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이집트 대통령 선거
1. 개요
2012년 이집트 대통령 선거는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으로 치러진 선거이다. 23명의 후보가 등록했으며,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무함마드 무르시와 아흐메드 샤피크가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결선 투표에서 무르시가 승리했지만, 선거 과정에서 부정 의혹과 샤피크 측의 이의 제기가 있었다. 선거 결과는 이집트 사회의 분열을 드러냈으며, 대통령의 권한 제한과 관련한 논쟁, 그리고 국제 사회의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 국가 | 이집트 |
|---|---|
| 선거 유형 | 대통령 선거 |
| 이전 선거 | 2005년 이집트 대통령 선거 |
| 이전 선거 연도 | 2005년 |
| 다음 선거 | 2014년 이집트 대통령 선거 |
| 다음 선거 연도 | 2014년 |
| 선거일 | 1차: 2012년 5월 23일~24일 결선: 2012년 6월 16일~17일 |
| 투표율 | 1차: 46.42% 결선: 51.85% |
| 후보 1 | 무함마드 무르시 |
|---|
| 정당 1 | 자유와 정의당 |
|---|---|
| 득표수 1 | 13,230,131 |
| 득표율 1 | 51.73% |
| 후보 2 | 아흐메드 샤피크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정당 2 | 무소속 |
|---|---|
| 득표수 2 | 12,347,380 |
| 득표율 2 | 48.27% |
| 직책 | 대통령 |
|---|---|
| 선거 전 대통령 | 무함마드 후세인 탄타위 |
| 선거 전 소속 | 이집트 군 최고 평의회 의장 |
| 선거 후 대통령 | 무함마드 무르시 |
| 선거 후 소속 | 자유와 정의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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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집트 혁명 -
무슬림 형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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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집트 혁명 -
타흐리르 광장
타흐리르 광장은 이집트 카이로 중심부에 위치하며, 과거 이스마일리아 광장으로 불렸으나 개명 후 이집트 현대사의 중심지이자 2011년 이집트 혁명의 상징적인 장소로서, 이집트 박물관, 아랍 연맹 본부 등 주요 시설이 주변에 있다. -
2012년 이집트 -
2012년 이집트 헌법
2012년 이집트 헌법은 대통령제 종식과 의회 권한 강화를 목표로 했으나, 군부 권한 부여, 인권 보호 미흡, 이슬람 율법 강조 등으로 논란이 되어 국민투표를 거쳐 통과되었지만 2014년 헌법으로 대체되었다. -
2012년 이집트 -
포트사이드 경기장 폭력 사태
포트사이드 경기장 폭력 사태는 2012년 2월 1일 이집트 포트사이드 스타디움에서 알 마스리와 알 아흘리 간의 축구 경기 후 알 마스리 팬들의 공격으로 74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 -
2012년 6월 -
2012년 프랑스 총선
2012년 프랑스 총선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당선 후 치러진 국민의회 의원 선거로,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들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승리했고, 여성 의원 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으나 투표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
2012년 6월 -
2012년 OFC 네이션스컵
2. 배경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의 영향으로, 2011년 이집트에서도 30년간 이어진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결국 무바라크 대통령은 2011년 1월 거센 반정부 시위 끝에 퇴진하였고, 권력은 잠정적으로 이집트군 최고 평의회(SCAF)에 이양되었다.
군 최고위원회는 민정 이양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으며, 그 일환으로 2011년 11월 28일부터 2012년 1월 3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인민 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이 선거에서는 이슬람교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들이 전체 508석 중 70% 이상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무슬림 형제단의 자유와 정의당이 235석으로 제1당이 되었고, 살라피주의 성향의 누르당이 121석을 얻어 제2당이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과 새로운 권력 구도 속에서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열리게 되었다.
3. 선거 규칙 및 절차
2012년 1월 30일, 대통령 선거 규칙이 발표되었다. 후보자는 이집트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집트인이어야 하며, 이중 국적을 가질 수 없고 외국인과 결혼한 적이 없어야 했다. 후보 지명을 받기 위해서는 30명의 국회의원 또는 30,000명의 유권자 지지가 필요했다.
최고 대통령 선거 위원회(SPEC)에 따르면 후보자 공식 등록 절차는 2012년 3월 10일에 시작되어 4월 8일 오후 2시에 마감되었다. 총 23명의 후보가 공식적으로 출마를 등록했다.
2012년 4월 14일, 최고 대통령 선거 위원회(SPEC)는 10명의 후보자(오마르 술레이만, 하이라트 엘-샤테르, 하젬 살라 아부 이스마일, 아이만 누르, 아흐마드 아와드 알-사이다, 모르타다 만수르, 이브라힘 엘-가리브, 맘두흐 쿠트브, 호삼 하이랏, 아슈라프 바로우마)의 자격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자격 박탈 사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해당 후보들에게는 48시간 내 이의 제기 기회가 주어졌다. 아부 이스마일, 엘-샤테르, 술레이만 측은 이의를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한편, 4월 23일 군 최고 위원회(SCAF)는 4월 12일 인민 의회에서 통과된 '정치 생활 부패 방지법'(일명 자격 박탈법)을 비준했다. 이 법은 2011년 2월 11일(호스니 무바라크 사임일) 이전 10년간 대통령, 부통령, 총리 또는 고위 NDP 관료로 재직한 인물은 향후 10년간 공직 출마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법으로 인해 아흐메드 샤피크(전 총리)와 오마르 술레이만(전 부통령)이 자격 박탈 대상이 되었으나, 암르 무사는 제외되었다.
그러나 4월 25일, 최고 대통령 선거 위원회(SPEC)는 아흐메드 샤피크가 제기한 이의를 받아들여 그의 대통령 출마 자격을 인정했다. 이와 함께 자격 박탈법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최종 후보 명단에는 총 13명의 후보가 남게 되었다.
2012년 5월 16일, 후보 중 한 명인 모하마드 파우지 이사는 암르 무사를 지지하며 경선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공식 사퇴 시한이 지나 그의 이름은 투표 용지에서 삭제되지 않았다.
1차 투표는 2012년 5월 23일부터 24일까지 12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상위 2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6월 16일부터 17일까지 결선 투표가 진행되었다.
4. 주요 후보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 첫 대선에는 23명이 후보로 등록했으나, 최고 대통령 선거 위원회(SPEC)의 심사를 거치며 오마르 술레이만, 하이라트 엘-샤테르 등 다수가 실격되고 아흐메드 샤피크 전 총리는 자격 논란 끝에 후보 자격을 유지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최종 13명이 경쟁하게 되었다. 이는 구체제 인사, 이슬람주의 세력, 자유주의 및 좌파 성향 등 혁명 이후 이집트의 다양한 정치 세력을 반영했다.
주요 후보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
* 아흐메드 샤피크: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마지막 총리이자 군 출신으로, 구체제 및 군부와의 연관성이 부각되었다. 결선 투표까지 진출하여 48.3%를 득표했다.
* 모하메드 모르시: 무슬림 형제단의 자유정의당 후보로, 실격된 하이랏 엘-샤테르의 대체 주자였다. 형제단의 조직력이 강점이었다.
* 함딘 사바히: 나세르주의를 표방하는 존엄당 창립자로, 좌파 및 세속주의 진영을 대표했다.
* 압델 모네임 아불 포투: 전 무슬림 형제단 개혁파 인사로, 독자 출마하여 온건 이슬람 및 청년층의 지지를 받았다. 살라피 정당 등 다양한 세력의 지지를 모으려 했다.
* 암르 무사: 아랍 연맹 사무총장 및 외무장관 출신의 원로 정치인으로, 높은 인지도와 외교 경험을 내세웠다.
* 칼레드 알리: 젊은 변호사이자 노동 운동가로, 반부패와 사회 정의를 강조하며 혁명 정신 계승을 주장했으나 인지도 부족 등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한편,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 원자력 기구(IAEA) 전 사무총장은 군부의 민정 이양 과정에 반발하며 2012년 1월 불출마를 선언했다.
4.1. 등록된 후보
총 23명의 후보가 공식적으로 선거 출마를 등록했다. 최고대통령선거위원회(SPEC)는 법적 요건을 충족하는 후보자 명단을 4월 26일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2년 4월 14일, 최고대통령선거위원회(SPEC)는 오마르 술레이만, 하이라트 엘-샤테르, 하젬 살라 아부 이스마일, 아이만 누르 등 10명의 후보 자격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자격 박탈 사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해당 후보들에게는 48시간 이내에 이의를 제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아부 이스마일, 엘-샤테르, 술레이만 측은 이의를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하젬 살라 아부 이스마일은 모친의 외국 국적 보유, 하이라트 엘-샤테르는 형기 종료 후 6년 미경과, 오마르 술레이만은 15개 주 서명 요건 미충족 등의 사유로 알려졌다.)
한편, 4월 23일 SCAF는 4월 12일 인민 의회에서 통과된 소위 '정치 활동 금지법'(자격 박탈법)을 비준했다. 이 법은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시절(2011년 2월 11일 이전 10년) 대통령, 부통령, 총리 또는 고위 NDP 관료를 지낸 인물의 공직 출마를 10년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아흐메드 샤피크와 부통령이었던 오마르 술레이만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었으나, 전 외무장관이었던 암르 무사는 해당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샤피크는 출마 자격이 박탈되었으나, 4월 25일 최고대통령선거위원회(SPEC)는 샤피크가 제기한 이의를 받아들여 그의 출마 자격을 회복시켰다. 동시에 해당 법률의 위헌 여부 판단을 이집트 최고헌법재판소에 요청했다. (이후 6월 13일, 최고헌법재판소는 해당 법률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13명의 후보가 명단에 남게 되었다. 다만, 5월 16일 모하마드 파우지 이사가 암르 무사를 지지하며 사퇴했으나, 공식 사퇴 시한이 지나 투표용지에는 이름이 그대로 남았다.
국제 원자력 기구(IAEA) 전 사무총장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역시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군 최고위원회의 과도 정부 운영 방식에 항의하며 2012년 1월 14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최종 등록된 주요 후보는 다음과 같다.
| 사진 | 후보 | 상세 정보 | 소속 정당 | 선거 기호 |
|---|---|---|---|---|
| 무함마드 무르시 | 자유정의당 후보. 하이라트 엘-샤테르 실격 후 대체 후보. 전 의원 (2000–2005). | 자유정의당 (무슬림 형제단) | 저울 | |
| 아흐메드 샤피크 | 전 공군 원수, 전 민간항공부 장관,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마지막 이집트의 총리. | 무소속 | 사다리 | |
| 함딘 사바히 | 존엄당 (이집트) 창립자. 나세르주의자, 좌파 성향. | 존엄당 (이집트) | 독수리 | |
| 압델 모네임 아불 포투 | 전 무슬림 형제단 간부, 아랍 의사 연합 사무총장. 온건 이슬람주의 성향. | 무소속 (살라피 알누르당, 온건 이슬람 알와사트당 등 지지) | 말 | |
| 암르 무사 | 전 아랍 연맹 사무총장, 전 외무장관. | 무소속 | 해 | |
| 칼레드 알리 | 변호사, 노동 운동가. 전 이집트 경제사회권리센터 대표. | 무소속 | 나무 | |
| 모하마드 살림 알 아와 | 전 국제 이슬람 학자 연합 사무총장, 이집트 문화 대화 협회 회장. | 무소속 | 우산 | |
| 히샴 바스타위시 | 이집트 판사, 이집트 대법원 부회장. | 타감무 | 시계 | |
| 아부 알-이즈 알-하리리 | 혁명은 계속된다 연합 소속 의원. | 사회주의인민동맹당 | 피라미드 |
4.2. 실격된 후보
2012년 4월 14일, 최고 대통령 선거 위원회(SPEC)는 총 23명의 등록 후보 중 10명의 자격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후보들에게는 48시간 이내에 이의를 제기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주요 후보들의 이의 신청은 모두 기각되었다.
주요 실격 후보와 사유는 다음과 같다.
| 이름 | 사진 | 정당 | 실격 사유 |
|---|---|---|---|
| 오마르 술레이만 | 무소속 |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하에서 부통령과 정보국장을 역임한 인물. 대선 출마에 필요한 최소 15개 주(州)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지지 서명을 확보해야 하는 규정을 충족하지 못함. | |
| 하젬 살라 아부 이스마일 | 무소속 | 살라피주의 성향의 극보수 변호사. 후보자 본인 및 부모는 이집트 단독 국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어머니가 외국(미국) 국적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되어 실격 처리됨. | |
| 하이랏 엘 샤테르 | 자유정의당 | 무슬림 형제단의 부 최고 지도자이자 사업가. 과거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시절의 유죄 판결로 복역했으며, 형기 종료 후 6년이 지나야 출마 자격이 주어진다는 규정을 충족하지 못함. 그의 실격으로 모하메드 모르시가 자유정의당의 대체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다. | |
| 아이만 누르 | 가드 엘 타우라 당 | 자유주의 성향의 엘 가드 당 창립자이자 2005년 이집트 대통령 선거 후보. 과거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시절 투옥 경력이 있었으나, 군 최고 위원회(SCAF)로부터 사면을 받아 정치 활동 금지에서 해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대통령 선거 위원회(SPEC)에 의해 최종적으로 실격 처리됨. |
이 외에도 아흐마드 아와드 알-사이다(이집트 국민당), 모르타다 만수르(이집트 국민당), 이브라힘 엘-가리브(무소속), 맘두흐 쿠트브(문명당), 호삼 하이랏(이집트 아랍 사회주의당), 아슈라프 바로우마(쿠이버당) 등이 같은 날 자격 박탈 결정을 받았다.
한편, 4월 23일 SCAF는 이른바 '정치 생활 부패 방지법'(자격 박탈법)을 비준했다. 이 법은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시절(2011년 2월 11일 이전 10년) 대통령, 부통령, 총리 또는 고위 NDP 관료를 지낸 인물의 공직 출마를 10년간 제한하는 내용으로, 당시 후보였던 아흐메드 샤피크 전 총리와 오마르 술레이만 전 부통령 등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 법은 술레이만의 실격 사유 중 하나로 작용했을 수 있으나, 샤피크의 경우 이 법을 근거로 잠시 실격되었다가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져 출마 자격을 유지했고, 이후 해당 법 조항은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4.3. 기타 후보
선거관리위원회(SPEC)의 최종 후보 명단 발표 후 남은 주요 후보 외 다른 후보들은 다음과 같다.
* 압둘라 알라샬: 전 외무부 차관보이자 퇴임한 대사이다. 진정당 후보로 출마했다.
* 마흐무드 후삼: 3만 명의 유권자 지지를 받은 무소속 후보이며, 시작당 대표이다.
* 후삼 카이랄라: 민주 평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 모하마드 파우지 이사: 민주세대당 후보였으나, 2012년 5월 16일 암르 무사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공식 후보 사퇴 시한이 지난 후였기 때문에 투표 용지에는 그의 이름이 그대로 남게 되었다.
5. 선거 운동 및 쟁점
이슬람 사상가인 무함마드 살림 알아와는 2011년 6월 14일에 출마를 선언했다. 알아와와 아불 푸투가 같은 이슬람주의 계열이라는 점에서, 언론에서는 두 후보 간 표 분산 가능성과 후보 단일화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나왔다. 아불 푸투 역시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6. 여론 조사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붕괴 이후 이집트에서 처음 실시된 여론 조사는 2011년 2월 15일부터 20일까지 유고브(YouGov)에 의해 실시되었다. 이집트인 1,871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거의 절반(49%)이 당시 아랍 연맹 사무총장이었던 아므르 무사를 차기 정부를 이끌 가장 유능한 인물로 꼽았다. 다른 잠재적 후보였던 아흐메드 제윌(13%)과 2005년 대선 경쟁자였던 아이만 누르(1%)는 무사에 비해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전 부통령 오마르 술레이만을 지지하는 응답은 9%였다. 한편, 응답자의 대다수(81%)는 군부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보장할 것이라고 신뢰했다.
2011년 4월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이집트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오차 범위 ±4%p)에서도 아므르 무사는 41%가 "매우 호의적"이라고 평가하며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다. 아이만 누르(32%)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25%)가 그 뒤를 이었다. 무슬림 형제단에 대해서는 약 75%가 호의적인 시각을 보였으나, 이들이 차기 정부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17%에 그쳤다. 2011년 시위 기간 중 실시된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무사는 26%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렸다.
다음은 1차 투표 전까지 실시된 주요 여론 조사 결과이다.
| 실시/발표 | 여론 조사 기관/의뢰인 | 표본 크기 | 아므르 무사 | 아부 이스마일 | 압델 모네임 아불 포투 | 오마르 술레이만 | 아흐메드 샤피크 | 함딘 사바히 (DP) | 모하메드 모르시 (FJP) | 살림 알 아와 | 하이랏 엘 샤테르 (FJP) | 아이만 누르 (가드) | 카말 간주리 |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CP) | 기타 | 미정 |
|---|---|---|---|---|---|---|---|---|---|---|---|---|---|---|---|---|
| 2011년 2월 | 유고브 | 1871 | 49% | – | – | 9% | – | 1% | – | – | – | 1% | – | 2% | 24% | 13% |
| 2011년 3월 9–20일 | IPI | 615 | 37% | – | – | 5% | – | – | – | – | – | 1% | – | 2% | 37% | 14% |
| 2011년 6월 | IPI | 800 | 32% | – | – | – | – | 3% | – | – | – | 3% | – | 2% | 42% | – |
| 2011년 6/7월 | 뉴스위크/ 데일리 비스트 | 1008 | 16% | – | 5% | 4% | 12% | 2% | – | 6% | – | 4% | – | 12% | 13% | 27% |
| " | (3자 경쟁) | " | 47% | – | 16% | – | – | – | – | – | – | – | – | 19% | – | 18% |
| 2011년 8월 | ACPSS | 2,400 | 44% | 5.2% | 2% | 9% | 12% | 5% | – | 5% | – | 6% | – | 4% | 7.8% | 45% |
| 2011년 10월 | ACPSS | 2,400 | 44.8% | 5.2% | 1.6% | 10.8% | 13.2% | 5.7% | – | 4.7% | – | 5.0% | – | 3.5% | 5.5% | ? |
| 2011년 11월 | ACPSS | 2,400 | 38.9% | 5.7% | 1.5% | 6.6% | 8.5% | 4.0% | – | 5.7% | – | 3.2% | – | 2.9% | 24.5% | ? |
| 2012년 3월 | 알 아람 | 1,200 | 31.5% | 22.7% | 8.3% | 9.3% | 10.2% | 5.0% | – | 4.0% | – | 1.0% | 3.0% | 1.0% | 4.0% | ? |
| 2012년 4월 | 알 아람 | 1,200 | 30.7% | 28.8% | 8.5% | 8.2% | 7.5% | 3.9% | – | 3.2% | 1.7% | 1.4% | 1.3% | – | 6.5% | ? |
| 2012년 4월 | 알 마스리 알욤 | 2,034 | 6.4% | 11.7% | 12.4% | 20.1% | 2.2% | 2.7% | – | 1% | 3.2% | – | – | – | 2.2% | 38.1% |
| 2012년 4월 | 알 아람 | 1,200 | 22.3% | 21.4% | 6.2% | 31.7% | 3.4% | 4.3% | – | 1.2% | 4.3% | 0.9% | – | – | 4.3% | – |
| 2012년 4월 | 알 아람 | 1,200 | 40.9% | – | 25.2% | – | 10.5% | 9.3% | 0.9% | 4.4% | – | – | – | – | ? | ? |
| 2012년 4월 | 알 마스리 알욤 | 2,129 | 12.5% | – | 15.5% | – | 6% | 5% | 1.5% | – | – | – | – | – | 5.1% | 54.4% |
| 2012년 4월 | 알 아람 | 1,200 | 41.1% | – | 27.3% | – | 11.9% | 7.4% | 3.6% | 5.7% | – | – | – | – | 3.0% | 12.3% |
| 2012년 4월 | 알 마스리 알 유움 | 2,100 | 14.1% | – | 18.5% | – | 5.3% | 5% | 3.6% | 1.4% | – | – | – | – | 2% | 50.1% |
| 2012년 4월–5월 | IDSC | 1,209 | 11% | – | 11% | – | 6% | – | 2% | – | – | – | – | – | 2% | 42% 1 |
| 2012년 4월–5월 | 알 아람 | 1,200 | 39% | – | 24% | – | 17.2% | 6.7% | 7% | 2.9% | – | – | – | – | 3.2% | – |
| 2012년 5월 | 쇼루크 | 1,014 | 16% | – | 20.8% | – | 15.2% | 5.7% | 5.2% | ? | – | – | – | – | 3.4% | 33.6% |
| 2012년 5월 | 알 마스리 알 욤 | 2,152 | 17% | – | 15.7% | – | 14.8% | 6% | 5.2% | ? | – | – | – | – | 3.7% | 37.6% |
| 2012년 5월 | IDSC | 2,264 | 7% | – | 9% | – | 8% | 2% | 4% | – | – | – | – | – | 2% 2 | 39% 3 |
| 2012년 5월 | 알 아람 | 1,200 | 40.8% | – | 17.8% | – | 19.9% | 7% | 9.4% | 2.7% | – | – | – | – | 2.5% | 15.3% |
| 2012년 5월 | 알 마스리 알욤 | ? | 16% | – | 12.5% | – | 16.3% | 7% | 8.8% | – | – | – | – | – | 2% | 37.4% |
| 2012년 5월 | IDSC | 1,390 | 11% | – | 9% | – | 12% | 5% | 6% | 1% | – | – | – | – | 2% | 37% 4 |
| 2012년 5월 | IDSC | 1,366 | 11% | – | 7% | – | 12% | 7% | 7% | ? | – | – | – | – | ? | 35% |
| 2012년 5월 | 알 아람 | 1,200 | 31.7% | – | 14.6% | – | 22.6% | 11.7% | 14.8% | 2.3% | – | – | – | – | 1.7%5 | ? |
| 2012년 5월 | 알 마스리 알 욤 | 2,287 | 14.6% | – | 12.4% | – | 19.3% | 9.5% | 9% | 1% | – | – | – | – | 1.2% | 33% |
| 2012년 5월 | 쇼루크 | 1,185 | 15.1% | – | 13.2% | – | 15.8% | 12.3% | 9.5% | 1.3% | – | – | – | – | 2.9% | 29.8% |
| 2012년 5월 | 메릴랜드 대학교 | 772 | 28% | – | 32% | – | 14% | 8% | 8% | ? | – | – | – | – | ? | ? |
참고:
1 추가적으로, 다른 7%는 투표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16%는 참여할지 결정하지 못했으며, 3%는 지명자를 밝히기를 거부했습니다.
2 칼레드 알리는 2%
3 추가적으로, 다른 8%는 투표하지 않을 것이고, 6%는 지명자를 공개하지 않았으며, 17%는 참여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4 추가적으로, 다른 6%는 투표하지 않을 것이고, 3%는 지명자를 공개하지 않았으며, 8%는 참여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5 해당 기사에는 "기타"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테이블에 포함되지 않은 알리와 하리리를 언급하며 각각 1.1%와 0.6%를 얻었습니다(따라서 총 1.7%).
단순 지지율 조사와 달리, 호감도 조사는 응답자가 각 후보를 개별적으로 평가하게 함으로써, 특정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수용도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이념적으로 유사한 후보 간 표 분산으로 인한 왜곡 없이 후보의 대중적 매력을 보여준다. 아래 표는 "다소 호감" 또는 "매우 호감"이라고 응답한 비율을 나타낸다.
7. 선거 결과
2011년 이집트 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치러졌다. 5월 23일과 5월 24일에 걸쳐 1차 투표가 실시되었으나,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상위 두 후보인 무슬림 형제단 산하 자유정의당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와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무소속 아흐메드 샤피크 후보가 결선에 진출했다. 1차 투표에서 무르시는 약 24.8%, 샤피크는 약 23.7%를 득표했다.
6월 16일과 6월 17일에 치러진 결선 투표 결과, 2012년 6월 24일 이집트 선거 관리 위원회는 무함마드 무르시가 13,230,131표(51.73%)를 얻어, 12,347,380표(48.27%)를 얻은 아흐메드 샤피크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무르시의 당선이 확정되자 이집트 증시는 9년 만에 최대 일일 상승폭인 7.6% 급등하며 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7.1. 1차 투표
2011년 이집트 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임한 후,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치러졌다. 1차 투표는 5월 23일과 5월 24일 양일간 실시되었다.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자유 투표로 여겨지는 이 선거에는 총 5천만 명 이상의 유권자가 참여했으며, 전국 1만 3천여 곳에 투표소가 설치되었다.
처음에는 23명의 후보가 공식적으로 출마 등록을 마쳤다. 그러나 2012년 4월 14일, 최고 대통령 선거 위원회(SPEC)는 10명의 후보 자격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자격이 박탈된 후보에는 무바라크 정권의 정보부 수장이었던 오마르 술레이만, 무슬림 형제단의 유력 후보였던 하이라트 엘-샤테르, 살라피스트 후보 하젬 살라 아부 이스마일, 2005년 대선에 출마했던 아이만 누르 등이 포함되었다. 자격 박탈 사유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후보들은 48시간 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이의 신청은 기각되었다.
한편, 4월 12일 의회에서 통과되고 4월 23일 SCAF가 비준한 '정치 생활 부패 방지법'(일명 자격 박탈법)은 무바라크 정권 시절 고위직을 지낸 인물들의 정치 참여를 10년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법은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아흐메드 샤피크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었고, 실제로 선관위는 이 법을 근거로 샤피크의 자격을 박탈했다. 그러나 샤피크는 이에 불복하여 이의를 제기했고, 4월 25일 선관위는 샤피크의 이의를 받아들여 그의 출마를 허용했다. 동시에 이 법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하도록 요청했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6월 13일 해당 법률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최종적으로 13명의 후보가 1차 투표에 나섰으나, 선거일이 임박한 5월 16일, 모하마드 파우지 이사 후보가 암르 무사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하지만 공식 사퇴 시한이 지나 그의 이름은 투표용지에서 삭제되지 않았다.
5월 28일 발표된 공식 결과에 따르면, 과반 득표자가 없어 결선 투표가 확정되었다. 무슬림 형제단의 자유정의당 후보인 무함마드 무르시가 5,764,952표(24.8%)를 얻어 1위를 차지했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아흐메드 샤피크 전 총리가 5,505,327표(23.7%)로 2위를 기록하여 결선에 진출했다. 그 뒤를 이어 나세르주의 성향의 함딘 사바히 후보가 4,820,273표(20.7%), 온건 이슬람 성향의 무소속 압델 모네임 아불 푸투 후보가 4,065,239표(17.5%), 무소속 암르 무사 전 아랍 연맹 사무총장이 2,588,850표(11.1%)를 얻었다. 1차 투표의 투표율은 46.2%로 집계되었다.
무바라크 정권의 총리를 지낸 샤피크가 결선에 진출하자,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등지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샤피크의 선거 사무실이 방화되는 사건도 발생했으며, 결선에 진출한 두 후보의 포스터가 찢기는 등 사회적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샤피크, 사바히, 아불 푸투, 무사 등 4명의 후보를 포함하여 총 7건의 선거 부정 이의가 제기되었으나, 선거관리위원회는 모두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기각했다.
7.2. 결선 투표
5월 23일부터 24일까지 치러진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가 없어, 상위 득표자인 무슬림 형제단 산하 자유정의당 후보 무함마드 무르시와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무소속 아흐메드 샤피크가 6월 16일과 6월 17일에 결선 투표를 치렀다.
결선 투표를 앞둔 6월 14일, 이집트 헌법재판소는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치러진 이집트 인민 의회 선거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결하며, 해당 선거로 선출된 의원 3분의 1의 자격을 무효화했다. 이에 이집트군 최고 평의회(SCAF)는 16일 의회 해산을 명령했다. 이는 총선에서 압승했던 이슬람계 정당들의 지지를 받는 무르시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결선 투표는 예정대로 6월 16일 오전 8시에 시작되어 17일까지 진행되었다. 일부 유권자들은 이슬람주의자인 무르시와 구체제 인사로 여겨지는 샤피크 사이의 선택에 불만을 품고 선거 보이콧이나 백지 투표를 촉구하기도 했다. 1차 투표에서 무르시의 득표율은 25%에 미치지 못했지만, 결선 투표에서는 샤피크에 반대하는 세속주의, 자유주의, 좌파 성향 유권자 일부가 무르시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투표 마감 다음 날인 6월 18일, 무르시 측은 자체 집계를 근거로 승리를 선언했으나, 샤피크 측은 이를 즉각 인정하지 않았다. 19일에는 샤피크 측도 자체적으로 승리를 주장했으며, 양측 모두 상대 진영의 부정행위를 주장하며 선거관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는 혼란이 빚어졌다. 이에 따라 당초 6월 21일로 예정되었던 공식 결과 발표는 이의 제기 내용에 대한 정밀 조사를 이유로 연기되었다.
6월 24일, 이집트 선거관리위원회는 최종 개표 결과 무함마드 무르시가 13,230,131표(51.73%)를 얻어 12,347,380표(48.27%)를 득표한 아흐메드 샤피크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결선 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51.85%로 집계되었다. 샤피크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 이후 결과를 수용하고 패배를 인정했다. 무르시의 당선이 확정되자 이집트 증시는 7.6% 급등하며 9년 만에 최대 일일 상승폭을 기록하는 등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주별 결선 투표 결과
{| class="wikitable sortable"
! 주(Governorate) !! 유효 투표수 !! 무효 투표수 !! 투표율 % !! 무르시 득표수 !! % !! 샤피크 득표수 !! %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아스완 || 317,424 || 7,776 || 37.9 || 164,826 || 51.9 || 152,598 || 48.1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아시우트 || 901,539 || 26,837 || 44.6 || 554,519 || 61.5 || 347,020 || 38.5
|- style="background:#B0C4DE"
| align=left | 룩소르 || 264,353 || 6,781 || 40.3 || 124,120 || 47.0 || 140,233 || 53.0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알렉산드리아 || 1,687,148 || 76,274 || 53.7 || 970,131 || 57.5 || 717,017 || 42.5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이스마일리아 || 376,576 || 11,642 || 55.5 || 204,307 || 54.3 || 172,269 || 45.7
|- style="background:#B0C4DE"
| align=left | 홍해 || 94,791 || 2,687 || 43.5 || 46,803 || 49.4 || 47,988 || 50.6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부하이르 || 1,548,271 || 45,043 || 49.4 || 907,377 || 58.6 || 640,894 || 41.4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베니수에프 || 770,342 || 24,261 || 55.9 || 512,079 || 66.5 || 258,263 || 33.5
|- style="background:#B0C4DE"
| align=left | 포트사이드 || 239,890 || 13,577 || 58.1 || 109,768 || 45.8 || 130,122 || 54.2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기자 || 2,263,425 || 82,263 || 54.8 || 1,351,526 || 59.7 || 911,899 || 40.3
|- style="background:#B0C4DE"
| align=left | 남시나이 || 24,742 || 733 || 40.8 || 12,286 || 49.7 || 12,456 || 50.3
|- style="background:#B0C4DE"
| align=left | 다칼리야 || 1,904,744 || 51,243 || 53.3 || 845,390 || 44.4 || 1,059,354 || 55.6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담미에타 || 461,403 || 14,569 || 55.9 || 258,475 || 56.0 || 202,928 || 44.0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수에즈 || 205,963 || 7,550 || 56.0 || 129,229 || 62.7 || 76,734 || 37.3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소하그 || 912,853 || 26,103 || 40.1 || 531,636 || 58.2 || 381,217 || 41.8
|- style="background:#B0C4DE"
| align=left | 샤르키아 || 1,928,216 || 50,070 || 56.6 || 881,581 || 45.7 || 1,046,635 || 54.3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북시나이 || 94,964 || 2,401 || 46.9 || 58,415 || 61.5 || 36,549 || 38.5
|- style="background:#B0C4DE"
| align=left | 가르비아 || 1,575,883 || 45,103 || 55.8 || 583,748 || 37.0 || 992,135 || 63.0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파이윰 || 761,330 || 23,091 || 50.6 || 591,995 || 77.8 || 169,335 || 22.2
|- style="background:#B0C4DE"
| align=left | 카이로 || 3,399,110 || 158,687 || 54.8 || 1,505,103 || 44.3 || 1,894,007 || 55.7
|- style="background:#B0C4DE"
| align=left | 칼리우비아 || 1,460,537 || 42,562 || 57.9 || 609,253 || 41.7 || 851,284 || 58.3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케나 || 514,089 || 15,179 || 33.1 || 285,894 || 55.6 || 228,195 || 44.4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카프르엘셰이크 || 768,005 || 23,223 || 42.6 || 425,514 || 55.4 || 342,491 || 44.6
|- style="background:#B0C4DE"
| align=left | 문피야 || 1,323,265 || 33,949 || 61.5 || 376,677 || 28.5 || 946,588 || 71.5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미니아 || 1,332,677 || 43,607 || 51.8 || 858,557 || 64.4 || 474,120 || 35.6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마르사 마트루 || 81,242 || 1,629 || 40.6 || 65,095 || 80.1 || 16,147 || 19.9
|- style="background:#E9967A"
| align=left | 신계곡 || 63,009 || 1,320 || 45.4 || 39
7.3. 결과 분석
1차 투표에서는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가 없어 무슬림 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24.8%)와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무소속 아흐메드 샤피크(23.7%)가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1차 투표에서 무르시와 또 다른 이슬람주의 성향 후보인 압델 모네임 아불 푸투(17.5%)의 득표율 합계는 42%를 넘어, 이는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 이집트 사회에 강하게 나타난 이슬람주의적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반면, 세속주의 및 중도 성향 후보였던 함딘 사바히(20.7%), 암르 무사(11.1%) 등은 표가 분산되어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였던 암르 무사는 결선 투표제 방식과 중도/비이슬람주의 후보 간의 표 분산으로 인해 5위에 그쳤다.
결선 투표는 이슬람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무르시와 구체제 인사로 여겨지는 샤피크 간의 양자 대결 구도로 치러졌다. 이는 유권자들에게 양극화된 선택지를 제시했으며, 일부에서는 선거 보이콧이나 백지 투표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샤피크의 결선 진출에 반발하는 시위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등지에서 열렸고, 그의 선거 사무실이 방화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
최종 개표 결과, 무르시가 13,230,131표(51.7%)를 얻어 12,347,380표(48.3%)를 얻은 샤피크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차 투표에서 25%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무르시의 승리는 결선에서 세속주의, 자유주의, 좌파 성향 유권자들이 구체제 복귀를 우려하여 '반(反) 샤피크' 기치 아래 결집한 결과로 분석된다. 샤피크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를 수용하고 패배를 인정했다.
선거 결과는 혁명 이후 이집트 사회의 깊은 균열을 드러냈다. 이슬람주의 세력의 집권이라는 변화와 함께, 구체제 세력 및 세속주의 진영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이집트 정치의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무르시의 당선이 확정되자 이집트 주식 시장은 7.6% 급등하며 9년 만에 최대 일일 상승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8. 선거 부정 의혹 및 논란
내무부가 샤피크를 지지하도록 이집트 군인들에게 90만 개 이상의 신분증을 배포하여 1차 투표에서 투표하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이는 주요 선거 위반 행위가 될 수 있다. 하마딘 사바히는 조사가 진행될 때까지 이집트 선거를 일시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정부는 이 요청을 거부했다.
2013년 8월, 전 이스라엘 협상가 요시 베일린은 한 이집트 관리가 실제 결과는 샤피크의 승리였지만, 군부가 불안을 우려하여 대통령직을 무함마드 무르시에게 넘겼다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9. 대통령 권한 논쟁
무르시가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 확실해지자, 최고 군사 위원회(SCAF)는 새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2011년 3월 30일 이집트 헌법 선언에 다음과 같은 변경 사항을 적용했다.
* 제30조: 의회가 해산된 경우, 대통령은 고등 헌법 재판소의 총회 앞에서 취임한다.
* 제53조: 현직 SCAF 위원들은 군 지도자 임명 및 임기 연장을 포함하여 군 관련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을 책임진다. 현 SCAF 수장은 새로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군 최고 사령관이자 국방부 장관 역할을 한다. 이는 사실상 군 통수권을 SCAF가 계속 보유함을 의미했다.
* 제53/1조: 대통령은 SCAF의 승인을 받은 후에만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
* 제53/2조: 국가가 내부 불안으로 무력 개입이 필요할 경우, 대통령은 SCAF의 승인을 받아 군대를 치안 유지 및 공공 재산 보호에 투입할 수 있다. 현행 이집트 법은 군대가 무력을 사용하고, 체포하거나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을 규정한다.
* 제56조 B: SCAF는 새로운 의회가 선출될 때까지 2011년 3월 30일 헌법 선언 제56조 1항에 규정된 권한(입법권 등)을 갖는다.
* 제60조 B: 제헌 의회가 헌법 제정 업무를 완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경우, SCAF는 일주일 이내에 새로운 제헌 의회를 구성하여 3개월 내에 새 헌법을 만들도록 한다. 새로 만들어진 헌법은 완성된 날로부터 15일 후에 국민 투표를 통해 국민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의회 선거는 새로운 헌법이 국민 투표에서 승인된 날로부터 한 달 후에 실시된다.
* 제60조 B1: 대통령, SCAF 수장, 총리, 사법 최고 위원회 또는 제헌 의회 의원 5분의 1이 새로운 헌법 조항이 혁명의 목표나 주요 원칙, 또는 이집트의 이전 헌법들에서 합의된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하는 경우, 해당 기구는 제헌 의회에 15일 이내에 특정 조항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 제헌 의회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조항의 수정을 거부할 경우, 해당 조항은 고등 헌법 재판소(HCC)에 회부되며, HCC는 7일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 HCC의 결정은 최종적이며, 발표일로부터 3일 이내에 관보에 게재된다.
* 제38조는 "의회 선거는 법에 따라 실시될 것이다."로 대체된다.
10. 국제 사회의 반응
* 일본 - 겐바 고이치로 외무대신은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비교적 순조롭게 실시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이집트의 개혁 노력을 계속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미국 -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번 선거를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하고, 새롭게 구성될 정부와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표명했다。
11. 영향 및 평가
2011년 이집트 혁명으로 30년간 집권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하면서, 이집트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열리게 되었다. 이는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의 영향 아래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적 열망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집트군 최고 평의회의 잠정 통치 하에 민정 이양 준비가 진행되었고,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치러진 인민 의회 선거에서는 이슬람교 계열 정당들이 전체 의석의 약 70%를 차지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특히 무슬림 형제단이 주축이 된 자유와 정의당이 제1당, 살라피 성향의 누르당이 제2당이 되었다.
이러한 정치 지형 속에서 2012년 5월 23일과 24일에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실시되었다. 12명의 후보가 경쟁했으나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6월 16일과 17일에 결선 투표가 진행되었다. 선거는 이슬람주의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 간의 대결 구도로 전개되었다.
결선 투표에서는 무슬림 형제단 소속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와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아흐메드 샤피크 후보가 맞붙었다. 접전 끝에 무르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수십 년간 정치적으로 억압받아 온 이슬람주의 세력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