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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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민주당은 1945년 8월 18일 독립운동가 원세훈에 의해 창당된 정당이다.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표방하며, 사회민주주의 정권 수립, 진보적 경제정책 수립 등을 강령으로, 민주공화정치 실시, 의무교육 실시 등을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후 조선민족당과의 합당을 거쳐, 대한민주당 및 한국국민당과 통합하여 한국민주당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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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민주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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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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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 한민당 |
유형 | 정당 |
이념 | 자유민주주의, 민족주의 |
설립 | 1945년 9월 16일 |
해산 | 1949년 2월 10일 |
후신 | 민주국민당 |
창립 주도 | 송진우 김성수 원세훈 백관수 김도연 윤보선 장택상 조병옥 허정 김활란 황신덕 |
역사 | |
주요 활동 | 미군정 협력 단독 정부 수립 지지 |
주요 사건 | 송진우 암살 사건 |
주요 인물 | |
주요 당원 | 김성수 송진우 신익희 조병옥 윤보선 장택상 백낙준 허정 김도연 김활란 황신덕 |
관련 정보 | |
관련 단체 | 대한민국 임시정부 |
관련 인물 | 이승만 |
2. 역사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여운형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좌파세력들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극좌세력들이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3]
일제강점기 말기 적극적인 항일활동을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총독부의 전향 압박에 협력하지도 않았던 세력들은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협력했던 인사들에 비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일 수 있었다. 이 중 독립운동가 원세훈이 가장 먼저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원세훈은 해방 다음 날 은거하고 있었던 평택에서 상경하여 이학수(韓學洙)의 집에 기거하면서 창당을 기획하였다.[3]
1945년 8월 18일 원세훈은 고려민주당을 창당하였다.[3][4] 고려민주당 위원장에는 원세훈, 총무에는 이병헌, 현동완, 재정부에는 유흥산, 한학수, 섭외부에는 박명환, 조직부에는 이민홍 등이 참여하였다.[3] 현재 여기에 참여한 인물들이 일제강점기부터 원세훈과 구체적으로 어떠한 연관을 맺으면서 활동했는지 이후의 행적은 어떠했는지 등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참고로 원세훈은 한국전쟁 와중 납북된다.
고려민주당은 강령으로 “사회민주주의 정권 수립”, “진보적 경제정책의 수립” 등을 내걸었고, 당 정책으로 “민주공화정치의 실시와 의회제도 확립”, “의무교육 실시”, “진보적 농공 병행과 상업 개량 확립” 등을 규정했다. 이는 사회주의적이면서도 부르주아민주주의적인 질서를 인정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해방을 전후하여 발표된 중경 임시정부의 강령과 상당히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3]
1945년 8월 28일 김병로, 백관수, 조병옥, 함상훈, 김약수, 이인 등은 서울 계동에서 조선민족당을 창당했다.[5][1] 원세훈의 고려민주당은 조선민족당 창당 소식에 호응하여 합당에 참여하였다.[5][1]
1945년 9월 6일 대한민주당(조선민족당의 이명으로 보인다)과 한국국민당이 한국민주당이라는 명칭으로 합당하기로 선언하였고, 강령, 정책을 발표하였다.[6][7]
1945년 9월 16일 대한민주당과 한국국민당이 통합하여 한국민주당이 결성되었다.[1][2] 즉, 처음엔 한국민주당도 좌우합작 형태로 탄생한 정당이었던 것이다. 식민지 시기 친일을 하지 않았던 국내의 우익인사들이 8·15 광복 직후 한민당에 대거 참여하게 된 데에는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이념적 동질성과 함께 민족통일전선을 표방한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좌익 세력들에 의해 독선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이 주요 이유로 작용하였다.[4]
2. 1. 창당 배경 (1945년 8월)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여운형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좌파세력들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극좌세력들이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3]일제강점기 말기 적극적인 항일활동을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총독부의 전향 압박에 협력하지도 않았던 세력들은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협력했던 인사들에 비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일 수 있었다. 이 중 독립운동가 원세훈이 가장 먼저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원세훈은 해방 다음 날 은거하고 있었던 평택에서 상경하여 이학수(韓學洙)의 집에 기거하면서 창당을 기획하였다.[3]
2. 2. 고려민주당 창당 (1945년 8월 18일)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독립운동가 원세훈이 가장 먼저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원세훈은 해방 다음 날 은거하고 있었던 평택에서 상경하여 이학수의 집에 기거하면서 창당을 기획하였다.[3] 1945년 8월 18일 원세훈은 고려민주당을 창당하였다.[3][4] 고려민주당 위원장에는 원세훈, 총무에는 이병헌, 현동완, 재정부에는 유흥산, 한학수, 섭외부에는 박명환, 조직부에는 이민홍 등이 참여하였다.[3]고려민주당은 “사회민주주의 정권 수립”, “진보적 경제정책의 수립” 등을 강령으로 내걸었고, “민주공화정치의 실시와 의회제도 확립”, “의무교육 실시”, “진보적 농공 병행과 상업 개량 확립” 등을 당 정책으로 규정했다. 이는 사회주의적이면서도 부르주아민주주의적인 질서를 인정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해방을 전후하여 발표된 중경 임시정부의 강령과 상당히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3]
2. 3. 조선민족당 창당과 합당 논의 (1945년 8월 28일 ~ 9월)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여운형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좌파세력들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극좌세력들이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3]일제강점기 말기 적극적인 항일활동을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총독부의 전향 압박에 협력하지도 않았던 세력들은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협력했던 인사들에 비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일 수 있었다. 이 중 독립운동가 원세훈이 가장 먼저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원세훈은 해방 다음 날 은거하고 있었던 평택에서 상경하여 이학수(韓學洙)의 집에 기거하면서 창당을 기획하였다.[3]
1945년 8월 18일 원세훈은 고려민주당을 창당하였다.[3][4] 고려민주당은 위원장에 원세훈, 총무에 이병헌, 현동완(玄東完), 재정부에 유흥산(劉興山), 한학수, 섭외부에 박명환, 조직부에 이민홍(李敏弘) 등이 참여하였다. 고려민주당은 강령으로 “사회민주주의 정권 수립”, “진보적 경제정책의 수립” 등을 내걸었고 당 정책으로 “민주공화정치의 실시와 의회제도 확립”, “의무교육 실시”, “진보적 농공 병행과 상업 개량 확립” 등을 규정했다. 사회주의적이면서도 부르주아민주주의적인 질서를 인정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3]
1945년 8월 28일 김병로, 백관수, 조병옥, 함상훈, 김약수, 이인 등은 서울 계동에서 조선민족당을 창당했다.[5][1] 원세훈의 고려민주당은 조선민족당 창당 소식에 호응하여 합당에 참여하였다.[5][1]
1945년 9월 6일 대한민주당(조선민족당의 이명으로 보인다)과 한국국민당이 한국민주당이라는 명칭으로 합당하기로 선언하였고, 강령, 정책을 발표하였다.[6][7]
2. 4. 한국민주당 결성 (1945년 9월 16일)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여운형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좌파세력들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극좌세력들이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3]이때 일제강점기 말기 기준 적극적인 항일활동을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총독부의 전향 압박에 협력하지도 않았던 세력들은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협력했던 인사들에 비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일 수 있었다. 이 중 독립운동가 원세훈이 가장 먼저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원세훈은 해방 다음 날 은거하고 있었던 평택에서 상경하여 이학수(韓學洙)의 집에 기거하면서 창당을 기획하였다.[3]
1945년 8월 18일 원세훈은 고려민주당을 창당하였다.[3][4] 고려민주당은 강령으로 “사회민주주의 정권 수립”, “진보적 경제정책의 수립” 등을 내걸었고 당 정책으로 “민주공화정치의 실시와 의회제도 확립”, “의무교육 실시”, “진보적 농공 병행과 상업 개량 확립” 등을 규정했다. 사회주의적이면서도 부르주아민주주의적인 질서를 인정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선은 해방을 전후하여 발표된 중경 임시정부의 강령과 상당히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3]
1945년 8월 28일 김병로, 백관수, 조병옥, 함상훈, 김약수, 이인 등은 서울 계동에서 조선민족당을 창당했고, 원세훈의 고려민주당도 호응하면서 합당에 참여하게 된다.[5][1]
1945년 9월 6일 대한민주당(大韓民主黨, 조선민족당의 이명으로 보인다)과 한국국민당이 한국민주당이라는 명칭으로 합당하기로 선언하였고, 강령, 정책을 발표하였다.[6][7]
1945년 9월 16일 대한민주당과 한국국민당이 통합하여 한국민주당이 결성되었다.[1][2] 처음엔 한국민주당도 좌우합작 형태로 탄생한 정당이었던 것이다. 식민지 시기 친일을 하지 않았던 국내의 우익인사들이 8·15 광복 직후 한민당에 대거 참여하게 된 데에는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이념적 동질성과 함께 민족통일전선을 표방한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좌익 세력들에 의해 독선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이 주요 이유로 작용하였다.[4]
3. 주요 참여 인물
4. 강령 및 정책
참조
[1]
웹인용
國史館論叢 第27輯 > 自由黨의 政黨政治(孫鳳淑) > Ⅱ. 건국초기의 정당난립과 자유당의 창당 > 1. 제1공화국의 수립과 이승만정권의 성립
http://db.history.go[...]
한국사데이터베이스
[2]
웹인용
한국민주당 결당식
http://db.history.go[...]
한국사데이터베이스
[3]
웹인용
國史館論叢 第58輯 > 해방 직후 한국민주당 구성원의 성격과 조직개편(박태균) > Ⅲ. 해방 직후 한국민주당내 비주류세력과 그 특징 > 2. 해방 이후 정치노선과 활동
http://db.history.go[...]
한국사데이터베이스
[4]
웹인용
신편 한국사 52 대한민국의 성립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2. 주요 정치세력의 통일국가 수립운동 > 1) 우익 정치세력의 노선과 활동 > (1) 한국민주당
http://db.history.go[...]
한국사데이터베이스
[5]
웹인용
조선민족당(朝鮮民族黨)
http://encykorea.aks[...]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
웹인용
한국민주당발기회 개최
http://db.history.go[...]
한국사데이터베이스
[7]
웹인용
한국민주당 발기선언 및 강령, 정책
http://db.history.go[...]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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