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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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활동한 기독교 신학자이자 알렉산드리아 교리 학교의 교사였다. 그는 이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나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신학을 융합하려는 시도를 통해 기독교 신학 발전에 기여했다. 클레멘스는 삼부작으로 알려진 저서, 『그리스인에게의 권고』, 『훈도자』, 『잡록』을 저술했으며, 로고스-그리스도론, 보편 구원론과 같은 사상을 주장했다. 그는 동방 정교회, 성공회 등에서 성인으로 추앙받았지만,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인으로 공경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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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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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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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 |
존경 받는 곳 | 오리엔탈 정교회 동방 가톨릭교회 성공회 공동체 |
축일 | 12월 4일 (동방 가톨릭교회, 성공회) 12월 5일 (미국 성공회, 성공회) |
칭호 | 교부, 신학자 |
출생 | 기원후 150년경, 아테네, 아카이아, 로마 제국 |
사망 | 기원후 215년경, 예루살렘, 시리아 팔레스티나, 로마 제국 |
주요 저서 | 프로트렙티쿠스 파에다고구스 스트로마타 |
영향 받은 인물 | 스토아 학파 무소니우스 루푸스 필론 피타고라스 플라톤 헤라클레이토스 판타에누스 유스티누스 이레나이오스 타티아누스 켈수스 크세노파네스 플루타르코스 호메로스 |
영향을 준 인물 | 사실상 이후의 모든 기독교 철학과 가톨릭 신학, 베네딕토 16세와 에우세비우스를 포함 |
철학 정보 | |
시대 | 고대 철학 교부 시대 |
지역 | 서양 철학 |
학파/전통 | 중기 플라톤주의 알렉산드리아 학파 |
관심 분야 | 기독교 신학 |
소속 기관 | 알렉산드리아 교리 학교 |
주목할 만한 제자 | 오리게네스와 알렉산더 |
주목할 만한 사상 | 옥좌 타락한 네피림 바르나바 저작 선조들의 림보 불세례 |
생애 정보 | |
억압 날짜 | 기원후 1605년경 |
억압자 | 교황 클레멘스 8세 |
문제 | 포티오스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됨 |
2. 생애
클레멘스의 정확한 출생 연도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략 150년경 아테네 또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교도 부모 밑에서 성장하여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며, 권면에서 그리스 종교와 신비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준다.[6] 젊은 시절 이교의 부패한 도덕성에 환멸을 느낀 그는 그리스, 소아시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7]
180년경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하여 알렉산드리아 교리 학교에서 판타이누스에게 배웠으며,[9] 189년 이전에 알렉산드리아의 율리아노에게서 사제 서품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11] 이후 알렉산드리아 교리 학교에서 가르쳤다. 유세비우스를 비롯한 동시대인들과 후대의 교부들에게 매우 존경받았으며, 제롬은 그를 "가장 박식한 인물"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25]
202~20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알렉산드리아를 떠났으며,[12] 215년경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에 따르면 클레멘스는 아테네에서 태어났지만, 알렉산드리아 출생이라는 전통도 있다.[6] 출생 연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대략 서기 150년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부모는 이교도였으며 클레멘스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권면''에서 그리스 종교와 신비 종교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보여주는데, 이는 그의 가족 종교의 실천에서만 생겨날 수 있는 것이었다.[6]젊은 시절 부패한 도덕성으로 인해 이교를 거부한 그는 그리스, 소아시아, 팔레스타인, 이집트를 여행했다. 클레멘스의 여행은 주로 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에서 그는 아테나고라스로 확인된 이오니아 출신 신학자를 만났고, 동방에서는 타티아노스로 알려진 아시리아인과, 아마도 가이사레아의 테오필루스로 추정되는 유대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7]
그의 저서인 『스트로마테이스』의 기술이나 유려한 그리스어 문체, 그리스 고전에 대한 깊은 지식 등으로 미루어 보아 아테네의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고등 교육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2. 2. 알렉산드리아에서의 활동
판타이노스 사후, 클레멘스는 알렉산드리아 교리 학교(디다스칼레이온)의 교사직을 이어받았다.[62] 카이사레이아의 유세비우스는 저서 『교회사』에서 "오리게네스도 클레멘스에게 배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62]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중에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카파도키아로 도망쳤다고 전해진다.클레멘스가 사제였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유세비우스는 클레멘스가 "장로"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것이 교회 직함인지 단순한 존칭인지 명확하지 않다.
2. 3. 박해와 죽음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중 클레멘스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카파도키아로 피신했다.[62] 202~203년 세베루스 박해 동안 클레멘스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났다.[12] 211년 예루살렘의 알렉산데르는 그를 안티오크 교회에 추천하는 서신을 썼는데,[12] 이는 클레멘스가 당시 카파도키아 또는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의 사망 연도와 장소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3. 사상
클레멘스는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신앙을 조화시키려 노력한 대표적인 교부였다. 그는 플라톤 철학에 특히 정통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 신학을 체계화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로고스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한 "로고스-그리스도론"은 이후 기독교 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63]
클레멘스는 돈의 부패 효과와 부자에게 복종하는 그릇된 태도에 대해 비판하며, 마가복음 10장 25절의 함의를 논했다.[11] 그는 부자들이 영생의 약속에 설득되지 않거나 물질적 부와 영적 부의 소유 사이의 갈등을 알지 못하며, 좋은 기독교인은 복음을 통해 그들을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11] 예수의 말씀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진정한 구원의 길을 드러내는 초월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질적 부의 소유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며, 자선적으로 사용되는 한, 기독교인은 부가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적인 부보다는 죄스러운 열정을 버리는 것이 더 중요하며, 부자가 구원받으려면 두 계명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보았다. 물질적 부는 하나님께 아무 가치가 없지만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클레멘스는 또한 "가설집", "테오도토의 발췌", "예언자들의 선집", "그림자"와 같은 비밀 전통의 네 가지 종말론적 작품을 남겼는데, 이들은 단편적으로만 존재한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천상의 위계를 다루는데, 우주는 하나님의 얼굴이 이끌고 그 아래에는 일곱 명의 "원시생물", 대천사, 천사, 인간이 따르는 복잡한 체계로 묘사된다. 장 다니엘루에 따르면, 이 체계는 사도들이 따랐던 유대-기독교적 비전에서 유래된 것으로, 신뢰할 수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만 구두로 전달되었다. 클레멘스는 "원시생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번째 존재이자 대천사에게 제사장 역할을 하는 존재로 보았으며, 그들을 "주의 눈"이자 보좌로 식별했다. 그는 천상의 형태를 지상적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특징지으면서, 각 계층의 구성원들이 하위 계층에게만 무형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24] "예언자들의 선집"에 따르면, 매 천 년마다 각 계층의 모든 구성원은 한 단계씩 올라가며, 인간은 천사가 될 수 있다. "원시생물"도 승격될 수 있지만, 위계에서의 그들의 새로운 위치는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다.[24]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는 클레멘스의 분실된 작품 목록("개요", "유대교 옹호" 등)이 언급되어 있다. 또한 클레멘스 자신의 저작물에서 언급된 "결혼에 관하여", "예언에 관하여" 등의 작품도 있지만, 다른 작가들에 의해 증명된 것은 거의 없으며, 그가 쓰려고 의도했던 작품과 완성된 작품을 구분하기 어렵다.
모턴 스미스는 마르 사바 서한을 클레멘스의 것으로 여겼지만, 오늘날에도 진위 여부에 대한 논쟁이 남아 있다. 만약 진본이라면, 이 서한은 사도 마가가 로마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와서 더 영적인 복음을 쓰고 죽을 때 알렉산드리아 교회에 맡겼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마가를 알렉산드리아와 연결하는 유세비우스의 전통을 한 세기 앞당긴다.
3. 1. 그리스 철학과의 관계
클레멘스는 철학이 기독교를 널리 받아들이기 전 그리스 세계의 준비 학문이었다고 보았으며, 종종 그리스 철학의 통찰력과 성경의 가르침을 조화시키려 했다. 그는 철학을 "참된 존재에 대한 갈망과 그것으로 이끄는 학문"으로 정의했다.[36] 클레멘스는 "기독교 철학 신학의 위대한 전통이 될 것의 창시자"로 묘사되었다.[37]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그리스 철학과 문학이 기독교로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 존재했으며, 그 사상적 유산을 기독교로 계승하려 했다. 이는 플라톤과 그리스 사상에 정통했던 클레멘스 특유의 발상이었으며, 특히 로고스 = 그리스도라고 한 "로고스-그리스도론"은 그리스 사상과 기독교 신학을 결합하여 이후 기독교 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유스티누스도 로고스-그리스도론을 전개했지만, 두 사람의 큰 차이점은 유스티누스가 기독교의 진리성을 이교도에게 보여주기 위해 로고스론을 사용한 데 반해, 클레멘스는 기독교도들이 철학이 가진 진리성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 로고스론을 사용했다는 것이다.[63]
그의 저작 속에는 클레멘스의 박학함이 드러나 있다. 또한 저작의 특징으로, 구약성서, 신약성서의 인용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철학자, 시인, 극작가, 사가(史家)의 인용이 있다.[64] 또한, 그리스 철학은 히브리인의 서적에서 교설을 표절했다고 언급하며, 표절한 교설을 논하기도 한다.[64]
3. 2. 로고스-그리스도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그리스 철학과 문학이 기독교로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 존재했으며, 그 사상적 유산을 기독교로 계승하려 했다는 점에서 특징을 보인다. 이는 플라톤과 그리스 사상에 정통했던 클레멘스 특유의 발상이었다. 특히 로고스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한 "로고스-그리스도론"은 그리스 사상과 기독교 신학을 결합하여 이후 기독교 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유스티누스도 로고스-그리스도론을 전개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유스티누스는 기독교의 진리성을 이교도에게 보여주기 위해 로고스론을 사용한 반면, 클레멘스는 기독교인들이 철학이 가진 진리성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 로고스론을 사용했다는 점이다.[63]
3. 3. 영지주의 비판
클레멘스는 믿음이 구원의 기초이며, 영적이고 신비로운 지식(그노시스)의 기초라고 가르쳤다. 그는 (반대했던) 영지주의자들로부터 '그노시스'라는 단어를 차용했지만, 이를 더욱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했다.[34] 그는 두 종류의 기독교인, 즉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사는 '피스티크' 기독교인과, 복음의 수준에서 살아가며 규율과 사랑으로 응답하는 '그노시스' 기독교인을 구분했다. 클레멘스의 '그노시스'에 대한 관점은 그가 죽은 후 이집트에서 시작된 기독교 수도원 운동의 선구자로 여겨질 수 있다.[35]《스트로마테이스》 제5권에는 초기 영지주의 교사 바실리데스에 대한 반론이 포함되어 있다. 제7권에는 이단에 대한 반론이 있으며, "그들은 경건과는 거리가 멀고, 신의 계율, 즉 성령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고 적고 있다.
3. 4. 보편구원론
클레멘스는 최초의 기독교 보편주의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39] 그는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구원을 믿는 보편구원론을 옹호했는데, 그의 제자인 오리게네스만큼 체계적이지는 않았다.[40] 클레멘스는 신의 형벌이 보복적이거나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교정적이고 치료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41] "그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베푸신다."[42] "그는 실제로 모든 사람을 보편적으로 구원하신다. 어떤 사람은 형벌로 개종시키시고, 다른 사람은 존경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하시니,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존재들, 즉 천사들과 인간,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43] "하나님의 형벌은 구원적이고 징계적이며, 회개로 이어진다. 죄인의 죽음보다 회개를 택하신다."[44]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벌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겠다. 형벌은 벌받는 자에게 유익하고 이롭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집스러운 대상에 대한 교정이다."[45] "모든 것은 일반적으로나 특별히나 우주의 주님에 의해 우주의 구원을 목적으로 배열되어 있다."[46]4. 주요 저작
클레멘스의 주요 저작은 삼부작으로 알려진 『프로트렙티코스(그리스인에게의 권고)』, 『파이다고고스(훈도자)』, 『스트로마테이스(잡록)』이다. 이 외에도 『테오도토스의 발췌』[1], 『구원받는 부자는 누구인가』[2] 등이 현존한다.
- 삼부작
- 프로트렙티코스(그리스인에게의 권고) (195년경)
- 파이다고고스(훈도자) (198년경)
- 스트로마테이스(잡록) (198년경~203년경)
4. 1. 삼부작
- '''경고'' (''권고'') (195년경 저술[13])
Προτρεπτικὸς πρὸς Ἕλληνας|프로트렙티코스 프로스 헬레나스el("그리스인에게의 권고")라는 제목처럼, 그리스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받아들이라고 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클레멘스는 이교 신화와 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며, 종교를 인류학적 현상으로 설명한다.[14] 그는 그리스 종교의 역사를 7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1. 인간이 태양, 달 등 천체를 신으로 믿음.
2. 데메테르와 디오니소스 숭배와 같은 농업 생산물 숭배.
3. 복수, 사랑,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신격화.
4.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가 신들의 수를 열거, 신통기에서 12명의 신 제시.
5. 아스클레피오스와 헤라클레스와 같은 사람들을 신으로 선언.
우상 숭배에 대해 논하며, 원시 종교의 대상은 모양 없는 나무와 돌이었고, 자연물을 조각하면서 우상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15] 플라톤처럼 모든 형태의 시각 예술은 환상이며 "치명적인 장난감"이라고 비판한다.[2]
클레멘스는 그리스 이교의 신들이 거짓되고 도덕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며, 비밀 종교의 의례와 신비주의를 공격한다.[2] 디오니소스 숭배자들이 가족 중심 의식(예: 의식에서 아이 장난감 사용)을 벌이는 것을 조롱한다.[2] 이교 신들이 인간을 기반으로 한다고도 하고, 인간 혐오적인 악마라고도 하며 고전 자료를 인용해 이를 뒷받침한다.[2] 에우헤메로스 등 합리주의 철학자들은 이교의 결점을 간파했다는 이유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무명론적 신 관점을 제시한 플라톤을 가장 칭찬하며 기독교를 예견한다고 본다.[2]
오르피즘의 인물 오르페우스는 ''Protrepticus'' 전체에서 중요하며, 클레멘스는 이교 미신을 상징하는 오르페우스의 노래와 그리스도의 신성한 로고스를 대비시킨다.[2] 기독교로 개종해야만 보편적 진리인 로고스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
- '''교사'' (''지도자'') (198년경 저술[13])
Paedagogus|파이다고고스el("교사")는 모든 인간의 교사인 그리스도를 지칭하며, 그리스도인을 아이에 비유한다.[2] 클레멘스는 기독교인이 신의 사랑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려 한다.[2] 플라톤의 국가 4:441을 따라 삶을 성품, 행동, 열정으로 나누고, ''Protrepticus''에서 성품을 다룬 후, ''Paedagogus''에서는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도덕적 행동과 열정 통제를 가르치는 역할에 대해 성찰한다.[2] 클레멘스 작품은 스토아 철학과 이교 문학을 참고하며, 호메로스는 60번 이상 인용된다.[2]
그리스도는 인간처럼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지만,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모습은 그리스도만 공유한다.[2] 그리스도는 무죄하고 무정념하며,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구원을 얻는다. 죄는 비자발적이고 비합리적(άλογονgrc)이며, 로고스의 지혜로만 제거된다.[2] 죄로부터의 하나님의 인도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 표현이다. λόγοςgrc와 άλογονgrc의 말장난은 클레멘스 저작의 특징이며, 단어 관계가 대상 관계를 반영한다는 에피쿠로스의 믿음에 뿌리를 둔다.[2]
클레멘스는 구원이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확장된다는 점을 근거로 성 평등을 주장한다.[2] 그리스도가 여성도 남성도 아니며, 아버지 하나님은 여성적, 남성적 측면을 모두 가진다고 제안한다. 성찬은 아버지 가슴(그리스도)에서 나오는 젖으로 묘사된다.[16] 교회의 지도력에서 여성의 적극적 역할을 지지하며, 성경과 고전 그리스 인물 포함 영감을 주는 여성 목록을 제공한다. 영지주의 영향을 받았다는 제안이 있었지만,[16] 클레멘스는 믿음이 비밀스러운 지식(γνῶσιςgrc)이 아니라 구원에 필요하다고 영지주의자들에게 반박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을 알게 된다.[2]
두 번째 책에서 클레멘스는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실질적 규칙을 제시한다. 과식을 반대하고 좋은 식사 예절을 지지한다.[17] 음주를 금지하지만, 디모데전서 5:23에 따라 적당한 음주는 권장한다.[17] 기독교 일신교의 단순성에 따라 단순한 삶을 주장한다. 화려한 가구와 의복을 비난하고, 지나친 음악과 향수를 반대하지만, 세속적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을 믿지 않으며, 기독교인은 유쾌함과 파티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기쁨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 꽃을 꺾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물을 죽이는 것이고, 화환이 가시면류관을 닮았다는 이유로 화환 착용을 반대한다.[2]
클레멘스는 성에 대해 자세히 다루며, 난잡함과 성적 금욕 모두 부자연스럽고, 인간 성욕의 주요 목표는 생식이라고 주장한다.[2] 간음, 임신한 여성과의 성관계, 첩 생활, 동성애, 매춘은 합법적 자녀 출산에 기여하지 않으므로 피해야 한다.[2]
세 번째 책에서 클레멘스는 신체보다 영혼을 가꾸어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화장품을 비난한다.[2] 남성의 머리 염색과 제모를 여성스러운 것으로 반대한다. 부도덕한 사람에게 타락하지 않도록 친구를 신중히 선택하라고 조언하며, 물질적 부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영적 부로부터 주의를 산만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2] 이 작품은 클레멘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 선택과 기도에 이은 찬송가 가사로 마무리된다.[2]
Stromateis|스트로마테이스el는 내용이 잡다하다. 3부작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논쟁의 대상이다. 클레멘스는 ''파이다고구스''의 실질적 지침을 신학적으로 보완하는 ''디다스칼루스''를 쓰려 했다.[2] ''스트로마타''는 다른 작품보다 덜 체계적이고 정돈되어 있으며, 앙드레 메아트는 제한적이고 난해한 독자를 대상으로 했다고 추정한다.[2] 유세비우스는 8권에 대해 썼지만, 확실히 남아 있는 것은 7권뿐이다. 포티우스는 7권 정경 필사본에 다른 텍스트가 추가된 것을 발견했고, 다니엘 하인시우스는 원래 8권이 분실되었고, 8권 추정 텍스트를 ''휘포튜포세스'' 파편으로 식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2]
첫 번째 책은 그리스 철학이 유대교에서 율법 기능과 유사하게 그리스인들에게 전단계 학습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2] 그리스 문화와 기술 기원에 대해 논하며, 그리스 세계 주요 인물 대부분 이방인이었고, 유대 문화가 그리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2] 모세 우선성을 증명하기 위해 세계 연대기를 확장, 그리스도 탄생을 기원전 4–2년 4월 25일 또는 5월, 세계 창조를 기원전 5592년으로 기록한다. 언어 기원과 플라톤에 대한 유대교 영향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끝맺는다.[2]
두 번째 책은 믿음과 철학적 논쟁의 역할에 할애된다. 클레멘스는 둘 다 중요하지만, 하느님을 경외함이 가장 중요하며, 믿음을 통해 신성한 지혜를 얻는다고 주장한다.[2] 성경은 로고스를 통해 인간 이성으로 보완되는 참된 원시 철학이다.[2] 믿음은 자발적이며, 믿기로 결정하는 것은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중요한 단계이다.[2] 로고스 진리에 대한 지식에 기초하기 때문에 비합리적이지 않다. 모든 지식은 믿음에서 비롯되는데, 제일 원리는 체계 밖에서 증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2]
세 번째 책은 금욕주의를 다룬다. ''파이다고구스''에서 다룬 결혼에 대해 논하며, 결혼에 대한 영지주의 반대를 거부한다. 여성에게 관심 없는 남자만 독신으로 남아야 하며, 성행위는 결혼 안에서 출산 목적으로 행해질 경우 긍정적이라고 주장한다.[2] 아담과 이브는 서로에 대한 욕망에 굴복, 정해진 시간 전 성관계로 타락했다고 주장한다.[2] 기독교인이 금욕적 삶을 위해 가족을 버려야 한다는 루카에서 비롯된 생각에 반대하며,[18] 예수가 십계명 중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율을 거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9] 금욕주의는 동기가 기독교적인 경우에만 보상받으며, 체육주의자 같은 비기독교인의 금욕주의는 무의미하다고 결론짓는다.[2]
네 번째 책은 작품의 무질서함을 설명하고, 나머지 3~4권 목표를 간략히 설명한다.[2] 순교에 초점을 맞추며, 모든 선한 기독교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지만, 순교자 죽음을 적극 추구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하느님 생명 선물에 대한 존경심 부족하다고 주장한다.[2] 믿는 기독교인이 죽음 방식에 따라 순교자가 될 수 있는지, 아니면 순교가 특별한 삶을 산 사람에게만 해당되는지에 대해 양가적 태도를 보인다.[2] 마르키온파는 아버지 하느님 신성을 믿지 않아 순교자가 될 수 없으며, 고통은 헛되다.[2] 신학적 인식론 주제로 잠시 벗어나, 아버지 하느님 존재를 경험적으로 시험할 수 없으며, 로고스는 분석 불가능한 계시적 의미를 갖지만, 그리스도는 감각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시작이 없으며, 보편적 제일 원리이다.[2]
다섯 번째 책은 믿음으로 돌아간다. 진실, 정의, 선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만 볼 수 있고,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접근하는 방법이다.[2] 도덕적 결점 교정 후 하느님 지식을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20] 순교는 믿음 고백뿐 아니라 선행을 통해 그리스도 믿음을 실천해야 성취된다는 이전 주장에 비추어 볼 때 유사하다. 하느님은 물질 초월, 유물론자는 하느님 알 수 없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육화, 영적 이해가 중요하며 육체적 이해는 중요하지 않다.[20]
여섯 번째 책 시작 부분에서 클레멘스는 그리스 시인 작품이 성경 예언서에서 파생되었음을 증명하려 한다. 그리스인들이 표절에 기울었다는 입장 강화, 기원전 3세기 익명 저작 아레타데스의 ''표절에 관하여''에서 보고된 고전 그리스 작가들의 부적절 차용 사례를 인용한다.[2] 죄와 지옥 주제로 돌아가, 아담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완전 성취 잠재력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 광범위한 보편주의 교리 옹호, 그리스도 구원 약속은 지옥에 정죄된 자들에게조차 유효하다고 주장한다.[2]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책은 자신의 영지주의 버전(‘기독교 영지주의자’)[21]이 참된 종교이며, 참된 기독교인 모범이 되어야 하고, "거룩하고 경건하며""그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참된 하느님을 숭배한다"라고 주장한다.[22] 그리스도와 참된 기독교인 본성을 설명하며, 아버지와 아들 모두와 유사해지려 노력한다. 대부분 고대 종교 의인화를 비판하며, 크세노파네스의 아프리카, 트라키아, 이집트 신들에 대한 묘사를 인용한다.[2] 그리스 신들도 아레스는 철,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처럼 물질 의인화에서 기원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2] 기도와 사랑, 지식 관계에 대해 논한다. 고린도전서 13:8은 참된 기독교인을 아는 자로 특징짓는 것과 모순되지만, 클레멘스에게 지식은 창조주에 대한 경외심으로 표현되는 보편적 사랑에 포섭될 때만 사라진다.[2] 소크라테스처럼 악덕은 의도가 아닌 무지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인은 "하느님 포도밭 일꾼"으로, 자신과 이웃 구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작품은 교회 내 동시대 분열과 이단에 대한 긴 구절로 끝맺는다.[2]
4. 2. 기타 저작
5. 신학적 유산
클레멘스는 기독교 신학, 특히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최초의 기독교 학자",[25] "기독교 교리의 최초의 체계적인 스승", "철학적 기독교의 최초의 위대한 스승" 등으로 불린다. 그의 사상은 오리게네스와 같은 후대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 신학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세비우스는 클레멘스를 "기독교 철학의 비할 데 없는 스승"이라고 칭했으며, 제롬은 "가장 박식한 인물"이라고 칭송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은 클레멘스를 "뛰어나게 박식하고 능숙하며, 드물게 달성된 정확성으로 그리스 학문의 모든 깊이를 탐구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25]
클레멘스는 그리스 철학과 문학이 기독교로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 존재했으며, 그 사상적 유산을 기독교로 계승하려 했다. 이는 플라톤과 그리스 사상에 정통했던 클레멘스 특유의 발상이었으며, 특히 로고스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한 "로고스-그리스도론"은 그리스 사상과 기독교 신학을 결합하여 이후 기독교 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유스티누스도 로고스-그리스도론을 전개했지만, 클레멘스는 기독교도들이 철학이 가진 진리성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 로고스론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63]
클레멘스의 저작은 그의 박학함을 보여주며, 구약성서, 신약성서뿐만 아니라 그리스 철학자, 시인, 극작가, 역사가들의 인용으로 가득 차 있다.[64] 그는 그리스 철학이 히브리인의 서적에서 교설을 표절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64]
클레멘스는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구원을 믿는 기독교 보편주의를 옹호했다.[39] 그는 신성한 형벌이 교정적이고 치료적인 것이라고 믿었으며,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썼다.[41]
몇몇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포티우스 1세는 클레멘스의 신학, 특히 ''가상론집''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26] 포티우스는 클레멘트의 사상 중 일부가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에 모순되며, 우주적 순환에 대한 믿음은 성경적 기원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한 요한복음 1장과는 달리 그리스도가 로고스로서 창조되었다는 믿음과 가현설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를 문제 삼았다.[26] 그러나 클레멘스의 현존하는 저작은 대부분 정통 기독교 신학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포티우스의 비판이 클레멘스의 실제 신념을 정확하게 반영하는지는 불분명하다.[26]
클레멘스는 17세기까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받았으나, 교황 클레멘스 8세가 로마 순교록을 개정하면서 그의 이름은 로마 일반 전례력에서 삭제되었다. 베네딕토 14세는 클레멘스의 삶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교회에서 공적인 예배를 받은 적이 없으며, 그의 일부 교리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이 결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동방 기독교에서는 클레멘스를 성인으로 여기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27][28][29] 콥트 기독교 역시 클레멘스를 성인으로 공경한다.[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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