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941 존슨 경기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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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1941 존슨 경기관총은 미국 해병대 예비군 대위 멜빈 존슨 주니어가 M1 개런드 소총보다 우수한 반자동 소총을 목표로 설계한 기관총이다. 1937년 개발된 이 총은 회전 노리쇠 방식과 20발 들이 탄창을 사용하며, 나무 개머리판과 금속 양각대가 있는 M1941과 강철 튜브형 개머리판과 나무 단각대가 있는 M1944의 두 가지 버전이 존재했다. 미군에서는 브라우닝 M1918 자동소총과 동등한 "자동소총"으로 간주되었으며, 설계자 존슨은 "경기관총소총"이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M1941은 미 해병대 낙하산 부대와 특수 부대에서 사용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필리핀, 한국전쟁 등에서 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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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941 존슨 경기관총 | |
---|---|
기본 정보 | |
![]() | |
종류 | 경기관총 |
원산지 | 미국 |
설계 시기 | 1940년 |
생산 시기 | 1940년–1945년 |
사용 국가 | 사용자 참조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후크발라합 반란 쿠바 혁명 |
제원 | |
무게 | 5.9 kg |
부분 길이 | 560 mm |
전체 길이 | 1,100 mm |
사용하는 탄약 | .30-06 스프링필드 (7.62x63mm) |
급탄 방식 | 20발, 단열 착탈식 상자형 탄창 |
작동 방식 | 쇼트 리코일 |
발사 속도 | 분당 300–900발 (가변) |
총구 속도 | 850 m/s |
유효 사거리 | 550 m |
파생형 | |
파생형 | M1941 M1944 |
생산량 및 가격 | |
생산량 | 9,500정 |
단가 (1941년) | 265 USD (1941년 기준; ) |
2. 디자인
M1941 존슨 경기관총은 독특한 디자인 특징을 가진다. 총몸 왼쪽에 부착되는 20발들이 곡선형 단열 탄창이 대표적이며, 탄피 배출구를 통해 클립으로 장전하거나 약실에 직접 한 발씩 장전하는 것도 가능했다.[1] 발사 속도는 분당 200발에서 600발 사이로 조절할 수 있었다.[1] 초기 M1941 모델은 나무 개머리판과 금속 양각대를 사용했고, 이후 개량된 M1944 모델은 강철 튜브형 개머리판과 나무 단각대로 변경되었다.[1]
총의 설계는 반동 에너지가 총의 움직이는 부품들과 함께 사수의 어깨로 직선으로 전달되도록 하여 총구 들림을 최소화하도록 의도되었다. 이 직선형 설계로 인해 가늠자는 총열 위로 상대적으로 높게 배치되어야 했다.[1]
2. 1. 특징
보스턴의 변호사이자 해병대 예비군 대위였던 멜빈 존슨 주니어(Melvin Johnson Jr.)가 설계했다. 그의 목표는 당시 미국 육군 제식 소총이었던 M1 개런드 소총보다 뛰어난 반자동 소총을 만드는 것이었다. 1937년 말, 그는 반자동 소총과 함께 프로토타입 경기관총을 설계 및 제작하여 성공적으로 시험했다. 이 두 총기는 많은 부품을 공유했으며, 회전 노리쇠를 이용한 짧은 반동 방식으로 작동했다. M1941 존슨 경기관총은 이러한 설계를 기반으로 다른 총기의 부품을 일부 활용하여 완성되었다.총몸(수신기) 왼쪽에 부착되는 20발들이 곡선형 단열 탄창을 사용했으며, 탄피 배출구를 통해 클립으로 장전하거나 약실에 직접 한 발씩 장전하는 것도 가능했다. 발사 속도는 분당 200발에서 600발 사이로 조절할 수 있었다. 초기 모델인 M1941은 나무 개머리판과 금속 양각대를 갖추었고, 이후 개량된 M1944는 강철 튜브형 개머리판과 나무 단각대를 사용했다.
총의 설계는 반동 에너지가 총의 움직이는 부품들과 함께 사수의 어깨로 직선으로 전달되도록 의도되었다. 이는 총구 들림 현상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가늠쇠와 가늠자를 총열 위로 더 높게 배치해야 했다.
M1941 존슨 경기관총은 나치 독일의 FG 42 자동소총과 몇 가지 유사점을 보인다. 두 총기 모두 총몸 왼쪽에서 탄약을 공급받으며, 자동 사격 시에는 개방형 노리쇠 방식으로, 반자동 사격 시에는 폐쇄형 노리쇠 방식으로 작동한다. 또한, 측면에 부착된 탄창 때문에 장전된 상태로 휴대하기 다소 불편하다는 공통적인 단점이 있었다. 특히 존슨 경기관총의 길고 얇은 단열 탄창은 총의 무게 균형을 깨뜨리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두 총기가 서로의 설계에 영향을 주었다는 증거는 없다. 비슷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다 보니 유사한 해결책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은 공식적으로 '경기관총'(light machine gun)으로 분류되었지만, 무게가 비교적 가볍고 탄띠 급탄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군 내에서는 브라우닝 M1918 자동소총 (BAR)과 유사한 '자동소총'(automatic rifle)으로 취급되었다[12] . 설계자인 존슨 자신도 기관총보다는 자동소총, 혹은 '경기관총소총'(light machine rifle)이라는 용어를 선호했는데, 이는 필요시 소총처럼 견착 사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9] .
초기 모델에는 존슨 소총과 동일한 형태의 총검을 부착할 수 있는 착검 장치가 있었다[12] . 셀렉티브 파이어 기능을 갖추어 반자동 사격 시에는 폐쇄 노리쇠 상태에서, 완전 자동 사격 시에는 개방 노리쇠 상태에서 격발이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반자동에서 자동으로 사격 모드를 전환할 경우, 노리쇠를 수동으로 당겨야 했고 이 과정에서 약실에 있던 탄 한 발이 사용되지 않은 채 배출되는 불편함이 있었다. 총열 교환은 비교적 쉬워서, 설명서에 따르면 5~6초 만에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 총열과 개머리판이 일직선상에 있는 구조 때문에 조준기는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설치되었다. 양각대는 필요에 따라 탈착이 가능했으며[9] , 총열 교환 시에는 양각대를 분리해야 했다.
왼쪽 측면에 부착하는 20발들이 박스형 탄창은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탄약을 밀어 올리는 립(lip) 부분이 탄창 자체에는 없고 기관총 본체 내부에 설치되어 있으며, 탄창 멈치 레버와 맞물리는 스토퍼가 탄약을 고정하는 역할도 겸했다. 또한, 기관총 내부에는 존슨 소총과 같은 방식의 5발들이 회전식 탄창이 내장되어 있어, 외부 탄창을 교체하지 않고도 스트리퍼 클립을 이용해 추가로 장전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총 내부에 최대 25발의 탄약을 휴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열식(single-stack) 구조 때문에 탄창이 길고 부피가 컸으며, 파손되기 쉬운 단점이 있었다[9] .
내장형 회전식 탄창과 단열식 외부 탄창 설계는 존슨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초기 존슨 소총 시험 당시, 한 병사가 브라우닝 M1918 자동소총의 탄창을 거꾸로 장전하여 탄창 립을 파손시킨 일이 있었다. 존슨은 이를 M1 개런드의 성능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적인 '부정행위'라고 생각했고, 이후 유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총기의 탄창과 호환되지 않는 독자적인 회전식 탄창과 싱글 피드(단열식) 방식을 고안하게 되었다[10] .
존슨 경기관총을 기반으로 한 파생형 모델들도 개발되었다. 20발들이 탄창을 사용하는 반자동 소총인 M1947 존슨 자동 카빈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고, 탄띠 급탄 방식의 변형 모델도 존재했다.
2. 2. 유사 화기
이 무기는 독일의 FG 42 자동 소총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두 무기 모두 왼쪽에서 탄약을 공급받으며, 자동 사격 시에는 개방형 노리쇠 방식으로, 반자동 사격 시에는 폐쇄형 노리쇠 방식으로 작동한다. 또한, 양쪽 모두 측면에 장착된 탄창 때문에 장전된 상태로 휴대하기 불편했다. 특히 존슨 경기관총은 길쭉한 단열 탄창 때문에 무기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두 무기 중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없다. 두 무기는 비슷한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려 했고, 그 결과 유사한 해결책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존슨 경기관총을 기반으로 한 파생형들도 존재한다. 20발들이 탄창을 사용하는 반자동 소총 프로토타입인 M1947 존슨 자동 카빈이 제작되었으며, 탄띠 급탄 방식의 변형도 연구되었다.
명칭은 '경기관총'(light machine guneng)이지만, 비교적 가볍고 탄띠 급탄 기능이 없다는 점에서 미군 내에서는 브라우닝 M1918과 같은 '자동소총'(automatic rifleeng)으로 분류되었다[12]. 설계자인 멜빈 존슨 자신도 이 총을 기관총보다는 자동소총, 혹은 '경기관총소총'(light machine rifleeng)으로 부르기를 선호했는데, 이는 필요에 따라 소총처럼 어깨에 견착하고 사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9].
2. 3. 추가 개발
존슨 경기관총을 기반으로 한 20발들이 탄창식 반자동 소총의 프로토타입도 제작되었다. M1947 존슨 자동 카빈이 그 예이다. 벨트 급탄 방식의 변형도 존재했다.네덜란드령 동인도 육군(KNIL)은 소속 병사들의 체구가 미국인보다 작아 존슨 소총이 너무 길고 다루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더 짧고 사용하기 쉬운 소총으로 존슨 자동 카빈(Johnson Auto-Carbine)의 설계가 이루어졌다. 이 자동 카빈은 기본적으로 존슨 경기관총의 급탄 방식을 존슨 소총과 동일한 고정식 10발 회전식 탄창으로 개조하고, 소형 경량화를 위한 개량을 가한 것이다. 기관총용 22인치 총열을 그대로 장착하여 충분한 사격 정확도를 확보했다. 구조는 전반적으로 유사했지만, 많은 부품이 기관총이나 소총과 호환되지 않는 전용 설계였다. 무게는 약 3.97kg, 전장은 약 96.52cm였다. 시제품은 총 5정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두 세부 설계가 달랐다. 자동 카빈 설계 당시, 존슨은 경기관총과 자동 카빈만으로 부대를 무장시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16]
당시 미국 해병대와 존슨사 간의 연락 역할을 맡았던 해병대 중위 해리 L. 토거슨(Harry L. Torgerson)은 존슨이 설계한 자동 화기들을 높게 평가했다. 토거슨은 1941년 9월 해병대 장비 위원회의 요청으로 낙하산 강하와 존슨 경기관총 사격을 시연했으며, 이 검토를 거쳐 창설된 공수 해병대에도 참여했다. 클래스턴 공장을 방문했을 때 자동 카빈을 직접 사격해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원래 시제품 반출은 금지되었으나, 존슨은 토거슨에게 시제품 인도를 허가했다. 부건빌 섬 등에서 자동 카빈을 든 토거슨의 사진이 여러 장 남아 있으며, 사진 속 총기의 세부적인 차이로 보아 최소 2정이 토거슨에게 인도된 것으로 추정된다. 토거슨은 퇴역 후에도 제조 번호 S-5의 시제품을 소유했으며, 이 총은 자동 카빈의 유일한 현존품이다.[16]

1946년 후반, 아르헨티나의 요청에 따라 M1947 카빈으로 알려진 총이 1정 시제 제작되었으나, 정보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전의 자동 카빈과는 다르지만, 설계에는 경기관총과 공통된 부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르헨티나는 구매를 보류했고, M1947의 추가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49년, 존슨사는 파산했다.[16]
멜빈 존슨은 소형 화기 개발을 계속했다. 1955년, 그는 페어차일드/아마라이트로부터 유진 스토너의 AR-10 소총을 미 국방부에 홍보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실패했다. 이후 아마라이트와 콜트 제조 회사에서 AR-15의 옹호자로 활동했다. 아마라이트는 존슨의 노력에 크게 의존했으며, AR-15는 M1941 존슨과 유사한 노리쇠 설계를 사용했다. 존슨의 마지막 전후 화기 사업 중 하나는 M1 카빈의 5.7mm 구경 버전, 일명 '스핏파이어'였다.[4]
액체 추진제를 사용하는 무탄피 화기 프로토타입도 개발되었다. 이 화기는 기존 추진제와 거의 동등한 성능을 내면서도 보급을 개선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였다. 그러나 현장 조건에서의 압력 밀봉 내구성과 사용자에게 미치는 물질의 독성 문제가 주요 과제로 남았다.[5]
3. 개발 배경 및 역사
M1941 존슨 경기관총은 보스턴의 변호사이자 해병대 예비군 대위였던 멜빈 존슨 주니어(Melvin Johnson Jr.)가 설계했다. 그의 목표는 미국 육군이 채택한 M1 개런드보다 성능이 뛰어난 반자동 소총을 만드는 것이었다. 1935년 스크랩 부품을 사용하여 첫 시제품을 완성했고, 1937년 말까지 반자동 소총과 프로토타입 경기관총을 설계, 제작하여 성공적으로 시험했다[11] . 각 무기는 상당수의 물리적 특징과 공통 부품을 공유했으며, 둘 다 회전 노리쇠 방식의 짧은 반동 원리로 작동했다. 그는 다른 총의 부품을 교체하여 M1941 경기관총을 만들었다.
존슨은 당시 유력한 차기 소총 후보였던 존 개런드의 M1 개런드와 존 피더슨의 피더슨 자동소총 모두 결함이 있으며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신뢰성과 사격 정확도가 더 우수하고 양산에도 적합한 소총 설계를 시작했으며, 1937년 9월 28일 관련 첫 특허를 취득했다[11] . 존슨은 자신이 설계한 소총을 채용하도록 군부에 촉구했고 몇몇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이미 육군이 개런드 소총 채용을 결정하고 양산 체제를 갖춘 상태였기 때문에 병참상의 이유로 1941년 초 자신의 설계안을 철회했다[11] .
소총과 더불어 설계된 경기관총은 소총과 동일한 작동 방식을 채택하고 부품도 대부분 공통이어서 동일한 설비로 쉽게 제조할 수 있었다. 무게는 12파운드를 약간 넘는 정도로 브라우닝 M1918 자동소총(BAR)보다 가벼웠다. 또한, 교체가 용이한 총신(매뉴얼상 5-6초 소요)은 M1918과 비교했을 때 큰 장점이었다[12] [9] . 존슨은 M1918A2의 단점으로 21파운드의 무게, 가스 작동 방식 구조상 화약 그을음 축적, 총신 교체 시간 소요, 잦은 정비 필요성을 지적했다[10] .
M1941 존슨 경기관총은 곡선형 단열 20발들이 탄창을 수신기 왼쪽에 부착했다. 탄피 배출구에서 클립을 사용하거나 약실에 단발로 장전할 수도 있었다. 발사 속도는 분당 200~600발로 조절 가능했다. 초기 모델에는 존슨 소총과 동일한 형태의 총검을 장착하기 위한 착검 러그가 있었다[12] . 선택 사격 기능을 갖춰 반자동 사격 시에는 폐쇄 노리쇠, 연사 사격 시에는 개방 노리쇠 상태에서 발사되었다. 반자동에서 연사로 전환 시 노리쇠를 수동으로 후퇴시켜야 했고, 이때 약실의 탄약 한 발이 배출되었다. 총신 교환은 용이했으며, 직총신 설계로 인해 조준기 위치는 비교적 높았다. 양각대는 탈착이 가능했고, 총신 교환 시에는 떼어내야 했다[9] .
왼쪽 측면에서 장전하는 20발들이 박스형 탄창은 독특하게 설계되었다. 탄창 립이 기관부 쪽에 조립되어 있었고, 탄창 해제 레버와 맞물리는 스토퍼가 탄약을 고정했다. 기관부에는 존슨 소총과 동일 방식의 5발들이 회전식 탄창이 내장되어 있어, 탄창 교체 없이 클립으로 추가 장전(총 25발 저장 가능)도 가능했다. 단열식이라 길고 부피가 컸으며 파손되기 쉬웠다[9] . 이 회전식 탄창과 싱글 피드 방식은 초기 존슨 소총 시험 당시 병사가 탄약을 거꾸로 장전하여 피드 립을 파손시킨 사건 이후, 존슨이 M1 개런드의 성적을 높이기 위한 "부정 행위"를 방지하고자 고안한 것이었다[10] .
이 총은 "경기관총"으로 불렸지만, 비교적 가볍고 탄띠 급탄 기능이 없어 미군에서는 브라우닝 M1918과 동등한 "자동소총"으로 간주되었다[12] . 설계자 존슨 자신도 기관총이 아닌 자동소총, 혹은 필요시 소총처럼 사격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경기관총소총"(light machine rifle)이라는 표현을 선호했다[9] .
이 무기는 독일의 FG 42 자동 소총과 여러 유사점을 가졌다. 둘 다 왼쪽에서 탄약을 공급받고, 자동 모드에서는 개방형 노리쇠, 반자동 모드에서는 폐쇄형 노리쇠로 발사된다. 측면에 장착된 탄창 때문에 장전된 상태로 휴대하기 불편했으며, 특히 존슨의 긴 단열 탄창은 무기의 균형을 깨뜨리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두 무기 중 어느 쪽도 다른 쪽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없으며, 유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사한 해결책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존슨 경기관총은 소총과 마찬가지로 미군 정식 채용이 보류되었다. 유럽 각국을 돌며 영업 활동을 했으나 발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존슨은 총기 개량을 위해 존슨 오토매틱스사(Johnson Automatics, Inc.)를 설립하고, 개량된 소총 및 경기관총에 M1941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12] .
M1941 경기관총에 관심을 보인 것은 네덜란드 구매 위원회(Netherlands Purchasing Commission, NPC)였다. 네덜란드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육군의 장비 현대화를 위해 존슨 경기관총 및 존슨 소총을 구매했다. 존슨 사는 제조 설비가 없어 크랜스턴의 섬유 공장을 인수하여 제조사 크랜스턴 암즈사(Cranston Arms Company)를 설립하고 생산을 담당했다[12] . 그러나 직후 시작된 일본군의 침공(란인 작전)으로 인해 현지에 도착한 존슨 경기관총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후 M1944로 알려진 개량형이 발표되었다. 기관부를 재설계하고, 개머리판은 금속 파이프, 손잡이는 플라스틱으로 변경하여 목제 부품을 제거했다. 착탈식 양각대 대신 일체식 단각을 채택했는데, 이는 접으면 앞손잡이로 사용할 수 있었다. 개머리판 완충 스프링 교체로 사격 속도를 분당 350발에서 750발까지 변경할 수 있었고, 기병 및 공수 부대원용 20인치 단총신도 설계되었다[9] .
1943년 12월, M1944 10정이 애버딘 시험장에서 심사를 받았고, 이후 콴티코 해병대 기지에서 열린 해병 장비 위원회 시험에서는 높이 평가되어 미국 해병대에서 M1918의 후속 장비로 추천되었다. 그러나 육군이 채용을 보류한 점 때문에 병참상의 문제를 우려하여 정식 채용에는 이르지 못했다[13] .
존슨은 개량을 계속하여 M1944E1(후에 M1945로 개칭)을 개발했다. 배럴 베어링에 가스 포트를 설치하여 총신 후퇴를 보조함으로써 이물질 혼입 시 작동 불량을 줄였다. 발사 속도는 분당 600-700발 정도로 증가했고, 볼트 폐쇄 시스템도 개량되었다. 1945년 2월 육군이 시제품 10정을 구매하여 시험했으나, 지나치게 높은 발사 속도로 인한 부품 파손이 잦아 시험이 중단되었다. 일본의 항복으로 프로젝트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1945년 10월에 종료되었다[13] .
M1945 시험 무렵, 육군 병기성은 M1918과 M1919A6의 역할을 통합할 화기를 모색했다. 요구 조건은 교체 용이한 총신, 탄띠 급탄, 접이식 양각대, 직총신, 선택 사격 기능(반자동-폐쇄 볼트, 자동-오픈 볼트)이었다. M1945는 이 요구에 근접하여, 1946년 8월 탄띠 급탄이 가능한 시제품 2정이 T40으로 육군에 인도되었다. 이후 개발된 T48과 T53은 신형 T65탄(7.62x51mm NATO탄의 전신) 사양으로, 급탄 기구 교체로 20발 탄창과 탄띠 모두 사용 가능했다. 그러나 종전으로 인한 소화기 개발 중요성 감소와 존슨 사의 재정 문제로 1948년 초 관련 프로젝트는 모두 포기되었다[14] .
1950년대에는 이스라엘에서 M1944를 원형으로 한 드로르 경기관총이 개발되었다[9] .
존슨 경기관총을 기반으로 한 파생형 소총도 개발되었다. 란인 육군 병사들의 작은 체구를 고려하여 더 짧고 다루기 쉬운 존슨 자동 카빈이 설계되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존슨 경기관총의 급탄 방식을 소총과 동일한 고정식 10발 회전식 탄창으로 바꾸고 소형 경량화한 것이다. 기관총용 22인치 총신을 사용하여 사격 정확도는 충분했다. 무게는 약 3.97kg, 전장은 38inch였다. 5정의 시제 총이 제작되었으며, 세부 설계는 각기 달랐다[16] . 당시 해병대 연락 장교였던 해리 L. 토거슨 중위는 이 자동 카빈을 높이 평가하여 존슨에게서 시제 총(최소 2정)을 받아 부건빌 섬 등에서 사용했으며, 퇴역 후에도 S-5번 시제 총을 소유했다. 이 S-5번은 현존하는 유일한 자동 카빈이다[16] .
1946년 후반에는 아르헨티나의 요청으로 M1947 카빈 1정이 시제 제작되었으나, 아르헨티나가 구매하지 않아 추가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16] . 존슨 오토매틱스사는 1949년에 파산했다[16] .
4. 운용
존슨은 미 육군과 해병대에 소량의 존슨 경기관총을 판매했다.[3]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국 특수 부대는 BAR보다 휴대하기 쉽고 가벼우면서도 동등한 제지력을 가진 자동 소총을 필요로 했다. 이에 따라 존슨 경기관총은 추축국 점령 지역에서 활동하는 특공대를 위한 BAR 대체품으로 일부 채택되었다. 특히 캐나다와 미국 병사들로 구성된 제1특수임무부대 (악마의 여단)는 해병대로부터 존슨 경기관총 125정을 플라스틱 폭탄과 교환하여 넘겨받았다. 이 총들은 BAR 대신 사용되었으나, 전투 중 마모되거나 분실되면서 점차 BAR로 다시 대체되었다.[15]
미국 해병대는 1941년 편성된 낙하산 부대(파라마린)의 장비로 존슨 경기관총에 주목했다. 가볍고 화력이 뛰어나며 총열과 개머리판 분리가 쉬워 공수 작전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후 파라마린과 특수 부대인 해병대 레이더스에서 일부 운용되었다.[15]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OSS 역시 분해하여 숨기기 쉽다는 장점 때문에 존슨 경기관총과 존슨 소총을 소수 사용했다.[9]
필리핀에서는 필리핀 육군과 필리핀 경찰이 1942년부터 1960년대까지 존슨 경기관총을 사용했다. 이는 일본 군정 시대(1942-1945)와 전후 후크발라합 반란(1946-1954) 진압 과정에서 활용되었다.[3] 또한 한국 전쟁에 파병된 필리핀 부대(PEFTOK)도 1950년부터 1955년까지 이 총기를 운용했다.[3]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직후, 이스라엘 방위군의 전신인 하가나는 존슨 경기관총을 거의 그대로 복제하여 .303 브리티시 탄과 7.92×57mm 마우저 탄을 사용하는 드로르 경기관총을 개발했다. 그러나 드로르 경기관총은 모래와 먼지에 취약하여 작동 불량이 잦았고, 결국 짧은 기간 운용된 후 퇴역했다.[9]
쿠바 혁명 당시 체 게바라를 비롯한 피델 카스트로의 게릴라 부대가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에 맞서 싸울 때 존슨 경기관총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8][9] 흥미롭게도 카스트로가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그에 반대하는 반공 쿠바인 부대가 존슨 경기관총을 사용하여 저항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9]
실전에서 존슨 경기관총은 높은 명중률과 교체가 용이한 총열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글 환경에서는 높이 솟은 조준기와 총몸 측면에 달린 탄창이 수풀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고, 탄창을 휴대할 적절한 파우치가 충분히 보급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12]
다음은 존슨 경기관총을 운용한 주요 국가 및 단체 목록이다.
국가/단체 | 비고 |
---|---|
캐나다 | 특별 작전 부대 소속 군인 사용[6] |
말레이시아 | 이전 말레이시아 왕립 경찰 사용, 현재 말레이시아 왕립 경찰 박물관 전시[7] |
필리핀 | 필리핀 육군, 필리핀 경찰, PEFTOK 등 |
영국 | |
미국 | 미국 육군, 미국 해병대 (파라마린, 해병대 레이더스), OSS, 제1특수임무부대 |
7·26 운동 | 쿠바 혁명 당시 사용[8] |
5. 평가
설계자 멜빈 존슨은 당시 미군의 차기 주력 소총 후보였던 M1 개런드나 피더슨 자동소총에 대해 결함이 있고 대량 생산에 부적합하다는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11] 그는 더 신뢰성 높고 정확하며 양산하기 좋은 총기를 목표로 존슨 소총과 경기관총을 개발했다. 존슨 경기관총은 소총과 동일한 작동 방식과 부품을 공유하여 생산이 용이했고, 무게는 약 5.44kg를 약간 넘어 M1918 자동소총보다 가벼웠다. 특히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총열은 M1918에 비해 큰 장점으로 평가되었다.[12] 존슨은 M1918A2의 무거운 무게(약 9.53kg), 가스 작동 방식으로 인한 그을음 축적 문제, 총열 교체의 어려움, 잦은 정비 필요성을 주요 단점으로 지적했다.[10]
하지만 미국 육군은 이미 M1 개런드 소총 채용을 결정하고 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부품 조달 등 병참 문제를 이유로 존슨 경기관총의 정식 채용을 보류했다.[11][12] 반면, 미국 해병대는 존슨 경기관총에 주목했다. 특히 1941년 창설된 낙하산 부대(파라마린)는 가볍고 화력이 뛰어나며 총열과 개머리판 분해가 쉬운 존슨 경기관총을 높이 평가하여 장비로 채택했다. 해병대의 특수 부대인 해병대 레이더스와 미-캐나다 연합 특수 부대인 악마의 여단 역시 비슷한 이유로 존슨 경기관총을 일부 도입했다.[15] 전략 정보국(OSS)에서도 분해하여 숨기기 쉽다는 장점 때문에 소수를 운용했다.[9]
1943년 관티코 해병대 기지에서 열린 해병 장비 위원회 시험에서는 존슨 경기관총(개량형 M1944)이 높은 평가를 받아 M1918의 후속 장비로 추천되기도 했다. 그러나 육군의 채용 보류 결정으로 인해 병참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해병대 역시 정식 채용에는 이르지 못했다.[13] 이후 M1944E1(M1945) 개량형에 대한 내구 시험이 진행되었으나, 지나치게 높은 발사 속도로 인한 부품 파손 문제가 발생하여 시험이 중단되기도 했다.[13]
실전에서는 높은 명중률과 교체하기 쉬운 총열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단점도 지적되었다. 특히 정글 환경에서는 높게 솟은 조준기와 총몸 왼쪽에 달린 탄창이 풀이나 나뭇가지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고, 탄창을 휴대할 적절한 파우치가 충분히 보급되지 않은 점도 문제였다.[1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쿠바 혁명 당시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게릴라 부대가 사용했으며, 이후에는 반대로 카스트로 정권에 대항하는 반공 쿠바인 부대가 사용하기도 했다.[9] 또한, 1950년대 이스라엘에서는 존슨 경기관총(M1944)을 기반으로 드로르 경기관총을 개발하기도 했다.[9]
참조
[1]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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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wood Publishing Group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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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orgotten[...]
2014-02-07
[3]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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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Cartridges of the World
DBI Books
[5]
웹사이트
PROPOSED LIQUID-PROPELLANT CALIBER .30 AUTOMATIC RIFLE UTILIZING PRELOADED, CASELESS, HYDRAZINE, MONOPROPELLANT BALLISTIC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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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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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D. Julia: Johnson LMG History & Disassemb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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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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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 Malaysia Police Museum – Small Arms Defense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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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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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arms News
2021-02-0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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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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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vin Johnson’s M1941 and M1944: America’s Best Light Machine Guns that the Army Failed to Adopt
https://smallarmsr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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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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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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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1
[13]
웹사이트
Johnson M1944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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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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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 MACHINE - U.S. MACHINE GUN JOHNSON MODEL 1941 .30 SN#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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