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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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티 오이디푸스》는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쓴 1972년 철학 저서로, 정신분석학과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며 욕망, 사회 구조, 그리고 분열분석을 탐구한다. 책은 4개의 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욕망 기계, 기관 없는 신체, 탈영토화 등의 개념을 통해 기존의 정신분석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분석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특히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가족주의를 비판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이 억압되고 상품화되는 방식을 분석한다. 이 책은 미셸 푸코 등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정신분열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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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 들뢰즈 - 리좀
리좀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제시한 철학적 개념으로, 수목형 모델과 대조되는 수평적이고 비계층적인 연결망을 의미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하는 네트워크의 은유로 사용된다. - 1972년 - 피의 일요일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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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 오이디푸스 - [서적]에 관한 문서 | |
|---|---|
| 책 정보 | |
| 제목 | 안티-오이디푸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
| 원제 |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L'anti-Œdipe |
| 저자 |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 |
| 삽화가 | 해당 없음 |
| 표지 미술가 | 해당 없음 |
| 국가 | 프랑스 |
| 언어 | 프랑스어 |
| 시리즈 | 해당 없음 |
| 주제 | 자본주의, 정신분열분석 |
| 출판사 | 레 미뉘 출판사 |
| 출판사2 | 바이킹 펭귄 |
| 출판일 | 1972년 |
| 영어 출판일 | 1977년 |
| 미디어 유형 | 인쇄물 (하드커버 및 페이퍼백) |
| 페이지 수 | 프랑스어판 494쪽, 미네소타 대학교 출판부 판 400쪽 |
| ISBN | 0-8166-1225-0 (미네소타 대학교 출판부 판) |
| 뒤따르는 작품 | 천 개의 고원 (1980년) |
2. 구성
| 절 | 제목 |
|---|---|
| 제1절 | 욕망적 생산 |
| 제2절 | 기관 없는 신체 |
| 제3절 | 주체와 향유 |
| 제4절 | 유물론적 정신 의학 |
| 제5절 | 욕망 기계 |
| 제6절 | 전체와 여러 부분 |
- 제2장 정신 분석과 가족주의, 즉 성스러운 가족
| 절 | 제목 |
|---|---|
| 제1절 | 오이디푸스 제국주의 |
| 제2절 | 프로이트의 세 가지 텍스트 |
| 제3절 | 생산의 접속적 종합 |
| 제4절 | 등록의 이접적 종합 |
| 제5절 | 소비의 연접적 종합 |
| 제6절 | 세 가지 종합의 요약 |
| 제7절 | 억제와 억압 |
| 제8절 | 신경증과 정신병 |
| 제9절 | 프로세스 |
- 제3장 미개인, 야만인, 문명인
| 절 | 제목 |
|---|---|
| 제1절 | 등기하는 사회체 |
| 제2절 | 원시 대지 기계 |
| 제3절 | 오이디푸스 문제 |
| 제4절 | 정신 분석과 인류학 |
| 제5절 | 대지적 표상 |
| 제6절 | 야만적인 전제 군주 기계 |
| 제7절 | 야만적인, 또는 제국의 표상 |
| 제8절 | <원 국가> |
| 제9절 | 문명 자본주의 기계 |
| 제10절 | 자본주의의 표상 |
| 제11절 | 마지막은 오이디푸스 |
- 제4장 분열 분석으로의 서장
| 절 | 제목 |
|---|---|
| 제1절 | 사회 야생 |
| 제2절 | 분자적 무의식 |
| 제3절 | 정신 분석과 자본주의 |
| 제4절 | 분열 분석의 긍정적인 첫 번째 과제 |
| 제5절 | 두 번째 긍정적 과제 |
- 부록 욕망 기계를 위한 총괄과 프로그램
이 책은 총 4개의 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욕망, 정신분석, 사회 구조, 그리고 분열분석이라는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2. 1. 제1장 욕망 기계
들뢰즈와 가타리는 전통적인 욕망 개념이 "생산"과 "획득" 사이의 배타적인 구분을 전제로 한다고 비판한다.[15] 이러한 구분은 플라톤에서 프로이트, 라캉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의 역사 전반에 걸쳐 지배적이었으며, 욕망을 결핍된 무언가를 획득하려는 것으로 이해한다.[15]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러한 욕망 개념이 철학적 관념론의 한 형태라고 비판하며, 욕망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힘으로 간주하는 대안적 개념을 제시한다. 이들은 주로 니체의 권력 의지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에서 영향을 받았다.[16]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이 현실을 생산하는 긍정적인 생산 과정이라고 주장한다.[17] 이들은 세 가지 "수동적 종합"(부분적으로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에 나오는 통각의 종합을 모델로 함)을 바탕으로, 욕망이 무의식의 자동생성을 위해 "부분 대상, 흐름, 신체"를 조작한다고 설명한다.[18] 이 모델에서 욕망은 대상이 "결핍"되지 않으며, "기계이고, 욕망의 대상은 그것에 연결된 또 다른 기계이다."[17] 이를 바탕으로 들뢰즈와 가타리는 갈망-생산의 개념을 발전시킨다.[19] 욕망이 현실을 생산하기 때문에, 생산력과 생산 관계를 가진 사회적 생산은 "결정된 조건 하에서 순전히 갈망-생산 자체"이다.[14]
들뢰즈와 가타리는 심리적 억압과 억압 사이에 연관성을 맺지만, 이들의 갈망-생산 개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은 서로 연결된 갈망-기계로 구성된 우주를 묘사하며, "대규모로 형성하는 사회적 기계 외부에 존재하는 갈망-기계는 없으며, 소규모로 그 안에 존재하는 갈망 기계가 없는 사회적 기계도 없다."고 주장한다.[20] 사회적 영역이 욕망에 의해 직접 투자될 수 있다는 주장은, 갈망-기계와 사회적 생산 사이에 내재적인 이원론을 상정하는 프로이트의 승화 개념과 대립된다. "진실은 성이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이다. 관료가 자신의 기록을 애무하는 방식, 판사가 정의를 집행하는 방식, 사업가가 돈을 유통시키는 방식;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를 좆는 방식 등."[21]
들뢰즈와 가타리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 반정신과,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욕망과 사회의 두 영역 사이에 필요한 매개를 주장하는)에 대한 비판을 발전시킨다. 이들은 성 개념을 남성과 여성 성 역할의 상호 작용에 국한하지 않고, "10만" 개의 갈망-기계가 연결된 우주 내에서 창조하는 다중성 흐름으로 본다. 이러한 "비인간적, 분자적 성"은 "몰" 이항 성과 대조된다. "사랑을 나누는 것은 단지 하나가 되는 것, 심지어 둘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10만 명이 되는 것"이며, "우리는 항상 세상과 사랑을 나눈다."[22]
2. 2. 제2장 정신분석과 가족주의, 즉 성스러운 가족
들뢰즈와 과타리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비판하며, 이는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구성된 가족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한 사회의 원래 모델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정신분석학의 "가족주의"를 비판하면서, 가족의 오이디푸스 모델이 구성원들을 억압하고 욕망을 억누르며, 사회의 조직 원리로 기능하기 위해 콤플렉스를 부여해야 하는 일종의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들뢰즈와 과타리는 "가족"을 더 큰 "사회적" 영역에 포함된 구체로 간주하고, 가족 삼각관계에 논리적 우위를 부여하는 대신, 가족이 베르그송의 열린 사회에 대한 개념처럼 사회로 ''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개인적 주체로 구성됨)과 사회 사이의 유사 대립 아래에는 개별 이전의 욕망과 사회적 생산 사이의 관계가 놓여 있다.
나아가 이들은 생산, 등록, 소비의 세 가지 종합 과정을 통해 욕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또한 정신분열증이 자본주의 체제와 공존하는 극단적인 정신 상태이며[23], 자본주의는 정상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신경증을 계속 강요한다고 주장한다.[23]
2. 3. 제3장 미개인, 야만인, 문명인
들뢰즈와 가타리는 《안티 오이디푸스》 제3장 "미개인, 야만인, 문명인"에서 사회를 원시 사회, 전제 군주 사회, 자본주의 사회로 나누어 각 사회의 특징과 욕망의 흐름을 분석한다. 원시 사회는 대지에 직접 욕망을 기입하며, 부족 간의 연합과 분화를 통해 사회를 유지한다. 전제 군주 사회는 전제 군주의 신체를 통해 욕망을 통제하고, 국가를 형성하여 지배력을 강화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화폐의 흐름을 통해 욕망을 코드화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욕망을 억압하며, 자본의 증식을 추구한다.이들은 원시 사회의 '대지 기계', 전제 군주 사회의 '전제 군주 기계',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주의 기계'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각 사회의 작동 방식을 설명한다. 원시 사회에서는 대지에 대한 직접적인 욕망 기입을 통해 사회가 유지되지만, 전제 군주 사회에서는 전제 군주의 신체를 통해 욕망이 통제되고 국가가 형성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화폐라는 추상적인 기호를 통해 욕망이 코드화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욕망이 억압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가족 내에서 욕망을 억압하고, 사회 전체의 욕망을 자본의 흐름에 종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작동하며, 개인의 욕망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재편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 억압 기제를 비판하고, 욕망의 해방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2. 4. 제4장 분열분석으로의 서장
들뢰즈와 가타리는 정신분석의 반동주의적 경향에 대응하여 사회적, 정치적 분석 방법인 "분석정신분석"을 제시한다.[6] 이는 사회, 생물학, 역사, 지리 분야에서 혁명적이든 반동적이든 욕망이 직접적으로 투사되는 방식을 기능적으로 평가한다.[7]분석정신분석은 네 가지 주요 테제를 제시한다.[8] 첫째, 모든 무의식적 리비도 투자는 사회적이며 사회-역사적 장에 영향을 미친다. 둘째, 집단 또는 욕망의 무의식적 리비도 투자는 계급 또는 이익의 전의식적 투자와 구별된다. 셋째, 사회적 장의 비가족적 리비도 투자는 가족적 투자보다 우선한다. 리처드 린드너의 그림 "기계가 있는 소년"(1954)은 욕망의 사회적 투자가 가족적 투자보다 우선한다는 분석정신분석의 테제를 보여준다.[5] 넷째, 사회적 리비도 투자는 편집증적, 반동적, 파시즘화 극과 분열증적 혁명적 극, 두 가지 극으로 구별된다.

분석정신분석은 리비도가 경제적 또는 정치적 요인에 투자되기 위해 성적 대상화 해제, 승화되거나 변태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가정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성행위는 어디에나 있다"고 주장하며, 관료, 판사, 사업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관계 등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서 성적 욕망을 발견한다.[9] 이들은 고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욕망이 사회의 경제적 "토대"의 일부이며,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10]
욕망의 무의식적 리비도 투자는 욕망하는 주체(개인 또는 집단)의 의식에 따라 만들어진 요구나 이데올로기적 이익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11] 히틀러가 파시스트들을 성적으로 흥분시킨 것이나, 은행, 주식 시장 등이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것은 은유가 아니며, 사회경제적 "콤플렉스"는 군산 복합체처럼 진정한 무의식의 콤플렉스를 형성한다.[12] 이데올로기, 오이디푸스, 남근은 이러한 콤플렉스의 원동력이 아니라 그것에 의존한다.[12]
분석정신분석은 "욕망하는 주체에서 욕망이 자신의 억압을 욕망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때 욕망을 사회적 영역에 연결하는 회로에서 죽음 본능의 역할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13] 욕망은 "가장 억압적이고 치명적인 형태의 사회적 재생산"을 생산할 수 있다.[14]
2. 5. 부록: 욕망 기계를 위한 총괄과 프로그램
들뢰즈와 가타리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욕망 기계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정신분석학을 비판하며 새로운 분석 방법을 제시한다. 욕망 기계는 무의식적인 욕망의 생산과 흐름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사회적 억압과 개인의 욕망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이들은 욕망 기계를 통해 사회적 생산과 욕망적 생산의 관계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방식을 분석한다. 또한, 기관 없는 신체, 접속적 종합, 이접적 종합, 연접적 종합 등 다양한 개념을 통해 욕망 기계의 작동 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앞으로의 연구는 이러한 욕망 기계 개념을 더욱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사회 현상과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더욱 깊이 있게 분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특히, 분열 분석이라는 새로운 분석 방법을 통해 무의식의 영역을 탐구하고,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다.
3. 주요 개념
- '''제1장 욕망 기계'''
- * '''제1절 욕망적 생산'''
- * '''제2절 기관 없는 신체'''
- * '''제3절 주체와 향유'''
- * '''제4절 유물론적 정신 의학'''
- * '''제5절 욕망 기계'''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을 결핍이 아닌, 끊임없이 생산하고 연결되는 긍정적인 힘으로 파악한다.[15][17] 이들은 욕망이 현실을 생산하는 긍정적인 생산 과정이라고 주장하며,[17] 세 가지 "수동적 종합"을 통해 욕망은 무의식의 자동생성을 위해 "부분 대상, 흐름, 신체"를 조작한다고 보았다.[18] 이 모델에서 욕망은 대상이 "결핍"되지 않으며, "기계이고, 욕망의 대상은 그것에 연결된 또 다른 기계이다."[17]
들뢰즈와 가타리는 갈망-생산의 개념을 발전시켜,[19] 생산력과 생산 관계를 가진 사회적 생산은 "결정된 조건 하에서 순전히 갈망-생산 자체"라고 주장한다.[14]
들뢰즈와 가타리는 심리적 억압과 억압 사이의 연관성을 맺지만, 갈망-생산 개념을 통해 이를 수행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20] 사회적 영역이 욕망에 의해 직접 투자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갈망-기계와 사회적 생산 사이에 내재적인 이원론을 상정하는 프로이트의 승화 개념에 반대한다.[21]
들뢰즈와 가타리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 반정신과,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발전시킨다.[22] 이들의 성 개념은 남성과 여성 성 역할의 상호 작용에 국한되지 않고, "10만" 개의 갈망-기계가 연결된 우주 내에서 창조하는 다중성 흐름을 상정한다.[22] 이러한 "비인간적, 분자적 성"을 "몰" 이항 성과 대조하며, "사랑을 나누는 것은 단지 하나가 되는 것, 심지어 둘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10만 명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22]
한국 사회에서 욕망 기계는 획일적인 성공 신화와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서 억압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화 콘텐츠 생산, 사회 운동, 개인의 창의적인 활동 등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기도 한다.
- * '''제6절 전체와 여러 부분'''
- '''제2장 정신 분석과 가족주의, 즉 성스러운 가족'''
- * '''제1절 오이디푸스 제국주의'''
- * '''제2절 프로이트의 세 가지 텍스트'''
- * '''제3절 생산의 접속적 종합'''
- * '''제4절 등록의 이접적 종합'''
- * '''제5절 소비의 연접적 종합'''
- * '''제6절 세 가지 종합의 요약'''
- * '''제7절 억제와 억압'''
- * '''제8절 신경증과 정신병'''
- * '''제9절 프로세스'''
- '''제3장 미개인, 야만인, 문명인'''
- * '''제1절 등기하는 사회체'''
- * '''제2절 원시 대지 기계'''
- * '''제3절 오이디푸스 문제'''
- * '''제4절 정신 분석과 인류학'''
- * '''제5절 대지적 표상'''
- * '''제6절 야만적인 전제 군주 기계'''
- * '''제7절 야만적인, 또는 제국의 표상'''
- * '''제8절 <원 국가>'''
- * '''제9절 문명 자본주의 기계'''
- * '''제10절 자본주의의 표상'''
- * '''제11절 마지막은 오이디푸스'''
- '''제4장 분열 분석으로의 서장'''
- * '''제1절 사회 야생'''
- * '''제2절 분자적 무의식'''
들뢰즈와 가타리의 "분석정신분석"은 정신분석의 반동주의적 경향에 대응하는 사회적, 정치적 분석이다.[6] 이는 사회적, 생물학적, 역사적, 지리적 분야에서 혁명적이든 반동적이든 욕망의 직접적인 투사에 대한 기능적 평가를 제안한다.[7]
분석정신분석은 네 가지 테제를 제시한다.
# 모든 무의식적 리비도 투자는 사회적이며 사회-역사적 장에 영향을 미친다.
# 집단 또는 욕망의 무의식적 리비도 투자는 계급 또는 이익의 전의식적 투자와 구별된다.
# 사회적 장의 비가족적 리비도 투자는 가족적 투자와 관련하여 1차적이다.
# 사회적 리비도 투자는 두 개의 극, 즉 편집증적, 반동적, 파시즘화 극과 분열증적 혁명적 극에 따라 구별된다.[8]
정신분석적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분석정신분석은 리비도가 경제적 또는 정치적 요인에 투자하기 위해 성적 대상화 해제, 승화되거나 변태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가정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진실은 성행위는 어디에나 있다. 관료가 자신의 기록을 애무하는 방식, 판사가 정의를 집행하는 방식, 사업가가 돈을 유통시키는 방식;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를 따먹는 방식 등. [...] 깃발, 국가, 군대, 은행은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킨다."라고 설명한다.[9]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욕망은 사회의 경제적, 기반 시설적 "토대"의 일부이며, 이데올로기적, 주관적 "상부구조"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10]
욕망의 무의식적 리비도 투자는 욕망하는 주체(개인 또는 집단)의 의식에 따라 만들어진 요구나 이데올로기적 이익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면서 공존한다.[11]
사회적 생산 및 재생산의 한 형태는 경제적, 재정적 메커니즘, 정치적 형태 등과 함께 욕망하는 주체의 이익과는 독립적으로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욕망될 수 있다. 히틀러가 파시스트들을 성적으로 흥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은유, 심지어 아버지의 은유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은행이나 주식 시장 거래, 청구, 쿠폰, 신용이 반드시 은행가가 아닌 사람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것은 은유가 아니다. 그리고 돈이 증가하고, 더 많은 돈을 생산하는 돈의 효과는 어떠한가? 또한 계층의 상단에서 하단까지 관능적인 파도를 전달하는 진정한 무의식의 콤플렉스인 사회경제적 "콤플렉스"가 있다 ( 군산 복합체 ). 그리고 이데올로기, 오이디푸스, 그리고 남근은 그것의 원동력이 아니라 그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12]
분석정신분석은 "욕망하는 주체에서 욕망이 자신의 억압을 욕망하도록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욕망을 사회적 영역에 연결하는 회로에서 죽음 본능의 역할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13] 욕망은 "가장 억압적이고 치명적인 형태의 사회적 재생산"을 생산한다.[14]
분열분석은 한국 사회에서 권위주의적 문화,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 성 불평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등 다양한 억압 기제에 저항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
- * '''제3절 정신 분석과 자본주의'''
- * '''제4절 분열 분석의 긍정적인 첫 번째 과제'''
- * '''제5절 두 번째 긍정적 과제'''
- '''부록 욕망 기계를 위한 총괄과 프로그램'''

들뢰즈와 가타리는 앙토냉 아르토의 텍스트 "신에 대한 심판을 끝내자"에서 "기관 없는 신체"(BwO) 개념을 발전시킨다.[24] 욕망은 그것을 구현하는 사람만큼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스스로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채널과 조합을 찾고, 모든 경우에 기관 없는 신체를 형성한다. 욕망은 주체의 애착이나 물질적 상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관 없는 신체는 욕망이 특정한 기관이나 기능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는 상태를 의미하며,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잠재력을 상징한다. 한국 사회에서 기관 없는 신체는 기존의 사회적 규범과 가치관에 도전하는 예술 작품, 대안적인 삶의 방식, 사회적 소수자 운동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기관 없는 신체는 강요되거나 의지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긴장성 정신 분열증과 연결되는 제로 강도 조건의 본질적인 산물이기도 하다.
탈영토화는 수목형 맥락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으로, 사물을 단일하게 부호화된 의미나 정체성에서 뿌리줄기적 다중성 영역과 변동적인 정체성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의미와 작동은 상호 연결된 엔티티의 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집합으로 나타나며, 개별 경계는 모호해진다. 모든 실제적인 ''어셈블라주''는 영토화(유지)와 탈영토화(소멸)의 동시적 움직임으로 특징지어진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페요테와 같은 정신 활성 물질을 포함하여 탈영토화의 다양한 수단을 언급한다. 이러한 물질의 효과는 사용자의 세계관 완화(상대적 탈영토화)를 포함하며, 이후 이전 영토와 반드시 동일하지 않은 반재영토화(신념, 모델 등의 재매핑)로 이어진다.
탈영토화는 ''도주선'', ''탈층화'' 및 ''무기관 신체''와 같은 들뢰즈-가타리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때로는 이러한 용어와 부분적으로 바꿔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극적인 재영토화는 종종 상대적 탈영토화에 이어 발생하며, 절대적 탈영토화는 어떠한 재영토화도 없는 절대적 탈영토화라고 가정한다.
한국 사회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민주화 과정은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역동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도시 개발과 산업화는 농촌 공동체의 해체(탈영토화)와 새로운 도시 문화 형성(재영토화)을 동시에 가져왔다.
3. 1. 욕망 기계 (Desiring machines)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을 결핍이 아닌, 끊임없이 생산하고 연결되는 긍정적인 힘으로 파악한다.[15][17] 이들은 욕망이 현실을 생산하는 긍정적인 생산 과정이라고 주장하며,[17] 세 가지 "수동적 종합"을 통해 욕망은 무의식의 자동생성을 위해 "부분 대상, 흐름, 신체"를 조작한다고 보았다.[18] 이 모델에서 욕망은 대상이 "결핍"되지 않으며, "기계이고, 욕망의 대상은 그것에 연결된 또 다른 기계이다."[17]들뢰즈와 가타리는 갈망-생산의 개념을 발전시켜,[19] 생산력과 생산 관계를 가진 사회적 생산은 "결정된 조건 하에서 순전히 갈망-생산 자체"라고 주장한다.[14]
들뢰즈와 가타리는 심리적 억압과 억압 사이의 연관성을 맺지만, 갈망-생산 개념을 통해 이를 수행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20] 사회적 영역이 욕망에 의해 직접 투자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갈망-기계와 사회적 생산 사이에 내재적인 이원론을 상정하는 프로이트의 승화 개념에 반대한다.[21]
들뢰즈와 가타리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 반정신과,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발전시킨다.[22] 이들의 성 개념은 남성과 여성 성 역할의 상호 작용에 국한되지 않고, "10만" 개의 갈망-기계가 연결된 우주 내에서 창조하는 다중성 흐름을 상정한다.[22] 이러한 "비인간적, 분자적 성"을 "몰" 이항 성과 대조하며, "사랑을 나누는 것은 단지 하나가 되는 것, 심지어 둘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10만 명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22]
한국 사회에서 욕망 기계는 획일적인 성공 신화와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서 억압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화 콘텐츠 생산, 사회 운동, 개인의 창의적인 활동 등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기도 한다.
3. 2. 기관 없는 신체 (Body without organs)
들뢰즈와 가타리는 앙토냉 아르토의 텍스트 "신에 대한 심판을 끝내자"에서 "기관 없는 신체"(BwO) 개념을 발전시킨다.[24] 욕망은 그것을 구현하는 사람만큼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스스로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채널과 조합을 찾고, 모든 경우에 기관 없는 신체를 형성한다. 욕망은 주체의 애착이나 물질적 상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관 없는 신체는 욕망이 특정한 기관이나 기능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는 상태를 의미하며,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잠재력을 상징한다. 한국 사회에서 기관 없는 신체는 기존의 사회적 규범과 가치관에 도전하는 예술 작품, 대안적인 삶의 방식, 사회적 소수자 운동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기관 없는 신체는 강요되거나 의지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긴장성 정신 분열증과 연결되는 제로 강도 조건의 본질적인 산물이기도 하다.
3. 3. 분열분석 (Schizoanalysis)
들뢰즈와 가타리의 "분석정신분석"은 정신분석의 반동주의적 경향에 대응하는 사회적, 정치적 분석이다.[6] 이는 사회적, 생물학적, 역사적, 지리적 분야에서 혁명적이든 반동적이든 욕망의 직접적인 투사에 대한 기능적 평가를 제안한다.[7]분석정신분석은 네 가지 테제를 제시한다.
# 모든 무의식적 리비도 투자는 사회적이며 사회-역사적 장에 영향을 미친다.
# 집단 또는 욕망의 무의식적 리비도 투자는 계급 또는 이익의 전의식적 투자와 구별된다.
# 사회적 장의 비가족적 리비도 투자는 가족적 투자와 관련하여 1차적이다.
# 사회적 리비도 투자는 두 개의 극, 즉 편집증적, 반동적, 파시즘화 극과 분열증적 혁명적 극에 따라 구별된다.[8]
정신분석적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분석정신분석은 리비도가 경제적 또는 정치적 요인에 투자하기 위해 성적 대상화 해제, 승화되거나 변태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가정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진실은 성행위는 어디에나 있다. 관료가 자신의 기록을 애무하는 방식, 판사가 정의를 집행하는 방식, 사업가가 돈을 유통시키는 방식;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를 따먹는 방식 등. [...] 깃발, 국가, 군대, 은행은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킨다."라고 설명한다.[9]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욕망은 사회의 경제적, 기반 시설적 "토대"의 일부이며, 이데올로기적, 주관적 "상부구조"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10]
욕망의 무의식적 리비도 투자는 욕망하는 주체(개인 또는 집단)의 의식에 따라 만들어진 요구나 이데올로기적 이익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면서 공존한다.[11]
사회적 생산 및 재생산의 한 형태는 경제적, 재정적 메커니즘, 정치적 형태 등과 함께 욕망하는 주체의 이익과는 독립적으로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욕망될 수 있다. 히틀러가 파시스트들을 성적으로 흥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은유, 심지어 아버지의 은유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은행이나 주식 시장 거래, 청구, 쿠폰, 신용이 반드시 은행가가 아닌 사람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것은 은유가 아니다. 그리고 돈이 증가하고, 더 많은 돈을 생산하는 돈의 효과는 어떠한가? 또한 계층의 상단에서 하단까지 관능적인 파도를 전달하는 진정한 무의식의 콤플렉스인 사회경제적 "콤플렉스"가 있다 ( 군산 복합체 ). 그리고 이데올로기, 오이디푸스, 그리고 남근은 그것의 원동력이 아니라 그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12]
분석정신분석은 "욕망하는 주체에서 욕망이 자신의 억압을 욕망하도록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욕망을 사회적 영역에 연결하는 회로에서 죽음 본능의 역할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13] 욕망은 "가장 억압적이고 치명적인 형태의 사회적 재생산"을 생산한다.[14]
분열분석은 한국 사회에서 권위주의적 문화,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 성 불평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등 다양한 억압 기제에 저항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
3. 4. 탈영토화 (Deterritorialization)와 재영토화 (Reterritorialization)
탈영토화는 수목형 맥락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으로, 사물을 단일하게 부호화된 의미나 정체성에서 뿌리줄기적 다중성 영역과 변동적인 정체성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의미와 작동은 상호 연결된 엔티티의 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집합으로 나타나며, 개별 경계는 모호해진다. 모든 실제적인 ''어셈블라주''는 영토화(유지)와 탈영토화(소멸)의 동시적 움직임으로 특징지어진다.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페요테와 같은 정신 활성 물질을 포함하여 탈영토화의 다양한 수단을 언급한다. 이러한 물질의 효과는 사용자의 세계관 완화(상대적 탈영토화)를 포함하며, 이후 이전 영토와 반드시 동일하지 않은 반재영토화(신념, 모델 등의 재매핑)로 이어진다.
탈영토화는 ''도주선'', ''탈층화'' 및 ''무기관 신체''와 같은 들뢰즈-가타리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때로는 이러한 용어와 부분적으로 바꿔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극적인 재영토화는 종종 상대적 탈영토화에 이어 발생하며, 절대적 탈영토화는 어떠한 재영토화도 없는 절대적 탈영토화라고 가정한다.
한국 사회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민주화 과정은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역동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도시 개발과 산업화는 농촌 공동체의 해체(탈영토화)와 새로운 도시 문화 형성(재영토화)을 동시에 가져왔다.
4. 정신분석 비판
들뢰즈와 가타리는 국제 정신분석 협회의 저명한 회원이었던 제라르 멘델, 벨라 그린버거, 자닌 샤스게-스미르겔의 사례를 통해 정신분석이 경찰 국가를 옹호한다고 주장한다.[25] 이들은 정신분석이 사회적 억압에 동조하며, 오이디푸스화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정신병원이나 경찰의 도움을 요청한다고 비판한다. "우리 편의 경찰!"이라는 표현은 정신분석이 사회적 억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을 보여준다.[25]
벨라 그린버거와 자닌 샤스게-스미르겔은 파리 정신분석 학회 소속 정신분석가로, 1968년 11월 '앙드레 스테판'이라는 가명으로 《L'univers Contestationnaire》를 출판하여 68혁명의 좌익 폭동자들을 전체주의적인 스탈린주의자이자 아버지에 대한 오이디푸스적 반항에 휩싸인 추악한 유아론(infantilism)을 가진 자들로 정신분석했다.[26][27] 자크 라캉은 이들의 저서를 매우 경멸하며, 자신의 학파에서는 누구도 그런 저속한 헛소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28] 이에 국제 정신분석 협회 분석가들은 라캉 학파에 "지적 테러"를 가한다고 비난했다.[26] 제라르 멘델은 《아버지에 대한 반란》(1968)과 《아이의 식민지 해방을 위하여》(1971)를 출판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비판하며,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구성된 가족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한 사회 모델을 비판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정신분석학의 "가족주의"를 비판하면서, 가족의 오이디푸스 모델이 구성원들을 억압하고 욕망을 억누르며, 사회의 조직 원리로 기능하기 위해 콤플렉스를 부여해야 하는 일종의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델뢰즈와 과타리는 "가족"을 더 큰 "사회적" 영역에 포함된 구체로 간주하고, 가족 삼각관계에 논리적 우위를 부여하는 대신, 가족이 베르그송의 열린 사회에 대한 개념처럼 사회로 ''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족(개인적 주체로 구성됨)과 사회 사이의 유사 대립 아래에는 개별 이전의 욕망과 사회적 생산 사이의 관계가 놓여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정신분열증이 자본주의 체제와 공존하는 극단적인 정신 상태이며, 자본주의는 정상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신경증을 계속 강요한다고 주장한다.[23] 그러나 그들은 "정신분열증"의 비임상적 개념으로서의 탈영토화를 임상적 최종 결과인 "정신분열증 환자"와 대립시킨다.[23]
들뢰즈와 가타리는 가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을 억압하고 개인을 사회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주요 기제라고 주장한다.[38] 가족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아동의 욕망에 대한 심리적 억압을 위임하는 대리인 역할을 수행한다.[38] 심리적 억압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여 부모의 불안과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자녀에게 전달하고, 자녀의 성적 욕망을 수치심과 죄책감에 묶어둔다.[39] 이러한 심리적 억압은 사회적 억압과 연결되어 개인이 자기 억압을 갈망하고 자본주의의 고용인으로서 비참한 삶을 받아들이게 만든다.[40]
자본주의 사회에서 핵가족은 착취, 예속, 위계 구조를 위협할 수 있는 욕망에 대항하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한다.[41] 가족은 욕망의 심리적 억압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욕망을 변형시켜 신경증적 욕망, 근친상간적 충동의 변태, 자기 억압을 낳는다.[41]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다.[39]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족주의가 강하며, 가족 중심적인 가치관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가족주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가족 외부 사람들에 대한 배타성을 강화하는 등, 가족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요구되는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치관과는 충돌할 수 있다.
4. 1.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비판
들뢰즈와 가타리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비판하며,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구성된 가족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한 사회 모델을 비판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정신분석학의 "가족주의"를 비판하면서, 가족의 오이디푸스 모델이 구성원들을 억압하고 욕망을 억누르며, 사회의 조직 원리로 기능하기 위해 콤플렉스를 부여해야 하는 일종의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델뢰즈와 과타리는 "가족"을 더 큰 "사회적" 영역에 포함된 구체로 간주하고, 가족 삼각관계에 논리적 우위를 부여하는 대신, 가족이 베르그송의 열린 사회에 대한 개념처럼 사회로 ''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족(개인적 주체로 구성됨)과 사회 사이의 유사 대립 아래에는 개별 이전의 욕망과 사회적 생산 사이의 관계가 놓여 있다.더 나아가, 그들은 정신분열증이 자본주의 체제와 공존하는 극단적인 정신 상태이며, 자본주의는 정상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신경증을 계속 강요한다고 주장한다.[23] 그러나 그들은 "정신분열증"의 비임상적 개념으로서의 탈영토화를 임상적 최종 결과인 "정신분열증 환자"와 대립시킨다.[23]
4. 2. 가족주의 비판
들뢰즈와 가타리는 가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을 억압하고 개인을 사회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주요 기제라고 주장한다.[38] 가족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아동의 욕망에 대한 심리적 억압을 위임하는 대리인 역할을 수행한다.[38] 심리적 억압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여 부모의 불안과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자녀에게 전달하고, 자녀의 성적 욕망을 수치심과 죄책감에 묶어둔다.[39] 이러한 심리적 억압은 사회적 억압과 연결되어 개인이 자기 억압을 갈망하고 자본주의의 고용인으로서 비참한 삶을 받아들이게 만든다.[40]자본주의 사회에서 핵가족은 착취, 예속, 위계 구조를 위협할 수 있는 욕망에 대항하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한다.[41] 가족은 욕망의 심리적 억압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욕망을 변형시켜 신경증적 욕망, 근친상간적 충동의 변태, 자기 억압을 낳는다.[41]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다.[39]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족주의가 강하며, 가족 중심적인 가치관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가족주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가족 외부 사람들에 대한 배타성을 강화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5. 사회와 권력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본주의가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상품화하지만, 동시에 욕망의 진정한 표현을 억압한다고 주장한다.[40][41] 가족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아동의 욕망에 대한 심리적 억압을 위임하는 대리인으로,[38] 부모는 자신의 불안과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자녀에게 전달하고 자녀의 성적 욕망을 수치심과 죄책감에 묶어둔다.[40] 심리적 억압은 사회적 억압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사회적 억압은 이를 지렛대 삼아 작용한다. [40]개인들이 자기 억압을 갈망하고 자본주의의 고용인으로서 비참한 삶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억압의 유순한 하인으로 변모하는 것은 심리적 억압 덕분이다.[40] 자본주의 사회는 착취, 예속, 위계 구조를 위협할 수 있는 욕망의 폭발적인 힘에 대항할 강력한 도구가 필요한데, 핵가족이 바로 그러한 도구이다.[41]
가족은 욕망의 심리적 억압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변형시켜 신경증적 욕망, 근친상간적 충동의 변태, 그리고 자기 억압을 낳는다.[41]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이러한 이중적인 작용에서 발생한다.[39]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소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욕망의 상품화와 획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흐름에 대한 저항과 대안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움직임도 존재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정치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 즉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억압을 갈망하게 되는 모순된 현상에 대해 다룬다.[29] 이는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왜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인 것처럼 끈질기게 노예 상태를 위해 싸우는가?"[30]라고 질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즉, 어떻게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 빵은 줄여!"라고 외칠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들뢰즈와 가타리는 사회 조직, 권력, 그리고 욕망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빌헬름 라이히는 1933년 저서 ''파시즘의 대중 심리''에서 이 현상에 대해 논했다.[31][32] 그는 "놀라운 점은 어떤 사람들이 훔치거나 다른 사람들이 가끔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굶주린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훔치지 않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파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하며, 사람들이 왜 자신의 굴욕과 노예 상태를 견디고 심지어 원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그것의 가족적 주체화 메커니즘("아빠-엄마-나")을 통해 이 문제를 분석한다. 그들은 핵가족이 아동과 청소년의 욕망이 억압되고 왜곡되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억압의 주체라고 주장한다.[33][34] 이러한 심리적 억압은 사회적 억압에 쉽게 순응하는 개인을 만들게 된다.[35]
지배 계급은 이러한 강력한 가족주의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사회적 영역으로 절단(''coupures'')과 분리를 전달"하고, 궁극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을 통제하여 일반적인 복종을 보장한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객관적인 상황이 그들과 싸우도록 이끌어야 하는 계급의 이익과 이상에 결집할 때, 명백히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모순된 현상을 설명한다.[36]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이 억압되는 이유는 아무리 작더라도 모든 욕망의 위치가 사회의 기성 질서를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욕망은 본질적으로 폭발적이며, "전체 사회 부문을 해체하지 않고 조립할 수 있는 욕망 기계는 없다."[37] 따라서 욕망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며, 어떤 사회도 착취, 노예 상태 및 위계 구조가 손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욕망의 위치를 용납할 수 없다.[37]
5. 1. 자본주의와 욕망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본주의가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상품화하지만, 동시에 욕망의 진정한 표현을 억압한다고 주장한다.[40][41] 가족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아동의 욕망에 대한 심리적 억압을 위임하는 대리인으로,[38] 부모는 자신의 불안과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자녀에게 전달하고 자녀의 성적 욕망을 수치심과 죄책감에 묶어둔다.[40] 심리적 억압은 사회적 억압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사회적 억압은 이를 지렛대 삼아 작용한다. [40]개인들이 자기 억압을 갈망하고 자본주의의 고용인으로서 비참한 삶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억압의 유순한 하인으로 변모하는 것은 심리적 억압 덕분이다.[40] 자본주의 사회는 착취, 예속, 위계 구조를 위협할 수 있는 욕망의 폭발적인 힘에 대항할 강력한 도구가 필요한데, 핵가족이 바로 그러한 도구이다.[41]가족은 욕망의 심리적 억압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변형시켜 신경증적 욕망, 근친상간적 충동의 변태, 그리고 자기 억압을 낳는다.[41]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이러한 이중적인 작용에서 발생한다.[39]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소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욕망의 상품화와 획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흐름에 대한 저항과 대안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움직임도 존재한다.
5. 2. 파시즘과 욕망
들뢰즈와 가타리는 정치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 즉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억압을 갈망하게 되는 모순된 현상에 대해 다룬다.[29] 이는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왜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인 것처럼 끈질기게 노예 상태를 위해 싸우는가?"[30]라고 질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즉, 어떻게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 빵은 줄여!"라고 외칠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들뢰즈와 가타리는 사회 조직, 권력, 그리고 욕망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빌헬름 라이히는 1933년 저서 ''파시즘의 대중 심리''에서 이 현상에 대해 논했다.[31][32] 그는 "놀라운 점은 어떤 사람들이 훔치거나 다른 사람들이 가끔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굶주린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훔치지 않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파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하며, 사람들이 왜 자신의 굴욕과 노예 상태를 견디고 심지어 원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그것의 가족적 주체화 메커니즘("아빠-엄마-나")을 통해 이 문제를 분석한다. 그들은 핵가족이 아동과 청소년의 욕망이 억압되고 왜곡되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억압의 주체라고 주장한다.[33][34] 이러한 심리적 억압은 사회적 억압에 쉽게 순응하는 개인을 만들게 된다.[35]
지배 계급은 이러한 강력한 가족주의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사회적 영역으로 절단(''coupures'')과 분리를 전달"하고, 궁극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을 통제하여 일반적인 복종을 보장한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객관적인 상황이 그들과 싸우도록 이끌어야 하는 계급의 이익과 이상에 결집할 때, 명백히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모순된 현상을 설명한다.[36]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이 억압되는 이유는 아무리 작더라도 모든 욕망의 위치가 사회의 기성 질서를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욕망은 본질적으로 폭발적이며, "전체 사회 부문을 해체하지 않고 조립할 수 있는 욕망 기계는 없다."[37] 따라서 욕망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며, 어떤 사회도 착취, 노예 상태 및 위계 구조가 손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욕망의 위치를 용납할 수 없다.[37]
6. 한국 사회에 대한 함의
6. 1. 정치적 함의
6. 2. 사회문화적 함의
6. 3. 한계와 비판
7. 영향과 수용
미셸 푸코는 ''안티 오이디푸스''를 "에로틱한 예술"로 읽는 것이 가장 좋다고 평가했다. 푸코는 이 책의 세 명의 "적"을 "혁명의 관료", "욕망의 불쌍한 기술자"(정신 분석가 및 기호학자), 그리고 파시즘으로 보았다.[43] 여기서 "파시즘"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역사적 파시즘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의 파시즘까지 지칭하는 개념이다.[43] 푸코는 ''안티 오이디푸스''가 "오랜 기간 프랑스에서 쓰인 최초의 윤리학 책"이며, 이것이 이 책의 대중적 성공을 설명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책을 ''반 파시스트 삶의 입문''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제안했다.[43]
정신과 의사 데이비드 쿠퍼는 ''안티 오이디푸스''를 "혁명적인 힘으로서의 광기의 웅장한 비전"으로 묘사했다.[44] 비평가 프레데릭 크루즈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정신병적인 사회의 가장 사악한 사제 조작자로서 분석가들을 비난"했을 때, 그들의 "시위는 반박할 수 없는 것으로 널리 여겨졌"고 "이미 축소되고 있던 파리의 라캉 진영을 초토화시켰다"고 평가했다.[45] 철학자 더글러스 켈너는 ''안티 오이디푸스''를 당대 최고의 출판 센세이션이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리비도 경제''(1974)와 함께 "욕망의 미시 정치"의 핵심 텍스트라고 묘사했다.[46]
앤서니 엘리엇은 ''안티 오이디푸스''를 "프랑스 정신 분석을 스캔들화하고 지식인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작품으로 평가하며, "출판 당시 프랑스에서 정신 분석과 라캉주의에 대한 시의적절한 비판을 제공했다"고 썼다.[48] 그러나 그는 "정신분열 분석"이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데 대부분의 논평가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48]
정신 분석가 조엘 코벨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가족의 신비에 대한 결정적인 도전을 제공했지만, "그들의 '정신분열 문화'와 욕망 기계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은 핵가족의 안전한 광기를 갈망하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언급하며 허무주의적 정신을 비판했다.[47] 앤서니 엘리엇은 "주관성이 유용하게 분산되고 해체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욕망이 본질적으로 반항적이고 전복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48] 또한 들뢰즈와 가타리가 개인을 "복잡하고 모순적인 정체성이라기보다는 다양한 기관, 강도 및 흐름에 불과한 존재"로 보고 정신 분열증에 대한 잘못된 해방적 주장을 한다고 비판했다.[48]
가타리의 일기, 들뢰즈와의 서신, 그리고 책의 개발에 대한 메모 중 일부가 사후에 ''안티 오이디푸스 논문''(2004)으로 출판되었다.[49] 철학자 미켈 보르크-야콥센과 심리학자 소누 샴다사니는 ''안티 오이디푸스''의 "도발과 웅장한 수사적 폭력"에도 불구하고, 정신 분석 전문 분야가 이 책이 제기한 논쟁을 통해 자신의 학문을 정당화했다고 평가했다.[50] 철학자 앨런 D. 슈리프트는 ''케임브리지 철학 사전''(2015)에서 ''안티 오이디푸스''가 "욕망의 철학의 주요 명료화이자 정신 분석에 대한 심오한 비판으로 읽혔다"고 썼다.[52]
참조
[1]
문서
Foucault
[2]
문서
Deleuze and Guattari
[3]
서적
Anti-Oedipus
[4]
문서
Deleuze and Guattari
[5]
문서
Deleuze and Guattari
[6]
문서
Deleuze and Guattari
[7]
문서
Deleuze and Guattari
[8]
문서
First thesis
[9]
문서
Deleuze and Guattari
[10]
문서
Deleuze and Guattari
[11]
문서
Deleuze and Guattari
[12]
문서
Deleuze and Guattari
[13]
문서
Section 2.5 The Conjunctive Synthesis of Consumption-Consummation
[14]
문서
Deleuze and Guattari
[15]
문서
Deleuze and Guattari
[16]
문서
Kant's analysis of superstitious beliefs, hallucinations, and fantasies in his Critique of Judgment
[17]
문서
Deleuze and Guattari
[18]
문서
Deleuze and Guattari
[19]
문서
Deleuze and Guattari
[20]
문서
Deleuze and Guattari
[21]
서적
Anti-Oedipu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2]
문서
Deleuze and Guattari
[23]
문서
Deleuze and Guattari
[24]
문서
Deleuze and Guattari
[25]
문서
section 2.4 The disjunctive synthesis of recording
[26]
간행물
68 + 1: Lacan's année érotique
https://www.parrhesi[...]
Parrhesia
2009
[27]
서적
L'Univers Contestationnaire
Payot
1969
[28]
간행물
The Seminars of Jacques Lacan, Seminar XVI D'un Autre à l'autre
1968–9
[29]
문서
Deleuze and Guattari
[30]
문서
Theologico-Political Treatise, Preface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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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Oedipus, section I.4 A Materialist Psychiatry
[32]
간행물
The Mass Psychology of Fascism
1946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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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II.7 Social Repression and Psychic repression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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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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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uze and Guatt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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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Oedipus, section 2.5 The Conjunctive Synthesis of Consumption-Consum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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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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