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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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공회는 일본 자유민주당의 파벌로, 1998년 고노 요헤이가 이탈하여 결성한 대용회에서 시작되었다. 대용회는 2006년 아소 다로가 위공회로 계승했으며, 2017년 반초 정책연구소와 통합하여 지공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현재 아소 다로가 회장을 맡고 있으며, 중의원 32명, 참의원 1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공회는 여러 차례 당 총재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2024년에는 정치자금 문제로 파벌의 존속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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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내각은 아소 다로 총재 하에 2008년 9월 출범한 일본 내각으로, 초기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세계 금융 위기 대응 실패와 스캔들로 2009년 총선에서 자민당 참패 후 총사직했다. - 아소 다로 - 후쿠오카현 제8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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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회 - [정당]에 관한 문서 | |
---|---|
시코카이 개요 | |
명칭 | 시코카이 (志公会) |
로마자 표기 | Shikōkai |
종류 | 자유민주당 파벌 |
지도자 | 아소 다로 |
창립일 | 2017년 7월 3일 |
창립자 | 아소 다로 |
이전 명칭 | 반초 정책 연구소 |
본부 | 전국 여관 회관 3층 |
본부 위치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히라카와초 2초메 5-5 |
구성 | |
참의원 의석수 | }} |
중의원 의석수 | }} |
이념 및 성향 | |
이념 | 보수주의 빅 텐트 |
추가 정보 | |
회원수 | 자유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
2. 역사
1992년 미야자와 내각 (개조)에 고노 요헤이가 일본의 내각관방장관으로 입각했을 때 만든 파벌횡단적 정책집단이 지공회의 시작이었다. 1993년 자유민주당 총재가 된 고노는 1995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해 재선을 노렸으나, 같은 파벌인 굉지회의 가토 고이치는 헤이세이 연구회의 하시모토 류타로를 지지했다. 하시모토는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뒤 가토를 자유민주당 간사장으로 기용했고, 고노와 가토는 사이가 멀어졌다.[5]
1998년 12월, 고노 요헤이는 굉지회 회장직을 가토가 승계하는 것에 반발하여, 파벌 내에서 가토 취임에 비판적인 의원 15명과 함께 굉지회를 탈당했다.[5] 1999년 1월 18일, 구지라오카 효스케를 최고 고문으로 영입해 정식 파벌인 대용회(고노 그룹)을 결성했다.
대용회는 이념·정책보다는 '반(反) 가토'라는 인맥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친중파이자 비둘기파인 고노와 달리, 아소 다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의원들은 친대만 매파 성향이었다.
2000년 가토의 난 당시 대용회는 제2차 모리 내각에 대한 내각 불신임 결의에 반대표를 던졌다. 2003년 11월, 고노 요헤이가 일본 중의원 의장에 취임하면서 자민당을 탈당하자, 아이자와 히데유키가 파벌 회장 역할을 수행했다.
2006년 12월 15일, 아소 다로는 고노 요헤이가 이끌던 대용회를 계승하여 위공회(아소파)를 창설했다.[7] 파벌 이름은 중국 고전 《예기》의 구절 '천하위공(天下爲公, 천하는 한 집의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다)'에서 유래했다.[5]
아소는 2007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다시 출마했으나, 아소 포위망이라 불리는 견제 속에서 대부분의 파벌이 후쿠다 야스오를 지지하여 낙선했다. 하지만 197표를 얻어 차기 총재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5] 이후 후쿠다 내각에서 아소파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2008년 후쿠다 총리의 지지율 하락으로 비주류였던 아소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아소는 간사장에 기용되고, 아소파 스즈키 쓰네오는 문부과학상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소는 총재로 선출되어 총재 파벌의 수장이 되었다. 그러나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면서 아소는 총재직을 사임했다.
2009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고노 다로가 출마했으나 다니가키 사다카즈에게 패배했다.[9][10] 3년 뒤 2012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아소는 아베 신조를 지지하여 당선에 기여했고, 아소는 당내 영향력을 회복했다.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아소는 부총리 겸 재무대신 등으로 입각했다.[13][14] 이후 위공회 소속 의원들이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 제3차 아베 신조 내각 (제1차 개조), 제3차 아베 신조 내각 (제2차 개조) 등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2012년부터 반초 정책 연구소와의 통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12]
2017년 5월 15일 위공회는 반초 정책연구소와 통합을 결정하였다.[17] 사토 쓰토무 등 유린회 출신 의원들도 일부 위공회에 합류하면서, 7월 3일 파벌 명칭을 지공회(志公会)로 변경했다. 발족 당시 소속 의원은 59명이었다. 파벌 명칭은 "뜻(志)을 높게 가지고 공(公)을 마음에 품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17]
2019년 4월 후쿠오카현지사 선거에서 아소 다로는 3선에 도전하는 현직 오가와 히로시 대신 다케우치 가즈히사를 옹립하려 했으나, 이는 자민당의 분열을 초래했고 아소가 지지한 다케우치는 낙선했다.[19][20] 기타가와 도모카쓰의 사망으로 치러진 오사카 12구 보궐선거에서도 아소가 지지한 후보가 낙선했다.
2019년 7월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산선거에서 아소파는 현역 의원 8명 중 7명이 당선되어, 4명만 당선된 기시다파와 소속 참의원 의원 수가 같아졌다. 그 결과 참의원에서 지공회의 영향력이 커져, 아소파 회장 대행인 산토 아키코가 일본 참의원 의장에 취임했다. 이는 오기 지카게 이후 세이와 정책연구회 외 파벌에서 참의원 의장을 배출한 첫 사례였고, 중참 양원 의장을 모두 아소파가 차지하게 되었다.
2020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스가 요시히데를 지지하여 스가가 당선되었다.[22][23] 2021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고노 다로가 아소의 동의를 얻어 출마했으나, 아소는 아마리 아카리 등과 함께 기시다 후미오를 지지했고, 결국 고노는 패배했다.[24][25][26][27]
2024년 1월, 자민당 5개 파벌의 정치자금 파티 비자금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후 파벌 존속 방침을 확인했다.[30][33]
2024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고노 다로가 입후보했다.[36] 아소 다로는 다카이치 사나에를 지지하며 파벌 내부에 균열이 발생했다.[42][43][44][45][46] 다카이치는 1차 투표에서 선전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 시게루에게 패배했다.[44][47]
2. 1. 대용회 (고노 그룹) (1998년 ~ 2006년)
1992년 미야자와 내각 (개조)에 고노 요헤이가 일본의 내각관방장관으로 입각했을 때 만든 파벌횡단적 정책집단이 대용회의 시작이었다. 미야자와 기이치가 총재직에서 물러난 후인 1993년 자유민주당 총재가 된 고노는 1995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해 재선을 노렸으나, 같은 파벌인 굉지회의 가토 고이치는 헤이세이 연구회의 하시모토 류타로를 지지했다. 하시모토는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뒤 가토를 자유민주당 간사장으로 기용했고, 고노와 가토는 사이가 멀어졌다.[5]1998년 12월, 굉지회의 후임 회장이 가토가 되는 것에 고노 요헤이가 반발하여 파벌 내 가토 취임에 비판적인 의원 15명과 함께 굉지회를 이탈했다.[5] 1999년 1월 18일, 구지라오카 효스케를 최고 고문으로 영입해 정식 파벌인 대용회(고노 그룹)을 결성했다.
고노 요헤이 (11회) | 아이자와 히데유키 (8회) | 쿠리하라 히로야스 (2회) | 아소 다로 (6회) | 이시카와 요조 (7회) |
---|---|---|---|---|
에토 세이시로 (5회) | 카스야 시게루 (9회) | 카메이 히사오키 (2회) | 고노 다로 (1회) | 스즈키 츠네오 (3회) |
츄마 히로키 (6회) | 아즈마 요시유키 (7회) | 마츠모토 준 (1회) | 모리 에이스케 (3회) | 아사노 카츠토 (2회) |
이후 이와시타 에이이치(1기), 구지라오카 효스케(12기)가 합류하여 총 17명으로 대용회가 결성되었다. 아소 다로는 마츠모토 준에게 "의리와 인정, 그리고 인내"라는 말을 전했다.[5]
대용회는 이념·정책보다는 '반(反) 가토'라는 인맥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친중파이자 비둘기파인 고노와 달리, 아소 다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의원들은 친대만 매파 성향이었다.
2000년 가토의 난 당시 대용회는 제2차 모리 내각에 대한 내각 불신임 결의에 반대표를 던졌다. 2003년 11월, 고노 요헤이가 일본 중의원 의장에 취임하면서 자민당을 탈당하자, 아이자와 히데유키가 파벌 회장 역할을 수행했다.
대 | 회장 | 파벌 호칭 | 기간 |
---|---|---|---|
1 | 고노 요헤이 -- | 고노 그룹 | 1999년 1월 18일 - 2003년 11월 19일 |
- | 아이자와 히데유키(좌장) | 2003년 11월 19일 - 2006년 12월 15일 |
2. 2. 위공회 (아소파) (2006년 ~ 2017년)
아소 다로는 2006년 12월 15일 고노 요헤이가 이끌던 대용회를 계승하여 위공회(아소파)를 창설했다.[7] 대용회 소속 의원 11명 전원과 무파벌 의원 4명이 참여했다. 파벌 이름은 중국 고전 《예기》의 구절 '천하위공(天下爲公, 천하는 한 집의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다)'에서 유래했다.[5]아소는 2007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다시 출마했으나, 아소 포위망이라 불리는 견제 속에서 대부분의 파벌이 후쿠다 야스오를 지지하여 낙선했다. 하지만 197표를 얻어 차기 총재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5] 이후 후쿠다 내각에서 아소파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후쿠다 총리의 지지율 하락으로 비주류였던 아소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2008년 아소는 간사장에 기용되고, 아소파 스즈키 쓰네오는 문부과학상에 임명되었다. 2008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소는 총재로 선출되어 총재 파벌의 수장이 되었다. 그러나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면서 아소는 총재직을 사임했다.
2009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고노 다로가 출마했으나 다니가키 사다카즈에게 패배했다.[9][10] 3년 뒤 2012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아소는 아베 신조를 지지하여 당선에 기여했고, 아소는 당내 영향력을 회복했다.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아소는 부총리 겸 재무대신 등으로 입각했다.[13][14] 이후 위공회 소속 의원들이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 제3차 아베 신조 내각 (제1차 개조), 제3차 아베 신조 내각 (제2차 개조) 등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2012년부터 반초 정책 연구소와의 통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12]
대 | 회장 | 파벌 명칭 | 기간 |
---|---|---|---|
1 | 아소 다로 -- | 아소파 | 2006년 12월 15일 - 2017년 7월 3일 |
2. 3. 지공회 (신 아소파) (2017년 ~ 현재)
위공회는 2012년 봄부터 반초 정책연구소와 통합을 논의했고, 2015년부터 협의가 본격화되어 2017년 5월 15일 반초 정책연구소의 위공회 합류가 결정되었다.[17] 사토 쓰토무 등 유린회 출신 의원들도 일부 위공회에 합류하면서, 7월 3일 파벌 명칭을 지공회(志公会)로 변경했다. 발족 당시 소속 의원은 59명이었다. 파벌 명칭은 "뜻(志)을 높게 가지고 공(公)을 마음에 품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17]2019년 4월 후쿠오카현지사 선거에서 아소 다로는 3선에 도전하는 현직 오가와 히로시 대신 다케우치 가즈히사를 옹립하려 했으나, 이는 자민당의 분열을 초래했고 아소가 지지한 다케우치는 낙선했다.[19][20] 기타가와 도모카쓰의 사망으로 치러진 오사카 12구 보궐선거에서도 아소가 지지한 후보가 낙선했다.
하지만 2019년 7월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산선거에서 아소파는 현역 의원 8명 중 7명이 당선되어, 4명만 당선된 기시다파와 소속 참의원 의원 수가 같아졌다. 그 결과 참의원에서 지공회의 영향력이 커져, 아소파 회장 대행인 산토 아키코가 일본 참의원 의장에 취임했다. 이는 오기 지카게 이후 세이와 정책연구회 외 파벌에서 참의원 의장을 배출한 첫 사례였고, 중참 양원 의장을 모두 아소파가 차지하게 되었다.
2020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스가 요시히데를 지지하여 스가가 당선되었다.[22][23] 2021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고노 다로가 아소의 동의를 얻어 출마했으나, 아소는 아마리 아카리 등과 함께 기시다 후미오를 지지했고, 결국 고노는 패배했다.[24][25][26][27]
2024년 1월, 자민당 5개 파벌의 정치자금 파티 비자금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후 파벌 존속 방침을 확인했다.[30][33]
2024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고노 다로가 입후보했다.[36] 아소 다로는 다카이치 사나에를 지지하며 파벌 내부에 균열이 발생했다.[42][43][44][45][46] 다카이치는 1차 투표에서 선전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 시게루에게 패배했다.[44][47]
3. 역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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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그룹 1999년 1월 18일 - 2003년 11월 19일 - 아이자와 히데유키(좌장) 2003년 11월 19일 - 2006년 12월 15일 2 아소 다로
--아소파 2006년 12월 15일 -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