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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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 2. 역사
- 3. 역대 번주
- 3.1. 사카이 가문 (1601년 ~ 1609년)
- 3.2. 마쓰다이라 가문 (사쿠라이, 1633년 ~ 1635년)
- 3.3. 미즈노 가문 (1635년 ~ 1642년)
- 3.4. 마쓰다이라 가문 (후지이, 1642년 ~ 1644년)
- 3.5. 호조 가문 (1644년 ~ 1648년)
- 3.6. 니시오 가문 (1648년 ~ 1679년)
- 3.7. 사카이 가문 (가가노카미, 1679년 ~ 1681년)
- 3.8. 쓰치야 가문 (1681년 ~ 1684년)
- 3.9. 오타 가문 (1684년 ~ 1705년)
- 3.10. 나이토 가문 (1705년 ~ 1712년)
- 3.11. 도키 가문 (1712년 ~ 1730년)
- 3.12. 혼다 가문 (1730년 ~ 1868년)
- 4. 에도 시대 말기의 영지
- 5. 평가
- 참조
1. 개요
다나카번은 이마가와 씨가 슨푸 성의 동쪽 방어를 위해 건설한 다나카 성을 기반으로,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배권을 확보하여 1601년 사카이 다다토시를 초대 번주로 임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여러 번주가 교체되었으며, 1730년 혼다 마사노리가 번주가 된 이후 메이지 유신까지 혼다 가문이 다스렸다. 혼다 가문 시대에는 재정난과 자연재해, 번주들의 막부 요직 진출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6대 번주 혼다 마사히로가 번정 개혁을 시도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다나카 번은 폐지되었고, 마지막 번주 혼다 마사모리는 나가오 번으로 이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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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하면서 가신인 나카무라 가즈타다에게 다나카 성이 주어졌으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지배권을 확보했다.
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카이 다다토시를 다나카 번의 초대 번주로 임명하고 1만 석의 영지를 부여했다.[1] 다다토시는 다나카 성을 개축하고 후지에다주쿠를 조카마치로 편입하는 등 번의 기반을 다졌다.[1] 1609년 사카이 다다토시는 가와고에 번으로 전봉되었고,[1] 다나카 번은 잠시 쇼군 직할령(천령)이 되었다.[1]
1633년부터 1730년까지 다나카 번은 번주가 자주 교체되었다. 마쓰다이라 다다시게, 미즈노 타다요시, 마쓰다이라 타다하루, 호조 우지시게, 니시오 타다테루, 사카이 타다요시, 도야 마사나오, 오타 스케나오, 나이토 이치노부, 토키 요리시게 등이 번주를 역임했으나, 대부분 단기간 재임에 그쳤다. 특히 사카이 타다요시는 1681년 개역되기도 했다.
1730년 혼다 마사노리가 4만 석으로 다나카 번에 입봉하면서 혼다 가문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혼다 가문은 메이지 유신 때까지 7대에 걸쳐 다나카 번을 다스렸다.[1] 그러나 잦은 자연재해와 막부 요직 진출로 인한 지출 증가로 번 재정은 어려움을 겪었다.[2] 6대 번주 혼다 마사히로는 번정 개혁을 시도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3]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도쿠가와 이에사토가 슨푸 번 70만 석의 번주가 되면서, 다나카 번은 폐지되고 혼다 마사모리는 아와 국 나가오 번으로 전봉되었다.[4]
2. 1. 에도 시대 이전
원래 이마가와 씨가 슨푸성의 동쪽 방어를 위해 건설한 다나카성은 다케다 씨의 지배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넘어갔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하면서 가신인 나카무라 가즈타다에게 주어졌으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이에야스가 다시 지배권을 확보했다.2. 2. 에도 시대 초기 (1601년 ~ 1633년)
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카이 다다토시를 다나카 번의 초대 번주로 임명하고 1만 석의 영지를 부여했다.[1] 다다토시는 다나카 성을 개축하고 후지에다주쿠를 조카마치로 편입하는 등 번의 기반을 다지는 데 힘썼다.[1] 1609년 사카이 다다토시는 가와고에 번으로 전봉되었고,[1] 다나카 번은 잠시 쇼군 직할령(천령)이 되었다.[1]2. 3. 번주의 잦은 교체 (1633년 ~ 1730년)
1633년 8월 9일, 마쓰다이라 다다시게가 가즈사 사누키번에서 3만 석으로 다나카 번에 들어왔으나, 1635년 8월 4일에 도토미 가케가와번으로 옮겨갔다. 이후 미즈노 타다요시가 시모사 야마카와 번에서 전봉되었으나, 1642년 7월 28일에 미카와 요시다번으로 다시 옮겨갔다.1633년 9월 12일, 마쓰다이라 타다하루가 2만 5000석으로 새롭게 다이묘에 임명되어 다나카 번주가 되었으나, 1644년 3월 18일에 도토미 가케가와 번으로 옮겨갔다. 시모사 세키야도번에서 호조 우지시게가 부임하였으나, 1648년 윤 1월 21일에 도토미 가케가와 번으로 옮겨갔다.
1649년 2월 11일, 히타치 쓰치우라번에서 니시오 타다아키가 부임하였으나, 2대 번주 니시오 타다나리 재임 시기인 1679년 9월 6일에 시나노 고모로번으로 옮겨갔다. 이와 교체되어 사카이 타다요시가 부임하였다. 타다요시는 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의 다이로로 권세를 떨쳤던 사카이 타다키요의 동생이지만,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숙청으로 형이 실각하자, 타다요시 역시 쓰나요시의 분노를 사 1681년 12월 10일에 개역되었다.
1682년 2월 12일, 히타치 쓰치우라 번에서 도야 마사나오가 부임하였으나, 1684년 7월 10일에 오사카성대로 셋쓰 방면으로 전출되었다. 같은 해 7월 19일, 오타 스케나오가 부임하였고, 2대 번주 오타 스케하루 재임 시기인 1705년 4월 22일에 무쓰 다나쿠라번으로 옮겨갔다. 나이토 이치노부가 부임하였으나, 1712년 5월 15일에 오사카성대로 전출되었다. 토키 요리시게가 부임하였으나, 2대 번주 토키 요리토시 재임 시기인 1730년 7월 11일에 오사카성대로 전출되었다.
다나카 번은 혼다가에 이르기까지 단기간에 번주가 바뀌는 경우가 잇따랐다. 이 때문에 사카이 타다토시를 제외한 번주의 치적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2. 4. 혼다 가문 시대 (1730년 ~ 1868년)
1730년(교호 15년) 7월 28일, 고즈케 누마타 번에서 혼다 마사노리가 4만 석으로 다나카 번에 입봉하면서 혼다 가문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혼다 가문은 메이지 유신 때까지 7대에 걸쳐 다나카 번을 다스렸다.[1]혼다 가문 시대의 다나카 번은 잦은 자연재해와 더불어 역대 번주들이 막부 요직에 진출하면서 지출이 커져 번 재정이 일찍부터 어려움을 겪었다.[2] 이 때문에 6대 번주 혼다 마사히로는 번정 개혁을 시도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3]
1868년(메이지 원년) 9월, 7대 번주 혼다 마사나리는 도쿠가와 이에사토가 스룬푸 번 70만 석의 번주로서 스루가, 도토미, 미카와 등을 지배하게 되면서 아와 나가오 번으로 이봉되어 다나카 번은 폐번되었다.[4]
2. 5. 메이지 유신과 폐번 (1868년 ~ 1871년)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도쿠가와 이에사토가 슨푸 번 70만 석의 번주가 되면서, 다나카 번은 폐지되고 혼다 마사모리는 아와 국 나가오 번으로 전봉되었다.[4] 1871년 폐번치현으로 나가오 번이 폐지되면서 혼다 마사모리의 통치는 막을 내렸다.[4]3. 역대 번주
3. 1. 사카이 가문 (1601년 ~ 1609년)
게이초 5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가담하여 무공을 세운 나카무라 가즈타다가 호키국 요나고번으로 이봉되면서, 게이초 6년 3월 3일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인 사카이 다다토시가 1만 석으로 입봉하여 다나카 번이 세워졌다.[4] 다다토시는 다나카 성의 개축과 후지에다 숙소의 조카마치 편입 등 다나카 번의 번정 확립에 힘썼으나, 게이초 14년 9월 23일, 무사시국 가와고에번으로 이봉되었다.
3. 2. 마쓰다이라 가문 (사쿠라이, 1633년 ~ 1635년)
1633년 8월 9일, 마쓰다이라 다다시게가 가즈사 사누키번에서 3만 석으로 이봉되었다.[5] 그러나 1635년 8월 4일에 도토미 가케가와번으로 다시 이봉되었다.[5]
3. 3. 미즈노 가문 (1635년 ~ 1642년)
미즈노 다다요시는 1635년부터 1642년까지 다나카번을 다스렸다. 미즈노 가문은 후다이 다이묘로, 4만 5천 석을 다스렸다.
1635년 8월 4일, 미즈노 다다요시는 시모사 야마카와번에서 다나카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1642년 7월 28일에 미카와 요시다번으로 옮겨갔다.[5]
3. 4. 마쓰다이라 가문 (후지이, 1642년 ~ 1644년)
1642년 9월 12일, 마쓰다이라 다다하루가 2만 5000석으로 새롭게 다이묘로 등용되어 다나카번의 번주가 되었다.[5] 그러나 1644년 3월 18일에는 도토미 가케가와번으로 이봉되었다.3. 5. 호조 가문 (1644년 ~ 1648년)
1644년 3월 18일, 마쓰다이라 다다하루가 도토미 가케가와번으로 전봉(轉封)된 후, 시모사 세키야도번에서 호조 우지시게가 2만 5천 석으로 입봉(入封)하였다.[5] 그러나 1648년 윤1월 21일에 호조 우지시게는 도토미 가케가와 번으로 전봉되었다.3. 6. 니시오 가문 (1648년 ~ 1679년)
1649년 2월 11일, 히타치 쓰치우라번에서 니시오 다다아키가 다나카번으로 들어왔다. 이후 제2대 번주 니시오 다다나리 시대인 1679년 9월 6일에 시나노 고모로번으로 이봉되었다.[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