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에피메니데스의 역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은 "크레타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다"라는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의 진술이 자기 모순을 야기하는 논리적 역설이다. 에피메니데스는 제우스의 불멸성을 부정한 크레타인을 비판하며 이 구절을 사용했지만, 이 주장이 모든 크레타인에게 적용될 경우, 그 자신을 포함한 크레타인들이 항상 거짓말을 한다는 의미가 되어 역설이 발생한다. 이 역설은 거짓말쟁이 역설과 유사하며, 자기 지칭의 문제와 관련되어 논리학과 수학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사도 바울로 - 바울로 서신
    바울로 서신은 신약성경에 속하는 13개의 서신으로, 기독교 신학의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며,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를 4대 서신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 사도 바울로 - 바울에 대한 새 관점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은 20세기 후반부터 바울 서신 해석에 대한 새로운 방식으로, 바울 시대 유대교 이해를 바탕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특정 행위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주장하며 기독교 신학에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 자기언급 역설 - 러셀의 역설
    러셀의 역설은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집합들의 집합을 정의할 때 발생하는 모순으로, 논리 체계의 불일관성을 드러내고 공리적 집합론 발전과 수학 기초론 재검토를 촉진했으며, 자기 참조 문제와 논리 체계 일관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유사한 역설들이 존재한다.
  • 자기언급 역설 - 거짓말쟁이의 역설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문장의 진위를 판별할 수 없는 논리적 역설로, 철학자와 논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으며 다양한 논리적 문제와 연결되고 해결책 및 대중문화에서의 변주가 존재한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
개요
유형논리학의 역설
관련 개념자기 지시, 모순, 수리논리학, 집합론, 러셀의 역설
상세 내용
내용모든 크레타인들은 거짓말쟁이다.
설명에피메니데스가 크레타인이라는 가정 하에, 이 문장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때 모순이 발생함.
변형
단순화된 형태"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또는 "이 문장은 거짓이다.")
설명이 문장이 참이라면 거짓이고, 거짓이라면 참이 되어 모순이 발생함.
역사적 배경
기원기원전 6세기 크레타의 예언자이자 철학자인 에피메니데스가 언급
인용신약성경 디도서 1장 12절에서 사도 바울이 에피메니데스의 말을 인용
논리적 분석
자기 참조에피메니데스 역설은 문장이 자기 자신을 지시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드러냄.
모순문장의 진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모순이 발생.
해결 시도수리논리학과 집합론에서 자기 참조를 제한하거나 다른 논리 체계를 도입하여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음.
철학적 함의
인식론적 문제자기 참조적인 문장이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제기
언어의 한계언어 자체가 내포하는 모순 가능성을 보여줌.
존재론적 문제역설이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
같이 보기
관련 문서자기 지시
모순
수리논리학
집합론
러셀의 역설
외부 링크
관련 자료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 - 에피메니데스 역설 (영어)
인터넷 철학 백과사전 - 에피메니데스 역설 (영어)

2. 거짓말쟁이 크레타인 신화

프톨레마이오스 케누스에 따르면, 테티스메데이아는 한때 테살리아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다투었고, 크레타인 이도메네우스를 심판관으로 임명하여 테티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메데이아는 분노하여 모든 크레타인을 거짓말쟁이라고 불렀고, 그들이 진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저주했다.[2]

이 문제를 나타내는 문장은 한 종류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디도서에는 에피메니데스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크레테 사람 중 어떤 예언자가 '크레테 사람들은 언제나 거짓말쟁이, 흉악한 짐승, 게으른 먹보'라고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8]

에피메니데스가 말한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생각함으로써, 일반적으로 '''자기 모순의 역설'''이 발생한다. 다만, 에피메니데스가 자신 외에 정직한 크레타 사람을 적어도 한 명 알고 있었다면, 그의 이 말은 단순한 거짓말이어서 역설이 아니고,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의 부정은 "크레타 사람 중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이며, "크레타 사람 중에는 거짓말쟁이도 있다"라는 문장과 동시에 참이 될 수 있다.

에피메니데스는 철학자이자 종교적 예언자였으며, 크레타의 일반적인 감정에 반하여 제우스의 불멸성을 시의 형태로 표명했다. 제우스의 불멸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연히 에피메니데스가 "크레타 사람"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자신 이외의 크레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크레타 사람은 언제나 거짓말쟁이"라는 부분만을 시인 칼리마코스가 ''Hymn to Zeus''에서 인용하여 에피메니데스와 비슷한 종교적 신념을 표명했다. 디도서에서는 이 두 번째 행 전체가 인용되어 있다.

모든 크레타 사람이 거짓말쟁이라고 크레타 사람이 단언하는 것의 논리적 모순은 에피메니데스도 칼리마코스도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본래의 문맥에서 에피메니데스는 "자신 이외의 크레타 사람"이라는 의미로 말하고 있었으며, 자기 지칭이라는 의식은 전혀 없었으므로 논리적 문제는 아니었다. 에피메니데스는 단지 (자신 이외의) 크레타 사람이 제우스의 불멸성을 부정했다는 것을 고발했을 뿐이다. 이 크레타의 시인이 강렬한 논리적 문제를 제시했다고 보기보다는 과장법(고의적인 과장)이라고 불리는 비유를 사용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에피메니데스와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 언제부터 결부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에피메니데스는 그의 문장 "크레타 사람은 언제나 거짓말쟁이다"에서 어떤 아이러니나 역설도 의도하지 않았으며, 칼리마코스도 디도서도 마찬가지이다. 논리적 모순은 에피메니데스의 시가 아니라 바울의 서간에 존재한다.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크레타 사람은 언제나 거짓말쟁이"이므로 그들은 기독교라는 유일한 진리를 믿지 않는다고 디도에게 경고했다. 바울은 그의 주장의 근거로 에피메니데스를 인용했다. 그는 (언제나 거짓말쟁이여야 하는) 크레타 사람의 말을 사용하여 "크레타 사람은 언제나 거짓말쟁이다"라고 주장하고, 동시에 (크레타 사람인) 에피메니데스가 분명히 사실(크레타 사람은 언제나 거짓말쟁이다)을 말하고 있다고 결론지으면서 모순을 낳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Against the Academicians'' (III.13.29) 에서 에피메니데스나 디도에 언급하지 않고 거짓말쟁이의 역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중세에는 다양한 형식의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insolubilia라는 이름으로 연구되었지만, 거기에 에피메니데스의 이름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피에르 베일의 『역사 비판 사전』 제2권 (1740년)에는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 명확하게 수록되어 있지만, 베일 자신은 이 역설을 "궤변"으로 분류했다.[10]

3. 논리적 역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은 고대부터 논리학자들을 괴롭혀온 전형적인 자기 모순의 역설이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저서 『괴델, 에셔, 바흐』에서는 다음과 같은 에피메니데스의 금언을 소개한다.[3]

이 문장은 에피메니데스가 진실을 말했는지 거짓을 말했는지에 따라 모순이 발생한다. 만약 에피메니데스가 진실을 말했다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이고 에피메니데스 자신도 거짓말쟁이가 되므로 그의 말은 거짓이 된다. 반대로 에피메니데스가 거짓을 말했다면,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는 아니므로 그의 말은 진실이 된다.

하지만 에피메니데스가 자신 외에 정직한 크레타 사람을 적어도 한 명 알고 있었다면, 그의 말은 단순한 거짓말이 되어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의 부정은 "모든 크레타 사람이 정직하다"가 아니라 "크레타 사람 중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이며, 이는 "크레타 사람 중에는 거짓말쟁이도 있다"라는 문장과 동시에 참이 될 수 있다.

일부 논리학자들은 "거짓말쟁이"를 결코 믿을 수 없는 자라고 정의하여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을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기도 한다.[11]

3. 1. 역설의 해결 시도

토머스 파울러는 1869년에 이 역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3]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는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지만, 에피메니데스 자신도 크레타인이므로 그는 거짓말쟁이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거짓말쟁이라면, 그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크레타인들은 정직하다. 하지만 에피메니데스는 크레타인이므로, 그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고, 크레타인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에피메니데스 자신도 거짓말쟁이이며, 그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는 에피메니데스와 크레타인들이 정직하고 부정직하다는 것을 번갈아 가며 증명할 수 있다."

만약 이 진술이 거짓이고 에피메니데스가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한 명의 정직한 크레타인이 존재해야 한다. 이는 에피메니데스가 이 크레타인일 필요가 없으므로 모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즉, 에피메니데스는 적어도 한 명의 정직한 크레타인을 알고 있으면서 이 특정 크레타인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서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라는 거짓 진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술이 거짓이라는 가정으로부터 진술이 참이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으므로,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진술을 거짓말하는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가 한 거짓 진술로 간주하여 역설을 피할 수 있다.[4]

토마스 파울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범한 실수는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다"의 부정이 "모든 크레타인이 정직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부정은 "정직한 크레타인이 존재한다" 또는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는 아니다"이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가 참된 진술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크레타인이 항상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크레타인들은 종종 진실을 말할 수 있지만, 부정직한 이익을 위해 기만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여전히 모두 거짓말쟁이일 수 있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가 19세기 이후에만 역설로 여겨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이 그 역설을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문구인 "크레타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 악한 짐승, 게으른 배!"는 본질적인 역설이 아니라 에피메니데스의 크레타인에 대한 의견을 주장한다. 그의 백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사람들에 대한 절대적인 진술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사회 문화적 태도에 대한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다.

에피메니데스 역설은 자기 지칭을 특징으로 하며, 거짓말쟁이 역설, 소크라테스 역설, 부랄리-포르티 역설을 포함한 더 어려운 논리적 문제의 범주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에피메니데스 역설은 일반적으로 거짓말쟁이 역설의 변형으로 분류되며, 때로는 둘을 구별하지 않기도 한다. 자기 지칭에 대한 연구는 20세기에 논리학과 수학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끌었다.

4. 어구의 기원

프톨레마이오스 케누스에 따르면, 테티스메데이아는 한때 테살리아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다투었고, 크레타인 이도메네우스를 심판관으로 임명하여 테티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메데이아는 분노하여 모든 크레타인을 거짓말쟁이라고 불렀고, 그들이 진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저주했다.[2]

에피메니데스는 기원전 6세기의 철학자이자 종교적 예언가로, 크레타의 일반적인 정서와 달리 제우스가 불멸이라고 주장했는데, 다음 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Κρῆτες ἀεὶ ψεῦσται, κακὰ θηρία, γαστέρες ἀργαί|크레테스 아에이 프세우스타이, 카카 테리아, 가스테레스 아르가이|크레타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 사악한 짐승, 게으른 배![9]grc

따라서 제우스의 불멸성을 부인하는 것은 크레타인들의 거짓말이었다. "크레타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라는 구절은 시인 칼리마코스가 그의 ''제우스 찬가''에서 에피메니데스와 동일한 신학적 의도로 인용했다.

에피메니데스는 철학자이자 종교적 예언자였으며, 크레타의 일반적인 감정에 반하여 제우스의 불멸성을 의 형태로 표명했다. 제우스의 불멸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에피메니데스가 "크레타 사람"이라고 했을 때 "자신 이외의 크레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분명하다. "크레타 사람은 언제나 거짓말쟁이"라는 부분만을 시인 칼리마코스가 ''Hymn to Zeus''에서 인용하여 에피메니데스와 비슷한 종교적 신념을 표명했다. 『디도서』에서는 이 두 번째 행 전체가 인용되어 있다.

모든 크레타 사람이 거짓말쟁이라고 크레타 사람이 단언하는 것의 논리적 모순은 에피메니데스도 칼리마코스도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본래의 문맥에서 에피메니데스는 "자신 이외의 크레타 사람"이라는 의미로 말하고 있었으며, 자기 지칭이라는 의식은 전혀 없었으므로 논리적 문제는 아니었다. 에피메니데스는 단지 (자신 이외의) 크레타 사람이 제우스의 불멸성을 부정했다는 것을 고발했을 뿐이다. 이 크레타의 시인이 강렬한 논리적 문제를 제시했다고 보기보다는 과장법(고의적인 과장)이라고 불리는 비유를 사용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에피메니데스와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 언제부터 결부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에피메니데스는 "크레타 사람은 언제나 거짓말쟁이다"에서 어떤 아이러니나 역설도 의도하지 않았으며, 칼리마코스도 디도서도 마찬가지이다. 논리적 모순은 에피메니데스의 시가 아니라 성 바울의 서간에 존재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Against the Academicians'' (III.13.29) 에서 에피메니데스나 디도에 언급하지 않고 거짓말쟁이의 역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중세에는 다양한 형식의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insolubilia라는 이름으로 연구되었지만, 거기에 에피메니데스의 이름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피에르 베일의 『역사 비판 사전』 제2권 (1740년)에는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 명확하게 수록되어 있지만, 베일 자신은 이 역설을 "궤변"으로 분류했다[10]

5. 논리적 모순의 등장

토머스 파울러는 1869년에 이 역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는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지만, 에피메니데스 자신도 크레타인이므로 그는 거짓말쟁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거짓말쟁이라면, 그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크레타인들은 정직하다. 하지만 에피메니데스는 크레타인이므로, 그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고, 크레타인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에피메니데스 자신도 거짓말쟁이이며, 그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는 에피메니데스와 크레타인들이 정직하고 부정직하다는 것을 번갈아 가며 증명할 수 있다."[3]

만약 이 진술이 거짓이고 에피메니데스가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한 명의 정직한 크레타인이 존재해야 한다. 이는 에피메니데스가 이 크레타인일 필요가 없으므로 모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즉, 에피메니데스는 적어도 한 명의 정직한 크레타인을 알고 있으면서 이 특정 크레타인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서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라는 거짓 진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술이 거짓이라는 가정으로부터 진술이 참이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진술을 거짓말하는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가 한 거짓 진술로 간주하여 역설을 피할 수 있다.[4]

토마스 파울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범한 실수는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다"의 부정이 "모든 크레타인이 정직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부정은 "정직한 크레타인이 존재한다" 또는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는 아니다"이다.

에피메니데스 역설은 에우불리데스의 첫 번째 역설처럼 위에서 설명한 종류의 해결책을 허용하지 않고, 오히려 피할 수 없는 자기 모순으로 이어지도록 약간 수정될 수 있다. 에피메니데스 문제의 역설적 변형은 거짓말쟁이 역설, 소크라테스 역설, 부랄리-포르티 역설을 포함한 더 어려운 논리적 문제의 범주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들 모두는 에피메니데스와 공통적으로 자기 지칭을 가지고 있다. 에피메니데스 역설은 일반적으로 거짓말쟁이 역설의 변형으로 분류되며, 때로는 둘을 구별하지 않기도 한다. 자기 지칭에 대한 연구는 20세기에 논리학과 수학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끌었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가 진실이 아닌 것은 "모든 크레타인이 정직하다"는 가정 대신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는 아니다"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역설이 아니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가 참된 진술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크레타인이 항상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크레타인들은 종종 진실을 말할 수 있지만, 부정직한 이익을 위해 기만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여전히 모두 거짓말쟁이일 수 있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가 19세기 이후에만 역설로 여겨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이 그 역설을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모든 크레타인은 지속적인 거짓말쟁이'라는 것이 실제로 참이라면, 크레타인에게 정직한지 묻는다면 항상 '예'라는 부정직한 대답을 얻게 될 것이다. 따라서 원래 명제는 역설적이라기보다는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다.

모순에 대한 맥락적 해석도 역설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있다. 원래 문구인 "크레타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 악한 짐승, 게으른 배!"는 본질적인 역설이 아니라 에피메니데스의 크레타인에 대한 의견을 주장한다. 그의 백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사람들에 대한 절대적인 진술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사회 문화적 태도에 대한 입장을 주장한다. 그의 시의 맥락에서 이 구절은 특정 신념에 특정한 것이며, 칼리마코스제우스에 대해 그의 시에서 반복하는 맥락이다. 또한 역설에 대한 더 날카로운 답은 단순히 ''거짓말쟁이''가 거짓을 진술하는 것이며, 그 진술에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항상"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절대적인 진술이 아니며, 따라서 에피메니데스가 이 진술로 진정한 모순을 만들었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

크레타인 전체가 항상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하는 크레타인의 논리적 모순은 에피메니데스나 칼리마코스에게는 떠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들은 둘 다 이러한 구절을 반어법 없이 사용하여 자신의 요점을 강조했으며, 아마도 모든 크레타인들이 일상적으로 거짓말을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에피메니데스가 말한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생각함으로써, 일반적으로 '''자기 모순의 역설'''이 발생한다. 다만, 에피메니데스가 자신 외에 정직한 크레타 사람을 적어도 한 명 알고 있었다면, 그의 이 말은 단순한 거짓말이어서 역설이 아니고,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의 부정은 "크레타 사람 중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이며, "크레타 사람 중에는 거짓말쟁이도 있다"라는 문장과 동시에 참이 될 수 있다.

"거짓말쟁이"를 결코 믿을 수 없는 자라고 정의한다면, "크레타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다"라는 문장을 에피메니데스처럼 크레타인이 발언했다고 하면, 그 사람의 발언도 믿을 수 없게 되어 크레타인 중에는 거짓말쟁이가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이 된다. 일부 논리학자들은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을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크레타인이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아니다"에서 "크레타인은 정직하다"를 이끌어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 문장이 거짓이라고 간주하면 모순되지 않는 해석이나 분석이 몇 가지 존재한다. 이 단순한 문장 "크레타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다"의 진리값으로 "거짓"을 할당해도 일관되게 역설이 되지 않는 해석이 존재한다. 즉, 정직한 크레타인이 존재한다면 "크레타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다"라는 종류의 문장은 거짓이며, 에피메니데스는 단순히 거짓말을 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어떤 해석에서는 흥미로운 비대칭성이 생긴다. 이 문장이 참이라고 하면 그것이 거짓임이 분명하게 나타나지만, 이 문장이 그 자신을 특히 지칭한다고 해석하지 않으면 (즉, 크레타인들의 말 전반에 대해 말한다고 해석하면), 그것 자체의 진위를 나타내지 않고 우연히 거짓이 될 수도 있다.

일반적인 맥락에서는 이러한 문장이 모든 크레타인이 "항상" 거짓말을 하거나, "그들은 거짓말만 한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크레타인은 항상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해도, 말의 다양한 의미를 고려하면 역설은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존은 항상 ''No''라고 말한다"라고 했을 때, 존이 항상 "''No''"라는 단어밖에 발음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거짓말쟁이도 때로는 진실을 말했으며, 어떤 인물의 "모든 발언"이 거짓이라는 해석은 너무 단순하다. "항상"이라는 말은 "모든 예에서"로 일반적으로 해석되며, "당신이 만나는 크레타인은 모두 거짓말쟁이일 것이다"라고 말할 때의 "거짓말쟁이"는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 사람" 이상의 의미는 없다.

에피메니데스의 말을 역설로 취급하는 경우, 더 어려운 논리 문제인 자기 지칭의 역설, 러셀의 역설, 브라알리-포르티의 역설 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들은 모두 자기 지칭을 특징으로 한다. 실제로,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은 자기 지칭의 역설 (거짓말쟁이의 역설)의 일종으로 취급되며, 때로는 구별되지 않기도 한다. 자기 지칭에 대한 연구는 20세기의 논리학과 수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6. 다른 저자들에 의한 언급

토머스 파울러(1869)는 이 역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는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하지만, 에피메니데스 자신도 크레타인이다. 그러므로 그는 거짓말쟁이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거짓말쟁이라면, 그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크레타인들은 정직하다. 하지만 에피메니데스는 크레타인이므로, 그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고, 크레타인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에피메니데스 자신도 거짓말쟁이며, 그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는 에피메니데스와 크레타인들이 정직하고 부정직하다는 것을 번갈아 가며 증명할 수 있다."[3]

만약 이 진술이 거짓이고 에피메니데스가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한 명의 정직한 크레타인이 존재해야 한다. 이는 에피메니데스가 이 크레타인일 필요가 없으므로 모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즉, 에피메니데스는 적어도 한 명의 정직한 크레타인을 알고 있으면서 이 특정 크레타인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서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라는 거짓 진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술이 거짓이라는 가정으로부터 진술이 참이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진술을 거짓말하는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가 한 거짓 진술로 간주하여 역설을 피할 수 있다.[4] 토마스 파울러 등이 범한 실수는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다"의 부정이 "모든 크레타인이 정직하다" (역설)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부정은 "정직한 크레타인이 존재한다" 또는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는 아니다"이다.

에피메니데스 역설은 에우불리데스의 첫 번째 역설처럼 자기 모순으로 이어지도록 약간 수정될 수 있다. 에피메니데스 문제의 역설적 변형은 거짓말쟁이 역설, 소크라테스 역설, 부랄리-포르티 역설을 포함한 더 어려운 논리적 문제의 범주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들 모두는 에피메니데스와 공통적으로 자기 지칭을 가지고 있다. 에피메니데스 역설은 일반적으로 거짓말쟁이 역설의 변형으로 분류되며, 때로는 둘을 구별하지 않기도 한다. 자기 지칭에 대한 연구는 20세기에 논리학과 수학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끌었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가 진실이 아닌 것은 "모든 크레타인이 정직하다"는 가정 대신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는 아니다"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역설이 아니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가 참된 진술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크레타인이 항상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크레타인들은 종종 진실을 말할 수 있지만, 부정직한 이익을 위해 기만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여전히 모두 거짓말쟁이일 수 있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가 19세기 이후에만 역설로 여겨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이 그 역설을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모든 크레타인은 지속적인 거짓말쟁이'라는 것이 실제로 참이라면, 크레타인에게 정직한지 묻는다면 항상 '예'라는 부정직한 대답을 얻게 될 것이다. 따라서 원래 명제는 역설적이라기보다는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다.

모순에 대한 맥락적 해석도 역설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있다. 원래 문구인 "크레타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 악한 짐승, 게으른 배!"는 본질적인 역설이 아니라 에피메니데스의 크레타인에 대한 의견을 주장한다. 그의 백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은 사람들에 대한 절대적인 진술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사회 문화적 태도에 대한 입장을 주장한다. 그의 시의 맥락에서 이 구절은 특정 신념에 특정한 것이며, 칼리마코스제우스에 대해 그의 시에서 반복하는 맥락이다. 또한 역설에 대한 더 날카로운 답은 단순히 ''거짓말쟁이''가 거짓을 진술하는 것이며, 그 진술에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항상"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절대적인 진술이 아니며, 따라서 에피메니데스가 이 진술로 진정한 모순을 만들었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 크레타인 전체가 항상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하는 크레타인의 논리적 모순은 에피메니데스나 칼리마코스에게는 떠오르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이들은 둘 다 이러한 구절을 사용하여 자신의 요점을 강조했으며, 아마도 모든 크레타인들이 일상적으로 거짓말을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1세기 디도서의 저자는 "그들 자신의 예언자 중 한 사람"이 진실로 말했다고 언급한다. 2세기 후반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논리적 역설의 개념이 문제라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 4세기 초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아카데미 학자 반박''(III.13.29)에서 에피메니데스를 언급하지 않고 거짓말쟁이 역설과 밀접하게 관련된 내용을 다시 말한다.

중세 시대에 거짓말쟁이 역설의 많은 형태가 불가능한 문제라는 제목으로 연구되었지만, 이것들은 에피메니데스와 명시적으로 연관되지 않았다. 1740년에 피에르 베일의 ''역사 비평 사전'' 제2권은 에피메니데스를 이 역설과 명시적으로 연결하지만, 베일은 이 역설을 "궤변"이라고 칭한다.[5]

논리의 맥락에서 에피메니데스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은 W. E. 존슨의 "논리적 미적분"(The Logical Calculus), 《마인드》 (새 시리즈), 1권 2호 (1892년 4월), 235–250쪽에 나타난다. 에피메니데스 역설은 버트런드 러셀의 "유형 이론에 기초한 수학적 논리"(Mathematical Logic as Based on the Theory of Types)에서 명시적으로 나타나며, 이는 《미국 수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Mathematics) 30권 3호 (1908년 7월), 222–262쪽에 실려 있다. 러셀은 그 기사에서 에피메니데스 역설을 부랄리-포르티 역설과 현재 러셀의 역설로 불리는 역설을 포함한 다른 문제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사용했다. 러셀 이후, 에피메니데스 역설은 논리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었다. 이러한 언급의 전형적인 예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Gödel, Escher, Bach)이며, 이는 자기 참조에 대한 논의에서 이 역설에 중요한 자리를 부여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1949)에서 "나는 여전히 특정 여성들이 여성의 상황을 명확히 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에피메니데스가 크레타인의 개념 안에, 모든 크레타인을 거짓말쟁이의 개념 안에 가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궤변이다. 남성과 여성에게 선의 또는 악의를 지시하는 신비로운 본질은 없다"고 썼다.[7]

7. 현대적 의의

"거짓말쟁이"를 결코 믿을 수 없는 자라고 정의한다면, "크레타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다"라는 에피메니데스의 발언은 믿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크레타인 중에는 거짓말쟁이가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부 논리학자들은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을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동일하게 취급했다.[11]

예를 들어, 1869년 토머스 파울러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11]

토머스 파울러영어는 에피메니데스가 '크레타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는데, 에피메니데스 자신도 크레타인이었으므로 그 자신도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거짓말쟁이라면 그의 발언은 진실이 아니게 되고, 결과적으로 크레타인은 정직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에피메니데스도 크레타인이므로 그의 발언은 진실이 되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된다. 이처럼 에피메니데스와 크레타인의 신뢰성에 대한 결론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11]

그러나 "크레타인이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아니다"에서 "크레타인은 정직하다"를 이끌어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 문장이 거짓이라고 가정했을 때, 모순되지 않는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크레타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다"라는 문장이 거짓이라도, 정직한 크레타인이 존재한다면 에피메니데스는 단순히 거짓말을 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어떤 해석에서는 비대칭성이 나타난다. 이 문장이 참이라고 하면 거짓이 되지만, 크레타인들의 말 전반에 대해 말한다고 해석하면, 문장 자체의 진위를 나타내지 않고 우연히 거짓이 될 수도 있다.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라고 해석하는 한, 이 문장과 같은 역설에 대한 논리적 사고는 실패한다. 일반적인 맥락에서 이러한 문장은 모든 크레타인이 "항상"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말만 한다"고 해석되지 않는다. "크레타인은 항상 거짓말쟁이다"라고 해도, 말의 다양한 의미를 고려하면 역설은 생기지 않는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거짓말쟁이도 때로는 진실을 말했으며, 어떤 인물의 "모든 발언"이 거짓이라는 해석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항상"은 "모든 예에서"로 해석되며,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 사람" 이상의 의미는 없다.

에피메니데스의 말을 역설로 취급하는 경우, 자기 지칭의 역설, 러셀의 역설, 브랄리-포르티의 역설 등과 관련된다. 이들은 모두 자기 지칭을 특징으로 한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은 자기 지칭의 역설(거짓말쟁이의 역설)의 일종으로 취급되며, 때로는 구별되지 않기도 한다. 자기 지칭에 대한 연구는 20세기 논리학과 수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참조

[1] 서적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2005
[2] 서적 New History https://topostext.or[...]
[3] 서적 The Elements of Deductive Logic https://archive.org/[...] Clarendon Press 2011-04-01
[4] 웹사이트 wolfram.com http://mathworld.wol[...]
[5] 서적 Dictionnaire Historique et Critique https://books.google[...] 2011-04-01
[6] 간행물 A further note on the Cretans https://archive.org/[...] 2020-04-09
[7] 서적 The Second Sex Jonathan Cape 2009
[8] 성경 Titus 2021-11-23
[9] 성경 Titus 2021-11-23
[10] 서적 Dictionnaire historique et critique https://books.google[...] Chez P. Brunel, P. Humbert, J. Wetstein 2021-11-23
[11] 서적 The Elements of Deductive Logic: Designed Mainly for the Use of Junior Students in the Universities https://books.google[...] Clarendon Press 2021-11-2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