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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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53년은 연호, 기년, 사건, 문화, 탄생, 사망 등 다양한 내용이 기록된 해이다. 동진 영화 9년, 전량 건흥 41년, 전연 원새 2년, 전진 황시 3년, 대 건국 16년 등으로 연호가 사용되었고, 왕희지가 란정서를 썼으며, 몬스 셀레우쿠스 전투에서 콘스탄티우스 2세가 마그넨티우스를 격파했다. 또한, 성 파울리누스와 성 비질리우스가 태어났고, 마그넨티우스 등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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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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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 기원전 4세기 - 기원전 3세기 - 기원전 2세기 - 기원전 1세기 - 1세기 - 2세기 - 3세기 |
년대 | 320년대 - 330년대 - 340년대 - 350년대 - 360년대 - 370년대 - 380년대 |
세기 | 3세기 - 4세기 - 5세기 |
연도별 | |
353년 | 탄생 사망 |
종류별 | 나라별 목록 지도자 목록 |
2. 연호
3. 기년
4. 사건
왕희지가 난정서를 지었다. 몬스 셀레우쿠스 전투에서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가 마그넨티우스를 패퇴시키고 로마 제국을 재통일하였다. 콘스탄티우스 2세는 반대파 색출을 위해 파울루스 카테나를 브리타니아로 파견하였고, 브리타니아 총독 플라비우스 마르티누스는 이에 반발하여 자살하였다. 또한 콘스탄티우스 2세는 아를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여 아타나시우스를 단죄하였다. 4월 22일(영화 9년 3월 3일) 왕희지는 난정서를 썼다.
4. 1. 로마 제국
- 몬스 셀레우쿠스 전투에서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가 갈리아에서 포로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살한 찬탈자 마그넨티우스를 패퇴시켰다. 이로써 콘스탄티우스 2세는 유일한 황제가 되어 로마 제국을 재통일했다.[1]
- 콘스탄티우스 2세는 마그넨티우스를 지지하는 반대파를 색출하기 위해 자신의 관리 파울루스 카테나를 브리타니아로 파견했다. 브리타니아의 총독이자 콘스탄티우스를 지지했던 플라비우스 마르티누스는 이러한 박해에 반대했으나, 카테나에 의해 반역자로 고발당했다. 이에 마르티누스는 칼로 카테나를 살해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자살했다.
- 콘스탄티우스 2세는 아를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여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아타나시우스를 단죄했다.
4. 2. 동아시아
황기 | 닌토쿠 천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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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년 | 41년 |
- 중국
- 조선
- 왕희지는 초서체로 난정집서를 썼다. 이는 후대 서예가들의 모범이 된다.
5. 문화
6. 탄생
7. 사망
- 8월 11일 - 마그넨티우스, 로마의 용립자 (303년생)[1]
- 8월 18일 - 마그누스 데켄티우스, 마그넨티우스의 동생이자 카이사르
- 플라비우스 마르티누스, 로마 브리타니아의 총독
- 장충화, 전량의 통치자 (327년생)
- 장요령, 오호십육국 시대 전량 제6대 군주 (343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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