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유물론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역사적 유물론은 헤겔의 관념사관과 달리 물질적 생산력을 역사 발전의 핵심 요인으로 간주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이다. 생산력의 발달에 따라 생산 관계가 변화하고, 이는 사회 구조 전체의 변화로 이어진다고 본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토대가 상부 구조를 결정하며, 생산 양식의 변화를 통해 역사가 진보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개념으로는 생산력, 생산 관계, 토대와 상부 구조, 계급 투쟁 등이 있으며, 원시 공산 사회, 고대 노예 사회, 봉건 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로의 발전을 제시한다. 역사 유물론은 계몽주의와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비판과 수정의 과정을 거쳤다. 대한민국에서는 역사학, 사회과학 연구에 영향을 미쳤으며, 진보 진영에서 긍정적으로 수용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마르크스주의 철학 - 토지개혁
토지 개혁은 정부 주도 또는 지원 하에 토지 소유권을 재분배하여 소수 지주로부터 경작자 개인에게 토지 소유권을 이전하는 정책으로, 정치적 성격이 강하며 사회적 불평등 해소, 경제 발전, 식량 안보 등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지만 생산성 저하, 부적절한 보상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위험도 내포한다. - 마르크스주의 철학 - 자유연합론
자유연합론은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노동자 개인이나 자치 집단에게 소유권을 이전하는 사회주의 사상으로, 사회적 평등, 협동, 노동자 자치를 강조하며 노동자들이 생산 과정에서 자율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체제를 지향한다. - 역사관 - 식민사관
식민사관은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를 왜곡한 역사 해석으로, 일선동조론, 정체성론, 타율성론 등을 통해 한국의 독자성과 주체성을 부정하고 사회의 낙후성과 종속성을 강조하며, 만선사관으로 한국사를 만주사의 일부로 왜곡하는 데 활용되었고, 민족사학 및 사회경제사학계의 비판적 검토를 통해 서구 중심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 역사관 - 휘그사관
휘그 사관은 역사를 진보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과거를 현재의 시각으로 판단하고 단선적인 발전 단계로 파악한다는 비판을 받는 역사 해석 방식이다. - 소련 공산당 - 볼셰비키
볼셰비키는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서 레닌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멘셰비키와 대립하며 러시아 혁명을 주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하고 소비에트 연방을 수립한 정치 세력이다. - 소련 공산당 - 장징궈
장징궈는 중화민국의 정치인이자 군인, 장제스의 아들이며, 권위주의 통치로 경제 성장을 이끌고 말년에는 민주화 기틀을 마련했으나, 비밀경찰 운영과 반체제 인사 탄압은 논란이 되는 1978년부터 1988년까지 중화민국 총통을 지낸 인물이다.
역사적 유물론 | |
---|---|
개요 | |
유형 | 역사 철학, 사회 이론 |
철학적 기반 | 변증법적 유물론 |
주요 인물 |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블라디미르 레닌, 마오쩌둥 |
핵심 개념 | |
생산력 | 기술, 노동, 자원 |
생산 관계 | 계급 구조, 재산 소유 |
경제적 토대 | 생산 방식 |
상부구조 | 정치, 법률, 문화, 이데올로기 |
계급 투쟁 | 사회 변혁의 동력 |
모순 | 사회 발전의 원동력 |
역사 발전 단계 |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 |
역사적 발전 | |
사회 변동 | 생산력 발전과 생산 관계 사이의 모순으로 인한 계급 투쟁의 결과 |
기술 발전 | 생산력 발전의 핵심 동인 |
생산 방식 변화 | 사회 경제 시스템의 변화를 초래 |
주요 내용 | |
역사 발전의 원동력 |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 및 그로 인한 계급 투쟁 |
사회 구성 요소 | 경제적 토대 (생산 방식)와 상부구조 (정치, 법률, 문화, 이데올로기) |
사회 변화 | 경제적 토대의 변화가 상부구조에 영향을 미침 |
이데올로기 역할 | 지배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 |
관련 분야 | |
사회 과학 | 역사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
철학 | 역사 철학, 사회 철학 |
비판 | |
경제 결정론 | 사회 현상을 지나치게 경제적 요인으로만 설명한다는 비판 |
역사 발전 단계론 | 모든 사회가 동일한 발전 단계를 거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 |
개인의 역할 간과 | 개인의 능동적인 역할을 간과한다는 비판 |
관련 정보 | |
관련 학문 |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
2. 내용 및 전개
역사 유물론은 카를 마르크스가 19세기에 주창한 역사관으로, 인간 사회에도 자연과 마찬가지로 객관적인 법칙이 존재하며,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생산 관계가 변화하며 사회가 발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헤겔의 관념사관과 대립되는 관점으로,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인간의 의식이나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 양식이라고 본다.[104]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 또는 사유재산제가 인간 사회에서 떼어낼 수 없는 제도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성립하고 변화하며 발전되어 온 것으로서 언젠가는 소멸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견해를 인간 사회의 역사에 입각해서 고찰한 것을 '사적 유물론'이라고 불렀다. 이 이론은 인류의 사회가 계급 차별이나 빈부 차별이 없었던 원시공동체 시기부터 빈부의 차와 사유재산제가 조금씩 생긴 고대 노예제로 나아가고, 계급 사회가 성립한 후 봉건제 사회를 거쳐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실증적·이론적으로 규명하려고 하였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를 계급적인 대립이나 차별이 없는 사회주의 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이며, 특히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 및 그 전위인 정당의 힘에 의해 새로운 사회가 출현할 것을 예언하였다.[104]
마르크스는 『경제학 비판』 서문에서 유물사관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했다.
간단히 말해, 하부 구조(경제)가 변화하면 사회 혁명이 일어나 상부 구조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 유물론은 1950년대에 들어서 공산당 내부의 비판을 피하고 공산당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대폭 수정되었고 논리적으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보여 현재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 이론이다.
2. 1. 역사 유물론의 주요 내용
역사 유물론은 물질적 생산력을 역사 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하며, 세계정신(Welt geist)의 자기 전개 과정이 역사라고 주장한 헤겔류의 관념사관과 대립한다.[104] 즉,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인간의 의식이나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 양식이라는 것이다.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 사이에 계급이 발생한다고 보며, 역사를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로 바라보는 갈등론적 관점을 가진다.생산력의 발전 단계는 그 시대마다 노동 도구의 발달 단계로 표현되기 때문에, 유물사관에는 생산 기술 발달에 중점을 두는 태도가 있다. 그러나 유물사관의 중심은 인간이 생산에 참가할 때는 사회적이 되며, 따라서 일정한 생산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산 관계란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대응하는 사회관계인데, 주로 그 사회의 주된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 사이의 계급 관계로 표현된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생산 관계의 변화에 따라 사회가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원시 공산제 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다시 사회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로 발전한다고 보았다.[104] 노예제에서 자본주의까지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가 인정되고, 따라서 계급 대립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마르크스가 식별한 주요 생산 양식에는 원시 공산 사회, 노예 사회, 봉건제, 자본주의, 공산주의가 있다. 중상주의, 혼합 경제(국가 자본주의) 및 사회주의는 후기 저술가들에 의해 생산 양식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러한 각 생산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연과 생산과 다른 방식으로 상호 작용한다. 그 생산에서 발생하는 잉여는 다르게 분배되었다. 마르크스는 인류가 처음에는 원시 공산 사회 사회에서 살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시민 지배 계급과 노예 계급에 기반한 로마 및 그리스와 같은 고대 사회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귀족과 농노에 기반한 봉건제, 그리고 자본가 계급(부르주아지)과 노동 계급(프롤레타리아트)에 기반한 자본주의가 왔다고 주장했다. 미래 공산 사회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에서 마르크스는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것이 폐지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르크스는 『경제학 비판』 서문에서 유물사관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했다.
수렵 채집 사회는 경제력과 정치력이 같은 의미를 갖는 조직이었다. 봉건 사회에서는 왕이나 귀족들의 정치력은 농노들이 사는 마을들의 경제력과 관계했다. 농노는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두 힘, 즉 정치력과 경제력에 결부되어 자유롭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는 경제력과 정치력이 완전히 분리되어 정부를 통해 제한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 유물론은 1950년대에 들어서 공산당 내부의 비판을 피하고 공산당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대폭 수정되었고 논리적으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보여 현재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 이론이다.
2. 2. 계몽주의 사상과의 관계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계몽주의라는 지적, 철학적 운동과 16, 17, 18세기에 영국과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과학, 정치, 경제, 사회적 변혁에 의해 형성되었다.[6][7][8]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고 종교적 교리와 왕권신수설을 공격했다.[9] 홉스(1588–1679), 몽테스키외(1689–1755), 볼테르(1694–1778), 스미스(1723–1790), 튀르고(1727–1781), 콩도르세(1743–1794)를 포함한 사상가들은 인간 본성, 역사, 경제 및 사회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탐구했다. 비코(1668–1744), 헤르더(1744–1803), 헤겔(1770–1831)과 같은 철학자들은 인류 역사의 조직 원리를 밝히려고 시도했다.[10] 많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사상의 힘은 역사적 변화를 이해하는 주요 원동력이었다. 역사는 "자유의 정신"의 점진적인 발전 또는 민족주의, 민주주의, 합리성 및 법의 성장이었다.[11] 이러한 역사관은 오늘날까지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12]
2. 3. 헤겔 철학의 영향
베를린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마르크스는 헤겔의 철학을 접하고, 그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19] 헤겔은 계몽주의 철학을 비판하며, 사회가 왜 변화하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9]헤겔은 예술, 과학, 국가 기관, 법률 등 모든 것이 역사에 의해 정의되며, 그 역사적 발전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철학을 특정 문화의 표현으로 보았다. 헤겔에게 역사는 인간이 사회 발전을 지배하는 합리적 원칙을 점차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시대정신", 집단 의식 또는 정신(geist)으로 표현되는 국가를 통해서만 "자유"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25]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은 사회의 모든 측면이 상호 연결된 복잡한 총체라고 보았다.[26] 그는 특정 시점에서 사회는 안정과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이 혼합된 것이라고 했다. 변화는 외부 요인뿐만 아니라 내부 모순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역동성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실제 사람들에 의해 전개된다. 그 결과, 사회의 아이디어, 제도, 단체는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된다. 큰 갈등의 시기에는 "위대한 역사적 인물"의 행동이 "시대 정신"과 일치하여 자유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27]
헤겔 철학은 강력하고 안정된 사회 질서도 결국 쇠퇴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이러한 생각은 마르크스와 청년 헤겔학파에게 영감을 주었다.[28]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이 역사적 동인을 사상 또는 "시대 정신"으로 본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29] 마르크스는 역사의 동력은 사회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 즉 생산 과정과 인간이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하는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5년에 쓰여진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2. 4. 주요 개념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사회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 유물론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들은 사회가 발전하는 핵심 동력을 물질적 생산력에서 찾았으며, 이는 헤겔의 관념론적 역사관과는 대조적이다.[104]- '''생산력''':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노동력, 원자재, 토지, 도구, 기구, 그리고 생산에 필요한 지식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후기 구석기 시대의 날카로운 부싯돌 창과 작살, 고대 이집트의 농업 기술, 그리고 현대의 첨단 기술 모두 생산력에 해당한다.[34]
- '''생산 관계''': 생산과 교환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들이 맺는 사회적 관계를 의미한다. 이는 주어진 생산력의 수준과 특성에 의해 결정되며, 주로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 사이의 계급 관계로 나타난다.[35] 예를 들어, 봉건제 사회에서는 영주와 농노의 관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생산 관계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 '''토대와 상부구조''': 칼 마르크스는 사회의 생산 관계를 '토대'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 경제적 토대 위에 정치 제도, 법률, 관습, 문화, 사상, 사고 방식, 도덕성 등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것들을 '상부구조'라고 부른다. 상부구조는 경제적 토대에서 기원하며, 그 특징은 경제적 토대의 성격 및 발전에 의해 결정된다.[37] G.A. 코헨은 상부구조가 경제 구조를 안정시키거나 강화하지만, 경제적 토대가 우선적이라고 주장한다.[38]
- '''계급 투쟁''': 생산 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소유하지 못한 계급 사이에는 끊임없는 투쟁이 발생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생산 관계의 변화에 따라 원시 공산제 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차례로 나타나며, 노예제에서 자본주의까지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인정되므로 계급 대립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을 비롯해 계급적 모순을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변증법적 역사 해석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1958년 이후 공산권의 모순 논쟁에서는 모순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아니며, 모순의 지양이나 통일 단결이 그 원동력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유물사관을 크게 수정해야 했다.[104]
2. 5. 생산 양식
마르크스는 주요 생산 양식으로 원시 공산 사회, 노예 사회, 봉건제, 자본주의, 공산주의를 제시했다.[33] 각 생산 양식에서 사람들은 자연, 생산과 다른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며, 그 생산에서 발생하는 잉여는 다르게 분배되었다.[33] 마르크스는 인류가 처음에는 원시 공산 사회에서 살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시민 지배 계급과 노예 계급에 기반한 로마 및 그리스와 같은 고대 사회, 귀족과 농노에 기반한 봉건제, 자본가 계급(부르주아지)과 노동 계급(프롤레타리아트)에 기반한 자본주의 순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래 공산 사회에서는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것이 폐지될 것이라고 설명한다.[33]수렵 채집 사회는 원시 공산주의 사회를 구성했다.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서 생산력은 토지에서 식량과 자원을 얻는 데 종사하는 모든 신체 건강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40] 모든 사람은 사냥과 채집을 통해 생산된 것을 공유했다.[41][42] 사적 소유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옷과 유사한 개인 물품은 개인 재산[43]으로 구별되었다. 원시 사회는 잉여물을 생산하지 않았고, 생산된 것은 빠르게 소비되었으며, 노동 분업이 존재하지 않아 사람들이 함께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44] 비교적 오래 존재했던 생산 수단(도구와 토지), 주거는 공동으로 소유되었다.[45]

고대 노예 사회는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즉 농업과 그로 인해 발생한 풍요로움으로 인해 유목 사회가 버려지면서 형성되었다. 노예 사회는 노예제와 소규모 사유 재산 사용이 특징이며, 사용 가치 생산이 주요 생산 형태였다. 역사 유물론자들은 노예 사회를 시민과 노예로 구성된 최초의 계급 사회로 간주한다. 농업 잉여는 시민들에게 분배되었고, 시민들은 밭에서 일하는 노예들을 착취했다.[49]

봉건적 생산 양식은 로마 제국 붕괴 이후 유럽에서 노예 사회로부터 출현했으며, 생산력의 추가적인 발전과 일치했다.[50] 봉건 사회의 계급 관계는 확고한 귀족과 농노제로 특징지어졌다. 마르크스에게 봉건제를 정의하는 것은 경작지를 통제하는 지배 계급(귀족)의 권력이었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농노제 하에서 주로 노동, 생산물 및 화폐 지대를 통해 이 땅을 경작하는 농민을 착취하는 계급 사회로 이어졌다.[51] 단순 상품 생산은 장인과 상인의 형태로 존재했다. 이 상인 계급은 규모가 커지고 결국 부르주아지를 형성하게 된다.[52] 그러나 생산은 여전히 대부분 사용을 위한 것이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은 부르주아 계급이 성장하여 생산력을 변화시킬 만큼 커졌을 때 현실화되었다. 부르주아지의 주요 생산 형태는 상품의 형태, 즉 제품을 교환할 목적으로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품 생산이 성장하면서 오래된 봉건 제도는 새로운 자본주의 제도와 충돌하게 되었고,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봉건주의는 배척되었다.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은 상품 생산이 완전히 일반화될 때까지 확장되었다.
자본주의 하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두 개의 주요 계급이 되었다. 이 두 계급 간의 계급 투쟁이 만연했다.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생산력은 번성할 수 있었고, 유럽에서 산업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생산력은 결국 더 이상 확장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여 봉건주의의 종말에 발생했던 것과 같은 붕괴를 초래한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지는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올 무기를 만들었고, 그 무기를 휘두를 사람, 즉 현대 노동 계급인 프롤레타리아를 불러냈다."고 말했다.[53] 역사적 유물론자들은 현대 프롤레타리아가 봉건주의 시대의 귀족에 대한 부르주아지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에 대한 새로운 혁명 계급이라고 믿는다.[57]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함께 발전하는 공산주의 사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에 기초한 협동 사회 내에서 생산자들은 자신의 생산물을 교환하지 않으며, 생산물에 사용된 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개별 노동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고 총 노동의 구성 부분으로서 직접 존재하므로, 제품의 가치, 즉 제품이 소유한 물질적 속성으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그 모호성 때문에 반대받는 "노동의 산물"이라는 문구는 모든 의미를 잃는다.
>
> 여기서 우리가 다루어야 할 것은 공산주의 사회가 자체 토대 위에서 '발전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현'하는 모습이며, 이는 경제적, 도덕적, 지적으로 모두 옛 사회의 흔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개별 생산자는 공제 후 사회로부터 자신이 사회에 제공한 만큼 정확히 돌려받는다. 그가 사회에 제공한 것은 그의 개별적인 노동량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 노동일은 개별 노동 시간의 합으로 구성되며, 개별 생산자의 개별 노동 시간은 그가 기여한 사회적 노동일의 일부, 즉 그의 몫이다. 그는 사회로부터 자신이 일정량의 노동을 제공했다는 증명서(공동 기금을 위한 노동을 공제한 후)를 받으며, 이 증명서로 동일한 양의 노동이 드는 만큼의 소비 수단을 사회적 비축분에서 가져간다. 그가 한 형태로 사회에 제공한 동일한 양의 노동을 그는 다른 형태로 돌려받는다.[58]
마르크스에 따르면, 공산주의 사회의 이 하위 단계는 자본주의 사회의 하위 단계, 즉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과 유사하며, 두 사회 모두 "모체에서 출현한 옛 사회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생산 방식이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고 이전의 존재에서 물질화된다는 아이디어를 강조하는 것은 역사적 유물론의 핵심 아이디어이다.
공산주의 사회의 고급 단계는 국가, 국가, 성차별, 가족, 소외, 계급, 돈, 재산, 상품,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분업, 도시와 농촌, 계급 투쟁, 종교, 이데올로기, 시장의 개념을 부정하는 생산자들의 자유 연합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부정이다.[60][61]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의 고급 단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에서는 개인의 분업에 대한 노예적인 종속, 그리고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의 대립이 사라진 후; 노동이 생존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삶의 주요 욕구가 된 후; 생산력이 개인의 전면적인 발전과 함께 증가하고 협동적 부의 모든 샘이 더욱 풍부하게 흐른 후에야 비로소 부르주아 권리의 좁은 지평이 완전히 넘어설 수 있으며 사회는 그 깃발에 다음과 같이 새길 수 있다. 능력에 따라, 필요에 따라![58]
3. 비판 및 수정
역사 유물론은 1950년대 이후 공산당 내부 비판을 피하기 위해 수정되었고, 논리적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는다.[62] 1958년 이후 중·소 분쟁 과정에서 생산력과 생산 관계, 계급 간의 모순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주장은 수정되었다. 체제 내 비판을 억제하기 위해 모순의 지양이나 통일, 단결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1951년 스탈린은 언어, 문법, 수학 등은 토대도 상부구조도 아니며 계급적인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유물사관의 핵심 개념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저서 『역사주의의 빈곤』과 『추측과 논박』에서 역사 유물론이 반증 불가능한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판했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도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발터 벤야민은 1940년 에세이 『역사철학 테제』에서 역사 유물론이 준종교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역사 유물론을 18세기 터키인에 비유하며, 실제로는 숨겨진 사람이 조종하는 기계처럼, 신학의 도움 없이는 이길 수 없는 꼭두각시라고 주장했다. 게르숌 숄렘은 벤야민의 비판이 너무나 결정적이어서 역사 유물론에 남은 것은 용어 자체뿐이라고 평가했다.[70]
막스 베버나 머레이 로스바드 등도 역사 유물론을 비판했다.[103]
4. '아시아적 생산 양식' 논쟁
1947년, 일본의 자유주의 역사학자 그룹 역사학연구회에서 "아시아적 생산 양식"에 대한 토의회가 열렸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85] "역사학연구회"는 마르크스의 미발표 초고에 "아시아적 생산 양식"에 관한 기술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경제학자를 초빙하여 다시 토론을 진행했고, 이후 여러 학자들이 해석을 발표했다.
- 핫토리 노리후사는 "아시아적 생산 양식"은 고대 천황제 그 자체라고 말하며, 마르크스의 설을 전면적으로 수용했다.[84]
- 시오자와 키미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설을 연대별로 분석하여, "마르크스는 아시아적 생산 양식이 독일(게르만)이나 러시아에서도 있었다는 가정을 했다"고 생각했다.[84]
"아시아적 생산 양식" 설에 따르면 중국에 봉건제가 없었던 것이 되므로, 지금까지의 중국사 논리가 모조리 성립되지 않게 된다. 더욱이 소련 공산당·중국 공산당에서 "아시아적 생산 양식"론이 부정되었기 때문에, 이 이론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86]
반대로 반공주의 입장에 있던 학자 칼 비트포겔은 마르크스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수리 사회(물의 이론)"를 창안했고, 이 이론은 중국 고대사의 설로서 수용되었다.[87]
아시아적 생산 양식론은 일반 독서인들에게는 "아시아적 정체"론으로 받아들여졌다.[87] 시바 료타로는 역사 소설 『항우와 유방』 후기에서 "아시아적 정체"론에 근거하여 소설을 썼다고 언급하고 있다.[88]
아시아적 생산 양식론은 후에 소련 공산당·중국 공산당에서 부정되었기 때문에, 비트포겔이나 시바와 같은 논의는 "반공 이론"으로 이단적인 설 취급을 받게 되었다. 결국 일본의 아카데미즘과 좌익 진영에서 "아시아적 생산 양식"론을 말하는 것조차 불쾌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역사학자 후쿠모토 카츠키요의 회상에 따르면, "중국 연구소에서의 스터디에서도 원로들은 '아시아적 생산 양식 따위는 관념론에 지나지 않는다. 검토할 가치조차 없다'고 부정적이었다"고 한다.[89]
5. 역사학에서의 전개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계몽주의와의 교류, 그리고 16~18세기 영국과 유럽에서 일어난 과학, 정치, 경제, 사회적 변혁에 의해 형성되었다.[6][7][8] 마르크스의 이론 제기에 따라 역사학자들은 유물사관에 기초하여 역사를 해석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 다양한 논쟁이 일어났다.
중국과 일본 사학계에서는 유물사관을 둘러싸고 다음과 같은 논쟁이 있었다.
- 중국사학: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에서는 제자백가를 유물사관으로 진보와 반동으로 나누는 논쟁이 있었다. 마오쩌둥은 법가를 진보, 유가를 반동으로 규정하고,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유법 투쟁 사관'이 만들어졌다.
- 일본사학: 메이지 유신의 성격을 둘러싼 "일본 자본주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이시모다 마사는 "국민적 역사학 운동"을 통해 민중사를 연구했으나, 그의 주장은 내셔널리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5. 1. 중국사학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에서는 유물사관 수용이 두드러졌다. 제자백가를 유물사관에 비추어 진보적·반동적으로 나누는 논쟁이 있었는데, 초기 궈모뤄는 공자는 진보적이고, 묵자는 반동적이라고 주장했다.[90]그러나 마오쩌둥은 궈모뤄의 설을 비판하며, 법가가 진보적이고 유물사관에 부합하며, 유가는 "귀족이나 노예주의 대표", 즉 반동적 지주(부르주아) 세력의 대표라고 주장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공식 견해로서 "법가 = 마오쩌둥 사상", "유가 = 반중국 공산당"이라는 사고방식이 마오쩌둥 통치 시대에 확립되었고, 역대 역사는 정의로운 법가와 악의 유가의 투쟁으로 해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91] 궈모뤄는 마오쩌둥의 주장에 반대했기 때문에 자기비판을 강요받았고, 자신의 설을 부정하게 되었다.[92]
이후 문화대혁명에서는 마오쩌둥의 주장에 따라 "유법 투쟁 사관"이 만들어졌고, 사인방도 법가를 표방했다. 이 시기, 발굴 조사에서 새로 발견된 노자의 마왕퇴 한묘본과 손무의 은작산 한묘본도 법가 사상과 결부되어 해석되었다. 반대로 마오쩌둥과 사인방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린뱌오, 왕밍은 유가로 간주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93] 나중에는 유가의 성인 주공단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저우언라이도 유가로 간주되어 "대유"라는 별칭을 얻었고, 사인방은 "대유를 타도하라", "비림비공비주공"이라는 운동을 일으켰지만, 민중이 저우언라이를 존경했기 때문에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94]
궈모뤄 외의 중국 역사학자들도 "아시아적 생산 양식"이나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이행하는 기간 등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지만, 문화대혁명에서 대부분의 학자들이 추방당했고, 마오쩌둥의 지시로 "역사학은 혁명에 봉사하라"는 말이 나오면서 비전문가 노동자가 역사학계를 지배하게 되어 논의는 깊이를 잃었다. 이 연구에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궈모뤄의 『십비판서』와 양관의 『고사신탐』뿐이다.[95] 양관은 중국 공산당 중앙의 말대로 차례차례 설을 바꾸는 것으로 유명하며, 피해를 면했다.[96]
현재 중국에서도 유물사관에 기초하여 역사를 해석하는 경향은 존속하고 있지만, 사인방 실각 후의 유가에 대한 적대시는 누그러지고 있다. 공자학원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5. 2. 일본사학
전전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이 자본주의에 기초한 부르주아 혁명인지 아닌지에 대한 "일본 자본주의 논쟁"이 강좌파와 노농파로 나뉘어 벌어졌다.[97] 강좌파는 메이지 유신이 혁명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노농파는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코민테른의 해석 변경으로 인해 노로 에이타로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강좌파가 승리하여 "봉건제가 강화되고 천황제 절대주의가 확립되었을 뿐 민중 혁명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역사학자들은 이 결론을 바탕으로 실증적 연구를 진행하려 했으나,[97] 전쟁으로 인한 사상 통제로 유물사관 연구가 위축되면서 논쟁은 종료되었다.[98]전후 일본 사학에서는 이시모다 마사가 "아시아적 생산 양식" 논의를 주도했다. (아시아적 생산 양식 항목 참조) 이시모다는 "국민적 역사학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는 권력자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민중의 역사를 편찬하려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으로 민중사라는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져 "마을의 역사", "공장의 역사", "어머니의 역사", "직장의 역사" 등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시모다의 논의는 "중국은 황제가 다수의 민중을 지배하는 노예제에 가까운 "아시아적 생산 양식" 국가여서 역사가 정체되었고, 일본이나 몽골은 노예제를 극복하고 봉건제나 자본주의로 나아갔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어 내셔널리즘에 가깝다는 비판도 있었다.[99][100]
1990년대 이후, 민중사 연구가 진전되면서 에도 시대 신분 제도가 유연했고, 농민 출신 무사 발탁도 많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기존 유물사관이 일본 민중을 지나치게 가난하게 파악했다는 반성이 제기되었다. 오이시 신자부로가 이러한 연구를 이끌었다.[101] 또한 고바야시 요시아키 (경제학자)는 "막부 말기에 무사가 민중에게 배워 다카스기 신사쿠와 같은 시민 혁명가가 나왔다. 즉, 강좌파의 '민중 혁명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는 설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바야시의 주장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그룹의 비판을 받고 있고,[102] "만드는 모임" 그룹도 "역사학 연구회" 그룹의 비판을 받고 있어, 논쟁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6. 대한민국에의 영향 및 의의
역사적 유물론은 대한민국의 역사학 및 사회과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진보 진영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사회 변혁과 발전을 위한 이론적 기반으로 삼았다.
참조
[1]
논문
Marx on Historical Materialism
https://www.research[...]
2017-01-01
[2]
서적
Marx/Engels Collected Works
[3]
서적
Marx/Engels Collected Works
[4]
서적
Comprehensiv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Atlantic Publisher & Distributors
2001
[5]
서적
Karl Marx with a foreword by Alan Ry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6]
서적
Science and the Enlighten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7]
서적
Merchants and Revolution Commercial Change, Political Conflict, and London's Overseas Traders, 1550-1653
Verso Books
[8]
논문
Enlightenment and anti-capitalism
http://isj.org.uk/en[...]
2006-04-06
[9]
서적
Enlightenment
Penguin Books
[10]
백과사전
Philosophy of History
https://plato.stanfo[...]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11]
서적
History of England from the Invasion of Julius Caesar to the Revolution in 1688
Hansebooks GmbH
2016-08-12
[12]
서적
Spirit of Liberty: An American History
https://www.theguard[...]
Addison-Wesley
2008-01-01
[13]
서적
On Religion
https://books.google[...]
Dover Publications
2024-01-13
[14]
서적
Main Currents of Marxism: The Founders, the Golden Age, the Breakdown
https://books.google[...]
W. W. Norton & Company
[15]
서적
An Anthropology of Marxism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19-01-18
[16]
서적
Socialism Before the French Revolution: A History
https://books.google[...]
Macmillan
[17]
웹사이트
Is There Still Value in 'Great Man' History?
https://www.historyt[...]
2022-05-20
[18]
서적
The German Ideology
[19]
서적
Freedom and Its Betrayal: Six Enemies of Human Liber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
논문
Smith's View On Human Nature: A Problem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Wealth Of Nations" And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https://www.jstor.or[...]
[21]
논문
Hegel, Imperialism, and Universal History
2014-10-01
[22]
논문
Hegel's Understanding of History
https://philosophyno[...]
2020-01-01
[23]
논문
Philosophy is its own time apprehended in thoughts": Hegel on Time and Concept
2016-01-01
[24]
서적
The Philosophy of History
Batochhe Books
[25]
웹사이트
What did Hegel mean by Geist?
https://socialtheory[...]
Social Theory Applied
null
[26]
서적
The Algebra of Revolution The Dialectic and the Classical Marxist Tradition
Routledge
[27]
서적
The Philosophy of History
Batoche Books
[28]
서적
Karl Marx: Thoroughly Revised Fifth Edi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9]
서적
Grundrisse
https://www.marxists[...]
[30]
잡지
Karl Marx
1948-10-18
[31]
서적
The German Ideology
1845-01-01
[32]
웹사이트
Frederick Engels' Speech at the Grave of Karl Marx
https://www.marxists[...]
2022-01-01
[33]
서적
Capital
1867-01-01
[34]
논문
The Needham Puzzle: Why the Industrial Revolution Did Not Originate in China
http://www.econ.ucla[...]
[35]
서적
Capital: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2018-12-05
[36]
서적
The Revolutionary Ideas of Karl Marx
Haymarket Books
[37]
백과사전
Karl Marx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
The Metaphysics Research Lab, Center for the Study of Language and Information (CSLI), Stanford University
2018-09-06
[38]
학술지
Critical Notice
1980
[39]
문서
Cohen, p. 134.
[40]
서적
Pervobytnyy sposob proizvodstva: Politiko-ekonomicheskiye ocherki
1987
[41]
서적
Diccionario de Economía Política
Akal
1975
[42]
학술지
Filosofiya ekonomicheskikh Tsennostey
http://www.m-economy[...]
2022-12-11
[43]
웹사이트
Eight myths about socialism—and their answers
http://www.pslweb.or[...]
Party for Socialism and Liberation
2013-08-30
[44]
서적
Toward a Marxist Anthropology: Problems and Perspectives
De Gruyter Mouton
1979
[45]
문서
Na zare chelovecheskoy istorii
http://wps.ablongman[...]
Brill
1989
[46]
서적
Early Human Kinship
http://www.chrisknig[...]
Blackwell
2008
[47]
학술지
The Digital Economy of the Sourdough: Housewifisation in the Time of COVID-19
https://triple-c.at/[...]
tripleC
2021
[48]
잡지
Primitive communism, barbarism and the origins of class society
https://weeklyworker[...]
2012-02-09
[49]
서적
A People's History of the World
Bookmarks
[50]
서적
Political Economy: A Textbook issued by the Economics Institute of the Academy of Sciences of the U.S.S.R
1957
[51]
서적
The High Middle Ages
The Teaching Company
2001
[52]
백과사전
Bourgeoisie and Middle Classes, History of
Elsevier
2001
[53]
서적
The Communist Manifesto
https://www.marxists[...]
2019-03-12
[54]
웹사이트
Marx, Engels and Lenin on the National Question
http://links.org.au/[...]
2018-04-21
[55]
웹사이트
V.I. Lenin. O natsional'nom voprose i natsional'noy politike
http://leninism.su/w[...]
2018-04-21
[56]
서적
The Communist Manifesto
2019-04-04
[57]
서적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https://www.marxists[...]
2019-03-12
[58]
서적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https://www.marxists[...]
2019-03-12
[59]
서적
Economic Problems of Socialism in the USSR
https://www.marxists[...]
2019-03-12
[60]
서적
The German Ideology
2019-03-12
[61]
서적
The Communist Manifesto
2019-03-12
[62]
웹사이트
Economic Manuscripts: Capital Vol. I - 1872 Preface
https://www.marxists[...]
2024-09-12
[63]
웹사이트
Letter from Marx to Editor of the Otecestvenniye Zapisky
https://www.marxists[...]
2018-11-10
[64]
학술지
Did Marx Have Second Thoughts about the Law of the Falling Rate of Profit? An Archival Rejection of Heinrich's Arguments
2023-10
[65]
문서
The Materialism of Architectural Automations: A critical Interrogation of Automation, Accelerationism and Ornament
[66]
웹사이트
Letters: Marx–Engels Correspondence 1890
http://www.marxists.[...]
2011-12-07
[67]
웹사이트
Letters: Marx–Engels Correspondence 1893
http://www.marxists.[...]
2011-12-07
[68]
서적
Friedrich Engels and Modern Social and Political Theor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19
[69]
잡지
Eight Marxist Claims That May Surprise You
https://www.jacobinm[...]
2020-08-19
[70]
잡지
The Riddle of Walter Benjamin
1995-05-25
[71]
서적
The Great Transformation
[72]
서적
ibid.
[73]
백과사전
Economic Anthropology
John Wiley & Sons
2018
[74]
서적
Karl Marx's Theory of Histor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8
[75]
학술지
Toward a Reconstruction of Historical Materialism
https://www.unige.ch[...]
2018-12-05
[76]
서적
Science, Class and Society: on the formation of Sociology and Historical Materialism
Verso Books
1980
[77]
서적
Pre-Capitalist Modes of Production
Routledge & Kegan Paul
[78]
서적
Critical Realism and Marxism
Routledge
[79]
서적
Democracy against Capital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
[80]
백과사전
史的唯物論
[81]
웹사이트
「「生身の個人にとっての自由」の潮流の中のマルクス」
https://web.archive.[...]
2023-12-17
[82]
문서
松尾2015
[83]
서적
アジア的生産様式を巡る論争
同志社商学創立百周年記念号
[84]
문서
小林良彰1975
[85]
서적
アジア的生産様式の発見 1946-1955
明治大学教養論集刊行会
[86]
서적
導論 -アジア的生産様式
明治大学教養論集刊行会
[87]
문서
福本「導論」2019
[88]
서적
項羽と劉邦
新潮社
[89]
문서
福本「導論」2019、P8-9の要約
[90]
서적
十批判書
岩波書店
[91]
학술지
現代中國の歴史性 - 「儒法闘爭に學べ」 - 運動にみえる呂后、武則天讃美の論理とその挫折 -
京都大學人文科學研究所
[92]
웹사이트
郭沫若史学在“文革”中的跌宕遭际
https://epaper.gmw.c[...]
2016-04-01
[93]
문서
現代中国における古典の再評価とその流れ
自由国民社
[94]
서적
毛沢東秘録 下
潮書房光人新社
[95]
학술지
中国古代社会研究(三)
平凡社
[96]
문서
戦国史
[97]
서적
歴史の本音
扶桑社
[98]
서적
生涯の師と終生の友―『日本資本主義論争』『随想録』
新潮社
[99]
서적
世界史の誕生
ちくま文庫
[100]
학술지
国民的歴史学運動における「国民」化の位相 : 加藤文三「石間(いさま)をわるしぶき」を手がかりとして
[101]
서적
貧農史観を見直す
講談社現代新書
[102]
문서
藤岡1997
[103]
서적
An Austrian Perspective on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
https://mises.org/li[...]
Edward Elgar Publishing Ltd
[104]
백과사전
변증법적 및 사적 유물론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