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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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희는 《사기》, 《장자》 등 문헌에 등장하는 사상가로, 노자가 주나라를 떠날 때 서적을 청해 《도덕경》을 받았다. 관령인 희와 사상가 관윤이 동일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성현영은 동일 인물로, 유월 등은 직함명으로, 곽말약은 직하의 학사의 와전으로 해석했다. 후대에는 노자화호설과 연관되어, 도교 경전 및 루쉰의 소설에도 등장한다. 또한, 윤희가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관윤자》는 위서 논란이 있으며, 다양한 주석서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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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 (철학자) | |
|---|---|
| 인물 정보 | |
| 이름 | 윤희 |
| 다른 이름 | 관윤자 (關尹子), 문시 선생 (文始先生) |
| 활동 시기 | 주나라 |
| 직업 | 철학자 도가 사상가 |
| 주요 저서 | 무상묘도문시진경 (無上妙道文始真經) |
| 관련 인물 | 노자 |
| 생애 및 사상 | |
| 주요 활동 | 함곡관의 관리 노자에게 도덕경을 받음 |
| 사상적 영향 | 도가 철학 문자도 |
| 특징 | 노자를 만나 도를 깨달음 은둔 생활 |
| 관련 항목 | |
| 관련 개념 | 도, 무위자연 |
| 관련 장소 | 함곡관 |
2. 생애 및 사상
윤희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정보는 주로 고대 중국 문헌들을 통해 전해진다. 대표적인 문헌으로는 『사기』 노자전, 『장자』, 『여씨춘추』, 『열자』 등이 있다.
『사기』 노자전에 따르면, 노자가 주나라를 떠나 은둔하려던 중 관문(함곡관, 일설에는 大散關|산관중국어)에 이르렀을 때, 그곳의 관령(관소의 장관)이었던 희(윤희)가 노자에게 은둔하기 전에 가르침을 글로 남겨달라고 청했다. 이에 노자는 책(도덕경)을 써주고 관문을 떠났다고 한다. 『사기』에는 이 관령 희에 대한 더 이상의 기록은 없다.
『장자』에서는 '관윤'이라는 이름의 사상가로 등장하여 열자와 도교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장자 천하편에서 노담과 함께 「관윤·노담」 학파로 언급되기도 한다. 『여씨춘추』 불이편에서는 노자의 사상이 '귀유(貴柔)'이고 공자의 사상이 '귀인(貴仁)'인 것에 비해, 관윤은 '귀청(貴淸)'을 주장했다고 전한다. 『열자』에도 관윤은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관령인 희'와 사상가 '관윤'이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서로 다른 인물이거나, 혹은 사상가 '관윤'이 먼저 존재했고 '관령인 희'의 이야기가 나중에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후대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신원에 대해 성현영, 유월, 곽말약 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2. 1. 《사기》 노자전
『사기』의 노자전에 따르면, 노자가 주나라를 떠나 은둔하려던 중 관문에 이르렀다. 이 관문은 함곡관이거나 산관(大散關중국어)이라는 설이 있다. 그곳의 관령(관소의 장관)이었던 희(윤희)는 노자에게 은둔하기 전에 가르침을 담은 책을 써달라고 청했다. 이에 노자는 책(도덕경)을 저술하여 전해주고 관문을 떠났다고 한다. 『사기』에는 이 관령 희에 대한 더 이상의 기록은 없다.한편, 『장자』 달생편에는 '관윤'이라는 사상가가 등장하여 열자와 도교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진다. 『장자』 천하편에서는 「묵적·금활리(禽滑釐중국어)」 학파, 「송경·윤문」 학파, 「팽몽(彭蒙중국어)·전편·신도」 학파와 더불어 「관윤·노담」 학파의 사상을 전하고 있다. 『여씨춘추』 불이편에서는 노자의 사상이 '귀유(貴柔)'이고 공자의 사상이 '귀인(貴仁)'인 것에 비해, 관윤은 '귀청(貴淸)'을 주장했다고 언급된다. 『열자』에도 관윤은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문헌에 등장하는 '관령인 희'와 사상가 '관윤'이 서로 다른 인물일 가능성, 혹은 사상가 '관윤'이 먼저 존재했고 '관령인 희'의 이야기가 나중에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관계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 성현영은 '관령인 희'와 '관윤'을 동일 인물로 보고, 그의 성은 윤(尹), 이름은 희(喜), 자는 공도(公度)라고 주장했다. 반면, 유월 등은 '관령윤'이나 '관윤'은 직함명이며 '윤'은 성이 아니라고 보았다. 다른 한편으로, 곽말약은 '관윤'을 직하의 학사였던 '환연(環淵중국어)'이라는 이름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희(喜)'는 이름이 아니라 '(노자를 만나) 기뻐하여'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
2. 2. 《장자》
장자 달생편에는 관윤이 사상가로 등장하여, 열자와의 도교적인 대화가 그려진다. 또한 장자 천하편에서는 묵적·금활리 학파, 송경·윤문 학파, 팽몽·전편·신도 학파와 함께 관윤·노담 학파의 사상이 소개된다.2. 3. 《여씨춘추》
《여씨춘추》 불이편에서는 노자가 '귀유'(貴柔)를, 공자가 '귀인'(貴仁)을 중시한 것과 달리, 관윤(關尹)은 '귀청'(貴淸)을 중시했다고 전한다.2. 4. 《열자》
열자에도 자주 등장한다.2. 5. 기타 문헌
『사기』의 노자전에 따르면, 노자가 주나라를 떠나 은둔하려던 도중에 관문(함곡관, 일설에는 산관(大散關|다산관중국어))에 이르렀다. 거기서 관령(관소의 장관)인 희로부터, 은둔하기 전에 가르침을 글로 남겨달라는 청을 받았다. 노자는 이에 응하여 책(도덕경)을 써주고 관문을 떠났다고 한다. 『사기』에는 이 관령 희에 대해 더 이상의 기록은 없다.『장자』 달생편에는 '관윤'이라는 이름의 사상가가 등장하여 열자와 도교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진다. 『장자』 천하편에서는 여러 학파를 소개하며, 「묵적·금활리(禽滑釐|친화리중국어)」 학파, 「송경·윤문」 학파, 「팽몽(彭蒙|펑멍중국어)·전편·신도」 학파와 함께 「관윤·노담」 학파의 사상을 전하고 있다. 『여씨춘추』 불이편에서는 노자의 사상이 '귀유(貴柔)', 공자의 사상이 '귀인(貴仁)'으로 요약되는 것에 비해, 관윤은 '귀청(貴淸)'을 주장했다고 언급된다. 『열자』에도 관윤은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관령인 희'와 사상가 '관윤'이 서로 다른 인물일 가능성, 혹은 사상가 '관윤'이 먼저 존재했고 '관령인 희'의 이야기가 나중에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후대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견해가 갈린다.
- 성현영은 '관령인 희'와 '관윤'을 동일 인물로 보고, 그의 성은 윤(尹), 이름은 희(喜), 자는 공도(公度)라고 주장했다.
- 반면, 유월 등은 '관령윤(關令尹)'이나 '관윤(關尹)'은 직책 이름이며, '윤'은 성이 아니라고 보았다.
- 한편, 곽말약은 '관윤'이라는 이름이 제나라 직하의 학사였던 '환연(環淵|환연중국어)'의 이름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희(喜)'는 이름이 아니라 '(노자를 만나) 기뻐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3. 후대의 평가 및 영향
윤희는 후대 도교 사상과 전승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노자와의 만남을 중심으로 노자화호설과 같은 설화가 생겨났으며[4], 이는 『서승경』, 『열선전』 등 관련 도교 경전의 성립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시안시의 누관대에는 노자, 서갑과 함께 그의 상이 모셔져 있으며, 도교의 한 분파인 문시파의 명칭에서도 그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 문학에서는 루쉰의 단편 소설 『출관』(소설집 『고사신편』 수록)에 등장하기도 한다[5].
3. 1. 노자화호설
후한 말 이후, 노자가 관문을 나선 뒤 서역으로 가 불교를 창시했다는 '노자화호설'이 등장하면서, 윤희가 노자와 동행했다는 설도 함께 생겨났다. 구체적으로는 윤희와 노자가 성도의 청양궁에서 다시 만나 함께 호족을 교화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삼동주낭』 권9에서 『노자화호경』과 함께 인용된 『문시선생무상진인관령내전』(현재는 전해지지 않음)에 기록되어 있다. 『광홍명집』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보이는 『문시전』의 일부 내용이 남아있다[4].도교 경전인 『서승경』(노자가 윤희에게 전해준 또 다른 책으로 여겨짐)과 『열선전』의 윤희 관련 기록 역시 노자화호설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선전』 등에 등장하는 윤궤는 윤희의 사촌 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원대의 기록인 『현원십자도』나 『현품록』 등에는 윤희가 『관윤자』를 저술한 후, 대산관을 나와 청양궁에서 노자와 재회하고 '문시선생'이라는 이름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시안시의 누관대에는 노자상의 좌우에 윤희상과 서갑상이 함께 모셔져 있다. 도교의 한 갈래로 문시파가 존재하기도 한다.
현대 작가 루쉰의 단편 소설 『출관』(소설집 『고사신편』에 수록됨)에도 윤희가 등장인물로 나온다[5].
3. 2. 도교 경전
후한 말 이후 "노자화호설"(노자가 관문을 나온 후 서역에서 불교를 창시했다는 설)이 생겨나면서, 윤희가 노자와 동행했다는 설도 생겨났다. 도교 경전인 《서승경》(노자가 윤희에게 수여한 또 다른 서물로 여겨진다)과 《열선전》 윤희전 역시 이러한 노자화호설의 영향 아래 성립되었다[4]. 또한, 《신선전》 등에 등장하는 윤궤는 윤희의 종제(사촌 형제 또는 집안 동생)로 여겨진다.3. 3. 기타
후한 말 이후, 노자가 관문을 나선 뒤 서역에서 불교를 창시했다는 "노자화호설"이 퍼지면서, 윤희가 노자와 동행했다는 설도 함께 생겨났다. 즉, 윤희와 노자가 성도의 청양궁에서 재회한 후 함께 호인(胡人)을 교화했다는 이야기가, 『삼동주낭』(三洞珠囊) 권9에서 『노자화호경』과 함께 인용되는 『문시선생무상진인관령내전』(文始先生無上真人關令內傳) 실문에 전해진다. 『광홍명집』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보이는 『문시전』(文始傳)의 실문이 있다.[4]도교 경전인 『서승경』(西昇經, 노자가 윤희에게 주었다고 여겨지는 또 다른 경전)과 『열선전』의 윤희전 역시 노자화호설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신선전』 등에 등장하는 윤궤(尹軌)는 윤희의 사촌 동생에 해당한다고 한다.
원대의 『현원십자도』(玄元十子圖), 『현품록』(玄品錄) 등에는 윤희가 『관윤자』를 저술한 후, 관소(대산관, 大散關)를 나와 청양궁에서 노자와 재회하여 "문시선생"(文始先生)이라는 칭호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시안시의 누관대(樓觀台)에는 노자상의 좌우에 윤희상과 서갑상이 모셔져 있다. 도교의 한 분파인 문시파(文始派)는 윤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 작가 루쉰의 단편 소설 『출관』(出關, 소설집 『고사신편』(故事新編)에 수록)에도 등장인물로 나온다.[5]
4. 《관윤자》(《문시진경》)
현재 유통되는 『'''관윤자'''』(다른 이름으로는 『'''문시진경'''』)은 일반적으로 당 말 오대 이후의 위서로 여겨진다.[3]
4. 1. 내용 및 특징
현재 유통되는 『관윤자』(다른 이름으로는 『문시진경』)는 일반적으로 당 말 오대 이후에 만들어진 위서로 여겨진다.[3]총 1권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신선방기 사상과 함께 도교, 불교, 유교 사상이 혼재되어 나타난다.[3] 또한 '즉'을 서술어로 사용하는 등, 선진 시대의 문체와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4. 2. 목록학적 기록 및 위서 논란
현재 유통되는 관윤자(다른 이름으로는 문시진경)는 일반적으로 당 말 오대 이후의 위서로 여겨진다.[3]총 1권 9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은 신선방기, 불교, 유교 사상이 혼재되어 있다.[3] 또한 '즉'(卽)을 서술어로 사용하는 등, 선진의 문체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도 위서로 보는 근거 중 하나이다.
목록학적으로 살펴보면, 『한서』 예문지 도가 항목에는 『관윤자』 9편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후 『수서』 경적지, 『구당서』 경적지, 『신당서』 예문지에는 해당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포박자』 현람편에는 『문시선생경』이라는 이름이 언급된다. 송나라의 『직재서록해제』에서는 유향과 갈홍의 서문이 붙어 있다고 전해지는 『관윤자』 9권을 기록하면서 이를 위서로 판단하였다. 이후에도 『관윤자』가 위서라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었다.
4. 3. 주석서
주석서로는 『도장』에 수록된 송나라 진현미의 『문시경언외지』, 杜道堅|두도견중국어의 『관윤자선현』, 원나라 우도순의 『문시진경주』 등이 있다. 일본 간행본이 에도 시대 겐분 5년(1740년)에 출판되었다.[6]5. 현대 문화 속 윤희
루쉰의 단편 소설 『출관』(고사신편 수록)에 등장인물로 나온다.[5]
참조
[1]
웹사이트
Sages & Saints Part XIV: 尹喜 Yin Xi – The Gatekeeper – Purple Cloud
https://purplecloudi[...]
2020-10-06
[2]
웹사이트
Chinese Literature Guanyinzi 闕尹子 "Master Yin of the Pass"
http://www.chinaknow[...]
China Knowledge
2018-06-25
[3]
Kotobank
関尹子
[4]
간행물
「笑道論」譯注
https://doi.org/10.1[...]
京都大學人文科學研究所
[5]
서적
出関
https://dl.ndl.go.jp[...]
筑摩書房
[6]
서적
江戸期の道教崇拜者たち 谷口一雲・大江文坡・大神貫道・中山城山・平田篤胤
汲古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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