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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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거제 반씨는 주나라 문왕의 아들에서 기원하며, 남송에서 고려로 귀화한 반부를 시조로 한다. 반부는 고려 원종과 충렬왕 때 정당문학을 지냈으며, 김방경을 따라 일본 정벌에 공을 세웠다. 주요 인물로는 반익순, 반복해, 반우형 등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5명, 무과 급제자 5명을 배출했다. 거제 반씨는 2015년 기준 12,814명이 있으며, 충청북도 음성군에 집성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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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반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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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유형 | 한국의 씨족 |
국가 | 한국 |
민족 | 한민족 |
지역 | 거제 |
시조 | 반부(潘阜) |
연결된 인물 | 반기문 반효정 |
역사 | |
거제 반씨의 시조 | 반부(潘阜)는 당나라에서 정당문학(政堂文學) 벼슬을 지냈다. |
고려 시대 | 충렬왕 때 김방경(金方慶)을 따라 고려에 들어왔다. |
인구 통계 | |
2015년 인구 | 12,814명 |
기타 정보 | |
가명 | 기성 반씨(岐城潘氏) |
관향 | 경상남도 거제시 |
2. 기원
반씨의 비조(鼻祖)는 주나라 시조(始祖)인 문왕 희창의 아들이자, 무왕 희발의 동생이다. 희발은 무왕 때 은나라 정벌 후 필나라 공작(畢公)에 봉해져 제후가 된 필나라 시조 희고(姬高)이며, 성왕과 강왕까지 삼대를 보필하며 태사(太史)에 이르렀다. 희고의 아들 계손이 반(潘) 땅에 봉해진 이후 그 후손들이 반씨를 이루었다. 반씨는 춘추시대 이후 유학자와 재상을 많이 배출하여 명문으로 일컬어졌다.
거제 반씨(巨濟潘氏) 시조 반부(潘阜)는 남송 이종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한림학사를 거쳐 이부상서를 지낸 인물이다. 몽골 정벌을 주장하다 가사도의 미움을 받아 몽골에 사신으로 보내졌으나,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눈에 들어 목숨을 건지고 고려로 귀화하였다. 원종과 충렬왕 때 정당문학, 시중 등을 역임하고 기성부원군(岐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기성은 거제의 옛 지명이다.[8] 시조 반부의 묘소는 경상남도 거제시 국토봉에 있다.
3. 역사
2세 반유항(潘有抗)은 예부 상서를, 3세 반영원(潘永源)은 충숙왕 때 밀직 상서를 지냈다. 4세손 반익순(潘益淳)은 우왕 때 문하평리 우시중을 역임하고 충양공(忠襄公)에 봉해졌다. 아들 반복해(潘福海)는 우왕의 수양 아들이 되어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올랐다.[9] 6세손 반자건(潘自建)은 배극렴의 사위로써 고려 말·조선 초 이조판서·예조판서·좌찬성 등을 역임하고 영평군(永平君)에 봉해졌다. 9세손 반우형(潘佑亨)은 1474년(성종 5)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헌을 역임하며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靖國功臣)에 녹권되었으며, 기성군(岐城君)에 봉해졌다.
3. 1. 고려 시대
반부(潘阜)는 남송 이종 때 문과에 장원하여 한림학사를 거쳐 이부상서를 지냈다. 그는 몽골 정벌을 간청하였으나, 가사도(賈似道)가 그를 미워하여 몽골에 사신으로 보내 은밀히 죽이게 하였다.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는 문무를 겸비한 그의 재주를 보고 죽이지 않고 벼슬을 내려 부하로 삼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양하였다. 그 무렵 고려 충렬왕이 세자로 몽골에 있었는데, 그의 충의를 높이 사 뒤를 따라나온 김방경에게 그를 고려로 데려가라고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뒤에 충렬왕비가 된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로 오게 되었다.[8] 원종과 충렬왕 때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내고, 김방경을 따라 일본 정벌에 공을 세워 시중(侍中)에 올랐으며, 기성부원군(岐城府院君)에 봉해졌다.[8] 기성은 거제의 옛 지명이다. 반부는 65세에 벼슬을 사직하고, 기성으로 내려가 정사(精舍)를 짓고 여생을 마쳤다.
2세인 둘째 아들 반유항(潘有抗)은 예부 상서를 역임하였고, 3세 반영원(潘永源)은 충숙왕 때 밀직 상서를 지냈다.
4세손 반익순(潘益淳)은 우왕 때 문하평리 우시중을 역임하고 충양공(忠襄公)에 봉하여졌다. 그 아들 반복해(潘福海)는 우왕의 수양 아들이 되어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올랐으며, 추충양절익대좌명보리공신(推忠亮節翊戴佐命輔理功臣)의 호를 받았다.[9]
6세손 반자건(潘自建)은 시중인 배극렴의 사위로써 고려 말·조선 초에 이조판서·예조판서·좌찬성 등을 역임하고, 영평군(永平君)에 봉해졌다.
3. 2. 조선 시대
6세손 반자건은 배극렴의 사위로서 고려 말·조선 초에 이조판서, 예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하고, 영평군(永平君)에 봉해졌다.[9]
9세손 반우형은 1474년(성종 5)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헌을 역임했으며,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靖國功臣)에 녹권되었고, 기성군(岐城君)에 봉해졌다.[8]
4. 분파
시조로부터 7세에 이르러 분파가 시작되는데, 큰아들 반준(潘濬)은 군수를 하면서 거제 파조가 되고, 반유(潘濡)는 찰방으로 예천 파조가 되며, 이조참의에 증직된 반정(潘珽)이 청도 파조가 되었다.
5. 주요 인물
- 반익순 : 고려 우왕 때 문하평리(門下評理)를 거쳐 우시중(右侍中)을 지냈다.
- 반복해 : 반익순의 아들. 우왕의 수양아들이 되어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올랐으며, 추충양절익대좌명보리공신(推忠亮節翊戴佐命輔理功臣)에 녹훈되었다.
- 반제로 : 9세손. 1417년(태종 17년)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 반우형 :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며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靖國功臣)에 녹권되었고, 기성군(岐城君)에 봉해졌다.
- 반하경 : 일제의 압박으로 국권이 박탈되자 할복자살한 순국지사.
- 반기문 : 유엔 사무총장(광주 반씨)
6. 과거 급제자
거제 반씨와 광주 반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5명, 무과 급제자 5명을 배출하였다.[10]
7. 집성촌
8. 인구
연도 | 인구 |
---|---|
2000년 | 10,063명 |
2015년 | 12,814명 |
2015년 인구는 기성 반씨 7,631명과 거제 반씨 5,183명을 합한 것이다.
참조
[1]
서적
Academy of Korean Studies 거제반씨 巨濟潘氏
http://terms.naver.c[...]
Academy of Korean Studies
[2]
논문
A Comparison of the Korean and Japanese Approaches to Foreign Family Names
http://www.sciea.org[...]
2014
[3]
웹사이트
KOSIS
https://kosis.kr/sta[...]
2022-11-19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반부
[5]
역사기록
《고려사》 권124 열전 권제37 폐행(嬖幸) 반복해
http://db.history.go[...]
[6]
웹사이트
반씨(潘氏) 본관(本貫) 거제(居第)입니다.
http://www.findroot.[...]
2022-07-27
[7]
한국학중앙연구원인물
[8]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반부
[9]
역사기록
《고려사》 권124 열전 권제37 폐행(嬖幸) 반복해
http://db.history.go[...]
[10]
한국학중앙연구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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