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몬과 핀티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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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몬과 핀티아스는 고대 그리스 전설로, 친구 핀티아스가 폭군 암살 미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자 그의 친구 다몬이 대신 인질이 되어 우정을 증명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아리스토크세누스, 키케로,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등 다양한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 디오니시우스 1세 치하 시라쿠사를 배경으로 한다. 핀티아스는 처형 직전 돌아와 우정을 증명하고, 디오니시우스는 감탄하여 두 사람을 사면한다. 이 전설은 연극, 소설,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었으며, '진정한 우정'을 상징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널리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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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몬과 핀티아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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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개요 | |
제목 | 다몬과 퓌티아스 |
다른 이름 | 퓌티아스와 핀티아스 다몬과 핀티아스 |
관련 인물 | 다몬 퓌티아스 (또는 핀티아스) 디오니시오스 1세 |
이야기 요약 | |
배경 |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
등장인물 | 다몬과 퓌티아스는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친구 사이이다. |
사건 | 퓌티아스가 디오니시오스 1세를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
다몬의 제안 | 퓌티아스가 가족을 정리할 시간을 벌기 위해 다몬이 대신 인질로 잡힌다. |
퓌티아스의 귀환 | 퓌티아스가 약속한 시간 안에 돌아오고, 디오니시오스 1세는 감동하여 그들을 용서하고 우정을 맺는다. |
교훈 | |
주제 | 우정, 신뢰, 희생 |
윤리적 메시지 | 진정한 우정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헌신을 의미한다. |
각주 | |
참고 문헌 | 鈴木三重吉(스즈키 미에키치), 『新選お伽噺』(신선 오토기바나시), 1921 馬淵冷佑(마부치 레유), 『尋常小学読本』(진조 쇼가쿠 도쿠혼), 1912 佐藤武(사토 타케시), 『尋常小学修身書』(진조 쇼가쿠 슈신쇼), 1925 杉田英明(스기타 히데아키), 『涙骨 漱石・藤村・賢治…「国語」教科書に隠された物語』(누골 소세키 후지무라 겐지... "국어" 교과서에 숨겨진 이야기), 2001 バロー(배로우), 山本勝助(야마모토 가쓰스케) 역, 『ギリシア・ローマ名誉物語』(그리스 로마 명예 이야기), 1887 秋元蘆風(아키모토 로후), 『小学国語読本』(쇼가쿠 고쿠고 도쿠혼), 1906 中西芳朗(나카니시 요시로), 『小学国語読本』(쇼가쿠 고쿠고 도쿠혼), 1931 奥村淳(오쿠무라 아쓰시), 『友情の物語 -「少年美談」の系譜学』(우정 이야기 - "소년 미담"의 계보학), 2010 森田孟(모리타 하지메), 『友情物語と少年たち 近代日本の少年像』(우정 이야기와 소년들 근대 일본의 소년상), 2006 ボンヌ(본느), 箕作麟祥(미쓰쿠리 린쇼) 역, 『西洋道徳立志編』(서양 도덕 입지편), 1871 近藤敏三郎(곤도 도시아부로), 『尋常小学読本』(진조 쇼가쿠 도쿠혼), 1910 後藤薫(고토 가오루), 小山保雄(고야마 야스오), 小松久夫(고마쓰 히사오), 『尋常小学読本』(진조 쇼가쿠 도쿠혼), 1912 ヨハン・ヴォルフガング・フォン・ゲーテ(요한 볼프강 폰 괴테), 中島清(나카지마 기요시) 역, 『ヘルマンとドロテーア』(헤르만과 도로테아), 1921 山口理(야마구치 오사무), 『近代日本の友情物語 少年倶楽部を中心に』(근대 일본의 우정 이야기 소년 구락부를 중심으로), 2012 秋元蘆風(아키모토 로후), 『尋常小学読本』(진조 쇼가쿠 도쿠혼), 1913 角田旅人(쓰노다 타비토), 『友情物語と少年たち 近代日本の少年像』(우정 이야기와 소년들 근대 일본의 소년상), 1983 滝口晴生(다키구치 하루오), 『古代を歩こう (文春新書)』(고대를 걸어가자 (분슌 신서)), 2013 |
2. 그리스 전설
아리스토크세누스를 비롯한 키케로,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등 여러 고대 저술가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의 추종자였던 핀티아스와 그의 친구 다몬은 디오니시우스 1세가 통치하던 시절 시라쿠사로 여행을 갔다. 핀티아스는 폭군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핀티아스는 형을 받아들였으나, 마지막으로 고향에 돌아가 자신의 일을 정리하고 가족과 작별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왕은 핀티아스가 풀려나면 도망갈 것이라 믿고 거절했다. 다몬은 핀티아스 대신 인질이 되겠다고 자청했고, 왕은 핀티아스가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다몬을 대신 처형하겠다고 했다. 다몬은 이에 동의했고 핀티아스는 풀려났다.
디오니시우스는 핀티아스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고, 약속한 날이 지나자 다몬을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처형 직전 핀티아스가 돌아왔다. 핀티아스는 해적에게 습격당해 늦었지만, 헤엄쳐 와서 친구를 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디오니시우스는 그들의 우정에 감탄하여 모두 사면하고, 자신의 친구가 되어 달라고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다른 판본에서는 이 모든 것이 왕과 신하들이 계획한 시험이었다고도 한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도덕성으로 유명했지만, 일부 신하들은 이를 거짓이라 주장하여 시험이 이루어졌다.[1]
그리스어 문헌에서는 다몬이 담보가 되었다고 하지만, 키케로 등 라틴어 문헌에서는 명확하지 않다.
다음은 다몬과 핀티아스 이야기에 대한 여러 판본의 내용이다.
- 아리스토크세노스 (기원전 4세기): 디오니시우스 2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 디오니시우스의 측근이 피타고라스 학파를 중상모략하여 디오니시우스가 피티아스의 충성심을 시험했다. 다몬이 인질이 되고 피티아스가 돌아와 우정을 증명하자,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핀티아스의 거처는 시라쿠사 시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기원전 1세기): 『세계사 단편』에서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우스가 음모죄로 피티아스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피티아스는 친구 다몬을 인질로 하여 신변 정리를 위한 유예를 요청하고 약속대로 돌아왔다.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 여부는 기록되지 않았다. 디오도로스와 콘스탄티누스 7세는 핀티아스가 실제로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하며, 유예 기간에 대한 기술은 없다.
- 키케로 (기원전 1세기): 『의무론』과 『투스쿨룸 역대담』에서 우정의 미덕을 보여주는 예시로 사용했다. 디오니시우스 1세를 언급하며, 디오니시우스 왕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했다고 언급했다. 사형 이유, 누가 사형을 선고받고 누가 인질이 되었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한쪽이 가족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위해 유예를 요청했으며, 디오니시우스가 세 번째 친구로 받아들여 달라고 간청했으나 거절당했는지는 쓰여 있지 않다.
- 가이우스 율리우스 히기누스 (1세기 초): 『신화집』에서 다몬과 핀티아스의 이름을 바꾸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모엘스가 디오니시우스를 살해하려 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세리눈티우스가 인질이 되었으며, 모엘스가 여동생의 결혼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사흘간의 유예를 요청하고 돌아왔다.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 여부는 언급되지 않았다.
-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1세기): 『명언록』에서 키케로를 참조하여 사형 이유, 누가 사형을 선고받고 인질이 되었는지, 유예 기간은 기록되지 않았다. 한쪽이 집안일을 처리하기 위해 유예를 요청했고, 한쪽이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 여부는 쓰여 있지 않다.
- 폴리아이노스: 『전술서』에서 에우에페노스가 각지의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충고하여 디오니시우스의 조약 협상을 방해했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에우에페노스는 소아시아의 바리온에 사는 여동생을 시집보내기 위해 반년의 유예를 요청했고, 에우클리토스가 인질이 되었다. 에우에페노스가 돌아와 우정을 증명하자,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며, 시칠리아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 락탄티우스 (3세기): 『교리원론』에서 우정을 위해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는 주장의 예시로 "피타고라스 문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쪽이 인질이 되고, 다른 한쪽이 처형 직전에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다.
- 포르피리오스 (3세기): 『피타고라스 전』에서 아리스토크세노스를 인용하여 피타고라스 문도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디오니시우스가 한 일이라고 했다. 핀티아스가 공동 생활자인 다몬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유예를 요청하고, 다몬이 인질이 되었으며, 핀티아스가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 이안블리코스 (4세기): 『피타고라스 학파의 삶』에서 아리스토크세노스를 인용하여 디오니시우스의 측근이 피타고라스 학파를 오만하다고 비판했고, 그들을 시험하게 되었다고 했다. 연상인 핀티아스가 처리해야 할 가사를 처리하기 위해 유예를 요청했고, 다몬이 인질이 되었으며, 핀티아스가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 토머스 엘리엇 (1531년): 『통치자라는 책』에서 디오니시우스에 대한 음모죄로 사형당한 피타고라스 문도 피시아스와 데이먼 중 한쪽이 친구를 인질로 하여 집안일을 처리할 유예를 요청하고, 약속대로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다.
2. 1. 기원
아리스토크세누스와 이후 키케로,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등에 따르면, 피타고라스의 추종자였던 핀티아스와 그의 친구 다몬은 디오니시우스 1세가 통치하던 시절 시라쿠사로 여행을 갔다. 핀티아스는 폭군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1]핀티아스는 형을 받아들이고,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일을 정리하고 가족과 작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왕은 핀티아스가 풀려나면 도망가서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이를 거절했다. 다몬은 핀티아스가 부재하는 동안 인질이 되기를 자청했고, 왕은 핀티아스가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다몬이 대신 처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몬은 이에 동의했고 핀티아스는 풀려났다.[1]
디오니시우스는 핀티아스가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핀티아스가 돌아오기로 약속한 날이 지나자 다몬을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처형인이 다몬을 죽이려 할 때, 핀티아스가 돌아왔다.[1]
핀티아스는 친구에게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시라쿠스로 돌아가는 길에 해적이 배를 습격하여 자신을 물에 던졌지만, 가까스로 해안으로 헤엄쳐 도착하여 가능한 한 빨리 시라쿠스로 돌아와 친구를 구했다고 설명했다.[1]
디오니시우스는 그들의 우정에 크게 감탄하고 기뻐하며 두 사람을 모두 사면했다. 또한 폭군이 그들의 세 번째 친구가 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도 전해진다.[1]
다른 판본에서는 왕과 그의 신하들이 계획한 시험이었다고도 한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도덕적 강인함과 우월성으로 유명했지만, 일부 시라쿠사 신하들은 그 주장이 거짓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과 함께 두 명의 피타고라스 학파가 그 명성에 걸맞은지 보여주는 위기를 고안했다.[1]
다음은 다몬과 핀티아스 이야기의 기원에 대한 여러 판본을 정리한 것이다.
- 아리스토크세노스 (기원전 4세기): 디오니시우스 2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 디오니시우스의 측근이 피타고라스 학파를 중상모략하여 디오니시우스가 피티아스의 충성심을 시험했다. 다몬이 인질이 되고 피티아스가 돌아와 우정을 증명하자,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핀티아스의 거처는 시라쿠사 시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기원전 1세기): 『세계사 단편』에서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우스가 음모죄로 피티아스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피티아스는 친구 다몬을 인질로 하여 신변 정리를 위한 유예를 요청하고 약속대로 돌아왔다.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 여부는 기록되지 않았다. 디오도로스와 콘스탄티누스 7세는 핀티아스가 실제로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하며, 유예 기간에 대한 기술은 없다.
- 키케로 (기원전 1세기): 『의무론』과 『투스쿨룸 역대담』에서 우정의 미덕을 보여주는 예시로 사용했다. 디오니시우스 1세를 언급하며, 디오니시우스 왕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했다고 언급했다. 사형 이유, 누가 사형을 선고받고 누가 인질이 되었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한쪽이 가족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위해 유예를 요청했으며, 디오니시우스가 세 번째 친구로 받아들여 달라고 간청했으나 거절당했는지는 쓰여 있지 않다.
- 가이우스 율리우스 히기누스 (1세기 초): 『신화집』에서 다몬과 핀티아스의 이름을 바꾸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모엘스가 디오니시우스를 살해하려 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세리눈티우스가 인질이 되었으며, 모엘스가 여동생의 결혼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사흘간의 유예를 요청하고 돌아왔다.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 여부는 언급되지 않았다.
-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1세기): 『명언록』에서 키케로를 참조하여 사형 이유, 누가 사형을 선고받고 인질이 되었는지, 유예 기간은 기록되지 않았다. 한쪽이 집안일을 처리하기 위해 유예를 요청했고, 한쪽이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 여부는 쓰여 있지 않다.
- 폴리아이노스: 『전술서』에서 에우에페노스가 각지의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충고하여 디오니시우스의 조약 협상을 방해했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에우에페노스는 소아시아의 바리온에 사는 여동생을 시집보내기 위해 반년의 유예를 요청했고, 에우클리토스가 인질이 되었다. 에우에페노스가 돌아와 우정을 증명하자,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며, 시칠리아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 락탄티우스 (3세기): 『교리원론』에서 우정을 위해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는 주장의 예시로 "피타고라스 문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쪽이 인질이 되고, 다른 한쪽이 처형 직전에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다.
- 포르피리오스 (3세기): 『피타고라스 전』에서 아리스토크세노스를 인용하여 피타고라스 문도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디오니시우스가 한 일이라고 했다. 핀티아스가 공동 생활자인 다몬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유예를 요청하고, 다몬이 인질이 되었으며, 핀티아스가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 이안블리코스 (4세기): 『피타고라스 학파의 삶』에서 아리스토크세노스를 인용하여 디오니시우스의 측근이 피타고라스 학파를 오만하다고 비판했고, 그들을 시험하게 되었다고 했다. 연상인 핀티아스가 처리해야 할 가사를 처리하기 위해 유예를 요청했고, 다몬이 인질이 되었으며, 핀티아스가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 토머스 엘리엇 (1531년): 『통치자라는 책』에서 디오니시우스에 대한 음모죄로 사형당한 피타고라스 문도 피시아스와 데이먼 중 한쪽이 친구를 인질로 하여 집안일을 처리할 유예를 요청하고, 약속대로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디오니시우스는 두 사람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다.
그리스어 문헌은 모두 다몬이 담보가 되었다고 하지만, 키케로를 비롯한 라틴어 문헌에서는 어느 쪽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2. 2. 다양한 판본
아리스토크세누스를 비롯한 키케로,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등 여러 고대 저술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다몬과 핀티아스 이야기는 다양한 판본으로 전해진다.저술가 | 시기 | 주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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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크세누스 | 기원전 4세기 | 디오니시우스 2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 디오니시우스의 측근이 피타고라스 학파를 중상모략하여 핀티아스가 사형을 선고받았고, 다몬이 인질이 되어 핀티아스가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디오니시우스는 둘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했다.[1] |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 기원전 1세기 |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우스가 음모죄로 핀티아스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핀티아스는 친구 다몬을 인질로 세우고 신변 정리를 위한 유예를 요청하여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디오니시우스는 둘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
키케로 | 기원전 1세기 | 의무론과 투스쿨룸 역대담에서 우정의 예시로 사용했다. 디오니시우스 1세를 언급하며, 왕이 둘의 이야기에 감동했다고 언급했다. 누가 사형을 선고받고 인질이 되었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
가이우스 율리우스 히기누스 | 1세기 초 | 신화집에서 다몬과 핀티아스의 이름을 바꾸어 모엘스와 세리눈티우스로 기록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모엘스가 디오니시우스를 살해하려 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세리눈티우스가 인질이 되었다. 디오니시우스는 둘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다. |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 1세기 | 명언록에서 키케로를 참조하여 사형 이유, 누가 사형을 선고받고 인질이 되었는지, 유예 기간은 기록하지 않았다. 한쪽이 집안일을 처리하기 위해 유예를 요청했고, 돌아와 우정을 증명했다. 디오니시우스는 둘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
폴리아이노스 | 2세기 | 전술서에서 에우에페노스가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충고하여 디오니시우스의 협상을 방해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에우에페노스는 여동생을 시집보내기 위해 반년의 유예를 요청했고, 에우클리토스가 인질이 되었다. 디오니시우스는 둘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
락탄티우스 | 3세기 | 교리원론에서 우정을 위해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는 예시로 "피타고라스 문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디오니시우스는 둘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다. |
포르피리오스 | 3세기 | 피타고라스 전에서 아리스토크세노스를 인용하여 디오니시우스가 피타고라스 문도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한 일이라고 했다. 핀티아스가 다몬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유예를 요청하고, 다몬이 인질이 되었으며, 핀티아스가 돌아왔다. |
이안블리코스 | 4세기 | 피타고라스 학파의 삶에서 아리스토크세노스를 인용하여 디오니시우스의 측근이 피타고라스 학파를 비판했고, 그들을 시험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핀티아스가 가사를 처리하기 위해 유예를 요청하고, 다몬이 인질이 되었으며, 핀티아스가 돌아왔다. |
토머스 엘리엇 | 1531년 | 통치자라는 책에서 디오니시우스에 대한 음모죄로 사형당한 피타고라스 문도 피시아스와 데이먼 중 한쪽이 친구를 인질로 하여 집안일을 처리할 유예를 요청하고, 약속대로 돌아왔다. 디오니시우스는 둘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기를 청했다. |
이처럼 다몬과 핀티아스 이야기는 시대와 저술가에 따라 세부 내용과 인물 이름에 차이가 있지만,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건 우정과 신뢰라는 핵심 주제는 변하지 않고 전해진다.
3. 전설의 수용과 변용
다몬과 핀티아스 이야기는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형태로 수용되고 변용되었다.
이처럼 다몬과 핀티아스 이야기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르게 해석되고 재창조되었다.
3. 1. 서양
3. 2. 기타 지역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에 걸쳐 이 이야기가 교과서나 동화 등에 소개되어 널리 알려졌지만, 시대에 따라 주제나 설정이 변화했다.[8]
메이지 시대에는 친구 관계를 이상적으로 가르쳤지만, 1888년(메이지 21년) 문부성 편찬 『고등 소학 독본』에서는 "은의를 아는 죄인"이라는 제목으로, 국민의 이타적 행동 여부에 따라 "문명국"인지 아닌지가 갈린다는 모리 아리노리의 생각을 반영하여 주제가 "교의"나 "신의"에서 "은의"로 변화했다.
1912년(다이쇼 원년) 고등 소학교용 국어 독본에 채록된 『진정한 지기』에서는 이야기의 마지막이 "이런 친우를 얻을 수 있다면 왕자의 부귀도 영화도 필요 없다"라는 왕의 탄식으로 끝난다.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에서는 다몬이 사형 판결을 받고 피시아스가 인질로 남는다고 소개되었기 때문에, 『진정한 지기』와 입장이 반대라는 지적도 있었다. 다이쇼 시대에는 국가나 군대에 대한 충성과 희생이 강조되었다.
스즈키 미에키치는 1921년(다이쇼 10년) 샬롯 영의 기술을 바탕으로 동화를 썼다. 1931년(쇼와 6년) 『감동 미담』에서는 피치아스와 데이만이 원래 왕의 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고 했다. 쇼와 시대에는 개인을 희생하는 것과 왕에 대한 충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다자이 오사무가 1940년(쇼와 15년)에 발표한 『달려라, 메로스』는 이 전설의 영향을 받았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국가나 군신이 아닌 개인 간의 우정을 강조한 작품이었다.
전후 초등학교용 도덕 교재에 사용된 『달려라 메로스』의 생략본 중에는 세리눈티우스의 이름이 "데몬"으로 바뀌거나, 지도서에서 다자이의 이름 없이 "그리스의 고전설"로 해설되는 등 기존 다몬과 피치아스 전승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었다. 도쿄 서적의 부독본에 1974년(쇼와 49년)부터 채록된 무라오카 하나코의 『친구의 목숨』은 인질이 되는 데몬 시점에서 친구에 대한 목숨을 건 "헌신"을 강조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국어 교과서 교재로 채택된 『달려라 메로스』는 큰 지지를 얻어 기존 전설의 존재를 지워버릴 정도로 성장했다.
중동에서는 이 설화가 인간 상호 간의 관용, 성실함, 자기희생 정신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무대는 시칠리아 대신 고대 바빌론에 가까운 도시 히라의 라흐므 왕조 궁정으로, 디오니시오스 대신 문지르 3세 또는 누만 4세로 바뀌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남자와 보증인이 된 남자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없으며, 칭찬받는 것은 우정이 아니라 '성실함', '신의', '관대함', '고결함'과 같은 덕성이다.
인도에는 이와 비슷한 자타카의 스타소마 이야기가 있다. 자타카 마라의 '스타소마 자타카'에서 스타소마는 인육을 먹는 수다사 아들에게 붙잡혀 끌려가지만, 브라만에 대한 공양이 완료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반드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브라만을 공양하러 간다. 약속을 지켜 돌아온 그는 '진리를 지켰다'고 말한다. 스타소마 이야기는 불교 설화 형태로 일본에 전해져 진실을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이야기로 교과서나 동화에도 채택되었다.
4. 현대의 작품
- 1564년, 영국의 시인 리처드 에드워즈에 의해 비극 희극 연극(''다몬과 핀티아스'')으로 만들어졌다.[2]
- 이 전설에 대한 가장 잘 알려진 현대적 해석은 프리드리히 실러가 1799년에 쓴 독일어 발라드 ''Die Bürgschaft''이다.
- 1821년, 아일랜드 시인 존 배님은 이 전설을 바탕으로 연극(''다몬과 핀티아스'')을 썼다.
- 1914년 미국에서 유니버설 픽처스는 윌리엄 워싱턴과 허버트 롤린슨이 주연을 맡은 영화 ''다몬과 핀티아스''를 제작하여 개봉했다.[3]
- 1915년, 앨버트 페이슨 테루의 책 ''다몬과 핀티아스 이야기''가 출판되었다.[4][5]
- 1925년, 윌리엄 포크너는 뉴올리언스 ''Double Dealer''에 ''다몬과 핀티아스 무제한''[6]을 게재했다.[7]
- 일본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1940년 단편 소설 "달려라, 메로스!"와 스즈키 미에키치의 초기 동요, 그리고 1992년 토에이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이 전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 프레데릭 폴의 1955년 단편 소설 "핀티아스"는 신화적 요소와 현대 정치 및 정신 운동 관련 문제를 엮어낸다.
- 영화 ''섬세한 문제아'' (1957)는 "마이크 다몬"(대런 맥개빈)과 "시드니 핀티아스"(제리 루이스)를 특징으로 한다.
- 1962년 MGM 영화 ''다몬과 핀티아스''는 가이 윌리엄스가 다몬 역을, 돈 버넷이 핀티아스 역을 맡았다.
- 1966년 모험 영화 ''키간 성의 모험''은 "달려라, 메로스!"를 느슨하게 각색한 것이다.
-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영화 ''신밧드: 7대양의 전설'' (2003)은 타이틀 캐릭터가 보물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것을 특징으로 하며,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그가 돌아오지 못할 경우 그를 대신해 처형당하기 위해 시라쿠사, 시칠리아에 남는다.
- 이 이야기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신화 전사: 전설의 수호자''의 에피소드에서 재현된다.
중동 세계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인간 상호 간의 관용, 성실함, 또는 자기희생 정신을 강조하는 설화가 되었다.
인도에는 유사한 이야기로 자타카에 등장하는 스타소마 이야기가 있다. 스타소마의 이야기는 불교 설화 형태로 일본에 전해졌다.
5. 관용적 표현
"다몬과 핀티아스"는 "진정한 우정"을 상징하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널리 사용된다. 서양에서는 이 전설이 지음(刎頸의 交わり)이나 "관포지교"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8]
이 표현이 사용된 예시는 다음과 같다:
- 드니 디드로의 단편 소설 "부르본의 두 친구"(1770): "예전 이곳에는 다몬과 핀티아스라고 불릴 만한 두 남자가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
- 앤서니 트롤로프의 ''올링턴의 작은 집''(1864): 드 코르시 백작 부인이 친구 버나드 데일과 함께 시골에서 오래 머무르는 젊은 아돌푸스 크로스비를 "정말 다몬과 핀티아스 같군."이라고 놀림.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이야기'': 헨리 지킬의 오랜 친구인 라니온 박사와 어터슨 씨는 지킬 박사의 고립에 대해 이야기하며, 의견 차이가 "다몬과 핀티아스마저 멀어지게 했을 거"라고 말함. (단순한 의견 차이 이상임을 암시)
-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감정 교육''(1869) 2장: "다몬과 핀티아스"라는 제목으로, 프레데릭 모로와 샤를 데롤리에의 우정을 다룸.
- 알프레드 J. 코헨의 소설 ''0도 이하의 결혼''(1889): 젊은 게이 커플이 서로를 다몬과 핀티아스라고 부르며, 이는 상류 사회에서 그들을 비하하는 암호로 사용되기도 함.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햄릿이 절친한 친구 호라티오를 "오 다몬, 사랑하는 이여."라고 부름.
-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1871) 14장: "다몬과 핀티아스"라는 제목으로, 학교에 다니는 두 인물 냇과 단의 우정을 나타냄.
- 찰스 디킨스의 ''보즈의 스케치'' 중 "Making a Night of It": 술에 취해 체포된 두 점원이 다몬과 핀티아스를 언급.
- 존 허시의 ''아다노를 위한 종'': 퍼비스 대위와 조폴로 시장의 우정을 다몬과 핀티아스의 우정에 비유.
- 잭 런던의 "유령을 믿는 사람!"(1895): 두 주인공의 별명으로 다몬과 핀티아스를 사용.
- 영화 ''필라델피아 스토리 (영화)''(1940): 트레이시 로드가 C. K. 덱스터 헤이븐과 조지 키트리지가 다몬과 핀티아스 같다고 비꼼.
- 제2차 세계 대전 중 P-51 전투기 조종사 도미닉 살바토레 젠틸레 소령과 존 T. 고드프리 대위: "다몬과 핀티아스"로 불리며 50대 이상의 독일 항공기를 격추.[9]
- 영화 ''금발 다이너마이트''(1950): 슬립 마호니가 다른 소년들에게 "다몬과 핀티아스가 싸우게 해라!"라고 말함.
- 짐 켈가드의 소설 ''이중 도전''(1957): 두 마리의 트로피 흰꼬리 사슴에게 다몬과 핀티아스라는 이름을 붙임.
- 리브 잇 투 비버 시즌 2, 32화 "우정"(1959년 5월 7일 방영): 워드 클리버가 비버와 그의 친구 래리 몬델로의 싸움 때문에 아들들을 언급하는 데 사용.
- P. G. 우드하우스의 소설 ''매우 감사합니다, 지브스''(1971): 버티 우스터가 징거 윈십과의 우정이 다몬과 핀티아스의 우정과 비슷하다고 말함.
- 피터 건 시즌 1, 에피소드 8: 한 인물이 살인 피해자와의 우정을 설명하며 사람들이 그들을 "다몬과 그 남자"라고 불렀다고 말함.
- TV 시리즈 ''하이랜더: 시리즈'' "현대 프로메테우스"(1997): 바이런 경을 연기한 인물이 다른 남자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다몬과 핀티아스를 언급.
- 로앤 오더 시즌 9, 에피소드 22, "입학": ADA 카마이클이 동료 여학생을 살해한 두 명의 대학원생이 서로를 덮어주는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이 레퍼런스를 사용.
- 앤서니 트롤로프 소설 ''세 명의 서기'': 두 명의 서기가 다투자 "다몬과 핀티아스는 더 이상 없다; 그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라고 말함.
- 서부 영화 ''쇼다운''(1973): 케이트가 척과 빌리의 우정을 다몬과 핀티아스의 우정이라고 언급.
- 니토베 이나조의 영어 저서 《무사도》: '다몬과 핀티아스'를 서양 우정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언급하며, 무사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씀.
-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제6권: 주인공이 과거에 쓴 이야기 속 연인의 이름이 다아몬이기 때문에 이 전설이 언급되는 장면이 있음.
- 《천일야화》의 '살인자의 이야기': 보증인이 되는 것은 친구가 아닌 인덕을 증명하려는 군중 중 한 명으로, 도망가지 않고 돌아온 이유는 우정이 아닌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임. '제396야와 제397야 알카타브의 오마르와 젊은 방랑자의 이야기'로 번역된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의 원서 주석에는 "다몬과 핀티아스"에 대해 쓰여 있음.
참조
[1]
서적
Pythagoras His Lives and the Legacy of a Rational Universe
Walker
[2]
웹사이트
Die Bürgschaft – Wikisource
http://de.wikisource[...]
2012-02-16
[3]
간행물
"'Damon and Pythias', Greatest Film Ever Made in America"
https://archive.org/[...]
Universal Weekly
1914-12-23
[4]
서적
The Story of Damon and Pythias
https://archive.org/[...]
Grosset and Dunlap Publishers
1915
[5]
웹사이트
Damon and Pythias (1914)
[6]
문서
"Damon and Pythias Unlimited"
Rutgers University Press
1958
[7]
문서
'New Orleans Sketches'
Rutgers University Press
1958
[8]
웹사이트
Bummer and Lazarus/The Damon and Pythias of San Francisco
http://www.oac.cdlib[...]
1865
[9]
서적
'Great American Fighter Pilots of World War II'
Landmark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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