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코시 가지시로
1. 개요
후나코시 가지시로는 일본 제국의 해군 군인으로, 해군 소장까지 진급했다. 효고현 출신으로 해군병학교를 졸업하고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 참전했다. 해군성 인사국원, 함장, 연합 함대 참모장 등을 거쳐, 해군 중장으로 진급 후 제2견외함대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예비역 편입 후에는 미쓰비시 석유 사장을 지냈으며, 전후 공직 추방 가(假)지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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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후나코시 가지시로 |
|---|---|
| 출생일 | 1870년 9월 23일 |
| 사망일 | 1962년 10월 30일 |
| 출생지 | 일본, 효고현 |
| 사망지 | 일본 |
| 묘소 | 아오야마 영원 |
| 소속 | 일본 제국 해군 |
|---|---|
| 복무 기간 | 1891년 - 1922년 |
| 최종 계급 | 해군 중장 |
| 직책 | 미쓰비시 석유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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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그룹 관련자 -
지바 사부로
지바 사부로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기업인으로, 도쿄 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석유 및 에너지 관련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미야기현 지사와 중의원 의원, 노동대신을 역임하고 자유민주당 내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하다가 1979년 사망했다. -
미쓰비시 그룹 관련자 -
하야시 조지
하야시 조지는 자유 민권 운동가의 아들이자 일본의 정치인 겸 하이쿠 시인으로, 중의원 의원, 내각서기관장, 부총리 겸 후생상, 중의원 의장, 자유당 간사장 등을 역임하며 요시다 시게루 내각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
가이세이 고등학교 동문 -
가타오카 도시아키
가타오카 도시아키는 일본 극좌 운동가이자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늑대" 소속원으로, 미쓰비시중공업 폭파 사건 등 연쇄 기업 폭파 사건의 주요 실행자이며, 현재 사형 확정 후 도쿄 구치소에 수감 중인 인물이다. -
가이세이 고등학교 동문 -
오자와 사에키
오자와 사에키는 이와테현 출신의 정치인으로, 가난한 농가에서 변호사가 된 후 자유당 및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중의원 의원을 10선 역임하며 요시다 시게루 내각에서 운수상, 우정상 겸 전기통신상, 건설상 등을 역임했고 중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했으며, 그의 장남은 오자와 이치로이다. -
청일 전쟁 관련자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청일 전쟁 관련자 -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육군대신, 한국통감,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한국 병합을 주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했으며, 시베리아 출병 등 외교 정책을 펼친 일본 제국주의 핵심 인물이다.
2. 생애
후나코시 가지시로는 효고현 출신으로, 후나코시 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카이세이 중학교를 거쳐 1890년 4월 해군병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9월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청일 전쟁에는 방호순양함 하시다테 분대사로, 러일 전쟁에는 제2함대 부관으로 참전했다.
해군 장성 시절에는 해군성 인사국원, 여러 함선의 함장, 함정본부 의장원 등을 역임하고 1915년 12월 해군 소장으로 진급했다. 이후 영국 대사관 부무관, 요코스카 진수부 참모장, 제1함대 참모장 겸 연합 함대 참모장 등을 거쳤으며, 1919년 12월 해군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2견외함대 사령관, 장관 회의 의원, 요코스카 공창장 등을 역임했다. 1922년 12월 예비역에 편입되었다.
전역 후에는 1932년 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미쓰비시 석유 사장을 맡았으며, 1947년(쇼와 22년) 11월에 공직 추방 가(假)지정을 받았다.
2.1.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효고현 출신이다. 후나코시 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카이세이 중학교를 거쳐, 1890년 4월 해군병학교(16기)를 졸업하고, 이듬해 9월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청일 전쟁에 방호순양함 하시다테 분대사로 참전했다. 이후 야에야마 분대장, 후지 분대장, 전원 뇌격장, 구레 뇌격단 부관, 아사히 분대장, 포술 연습소 교관, 야쿠모 포술장, 교육본부 제1부원 등을 거쳐, 러일 전쟁에는 제2함대 부관으로 종군했다.
2.2. 해군 장성 시절
후나코시 가지시로는 해군성 인사국원, 「가토리」 부장, 「지요다」, 「이즈모」의 각 함장을 역임했다. 요코스카 진수부 부속, 「쓰시마」, 「하시다테」, 「이와테」, 「야쿠모」, 「이코마」의 각 함장, 함정본부 의장원, 「하루나」 함장을 역임하고, 1915년(다이쇼 4년) 12월 해군 소장으로 진급했다.
영국 대사관 부무관, 요코스카 진수부 참모장, 제1함대 참모장 겸 연합 함대 참모장 등을 거쳐, 1919년(다이쇼 8년) 12월 해군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2견외함대 사령관, 장관 회의 의원, 요코스카 공창장 등을 역임했다. 1922년(다이쇼 11년) 12월, 예비역에 편입되었다.
2.3. 전역 이후
1922년(다이쇼 11년) 12월,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그 후 1932년(쇼와 7년) 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미쓰비시 석유 사장을 맡았다.
전후 1947년(쇼와 22년) 11월에 공직 추방 가(假)지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