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오카 한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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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가오카 한타로는 일본의 물리학자로, 1865년 나가사키현에서 태어나 도쿄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자기변형, 지구물리학, 분광학 연구에 기여했으며, 1904년에는 원자핵 주위를 전자가 고리 모양으로 회전하는 '토성형 원자 모형'을 제안했다. 또한 유도계수를 구하는 나가오카 계수를 발표했으며, 수은을 금으로 바꾸는 연구를 시도했다. 그는 도쿄 제국대학 교수, 이화학연구소 수석 과학자, 오사카 대학 초대 총장, 귀족원 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1937년에는 문화훈장을 받았다. 1950년 사망했으며, 그의 손녀는 피아니스트 나가오카 노부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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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오카 한타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나가오카 한타로 |
원어 이름 | 長岡 半太郎 |
로마자 표기 | Nagaoka Hantarō |
출생과 사망 | |
출생일 | 1865년 8월 19일 (음력 6월 28일) |
출생지 | 일본 히젠국 오무라번 (현재 나가사키현 오무라시) |
사망일 | 1950년 12월 11일 |
사망 장소 | 일본 도쿄도 분쿄구 니시카타초 |
학문 분야 및 경력 | |
분야 | 물리학 |
직장 | 도쿄 제국대학 이화학연구소 오사카 제국대학 |
모교 | 제국대학 |
지도 학생 | 고타로 혼다 히데키 유카와 스에키치 기노시타 |
친척 | 나가오카 노부코 (손녀) |
주요 업적 | |
업적 | 토성형 원자 모델 제창 |
수상 | |
수상 | 문화훈장 (1937년) |
2. 생애
나가오카 한타로는 1865년 8월 19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도쿄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1887년 물리학 학위를 받고 졸업한 후,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카길 길스턴 노트와 함께 자기변형 같은 자성 문제를 연구했다. 1893년 유럽으로 건너가 루트비히 볼츠만 등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때 마리 퀴리의 방사능에 대한 강연을 듣고 원자 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01년 일본으로 돌아와 1925년까지 도쿄 대학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은퇴 후 이화학연구소 수석 과학자로 임명되었으며,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오사카 대학 초대 총장을 역임했다.
나가오카 한타로의 손녀는 피아니스트 나가오카 노부코였다.[1]
2. 1.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나가오카 한타로는 1865년 8월 19일 히젠국 오무라번(현재의 나가사키현 오무라시)에서 번사인 나가오카 지사부로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오무라 번 번교 고코칸(나가사키현립 오무라 고등학교의 전신)에서 배웠다.1874년 가족이 상경하면서 한타로는 혼고구 유시마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초등학교 시절에는 성적이 좋지 않아 낙제한 적도 있었다.[1] 이후 공립 학교, 도쿄 영어학교(도쿄 대학 예비문)를 거쳐 오사카 영어학교(오사카 전문학교)로 전학 후, 도쿄 대학 예비문에 재입학했다.
1882년 9월에는 도쿄 대학 이학부(1886년부터 제국대학 이과대학)에 진학하여 물리학을 전공했다. 재학 중 1년 휴학했는데, 휴학 중에는 동양인(일본인)에게 서양인 못지않은 독창적인 식견이 있는지 고민하며 한학의 길을 고려하기도 했다. 물리학과에서는 야마카와 겐지로, 다나카다테 아이키쓰 교수, 영국인 교사 등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2. 2. 도쿄 제국대학 교수
1887년 대학원에 진학한 후, 1890년에 도쿄 제국대학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9월, 자기변형을 연구하여 니켈선에 압력과 변형을 주면 반자성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39] 1892년 7월 25일, 다나카다테 아이키쓰와 함께 노비 지진에 동반된 자력선의 변위를 발표했다.[40] 1902년 8월 4일, 혼다 고타로와 함께 철, Ni, Co, Ni강의 자왜를 발표했다.[41]1893년부터 1896년까지 독일 제국으로 유학을 떠나 루트비히 볼츠만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귀국 후 도쿄 제국대학 교수로 임명되어 1926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재직했다.
2. 3. 요직 역임
도쿄 제국대학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후에도 이화학연구소 주임연구원으로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다음과 같은 요직을 역임했다.기간 | 직책 |
---|---|
1931년 ~ 1934년 | 초대 오사카 제국대학 총장 |
1934년 ~ 1947년 | 귀족원 의원 (제국학사원 회원 의원) |
1939년 ~ 1947년 | 일본 학술진흥회 이사장 |
1939년 ~ 1948년 | 제13대 제국학사원 원장 |
1937년에는 제1회 문화훈장을 받았다.
1939년, 스웨덴 노벨 위원회에 유카와 히데키를 추천했다. 이 추천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사이에 둔 10년 후인 1949년에 결실을 맺었고, 유카와 히데키는 중간자 이론을 제창한 공로로 일본인 최초로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 4. 가족
미쓰쿠리 린쇼의 셋째 딸 미사코와 1892년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장남 나가오카 하루오는 이화학연구소 이사장을, 차남 나가오카 마사오는 일본 광학 공업 사장을 역임했고, 장녀는 나가오카 한타로의 제자 오카야 도키하루와 결혼했다. 손녀 나가오카 노부코는 피아니스트로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도쿄 대공습으로 사망했다. 노부코의 여동생 나가오카 스미코(옛 성: 나가마쓰)도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1902년 아내 미사코가 사망하자 히라카와 도요와 재혼하여 5남을 더 두었다. 5남 사가네 료키치는 실험물리학자였고, 8남 나가오카 신키치는 공작기계 기술자(오쿠마 상무이사, 도요하시 기술과학대학 교수를 역임)였다.[42]
2. 5. 사망
1950년 12월 11일, 도쿄도 분쿄구 니시카타초 자택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향년 85세).[43] 사망 당일에도 지구물리학 관련 서적을 보며 연구를 계속했다고 전해진다. 장례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신식이나 불교식에 관계없이 같은 달 16일에 거행되었다.[44]3. 학술적 업적
나가오카는 대학원 시절부터 자기왜 실험 연구와 회절의 수리물리학적 연구를 병행했다. 지진과 지구물리학 연구에도 참여하여 지자기 측량, 유성에 의한 전파 산란 보고[17]등을 수행했다. 이후 원자 구조론, 분광학, 수은 환금 등으로 연구 대상을 넓혔다.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 물리학회에 앙리 푸앵카레, 퀴리 부부(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앙리 베크렐 등과 함께 참가하여 자기왜 연구 성과를 보고했다.
하인리히 헤르츠의 실험(1888년), 빌헬름 뢴트겐의 X선 발견(1895년) 등 세계 물리학계의 최신 동향을 일본에 소개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1922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방일 당시에는 궁중에서 상대성 이론 강의를 했다.
1904년 조지프 존 톰슨의 건포도 빵 모형에 대응하여 토성형 원자 모형을 발표하였다. 1909년에는 나가오카 계수를 발표했고,[50][22] 1924년에는 수은을 금으로 바꾸는 연구를 발표했다.[52]
3. 1. 자기변형 및 지구물리학 연구
나가오카 한타로는 대학원 시절부터 자왜 실험 연구에 몰두했으며, 이와 병행하여 회절의 수리물리학적 연구도 진행했다. 또한 지진과 지구물리학 연구에도 참여하여 지자기 측량, 유성에 의한 전파 산란 보고[45] 등을 수행했다. 이후 그의 연구 대상은 원자 구조론과 분광학, 수은 환금 등으로 확장되었다.190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유럽에서 출판된 연구를 바탕으로 나가오카 한타로는 지진에 대한 초기 연구를 수행했다. "하나는 19세기 전반 프랑스에서 성공한 경향을 배경으로 탄성 연구의 원리를 사용했다. 다른 하나는 잠재 함수를 정의하고 19세기 중반부터 영국이나 독일에서 등장한 새로운 경향을 배경으로 파동의 특성을 나타내는 연속 방정식으로부터 현상을 설명했다."[10]
3. 2. 국제 학술 교류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물리학회에 앙리 푸앵카레, 퀴리 부부(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앙리 베크렐 등과 같은 당대의 유명한 물리학자들과 함께 참가하여 자기왜 연구 성과를 보고했다.[45]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의 실험(1888년),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의 X선 발견(1895년) 등 세계 물리학계의 최신 동향을 일본에 적극적으로 소개했다.1922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에서 ‘아인슈타인 붐’이 일어났을 때 궁중에서 일반 상대성이론 강의를 했다.
3. 3. 토성형 원자 모형 제창
1900년대 초,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가 아니라, 양(+)전하와 음(-)전하를 띤 입자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904년 영국의 조지프 존 톰슨은 양전하를 띤 구 안에 음전하를 띤 전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포도 빵 모형을 제안했다.[46] 같은 해, 나가오카 한타로는 원자핵이 중심에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고리 모양으로 회전하는 '토성형 원자 모형'을 발표했다.[47]
나가오카의 모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졌다.
- 매우 무거운 원자 중심 (매우 무거운 행성과 유사)
- 정전기적 힘에 의해 핵 주위를 회전하는 수천 개의 전자 (중력에 의해 토성 주위를 회전하는 고리와 유사)
나가오카의 모형은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토성의 고리 안정성에 대한 연구에서 영향을 받은 정교한 것이었다.[48] 중심에 무겁고 전하가 큰 핵이 있고 그 주위에 수천~수만 개의 전자가 회전하여 원자는 안정성을 얻었지만, 전자가 전자기파를 방출하고 에너지를 잃어 핵과 합쳐질 우려가 있어[49] 초기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또한 원자의 스펙트럼 선을 설명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험과 잘 맞지 않았다.
1911년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알파(α)선 산란 실험으로 원자핵을 발견하고(러더퍼드 산란), 러더퍼드 원자 모형을 발표했다. 이는 원자핵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다는 점에서 나가오카의 토성 모형과 유사했다.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문제는 1913년 닐스 보어의 보어 모형과 초기 양자론을 거쳐 양자론에 이르러 전자는 '점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3. 4. 나가오카 계수 제창
1909년 5월 6일, 전기공학에서 유한장 솔레노이드(코일)의 유도계수를 구하기 위한 나가오카 계수를 발표했다.[50][22]케임브리지 대학교는 나가오카의 업적을 기려 명예 이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51][23]
3. 5. 수은환금
1924년 9월 20일에 나가오카 한타로는 수은을 금으로 바꾸는 연구를 발표했다.[52] 수은(원자번호 80)에서 수소 원자(양자) 1개를 제거하면 금(원자번호 79)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에 따라, 수은의 핵을 교란시켜 금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원자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연구의 응용 사례였으나, 이화학연구소의 홍보로 인해 자원이 부족한 일본에 큰 혜택을 가져다줄 연금술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이후 10년간의 연구에도 뚜렷한 성과는 없었고, 나가오카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다른 학자들도 비판하지 않았다.[53][54][55][56]1937년 문화훈장을 받았을 때, 나가오카는 "환금술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원자 구조에 대한 연구나 나가오카식 계산법, 나가오카·혼다 효과 등이 학계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스스로 평가했다.[57]
4. 주요 제자
5. 도호쿠 제국대학 및 오사카 제국대학 창립 기여
1906년 도호쿠 제국대학 설립이 결정되자 나가오카는 교수 인선을 의뢰받았다. 그 결과 나가오카의 제자인 혼다 고타로, 구사카베 시로타, 아이치 게이이치, 이시하라 준이 도호쿠 제국대학 교수가 되었다. 나가오카 자신도 초대 이과대학장으로 추천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도쿄 제국대학에 남았다.
1931년 나가오카가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 오사카 제국대학에서는 이학부장에 마지마 도시유키, 물리학과 주임교수에 야기 히데쓰구, 교수에는 사위인 오카야 도키하루와 기쿠치 세이시 등을 임명했다. 또한 유카와 히데키를 강사로 초빙했다.
6. 상훈 및 영예
나가오카 한타로는 평생의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아 1937년 일본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65] 달에 있는 나가오카 크레이터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연도 | 상훈 및 영예 |
---|---|
1891년 | 종7위[58] |
1896년 | 정7위[59] |
1905년 | 정5위[32] |
1906년 | 훈4등 서보장[60] |
1910년 | 훈3등 서보장[61] |
1915년 | 정4위[62] |
1928년 | 훈2등 욱일중광장[63] |
1932년 | 훈1등 서보장[64] |
1937년 | 문화훈장[65]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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