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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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궁씨는 본래 중국 황족의 성씨였으며, 주 문왕의 사우였던 남궁괄을 시조로 한다. 한국에는 함열, 부윤, 남평 등 6개의 본관이 존재하며, 특히 함열 남궁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함열 남궁씨는 고려 시대 장군 남궁원청을 시조로 하며,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15명을 배출하는 등 명문가로 자리 잡았다. 남궁원, 남궁민, 남궁도, 남궁웅 등 여러 인물이 있으며, 영화 설국열차의 남궁민수 등 가상 인물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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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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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원
남궁(南宮)씨는 본래 황족(皇族)인 희성(姬姓)이었다. 은(殷)나라 때 남(南)쪽 궁(宮)에 살았다하여 남궁(南宮)으로 성(姓)을 정하였다고 한다.
한국에는 함열, 부윤, 남평, 룡안, 의령, 차산 등 6개의 남궁 본관 씨족이 있다.[1] 함열 남궁씨는 주나라 문왕의 조언자였던 남궁괄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남궁괄의 후손인 남궁수가 기자와 함께 한국에 와서 기자조선 건국을 도왔다고 한다.[2]
남궁씨의 도시조(都始祖)는 '''남궁괄'''이다. 남궁괄은 주 문왕(周文王)의 사우(四友)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대장군(大將軍)으로 있을 때 폭군(暴君)인 은(殷) 나라 주왕(紂王, 기원전 1154년 ~ 기원전 1111년)에 의해서 투옥(投獄)된 문왕(文王)을 지혜를 발휘하여 구해내기도 하였다. 그는 무왕(武王)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를 건국(建國)한 공신(功臣)으로 이상서(二尙書)에 오르고 한 지방을 식읍으로 받아 다스리게 되었으며 그 곳의 지명(地名)을 그의 성(姓)을 따라 남궁현(南宮縣)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孔子)의 사위가 된 남궁괄(括)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
한국 남궁씨의 원조(遠祖)는 주(周) 나라의 '''남궁수'''(南宮修)이다. 남궁수는 기자(箕子)와 함께 조선에 동래(東來)하면서 평양(平壤)을 중심으로 조선(朝鮮)을 건국(建國)하고 사도(司徒)의 직(職)에 올라 백성들에게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을 가르쳤으며, 음식의 예법(禮法)과 제사(祭祀)에는 편두(祭器)를 쓰게 하며 의관제도(衣冠制度)와 직제(職制)를 중국과 같게 하였다고 한다.[1]
함열 남궁씨는 남궁 괄, 주 문왕의 핵심 조언자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남궁 괄의 후손인 남궁수가 기자와 함께 한국에 와서 그가 기자조선을 건국하는 것을 도왔다.[2]
3. 본관
3. 1. 함열 남궁씨
함열 남궁씨(咸悅 南宮氏)의 시조 '''남궁원청'''(南宮元淸)은 991년(고려 성종 10년) 대장군(大將軍)으로서 여진족을 백두산 북방까지 몰아내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임명되고 감물아백(甘勿阿伯)에 봉해졌다. 감물아(甘勿阿)는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의 백제시대 지명이다.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그의 후손 '''남궁득희'''(南宮得禧)를 기세조로 한다. 남궁득희의 증손 남궁민(南宮敏)이 1336년(고려 충숙왕 복위 5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냈다.[4] 6세손 남궁계(南宮啓)는 문음(門蔭)으로 출사하여 종2품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에 이르렀고, 1401년(조선 태종 1년) 좌명원종공신(佐命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함열 남궁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5명을 배출하였다. 9세손 남궁찬(南宮璨)과 10세손 남궁숙(南宮淑)이 관찰사를 역임하고, 11세손 남궁침(南宮枕)은 명종 때 한성부판윤과 형조참판에 올랐다.
함열 남궁씨는 남궁 괄, 주 문왕의 핵심 조언자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남궁 괄의 후손인 남궁수가 기자와 함께 한국에 와서 그가 기자조선을 건국하는 것을 도왔다.[2]
대한민국에서 2000년 통계에 따르면 함열 남궁씨는 18,703명의 구성원을 가지고 있다.[3]
4. 주요 인물
- 남궁원청(南宮元淸): 고려 장군으로 함열 남궁씨의 시조이다.[1]
- 남궁신(南宮信): 고려의 무관이다.
- 남궁원(1934–2024):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은 홍경일이다.
- 남궁도(1982년 출생):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 남궁민(1978년 출생):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남궁웅(1984년 출생):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 남궁민수: 영화 설국열차의 등장인물로, 송강호가 연기했다.
- 남궁현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가상의 건축가이다.
4. 1. 역사 속 인물
남궁괄은 주 문왕(周文王)의 사우(四友) 중 한 사람으로, 대장군(大將軍)으로 있을 때 폭군(暴君)인 은(殷) 나라 주왕(紂王, 기원전 1154년 ~ 기원전 1111년)에 의해서 투옥(投獄)된 문왕(文王)을 구출하였다. 그는 무왕(武王)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를 건국(建國)한 공신(功臣)으로 이상서(二尙書)에 오르고 한 지방을 식읍으로 받아 다스렸으며, 그 곳의 지명(地名)을 그의 성(姓)을 따라 남궁현(南宮縣)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孔子)의 사위가 된 남궁괄(括)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한국 남궁씨의 원조(遠祖)는 주(周) 나라의 '''남궁수'''(南宮修)이다. 남궁수는 기자(箕子)와 함께 조선에 동래(東來)하면서 평양(平壤)을 중심으로 조선(朝鮮)을 건국(建國)하고 사도(司徒)의 직(職)에 올라 백성들에게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을 가르쳤으며, 음식의 예법(禮法)과 제사(祭祀)에는 편두(祭器)를 쓰게 하며 의관제도(衣冠制度)와 직제(職制)를 중국과 같게 하였다고 한다.
'''함열 남궁씨'''(咸悅 南宮氏)의 시조 '''남궁원청'''(南宮元淸)은 991년(고려 성종 10년) 대장군(大將軍)으로서 여진족을 백두산(白頭山) 북방까지 몰아내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임명되고 감물아백(甘勿阿伯)에 봉해졌다. 감물아(甘勿阿)는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의 백제시대 지명이다.[1]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그의 후손 '''남궁득희'''(南宮得禧)를 기세조로 한다. 남궁득희의 증손 남궁민(南宮敏)이 1336년(고려 충숙왕 복위 5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냈다.[4] 6세손 남궁계(南宮啓)가 문음(門蔭)으로 출사하여 종2품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에 이르렀고, 1401년(조선 태종 1년) 좌명원종공신(佐命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함열 남궁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5명을 배출하였다. 9세손 남궁찬(南宮璨)과 10세손 남궁숙(南宮淑)이 관찰사를 역임하고, 11세손 남궁침(南宮枕)은 명종 때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과 형조참판(刑曹參判)에 올랐다.
4. 2. 현대 인물
- 남궁원(1934–2024): 대한민국 배우. 본명은 홍경일이다.
- 남궁도(1982년 출생): 대한민국 축구 선수.
- 남궁민(1978년 출생): 대한민국 배우.
- 남궁웅(1984년 출생): 대한민국 축구 선수.
4. 3. 가상 인물
참조
[1]
논문
https://books.google[...]
2018-02-27
[2]
웹사이트
함열남궁씨 - 디지털도봉문화대전
http://www.grandcult[...]
2023-11-25
[3]
웹사이트
http://user.chol.com[...]
2018-02-27
[4]
간행물
남궁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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