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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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왕들이 사용한 칭호로, 특히 수메르와 아카드 지역을 통합하거나 지배했음을 나타낸다. 이 칭호는 우르 제3왕조의 우르남무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이후 바빌론과 아시리아 왕조, 아케메네스 제국의 키루스 2세까지 다양한 통치자들이 사용했다. 이 칭호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되었다.
우르 제3왕조의 창시자인 우르남무(재위 기원전 2112–2095년)는 "아카드 왕"과 "수메르 왕"이라는 고대 아카드 왕의 칭호를 결합하여 "수메르와 아카드 왕"(아카드어: ''šar māt Šumeri u Akkadi'')이라는 칭호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하(下)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와 북부를 자신의 통치 아래 통일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당시 "아카드"는 단순히 폐허가 된 도시뿐만 아니라 북부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칭호는 수메르와 아카드의 재통일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합된 칭호를 구성하는 두 칭호는 모두 아카드 왕들이 사용했지만, 이중 칭호는 새로운 것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아카드 사르곤이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수메르와 아카드를 그러한 방식으로 연결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반대했다고 주장한다.
우르 제3왕조, 이신 왕조, 라르사, 바빌론, 중 아시리아 제국, 신 아시리아 제국, 신 바빌로니아 제국, 아케메네스 제국에서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칭호를 사용한 왕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2. 역사
이러한 종류의 이중 칭호는 메소포타미아에 선례가 있었다. 초기 왕조 시대 III기 말기에 수메르 전체에 대한 통치권을 나타내기 위해 이중 칭호가 사용되었으며, 그 칭호는 일반적으로 우루크와 우르 도시를 포함하거나 암시했다. 이 시기에 "수메르의 군주이자 국가의 왕"과 같은 특별한 칭호는 일반적으로 단일 통치자에게만 고유했으며, 대부분 "왕"(또는 그에 상응하는)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었다. 예를 들어 루갈키니세-두두와 루갈키살시(둘 다 기원전 2400년) 왕이 사용한 "우루크 왕과 우르 왕"이 있다. 수메르 왕, 수메르와 아카드 왕과 같은 칭호와 세계 사방의 왕, 우주의 왕과 같은 더 과장된 칭호가 생기기 전에는 지역 통치자를 지정하고 단순히 도시의 통치자보다 더 강력하다고 명시하는 칭호는 없었으며, 대부분 "" + 도시 이름" 형식을 따랐다.
우르남무는 결합된 칭호의 아이디어를 후르족 왕 아탈-셴에게서 빌렸을 수도 있다. 아탈-셴은 우르남무의 통치 직전 수십 년 동안 수바르투 땅을 통치했을 것이다. 아탈-셴의 칭호는 "우르케시와 나와르의 왕"이었는데, 이 칭호는 서로 멀리 떨어진 두 도시의 이름을 결합하여 그 사이의 전체 땅(예: 수바르투)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했다. 우르남무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도시인 니푸르의 사제단으로부터 "수메르와 아카드 왕"이라는 칭호를 인정받았고, 니푸르를 둘러싼 두 땅의 군주로 즉위했다. 이 칭호는 우르남무와 그의 아들 술기(기원전 2094–2047년)에게만 잘 증명되었지만, "우르 왕"과 함께 우르 제3왕조의 주요 왕실 칭호였다. 이 칭호는 우르 제3왕조의 붕괴 이후, 이신 왕조(기원전 1953–1717년)의 통치 기간 내내 중요한 왕실 칭호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많은 통치자들이 이 칭호를 사용했다. 그 지속적인 사용은 메소포타미아의 북부 아카드 지역이 수메르의 남부 지역보다 어떤 종류의 사회 경제적 이점을 얻었기 때문일 수 있다.
함무라비(재위 기원전 1728–1686년)는 라르사의 왕 림-신 1세를 패배시키고 우루크와 이신을 정복하여 메소포타미아 전역으로 바빌론의 지배를 확대했다. 함무라비의 초기 통치는 수메르와 아카드를 별개로 통치하는 이중 군주국 형태였으나, 북동쪽과 북쪽으로의 정복을 통해 제국을 형성했다. 함무라비는 제국 형성의 일환으로 수메르와 아카드 왕이라는 전통적인 칭호를 사용했으며, 이 칭호는 기원전 8세기까지 바빌론 왕들의 칭호에 산발적으로 나타난다.
바빌론 왕 외에도 바빌론과 수메르를 정복한 아시리아 통치자들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 최초로 성공한 아시리아 왕은 투쿨티-니누르타 1세(재위 기원전 1244–1208년)였다. 그의 통치 이후 바빌론은 독립을 되찾았고, 샴시-아다드 5세(재위 기원전 824–811년)를 제외하고는 500년 동안 아시리아 통치자가 이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재위 기원전 745–727년) 시대에 바빌론이 재정복되었다.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 이후 바빌론은 다시 반란을 일으켰고 그의 아들 사르곤 2세(재위 기원전 722–705년) 역시 다시 정복해야만 했고, 승리 후에만 이 칭호를 사용했다. 사르곤 2세의 상속자 산헤립은 이 칭호를 버렸지만, 그의 상속자 에사르하돈이 다시 도입했다.
신아시리아 제국에서 "수메르와 아카드 왕" 칭호는 남부 메소포타미아 전체에 대한 통제를 주장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 칭호는 아시리아 왕이 아카드와 수메르 문화 모두와 일치할 수 있게 했으며,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의 위신과 유산, 그리고 바빌론에 대한 공식적인 주권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신아시리아 제국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한 후, 아시리아 왕들은 더 이상 이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수메르와 아카드 왕"은 첫 번째 신바빌로니아 왕인 나보폴라사르(재위 기원전 626–605년)가 채택했다. 이 칭호는 신바빌로니아 제국 군주들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기원전 539년, 아케메네스 제국의 키루스 2세(키루스 대왕)는 바빌론 함락을 통해 바빌론을 정복하고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켰다. 키루스 대왕은 정복하면서, 현재 키루스 실린더로 알려진, 아카드 설형 문자로 기록된 문서를 바빌론 성벽에 묻었다. 이 문서에서 키루스 대왕은 "바빌론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세계 사방의 왕" 등 여러 메소포타미아식 칭호를 사용하였다. 키루스 대왕이 사용한 칭호 중 "바빌론의 왕"을 제외한 대부분은 그의 통치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왕중왕"(아카드어로 ''šar šarrāni'')과 같은 다른 메소포타미아식 칭호는 계속 사용되었다. "왕중왕"은 원래 기원전 13세기에 바빌론을 처음 정복한 아시리아 왕인 투쿨티-니누르타 1세가 처음 사용한 칭호이다. 또한, 최소한 살마네세르 3세(기원전 859년경 ~ 기원전 824년)부터 아시리아 왕들이 사용해 온 "국의 왕" 칭호도 키루스 2세와 그의 후계자들이 사용하였다.
2. 1. 배경 (기원전 2334년~2112년)
기원전 24세기경 사르곤은 아카드를 수도로 하는 아카드 제국을 세웠는데, 이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제국이다. 그의 제국은 광범위하게 확장되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는 수메르였다. 수메르는 도시 국가들이 수세기 동안 지배권을 놓고 경쟁했던 하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사르곤과 그의 아카드 계승자들이 사용한 왕실 칭호는 아카드 왕(아카드어: ''šar māt Akkadi'')과 수메르 왕 (아카드어: ''šar māt Šumeri'')이었다. 아카드 왕들은 또한 사르곤의 "우주 왕"(''šar kiššatim'')과 나람신 (사르곤의 손자)의 "세계 사방의 왕"(''šar kibrāt erbetti'')과 같은 명예 칭호를 추가했다. 아카드 제국 아래 수메르와 아카드의 정치적 연합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으며, 사르곤과 나람신 모두 역사에 대한 후기 메소포타미아 논의에 자주 등장하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면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여겨졌다.
샤르칼리샤리 (기원전 2217–2193년) 통치 기간 동안 아카드 제국은 가뭄과 유목민 구티족의 침략으로 인해 붕괴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2100년대에 구티족은 아카드 도시를 파괴하고 사르곤 왕조를 멸망시킨 후 자신들의 수메르 왕조를 세웠다. 구티 왕조는 오래가지 못했으며, 기원전 2112년경에 완전히 몰락하여 우르 제3왕조 또는 신수메르 제국으로 불리는 새로운 수메르 문명 시대를 열었다.
2. 2. 칭호의 성립 (기원전 2112년~1717년)
우르 제3왕조의 창시자인 우르남무 왕 (기원전 2112–2095년)은 "아카드 왕"과 "수메르 왕"이라는 고대 아카드 왕의 칭호를 결합하여 "수메르와 아카드 왕" (아카드어: ''šar māt Šumeri u Akkadi'')이라는 칭호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하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와 북부를 자신의 통치 아래 통일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당시 "아카드"는 단순히 폐허가 된 도시뿐만 아니라 북부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칭호는 수메르와 아카드의 재통일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합된 칭호를 구성하는 두 칭호는 모두 아카드 왕들이 사용했지만, 이중 칭호는 새로운 것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아카드 사르곤이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수메르와 아카드를 그러한 방식으로 연결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반대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종류의 이중 칭호는 메소포타미아에 선례가 있었다. 초기 왕조 시대 III기 말기에 수메르 전체에 대한 통치권을 나타내기 위해 이중 칭호가 사용되었으며, 그 칭호는 일반적으로 우루크와 우르 도시를 포함하거나 암시했다. 이 시기에 "수메르의 군주이자 국가의 왕"과 같은 특별한 칭호는 일반적으로 단일 통치자에게만 고유했으며, 대부분 "왕" (또는 그에 상응하는)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었다. 예를 들어 루갈키니세-두두와 루갈키살시 (둘 다 기원전 2400년) 왕이 사용한 "우루크 왕과 우르 왕"이 있다. 수메르 왕, 수메르와 아카드 왕과 같은 칭호와 세계의 사방의 왕, 우주의 왕과 같은 더 과장된 칭호가 생기기 전에는 지역 통치자를 지정하고 단순히 도시의 통치자보다 더 강력하다고 명시하는 칭호는 없었으며, 대부분 "" + 도시 이름" 형식을 따랐다.
우르남무는 결합된 칭호의 아이디어를 후르족 왕 아탈-셴에게서 빌렸을 수도 있다. 아탈-셴은 우르남무의 통치 직전 수십 년 동안 수바르투 땅을 통치했을 것이다. 아탈-셴의 칭호는 "우르케시와 나와르의 왕"이었는데, 이 칭호는 서로 멀리 떨어진 두 도시의 이름을 결합하여 그 사이의 전체 땅 (예: 수바르투)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했다. 우르남무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도시인 니푸르의 사제단으로부터 "수메르와 아카드 왕"이라는 칭호를 인정받았고, 니푸르를 둘러싼 두 땅의 군주로 즉위했다. 이 칭호는 우르남무와 그의 아들 술기 (기원전 2094–2047년)에게만 잘 증명되었지만, "우르 왕"과 함께 우르 제3왕조의 주요 왕실 칭호였다. 이 칭호는 우르 제3왕조의 붕괴 이후, 이신 왕조 (기원전 1953–1717년)의 통치 기간 내내 중요한 왕실 칭호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많은 통치자들이 이 칭호를 사용했다. 그 지속적인 사용은 메소포타미아의 북부 아카드 지역이 수메르의 남부 지역보다 어떤 종류의 사회 경제적 이점을 얻었기 때문일 수 있다.
2. 3.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왕조 (기원전 1728년~539년)
함무라비(재위 기원전 1728–1686년)는 라르사의 왕 림-신 1세를 패배시키고 우루크와 이신을 정복하여 메소포타미아 전역으로 바빌론의 지배를 확대했다. 함무라비의 초기 통치는 수메르와 아카드를 별개로 통치하는 이중 군주국 형태였으나, 북동쪽과 북쪽으로의 정복을 통해 제국을 형성했다. 함무라비는 제국 형성의 일환으로 수메르와 아카드 왕이라는 전통적인 칭호를 사용했으며, 이 칭호는 기원전 8세기까지 바빌론 왕들의 칭호에 산발적으로 나타난다.
바빌론 왕 외에도 바빌론과 수메르를 정복한 아시리아 통치자들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 최초로 성공한 아시리아 왕은 투쿨티-니누르타 1세(재위 기원전 1244–1208년)였다. 그의 통치 이후 바빌론은 독립을 되찾았고, 샴시-아다드 5세(재위 기원전 824–811년)를 제외하고는 500년 동안 아시리아 통치자가 이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재위 기원전 745–727년) 시대에 바빌론이 재정복되었다.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 이후 바빌론은 다시 반란을 일으켰고 그의 아들 사르곤 2세(재위 기원전 722–705년) 역시 다시 정복해야만 했고, 승리 후에만 이 칭호를 사용했다. 사르곤 2세의 상속자 산헤립은 이 칭호를 버렸지만, 그의 상속자 에사르하돈이 다시 도입했다.
신아시리아 제국에서 "수메르와 아카드 왕" 칭호는 남부 메소포타미아 전체에 대한 통제를 주장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 칭호는 아시리아 왕이 아카드와 수메르 문화 모두와 일치할 수 있게 했으며,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의 위신과 유산, 그리고 바빌론에 대한 공식적인 주권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신아시리아 제국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한 후, 아시리아 왕들은 더 이상 이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수메르와 아카드 왕"은 첫 번째 신바빌로니아 왕인 나보폴라사르(재위 기원전 626–605년)가 채택했다. 이 칭호는 신바빌로니아 제국 군주들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2. 4. 키루스 대왕 (기원전 539년)
기원전 539년, 아케메네스 제국의 키루스 2세(키루스 대왕)는 바빌론 함락을 통해 바빌론을 정복하고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켰다. 키루스 대왕은 정복하면서, 현재 키루스 실린더로 알려진, 아카드 설형 문자로 기록된 문서를 바빌론 성벽에 묻었다. 이 문서에서 키루스 대왕은 "바빌론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세계 사방의 왕" 등 여러 메소포타미아식 칭호를 사용하였다. 키루스 대왕이 사용한 칭호 중 "바빌론의 왕"을 제외한 대부분은 그의 통치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왕중왕"(아카드어로 ''šar šarrāni'')과 같은 다른 메소포타미아식 칭호는 계속 사용되었다. "왕중왕"은 원래 기원전 13세기에 바빌론을 처음 정복한 아시리아 왕인 투쿨티-니누르타 1세가 처음 사용한 칭호이다. 또한, 최소한 살마네세르 3세(기원전 859년경 ~ 기원전 824년)부터 아시리아 왕들이 사용해 온 "국의 왕" 칭호도 키루스 2세와 그의 후계자들이 사용하였다.
3. 수메르와 아카드 왕 목록
'''우르 제3왕조의 수메르와 아카드 왕'''
우르남무에 의해 도입된 수메르와 아카드의 칭호는 우르 제3왕조 시대에 중요한 왕실 칭호였다.
'''이신 왕조의 수메르와 아카드 왕'''
수메르와 아카드 왕은 이신 왕조 시대에도 메소포타미아를 다스리는 왕권을 주장하는 주요 왕실 칭호로 계속 사용되었다.
'''라르사의 수메르와 아카드 왕'''
'''바빌론의 수메르와 아카드 왕'''
함무라비는 메소포타미아 정복 이후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칭호를 주장하였고, 이 칭호는 기원전 700년대까지 바빌론 왕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사용되었다.
'''중 아시리아 제국의 수메르와 아카드 왕'''
투쿨티닌우르타 1세는 중 아시리아 제국의 왕으로, 바빌론을 점령하고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칭호를 사용한 유일한 인물이다.
'''신 아시리아 제국의 수메르와 아카드 왕'''
샴시 아다드 5세를 제외하고, 이 칭호는 실제로 바빌론을 지배했던 신 아시리아 통치자들에 의해서만 사용되었다.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메르와 아카드 왕'''
독립을 되찾은 후 바빌론의 통치자들은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이라는 칭호를 계속 사용했다.
'''아케메네스 제국의 수메르와 아카드 왕'''
키루스 대왕 (재위: 기원전 559년 ~ 530년)은 기원전 539년부터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칭호를 사용했다.3. 1. 우르 제3왕조
우르남무가 도입한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칭호는 우르 제3왕조 시대에 중요한 왕실 칭호였다.
3. 2. 이신 왕조
수메르와 아카드 왕은 이신 왕조 시대에도 메소포타미아를 다스리는 왕권을 주장하는 주요 왕실 칭호로 계속 사용되었다.
3. 3. 라르사
- 신이디남 (재위: 기원전 1785–1778년)
- 림신 (재위: 기원전 1758–1699년)
3. 4. 바빌론
함무라비는 메소포타미아 정복 이후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칭호를 주장하였고, 이 칭호는 기원전 700년대까지 바빌론 왕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칭호를 사용한 왕들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함무라비 (재위: 기원전 1728–1686년)
- 카라인다쉬 (재위: 기원전 1410년)
3. 5. 중 아시리아 제국
투쿨티닌우르타 1세는 중 아시리아 제국의 왕으로, 바빌론을 점령하고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칭호를 사용한 유일한 인물이다.3. 6. 신 아시리아 제국
샴시 아다드 5세를 제외하고, 이 칭호는 실제로 바빌론을 지배했던 신 아시리아 통치자들에 의해서만 사용되었다.왕 | 재위 기간 |
---|---|
샴시 아다드 5세 | 기원전 824–811년 |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 | 기원전 745–727년 |
살마네세르 5세 | 기원전 727–722년 |
사르곤 2세 | 기원전 722–705년 |
에사르하돈 | 기원전 681–669년 |
아슈르바니팔 | 기원전 669–631년 |
샤마슈-슘-우킨 | 기원전 668–648년 |
3. 7. 신 바빌로니아 제국
독립을 되찾은 후 바빌론의 통치자들은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이라는 칭호를 계속 사용했다.왕 | 재위 기간 |
---|---|
나보폴라사르 | 기원전 626년 ~ 605년 |
네부카드네자르 2세 | 기원전 605년 ~ 562년 |
아멜마르두크 | 기원전 562년 ~ 560년 |
네리글리사르 | 기원전 560년 ~ 556년 |
라바시마르두크 | 기원전 556년 |
나보니두스 | 기원전 556년 ~ 539년 |
3. 8. 아케메네스 제국
키루스 대왕 (재위: 기원전 559년 ~ 530년)은 기원전 539년부터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칭호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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