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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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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자스는 고대 도시 비잔티움의 건국 신화와 관련된 인물이다. 비잔티움 건국 신화는 이오, 케로에사, 비자스, 그리고 델포이 신탁과 관련된 여러 전설을 포함한다. 메가라의 왕 니소스의 아들인 비자스는 델포이 신탁의 지시를 받아 '눈먼 자들의 도시' 맞은편에 도시를 건설하라는 명을 받았다. 비자스는 칼케돈이 유럽 해안을 활용하지 못한 것을 보고 비잔티움을 건설했으며, 이후 트라키아 왕의 딸 피달레아와 결혼했다. 비잔티움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흑해와 에게해로 진입하는 요충지였으며, 고대인들은 비잔티움이 칼케돈보다 전략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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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스
지도
일반 정보
2~3세기 비자스 주화
이상화된 비자스 묘사가 담긴 주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
유형그리스 신화
관련 신화그리스
신화 속 역할비잔티움의 창건자
출생지메가라
가족 관계
부모포세이돈과 케로에사 또는 세미스트라

2. 건국 신화와 전설

밀레투스의 헤시키오스의 저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파트리아''에는 비잔티움 건국에 대한 여러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1] 헤시키오스는 아르고스 왕 이나쿠스의 딸 이오제우스와 사랑에 빠졌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헤라가 보낸 말벌에 쫓겨 트라키아에 도착하여 포세이돈과의 사이에서 비자스의 어머니 케로에사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선호했다. 이로 인해 금각만은 ''케라스''로 명명되었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델포이 신탁에 따라 금각만을 참조하여 아르고스인이 도시를 건국했다고도 하고,[1] 메가라인(비자스에 의해 이끌림)이 건국자라고도 하며, 비자스가 현지 요정 세미스트라의 아들이라고도 한다.[2][3][4]

2. 1. 이오와 케로에사

밀레투스의 헤시키오스의 저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파트리아''에 따르면, 비잔티움아르고스 왕 이나쿠스의 딸인 이오로부터 이름을 얻었다. 제우스는 이오와 사랑에 빠졌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헤라는 말벌을 보내 이오를 괴롭혔다. 이오는 고통 속에서 트라키아에 도착했고, 포세이돈과의 사이에서 비자스의 어머니인 케로에사를 낳았다. 이로 인해 금각만은 ''케라스''로 명명되었다.[1]

2. 2. 메가라인과 비자스

기원전 7세기,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확장하며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아테네 근처의 도리아 도시 국가 메가라도 또 다른 식민지를 세울 장소를 찾고 있었다. 델포이 신탁에 문의한 후, 메가라 왕 니소스는 아들 비자스를 "눈먼 자들의 도시 맞은편 땅"을 찾도록 보냈다.[1]

비자스는 마르마라 해가 보스포루스 해협과 만나는 지점, 즉 유럽아시아의 경계에 도착했을 때 신탁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가 있는 곳의 반대편 아시아 해안에는 이미 칼케돈이라는 식민지가 세워져 있었다. 비자스는 칼케돈이 유럽 해안을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언된 '눈먼 자들의 도시'라고 판단했다.[1]

그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보스포루스 해협 남쪽 끝의 유럽 해안을 선택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비잔티온이라고 지었다.[1]

2. 3. "눈먼 자들"의 의미

헤로도토스(기원전 5세기)는 페르시아 장군 메가바주스가 비잔티움에 도착했을 때 칼케돈 사람들에게 더 나쁜 장소를 선택했기 때문에 '눈먼 자들'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했다. 이는 비잔티온이 칼케돈보다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고대인들은 비잔티온이 칼케돈보다 갖는 장점을 잘 알고 있었는데, 비잔티온 식민지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흑해로, 마르마라 해(고대 이름은 프로폰티스)를 통해 에게해로 들어가는 입구를 관할했기 때문이다.

3. 비잔티움의 전략적 중요성

고대인들은 비잔티온이 칼케돈보다 갖는 장점을 잘 알고 있었는데, 비잔티온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흑해로, 마르마라 해(고대 이름은 프로폰티스)를 통해 에게해로 들어가는 입구를 관할했기 때문이다.

4. 비자스와 피달레아

비자스는 트라키아 왕 바르비조스(또는 바르비시오스)의 딸인 피달레아와 결혼했다.[3] 고대 비잔티온 주민들은 비자스를 창시자로 여겼으며, 도시의 눈에 띄는 곳에 비자스와 피달레아의 조각상을 세워 그를 기렸다.[3]

5. 한국과의 관계 (추가)

비잔티움 제국은 신라, 고려 등 고대 한국 국가들과 직접적인 교류는 제한적이었으나, 실크로드를 통한 간접적인 문화 교류가 있었다. 예를 들어, 신라의 유물 중에는 비잔티움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유리 제품 등이 발견되기도 한다.

참조

[1] 서적 Byzantium and the Bosporus a historical study, from the seventh century BC until the foundation of Constantinople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2] 기타 Byzantion: A Foundation Legend, from Myth into History, p. 40 http://www.mediterra[...]
[3] 문서 Hesych., Mil.Patr.C5 (FGH IV 147).
[4] 간행물 The Europeans Shores of the Bosporus. I∆ΥMA MEIZOOΣ EΛΛHIΣMOΥ. Eγκυκλoπαιδϵια M ϵιζoνoς Eλληνισμoυ, Kωνσταντ ινoυπoλη, 2008. ffhal-02435580f, p. 4 https://hal.arch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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