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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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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이타마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은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발생한 연쇄 실종 및 살인 사건이다. 애견 숍을 운영하던 세키네 겐과 그의 아내 카자마 히로코가 주범으로 지목되었으며, 야마자키 에이코가 공범으로 가담했다. 피해자들은 세키네 겐에게 금전적 갈등이나 불륜 관계 등으로 얽혀 있었으며, 세키네는 피해자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하는 잔혹한 수법을 사용했다. 수사 과정에서 야마자키의 자백을 통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지만, 세키네와 카자마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재판이 지연되었다. 2001년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고,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쳐 2009년 사형이 확정되었다. 세키네는 2017년 옥사했고, 카자마는 현재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수감 중이다. 이 사건은 소노 시온 감독의 영화 '차가운 열대어'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사회적 충격과 함께 범죄 수법의 잔혹성으로 인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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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
기본 정보
이름関根元 (Gen Sekine) 세키네 겐
별칭풍간 박자 (風間博子) 가자마 히로코
출생일1942년 1월 2일
출생지지치부, 사이타마현, 일본
사망일2017년 3월 27일
사망 장소도쿄 구치소, 도쿄, 일본
범죄 정보
유죄 판결살인 (4건)
형벌사형
피해자 수4–7+명
범행 기간1993년 4월 ~ 1993년 8월
국가일본
범행 지역사이타마
체포일1995년 1월 5일
수감 장소(정보 없음)

2. 사건 발생

1993년 4월, 교다시의 회사 임원 A가 근무지에서 귀가하던 중 실종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오사토군고난정(현재의 구마가야시)의 야쿠자 간부 B와 그의 운전수 C가, 8월에는 교다시의 주부 D가 실종되는 등 총 4명이 연쇄적으로 실종되었다.[30][31][32]

1994년 1월, 오사카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체포되면서 사이타마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2월부터 언론이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사건이 표면화되었다.

실종된 사람들은 모두 애견·애묘 판매업체 "아프리카 켄넬"의 경영자 S와 그의 전 부인 K와 연관되어 있었다. 이들은 알래스칸 맬러뮤트 브리더로 알려졌으나, 버블 붕괴 이후 매출 감소와 신축 견사 겸 자택 건설 등으로 인해 빚이 늘어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S와 K는 트러블이 발생한 고객들을 지인의 수의사에게서 받은 개 안락사질산 스트리크닌을 사용하여 살해했다. 시신은 가게 임원 Y의 자택 욕실에서 해체하고, 뼈는 드럼통에 넣어 소각한 후, 군마현 내의 산림이나 강에 유기했다. 이는 "시체 없는 살인"으로 불렸다.

S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행방불명된 피해자 가족들은 사건성을 계속 주장했다. 1994년 12월, Y의 증언을 바탕으로 피해자의 유골과 유류품이 발견되었고, 1995년 1월 5일 S와 K가 체포되었다.

2. 1. 첫 번째 사건

1993년 4월, 교다시의 산업 폐기물 처리 회사 임원이었던 아키오 가와사키(당시 39세)는 세키네 겐이 운영하는 애견샵 "아프리카 켄넬"에서 개를 구입하면서 세키네와 알게 되었다.[4] 가와사키는 형의 권유로 개 번식 사업을 시작하려 했으나, 세키네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환불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발생했다. 세키네는 돈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가와사키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1993년 4월 20일 저녁, 세키네는 가와사키에게 자신의 차에서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고, 가와사키는 그 자리에서 청산가리가 든 음료를 마시고 즉사했다.[7] 이후 세키네는 공범들과 함께 가와사키의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했다. 시신의 일부는 가와바의 우스네 강에, 뼈, 재, 개인 물품들은 오제 국립공원에 버려졌다.[7]

2. 2. 두 번째 사건

1993년 7월 21일 밤, 세키네, 카자마, 야마자키는 야쿠자 간부 B가 지정한 장소로 갔다. 세키네와 카자마는 B를 만나기 위해 차에서 내렸고, 야마자키는 차에 남았다. 이들은 B의 요구에 따르는 척하며 사직서를 건네고, B와 그의 운전수 C에게 스트리크닌이 든 음료를 주었다.[7] B는 곧 쓰러졌지만, C는 그 영향을 견뎌냈다. 세키네와 카자마는 C에게 구급차를 부르라고 말했고, C는 도움을 찾아 나섰다. 그 후, 세키네와 카자마는 차에 올라 C를 앞자리에 앉히고 야마자키에게 B를 돌보라는 핑계로 떠나게 했다.[8] 아라카와 제방을 따라 운전하던 중, C는 차 앞 유리를 깨뜨릴 정도로 격렬하게 경련하다 사망했다.[7]

B의 시신을 가지러 온 후, 세 사람은 두 대의 차로 카타시나로 향했다. 야마자키의 화장실에서 시신을 훼손했으며, 야마자키는 칼을 갈고, 세키네와 카자마가 시신을 절단했다.[7] 야마자키는 세키네가 누구에게라도 말하면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겠다고 위협했다고 주장했으며,[8] 카자마는 ''엔카'' 노래를 흥얼거렸다.[5] 시신 훼손 후 카자마는 구마가야로 돌아갔고, 세키네와 야마자키는 뼈와 옷을 태우기 위해 남았다. 유해와 재는 우스네강, 누리강, 카타시나강에 버려졌다.[7]

야쿠자 간부 B는 이나가와-카이 계열 범죄 조직의 두목이자 세키네의 감시역을 맡고 있었고, 아프리카 켄넬의 고객이기도 했다. B는 세키네가 가와사키의 실종에 연루되었다고 의심하여 거액의 갈취를 시작했다. 세키네와 카자마는 이러한 요구가 사업 확장을 위태롭게 할 것을 우려하여 B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B와 아무런 교류가 없었던 그의 운전기사 C도 함께 처리하기로 했다.[7]

2. 3. 세 번째 사건

1993년 8월 26일 오후, 교다 시를 운전하던 세키네는 세키구치를 스트리크닌으로 살해하고 그녀에게서 270만을 훔쳤다.[25] 야마자키에 따르면 세키네는 이전 피해자들처럼 그녀의 시신을 훼손했지만, 그 전에 시신과 성적인 행위를 했다.[25]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녀의 불에 탄 유해와 재는 누리 강에 버려졌다.[25]

세키네는 이 살인을 전적으로 혼자 저지른 것으로 여겨진다. 야마자키가 그녀가 사망하기 전에 피해자를 알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25] 카자마가 연루되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이 이론에 대한 모든 증거가 정황 증거이므로 그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25]

3. 범인

사이타마현 오사토군 고난정(현 구마가야시)에서 애견·애묘 판매업체 "아프리카 켄넬"을 운영하던 세키네 겐(関根 元, 체포 당시 53세)과 전 부인 가자마 히로코(風間 博子, 당시 37세)가 이 사건의 주범이다.[25]

세키네 겐은 알래스칸 맬러뮤트 브리더로 알려져 있었으나, 버블 붕괴 이후 매출 감소와 호화로운 신축 견사 겸 자택 건설 등으로 빚이 늘어나 경영난을 겪었다. 가자마 히로코는 "아프리카 켄넬"의 등기상 사장이었으며, 세키네 겐과 위장 이혼 후에도 실질적인 경영에 관여했다.

이들은 금전 문제로 갈등을 빚던 고객들을 수의사에게서 받은 질산 스트리크닌을 사용하여 살해했다. 시신은 "아프리카 켄넬" 직원이던 야마자키 에이코(山崎 栄光)의 집에서 해체되었으며, 뼛조각은 드럼통에 넣어 소각한 후 군마현 내 산림이나 강에 유기되었다.[25]

1994년 1월, 오사카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체포되면서 사이타마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언론 보도와 피해자 가족들의 호소로 사건이 표면화되었고, 1995년 1월 5일 세키네 겐과 가자마 히로코가 체포되었다.

2001년 3월 21일, 우라와 지방 법원(현 사이타마 지방 법원)은 세키네 겐과 가자마 히로코에게 사형을 선고했다.[25] 2009년 6월 5일, 최고 재판소는 상고를 기각하여 사형이 확정되었다.[27][28]

3. 1. 세키네 겐 (関根 元)

세키네 겐(関根 元)은 1942년 1월 2일 사이타마현지치부에서 태어났다.[3]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에서 파칭코 가게와 중식당에서 일했다. 어느 날 밤, 중식당에 의문의 화재가 발생하여 주인도 사망했는데, 세키네가 주인을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방화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는 입증되지 않았다.[3] 20대에 개 번식을 시작했고, 이후 알래스칸 맬러뮤트 품종을 일본에 널리 알리면서 업계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3] 일부 자료에서는 세키네가 시베리안 허스키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원래 지치부에서 애완동물 가게와 동물 임대 사업을 운영했다. 그는 악의적인 사업 관행으로 악명을 얻었는데, 종종 개를 훔쳐 고객에게 팔거나, 고객의 개를 죽이고 완전히 새로운 개를 판매하기도 했다. 지역 주민들은 그가 호랑이와 사자 같은 위험한 동물들을 돌보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역 야쿠자와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세키네는 일시적으로 시즈오카현이토로 이사했다. 그는 1982년 사이타마현으로 돌아와 구마가야에 "아프리카 켄넬"을 열었다.[4]

세키네는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능숙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독특한 유머와 말솜씨에 끌렸다. 반면에, 그의 사업 방식, 고객을 협박하는 성향, 그리고 지역 야쿠자와의 친분 때문에 많은 동료들은 그와 너무 깊이 관여하는 것을 피했다. 게다가 세키네는 병적 거짓말쟁이였으며, 지인과 고객뿐만 아니라 언론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가게를 광고하기 위해 많은 허풍을 떨었다. 그가 했던 거짓말 중 하나는 그의 잃어버린 새끼손가락에 관한 것으로, 그는 아프리카에서 사자에게 물려 잘렸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빚을 갚지 못해 야쿠자 조직원들에게 잘린 것이었다.

공범 야마자키 에이코에 따르면, 세키네는 그가 "살인 철학"이라고 부르는 다섯 가지 규칙을 따랐다.[55]

  • 1.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를 죽인다.
  • 2. 보험금을 노리고 죽이지 마라, 잡힐 것이다.
  • 3. 욕심 많은 자를 죽인다.
  • 4.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5.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체를 없애는 것이다.


야마자키는 또한 세키네가 사적으로 완벽한 범죄를 저질렀으며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고 "만약 올림픽에 살인 종목이 있다면 [그가] 금메달을 딸 것이다"라고 종종 자랑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열정적이고 허풍스러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세키네는 종종 소심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묘사되었으며, 이는 증거를 끊임없이 없애려는 그의 강박적인 행동에 반영되었다. 야마자키는 자신이 항상 두려워했지만, 세키네는 자신이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1993년 8월 26일 오후, 교다 시를 운전하던 중 세키네는 세키구치 미츠에를 스트리크닌으로 살해하고 그녀로부터 270만을 훔쳤다. 야마자키에 따르면 세키네는 이전 피해자들처럼 그녀의 시신을 훼손했지만, 그 전에 시신과 성적인 행위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녀의 불에 탄 유해와 재는 누리 강에 버려졌다.

세키네는 이 살인을 전적으로 혼자 저지른 것으로 여겨지는데, 야마자키가 그녀가 사망하기 전에 피해자를 알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카자마가 연루되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이 이론에 대한 모든 증거가 정황 증거이므로 그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그들의 유죄 판결 후, 세키네와 카자와는 모두 도쿄 구치소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게 되었다. 2016년 11월, 세키네는 병에 걸려 교도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2] 그는 2017년 3월 27일 아침, 75세의 나이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사망했다.[2][10]

3. 2. 카자마 히로코 (風間 博子)

風間 博子|가자마 히로코일본어는 1957년 2월 19일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에서 태어났다.[59] "아프리카 켄넬"의 등기상 사장이었다. 소위 "귀한 집 자식"으로 자랐으며, 개를 매우 좋아했다. 세키네 겐과 알기 전까지는 평범한 삶을 살았던 여성으로, 보육사로 일하거나, 토지 가옥 조사사였던 아버지를 돕기 위해 측량 공부를 하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결혼하여 두 명의 친자식을 낳았지만, 전 남편과는 이혼했다. 1983년 아프리카 켄넬을 방문하여 세키네 겐을 만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다. S와 결혼 후에는 S에게 문신을 새기게 된 전처 등에 대항하여, 등에 문신을 새기는 등 S와의 일체감을 깊게 해갔다.[5] 브리더로서도 성장했으며, 도그쇼에서는 S를 대신하여 핸들러를 맡는 등, 외부에 나서는 일이 많았다.

낭비가 심한 세키네 겐과는 대조적으로, 금전 관리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아프리카 켄넬"의 경리를 담당했다. 세키네 겐의 세금 체납을 피하기 위해 위장 이혼을 했고, 세키네 겐을 대신하여 가자마 히로코가 형식적으로 사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가게의 자금 문제를 모두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전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에 깊이 관여했다고 여겨진다. 특히 B·C 사건에서는 살인 현장에 동석했을 뿐만 아니라, 시체 해체에도 관여했으며, 능숙한 솜씨였다고 한다.

체포 후, 비교적 빠른 단계부터 자백을 시작한 세키네 겐과 달리, 가자마 히로코는 묵비를 거의 관철했다. 그러나, 남겨진 개나 가족의 이야기가 나오면 곧 눈물을 글썽이는 이중성을 보이며, 수사원들을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2020년 9월 27일 시점에서 사형수로 도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59]

3. 3. 야마자키 에이코 (山崎 栄光)

山崎 栄光|야마자키 에이코일본어는 1956년 1월 도야마현에서 태어났다. 군마현 가타시나촌에서 화차를 개조한 집(통칭 "폿포 하우스")에 살며 불독을 키웠다.[6] 그는 도그쇼 행사장에서 S(세키네 겐)를 알게 되었고, S의 경영 철학을 배우기 위해 "아프리카 켄넬"을 방문했다가 S의 권유로 "아프리카 켄넬"의 임원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S의 운전기사나 심부름꾼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A 사건 당시, S의 협박으로 시체를 운반하고, 자신의 집을 시체 해체 장소로 제공하여 사체 손괴 및 유기 범행에 가담했다. 그의 집은 산속에 있어 주변에 인가가 없었고, 아내(전처)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범행 장소로 적합했다. S에게 겁을 먹으면서도 B·C 사건, D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협력했다. S의 협박에 공포를 느껴 자신과 가족에게 해가 가해질 것을 두려워했으며, 물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자수하더라도 S의 범행이 입증될지 불안해했다.

수사 단계에서는 사건의 해명에 전면적으로 협력했다. 그러나 검찰과의 밀약이 있었다고 공판에서 증언하며, 검찰이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S 등의 재판에서는 증언을 거부했다.

징역 3년의 실형 판결을 받고 복역하여 1998년 8월 28일에 만기 출소했다. 그 후, 실명으로 사건의 전말을 기록한 책을 출판했다. "Y"는 체포 당시 결혼해 있던 아내의 성을 사용한 것으로, 이전 성은 "시마"였다. S와 K는 그를 "시마"라고 불렀다. 책 출판 후 이혼하고 필명을 "시마나가 유키"로 변경했다.

4. 범행 수법

세키네 겐은 피해자들의 시체를 훼손하는 것을 "시체를 없애는 것"이라고 불렀다.[1] 그는 이 수법으로 4명의 피해자를 살해했다.

피해자들의 시신은 야마자키 에이코의 욕실에서 뼈, 피부, 조직, 내장 기관으로 분리되어 몇 센티미터 크기로 잘게 잘렸다. 뼈는 옷가지 및 개인 소지품과 함께 드럼통에서 소각되었고, 그 재는 숲과 강에 버려졌다.[1] 세키네는 시체를 직접 태우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악취와 연기 때문에 뼈만 남을 때까지 태운 후 남은 살점이 없는지 확인했다.[7] 야마자키는 세키네가 이 과정을 "재밌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범행 수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독살'과 '시체 없는 살인'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1. 독살

세키네는 피해자들에게 질산 스트리크닌을 영양제로 속여 먹이는 수법으로 살해했다.[7] 이 수법으로 총 4명이 사망했다.[25]

1993년 8월 26일 오후, 세키네는 교다시에서 D를 차에 태워 질산 스트리키닌 캡슐을 복용시켜 살해했다.[7]

4. 2. 시체 없는 살인

세키네 겐은 "시체를 투명하게 만든다"는 자신만의 범행 수법을 가지고 있었다.[1] 피해자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하는 데에 매우 치밀하게 행동했다. 시신은 야마자키 에이코의 집 욕실에서 해체되었으며, 뼈, 살점, 내장 등으로 분리되었다.[1] 살점 등은 수 센티미터 크기로 잘게 잘렸고, 뼈는 드럼통에서 옷가지, 소지품과 함께 소각되었다.[1] 재는 군마현의 산림이나 강에 유기되어 증거를 완전히 인멸하려 했다.[1] 세키네는 시체를 직접 태우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불쾌한 냄새와 연기 때문에 뼈만 남을 때까지 태운 후 남은 살점이 없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했다.[7] 야마자키는 이 과정을 진행하면서 세키네가 "재밌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5. 수사

1994년 1월, 오사카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체포되었다.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사이타마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2월부터는 언론이 이 사건을 다루면서 표면화되었다. S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행방불명된 피해자 가족들은 사건성을 계속 주장했다.

같은 해 12월, Y의 증언을 바탕으로 피해자의 유골과 유류품이 발견되었다. 1995년 1월 5일, S와 K가 체포되었고, 1월 8일에는 Y도 체포되었다.[33]

1995년 1월부터 2월까지, 야마자키의 자백에 따라 사이타마현과 군마현 경찰은 구마가야와 카타시나를 중심으로 합동 수색을 실시했다. 구마가야, 카타시나, 카와바, 시라사와, 톤, 강남, 카와고에, 니자 등 여러 지역을 수색했다.

그 결과, 오제 국립공원에서 뼈와 치아 조각, 부적, 시계 등의 유품이 발견되었고, 누리강에서는 불에 타지 않은 뼈 조각, 휴대폰, 집 열쇠 및 자동차 열쇠, 틀니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일부 뼈는 고온에서 소실된 탓에 DNA 감식은 불가능했지만, 남겨진 유품을 통해 피해자를 식별할 수 있었다. 많은 수의 수사관들이 증거물을 찾기 위해 강을 수색했으며, 이후 물증이 될 수 있는 많은 개인 소지품을 발견했다. 군마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보고되었는데, 한 수사관은 2년이나 방치된 금속 물체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12]

6. 재판

물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일관된 진술을 하고 증거 발견에 협력한 야마자키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이 입증되었다.[11] 세키네와 카자마는 공판에서 서로 상대방이 주범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두 사람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95년 7월 7일, 야마자키의 재판이 우라와 지방 법원(현 사이타마 지방 법원)에서 열렸고, 기소 사실이 대체로 인정되었다. 이후 7월 24일, 세키네와 카자마가 같은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세키네는 무죄를 주장했다. 그의 변호사는 증거나 진술서를 공개하지 않은 검찰을 비판했으며, 카자마는 시체 처리를 돕도록 협박당했고 살인이나 시체 훼손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가와사키 사건에서 그녀는 야마자키와 함께 그의 차를 도쿄로 운전했음을 인정했지만, 그것이 그의 차인지 또는 처음부터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몰랐다고 부인했다.[8]

10월 6일, 야마자키의 세 번째 법정 심리에서 그는 검찰과의 합의로 자백했다고 증언했지만, 공범들의 재판에서는 증언을 거부했다. 야마자키는 우라와 지방 검찰청 검사가 충분한 증거를 제공하면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아내의 보석을 받기 위해 협상했다고 밝혔다.[11] 우라와 지방 검찰청은 기자 회견에서 그의 아내의 보석은 적법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어떠한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11] 이후 세키네와 카자마의 변호인은 야마자키의 사법 거래를 근거로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증인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11월 2일, 판사, 검사, 변호사의 참여하에 가타시나 범죄 현장이 확인을 위해 조사되었다. 15일 후, 검찰은 야마자키에게 3년 징역형을 요구했다.

11월 20일, 야마자키는 주요 재판에 처음으로 증인으로 출석했다. 반대 심문이 진행되었지만, 앞서 선언한 바와 같이 그는 증언을 거부했고, 이후 출석에서는 검찰, 경찰, 판사를 비판했다. 검찰은 처음에는 야마자키를 핵심 증인으로 삼을 계획이었지만, 결국 수사 단계에서 진술서에 의존했다. 12월 15일, 야마자키는 살인에 가담한 혐의로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강요당한 사실이 인정되었지만, 신체적 학대나 감시를 받지 않았고, 언어적 위협만 받았으며, 당국에 연락할 기회가 많았고, 스스로 범죄에 가담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는 나중에 항소를 도쿄 고등 법원에 제기했지만 기각되었다. 야마자키는 형을 모두 마쳤다.

1998년 9월 3일, 재판에서 질문을 받은 세키네는, 그 전까지 책임을 인정하거나 부인하지 않았지만, 마침내 관련 사실을 자백했다. 그러나 그는 살인은 카자마가 주도했고, 야마자키가 피해자를 살해했으며, 자신은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참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진술 이후, 부부는 끊임없이 서로 대립했다.

2000년 7월 6일, 검찰은 세키네와 카자와 모두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4일 연속으로 결심 공판이 열렸으며, 세키네는 종신형을, 카자마는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이 시작된 지 약 5년, 총 105번의 공판 끝에 피고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1년 3월 21일, 우라와 지방 법원은 세키네와 카자마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최종 진술에서, 판사들은 피고들의 진술이 상충되고 복잡하다고 지적했으며, 야마자키와 검찰 사이에 비밀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세키네의 자백에는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비록 특정 거짓말이나 과장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의 자백은 여전히 신뢰할 만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2003년 12월 5일, 부부의 첫 번째 항소심이 도쿄 고등 법원에서 열렸고, 변호인 측은 1심 재판에 사실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야마자키는 석방된 후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그의 증언은 검사, 변호인, 그리고 법률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호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특이하게도, 그는 한동안 카자마의 변호에도 증언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8] 2005년 2월 14일, 카자마는 엔도와 와쿠이의 시신을 훼손하는 데 어느 정도 관여했음을 인정했고, 7월 11일 도쿄 고등 법원은 그들의 항소를 기각했다.[13]

이후 두 사람은 일본 최고 재판소에 상고했지만, 2009년 6월 5일 후루타 유키 재판관이 상고를 기각했고, 6월 22일 사형이 확정되었다.[14]

7. 미해결 사건

세키네 겐(関根 元) 주변에서는 1984년에도 여러 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이타마현 경찰은 시신을 수색했지만 발견하지 못했고,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은 입건되지 않았다.[3]

발생일사건 내용
1984년 2월 11일지치부시의 한 야쿠자가 실종되었다. 세키네의 형은 그에게 빚이 있었고, 세키네가 카자마와 결혼하면 돈을 갚겠다고 제안했지만 야쿠자는 이를 거부했다. 실종 당일, 그는 자신의 차를 몰고 의문의 남자를 데리러 나간 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지인들에게 곧 큰돈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3]
1984년 5월 8일아프리카 견사에서 일했던 트럭 운전사가 실종되었다. 세키네가 이전에 설치했던 간판을 교체했기 때문에, 그는 세키네에게 연락하여 보상을 요구했다. 그는 인근 주유소에서 세키네로부터 전화를 받고, 알 수 없는 장소에서 만나자는 지시를 받고 사라졌다.[3]
1984년 6월 초후카야시에 거주하는 전 육상자위대 장교의 아내이자 스낵바 여주인이 실종되었다. 부부는 돈 문제로 자주 다퉜는데, 남편이 허락 없이 그녀의 고급 외제차를 팔았기 때문이다. 여성은 곧 사라졌다. 장교는 다툼 중 그녀를 때려 죽였고, 세키네에게 시신 처리를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과실치사로 간주될 수 있어 공소 시효가 만료되어 기소될 수 없다.[3]



전 육상자위대 장교는 이전 피해자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처리하는 것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그의 진술을 바탕으로 1995년 4월 수색이 진행되었지만, 1991년 구 오시키리 다리의 철거 이후 강바닥이 말라버려 수색은 더욱 어려워졌다.[15][16] 당국은 장교가 시체를 훼손했다고 주장한 구마가야의 옛 견사를 조사했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3]

8. 사회적 영향 및 평가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여러 가지 사회적, 법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건 발생 후, 세키네 겐과 가자마 루미코가 운영하던 애견샵 "아프리카 켄넬"은 문을 닫았다. 이들이 운영하던 건물은 철거되지 않고 구마가야시에 그대로 남아있어[26] 사건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사형수로 수감 중인 가자마는 여전히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야마자키 역시 이를 지지하며 세키네가 그들 모두를 강압하여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다.[8] 이는 사건의 진실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애견 사업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키네와 가자마는 알래스칸 맬러뮤트 브리더로 알려져 있었지만, 버블 붕괴 이후 매출 감소와 호화로운 신견사 겸 자택 건설 등으로 인해 빚이 늘어나 경영난을 겪었다. 이들은 고객들에게 사기성 상행위를 일삼았으며, 결국 고객들과의 분쟁 끝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다.[25]

또한, 이 사건은 증거 부족과 증언의 신빙성 문제 등 일본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유일하게 일관된 진술을 한 전 직원 Y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이 입증되었지만, Y는 검사와의 밀약이 있었다고 폭로하여 논란이 되었다.

8. 1. 한국의 관점

이 사건은 범행의 잔혹성뿐만 아니라, 범인들이 특정 정치 성향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주범 중 한 명인 세키네 겐이 과거 일본의 지정 폭력단인 이나가와회와 연관되어 있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25] 세키네 겐은 이나가와회 계열 폭력단의 조장 대행 B와 친분이 있었고, "아프리카 켄넬"에서 고객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중재 역할을 맡는 등 S의 보디가드와 같은 존재였다.[25]

또한, 이 사건은 범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증거 확보의 중요성과 사법 시스템의 한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증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유일하게 일관된 진술을 하고 증거 발견에 협력한 전 직원 Y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이 입증되었으나, Y는 검사와의 밀약이 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공판에서 증언하여 논란이 되었다.[25]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차가운 열대어가 제작되어, 대중들에게 사건의 잔혹성과 사회적 의미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다만, 영화에서는 범인의 직업이 애견 판매업자에서 열대어 가게 주인으로 변경되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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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뉴스 関根死刑囚が死亡=埼玉の愛犬家殺人 http://www.jiji.com/[...] 2017-03-27
[3] 뉴스 「刺青が分からないように刻まなきゃ」遺体をサイコロステーキに…平成最大の猟奇殺人、凄惨な実態 https://bunshun.jp/a[...] 2020-10-22
[4] 뉴스 「刺青が分からないように刻まなきゃ」遺体をサイコロステーキに…平成最大の猟奇殺人、凄惨な実態 https://bunshun.jp/a[...] 2020-10-22
[5] 뉴스 検事の取り計らいで妻と取調室セックス…平成最大の猟奇事件の捜査過程はなぜ不可解なのか https://bunshun.jp/a[...] 2020-10-22
[6] 뉴스 検事の取り計らいで妻と取調室セックス…平成最大の猟奇事件の捜査過程はなぜ不可解なのか https://bunshun.jp/a[...] 2020-10-22
[7] 뉴스 「刺青が分からないように刻まなきゃ」遺体をサイコロステーキに…平成最大の猟奇殺人、凄惨な実態 https://bunshun.jp/a[...] 2020-10-22
[8] 뉴스 検事の取り計らいで妻と取調室セックス…平成最大の猟奇事件の捜査過程はなぜ不可解なのか https://bunshun.jp/a[...]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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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뉴스 「刺青が分からないように刻まなきゃ」遺体をサイコロステーキに…平成最大の猟奇殺人、凄惨な実態 https://bunshun.jp/a[...] 2020-10-22
[11] 뉴스 検事の取り計らいで妻と取調室セックス…平成最大の猟奇事件の捜査過程はなぜ不可解なのか https://bunshun.jp/a[...]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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