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
1. 개요
1951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은 일본 프로 야구 양대 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개최된 올스타전으로,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 간의 대결로 진행되었다. 3차전까지 치러진 이 대회에서 센트럴 리그는 2승을 거두고, 퍼시픽 리그는 1승을 기록했다. 1차전은 48,671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올스타전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으며, 3경기 모두 만원 관중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다음 시즌부터 매년 개최되는 계기가 되었다.
| 개최 연도 | 195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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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트럴 리그 감독 | 아마치 슌이치 |
|---|---|
| 퍼시픽 리그 감독 | 유아사 요시오 |
| 센트럴 리그 팬 투표 최다 득표 선수 | 후지무라 후미오 |
| 퍼시픽 리그 팬 투표 최다 득표 선수 | 도이가키 다케시 |
| 날짜 | 7월 4일 |
|---|---|
| 개최지 | 한신 고시엔 구장 |
| 원정팀 | 퍼시픽 리그 |
| 스코어 | 1-2 |
| 홈팀 | 센트럴 리그 |
| MVP | 가와카미 데쓰하루 |
| 날짜 | 7월 7일 |
|---|---|
| 개최지 | 고라쿠엔 구장 |
| 원정팀 | 센트럴 리그 |
| 스코어 | 4-2 |
| 홈팀 | 퍼시픽 리그 |
| MVP | 노구치 아키라 |
| 날짜 | 7월 8일 |
|---|---|
| 개최지 | 고라쿠엔 구장 |
| 원정팀 | 퍼시픽 리그 |
| 스코어 | 4-3 |
| 홈팀 | 센트럴 리그 |
| MVP | 하야시 기이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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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야구 -
1951년 일본 시리즈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난카이 호크스를 4승 1패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한 1951년 일본 시리즈에서, 요미우리의 미나미무라 유키히로가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
1951년 야구 -
1951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투표
1951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투표는 1926년 이후 선수 생활을 했지만 1950년에는 활동하지 않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멜 오트와 지미 폭스가 75% 이상의 득표율을 얻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 -
1954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
1954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은 텔레비전 중계가 처음 시작된 해에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 올스타팀이 맞붙어 1, 2차전 모두 퍼시픽 리그가 승리했으며, 나카니시 후토시와 야마우치 가즈히로가 MVP를 수상했고, 찰리 루이스는 외국인 선수 최초로 포수로 선발 출전했다. -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 -
1959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
1959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은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의 최고 선수들이 참가한 2경기 시리즈로, 각 리그가 1승씩을 거두었으며 팬 투표로 선출된 선수들과 보충 선수들이 참가했고 TV와 라디오로 중계되었다.
2. 출범 배경
1950년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한 마이니치 오리온스의 유아사 요시오 감독이 퍼시픽 리그 올스타팀을 지휘했다. 반면, 센트럴 리그에서는 전년도 우승팀 쇼치쿠 로빈스를 이끌었던 고니시 도쿠로 감독이 1950년 일본 시리즈 종료 후 사임함에 따라, 리그 2위 팀이었던 나고야 드래건스의 아마치 슌이치 감독이 센트럴 리그 올스타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또한, 당시 공식 경기에서는 심판 3인제를 운영했으나, 첫 올스타전에서는 6인제가 채택되었다.
2.1. 양대 리그 출범과 올스타전 개최
1949년 프로 야구 재편으로 양대 리그제가 출범한 후, 리그 우승팀 간의 대결인 일본 시리즈는 1950년에 시작되었지만, 리그 대항 올스타전은 1951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1차전과 3차전 주심을 맡았던 시마 히데노스케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 올스타전을 커미셔너 제도와 ‘궤를 같이하는 연중 행사’로 기록했다.
단일 리그 시절에는 1949년 가을 마지막 개최 당시 8개 구단으로 구성된 동서 대항전이 11월에서 12월 사이에 열렸으나, 양대 리그 출범 후에는 미국의 메이저 리그 올스타전을 본떠 7월에 개최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1951년 첫 올스타전은 3경기 모두 만원 관중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평가받았고, 이에 따라 다음 해부터 매년 개최되는 정례 행사가 되었다.
3. 경기 진행 방식
1951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은 총 3경기를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세 경기의 결과를 종합하여 MVP 한 명을 선정했다. 경기 운영은 정규 시즌과 다른 규칙이 적용되었고, 감독 및 선수는 팬 투표와 추천 등을 통해 선발되었다.
3.1. 경기 규칙 및 심판
총 3경기를 치러 종합 MVP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공식 경기에서는 심판 3인제를 채택하고 있었으나, 올스타전에서는 6인 심판제가 적용되었다.
3.2. 감독 및 선수 선발
전년도인 1950년 일본 시리즈에서 정상에 오른 마이니치 오리온스의 유아사 사다오가 퍼시픽 리그 올스타팀을 지휘했다. 센트럴 리그에서는 본래 전년도 쇼치쿠 로빈스를 리그 우승으로 이끈 고니시 도쿠로가 지휘해야 했으나, 일본 시리즈 종료 후 용퇴하였기 때문에 전년도 2위 팀 나고야 드래건스의 아마치 슌이치가 센트럴 리그 올스타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선수는 팬 투표와 감독 추천을 통해 선발되었다.
| 센트럴 리그 | ||
|---|---|---|
| 감독 | 아마치 슌이치 | 주니치 |
| 코치 | 마츠키 켄지로 | 한신 |
| 미즈하라 시게루 !! 요미우리 | ||
| 투수 | 벳쇼 타케히코 | 요미우리 |
| 오시마 노부오 !! 쇼치쿠 | ||
| 후지모토 히데오 !! 요미우리 | ||
| 스기시타 시게루 !! 주니치 | ||
| 카네다 마사이치 !! 고쿠테츠 | ||
| 하세가와 료헤이 !! 히로시마 | ||
| 미토미 츠네오 !! 주니치 | ||
| 후지무라 타카오 !! 한신 | ||
| 타카노 히로라 !! 다이요 | ||
| 나카오 세키시 !! 요미우리 | ||
| 포수 | 아라카와 쇼지 | 쇼치쿠 |
| 노구치 아키라 !! 주니치 | ||
| 토쿠아미 시게루 !! 한신 | ||
| 1루수 | 카와카미 테츠하루 | 요미우리 |
| 2루수 | 지바 시게루 | 요미우리 |
| 3루수 | 후지무라 토미오 | 한신 |
| 유격수 | 히라이 마사아키 | 요미우리 |
| 내야수 | 카네야마 지로 | 쇼치쿠 |
| 시라사카 나가에 !! 한신 | ||
| 좌익수 | 아오타 노보루 | 요미우리 |
| 중견수 | 코즈루 마코토 | 쇼치쿠 |
| 우익수 | 이와모토 요시유키 | 쇼치쿠 |
| 외야수 | 츠보우치 미치노리 | 주니치 |
| 니시자와 미치오 !! 주니치 | ||
| 하라다 노리미츠 !! 주니치 | ||
| 퍼시픽 리그 | ||
|---|---|---|
| 감독 | 유아사 사다오 | 마이니치 |
| 코치 | 하마자키 신지 | 한큐 |
| 미하라 오사무 !! 니시테츠 | ||
| 투수 | 아라마키 준 | 마이니치 |
| 에토 타다시 !! 난카이 | ||
| 유키 스스무 !! 난카이 | ||
| 노무라 타케시 !! 마이니치 | ||
| 요네카와 야스오 !! 도큐 | ||
| 하야시 요시이치 !! 다이에 | ||
| 가와사키 토쿠지 !! 니시테츠 | ||
| 사토 헤이시치 !! 마이니치 | ||
| 타케스에 시코 !! 니시테츠 | ||
| 세키네 준조 !! 긴테츠 | ||
| 포수 | 도이카키 타케시 | 마이니치 |
| 츠츠이 케이조 !! 난카이 | ||
| 카타오카 히로쿠니 !! 마이니치 | ||
| 1루수 | 이다 토쿠지 | 난카이 |
| 2루수 | 야마모토 카즈토 | 난카이 |
| 3루수 | 나카타니 준지 | 한큐 |
| 유격수 | 키즈카 타다스케 | 난카이 |
| 내야수 | 카게야마 카즈오 | 난카이 |
| 하마다 요시오 !! 도큐 | ||
| 좌익수 | 오시타 히로시 | 도큐 |
| 중견수 | 벳토 가오루 | 마이니치 |
| 우익수 | 이이지마 시게요 | 다이에 |
| 외야수 | 이토 쇼시치 | 마이니치 |
| 고 창정 !! 마이니치 | ||
| 토쿠라 카츠시로 !! 한큐 | ||
*굵은 글씨는 팬 투표로 선정된 선수이다.
*아라마키 준, 오시마 노부오, 세키네 준조, 츠츠이 케이조, 시라사카 나가에는 3경기 모두 출전 기회가 없었다.
4. 경기 결과
총 3경기가 치러졌으며, 센트럴 리그가 2승 1패로 퍼시픽 리그에 승리했다.
1차전은 센트럴 리그가 2:1로, 2차전 역시 센트럴 리그가 4:2로 승리했다. 특히 2차전에서는 니시자와 미치오(나고야)가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 역사상 제1호 홈런을 기록했다. 3차전에서는 퍼시픽 리그가 4:3으로 승리하며 시리즈 첫 승을 거두었고, 이 경기에서는 후지무라 후미오와 후지무라 다카오 형제(오사카)가 올스타전 사상 최초로 동시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번 제1회 올스타전은 3경기 모두 만원 관중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시즌부터 매년 개최되는 정례 행사가 되었다. 한편, 당시 공식 경기에서는 3인 심판제를 운영했으나, 올스타전에서는 미국 메이저 리그와 같이 6인 심판제를 채택하여 진행했다.
4.1. 1차전 (센트럴 리그 승리)
퍼시픽 리그 올스타팀의 선발 투수는 에토 다다시(난카이), 센트럴 리그 올스타팀의 선발 투수는 벳쇼 다케히코(요미우리)였다.
1회초, 벳쇼는 퍼시픽 올스타팀의 1번 타자 이이다 도쿠지(난카이)에게 볼넷을 허용했지만, 후속 타자인 야마모토 가즈토(난카이), 벳토 가오루(마이니치), 오시타 히로시(도큐)를 연속으로 범타 처리하며 이닝을 마쳤다. 이어진 1회말 공격에서 센트럴 올스타팀은 2번 타자 치바 시게루(요미우리)가 우익 선상 안타를 치고 나갔고, 이후 이와모토 요시유키(쇼치쿠)와 가와카미 데쓰하루(요미우리)의 안타가 이어지며 1점을 먼저 얻었다.
센트럴 올스타팀은 6회말에 1점을 더 추가하여 점수 차를 벌렸다. 퍼시픽 올스타팀은 7회초에 1점을 만회하며 추격했지만, 7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센트럴 올스타팀의 스기시타 시게루(나고야)가 더 이상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최종 스코어는 센트럴 올스타팀의 2:1 승리였다. 1차전 MVP는 가와카미 데쓰하루(요미우리)가 선정되었다.
1차전의 관객 수는 48,671명으로, 이는 당시 올스타전 최다 관객 기록이었다.
4.2. 2차전 (센트럴 리그 승리)
1차전 종료 후 이동일을 포함하여 3일 뒤에 2차전이 열렸다. 센트럴 리그 올스타팀의 선발 투수는 1차전에 이어 벳쇼 다케히코(요미우리)가 나섰다. 센트럴 리그의 아마치 슌이치 감독은 1, 2차전 모두 승리하기 위해 벳쇼, 가네다 마사이치(고쿠테쓰), 스기시타 시게루(나고야) 세 투수를 3이닝씩 나누어 던지게 할 계획이었으나, 2차전에서는 이 계획이 실행되지 않았다. 퍼시픽 리그 올스타팀의 선발 투수는 노무라 다케시(마이니치)였다.
경기는 퍼시픽 리그가 2점을 먼저 앞서 나갔다. 7회초 센트럴 리그의 공격에서 노구치 아키라(나고야)가 적시 3루타를 쳐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서 투수 가네다 마사이치의 대타로 나온 니시자와 미치오(나고야)가 퍼시픽 리그 투수 요네카와 야스오(도큐)를 상대로 2점 홈런을 기록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이 홈런은 1차전에서 홈런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 역사상 제1호 홈런으로 기록되었다.
경기는 최종 스코어 4대 2로 센트럴 리그가 승리하며 2연승을 거두었다. 승리 투수는 스기시타 시게루(나고야), 패전 투수는 요네카와 야스오(도큐)였다. 2차전 MVP는 노구치 아키라(나고야)에게 돌아갔다.
4.3. 3차전 (퍼시픽 리그 승리)
앞선 1, 2차전에서 연달아 패배한 퍼시픽 리그 올스타팀은 3차전 승리를 위해 전의를 다졌다. 센트럴 리그 올스타팀에서는 후지무라 다카오(오사카 타이거스)가, 퍼시픽 리그 올스타팀에서는 사토 헤이시치(난카이 호크스)가 선발 투수로 나섰다.
경기 초반에는 센트럴 리그가 기세를 올렸다. 1회말, 치바 시게루(요미우리), 이와모토 요시유키(쇼치쿠), 가와카미 데쓰하루(요미우리), 후지무라 후미오(오사카) 등의 안타로 먼저 2점을 뽑아냈다. 하지만 퍼시픽 리그도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2회초 이이지마 시게야(다이에이)의 솔로 홈런으로 1점을 따라붙었고, 5회초에는 나카타니 준지(긴테쓰)의 솔로 홈런으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센트럴 리그는 5회말 치바 시게루의 솔로 홈런으로 다시 앞서나갔지만, 퍼시픽 리그는 6회초 다시 1점을 추가하며 3:3으로 팽팽한 균형을 유지했다.
승부는 8회초에 갈렸다. 퍼시픽 리그의 3번 타자 이이다 도쿠지(난카이)가 센트럴 리그 투수 후지모토(요미우리)를 상대로 결승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이 리드를 퍼시픽 리그의 구원 투수 하야시 기이치(다이에이)가 끝까지 지켜내면서, 퍼시픽 리그는 4:3으로 시리즈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의 MVP는 승리 투수가 된 하야시 기이치에게 돌아갔다.
한편, 이 경기에서는 센트럴 리그 선발 투수 후지무라 다카오와 3루수 후지무라 후미오 형제가 동시에 출전하여,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 사상 최초로 형제가 함께 경기에 나서는 기록을 세웠다.
=== 득점 경과 ===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계 | 안타 | 실책 |
|---|---|---|---|---|---|---|---|---|---|---|---|---|
| 퍼시픽 | 0 | 1 | 0 | 0 | 1 | 1 | 0 | 1 | 0 | 4 | 6 | 1 |
| 센트럴 | 2 | 0 | 0 | 0 | 1 | 0 | 0 | 0 | 0 | 3 | 6 | 1 |
* 승리 투수 : 하야시 기이치(다이에이) (1승)
* 패전 투수 : 후지모토(요미우리) (1패)
* 홈런 :
퍼시픽: 이이지마 시게야(다이에이) 1호(2회 1점, 후지무라 다카오 상대), 나카타니 준지(긴테쓰) 1호(5회 1점, 미토미 상대), 이이다 도쿠지(난카이) 1호(8회 1점, 후지모토 상대)
센트럴: 치바 시게루(요미우리) 1호(5회 1점, 노무라 다케시 상대)
=== 선발 라인업 ===
| 타순 | 퍼시픽 리그 | 수비 위치 | 센트럴 리그 | 수비 위치 |
|---|---|---|---|---|
| 1 | 가게야마 가즈오 (난카이) | 2루수 | 아오타 노보루 (요미우리) | 좌익수 |
| 2 | 기즈카 주스케 (난카이) | 유격수 | 치바 시게루 (요미우리) | 2루수 |
| 3 | 이이다 도쿠지 (난카이) | 1루수 | 이와모토 요시유키 (쇼치쿠) | 우익수 |
| 4 | 벳토 가오루 (마이니치) | 중견수 | 가와카미 데쓰하루 (요미우리) | 1루수 |
| 5 | 오시타 히로시 (도큐) | 좌익수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3루수 |
| 6 | 나카타니 준지 (긴테쓰) | 3루수 | 고즈루 마코토 (쇼치쿠) | 중견수 |
| 7 | 이이지마 시게야 (다이에이) | 우익수 | 도쿠아미 시게루 (나고야) | 포수 |
| 8 | 도이가키 다케시 (마이니치) | 포수 | 후지무라 다카오 (오사카) | 투수 |
| 9 | 사토 헤이시치 (난카이) | 투수 | 히라이 마사아키 (요미우리) | 유격수 |
4.4. 종합 MVP
당시에는 3경기를 통해서 종합 MVP가 선정되었는데, 종합 MVP는 센트럴 리그 올스타팀의 스기시타 시게루가 차지했다. 상품으로는 가죽으로 만든 보스턴백과 트로피가 수여되었는데, 트로피는 주최 측이 투수가 MVP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타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5. 주요 기록
양대 리그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올스타전으로, 이전의 동서 대항전과 달리 미국 메이저 리그를 따라 7월에 열렸다. 센트럴 리그 올스타팀이 1, 2차전에서 승리하고 퍼시픽 리그 올스타팀이 3차전에서 승리하여, 센트럴 리그가 2승 1패로 시리즈 우위를 가져갔다.
3경기를 종합하여 선정하는 최우수선수(MVP)에는 센트럴 리그 올스타팀의 스기시타 시게루(나고야)가 선정되었다. 상품으로는 가죽 보스턴백과 타자 모습이 새겨진 트로피가 수여되었다. 3경기 모두 만원 관중을 기록하는 등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이후 매년 올스타전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5.1. 형제 선수 동시 출전
3차전에서 센트럴 올스타팀 선발 투수로 등판한 오사카 타이거스의 후지무라 다카오는 같은 팀의 3루수인 후지무라 후미오의 친동생으로, 이들은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 역사상 최초로 동시에 출전한 형제가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모두 3번의 올스타전에 함께 출전했다.
후지무라 형제 외에도 올스타전에 형제가 함께 출전하여 주목할 만한 기록을 남긴 사례는 다음과 같다.
5.2. 기타 기록
* 니시자와 미치오(나고야) : 2차전에서 올스타전 사상 제1호 홈런 기록
* 1차전 관객 수 : 48,671명 (당시 올스타전 최다 관객 기록)
* 후지무라 후미오, 후지무라 다카오 (오사카 타이거스) : 3차전에서 형제가 동시 출전 (사상 최초)
* 심판 : 공식전에서는 3인제였던 당시에 6인제로 채택됨
6. 출장 선수 명단
팬 투표로 선출된 선수와 감독 추천 선수로 구성되었다. 굵은 글씨는 팬 투표로 선출된 선수이다. 아라마키 아쓰시(마이니치), 오시마 노부오(쇼치쿠), 세키네 준조(긴테쓰), 쓰쓰이 게이조(난카이), 시라사카 조에이(오사카) 등 일부 선수는 3경기 모두 출전 기회가 없었다.
6.1. 센트럴 리그
| 센트럴 리그 | ||
|---|---|---|
| 감독 | 아마치 슌이치 | 나고야 |
| 코치 | 마쓰키 겐지로 | 오사카 |
| 미즈하라 시게루 | 요미우리 | |
| 투수 | 벳쇼 다케히코 | 요미우리 |
| 오시마 노부오 | 쇼치쿠 | |
| 후지모토 히데오 | 요미우리 | |
| 스기시타 시게루 | 나고야 | |
| 가네다 마사이치 | 고쿠테쓰 | |
| 하세가와 료헤이 | 히로시마 | |
| 미토미 쓰네오 | 나고야 | |
| 후지무라 다카오 | 오사카 | |
| 다카노 히로요시 | 다이요 | |
| 나카오 히로시 | 요미우리 | |
| 포수 | 아라카와 쇼지 | 쇼치쿠 |
| 노구치 아키라 | 나고야 | |
| 도쿠아미 시게루 | 오사카 | |
| 1루수 | 가와카미 데쓰하루 | 요미우리 |
| 2루수 | 치바 시게루 | 요미우리 |
| 3루수 | 후지무라 후미오 | 오사카 |
| 유격수 | 히라이 마사아키 | 요미우리 |
| 내야수 | 가나야마 지로 | 쇼치쿠 |
| 시라사카 조에이 | 오사카 | |
| 좌익수 | 아오타 노보루 | 요미우리 |
| 중견수 | 고즈루 마코토 | 쇼치쿠 |
| 우익수 | 이와모토 요시유키 | 쇼치쿠 |
| 외야수 | 쓰보우치 미치노리 | 나고야 |
| 니시자와 미치오 | 나고야 | |
| 하라다 도쿠미쓰 | 나고야 | |
* 굵은 글씨는 팬 투표로 선출된 선수.
** 오시마(쇼치쿠), 시라사카(오사카)는 3경기 모두 출전 기회가 없었다.
6.2. 퍼시픽 리그
wikitext
| 퍼시픽 리그 | ||
|---|---|---|
| 감독 | 유아사 요시오 | 마이니치 |
| 코치 | 하마자키 신지 | 한큐 |
| 미하라 오사무 | 니시테쓰 | |
| 투수 | 아라마키 아쓰시 | 마이니치 |
| 에토 다다시 | 난카이 | |
| 유키 스스무 | 난카이 | |
| 노무라 다케시 | 마이니치 | |
| 요네카와 야스오 | 도큐 | |
| 하야시 기이치 | 다이에이 | |
| 가와사키 도쿠지 | 니시테쓰 | |
| 사토 헤이시치 | 마이니치 | |
| 다케스에 싯쇼 | 니시테쓰 | |
| 세키네 준조 | 긴테쓰 | |
| 포수 | 도이가키 다케시 | 마이니치 |
| 쓰쓰이 게이조 | 난카이 | |
| 가타오카 히로쿠니 | 마이니치 | |
| 1루수 | 이이다 도쿠지 | 난카이 |
| 2루수 | 야마모토 가즈토 | 난카이 |
| 3루수 | 나카타니 준지 | 한큐 |
| 유격수 | 기즈카 주스케 | 난카이 |
| 내야수 | 가게야마 가즈오 | 난카이 |
| 하마다 요시오 | 도큐 | |
| 좌익수 | 오시타 히로시 | 도큐 |
| 중견수 | 벳토 가오루 | 마이니치 |
| 우익수 | 이이지마 시게야 | 다이에이 |
| 외야수 | 이토 쇼시치 | 마이니치 |
| 고 쇼세이 | 마이니치 | |
| 도쿠라 가쓰키 | 한큐 | |
* 굵은 글씨는 팬 투표로 선출된 선수이다.
** 아라마키(마이니치), 세키네(긴테쓰), 쓰쓰이(난카이) 등은 3경기 모두 출전 기회가 없었다.
7. 미디어 중계
대회의 중계는 다음과 같다.
7.1. 라디오 중계
전 경기 NHK 라디오 제2에서 중계되었다.
* 제1전: 7월 4일, 실황: 시무라 마사요리
* 제2전: 7월 7일, 실황: 시무라 마사요리, 노세 시로, 사이토 마사오
* 제3전: 7월 8일, 실황: 시무라 마사요리
8. 영향 및 평가
3경기 모두 만원 관중을 기록하는 등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는 평가에 따라, 다음 해부터 올스타전은 매년 열리는 연례 행사로 자리 잡았다. 특히 1차전의 관객 수 48,671명은 당시 올스타전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이었다.
당시 1차전과 3차전의 주심을 맡았던 시마 히데노스케는 자신의 저서에서 올스타전을 커미셔너 제도와 ‘궤를 같이하는 연중 행사’라고 평가하며 그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는 미국의 메이저 리그 올스타전을 본떠 7월에 개최되었으며, 심판진 역시 당시 공식전의 3인제와 달리 6인제가 채택되는 등 초기부터 비중 있는 대회로 기획되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