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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쇼이치 (언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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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와타나베 쇼이치는 일본의 언어학자, 평론가, 저술가였다. 조치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어학을 전공하며 역사, 정치, 사회 평론을 발표했고 일본 근현대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조치 대학 교수, 명예 교수를 역임했으며, 여러 재단의 이사로도 활동했다. 그는 일본의 침략을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등 역사 수정주의적 입장을 보였으며,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는 등 보수적인 주장을 펼쳤다. 2017년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지적인 생활의 방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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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쇼이치 (언어학자)
기본 정보
쇼이치 와타나베
쇼이치 와타나베
본명오시마 준이치
출생1930년 9월 15일
출생지일본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시
사망2017년 4월 17일
사망지일본 도쿄도 스기나미구
직업평론가, 영어학자
배우자와타나베 미치코 (피아니스트)
자녀장녀: 사토 마코 (오르가니스트)
장남: 와타나베 겐이치 (첼리스트)
차남: 와타나베 모토이치 (바이올리니스트)
학력조치 대학
뮌스터 대학교 (베스트팔렌 빌헬름 대학교) 대학원
연구 분야영어 문법사
주요 작품『영문법사』
『영어학사』
『영국 국학사』
『지적 생활의 방법』
학문 경력
근무지조치 대학
추가 정보
로마자 표기Watanabe Shōichi

2. 생애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구제 야마가타현립 쓰루오카중학교 재학 중 학제 개혁이 실시되어, 1949년에 야마가타현립 쓰루오카 제1고등학교(현 야마가타현립 쓰루오카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조치 대학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베스트팔렌 빌헬름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0년 조치 대학에서 교직을 맡았으며, 1994년 뮌스터 대학교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에는 조치 대학의 명예 교수가 되었다. 전공인 영어학 외에도 역사, 정치, 사회 평론을 발표했으며, 일본 근현대사에 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였다.[11][12][13]

보수주의적 여론 주도자이자 역사 수정주의 단체인 일본회의와 연관되어 있었다.[2] 1976년에 출간된 『지적 생활의 방법』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17]

2017년 4월 17일 도쿄도 스기나미구의 한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4]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아버지가 책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아 소년구락부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82] 또한,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두 언니에게 과보호를 받으며 자라 옷의 단추도 혼자서는 채울 수 없었다고 한다.[84] 그는 고서 수집가로도 알려져 있다.

2. 1. 출생과 학창 시절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시에서 태어났다. 조치 대학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후, 독일 베스트팔렌 빌헬름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11]

1955년, 조치 대학 대학원 서양 문화 연구과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같은 해 독일 베스트팔렌 빌헬름 대학교(통칭 뮌스터 대학교)로 유학했다. 1958년, 뮌스터 대학교에서 Dr.Phil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지저스 칼리지 위탁 연구생이 되었다.[12]

2. 2. 학문 활동 및 교수 생활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시에서 태어나 조치 대학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베스트팔렌 빌헬름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조치 대학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뮌스터 대학교에서 1958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옥스퍼드 대학교 예수 칼리지에서 연구생이 되었다.[11]

1960년 조치 대학에서 교직을 맡았고, 조치 대학 영문과 강사, 조교수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 조교수 시절,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에 의해 도미하여, 4개의 주의 6개 대학에서 반 학기씩 강의를 했다.[12] 1994년 뮌스터 대학교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조치 대학의 명예 교수가 되었다.[13]

그 외 주요 직책으로는 인도 친선 협회 이사장, 일본 재단 이사, 그레이트브리튼 사사카와 재단(영국 소재 일본 재단) 이사, 노마 교육 재단 이사, 이온 그룹 환경 재단 평의원, 엔젤 재단 이사, "일본 교육 재생 기구" 고문, "도덕 교육을 추진하는 유식자의 회" 대표 간사 등이 있다.[14]

2. 3. 평론 활동 및 사회 참여

보수주의적 여론 주도자이자 역사 수정주의 단체인 일본회의와 연관된 와타나베는[2] 난징 대학살을 역사적 망상으로 일축했다.[3] 그는 알려진 살상 행위가 일반 병사들이 게릴라 전투원들을 상대로 전쟁에서 행한 통상적인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와타나베는 전쟁에서의 대량 학살 개념은 민간인 학살에 한정되어야 하며, 희생자 수가 40~50명을 넘는 경우에 해당하고, 불규칙한 반군에 대한 대규모 학살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4] 와타나베의 관점은 1948년 도쿄 전범 재판(극동 국제 군사 재판) 전에 일본 장군들이 취했던 입장과 매우 유사하다.

일본 역사 교과서 논쟁과 관련하여, 와타나베는 이에나가 사부로의 소송 이후 일본 주류 언론(''마이니치 신문'', ''아사히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논설위원들의 일반적인 합의에 반대하고, 일본 초·중등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 내용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일본 교육부의 권한을 옹호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5]

와타나베는 1937년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으로 명명된 일본의 중국 본토 전면전으로 이어진 결정적인 사건이 일본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책략으로 읽혀야 하며, 전후 일본 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역사적 내용이 오늘날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내용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고 보았다.[6]

와타나베는 주로 일본 내에서 논란의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도 외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일본의 "인종 순수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하며 외국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7] 그의 다작 저술에는 "일본 정신"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이 포함되어 있다.

하타 이쿠히코는 와타나베의 독일 참모본부에 관한 저서[8]가 독일 자료의 전면적인 표절로 특징지어진다고 주장했다.[9]

영어학 외에도 역사론, 정치·사회 평론을 저술했다. 1976년에 출간된 『지적 생활의 방법』은 내면의 충실을 추구하는 생활의 다양한 힌트와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17]。역사학을 전공한 적은 없으며, "단지 역사를 좋아해 온 인간"이라고 자칭한다[18]

정치·역사에 관한 평론은 보수 성향의 오피니언지인 『정론』이나 『제군!』, 『WiLL』, 『voice』, 『치치』 등 보수파에 가까운 매체에 기고하는 경우가 많다.

만년에는 영혼의 존재를 긍정하는 발언을 하는 등, 스피리추얼리즘에 관한 저서를 출판했다[19]

2. 4. 사망

2017년 4월 17일, 와타나베 쇼이치는 심부전으로 도쿄도 스기나미구의 한 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14]

3. 주요 주장 및 논란

와타나베 쇼이치는 다양한 분야에서 논쟁적인 주장을 펼쳤다. 주요 논란은 다음과 같다.


  • 중일 전쟁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 중일 전쟁은 중국과 미국의 음모에 일본이 휘말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일본의 침략을 부정했다.[2]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일본의 책임을 완전히 부정하며, 국가에 의한 강제나 강제 연행은 없었고 날조된 것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했다.[25] 일본회의와 관련된 와타나베는 난징 대학살을 역사적 망상으로 일축하고, 알려진 살상 행위는 일반 병사들이 게릴라 전투원들을 상대로 전쟁에서 행한 통상적인 보복이라고 주장했다.[3] 그는 전쟁에서의 대량 학살 개념은 민간인 학살에 한정되어야 하며, 희생자 수가 40~50명을 넘는 경우에 해당하며, 불규칙한 반군에 대한 대규모 학살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4] 2007년 미국 하원의 대일 비난 결의안(미국 하원 121호 결의안)에 대해 항의서에 찬동자 중 한 명으로 서명했다.[26]

  • 일본 역사 교과서 논쟁: 이에나가 사부로의 소송 이후, 일본 주류 언론(''마이니치 신문'', ''아사히 신문'') 논설위원들의 일반적인 합의에 반대하고, 일본 초·중등학교 교과서 내용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교육부의 권한을 옹호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5]

  • 노구교 사건: 1937년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이 중국 공산당의 책략으로 읽혀야 하며, 전후 일본 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역사적 내용이 오늘날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내용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고 보았다.[6]

  • 일본의 "인종 순수성": 일본의 "인종 순수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7]

  • 원자력 발전: 원자력 발전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그 입장을 더욱 분명히 했다. "적절한 방사선 피폭은 건강을 증진시킨다."[31]라는 연구로부터, 전환 역치는 "아마 시간당 50밀리시버트와 시간당 20밀리시버트 사이에 있을 것이다."[32]라고 말했다. 와타나베는 ICRP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후쿠시마현의 소문 피해 근절을 호소하고 있다.[37]

  • 기타 논쟁:
  • 오키나와 전투의 집단 자결 문제에 대해 "실제로는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던 오키나와의 사람들이 복귀 후 좌익 미디어에 선동되어, 역사로 시끄럽게 하면 돈이 나온다고 생각해 타락한 결과다."라고 말했다.[27]
  • 태평양 전쟁에 관한 더글러스 맥아더의 연방 의회 증언에 대해, 고보리 게이이치로 등과 함께 "일본은 자위 전쟁을 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28]
  • 난징 대학살에 대한 주장의 관계에서, 현대사학자 하타 이쿠히코를 비판했다.
  • 제1차 교과서 문제가 오보였다는 입장에서, 아사히 신문이나 마이니치 신문과 격렬하게 대립했다.[70]
  • 히틀러무솔리니, 2·26 사건의 청년 장교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23][24]
  • 전후 "반일적 좌익"의 기원을 공직 추방 등으로 이익을 얻은 "패전 이득자" 및 "코리아계" 출신에게서 찾으며, 그들이 주요 대학, 아사히 신문 등에 자리하면서 전후 교육계, 언론계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다.[29]
  • 만주에 미국을 관여시키지 않은 것은 실패였으며, 현재의 대중 외교에도 미국을 관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30]
  • 황위 계승 문제에 관해서는 남계주의자 입장을 취했다.
  •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미야케 히사유키, 스기야마 고이치 등 보수계 저명인사들과 함께 "아베 신조 총리대신을 요구하는 민간인 유지의 모임"을 발족, 아베 신조를 지지했다.[38]
  • 표절 논란: 하타 이쿠히코는 와타나베의 독일 참모본부에 관한 저서[8]가 독일 자료의 전면적인 표절로 특징지어진다고 주장했다.[9]

3. 1. 역사 수정주의

와타나베 쇼이치는 중일 전쟁이 중국과 미국의 음모에 일본이 휘말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일본의 침략을 부정했다.[2] 또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일본의 책임을 완전히 부정했다.[26]

보수주의적 여론 주도자이자 역사 수정주의 단체인 일본회의와 관련된 와타나베는[2] 난징 대학살을 역사적 망상으로 일축했다.[3] 그는 전쟁에서 대량 학살은 민간인 학살에 한정되어야 하며, 희생자 수가 40~50명을 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4]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에 의한 강제나 강제 연행은 없었고 날조된 것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25] 2007년 미국 하원의 대일 비난 결의안(미국 하원 121호 결의안)에 대해 항의서에 찬동자 중 한 명으로 서명했다.[26]

일본 역사 교과서 논쟁과 관련하여, 와타나베는 이에나가 사부로의 일본 교육부 소송 이후, 일본 주류 언론에 반대하고 일본 초·중등학교 교과서 내용에 교육부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옹호했다.[5]

와타나베는 1937년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이 중국 공산당의 책략이며, 전후 일본 학교 교과서보다 전쟁 전 역사관이 더 신뢰할 만하다고 보았다.[6] 노구교 사건은 중국 공산당의 음모이며, 전전 학교에서 배운 역사관이 더 옳았다고 주장했다.[20]

오키나와 전투의 집단 자결 문제에 대해 "실제로는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던 오키나와 사람들이 복귀 후 좌익 미디어에 선동되어, 역사로 시끄럽게 하면 돈이 나온다고 생각해 타락한 결과"라고 말했다.[27]

태평양 전쟁에 관한 더글러스 맥아더의 연방 의회 증언에 대해, 고보리 게이이치로 등과 함께 "일본은 자위 전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28]

난징 대학살에 대한 주장과 관련하여, 현대사학자 하타 이쿠히코를 비판했다.[60]

3. 2. 기타 주장

와타나베 쇼이치는 중일 전쟁이 중국과 미국의 음모에 일본이 휘말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일본의 침략을 부정했다.[17] 또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일본의 책임을 완전히 부정했다.[25] 그는 영어학 외에도 역사, 정치, 사회 평론을 저술했다.[17] 역사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를 "단지 역사를 좋아해 온 인간"이라고 칭했다.[18] 그의 정치·역사 평론은 주로 정론, 제군!, WiLL, voice, 치치 등 보수 성향 매체에 기고되었다.

만년에는 영혼의 존재를 긍정하며 스피리추얼리즘 관련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19]

  •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초등학교 영어 교육에는 반대했다.
  • 나쓰메 소세키의 영국 유학에 주목하며, 당시 소세키의 영어 실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 노구교 사건은 중국 공산당의 음모이며, 전전 학교에서 배운 역사관이 더 옳았다고 주장했다.[20]
  • 난징 대학살에 대해서는 "게릴라의 포로 등을 잔혹하게 살해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살해 사실은 인정했지만,[21] "게릴라는 일반 시민을 가장한 변의병이며, (...) 학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가 일반 시민이 된 경우이며, 그 피해자는 약 40명에서 50명이다. 따라서 조직적인 학살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22]
  • 히틀러무솔리니, 2·26 사건의 청년 장교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23][24]
  •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요시다 세이지나 요시미 요시아키 관련 보도, 일본 변호사의 일본 정부 소송, 일본 정부의 안이한 사죄 등이 겹쳐 소동이 된 것이며, 국가에 의한 강제 연행은 없었고 날조된 것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했다.[25] 미국 하원의 대일 비난 결의안(미국 하원 121호 결의안)에 대한 항의서에 찬동자 중 한 명으로 서명했다.[26]
  • 오키나와 전투의 집단 자결 문제에 대해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일본군에 협력했던 오키나와의 사람들이 (...) 역사로 시끄럽게 하면 돈이 나온다고 생각해 타락한 결과"라고 말했다.[27]
  • 태평양 전쟁에 관한 더글러스 맥아더의 연방 의회 증언에 대해, 고보리 게이이치로 등과 함께 "일본은 자위 전쟁을 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28]
  • 전후 "반일적 좌익"의 기원을 공직 추방 등으로 이익을 얻은 "패전 이득자" 및 "코리아계" 출신에게서 찾으며, 그들이 주요 대학, 아사히 신문 등에 자리하면서 전후 교육계, 언론계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다.[29]
  • 만주에 미국을 관여시키지 않은 것은 실패였으며, 현재의 대중 외교에도 미국을 관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30]
  • 원자력 발전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그 입장을 더욱 분명히 했다. "적절한 방사선 피폭은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연구를 바탕으로 전환 역치를 추정했다.[31][32] 토마스 러키 박사, 웨이드 앨리슨 등의 주장을 근거로 ICRP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후쿠시마현의 소문 피해 근절을 호소했다.[37]
  • 황위 계승 문제에 대해서는 남계주의자 입장을 취했다.
  •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미야케 히사유키, 스기야마 고이치 등 보수계 저명인사들과 함께 "아베 신조 총리대신을 요구하는 민간인 유지의 모임"을 발족, 아베 신조를 지지했다.[38]
  • 참의원 의원 히라이즈미 와타루와의 영어 교육 논쟁, 오노 스스무와의 학문적 논쟁, 하타 이쿠히코와의 난징 대학살 관련 논쟁, 오오니시 교진과의 혈우병 관련 논쟁,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과의 제1차 교과서 문제 관련 대립, 궁내청과의 미치코 황후 관련 발언 논란, 다치바나 다카시와의 록히드 사건 재판 관련 논쟁, 가치 노부유키, 우노 세이이치와의 '중국' 호칭 관련 논쟁 등 다양한 논쟁을 벌였다.

3. 3. 논쟁

와타나베 쇼이치는 중일 전쟁이 중국과 미국의 음모에 의해 일본이 휘말린 것이라 주장하며 일본의 침략을 부정했다.[2]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책임을 완전히 부정했다.[25] 일본회의와 관련된 와타나베는 난징 대학살을 역사적 망상으로 일축하고, 알려진 살상 행위는 일반 병사들이 게릴라 전투원들을 상대로 전쟁에서 행한 통상적인 보복이라고 주장했다.[3] 그는 전쟁에서의 대량 학살 개념은 민간인 학살에 한정되어야 하며, 희생자 수가 40~50명을 넘는 경우에 해당하며, 불규칙한 반군에 대한 대규모 학살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4]

일본 역사 교과서 논쟁과 관련하여, 와타나베는 이에나가 사부로의 소송 이후, 일본 주류 언론(''마이니치 신문'', ''아사히 신문'') 논설위원들의 일반적인 합의에 반대하고, 일본 초·중등학교 교과서 내용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교육부의 권한을 옹호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5]

와타나베는 1937년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이 중국 공산당의 책략으로 읽혀야 하며, 전후 일본 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역사적 내용이 오늘날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내용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고 보았다.[6] 그는 일본의 "인종 순수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7]

하타 이쿠히코는 와타나베의 독일 참모본부에 관한 저서[8]가 독일 자료의 전면적인 표절로 특징지어진다고 주장했다.[9]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국가에 의한 강제나 강제 연행은 없었고 날조된 것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25] 2007년, 일본 문화 채널 사쿠라 사장(당시) 미즈시마 사토시가 대표를 맡는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이 미국 하원의 대일 비난 결의안(미국 하원 121호 결의안)에 대해 작성한 항의서에 찬동자 중 한 명으로 서명했다. 와타나베는 기자 회견에서 "(대일 비난 결의안에 있는 것처럼) 한반도에서 20만 명이나 되는 여성을 모아 트럭으로 운반하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하며 결의안을 비난했다.[26]

오키나와 전투의 집단 자결 문제에 대해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일본군에 협력했던 오키나와의 사람들이 복귀 후 좌익 미디어에 선동되어, 역사로 시끄럽게 하면 돈이 나온다고 생각해 타락한 결과다."라고 말했다.[27]

태평양 전쟁에 관한 더글러스 맥아더의 연방 의회 증언에 대해, 고보리 게이이치로 등과 함께 "일본은 자위 전쟁을 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28]

원자력 발전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그 입장을 더욱 분명히 했다. "적절한 방사선 피폭은 건강을 증진시킨다."[31]라는 연구로부터, 전환 역치는 "아마 시간당 50밀리시버트와 시간당 20밀리시버트 사이에 있을 것이다."[32]라고 말했다. 와타나베는 ICRP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후쿠시마현의 소문 피해 근절을 호소하고 있다.[37]

난징 대학살에 대한 주장의 관계에서, 현대사학자 하타 이쿠히코를 비판했다. 제1차 교과서 문제가 오보였다는 입장에서, 아사히 신문이나 마이니치 신문과 격렬하게 대립했다.[70]

4. 평가

와타나베를 비판하는 책은 다음과 같다.

저자제목출판사출판년도비고
하타 이쿠히코『난징 사건――「학살」의 구조』(南京事件 —「虐殺」の構造)츄오코론샤(中央公論社)1986
『쇼와사(昭和史)의 수수께끼를 쫓다』 2권분게이슌주(文藝春秋)1993/1999
로이 앤드루 밀러『현대 일본의 일본어: 몇 가지 사회 언어학적 관찰』(The Japanese Language in Contemporary Japan: Some sociolinguistic observations)AEI-후버 정책 연구19779쪽 이하
피터 니콜라스 데일『일본 특유성 신화』(The Myth of Japanese Uniqueness)크룸 헬름198663–64, 82-88쪽


5. 저서

와타나베 쇼이치는 다양한 주제에 걸쳐 많은 책을 저술했다.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출판 연도제목출판사비고
1965영문법사겐큐샤 출판
1973일본사에서 본 일본인산교 노리츠 단기 대학 출판
1973언어와 민족의 기원에 대하여다이슈칸 서점
1974일본어의 마음고단샤 겐다이 신서신판・WAC, 개제 「만엽집의 마음 일본어의 마음」 동 선서판
1975말의 발견주오코론사
1975영어학사다이슈칸 서점「영어학 대계 제13권」
1976지적인 생활의 방법고단샤 겐다이 신서
1977비술로서의 문법다이슈칸 서점뒤에 고단샤 학술 문고
1977국어의 이데올로기주오코론사
1977영어의 어원고단샤 겐다이 신서
1977레토릭의 시대다이아몬드사뒤에 고단샤 학술 문고
1977정의의 시대분게이슌주
1977「일본다움」의 구조고단샤 학술 문고
1977속・일본사에서 본 일본인산교 노리츠 단기 대학 출판
1977퀄리티 라이프의 발상 타조형 인간에서 독수리형 인간으로고단샤이후 문고
1977지적 풍경 속의 여성슈후노토모샤이후 고단샤 문고, 「지금을 살아가는 마음의 기술」 학술 문고,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왁(WAC)
1978문화의 시대분게이슌주
1979속・지적인 생활의 방법고단샤 겐다이 신서
1979지적 대응의 시대고단샤이후 문고
1980일본, 그리고 일본인쇼덴샤 NON 북
1980독일 유학기고단샤 겐다이 신서2권
1980자신을 만드는 방법 지적 어드벤처 12개의 디자인산케이 출판
1981자신을 살리는 흐름을 바꾸는 발상법세이슌 출판사이후 문고
1981지도력 연구 조직 사회를 이기는 법, 남자들이여, 솟아올라라!PHP 연구소이후 문고, 개제 「지도력의 차이」
1981발상법 - 리소스풀 인간의 권유고단샤 현대신서개제 「발상법 지식의 샘을 적시기 위해」 PHP 연구소, 2008년
1982말・문화・교육 앵글로색슨 문명의 주변다이슈칸 서점
1985자신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자기 주장 책 머리를 쓰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세이슌 출판사개제 「보상받는 노력 헛된 노력」, 「인생을 "지적으로" 사는 방법」 문고
1989영어 어원의 소묘다이슈칸 서점
1989일본의 농민 정신 (The Peasant Soul of Japan)팔그레이브 맥밀란
1990영국 국학사겐큐샤
1991위험한 시대에 찬스가 있다 패러다임의 붕괴 혼돈에서 절정으로 치솟는 "신 · 역전의 조류"세이슌 출판사이후 문고
1996와타나베 쇼이치의 인생관 · 역사관을 높이는 사전PHP 연구소편저, 신판 「나의 인생관 · 역사관」, 「지적인 인생을 위한 생각 방식 나의 인생관 · 역사관」 PHP 신서
1996영문법을 어루만지다PHP 신서
1997인생, 보상받는 삶 고다 로한 『노력론』을 읽다미카사 서방편술, 이후 지적인 삶의 방식 문고
1997이기는 삶, 지는 삶기호 서방
1997힐티에게 배우는 심술 Gluck 와타나베 쇼이치의 삶의 방식치치 출판사개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삶의 습관」
1998자신의 벽을 깨는 사람, 깨지 못하는 사람미카사 서방이후 지적인 삶의 방식 문고
1998나라를 생각하는 지혜 나를 생각하는 지혜 기개를 키우는 주옥같은 말PHP 연구소
1999생각하는 사람, 생각하지 않는 사람 신 · 지적 생활의 방법미카사 서방
1999얻는 삶, 손해 보는 삶 고다 로한 『수성론』을 읽다미카사 서방(편술)
1999노력에 따라 지성은 갈고 닦인다PHP 연구소
1999독서 유훈 나를 키운 옛날과 지금의 명저치치 출판사
2000지적 생활을 추구하며고단샤
2000"최고의 자신"을 만드는 비결PHP 연구소
2000후회하지 않는 인생PHP 연구소개제 「인생의 출발점은 낮을수록 좋다」
2000재물운은 이렇게 잡는다 메이지 시대의 억만장자 혼다 세이로쿠 개운과 축재의 비술치치 출판사
2000"사람 위에 서는 사람"이 되어라미카사 서방개제 「"일류의 사람"이 되는 법칙」 지적인 삶의 방식 문고
2001"이기는 습관" 인생을 살아라!미카사 서방
2001와타나베 쇼이치 교수 도서관의 어학 서적 목록유쇼도
2001강담・영어의 역사PHP 신서
2003왜인지 "행운"이 따라다니는 사람 10가지 규칙미카사 서방
2003운명을 높여 살아가는 니토베 이나조의 명저 『수양』을 배우다치치 출판사
2003"일의 달인"의 철학 노마 세이지에게 배우는 운명 호전의 법칙치치 출판사
2003영문법을 알고 있습니까분슌 신서
2004노년의 풍요로움에 대해 삶을 즐기고 노년에 당황하지 않고다이와 서방
2004"마음"을 실현시키는 확실한 방법PHP 연구소
2004배우기 위한 힌트신가쿠샤이후 쇼덴샤 황금 문고
2004선현 선철에게 배우는 인간학치치 출판사
2005와타나베 쇼이치의 사고 방식카이류샤
2005정말로 현명한 머리 사용법 37가지 습관미카사 서방
2005인생을 만드는 말 옛날과 지금 동서양의 위인들이 남긴 94개의 명언치치 출판사
2006"도해" 지도력 연구 사람을 움직이는 정보력 · 줄다리기 · 통솔력은 이렇게 갈고 닦아라!PHP 연구소
2006파스칼 『명상록』에서 배우는 삶의 연구치치 출판사
2007생각하는 사람미카사 서방「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의 생활술」 지적인 삶의 방식 문고
2007즐거운 독서 생활 책 읽기의 달인에 의한 지적 독서의 권유비즈니스사「지적 독서의 기술」 동 · 신서판 2016년
200795세까지! 행복한 만년을 쌓는 33가지 기술아스카 신사「60세부터의 인생을 즐기는 기술」 쇼덴샤 황금 문고
2008로마의 명언 하루 한 마디 옛 지혜로 마음을 갈고 닦아치치 출판사(편)
2008사서오경 하루 한 마디 뜻을 높이고 운명을 높이다치치 출판사(편)
2008생각하는 기술 순간적으로 뇌력이 업!카이류샤
2009시부사와 에이이치 『논어와 주판』이 가르치는 인생 번영의 길치치 출판사
2009시부사와 에이이치 인생 백훈 진정한 성공에 이르는 길치치 출판사
2009"자신의 세계"를 확실히 가지세요! "강한 자신"으로 탈피하기 위해이스트·프레스
2010"명장언행록"을 읽다 - 인생의 승패를 결정하는 지혜의 책치치 출판사
2010고민하는 사람일수록 크게 성장한다 - "자신"의 증명이스트 프레스
2010지적 여생의 방법신초 신서
2011"수양"의 권유 인간력을 높이다치치 출판사
2011나카무라 덴푸에게 배우는 성공 철학 인생은 마음 하나 놓는 곳치치 출판사
2011고민하는 사람일수록 크게 성장한다 "자신"의 증명이스트 프레스
2012현인은 인생을 가르쳐 준다 로마의 철인 세네카의 인생론치치 출판사
2012인간의 진실은 파스칼 『팡세』에 존재한다코세이 출판사
2012사람은 늙어 죽고, 육체는 멸망해도, 영혼은 존재하는가?카이류샤「영혼은, 있는가? "죽는 것"에 대한 고찰」 후소샤 신서 2017년
2012마쓰시타 고노스케 성공의 비결 75치치 출판사
2013에머슨 운명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인생론치치 출판사
2014어원력 영어의 어원으로 아는 인간의 사상의 역사카이류샤개제 「어원으로 풀다 서양 사상사」 2020년
2014영어의 조기 교육・사내 공용어는 백해무익 와타나베 쇼이치의 "영어 지"의 추구리하쿠샤
2015와타나베 쇼이치 청춘의 독서동 · 선서판 2018년
2016지적 생활의 준비KADOKAWA프로그램에서의 편술
2016실천 · 쾌로 생활 지적이고 행복한 생활에 대한 보고PHP 신서
2017인생의 안내서 벽을 뛰어넘는 사고 방식후소샤 신서이후 문고
2017지혜의 용수추도 출판
2018종신 지적 생활의 방법 평생, 현역인 채로 있기 위해후소샤 신서유저(遺著)
2022지적 삶의 방식 인생을 진정으로 즐기기 위한 스킬왁BUNKO신편
2023지혜의 우물을 파다 신 · 지적 생활의 방법아오이샤신편


6. 수상


  • 1976년 - 『부패의 시대』로 제24회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 수상[16]
  • 1985년 - 제1회 정론대상 수상[16]
  • 2015년 - 수보중수장 수훈[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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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문서 p.36-37 前掲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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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논문 본인이 기고한 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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