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성사집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성사집은 미사, 성사 등 전례 거행에 필요한 기도문과 전례문을 담은 책으로, 초기 교회에서 사용되던 기도문집에서 발전했다. 주요 성사집으로는 레오 성사집, 젤라시오 성사집, 그레고리오 성사집이 있으며, 각 성사집은 로마 전례의 역사와 발전을 보여준다. 중세 말 미사 경본으로 통합되었으며, 현재 로마 미사 경본과 렉시오나리 등으로 그 역할이 분담되었다. 축복서는 성사집에서 수집한 축복문을 모아놓은 서적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가톨릭 전례서 - 로마 보편 전례력
    로마 보편 전례력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년을 구성하는 문서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념하고 성인들의 축일을 대축일, 축일, 기념일로 구분하며, 한국 천주교회는 여기에 한국 순교 성인 기념일을 추가하여 사용한다.
  • 가톨릭 전례서 - 화답송
    화답송은 가톨릭 미사 전례에서 독서와 복음 사이에 불리는 응송의 하나로, 시편 구절이며, 그레고리오 성가로 불리고, 응송들을 모아 놓은 책 또는 미사 전례의 음악적 항목들을 엮은 특정 서적을 지칭하기도 한다.
  • 가톨릭 기도문과 전례문 - 그레고리오 성가
    그레고리오 성가는 서방 기독교 전례에서 사용되는 무반주 일성부 성가로, 로마와 갈리아 성가의 통합을 거쳐 서방 기독교 세계의 표준 성가로 자리매김했으며, 교회 선법 체계화 및 네우마 기보법 발달과 함께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가톨릭 기도문과 전례문 - 성모송
    성모송은 가브리엘 대천사와 엘리사벳의 인사말에 기반하여 하느님 찬양과 성모 마리아에게 애원과 찬미를 드리는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기도로, 묵주기도의 기본이 되며 다양한 언어 번역본과 음악 작품으로 널리 사용된다.
  • 표시 이름과 문서 제목이 같은 위키공용분류 - 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표시 이름과 문서 제목이 같은 위키공용분류 - 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성사집
성사집
종류전례서
종교로마 가톨릭교회
목적미사 및 기타 전례 거행
내용미사 기도문
성사 예식
축복문
기타 전례문
역사
기원초기 교회 시대
발전중세 시대 다양한 형태로 발전
표준화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표준화 시도
주요 개정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대적인 개정
구성 요소
주요 부분통상문
고유문
감사 기도
영성체송
강복
사용법
사용 시기미사, 성사, 성무일도 등 각종 전례
사용 주체사제, 부제 등 전례 봉사자
중요성
신학적 의미교회의 기도와 신앙 표현
전례적 의미전례 거행의 표준 텍스트 제공
기타 정보
관련 용어미사 경본, 로마 미사 경본

2. 역사

2. 1. 초기

초대교회에서는 각 미사나 성사 때마다 사용한 기도문을 낱장의 종이에 기록하였으며, 이를 모은 책을 기도문집(libelli)이라고 불렀다. 그 후 이 기도문들이 수집되어 책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 책은 집전자들이 미사(성체 성사)와 다른 성사들을 거행하는 데 필요한 기도문과 전례문을 담고 있어서 성사집(Sacramentarium)이라 불리게 되었다. 본격적인 성사집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은 한때 '레오 성사집'으로 알려진 '베로나 성사집'이다.

"레오 성사집"(The Leonine Sacramentary)은 가장 오래된 성사집이다.[1] 7세기에 쓰여진 필사본이 단 하나만 알려져 있는데, 베로나 대성당의 서고에서 발견되어 1735년 조셉 비안키니에 의해 출판되었고, 교황 레오 1세(440-61)의 저작으로 추정되었다.[1] 이 책은 순수한 로마 전례를 나타내며, 갈리아 전례 요소는 전혀 없다.[1] 그러나 제단에서 사용하기 위해 편찬된 책은 아니며, 단편으로, 미사 경문이나 통상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민간력을 기준으로 배열된 다양한 미사의 고유문(본기도, 봉헌문, 감사송,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과 서품문 모음집이다.[1]

이 모음집이 로마 전례라는 것은 로마에 대한 지역적 언급이 가득하다는 점에서 명백하다.[1] 예를 들어, 주교가 자신의 서품 기념일에 바치는 본기도 중 하나는 로마 교황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1] 성 요한과 성 바오로를 위한 감사송은 그들이 "이 도시의 경계" 안에 묻혀 있음을 기억하며, 로마의 수호성인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미사는 끊임없이 그 도시를 언급한다.[1]

루이 뒤센은 레오 성사집이 538년경 로마의 공식 서적에서 크게 지적인 개입 없이 복사된 개인 기도 모음집이라고 결론 내렸다.[1] 그는 특히 6월에 배치된 미사(실제로는 부활 미사)의 봉헌문에 최근 적들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이 연대를 추정했는데, 이 언급이 538년 부활 시기에 비티게스와 그의 고트족에 의한 로마 포위 공격이 해제된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했다.[1]

2. 2. 젤라시오 성사집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본격적인 성사집은 '젤라시오 성사집'(Sacramentarium Gelasianum)이다.[3] 이는 7-8세기의 필사본으로, 오늘날 Codice Vaticano reginense latino 316으로 분류되어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680년에 토마시 추기경이 그 내용을 출판하였다. 후대에 이를 토대로 하여 다른 성사집들과 혼합하여 생성된 '8세기의 젤라시오 성사집'과 구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옛 젤라시오 성사집'이라고 부른다.[3]

8세기의 젤라시오 성사집은 '옛 젤라시오 성사집'을 원천으로 하지만, 다른 여러 성사집과 동일하게, 로마에서 알프스 산맥 이북으로 옮겨져, 그 성사집을 받아들인 지역 교회의 실정에 맞추어 매우 광범위한 적응의 과정을 겪게 된 성사집들이다. 이렇게 젤라시오 성사집을 바탕으로 복잡한 혼합의 과정을 거친 성사집들을 '8세기의 젤라시오 성사집'이라고 부른다.[3]

"젤라시안 성사집"은 로마의 명칭 또는 본당 교회를 맡은 사제에게 필요한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유실되었지만, 이 원본은 7세기 중반에 로마의 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을 위해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책에는 그레고리오 1세(590–604)가 미사 경문에 도입한 수정 사항(특히 기도문 ''Hanc igitur'' 삽입)이 포함되어 있지만, 교황 세르지오 1세 (687–701 재위)가 공식화한 하느님의 어린 양(Agnus Dei)이나 교황 그레고리오 2세 (715–731 재위)가 추가한 사순절 목요일 미사는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성사집 사본은, 현재 종종 ''옛 젤라시안 성사집''이라고 불리는 바티칸 레지나 라트. 316으로, 7세기 또는 8세기 초에 파리의 생 드니 수도원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책에는 필사본이 복사된 시점부터 갈리아의 전례 관행을 도입한 다섯 개의 보간된 부분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러한 보간은 텍스트의 로마 부분과 쉽게 구별된다.

옛 젤라시안 성사집은 세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에는 성탄 전야부터 오순절 팔부일까지의 축일과 주일 미사(당시에는 오순절 이후의 전례 시기를 위한 특별 미사가 없었음)와 함께 서품, 예비 신자 예식의 모든 의례를 위한 기도, 부활 성야에 성수와 성유 축복, 성당 봉헌, 수녀 영입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제2권에는 연중 성인들의 고유 기도, 공통 기도, 그리고 대림절 미사가 포함되어 있다. 제3권에는 "주일 미사"(예: 모든 주일)로 표시된 많은 미사, 미사 경문, 오늘날 서원 미사라고 불리는 미사(예: 여행자를 위한 미사, 고난의 시기를 위한 미사, 왕을 위한 미사 등), 죽은 자를 위한 미사, 몇 가지 축복(성수, 과일, 나무 등을 위한 축복), 특별한 경우를 위한 다양한 기도문이 포함되어 있다.

젤라시안 성사집은 피핀 3세의 요청으로 8세기에 개정되었으며, 이 작업은 플라비니 수도원에서 수행되어 760년과 770년 사이에 완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유실된 이 성사집은 때때로 ''피핀 왕의 성사집''이라고 불린다. 이 성사집에서 복사된 사본 계열은 일반적으로 ''프랑크 젤라시안'' 또는 ''8세기 젤라시안'' 성사집이라고 불린다. 가장 충실한 사본은 780년경에 필사된 ''젤론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MS 라틴 12048로 여겨진다. 프랑크 젤라시안 유형의 다른 사본 약 12개가 현존한다.

프랑크 젤라시안은 옛 젤라시안 성사집과 일반적으로 ''2형 그레고리안''이라고 불리는 그레고리안 유형의 특정 다른 성사집(오늘날에는 단일 현존 사본인 ''파두엔세 성사집'', 파도바, 비블. 캡., cod. D.47에서만 알려짐)의 자료를 세심하게 재작업한 것이다. 젤론 성사집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에는 연중과 성인들의 축일이 하나의 연속적인 계열로 포함되어 있으며, 일반적인 그레고리안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부활절에 미사 경문이 주어진다. 두 번째 부분에는 주교의 축복과 기타 주교 자료, 수도원 사용을 위한 기도문, 세례 예식, 그리고 ''히에로니무스 순교록''의 요약이 포함되어 있다.

교황 젤라시오 1세(492–496 재위)에게 귀속된 것은 젤라시오가 성사 및 기도문에 대한 다양한 서문을 썼다고 명시하고 있는 ''교황 연대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젤라시오 1세는 그의 이름을 딴 후대 성사집을 편찬하지 않았다.[3]

젤라시안 유형의 성사집과 함께, 로마와 프랑크 관행의 혼합인 이들 외에도, 메로빙거 시대의 여러 오래된 갈리아 성사집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모두 갈리아와 일부 아일랜드 전통의 혼합을 기반으로 하며 로마 관행을 거의 강조하지 않는다.

2. 3. 그레고리오 성사집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이름을 붙였으나 실제로는 교황 오노리오 1세(625-638년)에 의해 편집된 성사집이다.[8] 젤라시오 성사집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각 권으로 구분되지 않았다.[9]
  • 봉헌 기도(예물 기도) 앞에 단 하나의 기도문(본기도)만 있다.
  • '순회지'(Statio)를 축일명 아래에 명시하여, 교황이 특정 전례일에 전례를 거행하기로 정해놓은 성당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젤라시오 성사집보다 단순하고 내용이 덜 풍부하다.[10]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두 가지 주요 형태로 나타난다.

  • '''하드리아노의 그레고리오 성사집(Sacramentorum Gregorianum Hadrianum):''' 교황 하드리아노 1세(772-795)가 샤를 마뉴의 요청으로 보낸 그레고리오 성사집 원본을 필사한 것이다. 샤를 마뉴는 자신의 제국을 통일하기 위해 로마 전례를 도입하고자 하였고, 이에 교황 하드리아노 1세에게 성사집을 요청하였다. 이 성사집은 알퀸에 의해 프랑크 왕국의 실정에 맞게 수정 및 보완되었으며, 부록 형태로 추가되었다. 알퀸의 부록은 9세기 이후 성사집 편집에 큰 영향을 미쳐, 옛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부록편의 전례문들이 혼합되는 현상이 나타났다(10세기).[1]
  • '''파도바의 그레고리오 성사집(Sacramentorium Gregorianum Paduense):''' 680-685년경 집필되었으며, 교황 그레고리오 1세와 80년의 차이가 난다.[11] 9세기 중반 리에주에서 편집되었고, 이후 베로나로 옮겨져 10세기와 11세기의 내용이 추가되었다.


샤를마뉴는 781년과 791년 사이에 교황 하드리아노 1세에게 로마 교회의 예식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고,[4] 교황이 보낸 책이 그레고리오 성사집의 핵심이 되었다. 이 책은 여러 번 복사되면서 다양한 필사본이 존재하며, 필사자들에 의해 내용이 추가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전례 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에 그의 저작으로 여겨지며, 8세기의 요한 집사는 그의 ''그레고리오의 생애''에서 "그는 젤라시오의 성사집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조금 변경하고, 약간의 내용을 추가했다."라고 언급했다.

3. 성사집의 쇠퇴

중세 말기에 성사집, 그라두알레, 복음서, 서간집 등이 통합되어 ''Missale plenum'' ("전체 또는 완전한 미사 경본")이 등장했다.[2] 교황 비오 5세는 1570년에 로마 미사 경본으로 알려진 미사 경본의 공식 버전을 출판했다.[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황 바오로 6세는 미사에서 읽는 성경의 양을 늘리고 기도문을 수정하여, 독서를 렉시오나리라는 별도의 책으로 옮겼다.[2] 복음서 책은 렉시오나리에서 발췌한 내용을 담는 것이 권장되지만 의무는 아니다. 로마 미사 경본은 성사집에는 없었던 안티폰 등과 정교한 예식 규정을 계속 포함하고 있다.[2]

4. 주요 성사집 종류

로마 전례의 성사집 중 완전하거나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주요 문헌 집단으로는 레오니안, 젤라시안, 그레고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세 가지가 있다.
레오 성사집 (베로나 성사집)레오 성사집(베로나 성사집)은 가장 오래된 성사집으로, 7세기에 쓰여진 필사본이 유일하게 남아있다.[1] 1735년 조셉 비안키니에 의해 베로나 대성당 서고에서 발견되어 출판되었으며, 교황 레오 1세의 저작으로 추정되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1] 이 성사집은 순수한 로마 전례를 나타내며, 갈리아 전례 요소는 없다.[1]

레오 성사집은 제단에서 사용하기 위해 편찬된 책은 아니며, 내용의 혼란함과 단편적인 구성을 보인다.[1] 미사 경문이나 통상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다양한 미사의 고유문(본기도, 봉헌문, 감사송,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과 서품문 모음집을 담고 있다.[1] 4월의 여섯 번째 미사 중간부터 시작하여 겨울 사순절 세례 축복으로 끝을 맺으며, 각 달마다 여러 축일과 행사에 대한 매우 많은 미사 그룹이 포함되어 있다.[1] 예를 들어, 6월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를 위한 28개의 미사가 있다.[1]

이 모음집은 로마 전례임이 명백하며, 로마에 대한 지역적 언급이 많다.[1] 예를 들어, 주교 서품 기념일에 바치는 본기도는 로마 교황만이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1] 성 요한과 성 바오로를 위한 감사송은 그들이 "이 도시의 경계" 안에 묻혀 있음을 기억하며,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미사는 끊임없이 로마를 언급한다.[1]

루이 뒤센은 레오 성사집이 538년경 로마의 공식 서적에서 크게 지적인 개입 없이 복사된 개인 기도 모음집이라고 결론 내렸다.[1] 그는 6월에 배치된 미사(부활 미사) 봉헌문에 언급된, 최근 적들로부터의 구원이 538년 부활 시기에 비티게스와 그의 고트족에 의한 로마 포위 공격이 해제된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1] 다른 작가들은 402년 알라릭 1세의 침공, 교황 펠릭스 3세 치하, 혹은 6세기나 7세기 골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추정하는 등 다양한 연대 추정이 존재한다. [1]
젤라시오 성사집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본격적인 성사집은 '젤라시오 성사집'(Sacramentarium Gelasianum)이다. 7-8세기의 필사본으로, 오늘날 Codice Vaticano reginense latino 316으로 분류되어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680년에 토마시 추기경이 그 내용을 출판하였다. 후대에 이를 토대로 하여 다른 성사집들과 혼합하여 생성된 '8세기의 젤라시오 성사집'과 구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옛 젤라시오 성사집'이라고 부른다.

"젤라시안 성사집"은 로마의 명칭 또는 본당 교회를 맡은 사제에게 필요한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유실되었지만, 이 원본은 7세기 중반에 로마의 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을 위해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책에는 그레고리오 1세(590–604)가 미사 경문에 도입한 수정 사항(특히 기도문 ''Hanc igitur'' 삽입)이 포함되어 있지만, 교황 세르지오 1세(687–701 재위)가 공식화한 하느님의 어린 양(Agnus Dei)이나 교황 그레고리오 2세(715–731 재위)가 추가한 사순절 목요일 미사는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성사집 사본은, 현재 종종 ''옛 젤라시안 성사집''이라고 불리는 바티칸 레지나 라트. 316으로, 7세기 또는 8세기 초에 파리의 생 드니 수도원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책에는 필사본이 복사된 시점부터 갈리아의 전례 관행을 도입한 다섯 개의 보간된 부분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러한 보간은 텍스트의 로마 부분과 쉽게 구별된다. 옛 젤라시안 성사집은 세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에는 성탄 전야부터 오순절 팔부일까지의 축일과 주일 미사(당시에는 오순절 이후의 전례 시기를 위한 특별 미사가 없었음)와 함께 서품, 예비 신자 예식의 모든 의례를 위한 기도, 부활 성야에 성수와 성유 축복, 성당 봉헌, 수녀 영입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제2권에는 연중 성인들의 고유 기도, 공통 기도, 그리고 대림절 미사가 포함되어 있다. 제3권에는 "주일 미사"(예: 모든 주일)로 표시된 많은 미사, 미사 경문, 오늘날 서원 미사라고 불리는 미사(예: 여행자를 위한 미사, 고난의 시기를 위한 미사, 왕을 위한 미사 등), 죽은 자를 위한 미사, 몇 가지 축복(성수, 과일, 나무 등을 위한 축복), 특별한 경우를 위한 다양한 기도문이 포함되어 있다.

피핀 3세의 요청으로 8세기에 개정된 성사집은 ''프랑크 젤라시안'' 또는 ''8세기 젤라시안'' 성사집이라고 불린다. 이 작업은 플라비니 수도원에서 수행되어 760년과 770년 사이에 완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충실한 사본은 780년경에 필사된 ''젤론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MS 라틴 12048로 여겨진다.

교황 젤라시오 1세(492–496 재위)에게 귀속된 것은 젤라시오가 성사 및 기도문에 대한 다양한 서문을 썼다고 명시하고 있는 ''교황 연대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젤라시오 1세는 그의 이름을 딴 후대 성사집을 편찬하지 않았다.[3]
그레고리오 성사집그레고리오 성사집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이름을 딴 성사집으로, 오늘날 수많은 필사본을 통해 그 내용이 전해진다.[8] 학자들은 이 필사본들이 교황 오노리오 1세(625-638)에 의해 편집된 하나의 원본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젤라시오 성사집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9]


  • 각 권으로 구분되지 않았다.[9]
  • 봉헌 기도(예물 기도) 앞에 단 하나의 기도문(본기도)만 있다.
  • '순회지'(Statio)를 축일명 아래에 밝혔다.


전체적으로 젤라시오 성사집보다 단순하고 내용이 덜 풍부하다.[10]

그레고리오 성사집의 주요 형태는 하드리아노의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파도바의 그레고리오 성사집 두 가지이다. 하드리아노의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교황 하드리아노 1세가 샤를 마뉴의 요청으로 보낸 그레고리오 성사집 원본을 필사한 것이다.[4] 샤를마뉴는 자신의 제국을 통일하기 위해 로마 전례를 도입하고자 교황 하드리아노 1세에게 성사집을 요청했다. 알퀸은 로마에서 받은 그레고리오 성사집에 부록을 추가하여 기도문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9세기 이후 성사집을 새로 편집할 때마다 부록편에서 많은 기도문들이 발췌되어 본편에 포함되었고, 10세기에는 옛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부록편의 전례문들이 완전히 혼합되었다. 파도바의 그레고리오 성사집은[11] 9세기 중반 리에주에서 편집되었으며, 이후 베로나로 옮겨져 10세기와 11세기의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4]

# 미사 통상문

# 성탄 전야부터 시작하는 한 해의 고유 기도문 (교회력에 따름, 성인 축일은 민간력 날짜에 통합, 로마 교회의 스테이션 기록)

# 서품을 위한 기도문

샤를마뉴는 로마 전례 도입을 위해 781년과 791년 사이 교황 하드리아노 1세에게 로마 교회의 예식서를 요청했다.[4] 교황이 보낸 책이 그레고리안 성사집의 핵심이며, 여러 필사본에 다양한 내용이 추가되었다. 9세기와 11세기 사이에 이 책은 추가 내용을 포함하여 로마로 돌아와 순수한 로마 전례의 자리를 차지했고, 로마 미사 경본의 기초가 되었다.[1]

4. 1. 레오 성사집 (베로나 성사집)

레오 성사집(베로나 성사집)은 가장 오래된 성사집으로, 7세기에 쓰여진 필사본이 유일하게 남아있다.[1] 1735년 조셉 비안키니에 의해 베로나 대성당 서고에서 발견되어 출판되었으며, 교황 레오 1세의 저작으로 추정되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1] 이 성사집은 순수한 로마 전례를 나타내며, 갈리아 전례 요소는 없다.[1]

레오 성사집은 제단에서 사용하기 위해 편찬된 책은 아니며, 내용의 혼란함과 단편적인 구성을 보인다.[1] 미사 경문이나 통상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다양한 미사의 고유문(본기도, 봉헌문, 감사송,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과 서품문 모음집을 담고 있다.[1] 4월의 여섯 번째 미사 중간부터 시작하여 겨울 사순절 세례 축복으로 끝을 맺으며, 각 달마다 여러 축일과 행사에 대한 매우 많은 미사 그룹이 포함되어 있다.[1] 예를 들어, 6월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를 위한 28개의 미사가 있다.[1]

이 모음집은 로마 전례임이 명백하며, 로마에 대한 지역적 언급이 많다.[1] 예를 들어, 주교 서품 기념일에 바치는 본기도는 로마 교황만이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1] 성 요한과 성 바오로를 위한 감사송은 그들이 "이 도시의 경계" 안에 묻혀 있음을 기억하며,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미사는 끊임없이 로마를 언급한다.[1]

루이 뒤센은 레오 성사집이 538년경 로마의 공식 서적에서 크게 지적인 개입 없이 복사된 개인 기도 모음집이라고 결론 내렸다.[1] 그는 6월에 배치된 미사(부활 미사) 봉헌문에 언급된, 최근 적들로부터의 구원이 538년 부활 시기에 비티게스와 그의 고트족에 의한 로마 포위 공격이 해제된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1] 다른 작가들은 402년 알라릭 1세의 침공, 교황 펠릭스 3세 치하, 혹은 6세기나 7세기 골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추정하는 등 다양한 연대 추정이 존재한다. [1]

4. 2. 젤라시오 성사집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본격적인 성사집은 '젤라시오 성사집'(Sacramentarium Gelasianum)이다. 7-8세기의 필사본으로, 오늘날 Codice Vaticano reginense latino 316으로 분류되어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680년에 토마시 추기경이 그 내용을 출판하였다. 후대에 이를 토대로 하여 다른 성사집들과 혼합하여 생성된 '8세기의 젤라시오 성사집'과 구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옛 젤라시오 성사집'이라고 부른다.

"젤라시안 성사집"은 로마의 명칭 또는 본당 교회를 맡은 사제에게 필요한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유실되었지만, 이 원본은 7세기 중반에 로마의 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을 위해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책에는 그레고리오 1세(590–604)가 미사 경문에 도입한 수정 사항(특히 기도문 ''Hanc igitur'' 삽입)이 포함되어 있지만, 교황 세르지오 1세(687–701 재위)가 공식화한 하느님의 어린 양(Agnus Dei)이나 교황 그레고리오 2세(715–731 재위)가 추가한 사순절 목요일 미사는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성사집 사본은, 현재 종종 ''옛 젤라시안 성사집''이라고 불리는 바티칸 레지나 라트. 316으로, 7세기 또는 8세기 초에 파리의 생 드니 수도원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책에는 필사본이 복사된 시점부터 갈리아의 전례 관행을 도입한 다섯 개의 보간된 부분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러한 보간은 텍스트의 로마 부분과 쉽게 구별된다. 옛 젤라시안 성사집은 세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에는 성탄 전야부터 오순절 팔부일까지의 축일과 주일 미사(당시에는 오순절 이후의 전례 시기를 위한 특별 미사가 없었음)와 함께 서품, 예비 신자 예식의 모든 의례를 위한 기도, 부활 성야에 성수와 성유 축복, 성당 봉헌, 수녀 영입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제2권에는 연중 성인들의 고유 기도, 공통 기도, 그리고 대림절 미사가 포함되어 있다. 제3권에는 "주일 미사"(예: 모든 주일)로 표시된 많은 미사, 미사 경문, 오늘날 서원 미사라고 불리는 미사(예: 여행자를 위한 미사, 고난의 시기를 위한 미사, 왕을 위한 미사 등), 죽은 자를 위한 미사, 몇 가지 축복(성수, 과일, 나무 등을 위한 축복), 특별한 경우를 위한 다양한 기도문이 포함되어 있다.

피핀 3세의 요청으로 8세기에 개정된 성사집은 ''프랑크 젤라시안'' 또는 ''8세기 젤라시안'' 성사집이라고 불린다. 이 작업은 플라비니 수도원에서 수행되어 760년과 770년 사이에 완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충실한 사본은 780년경에 필사된 ''젤론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MS 라틴 12048로 여겨진다.

교황 젤라시오 1세(492–496 재위)에게 귀속된 것은 젤라시오가 성사 및 기도문에 대한 다양한 서문을 썼다고 명시하고 있는 ''교황 연대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젤라시오 1세는 그의 이름을 딴 후대 성사집을 편찬하지 않았다.[3]

4. 3. 그레고리오 성사집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이름을 딴 성사집으로, 오늘날 수많은 필사본을 통해 그 내용이 전해진다.[8] 학자들은 이 필사본들이 교황 오노리오 1세(625-638)에 의해 편집된 하나의 원본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젤라시오 성사집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9]

  • 각 권으로 구분되지 않았다.[9]
  • 봉헌 기도(예물 기도) 앞에 단 하나의 기도문(본기도)만 있다.
  • '순회지'(Statio)를 축일명 아래에 밝혔다.


전체적으로 젤라시오 성사집보다 단순하고 내용이 덜 풍부하다.[10]

그레고리오 성사집의 주요 형태는 하드리아노의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파도바의 그레고리오 성사집 두 가지이다. 하드리아노의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교황 하드리아노 1세가 샤를 마뉴의 요청으로 보낸 그레고리오 성사집 원본을 필사한 것이다.[4] 샤를마뉴는 자신의 제국을 통일하기 위해 로마 전례를 도입하고자 교황 하드리아노 1세에게 성사집을 요청했다. 알퀸은 로마에서 받은 그레고리오 성사집에 부록을 추가하여 기도문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9세기 이후 성사집을 새로 편집할 때마다 부록편에서 많은 기도문들이 발췌되어 본편에 포함되었고, 10세기에는 옛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부록편의 전례문들이 완전히 혼합되었다. 파도바의 그레고리오 성사집은[11] 9세기 중반 리에주에서 편집되었으며, 이후 베로나로 옮겨져 10세기와 11세기의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4]

# 미사 통상문

# 성탄 전야부터 시작하는 한 해의 고유 기도문 (교회력에 따름, 성인 축일은 민간력 날짜에 통합, 로마 교회의 스테이션 기록)

# 서품을 위한 기도문

샤를마뉴는 로마 전례 도입을 위해 781년과 791년 사이 교황 하드리아노 1세에게 로마 교회의 예식서를 요청했다.[4] 교황이 보낸 책이 그레고리안 성사집의 핵심이며, 여러 필사본에 다양한 내용이 추가되었다. 9세기와 11세기 사이에 이 책은 추가 내용을 포함하여 로마로 돌아와 순수한 로마 전례의 자리를 차지했고, 로마 미사 경본의 기초가 되었다.[1]

5. 특정 필사본 목록

6세기부터 13세기까지 제작된 주요 성사집 필사본은 다음과 같다.


  • 베로나 성사집 (레오 성사집): 베로나, Biblioteca Capitolare Cod. LXXXV (80)에 보관되어 있으며, 교황 레오 1세 (440-461)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5세기와 6세기의 로마 팸플릿(libelli missarum)을 베낀 것이다. 이 종류의 유일한 필사본이다.
  • 고(古) 젤라시우스 성사집: 바티칸 Reg. lat. 316에 보관되어 있으며, 교황 젤라시우스 1세 (492-496)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6세기에 기원하여 8세기 초에 현재 형태로 작성되었다. 6세기 로마 사제 전례의 유일한 증거이며, 필사본 복사 시점부터 갈리아 전례 관행을 도입한 삽입 구절이 있다.
  • 프랑크 미사 경본: 바티칸 Reg. lat. 257 (7세기)에 보관되어 있으며, 고(古) 젤라시우스 성사집과 유사한 uncial 필사본 파편이다. 11개의 미사를 포함하며, 형식은 로마식이지만 예식서에서 갈리아 삽입이 있었다.
  •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성사집: 추정적으로 재구성된 초기 성사집으로, 그레고리오 계열 성사집의 원형이다.
  • "라벤나 롤": 루가노, 프린시페 피오 기록 보관소에 보관(번호 없음)되어 있으며, 강림절과 관련된 약 40개의 기도가 포함되어 있다. 베드로 크리소스토고 시대인 5세기에 기원했을 수 있으며, 현존하는 조각은 7세기 것이다.[6]
  • "미살레 갈리카눔": 바티칸 Reg. 라트. 317 (c. 700)에 보관되어 있으며, 메로빙거-갈리카눔 유형의 성사집이다.
  • "미살레 갈리카눔 베투스": [https://digi.vatlib.it/view/bav_pal_lat_493/ 바티칸 Pal. 라트. 493] (c. 700)에 보관되어 있으며, 메로빙거-갈리카눔 유형의 성사집이다.
  • 파도바 성사집: 파도바, Biblioteca Capitulare cod. D.47 (659년에서 681년 사이)에 보관되어 있으며, 9세기 중반의 필사본으로 "유형 2 그레고리오" 성사집의 현존하는 유일한 예이다.
  • 보비오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MS 라틴 13246 (8세기 초)에 보관되어 있으며, 메로빙거-갈리아형 성사집이다.
  • 피핀 왕 성사집: 760년에서 770년 사이에 제작되었으며 현재는 유실되었지만, 프랑크 젤라시안형의 원형 성사집이다.
  • 젤론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MS 라틴 12048 (c. 780)에 보관되어 있으며, 프랑크 젤라시안형을 가장 충실하게 증언하는 문서이다.
  • 그레고리우스 "하드리아눔": 캉브레, 캉브레 시립 미디어센터 MS 164에 보관되어 있으며, 784년에서 791년 사이에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가 샤를마뉴에게 보낸 교황 전례 성사집의 사본이다. 811-812년에 제작되었으며, 현재는 유실된 원본의 직접적인 사본일 가능성이 높다.
  • 라인아우 성사집: 취리히 중앙 도서관 MS Rh. 30 (c. 795/800)에 보관되어 있으며, 프랑크 젤라시안형 성사집이다.
  • 장크트갈렌 성사집 (젤라시안 레메디우스 성사집): 장크트갈렌,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 Cod. Sang. 348 (c. 800)에 보관되어 있으며, 프랑크 젤라시안형 성사집이다.
  • 앙굴렘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Lat. 816에 보관되어 있으며, 프랑크 젤라시안형 성사집이다.
  • "필립스 성사집": 베를린, 베를린 주립 도서관 Phill. 1667 (8세기 또는 9세기)에 보관되어 있으며, 복합 젤라시안-그레고리안형 성사집이다.
  • 마인츠의 성 알반 수도원 성사집: 보들리안 도서관 MS Auct. D. 1. 20 (9세기 2/4분기)에 보관되어 있다.
  • 마르무티에 성사집 (오툉 성사집): 오툉, 시립 도서관 MS 19 (c. 845—850)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레고리오 하드리아눔 양식의 성사집으로, 알쿠인이 작성했을 가능성이 있는 "서문" 및 기타 부록을 포함한다.
  • 드로고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MS lat. 9428 (826년에서 855년 사이)에 보관되어 있다.
  • "Codex Ottobonianus": 바티칸 도서관 Ott. lat. 313 (850년 이전)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레고리오 하드리아눔 양식의 성사집으로, 알쿠인이 작성했을 가능성이 있는 "서문" 및 기타 부록을 포함한다.
  • "Codex Reginae 337": 바티칸 도서관 Reg. lat. 337 (850년 이전)에 보관되어 있으며, ''Praefatiuncula''는 없지만 기타 부록을 포함하는 그레고리오 하드리아눔 양식의 성사집이다.
  • 아미앵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MS lat. 9432 (9세기 후반)에 보관되어 있다.
  • 대머리 카를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MS lat. 1141 (c. 870)에 보관되어 있으며, 정교하게 장식된 성사집의 조각이다.
  • 노난톨라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MS lat. 2292 (c. 870)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레고리오 하드리아눔 양식의 성사집이다.
  • 에흐터나흐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MS lat. 9433 (895년에서 898년 사이)에 보관되어 있다.
  • 몬차 성사집: 몬차, Biblioteca Capitolare Cod. F. 1/101 (CXXVI) (9세기 또는 10세기)에 보관되어 있으며, 혼합 젤라시안-그레고리오 양식의 성사집이다.
  • 파멜리우스 성사집: 1571년 야코프 판 파멜레가 출판한 서부 독일, 벨기에 및 네덜란드에서 현재는 소실된 원고의 초기 근대판이다.

  • 페터스하우젠 수도원 성사집: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도서관, Cod. Sal. IXb (980년경)에 보관되어 있다.
  • 풀다 성사집: 괴팅겐, 괴팅겐 대학교 도서관 cod. theol. 231 (975년경)에 보관되어 있으며, 10세기에 등장한 복합적인 젤라시안-그레고리안 성사집의 가장 중요한 증거이다. 풀다에서 복사되어 수출을 위해 장식된 일련의 성사집 중 첫 번째이다.
  • 풀다 성사집: 뮌헨, 바이에른 주립 도서관 Clm 10077 (960년과 999년 사이)에 보관되어 있다.
  • 생 게레온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Lat. 817에 보관되어 있다.
  • 라톨두스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Lat. 12052에 보관되어 있으며, 코르비 수도원에서 편집된 것으로 추정된다.
  • 로르쉬 성사집: 바티칸 도서관 Pal. lat. 495 (10세기 후반)에 보관되어 있다.
  • 레오프릭 미사집: 보들리안 도서관 MS Bodl. 579 (10세기와 11세기)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 복합 필사본의 가장 초창기 부분은 10세기의 성사집이다.
  • 바르몬도 주교의 성사집
  • 피작의 성사집
  • 베네치아의 성사집
  • 잘츠부르크의 성사집
  • 생-방드리유 수도원의 성사집
  • 레겐스부르크의 성사집
  • 민덴 성사집: 지게베르트 (1022–1036)의 성사집이다.
  • 베르됭의 성사집: 프랑스 국립 도서관 라틴어 18005 (11세기)에 보관되어 있다.
  • 베르됭의 성사집: 뮌헨, 바이에른 도서관 Clm. 10077 (11세기)에 보관되어 있다.
  • 티니에츠 성사집: 크라쿠프, Narodowa Rps BOZ 8 (1072년과 1075년 사이)에 보관되어 있다.
  • 투르 성사집
  • 라트만 성사집: 1159년 제작
  • 밀슈타트 수도원 성사집: 1170–1180년 제작
  • 베르톨트 수도원장 성사집(바인가르텐 수도원): 1217년 제작
  • 하인리쿠스 사크리스타 성사집: 1220년경 제작


다음은 추가적인 성사집 목록이다.

  • 비아스카 성사집(암브로시아 예식)
  • 성 바울 성사집
  • 브레시아 성사집
  • 에센 성사집
  • 샹티이 성사집
  • 예나 성사집
  • 프라하 성사집
  • 보베 성사집
  • 레메디우스 성사집: 겔라시안 양식
  • 마리아 라흐 수도원 성사집

6. 축복서 (Benedictional)

'''축복서'''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사용되는 축복 또는 강복을 모아놓은 관련 서적으로, 본질적으로 성사집에서 수집한 것이다.[7] 앵글로색슨의 성 에델월드 축복서는 비교적 드문 삽화 필사본의 가장 유명한 예시이며, 대부분 초기 중세 시대에 속한다.

7. 한국 가톨릭 교회의 수용과 의미

참조

[1] Catholic Encyclopedia Liturgical Books http://www.newadvent[...]
[2]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Poland Cambridge University Press
[3] 서적 A history of liturgical books from the beginning to the thirteenth century Liturgical Press
[4] 웹사이트 'Sacramentary' (fragment) - Special Collections - Utrecht University https://www.uu.nl/en[...] 2024-08-11
[5] 서적 The Sacramentary (Liber Sacramentorum): Historical and Liturgical Notes on the Roman Missal;[Vol. V (Parts 8 and 9); trans. Arthur Levelis-Marke and W. Fairfax-Cholmeley Benziger Brothers
[6] 서적 The Sacramentary (Liber Sacramentorum): Historical and Liturgical Notes on the Roman Missal Benziger Brothers
[7] Catholic Encyclopedia Benedictional http://www.newadvent[...]
[8] 문서 그레고리오 성사집의 온전한 라틴어 명칭은 ''Liber Sacramentorum de circulo anni expositus, a santo Gregorio papa Romano editus''(로마 교황 성 그레고리오가 일 년의 흐름에 따라 제시한 성사집)이다.
[9] 문서 그레고리오 성사집에서는 '성인 고유'는 '전례 시기'와 혼합되어 있다. 경우에 따라 주일들이 직전에 거행한 성인 축일에서 그 이름을 받아오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주일, 성 라우렌시오 주일 등
[10] 문서 사실 감사송의 숫자를 매우 제한하였으며, 사순 시기 외에는 '백성을 위한 기도'를 더 이상 제시하지 않고 있다.
[11] 문서 이 필사본은 bibl. capitolare D 47로 분류되어 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