는 것이다.[36] 메소아메리카인들은 임산부와 노인들에게 사제와 귀족에게만 허용되던 풀케를 마시도록 허용했다. 현대적 분석 결과, 풀케에는 탄수화물, 비타민 C, B-복합체, D, E, 아미노산, 철, 인과 같은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7][15]
6. 풀케 관광
틀락스칼라 주에서는 연방 관광부와 주 정부가 "풀케 루트"라는 투어를 조직했는데, 이 투어에는 이 주에서 여전히 풀케를 만드는 주요 농장들이 포함된다.[15] 이틀간 진행되는 이 투어는 칼풀랄판의 라 바르카 데 라 페 교회에서 시작하여 통조림 풀케의 주요 수출업체인 산 바르톨로 농장으로 이어진다. 이 농장은 "풀케의 왕"으로 불린 이그나시오 토레스 아달리드의 소유였으나, 현재는 리카르도 델 라조가 소유하고 있다. 투어는 기예르모 라미레즈라는 마을 주변과 같은 마게이 밭도 포함한다.[15]
이 오래된 농장들은 매우 다양하다. 17세기에 예수회가 지은 스페인 식민지 스타일의 몬테실로스 농장이나 건축가 안토니오 리바스 메르카도가 건설한 산 안토니오 오메투스코 농장과 같이 웅장하고 훌륭한 건축적 조화를 이룬 곳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장은 16세기에 시작된 건설 과정의 결과로, 멕시코와 유럽의 건축 양식과 방법이 혼합되었다. 특징적인 특징 중 하나는 네오 고딕 타워이다. 산티아고 테틀라파약 농장에는 화가 이카자가 그린 것으로 여겨지는 차레아다와 관련된 벽화가 있다. 조토루카 농장은 네오 무어 양식의 팔각형 평면을 가지고 있으며 1950년대에 복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풀케 농장의 중심은 티나칼(풀케 제조실)이다. 티나칼은 그 중요성에 걸맞게 계획되고 장식되었다. 거의 모든 곳은 특별히 장식된 정문, 벽화 또는 조각된 창문과 같은 흥미로운 건축적 디테일을 가지고 있다. 몬테실로스 농장의 티나칼이나 산 안토니오 오메투스코 농장의 티나칼은 예술 작품으로 간주되며, 이곳에는 몰딩된 철 기둥과 풀케의 역사를 묘사한 벽화로 장식된 벽이 있는 배송 부두를 덮는 우아한 캐노피도 있다.[6]
7. 대중문화
스페인 아메리카에서 엘리트들은 카스타 계층 시스템을 만들어 개인을 표현형과 인식된 사회 계급에 따라 그룹으로 분류하고, 그들에게 그들의 그룹에 고유하다고 여겨지는 특성을 부여했다. 종종 예술가들은 혼혈 카스타를 묘사했는데, 이러한 형태의 멕시코 미술은 카스타를 그들의 사회 집단에 전형적인 환경에서 묘사했다. 풀케의 묘사는 서로 다른 카스타 간의 양극화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다.[20][21]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식민지화 이전에는 풀케가 메소아메리카의 종교 의식에 사용되었지만, 스페인 정복 이후 풀케 소비는 의례적 의미를 잃었다.[20][21]
일부 카스타 그림에서는 풀케 소비가 묘사되었다.[22] 일부 카스타 화가들은 서로 다른 카스타들이 안전하게 풀케를 소비하고 판매하는 모습을 묘사했고,[23] 다른 카스타 화가들은 원주민들이 거리에서 술에 취해 무력해져서 가족들이 집으로 데려가야 하는 모습을 묘사했다.[24] 1828년, 이탈리아 석판화가 클라우디오 리나티는 풀케리아 밖에서 두 명의 원주민 여성이 다투는 모습을 묘사했다.
1966년에 개봉된 영화 ''애팔루사''는 풀케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영화에서 맷 플레처(말론 브란도)는 술집에 앉아 풀케를 즐긴다.
참조
[1]
서적
Handbook of Plant-Based Fermented Food and Beverage Technology
https://books.google[...]
CRC Press
2012-05-17
[2]
서적
The Chemistry of Common Life
https://archive.org/[...]
D. Appleton
[3]
서적
Coping with Alcohol and Drug Problems: The Experiences of Family Members in Three Contrasting Cultures
https://books.google[...]
Routledge
[4]
서적
Local Foods Meet Global Foodways: Tasting History
https://books.google[...]
Routledge
[5]
웹사이트
What is Pulque?
http://www.mezcal.co[...]
2009-09-11
[6]
웹사이트
Haciendas pulqueras de Apan y Zempoala
http://www.lugaresde[...]
2007-10
[7]
웹사이트
The story of pulque (or Mayan Madness!)
http://www.tequilame[...]
2009-09-11
[8]
뉴스
Aztecs' Sacred Drink Pulque Losing Out to Beer in Mexico
http://www.medindia.[...]
2007-11-23
[9]
웹사이트
El pulque, bebida de los dioses
http://www.restauran[...]
Restaurantes de Mexico
2009-09-13
[10]
서적
Fermented Foods and Beverages of the World
[11]
웹사이트
El uso de maguey
http://www.mexicodes[...]
Mexico Desconocido
1995-04
[12]
웹사이트
El Descubrimiento del Pulque
http://www.soumaya.c[...]
Soumaya Museum
[13]
서적
Drink: A Cultural History of Alcohol
Gotham Books
2009-05
[14]
서적
A Guide to Tequila, Mezcal and Pulque
Minutiae Mexicana S.A de C.V.
[15]
웹사이트
Tlaxcala organiza recorridos por haciendas pulqueras
http://www.elunivers[...]
2009-09-04
[16]
뉴스
Xiuhtlaltzin, primera reina tolteca y Xóchitl, reina tolteca descubridora del pulque
http://www.oem.com.m[...]
2008-01-20
[17]
서적
A Guide to Tequila, Mezcal and Pulque
Minutiae Mexicana S.A de C.V.
[18]
서적
A Guide to Tequila, Mezcal and Pulque
Minutiae Mexicana S.A de C.V.
[19]
서적
A Guide to Tequila, Mezcal and Pulque
Minutiae Mexicana S.A de C.V.
[20]
서적
Drinking, Homicide, and Rebellion in Colonial Mexican Villages
Stanford University Press
[21]
서적
Casta Painting
Yale University Press
[22]
웹사이트
You Are What You Drink? Tequila, Maguey and Mexican Identity
http://www.globality[...]
George Mason University
2013-09-30
[23]
서적
Casta Painting
Yale University
[24]
서적
Casta Painting
Yale University Press
[25]
문서
Mexican Suite
University of Texas Press
[26]
문서
Mexican Suite
[27]
서적
A Guide to Tequila, Mezcal and Pulque
Minutiae Mexicana S.A de C.V.
[28]
뉴스
Brewers sought to disparage pulque
http://www2.eluniver[...]
2007-01-11
[29]
서적
Consuming the Inedible: Neglected Dimensions of Food Choice
https://books.google[...]
Berghahn Books
[30]
뉴스
Mentira que se use excremento para elaborar pulque
http://www.elsiglode[...]
2007-01-11
[31]
문서
Mysteries of the Mexican pyramids
Fitzhenry & Whiteside Limited
[32]
웹사이트
Zymomonas mobilis
https://www.uniprot.[...]
[33]
간행물
Agaves pulqueros de México
[34]
서적
A Guide to Tequila, Mezcal and Pulque
Minutiae Mexicana S.A de C.V.
[35]
웹사이트
El Pulque "La Bebida de los Dioses"
http://www.viajaydes[...]
2009-09-11
[36]
웹사이트
Resusitan pulquerías del siglo XIX, aquí
http://www.e-consult[...]
2009-09-11
[37]
웹사이트
Nuestro Pulque
http://pulquenuestro[...]
2009-09-11
[38]
웹사이트
Nectar del Razo
http://www.pocotequi[...]
2009-09-11
[39]
서적
山本
199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