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끌어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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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소 끌어내리기'는 아베 신조와 후쿠다 야스오 내각의 연이은 붕괴 이후 자민당의 위기 속에서, 아소 다로 내각의 지지율 하락과 당내 반발로 인해 발생한 일련의 퇴진 시도를 의미한다.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대응 실패, 우정민영화 관련 발언 논란, 지방 선거 연패 등이 아소 내각에 대한 비판을 증폭시켰다. 자민당 내 비주류 세력은 양원 의원 총회를 통한 총재 선거 조기 실시를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2009년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를 결정했다. 그 결과 자민당은 창당 이래 최악의 패배를 기록하고 정권을 민주당에 넘겨주었으며, 아소는 총재직에서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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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끌어내리기 | |
---|---|
개요 | |
명칭 | 아소 끌어내리기 (麻生おろし) |
로마자 표기 | Aso oroshi |
정의 | 자유민주당 총재였던 아소 다로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적 움직임 |
배경 | |
시기 | 2009년 |
상황 | 2009년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의 자유민주당 참패 아소 다로의 지지율 하락 |
원인 | 아소의 포퓰리즘적 정책 비판 잦은 망언과 실언 지도력 부재 |
경과 | |
전개 | 자유민주당 내에서 아소 퇴진 요구 증가 차기 총재 후보 거론 아소 총리 사퇴 표명 |
결과 | 아소 다로 총리 사임 자유민주당 정권 교체 |
영향 | |
정치적 영향 | 자유민주당의 쇠퇴 가속화 민주당 중심의 정권 교체 일본 정치 지형 변화 |
평가 | |
긍정적 평가 | 정치 쇄신 및 변화의 계기 마련 국민의 의사 반영 |
부정적 평가 | 정권 불안정 초래 정책의 일관성 저해 |
2. 배경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장기 집권 이후, 아베 신조와 후쿠다 야스오 내각이 연이어 1년 만에 붕괴하면서 자민당은 위기를 맞았다.[16]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상황에서, 아소 다로는 경제 회복을 위해 중의원 해산을 미루고 긴급 경기 부양책을 추진했다.
2. 1. 자민당 내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장기 집권 이후 아베 신조와 후쿠다 야스오가 연이어 1년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16] 자민당은 위기에 직면했다.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 승리를 위해 당시 인기가 높았던 아소 다로를 후임 총재로 선출했지만, 아소는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대응을 이유로 국회 해산을 미뤘다.그러나 자민당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과 아소 내각의 지지율 급락으로 자민당 내 비주류 세력은 '아소 끌어내리기' 운동을 전개했다.[16] 니시마쓰 건설 사건으로 민주당이 역풍을 맞아 아소 내각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회복되었으나, 민주당 대표 교체와 나고야시장 선거 등 지방선거 연패로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이 와중에 아소는 "나는 일본의 우정민영화에 반대했다"라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고이즈미 내각 당시 우정민영화를 담당했던 사람이 총무대신이던 아소 본인이었기 때문이다.[16] 아소는 해명했지만, 이는 고이즈미의 개혁을 계승하는 위치에 있던 아소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쳤다. 일본우정 사장 니시카와 요시후미 연임 문제와 관련, 하토야마 구니오 총무대신을 옹호하고 우정민영화에 반대했던 노다 세이코 내각부 특명담당대신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1] 하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라고 비판했고, 결국 아소는 하토야마를 경질해야 했다.[1]
이후에도 아소 내각은 갖은 비판에 시달리며 방향성을 상실했고, 지지율은 계속 하락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아소 퇴진론이 공공연하게 제기되었다.[16] 야마모토 다쿠는 양원의원총회를 개최해 총재 선거를 앞당기자고 주장했다.
2009년 도쿄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자, 아소는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를 결정했다. 중의원 내각불신임안 제출 당시 아소 반대파의 동향이 주목받았지만, 자민당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져 불신임안은 통과되었다.[17] 아소 반대파는 양원의원총회를 통해 총재 선거 조기 실시를 추진했으나, 자유민주당 집행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17]
7월 21일 중의원 해산 각의 결정 후, 아소는 양원의원간담회에서 자신의 발언으로 당 지지율을 하락시킨 것에 대해 사과했다. 이부키 분메이는 "실언을 하거나 한자를 잘못 읽는 바보 같은 사람이 당직이나 대신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13] 특별국회 총리 지명 때도 자유민주당 총무회는 아소 지지에 반대했으며, 헤이세이 연구회장 쓰시마 유지는 "차기 총리의 이름으로 '아소 씨'를 쓰는 일만큼은 절대로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15]
2. 2. 아소 끌어내리기 시도와 실패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장기 집권이 끝나고 총리대신이 된 아베 신조와 후쿠다 야스오가 1년 남짓한 임기를 끝내고 물러나는 상황이 이어졌다.[16] 위기에 빠진 자민당은 다가올 중의원 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당시 인기가 있던 아소 다로를 후임 총재로 선출했다.[16] 하지만, 자민당의 장기 정권에 대한 폐색감에 대한 짜증에서, 자민당의 총재인 아소에 대한 비판이 높아져 지지율이 급락하자, 자민당에서 비주류가 된 신속한 정책 실현을 요구하는 뜻있는 의원들의 모임 등이 타도 운동을 시작한다.[1]아소는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회 해산을 미뤘지만,[16] 자민당 내 비주류파는 아소를 전면에 내세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며 도각 운동을 전개했다.[16] 신형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기 시작한 2009년 3월 초순에 니시마쓰 건설 사건으로 민주당에 역풍이 불었고, 아소 내각의 지지율이 회복되자, 이 타도 운동은 일시적으로 침정되었지만, 민주당 대표가 오자와에서 하토야마 유키오로 바뀌자 자민당은 나고야 시장 선거 등 대형 지방 선거에서 6연패를 했다.[1]
이 와중에 아소는 "나는 일본의 우정민영화에 반대했다"라고 발언해 비판을 초래했다.[1] 고이즈미 내각 당시 우정민영화를 담당하던 사람이 총무대신이던 아소 본인이었기 때문이다.[1] 비판에 직면한 아소는 "처음엔 반대했다는 의미였다"라고 해명했지만 고이즈미가 추진한 개혁을 계승하는 위치에 있던 아소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쳤다.[1] 이때 일본우정 사장 니시카와 요시후미의 연임 문제가 터졌다.[1] 니시카와가 우정민영화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는데 그의 연임을 하토야마 구니오 총무대신이 반대했기 때문이었다.[1] 아소는 총무대신이 적절히 판단할 거라 생각한다며 하토야마를 옹호했고 우정민영화에 반대했던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노다 세이코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였다.[1] 하지만, 우정 선거에서 얻은 자공의 중의원 과반수를 바탕으로 성립하고 있는 내각이, 해산도 하지 않고, 그 시점에서의 선거의 민의인 우정 민영화에 역행한다고 간주될 수 있는 움직임을 하는 것에 대해서 그전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고이즈미 전 총리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라고 발언했다.[1] 곧 아소는 하토야마 구니오를 경질했지만, 이는 국민의 비판을 크게 받아서, 내각 지지율을 급격하게 하락시켰다[1]。
결국 아소는 니시카와의 연임을 승인하고 하토야마를 경질해야 했는데 이미 내각 지지율은 심상치 않은 상태였다.[16] 개조 내각을 꾸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개혁 노선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아소 내각은 갖은 비판에 시달렸고 내각은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16] 그럴수록 내각의 지지율은 계속 바닥을 쳤고 자민당 내에서는 아소가 퇴진해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16]
또한, 대형 지방 선거의 연패가 계속되는 동안, 자민당 의원인 야마모토 타쿠가 양원 의원 총회를 개최하여 총재 선거의 조기 실시를 목표로 하는 것을 발표。중의원 선거 전의 총재 선거 조기 실시는 아소 대신 다른 총재를 옹립하여 중의원 선거에 임하는 것을 의미했다.
도쿄 도의회 의원 선거 후인 7월 13일, 아소 총리는 여당 간부의 동의를 얻어 중의원 선거의 일정을 "7월 21일 해산, 8월 30일 투표"로 발표했다.
7월 14일에 중의원에서 내각 불신임 결의가 나왔을 때, 아소 끌어내리기를 주도하는 반 아소 세력의 동향이 주목되었지만, 여당 의원은 외유 중인 후쿠다 야스오와 컨디션 불량인 나카가와 쇼이치 2명이 결석한 것을 제외하고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고, 보수계 무소속에서는 히라누마 타케오가 찬성표, 나가사키 고타로는 결석, 와타나베 요시미와 나카무라 키시로는 불신임표를 던졌다.
그 후, 반 아소 세력은 양원 의원 총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총재 선거 조기 실현을 목표로 한다. 타케베 츠토무는 "아소 총리에게는 덕이 없다"라고 발언, 나카가와 히데나오는 "인심 일신" "명예로운 결단"(아소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당칙에 의하면 양원 의원 총회에는 자민당 국회의원 384명 중 128명의 동의가 필요했다. 때문에, 반 아소 세력은 128명의 서명을 모으는 것에 분주했다. 한편 당 집행부는 양원 의원 총회가 개최될 경우, 동 회가 "지방 선거 6연패의 아소 총재 탄핵의 장"으로 해서 출석 의원의 과반수 결의에 의한 당칙 개정을 한 다음의 "총재 선거의 조기 실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아소 총재가 출석한 상태에서 당칙 개정 결의가 불가능한 양원 의원 간담회 등에서의 "지방 선거 6연패의 자민당 총괄의 장"에만 그치게 하여, "총재 선거의 조기 실시"가 불가능하도록 활동했다.
7월 16일, 반 아소 세력은 서명 128명을 넘는 133명을 모았다고 발표했다.[10] 서명한 인물에는 요사노 카오루재무대신나 이시바 시게루농림수산대신와 같은 중의원 해산의 각의 결정에 필요한 국무대신 2명도 포함되어 있었다.[2]
또한, 양원 의원 총회의 개최에 서명한 의원 중에는, "지방 선거 6연패의 총괄"을 위한 아소의 이야기를 듣는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다가오는 총선 후의 총리 후보로 아소를 지지하는 자도 있었던 것 등, 전원이 "아소 끌어내리기"에 가담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자유민주당 간사장 호소다 히로유키는, 7월 17일 낮 기자 회견에서, 양원 의원 총회는 개최하지 않고, 대신, 21일 오전 11시 반부터 양원 의원 간담회를 열 것이라고 발표하여, 아소 끌어내리기는 사실상 봉인되었다[2]。당초, 양원 의원 간담회는 비공개 예정이었지만, 아소는 "개최가 결정되면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겠다고 말해왔다. 정면으로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라고 공개로 하도록 지시했다[3]。
중의원 의원 운영 위원회는, 17일, 21일 오후에 해산하기 위한 본회의 개회를 여야로 합의했다.[2] 총회 개최 요구에 서명한 요사노와 이시바는, 17일, 해산의 각의 결정서의 서명에 응할 의사를 시사했다[2]。
- 6월 16일 - 환경대신정무관인 후루카와 요시히사가 일본우정 사장 인사를 둘러싼 대응에 대해 아소를 비판하며, 아소 앞에서 "대정봉환을 결단하고 보수 정당의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4]。 이 발언에 대해, 아소파 좌장인 나카바 히로키는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민주당이 '정권 교체'라고 말하니, 정권을 일단 넘겨주고 (임기 만료까지) 2개월 반 동안 어떤 정책을 펼칠지 두고 보자"고 말했지만[5] 아소는 "무슨 대정을 어떻게 봉환한다는 건가"라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4]。
- 6월 26일 - 타나하시 야스후미가 내각총리대신 관저를 방문하여 아소에게 낙하산한 국가공무원 OB에게 보수를 지급하고 있는 공익법인에 국가 예산을 지출하지 않도록 요구했다.[6] 아소는 요구를 서면으로 제출하도록 요구했지만, "정치인끼리의 대화에서 종이가 필요하고 안 하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반발하며 "할 수 없다면 퇴진해 달라"고 요구했다[6]。
- 6월 26일 - 나카가와 히데나오가 아소에 대해 "명예로운 결단을 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퇴진을 요구[7]。 29일에도 "지금 상황을 개선하려면 총리에게 물러나 달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8]。
- 6월 30일 - 자유민주당 총재 특별 보좌인 시마무라 요시노부가 총재 선거 조기 실시 운동에 대해 "적에게 이로운 행위다.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비판[9]。
- 7월 15일 - 재무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금융 담당)의 요사노 가오루와 농림수산대신 이시바 시게루가 아소에게 총리 퇴진을 요청。
- 7월 16일 - 나카가와 히데나오 등이 자유민주당 양원 의원 총회 개최를 요구하는 서명을 자유민주당 간사장 호소다 히로유키에게 제출[10]。 아소 내각에서는 재무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금융 담당) 요사노 가오루, 농림수산대신 이시바 시게루, 내각부 부대신타니모토 류야, 총무부 부대신쿠라타 마사토시, 문부과학 부대신야마우치 토시오, 후생노동 부대신오무라 히데아키, 농림수산 부대신콘도 모토히코, 경제산업 부대신타카이치 사나에, 마찬가지로 요시카와 타카모리, 내각부 대신정무관나미키 마사요시, 법무대신정무관하야카와 타다타카, 재무대신정무관미츠야 노리오, 농림수산대신정무관노무라 테츠로 등 주요 멤버가 서명. 총무대신을 사임한 하토야마 쿠니오, 후생노동대신정무관을 사임한 토이다 토오루, 내각부 대신정무관을 파면된 마츠나미 켄타 등도 서명. 방위대신정무관키시 노부오는 일단 서명했지만, 나중에 철회[11]。
- 7월 17일 - 자유민주당 참의원 간사장 타니가와 히데히데가 아소에게 양원 의원 간담회에서의 사죄를 요구[12]。
- 7월 19일 - 자유민주당 야마나시현 지부 연합회에서 3648명이 집단 탈당.
- 7월 21일 - 아소 내각이 중의원 해산을 각의 결정. 자신의 발언으로 당의 지지율 하락을 초래했다며 아소가 양원 의원 간담회에서 사죄。
- 7월 29일 - 자유민주당 교토부 제1선거구 지부장 이부키 분메이가, "실언을 하거나 글자를 잘못 읽지 않도록, 바보 같은 사람을 당의 직책이나 대신으로 임명하지 않도록"이라고 주장[13]。
- 9월 1일 - 자유민주당 간사장 호소다 히로유키가 특별 국회의 수반 지명에서 아소에게 투표하도록 제안. 그러나 자유민주당 총무회에서는 패군인 아소에게 투표하는 안에는 아무도 찬성하지 않고, 대체안으로 백지 투표, 자유 투표,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관리 위원회 위원장 예정자인 노다 타케시에게 투표의 3안이 나왔다[14]。 자유민주당 후쿠시마현 지부 연합회는 수반 지명에서 아소에게 투표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요청.
- 9월 3일 - 헤이세이 연구회가 수반 지명에서 아소 타로에게는 투표하지 않기로 정식 결정. 헤이세이 연구회 회장 츠시마 유우지는 "다음 수반 지명에서 '아소 씨'라는 이름을 쓰는 것만은 절대로 피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백지로 낼 수밖에 없는 상황도 피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강조[15]。
예정대로 8월 30일 진행된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119석이라는 창당 이래 최악의 패배를 경험해야 했고 민주당에 밀려 정권도 내놓아야 했다.[16] 자민당이 창당 이후 정권을 잃은 건 두 번째지만 1993년에는 원내 1당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야당 연립 정권에 밀려난 것이었기에 순수하게 야당의 단독 집권을 허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16]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아소는 9월 16일 총재직을 사임했다.[16]
3. 중의원 해산과 총선
2009년 7월 21일, 아소 내각은 중의원을 해산하고 8월 30일에 총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10][11][12] 중의원 해산에 앞서 7월 14일에는 내각 불신임 결의안이 제출되었으나, 자유민주당 의원들의 찬성으로 부결되었다.[10]
중의원 해산 이후에도 아소 반대파는 자민당 양원 의원 총회 개최를 요구하며 아소 총리의 퇴진을 압박했다.[10] 7월 15일에는 요사노 가오루 재무대신 겸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금융 담당)과 이시바 시게루 농림수산대신이 아소에게 총리 퇴진을 요청하기도 했다.[10]
6월에는 후루카와 요시히사 환경대신정무관이 일본우정 사장 인사를 둘러싼 대응에 대해 아소를 비판하며 "대정봉환을 결단하고 보수 정당의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고,[4] 나카가와 히데나오는 아소에 대해 "명예로운 결단을 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퇴진을 요구했다.[7]
3. 1. 자민당의 참패와 정권 교체
4. 평가 및 영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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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西川氏の再任に反対した鳩山邦夫前総務相を事実上更迭した麻生首相の対応を「評価する」は17・5%にとどまり、「評価しない」は74・8%だった。(2009年6月16日 日経 の転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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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院解散 21日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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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院解散】麻生首相、自民両院議員懇談会の公開を指示 「逃げも隠れもし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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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政奉還決断を」 古川政務官、鳩山氏更迭で首相を批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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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政奉還、面白い」 麻生派座長、真意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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棚橋氏が首相に退陣要求 天下り対策で反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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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民党・中川元幹事長、麻生首相の退陣要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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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泉氏「野党もいい」 チルドレンを激励? 反麻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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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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島村氏、麻生降ろしに「出て行け」=武部氏は反論-自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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両院総会求め134人の署名簿を提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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両院議員総会開催を求める署名の名簿掲載者
http://www.yomiuri.c[...]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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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方選連敗で麻生首相陳謝を=谷川自民参院幹事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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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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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説録……29日
200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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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首相指名選で異例の白紙投票も 自民、「麻生氏」案に異論続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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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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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民党津島派、特別国会での首相指名選挙で麻生首相の名前を書かないことを決定
http://www.fn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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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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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川氏の再任に反対した鳩山邦夫前総務相を事実上更迭した麻生首相の対応を「評価する」は17・5%にとどまり、「評価しない」は74・8%だった。(2009年6月16日 日経 の転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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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院解散 21日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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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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