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독일 이데올로기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독일 이데올로기』는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45년부터 1846년 사이에 집필한 저작으로, 헤겔 철학의 관념론을 비판하고 유물론적 역사관을 제시한다. 이 책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전에 따른 사회 변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형성 등을 분석하며, 역사적 유물론의 기초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고는 여러 판본으로 출판되었으며, 편집 과정에서 논쟁이 있었다. 주요 내용은 역사적 유물론 정립, 이데올로기 비판, 분업과 대공업의 영향 분석 등이며, 한국 사회에서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사회 변혁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책 - 성가족 (책)
    《성가족》은 1844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청년 헤겔 학파의 관념론을 비판하고 유물론적 입장을 밝히기 위해 공동 집필한 책으로, "비판적 비판의 비판"이라는 부제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과 인간 소외 현상 분석, 공산주의 운동의 필요성을 담고 있다.
  •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책 - 공산당 선언
    《공산당 선언》은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동 집필한 정치 팸플릿으로, 자본주의 비판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주장하며, 계급 투쟁의 역사 속에서 자본주의 모순과 몰락을 분석하고 세계 혁명을 촉구하여 사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작가 - 동물 농장
    《동물농장》은 조지 오웰의 소설로, 소련의 전체주의를 풍자하며 돼지들의 권력 투쟁과 독재로 혁명이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 권력의 부패와 인간 본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 작가 - 자본론
    《자본론》은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원리와 모순을 분석한 정치경제학 비판서로, 엥겔스에 의해 제2권, 제3권이 출판되어 현재 세 권으로 통용되며,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구조와 모순을 밝히고 노동 착취를 핵심 동력으로 규정하여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담고 있다.
  • 마르크스주의 책 - 고타 강령 비판
    《고타 강령 비판》은 1875년 카를 마르크스가 독일 사회민주노동당의 강령 초안을 비판하며 작성한 문서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과 공산주의 사회의 단계별 발전을 논하며, 마르크스 사후에 엥겔스에 의해 공개 출판되었다.
  • 마르크스주의 책 -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은 마르크스가 경제학 비판을 중심으로 체계화한 경제학 초고로, 그의 경제학 연구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으며, 자본주의 이전 사회 분석과 공산주의 혁명 조건 고찰을 포함하여 학계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 이데올로기 - [서적]에 관한 문서
독일 이데올로기
마르크스 친필 원고의 첫 페이지
마르크스 친필 원고의 첫 페이지
기본 정보
저자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국가독일
언어독일어
주제철학
작품 정보
출판사미상
발행일미상
미디어 종류미상
페이지미상
ISBN미상
OCLC미상
이전 작품미상
다음 작품미상

2. 내용 요약

마르크스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당시 독일 철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론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은 관념론적 시각, 즉 의식이 현실을 규정한다는 생각을 비판하며, 오히려 인간의 물질적 생산 활동과 사회적 관계가 의식(사상, 종교, 도덕 등)을 결정한다는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을 제시한다.[6]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각 시대의 지배계급은 물질적 생산 수단뿐 아니라 정신적 생산 수단까지 장악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이데올로기를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사상처럼 포장한다. 이들은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실제로는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허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그 허구성을 폭로하고자 했다.[7][8]

2. 1. 청년 헤겔학파 비판

당시 독일은 강권적인 프로이센 정권 아래 있었기에, 혁명 운동이 프랑스처럼 현실 정치나 경제 투쟁으로 직접 나타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혁명적 열망은 "관념적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철학 분야에서 표현되도록 귀결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헤겔 철학이 있었으며, 헤겔 학파가 해체되면서 혁명적인 사상가들은 "젊은 헤겔파(청년 헤겔학파)"를 형성했다. 이들은 성경의 "허위"를 폭로하는 등 종교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전개했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처럼 유물론으로 나아간 인물도 있었으며, 마르크스엥겔스 역시 한때 이 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철학적 투쟁의 한계를 느끼고 청년 헤겔학파와 결별하여, 현실의 정치·경제 개혁을 지향하는 공산주의 사상으로 나아갔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 청년 헤겔학파를 비판할 목적으로 쓰였다. 주요 비판 대상은 포이어바흐, 브루노 바우어, 막스 슈티르너였으며, 책의 구성 역시 이 세 인물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었다. "성 브루노", "성 막스"처럼 이름 앞에 "성(聖)"자를 붙인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들의 사변적 태도를 중세 종교 회의에 빗대어 풍자적으로 비판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또한, 제2권에서는 당시 독일에서 퍼져 있던 사회주의 사상의 한 갈래인 "진정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도 시도되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관념 속 투쟁을 현실 투쟁으로 착각하는 청년 헤겔학파의 "전도된 의식"을 조롱하며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이는 이후 마르크스주의에서 관념 형태 일반을 가리키는 '이데올로기' 개념과는 구별되는 초기 용법이다.)

2. 2. 역사적 유물론의 기초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당시 독일 철학(독일 이데올로기)이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공론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며, 실천적인 사회적·역사적 인간을 참된 인간상으로 제시한다. 이들은 인간 역사의 기초가 물품 생산과 관련된 인간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즉, 인간의 의식이나 사상이 생활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물질적인 생활 조건이 종교, 철학, 도덕 등 다양한 의식 형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산 과정, 인간관계, 의식 형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고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역사를 이러한 발전 단계로 파악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관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스스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동물과 구별된다. 개인의 존재 방식은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지와 밀접하게 연관되며, 개인의 본질은 생산을 규정하는 물질적 조건에 달려있다.[6] 한 사회의 생산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노동 분업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로 알 수 있으며, 노동 분업과 소유 형태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존재한다.

사회적으로 볼 때, 지배 계급은 사회의 물질적 생산 수단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지적 힘)까지 통제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맞는 사상을 만들어 퍼뜨리며, 새로운 지배 계급이 등장하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상을 마치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이익인 것처럼 포장하여 주입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지배 계급의 사상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라는 주장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7]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는 기반과 상부구조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역사의 발전은 경제적, 물질적 관계인 기반의 변화를 반영한다. 기반이 변화하면, 혁명적 계급이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등장하여 사회의 상부구조(정치, 법, 문화, 이데올로기 등)를 새롭게 형성한다. 혁명 과정에서 혁명 계급은 자신들의 사상이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노력하며, 혁명 성공 후에는 이러한 사상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든다. 이렇게 상부구조를 통해 퍼지는 사상이 바로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경제적 관계를 신비화하고 노동자 계급을 허위 의식 상태에 빠뜨려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8] 마르크스는 "도덕, 종교, 형이상학 등 모든 이데올로기와 그에 상응하는 의식 형태는 더 이상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역사를 갖지도, 발전을 갖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간들이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과 물질적 교류를 발전시키면서, 자신들의 현실적 존재와 더불어 자신들의 사유와 그 사유의 산물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원시 축적 과정이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소외시킨다는 점도 지적한다.[9]

이 저작의 가장 큰 의의는 역사적 유물론의 기초를 세웠다는 점이다. 기반(생산관계)과 상부구조(국가 및 다양한 의식 형태)라는 핵심 개념이 등장하며, 이 둘의 관계가 여러 측면에서 설명된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지금까지 모든 역사적 단계에 존재했던 생산력에 의해 조건 지워지고, 또 그것을 다시 조건 짓는 교류 형태는 시민사회"라고 규정하며, "이 시민사회가 모든 역사의 진정한 화덕이자 무대"라고 선언한다. 이는 현실적인 생산관계와 시민사회를 무시하고 정치적 사건에만 주목했던 기존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사회에서 지배적인 사상이란 무엇인가"를 명확히 밝힌다. "지배 계급의 사상은 어느 시대에나 지배적인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적인 물질적 힘인 계급은 동시에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힘이다." 이러한 지배 사상은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가치 중립적인 모습을 띠기 때문에, 그 본질을 폭로하기 위한 비판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관점에서 당시 청년 헤겔파였던 막스 슈티르너브루노 바우어의 사상이 실제로는 특정 사회 계급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을 폭로하고자 했다.

더 나아가, 분업의 발전을 동반한 마누팍투어(공장제 수공업)와 대공업의 발생 과정, 그리고 이것이 사회 구조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특히 대공업은 각 나라와 개인을 전 세계적인 상호 의존 관계로 묶어 이전의 폐쇄적인 상태를 해체함으로써 처음으로 세계사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한다. 또한 대공업은 자연과학을 자본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13]

이 외에도 계급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개인의 의식과 활동이 어떻게 혁명으로 이어지는지, 혁명을 통해 지배적인 사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이 차례로 설명된다. 이후 마르크스는 "시민사회"를 더 깊이 분석하기 위해 경제학 연구에 집중하면서 역사적 유물론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줄어들었다. 따라서 『독일 이데올로기』에는 마르크스가 비교적 자유롭게 개진했던 역사적 유물론의 다양한 명제들이 담겨 있어 후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다만,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제시된 개념 중 일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스스로 이후 저작에서 수정하거나 폐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생산 과정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를 지칭하는 "교통 형태"(Verkehrsformde)라는 용어는 이후 저작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또한 사회 발전의 기초를 "분업"으로 보고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분업을 극복하고 전인적인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보았지만, 이러한 혁명론은 후기 저작인 『자본론』에서는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회 발전 단계에 대한 구분 역시 "부족 소유", "고대적 공동체·국가 소유", "봉건적 소유" 등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는 생산관계 자체보다는 법적 표현인 "소유" 형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후대의 분석에 비하면 다소 미흡한 측면이 있다.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 집필 13년 후 출간한 『자본론』 서문에서 브뤼셀 망명 시기(『독일 이데올로기』 집필 시기) 연구를 통해 역사 유물론적 관점에 대한 결론을 얻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2. 3. 이데올로기 비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당시 독일의 철학적 의식이 사회 기반과 동떨어져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공론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혁신적인 사상이라도 낙후된 독일에 들어오면 이론적인 문제로만 취급된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독일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실천적인 사회·역사적 인간을 참된 인간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물품 생산과 관련된 인간관계, 즉 물질적 생활의 생산 방식이 기초를 이룬다. 종교, 철학, 도덕 등 다양한 의식 형태는 이러한 물질적 기초 위에서 결정된다. 즉,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생활(물질적 생산 활동)이 의식의 여러 형태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생계 수단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동물과 구별되며, 개인의 본질은 그들의 생산 방식과 내용, 즉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6] 생산력의 발전 정도는 노동 분업의 진척 수준으로 나타나며, 노동 분업과 소유 형태는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배계급은 사회의 물질적 생산 수단을 소유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 생산 수단까지 장악하여 자신들의 사상을 사회 전체의 지배적인 사상으로 만든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마치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이익인 것처럼 포장하여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환상에 불과하며, 지배계급의 사상은 본질적으로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사회가 지배계급의 필요에 따라 조직되는 한 계속 유지될 것이다.[7]

마르크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기반과 상부구조 개념을 활용한다. 역사의 발전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이루어진 경제적 토대(기반)의 변화를 반영한다. 기반이 변화하면, 새로운 혁명적 계급이 등장하여 기존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새로운 사회의 상부구조(정치, 법률, 문화, 이데올로기 등)를 형성한다. 혁명 과정에서 혁명적 계급은 자신들의 사상이 마치 인류 전체에게 보편적으로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혁명 성공 후에는 이러한 사상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한다. 이렇게 사회의 상부구조를 통해 전파되는 사상이 바로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관계를 상품 숭배와 같은 방식으로 신비화하고, 노동자 계급을 허위 의식 상태에 빠뜨려 기존 질서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8] 마르크스는 "도덕, 종교, 형이상학 등 모든 이데올로기와 그에 상응하는 의식 형태는 더 이상 독립적인 외관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역사를 갖지도, 발전을 갖지도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물질적 생산과 물질적 교류를 발전시키는 인간들이 자신의 현실적 존재와 함께 자신의 사유와 사유의 산물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원시 축적이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소외시킨다’는 점을 논한다.[9]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특히 청년 헤겔학파(젊은 헤겔파)를 주요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 당시 독일에서는 프로이센 정권의 강권 통치 하에서 현실 정치·경제 투쟁이 어려웠기 때문에, 헤겔 철학의 영향 아래 철학적 비판, 특히 종교 비판의 형태로 "관념적 혁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브루노 바우어, 막스 슈티르너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 한때 이 그룹에 속했지만, 이러한 철학적 투쟁의 한계를 느끼고 현실의 정치·경제 개혁을 지향하는 공산주의 사상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청년 헤겔학파의 사상이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관념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이들의 사상을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했다. 이는 현실 투쟁을 관념에서의 투쟁으로 착각하는 '전도된 의식'을 비판하는 의미였다. (후에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는 관념 형태 일반을 지칭하게 되지만, 이 저작에서의 용법과는 구별된다.)

이 책은 역사적 유물론의 기초를 다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생산관계로서의 시민사회가 역사의 진정한 토대이며, 이를 무시하고 정치극에만 주목하는 기존 역사관의 한계를 지적했다. 또한, "지배계급의 사상이 각 시대의 지배적 사상"임을 밝히고, 이러한 사상이 가치중립적인 외피를 쓰고 나타나므로 이를 폭로하는 투쟁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를 통해 슈티르너나 바우어 등의 사상이 실제로는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더불어 분업의 발전에 따른 마누팍투어와 대공업의 발생 과정, 그리고 이것이 사회 체제와 세계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특히 대공업이 전 세계를 상호 의존적으로 만들고 세계사를 창출했으며[13], 자연과학을 자본에 종속시켰다고 지적했다. 계급 형성 과정, 개인의 의식과 혁명의 관계, 혁명에 따른 지배 사상의 변화 등도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 사상 발전 과정의 초기 저작으로서 한계도 지닌다. 예를 들어, 사회 관계를 지칭하는 "교통 형태"라는 용어는 이후 저작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사회 발전의 기초를 분업으로 보고 공산주의를 분업의 극복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자본론』에서는 다르게 나타난다. 사회 발전 단계 구분 역시 소유 형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후대의 분석에 비해 미흡한 점이 있다. 마르크스는 이 저작 집필 이후 경제학 연구에 몰두하며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줄어들었지만, 『독일 이데올로기』는 그의 사상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으로 남아 있다.

3. 성립과 출판의 역사

원고 첫 페이지


『독일 이데올로기』는 1845년과 1846년에 걸쳐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벨기에 브뤼셀에서 공동으로 집필한 저작이다. 원고의 서문과 일부 수정은 마르크스가 직접 했고, 대부분은 엥겔스의 필체로 작성되었으며, 요제프 바이데마이어와 모세스 헤스도 일부 집필에 참여했다. 독일어 원본은 약 700페이지 분량에 달한다.[2]

최근의 MEGA 연구에 따르면, 이 원고는 처음부터 단일 저작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 헤스, 게오르크 베르트, 빌헬름 바이트링 등 다른 저자들도 참여한 잡지 프로젝트의 일부로 구상되었다. 집필 초기 목표는 체계적인 이론 정립보다는 청년 헤겔파 및 동시대 사회주의자들과의 논쟁, 특히 막스 슈티르너의 사상에 대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5]

원고는 완성되었으나 당시 출판사를 찾지 못해 출판이 거절되었고, 1932년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훗날 『자본론 비판』 서문에서 이 시기를 회고하며 "원고를 쥐들에게 관대하게 맡겨 비판하게 내버려 두었다"고 자조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비록 출판에는 실패했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집필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사상적 입장을 명확히 하는 목적은 달성했다고 여겼다.

마르크스 사후, 원고는 엥겔스에게 넘어갔으나 그 역시 출판하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엥겔스가 사망한 후에는 독일 사회민주당으로 소유권이 넘어갔지만, 여기서도 원고가 분산되는 등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당 간부였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극히 일부 내용만을 잡지 「사회주의 문서」에 간헐적으로 연재하는 데 그쳤다.

이후 러시아 혁명을 거치며 원고 사본이 소련으로 넘어가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출판 작업이 시작되었고, 1926년 랴자노프판을 시작으로 여러 판본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초기 판본부터 편집상의 문제와 원본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어 왔다.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 참고)

3. 1. 러시아 혁명 이후의 출판

러시아 혁명 이후, 원고 사본이 소련 정부에 넘어가면서 모스크바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Институт К. Маркса и Ф. Энгельсаru) 주도로 본격적인 출판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전까지 원고는 마르크스 사후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넘어갔다가, 엥겔스 사후에는 독일 사회민주당으로 넘어갔으나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분산되었다. 당 간부였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극히 일부 내용(제1권 제3편 성 막스 상편)만을 잡지 「사회주의 문서」에 간헐적으로 연재하는 데 그쳤다.

소련으로 넘어간 원고는 다비드 랴자노프의 편집 하에 연구소 기관지 ''"Marx-Engels Archiv"'' 제1권(1926년)을 통해 처음으로 상당 부분(제1권 제1편)이 공개되었다. 이를 '랴자노프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후 랴자노프가 소련 공산당에 의해 숙청당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연구소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했고, 1932년에는 블라디미르 아도라츠키(Vladimir Adratzky)가 편집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arx/Engels historisch-kritische Gesamtausgabede, 약칭 구 MEGA) 제1부 제5권으로 새로운 판본(아드라츠키판)이 간행되었다.

랴자노프판은 문헌학적 검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원고 형태를 최대한 보존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아드라츠키판은 편집자가 원고 순서를 임의로 바꾸는 등 자의적인 편집을 가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위서에 가깝다는 비판을 1960년대부터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비판 이후 여러 편집 방침에 따라 다양한 판본의 『독일 이데올로기』가 출간되었다.

'''주요 판본 목록'''
판본연도편집자/역자/감수자비고
랴자노프판1926년다비드 랴자노프Marx-Engels Archiv 제1권, 제1권 제1편 수록
아드라츠키판 (구 MEGA)1932년블라디미르 아도라츠키제1부 제5권, 편집상 문제 지적됨
바가투랴판1965년바가투랴러시아어판
독일어 신판1966년브루실린스키 감수
화사키 고헤이 역·합동신서판1966년화사키 고헤이일본어 번역판
신MEGA[11] 시행판1972년신 MEGA
히로마츠 와타루 편역·가와데쇼보 신사판1974년히로마츠 와타루일본어 번역/편집판
하토리 후미오 감수판1996년하토리 후미오 감수 (시부야 타다시·하시모토 나오키 역)일본어 번역판
시부야 타다시 편역판1998년시부야 타다시일본어 번역/편집판
히로마츠 와타루 편역·이와나미 문고 신판2002년히로마츠 와타루 편역, 고바야시 마사토 보역일본어 번역/편집판 (개정)



현재 원고의 대부분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사회사 국제 연구소(Internationaal Instituut voor Sociale Geschiedenis, 약칭 IISG)에 보관되어 있으며, 마르크스가 직접 작성한 서문(Vorrede) 원고만 모스크바의 현대사 문서 보관 연구 러시아 센터(약칭 RC)에 소장되어 있다.

3. 2. 다양한 판본과 편집 문제

『독일 이데올로기』는 맑스엥겔스가 공동 집필했으나 생전에 출판되지 못하고 사후 여러 판본으로 출간되었다. 맑스는 생전에 원고가 출판되지 못한 것을 두고 "원고를 쥐들에게 관대하게 맡겨 비판하게 내버려 두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원고는 맑스 사후 엥겔스를 거쳐 독일 사회민주당으로 넘어갔으나 일부만 공개되다가, 러시아 혁명 이후 그 사본이 소련으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인 출판 작업이 이루어졌다.

원고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여러 편집자의 손을 거쳐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되었으며, 각 판본은 편집 방침과 내용 구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최초로 원고의 거의 전체 내용을 담아 출판된 것은 1926년 모스크바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에서 다비드 랴자노프가 편집하여 내놓은 '랴자노프판'이다. 이 판본은 제1권 제1편만을 수록했지만, 문헌학적 검토가 부족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원고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전달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랴자노프가 소련 공산당의 숙청을 당한 후, 연구소는 1932년 블라디미르 아드라츠키(Vladimir Adratzky)의 편집 하에 새로운 판본, 소위 '아드라츠키판'을 구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 Marx-Engels Gesamtausgabede) 제1부 제5권으로 간행했다. 아드라츠키판은 원고의 순서를 임의로 바꾸고 내용을 재구성하는 등 편집자의 자의적인 개입이 심해, 원본의 의도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사실상 위서에 가깝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아드라츠키판의 편집 방식에 대한 비판이 1960년대에 제기되면서, 이후 『독일 이데올로기』는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다양한 편집 방침에 따라 새롭게 출간되었다. 주요 판본은 다음과 같다.

주요 판본 목록
판본명출판 연도편집자/특징
랴자노프판1926년다비드 랴자노프, 최초의 거의 완전한 간행 (제1권 제1편), 문헌학적 검토 부족
아드라츠키판 (구 MEGA)1932년블라디미르 아드라츠키, 자의적 편집으로 비판받음
바가투랴판1965년러시아어
독일어 신판1966년브루실린스키 감수
화사키 고헤이 역·합동신서판1966년일본어 번역/편집
신MEGA 시행판[11]1972년새로운 전집(신 MEGA)의 일부
히로마츠 와타루 편역·가와데쇼보 신사판1974년일본어 번역/편집
하토리 후미오 감수판1996년일본어 번역/편집 (시부야 타다시·하시모토 나오키 역)
시부야 타다시 편역판1998년일본어 번역/편집
히로마츠 와타루 편역·이와나미 문고 신판2002년일본어 번역/편집 (고바야시 마사토 보역)



대한민국에서는 1989년 김대웅이 번역한 판본(두레)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현재 원본 원고는 맑스가 직접 작성한 서문(Vorredede)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암스테르담 사회사 국제 연구소(IISG, Internationaal Instituut voor Sociale Geschiedenisnl)에 보관되어 있으며, 서문 원고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현대사 문서 보관 연구 러시아 센터(RC)에 소장되어 있다.[2]

3. 2. 1. 원고의 구성과 편집 논쟁



『독일 이데올로기』는 1845년과 1846년에 맑스엥겔스브뤼셀에서 공동으로 집필했으나, 그들의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하고 1932년에야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원고의 서문과 일부 수정 및 추가 내용은 맑스가 직접 작성했으며, 대부분은 엥겔스의 필체로 쓰여졌다. 하지만 제2권 5장과 제1권 3장의 일부는 요제프 바이데마이어가 작성했고, 제2권 5장은 모세스 헤스가 집필한 것을 맑스와 엥겔스가 편집했다. 독일어 원본 원고는 약 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2]

최근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MEGA, Marx-Engels-Gesamtausgabede) 간행을 위한 연구는, 책의 첫 부분에 나타나는 소위 "역사 유물론적 개념"의 체계적인 모습 상당 부분이 후대에 모스크바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 (Институт К. Маркса и Ф. Энгельсаru)에 의해 편집 과정에서 만들어졌음을 밝혀냈다.[3][4] 이는 원고의 원래 모습과 후대의 편집 방향에 대한 중요한 논쟁점을 제시한다.

MEGA 제1권의 출판 서문에서는 원고의 성격과 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기존의 이해를 수정한다.

"맑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 원고를 단독 저서로 기획한 것이 아니라, 모세스 헤스, 게오르크 베르트, 빌헬름 바이트링 등 다른 저자들도 참여하는 잡지 프로젝트의 일부로 집필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계획했던 분기별 간행물을 위해 편집한 롤란트 다니엘스의 원고가 이 책(MEGA)에서 처음으로 인쇄된다. 내용적으로 볼 때, 초기 목표는 자신들의 이론적 입장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헤겔주의자들과 동시대 사회주의자들과의 논쟁적인 토론이었다. 특히 맑스와 엥겔스 비판의 주요 대상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추정되었던) 파이어바흐가 아니라, 급진적 개인주의 저작 『유일자와 그의 소유』(1844)의 저자 막스 슈티르너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난 세기 독자들이 'I. 파이어바흐' 장으로 알고 있던 내용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는 슈티르너와의 논쟁 과정에서 작성되었음이 증명되었다. 이는 '이데올로기'나 '소시민'과 같은 핵심 개념들의 기원에도 해당된다. 또한, 원고에는 맑스와 엥겔스가 자신들의 입장을 개진하는 수많은 여담(독일 부르주아지의 역사적 발전, 지적 지배와 물질적 지배의 관계, 사유재산의 역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논의 과정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견해를 별도의 장으로 제시하고 이를 파이어바흐에 대한 비판과 결합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를 위해 슈티르너와 바우어 비판 텍스트의 핵심 부분을 원래의 맥락에서 분리하여 재구성했다. 이러한 텍스트의 발전 과정은 MEGA의 장치 권(Apparatband)에서 상세히 설명되며, 변형에 대한 논의적 제시와 함께 제공되는 텍스트 비평 장치는 원고의 형성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특히 원고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긴밀한 협업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5]



이처럼 MEGA 연구는 『독일 이데올로기』가 단일하고 체계적인 저작이라기보다는, 특정 시기의 논쟁적 필요와 지적 탐구 과정 속에서 여러 저자들의 기여와 편집적 재구성을 거쳐 형성된 복합적인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이는 원고의 구성 방식과 편집의 역사, 그리고 텍스트 해석을 둘러싼 지속적인 논쟁의 배경이 된다.

4. 구성



『독일 이데올로기』는 1845년과 1846년 마르크스엥겔스브뤼셀에서 함께 집필했으나,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하고 1932년에야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책의 서문과 일부 수정 및 추가는 마르크스가 직접 작성했으며, 원고 대부분은 엥겔스의 필체이다. 제2권 5장과 제1권 3장의 일부는 요제프 바이데마이어가 작성했고, 제2권 5장은 모세스 헤스가 쓴 글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편집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 원고는 약 700페이지 분량에 달한다.[2]

최근 새롭게 진행된 Marx Engels Gesamtausgabe (MEGA) 연구에 따르면, 이 책은 처음부터 단행본 출판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모세스 헤스, 게오르크 베르트, 빌헬름 바이트링 등 다른 저자들도 참여하는 잡지 프로젝트의 일부로 기획되었다. 따라서 책의 내용은 청년 헤겔학파와 당시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논쟁적 비판이 주를 이루며, 특히 포이어바흐보다는 급진적 개인주의 저작 『유일자와 그의 소유』(1844)를 쓴 막스 슈티르너에 대한 비판에 상당 부분 할애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데올로기', '소시민'과 같은 핵심 개념들도 슈티르너와의 논쟁 과정에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3][4][5]

『독일 이데올로기』는 크게 두 권으로 구성된다. 제1권은 주로 포이어바흐, 브루노 바우어, 막스 슈티르너 등 청년 헤겔학파 사상가들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역사 유물론의 기초적인 아이디어들이 제시된다. 제2권은 당시 독일 지식인 사회에서 유행하던 진정 사회주의(wahrer Sozialismusdeu) 사조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원고는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지 못했다. 특히 제1권의 핵심적인 "제1편 포이어바흐" 부분은 여러 초고 묶음(보겐)으로 나뉘어 있어 편집 과정에서 배열 순서 등에 대한 연구자들의 해석이 엇갈리는 등 복잡한 복원 문제가 있다. 제2권 역시 일부 장(제2편, 제3편)의 초고가 유실되었거나 애초에 쓰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4. 1. 제1권

제1권은 다음과 같은 편들로 구성된다.

  • 제1편 포이어바흐(Feuerbach)
  • 라이프치히 종교 회의(Leipziger Religionsgespräch)
  • 제2편 성 브루노(Heiliger Bruno)
  • 제3편 성 막스(Heiliger Max)
  • 라이프치히 종교 회의 종결(Leipziger Religionsgespräch Ende)


최근 ''Marx Engels Gesamtausgabe'' (MEGA) 연구에 따르면, 제1권의 상당 부분, 특히 'I. 포이어바흐' 장의 내용은 원래 막스 슈티르너와의 논쟁 과정에서 작성되었으며, 초기 비판의 주요 대상은 포이어바흐가 아닌 슈티르너였다는 점이 밝혀졌다.[3][4][5]

특히 "제1편 포이어바흐" 부분은 원고 복원 과정에서 연구자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으며, 편집 방식에 따라 구성이 달라진다. 랴자노프(Ljazanov)판과 이를 수정한 아드라츠키(Adratzki)판의 구성은 게오르기 바가투리야(Г. А. Багатурия), 히로시마 와타루(広松 渉) 등의 연구를 통해 사실상 "초고의 개찬"에 해당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제1편 포이어바흐" 초고는 총 25부의 '보겐'(Bogen)으로 구성된다. 보겐은 큰 종이를 반으로 접어 4페이지 분량을 만드는 단위이며, 각 보겐에는 고유 번호와 별도의 페이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연구자들은 보겐의 앞면(1, 2페이지)을 "제1지엽", 뒷면(3, 4페이지)을 "제2지엽"이라고 부른다.

초고는 크게 "큰 묶음"과 "작은 묶음"으로 나뉜다. "큰 묶음"은 17개의 보겐으로 구성되며, 내용상 세 개의 초고 덩어리로 볼 수 있다. 보겐 번호는 엥겔스가, 페이지 표기는 마르크스가 기입했다.

보겐 번호 (엥겔스 필적)페이지 표기 (마르크스 필적)
{6}8 - 11
{7}12 - 15
{8}16 - 19
{9}20 - 23
{10}a면 사선 말소, b - d면: 24 - 26
{11}a - c면: 27 - 29, d면 페이지 표기 없음
{20}a면 사선 말소, b - d면: 30 - 32
{21}a·b면: 33 - 34, c면 말소, d면: 35
{84}40 - 43
{85}44 - 47
{86}48 - 51
{87}52 - 55
{88}56 - 59
{89}60 - 63
{90}64 - 67
{91}68 - 71
{92}a면: 72, b면 문장 이어지나 페이지 표기 없음, 제2지엽 분실



엥겔스가 매긴 보겐 번호가 {11}에서 {20}으로 건너뛰지만, 마르크스가 매긴 페이지 표기는 29에서 30으로 이어지는 점은 엥겔스가 초고를 작성하고 마르크스가 편집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독일 이데올로기』 초고 대부분은 엥겔스가 집필했다. 또한, 마르크스의 페이지 표기에는 1-7페이지와 36-39페이지가 누락되어 있다.

"작은 묶음"은 8개의 보겐으로 구성되며, 이 보겐들을 "큰 묶음"의 어느 부분에 배치할 것인지가 편집상의 주요 쟁점이다.

보겐 번호페이지 표기 및 내용 특징
{1}B[12]: 장의 서두 부분 (제1지엽 ab면만의 반 보겐)
{2}B: {1}의 다른 초고
{1?}{1}, {2}의 다른 초고, 보겐 번호 없음
{2?}{1}, {2}의 다른 초고, 보겐 번호 없음
{3}E[12]: 이어지는 문장. {1}, {2}와 {5} 모두와 연결되지 않음.
{4}B: {3}으로부터 이어지는 문장. {1}, {2}와 {5} 모두와 연결되지 않음.
{5}B: 독립적인 문장. 내용상 11 - 16페이지의 다른 초고로 추정됨.
{?}반 보겐. 1962년 발견. {1}의 나머지 반 보겐으로 추측됨. "milie"로 시작하여 "Familie"(가족)의 일부로 추정되나 불확실.



{1}, {2}, {1?}, {2?}는 내용상 누락된 1-7페이지의 초고로 보는 데 연구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3}, {4} 초고의 배치 위치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히로시마 와타루는 누락된 36-39페이지의 초고로 보아 2002년 이와나미 문고 신편집판에 반영했으나, 1998년 신일본출판사의 시부야 타다시(渋谷正)판에서는 {1}, {2} 다음에 배치했다. {5} 초고 역시 판본에 따라 위치가 다르다.

참고로 2002년 이와나미 문고 신판(히로시마 와타루 편역, 고바야시 마사토 보역)의 편집 순서는 다음과 같으나, 이는 여러 해석 중 하나이다.

보겐페이지 표기/추정 내용
{1}(서두 부분)
{2}(서두 부분의 다른 초고?)
{5}(11 - 16페이지의 다른 초고?)
{6}8 - 11
{7}12 - 15
{8}16 - 19
{9}20 - 23
{10}a면 사선 말소, b - d면: 24 - 26
{11}a - c면: 27 - 29, d면 페이지 표기 없음
{20}a면 사선 말소, b - d면: 30 - 32
{21}a·b면: 33 - 34, c면 말소, d면: 35
{3}(36 - 39페이지의 초고?)
{4}(36 - 39페이지의 초고?)
{84}40 - 43
{85}44 - 47
{86}48 - 51
{87}52 - 55
{88}56 - 59
{89}60 - 63
{90}64 - 67
{91}68 - 71
{92}a면: 72, b면 문장 이어지나 페이지 표기 없음, 제2지엽 분실
{?}(서두 부분의 다른 초고?)



보겐의 판형(크기)은 네 종류가 있다.


  • A: 198mm × 313mm ({89} - {92})
  • B: 198mm × 315mm ({1?}, {2?}, {2}, {6} - {10})
  • C: 199mm × 319mm ({1}, {3} - {5}, {11}, {20}, {21})
  • D: 216mm × 345mm ({84} - {88})


마르크스가 작성한 "서문"의 판형은 198mm × 318mm이다.

4. 2. 제2권

제2권은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진정 사회주의'(wahrer Sozialismusger) 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존하는 제2권의 초고는 단편적인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2편과 제3편은 분실되었거나 애초에 쓰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 '''제1편'''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ger) 또는 진정 사회주의의 철학
  • '''제4편''' 카를 그륀(Karl Grün) 『프랑스벨기에의 사회 운동』(Die soziale Bewegung in Frankreich und Belgienger) 또는 진정 사회주의의 역사 서술
  • '''제5편''' “홀슈타인 출신의 게오르크 쿠르만 박사(Dr. Georg Kuhlmann aus Holsteinger)” 또는 진정 사회주의의 예언


특히 제5편은 모세스 헤스(Moses Hess)가 작성한 논문을 마르크스엥겔스가 편집하고 교정한 것으로, 엄밀히 말해 두 사람의 저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2]

5. 이 저작의 배경과 의의

당시 독일프로이센의 강권 통치 아래 있었기에, 프랑스처럼 현실 정치와 경제 투쟁으로 혁명 운동이 직접 나타나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현실 정치 투쟁 대신 철학 분야에서 "관념적 혁명"이라 할 만한 지적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헤겔 철학의 영향 아래 더욱 확산되었다. 헤겔 학파가 분화하면서 젊은 헤겔파와 같은 급진적 그룹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성경의 "허위"를 폭로하는 등 종교에 대한 철학적 비판에 집중했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처럼 유물론적 관점으로 나아간 사상가도 있었다. 마르크스엥겔스 역시 초기에는 이 젊은 헤겔파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점차 이러한 철학적 투쟁만으로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인식했다. 그들은 관념의 세계를 넘어 현실의 물질적 조건을 바꾸는 실천적 활동과 공산주의 사상으로 나아갔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러한 사상적 전환 과정에서 과거 동료였던 젊은 헤겔파, 특히 포이어바흐, 브루노 바우어, 막스 슈티르너 등의 관념론적 사유를 비판하기 위해 쓰여졌다. 책의 주요 내용은 이 세 사람에 대한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성 브루노", "성 막스"와 같이 풍자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그들의 사상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비판하고자 했다. 또한 제2권에서는 당시 독일 사회주의 사상의 한 흐름이었던 "진정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도 다루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관념에서의 투쟁이 현실 투쟁이라고 여기는 이러한 '전도된 의식'을 비판하며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했다. 이 저작에서 '이데올로기'는 현실의 물질적 기반과 유리된 공허한 관념 체계를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는 이후 마르크스주의에서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이데올로기 개념과는 구별된다.)

결론적으로 『독일 이데올로기』는 독일의 특수한 정치·사상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으며, 당시 지배적이던 관념론적 철학을 비판하고 현실의 물질적 생활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저작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청년 헤겔학파의 영향에서 벗어나 역사적 유물론의 기초를 마련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음을 보여준다.

5. 1. 역사적 유물론의 정립

『독일 이데올로기』는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역사적 유물론의 기초를 세운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독일의 상황은 혁신적인 서구 사상조차 사회 기반과 유리되어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철학적 공론으로만 취급되는 경향이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독일 이데올로기, 특히 청년 헤겔학파의 관념론적 사유를 비판하며 물질적 현실에 기반한 새로운 역사관을 제시하고자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인간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생산하기 시작할 때 동물과 구별된다고 보았다. 개인의 존재 방식은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개인의 본질은 생산을 규정하는 물질적 조건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6] 이들은 역사의 기초가 물품 생산과 관련된 인간관계, 즉 생산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이를 토대로 종교, 철학, 도덕 등 다양한 의식 형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의식으로부터 생활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생활로부터 의식의 여러 형태가 나오는 것이다." 라는 명제를 통해 물질적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물론적 관점을 명확히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산과정, 인간관계, 의식 형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고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며, 역사를 이러한 발전 단계로 파악하는 것이 참된 역사관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석을 위해 마르크스는 기반과 상부구조라는 개념 틀을 사용했다. 역사의 발전은 기반을 이루는 경제적, 물질적 관계의 변화를 반영한다. 기반이 변하면, 혁명적 계급이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등장하여 상부구조(국가, 법, 정치, 이데올로기 등)를 새롭게 형성한다. 이때 혁명적 계급은 자신들의 사상이 마치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도록 노력하며, 혁명 성공 후에는 이러한 사상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생산관계와 시민사회가 역사 단계를 규정하며, 이것이 "모든 역사의 진정한 화덕이자 무대"라고 주장하며, 현실 관계를 무시하고 정치극에만 주목하는 기존 역사관의 한계를 지적했다.

사회의 물질적 힘을 장악한 지배 계급은 동시에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힘, 즉 이데올로기를 통제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맞는 사상을 생산하고 퍼뜨리며, 지배 계급이 바뀌면 지배적인 사상도 변화한다. 새로운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상을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이익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것이 실제로는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를 감추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7] 지배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경제적 관계를 신비화하고 노동자 계급에게 허위 의식을 심어줌으로써, 기존의 계급 관계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8] 마르크스는 "도덕, 종교, 형이상학, 나머지 모든 이데올로기와 그에 상응하는 의식 형태는 더 이상 독립적인 외관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역사도 발전도 없지만, 인간은 자신의 물질적 생산과 물질적 교류를 발전시키면서 자신의 실존과 더불어 자신의 사고와 집단 사고의 산물을 변화시킵니다."라고 서술하며 물질적 생산 활동이 인간의 의식과 사상을 변화시킨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배 계급의 사상은 흔히 가치 중립적인 형태로 나타나기에, 이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며, 『독일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관점에서 슈티르너나 바우어 같은 사상가들의 주장이 실제로는 특정 계급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생산력의 발전 정도는 노동 분업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로 나타나며, 노동 분업은 소유 형태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다. 특히 마누팍투어와 대공업의 발달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공업은 전 세계를 서로 의존하게 만들고 각 국민의 고립성을 해체하며 처음으로 세계사를 만들어냈다고 보았다. 또한 대공업은 이데올로기, 종교, 도덕 등을 약화시키거나 허울뿐인 것으로 만들고, 자연과학을 자본의 필요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13]

『독일 이데올로기』는 역사적 유물론의 초석을 다졌지만, 여기서 제시된 개념 중 일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스스로 이후 저작에서 수정하거나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생산 과정에서의 사회 관계를 지칭하던 "교통 형태"(Verkehrsformde)라는 용어는 이후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분업의 극복을 공산주의 혁명의 핵심으로 보았던 관점도 『자본론』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졌다. 사회 발전 단계에 대한 구분(부족 소유, 고대 공동체·국가 소유, 봉건적 소유 등) 역시 생산관계 자체보다는 법적 표현인 "소유" 형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후대의 분석에 비하면 초기적인 형태를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작은 마르크스가 경제학 연구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전, 역사적 유물론의 핵심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펼쳐 보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서문에서 『독일 이데올로기』를 집필했던 브뤼셀 시기 연구를 통해 중요한 결론에 도달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원시 축적 과정이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소외시킨다는 문제도 다루고 있다.[9]

5. 2. 이데올로기 비판의 의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당시 독일 철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론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혁신적인 사상이라도 독일의 낙후된 사회 현실 속에서는 사회 기반과 유리되어 추상적인 이론 문제로만 다뤄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마르크스는 공허한 철학적 논의 대신,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실천적인 사회적·역사적 인간을 탐구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일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역사의 기초는 물품 생산과 관련된 인간관계, 즉 물질적 생산 활동이다. 인간은 생계를 위한 생산을 시작하면서 동물과 구분되며, 개인의 본질은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6] 종교, 철학, 도덕 등 다양한 의식 형태(상부구조)는 이러한 물질적 생산 관계(기반) 위에서 형성되고 발전한다. 즉, "의식으로부터 생활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생활로부터 의식의 여러 형태가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생산 과정, 인간관계, 의식 형태의 발전 단계를 파악하는 것이 참된 역사관이라고 보았다.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지를 분석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 수단을 소유한 지배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힘, 즉 사상의 생산과 분배를 통제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마치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이익인 것처럼 포장하여 제시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것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지배 계급의 사상이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한, 기존의 사회 질서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보았다.[7]

이러한 분석은 마르크스의 기반과 상부구조 개념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경제적, 물질적 관계인 기반이 변화하면, 기존의 지배 계급에 도전하는 새로운 혁명적 계급이 등장하여 사회 변혁을 이끈다. 이 과정에서 혁명적 계급은 자신들의 사상이 모든 인류에게 호소력을 갖는 보편적인 가치인 것처럼 제시하며, 혁명 성공 후에는 이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이렇게 형성된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경제적 관계를 신비화하고 피지배 계급에게 허위 의식을 심어줌으로써, 기존의 사회 구조와 노동 계급 착취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8] 따라서 도덕, 종교, 형이상학 등 모든 이데올로기는 독립적인 역사를 갖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과 교류의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부차적인 현상으로 간주된다.

결론적으로 『독일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의의는 역사적 유물론의 기초를 다지고, 사회의 물질적 기반(기반)과 의식 형태(상부구조)의 관계를 규명한 데 있다. 또한,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이 실제로는 특정 계급(지배 계급)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흔히 가치중립적인 모습으로 위장하기 때문에 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폭로하는 투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슈티르너나 바우어와 같은 당대 사상가들의 주장이 실제로는 특정 사회 세력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저작은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비판 이론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6.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참조

[1] 웹사이트 Marx & Engels Selected Works https://www.marxists[...] 2021-05-31
[2] 서적 Understanding Philosophy for AS Level Nelson Thornes 2003
[3] 웹사이트 Marx-Engels-Gesamtausgabe (MEGA) https://mega.bbaw.de[...] 2021-11-14
[4] 서적 Karl Marx, Friedrich Engels Gesamtausgabe (MEGA) Internationale Marx-Engels-Stiftung Amsterdam 2017
[5] 웹사이트 I/5 M/E - Marx-Engels-Gesamtausgabe (MEGA) https://mega.bbaw.de[...] 2023-08-13
[6] 서적 The German Ideology Hackett Publishing Co.
[7] 서적 The German Ideology Blackwell 1998
[8] 서적 The German Ideology Blackwell Publishing 2004
[9] 서적 The Whites are Enemies of Heaven: Climate Caucasianism and Asian Ecological Protection Duke University Press 2020
[10] 서적 ユーロ危機とギリシャ反乱 岩波書店 2016
[11] 문서 Zweite Marx - Engels - Gesamtausgabe 1975
[12] 문서 B, E
[13] 서적 ドイツ・イデオロギー 岩波書店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