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파르메니데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파르메니데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마그나 그라에키아의 엘레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사시 《자연에 관하여》를 통해 '진리의 길'과 '억견의 길'을 제시하며 존재론과 형이상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진리의 길'에서 그는 '있음'을 불변하고 완전한 실재로, '없음'을 인식 불가능한 것으로 주장하며, 이성을 통한 탐구를 강조했다.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서양 철학의 존재론과 인식론의 기초를 다졌다. 그의 일원론적 존재론은 동양 철학, 특히 불교의 공 사상과 비교되기도 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엘레아 학파 - 엘레아의 제논
    엘레아의 제논은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로서 운동과 다수성에 대한 역설적인 논증으로 유명하며 변증법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엘레아 학파 철학자이다.
  • 엘레아 학파 - 크세노파네스
    크세노파네스는 콜로폰 출신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신학자, 시인, 사회 비평가로서 방랑하며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를 비판하고 신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으며 자연 현상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을 시도하고 인식론적 질문에 관심을 가졌다.
  • 피타고라스 철학자 - 아르키타스
    아르키타스는 기원전 4세기경 타렌툼 출신의 피타고라스 학파 철학자, 수학자, 정치가, 군사 전략가로, 수학, 천문학, 음악 이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으며 타렌툼의 장군으로 정치적, 군사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플라톤과 교류했으며, 기계 장치를 이용한 비둘기를 제작했다는 전설이 있고 달에는 그의 이름을 딴 크레이터가 존재한다.
  • 피타고라스 철학자 - 엘레아의 제논
    엘레아의 제논은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로서 운동과 다수성에 대한 역설적인 논증으로 유명하며 변증법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엘레아 학파 철학자이다.
  • 기원전 5세기 시인 - 핀다로스
    고대 그리스 서정 시인이자 보이오티아 키노스케팔라이 출신인 핀다로스는 현존하는 작품이 많은 유일한 보이오티아 시인으로, 그의 작품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 종교, 가치관, 사회상을 보여주며, 특히 《승리 기념시》는 4대 범그리스 경기 승리자들을 찬양하는 대표작이다.
  • 기원전 5세기 시인 - 아리스토파네스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희극 작가로, 평화론적 입장에서 당대 유명 인사와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을 썼으며, 그의 희극은 고대 그리스 희극의 전형을 계승하면서도 독창적인 스타일로 현재까지 연극에 영향을 미친다.
파르메니데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벨리아에서 발견된 파르메니데스 흉상. 메트로도로스 흉상을 부분적으로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됨.
이름파르메니데스
로마자 표기Parmenidēs
그리스어Παρμενίδης ὁ Ἐλεάτης
생애
출생기원전 6세기 말 경
출생지엘레아, 마그나 그라이키아
사망기원전 5세기 경
철학적 배경
지역서양 철학
시대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학파/전통엘레아 학파
주요 관심사존재론, 시, 우주론
주요 사상일원론, 진실/의견 구별
영향 관계
영향을 준 사상가크세노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영향을 받은 사상가엘레아의 제논, 사모스의 멜리소스, 데모크리토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플라톤

2. 생애

파르메니데스는 마그나 그라에키아에 위치한 도시인 엘레아(로마 시대에는 벨리아라고 불림)에서 태어났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그의 아버지가 피레스였고, 부유하고 고귀한 가문 출신이라고 전한다.[1]

파르메니데스의 출생 연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아폴로도로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를 통해, 파르메니데스가 올림피아드 69회(기원전 504년 ~ 기원전 500년)에 성년이었다고 보고, 그의 출생을 40년 전(기원전 544년 ~ 기원전 540년)으로 추정했다.[4] 반면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에서는 파르메니데스가 65세, 제논이 40세 때 아테네로 가서 파나테나이아 축제에 참석하고, 매우 젊은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다.[5] 소크라테스의 출생 연도(기원전 469년)와 사망 당시 나이(약 70세)를 고려하면, 이 만남은 기원전 450년경으로 추정되고, 파르메니데스의 출생은 기원전 515년경으로 추정된다.[6][7][8][9][10][11][12]

그러나 이러한 연대 추정은 모두 불확실하다. 아폴로도로스의 연대 측정은 부정확하며, 플라톤의 대화편에 근거한 연대 측정 역시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13]

플루타르코스, 스트라본, 디오게네스스페우시포스의 증언에 따라 파르메니데스가 고향의 정부에 참여하여 도시를 조직하고 훌륭한 법전을 제정했다고 전한다.[21]

1969년, 벨리아에서 기원후 1세기로 추정되는 조각상의 받침대가 발굴되었다. 받침대에는 "ΠΑ[Ρ]ΜΕΝΕΙΔΗΣ ΠΥΡΗΤΟΣ ΟΥΛΙΑΔΗΣ ΦΥΣΙΚΟΣ"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22] 이는 "파르메니데스, 피레스의 아들"을 의미하며, 마지막 단어 φυσικός(''fysikós'')는 자연 철학자를, οὐλιάδης(''ouliadēs'')는 "엘레아 출신" 또는 아폴로 울리우스가 후원하는 의학 학교 소속을 의미할 수 있다.[23][24]

플라톤은 자신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에서 파르메니데스가 제자인 엘레아의 제논과 함께 약 65세 쯤에 고대 아테네를 방문했고, 당시 젊은이였던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한다.[28]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고전학자들은 이 방문과 대화를 허구로 간주한다.[30]

3. 사상

파르메니데스의 유일한 저작은 헥사메트로스 형식의 서사시 《자연에 관하여》(, 페리 퓌세오스)이며, 현재는 단편들만 남아있다. 이 시는 '진리의 길'과 '억견(臆見)의 길'로 나뉘어 있으며, 전자는 존재에 대한 이성적 탐구를, 후자는 감각에 의한 오류를 다룬다.[33]

〈자연에 관하여〉는 여신의 저택으로 초대받는 줄거리의 신화적인 도입부로 시작하여, "있다(τὸ ἐόνel, to eon)"를 주제로 한 형이상학적 논의와 "빛(하늘의 불)"과 "밤"의 두 원소론에 의한 우주론이 전개된다. 형이상학적인 부분은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나 심플리키오스의 인용을 통해 상당 부분 알려져 있지만, 우주론적인 부분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다른 고대 저자들의 언급을 통해, 당시 철학이나 자연학에서 즐겨 다루었던 여러 문제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33]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불생불멸하고 운동도 변화도 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하며, 이는 탈레스와 같은 초기 이오니아 자연철학자들의 일원론적 경향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것이다. 그는 지각 가능한 물리 현상을 추상화한 "아르케"나 "기하학적 대상"을 고찰해 온 이전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존재, 서술, 이성, 경험 등의 성질과 관계를 깊이 고찰하여 형이상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33]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은 "있다"와 "없다"에 대한 해석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뉜다. "있다"를 "존재한다"로 해석하는 것 외에도, "~이다(서술)"를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의 사상은 경험되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도록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하나"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개념이라고 평가했다.[33]

3. 1. 진리의 길

파르메니데스가 남긴 〈자연에 대하여〉라는 서사시는 〈진리의 길〉과 〈억견(臆見)의 길〉로 나뉜다. 〈진리의 길〉은 탐구의 길이며, '있는 것(존재자)'은 있고, '있지 않은 것(비존재)'은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있는 것'은 불생불멸하고 완전무결하며 부동(不動)의 것이며, 완전한 구체(球體)와 같다고 묘사된다.[34] '없는 것'은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있는 것'만이 이성(로고스)을 통해 인식될 수 있다.[35]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으며, 없는 것은 말할 수 없음은 물론 파악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없는 것'에 대한 생각 정도만 할 수 있을 뿐, '없음' 그 자체를 결코 머리에 그릴 수 없다. 따라서 세상에는 '있음'만이 존재한다. 또한 '있음'이 여럿 존재하려면 그 사이사이에 '없음'이 있어야 하므로 '있음'은 하나뿐이며, 이는 통일성을 갖춘 하나의 존재, 즉 일자(一者)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지각 가능한 물리 현상을 추상화한 "아르케"나 "기하학적 대상"을 고찰해 온 이전 철학자들과는 달리, "있다(有/在)"라는 개념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 "있는 것(有/在, τὸ ἐόνel)은 있고, 없는 것(非有/不在, τὸ μὴ ἐόνel)은 없다."
  • "있는 것(有/在, τὸ ἐόνel)은 유일·부동·불변이며, 이성에 의한 '진리의 길'에서만 인식·탐구 가능하다."
  • "없는 것(非有/不在, τὸ μὴ ἐόνel)은 인식될 수 없고, 탐구 불가능하다."
  • "다양성과 변화를 허용하는, 있고(有/在) 없고(非有/不在) 한 것(즉 물리 현상)은 감각에 의한 '억견의 길'에서 인식되는 오류"


이러한 배중률적인 원칙에 기초하여, 이성적·논리적으로 "본질 존재"를 제창했다.[34]

단편 8에 따르면, "있다"는 다음과 같은 성질을 갖는다.

  • 시간을 초월하여 불생불멸, 부동이며, "한꺼번에 모두, 하나의 것, 연결되는 것"으로 "나눌 수 없다."
  • "모두가 일양"하며, "여기에 더 많거나, "전체가 있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없는 것"에 대해서는, "무(無)가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단편 6)", "없는 것을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에(단편 2)" 등이라 하여, 존재하지도 않고, 인식될 수도 없으며, 탐구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단편 4와 7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현존하지는 않지만 지성에는 현존하는 것을 확실히 보라."
  • "또한 너는 많은 경험에 의해 지탱된 습관에 이끌려 이 길을 가면서, 분별없는 눈과 소란스러운 귀와 혀를 움직이지 않도록 하라. 너는 오직 이성(로고스)에 의해서만이 나에 의해 말해진 이설 많은 논박을 판정해야 한다."


이는 경험보다 이성(로고스)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3. 2. 억견의 길

δόξαςel의 길'에서는 감각을 통해 인식되는 다양성과 변화를 다루지만, 이는 참된 실재가 아닌 오류라고 주장한다.[34] 파르메니데스는 '빛'과 '밤'이라는 두 가지 원소를 통해 세계의 현상을 설명하려 했다.[36] 그러나 이는 '진리의 길'과는 모순되는 내용이다.

파르메니데스는 "불꽃의 에테르 불"(B 8.56)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얇고, 맑고, 자기 동일적이며, 다른 하나는 "무지한 밤"으로, 몸은 두껍고 무겁다고 하였다. 우주론은 원래 그의 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세계의 기원과 작동을 설명했다.

또한, 파르메니데스는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영향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아리스토텔레스형이상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34] 특히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37]라는 대화편에서 파르메니데스를 등장시켜 자신의 이데아론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았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파르메니데스의 불생불멸 사상과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 사상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은 레우키포스, 데모크리토스 등의 원자론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파르메니데스의 '있음'을 원자에, '없음'을 허공에 대응시켜 자신들의 이론을 전개했다.[34]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 질료와 형상의 조합으로 자연의 변화를 설명했는데, 제일 질료의 개념은 엘레아 학파의 "존재"를 연상시킨다.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하는 초월적인 "본질 존재"로서의 "있는 것"(τὸ ἐόν|토 에온el)은 플라톤의 《국가》(의 선의 이데아)》, 《티마이오스》(의 데미우르고스)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최고선)이나 신플라톤주의플로티노스 등의 "일자"(τὸ ἕν|토 헨el), 영지주의, 기독교신학(부정신학 포함)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34]

5. 비판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는 고대 희랍어의 언어적 오류를 바탕으로 한 부분이 있어, 이후 많은 논쟁을 낳았다는 비판을 받는다.[1] 그의 '있음' 개념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변화와 다양성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과 '억견의 길'은 '진리의 길'과 모순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그의 사상 체계의 일관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1]

참조

[1] 서적 Diogenes Laert, IX 21
[2] 서적 Met.
[3] 문서 Suidas
[4] 서적 Diogenes Laertius, IX, 23
[5] 서적 Parmenides 127 BC
[6] 서적 Early Greek Philosophy
[7] 서적 Plato and Parmenides
[8] 서적 History of Greek Philosophy
[9] 서적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10] 서적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11] 서적 Parmenides
[12] 서적 Siendo se es
[13] 서적 Der Dialog
[14] 서적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15] 서적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16] 서적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17] 서적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18] 서적 Ges. Abh., 1, 62, n. 1.
[19] 서적 Parmenides
[20] 서적 The Theology of the Early Greek Philosophers
[21] 서적 Strabo's Geography
[22] 웹사이트 IG XIV http://inscriptions.[...]
[23] 서적 Parménide : Le Poème: Fragment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96
[24] 간행물 Parmenide medico Ouliádes 1966
[25] 서적 Poema
[26] 서적 Poema
[27] 서적 Being one is
[28] 서적 Parmenides 127 BC
[29] 서적 Deipnosophistae
[30] 서적 Theaetetus; Sophist
[31] 서적 哲学と宗教全史 ダイヤモンド社 2019
[32] 문서 자연에 관하여
[33] 웹사이트 Parmenides https://plato.stanfo[...]
[34] 웹사이트 パルメニデスとは https://kotobank.jp/[...]
[35] 서적 すごい物理学講義 河出文庫 2019
[36] 서적 ギリシア哲学者列伝
[37] 서적 プラトン全集4 パルメニデス・ピレボス 岩波書店
[38] 문서 딜스-크란츠 단편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