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중서성
1. 개요
행중서성은 원나라 시대에 지방 행정을 담당하던 상설 관료 기구이다. 몽골 제국 시기, 징세와 시정을 위해 설치된 행상서성에서 유래했으며, 쿠빌라이 칸 통치 시기에 대도와 상도를 제외한 지역을 관할하며 지방 행정 제도로 정착했다. 원나라는 정복 전쟁을 위해 정동등처행중서성, 교지행성 등 특별 행성을 설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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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의 행중서성 -
정동등처행중서성
원나라가 일본 원정을 위해 설치한 정동등처행중서성은 고려와 요동을 관할하며 원정 준비를 맡았으나, 원정 실패 후 고려를 직접 통치하는 기구로 기능이 변화했고, 이후 고려 국왕이 장관을 겸임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
원나라의 행중서성 -
요양등처행중서성
요양등처행중서성은 1269년 원나라가 랴오닝성 요양시에 설치한 동경행성을 기원으로 하여 북경행성으로 개칭 후 요양행성으로 재설치되었으며, 만호제를 병행 운영하며 만주 지역 통치와 고려에 영향력을 행사한 원나라의 행정 구역이다. -
옛 나라의 행정 구역 -
오스만 제국의 행정 구역
오스만 제국의 행정 구역은 산자크에서 시작하여 베일러베일릭, 에얄레트를 거쳐 빌라예트 체계로 발전했으며, 각 행정 단위는 산자크, 카자, 나히예 등의 하위 단위로 나뉘어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
옛 나라의 행정 구역 -
만주국의 행정 구역
만주국의 행정 구역은 건국 이후 여러 차례 개편되어 성, 특별시, 보통시, 현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총무청 계획국에서 관리했다.
2. 역사적 배경
남북조 시대 선비족의 북위는 전쟁 지휘와 물자 조달을 위해 '○○도대행대'(某某道大行臺)를 설치하여 군사, 행정 권한을 집중시켰다. 행대는 임시 기관이었으나, 금나라, 명, 청 모두 행상서성(行尚書省)을 두어 외정(外廷)의 현지 주재 기구로 삼았다.
수, 당 초기에는 전투 역량 집중을 위해 행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당 태종은 즉위 전 진왕 시절 섬동도대행대(陕東道大行臺) 직무를 수행했다. 요, 금나라는 행군원수부(行军元帅府), 상서행대(尚书行臺) 등을 두어 행정과 군사 기능을 담당하게 했다.
원나라는 수도 경사(京师) 부근 지역을 중서성에 직속시키고, 그 외 지역에는 11개의 행성(11행성)을 설치했다. 행성에는 승상(丞相), 평장(平章) 등의 관직을 두어 지역 정치를 총괄하게 했으며, 이는 지방 최고 행정 단위가 되었다. 명나라는 행성을 승선포정사사(承宣布政使司)로 고쳤으나, 여전히 행성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청나라는 명나라의 행정 구역을 이어받아 최종적으로 22개 성을 두었다.
원래 중서성은 육부를 통괄하는 중앙 최고 행정 기관이었고, 행성은 지방에서 중서성의 업무를 대행하는 출장 기관이었다. 행성은 중서성과 동등하게 황제에게 직속되었으며, 장관은 승상 및 평장정사라 칭했다. 간부로는 우승상·좌승상·평장정사·우승·좌승·참지정사 등이 있었고, 우승상이 수석 장관이었다. 행성의 수는 최대 11개였다. 행중서성은 본래 전선에서의 정치와 군사를 통괄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이었으므로, 군사 행동에 맞춰 설치되었다. 예를 들어 1280년 일본 침공(원나라의 일본 원정)을 위해 설치된 정동등처행중서성은 속국인 고려와 직할령인 요동을 관할하며 침공 준비와 징발을 담당했다.
「행성(行省)」이라는 명칭은 원나라 이전 금나라 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금나라에서 중앙 정부 기관인 상서성의 고관이 지방으로 출정했을 때, 임시로 설치한 막영(幕營)을 행성이라 불렀다. 몽골 제국은 이 명칭을 계승하여, 정복 지역의 징세·시정 기관을 행상서성 또는 행성이라 불렀다.
몽케는 지방 출장 행정 기관인 행상서성을 개혁하여 중국, 중앙아시아, 이란 방면의 3개 행상서성을 설치했다. 1259년 몽케 사후 몽골 제국 제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자, 쿠빌라이는 1260년 내몽골에서 카안으로 즉위하고 중서성을 설치했다. 쿠빌라이의 중서성은 중국 제도를 따라 육부를 배하에 두고 행정 기관으로서 육부 통괄까지 담당하는 최고 행정 기관으로 정비되었다.
2.1. 행수법
고대 중국에서는 관원의 겸직을 구분하기 위해 행(行), 수(守), 섭(攝), 권(權), 시(試) 등의 글자를 관직 앞에 붙이는 행수법을 사용했다. 이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중국식 지배 기구를 본뜬 대부분의 동아시아 왕조들이 채택하였다. 「행」(行)은 직사관(職事官)의 관위가 기록관(寄祿官)의 관위보다 낮을 경우에 붙였다. 예를 들어 「양절로권농사 겸 제점형옥공사 조봉대부 행상서도지원외랑 호군 차자주」(兩浙路勸農使兼提點刑獄公事朝奉大夫行尚書度支員外郎護軍借紫朱)와 같이 사용되었다. 행중서성(行中書省), 행추밀원(行樞密院), 행상서성(行尚書省), 행상서성 병부의 관원은 '기록관' 품계가 '직사관' 등급보다 1품 이상 높았다.
3. 원나라의 행성 제도
원나라의 행성은 중앙 정부의 최고 행정 기관인 중서성의 지방 출장 기관으로, 황제에게 직속되었다. 행성은 관할 지역 내의 전량, 병갑, 둔종, 조운, 군국 등 중대사를 담당했으며, 로(路), 현(縣), 주(州)의 상위 기관으로 정무를 통괄했다.
행성의 장관은 승상(丞相) 및 평장정사(平章政事)였으며, 우승상이 수석 장관이었다. 간부로는 우승상·좌승상·평장정사·우승·좌승·참지정사 등이 배치되었다. 행성의 수는 최다 11개에 달했으며, 군사 행동에 맞춰 설치되었다.
'행성(行省)'이라는 명칭은 금나라 시대에 중앙 정부 기관인 상서성의 고관이 지방 출정 시 임시로 설치한 지방 출장 기관에서 유래했다. 몽골 제국은 이 제도를 계승하여 화북 등 정복 지역의 징세 및 시정 기관으로 활용했다.
몽골 제국 제위 계승 전쟁 이후 쿠빌라이는 중서성을 최고 행정 기관으로 정비하고, 지방 행정 기관으로 행중서성을 설치하여 대원의 지방 행정 제도로 정착시켰다. 초기에는 한인 군인이나 관료가 임명되었으나, 점차 몽골 귀족이나 색목인 관료가 임명되었다.
3.1. 원나라의 특별 행성
원나라는 정복 전쟁과 같은 특수한 목적을 위해 특별 행성을 설치하기도 했다.
* 정동등처행중서성(征東等處行中書省): 일본 원정을 위해 고려(한반도)에 설치되었다.
* 교지행성(交趾行省): 대월(베트남) 원정을 위해 교지에 설치되었다.
* 형호점성행중서성(荊湖占城行中書省): 형남, 호남에 설치되었다.
* 면중행성(緬中行省): 바간 왕국(미얀마) 정벌 후 설치되었다.
4. 원나라 이후의 행성
명나라는 행성을 승선포정사사(承宣布政使司)로 고쳤으나, 여전히 원나라 시대의 관습에 따라 행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청나라는 기본적으로 명나라의 행정 구역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청 초기에는 본토에 18개 성이 있었다가 이후에 봉천(奉天) 등 3개 행성이 더해져서 최종적으로 22개 성으로 늘어났다.
5. 행성의 영향과 의의
원나라의 행중서성(行中書省) 제도는 중앙 정부의 권한을 지방에 효과적으로 위임하여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행성은 단순한 지방 행정 구역을 넘어, 후대 중국 왕조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의 행정 제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행성 제도는 중앙 집권과 지방 자치의 균형을 추구하고, 지방 분권과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행성 제도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역할 분담, 권한 배분, 협력 방식 등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