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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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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달존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1313년에 태어나 1340년에 사망했다. 이제현의 아들이며, 11세에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여 과거에 급제한 후 사간원 헌납 등을 역임했다. 1339년에는 아버지 이제현을 따라 원나라에 다녀왔으나, 귀국 중 병을 얻어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곡은 그의 학문과 인품을 높이 평가하며 안타까워했다.

2. 생애

이달존은 1313년 이제현과 안동 권씨 사이에서 3남 4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천각(天覺), 호는 운와(雲窩)이다. 할아버지는 검교첨의정승 임해군 이진이며, 외할아버지는 아버지 이제현에게 성리학을 가르친 권부이다. 아버지의 문하생인 이곡과 친구였으며, 이곡이색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의 가계는 신라 개국공신 알평의 후손으로, 고려 건국 후 삼한공신에 녹훈된 이금서의 후손이다. 가계는 몰락했으나 할아버지 이진이 과거 급제 후 재상을 지내면서 집안을 다시 일으켰고, 아버지 이제현성리학을 수학한 학자이자 작가였다.

이곡에 의하면 이달존은 사치스러운 습관이 없었고 효성이 지극했으며, 공손하고 검소하였다고 한다.[5] 그는 아버지 이제현의 또 다른 성리학 스승인 백이정의 딸과 결혼하여 5남매를 두었다.

1323년(충숙왕 10년) 11세에 문음으로 별장에 임명되었고, 1330년(충혜왕 즉위년) 18세에 과거 시험에 급제하여 사간원헌납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감찰장령, 전의부령 등을 역임했다. 유교에 대한 소양이 깊어 보문각의 관직을 겸직하기도 했다.

1333년 어머니 길창군부인 안동 권씨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으로 거의 실성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1339년(충숙왕 복위 8년) 겨울, 아버지 이제현원나라고려 직할 편입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충숙왕을 따라 원나라에 갈 때 동행하였다. 1340년 충혜왕이 복위하자 원나라에 체류하며 전리사총랑(典理司摠郞[6])으로 옮겼다.

1340년 6월 고려로 돌아오던 중 병을 얻었고, 압록강을 건너 귀국하였으나 6월 29일 상경하던 도중 사망하였다.[1] 시신은 평안북도 박천군 장림역에 임시 빈소를 마련했다가, 8월 영구를 운구하여 10월 개경에서 장례를 치렀다.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였다.[1]

2. 1. 가계 배경

이달존은 1313년 이제현과 길창국부인 안동 권씨의 3남 4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천각(天覺)이고 호는 운와(雲窩)이다. 검교첨의정승 임해군(臨海君) 이진의 손자이고, 아버지 이제현성리학 스승인 영가군(永嘉君) 권부(權溥)의 외손자이다. 아버지 이제현의 문하생인 이곡(李穀[4])과 친구였으며, 이곡은 성리학이색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의 가계는 신라 개국공신 알평의 후손이며, 고려 건국 후 삼한공신에 녹훈된 이금서의 후손이다. 가계는 몰락했으나 할아버지 이진이 과거 급제 후 재상을 지내면서 집안을 다시 일으켰고, 아버지 이제현백이정과 권부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한 학자이자 작가였다.

형은 이서종이고 바로 아래 친동생은 요절하였다. 친여동생으로는 임덕수(任德壽 또는 任德秀)에게 출가한 누이와 이계손에게 출가한 누이, 김희조와 결혼해 의화택주의 작위를 받은 의화택주 이씨(義和宅主 李氏), 요절한 친누이가 있었다. 계모 수춘국부인 박씨(壽春國夫人 朴氏)에게는 이복 남동생 1명과 이복 여동생 2명이 있는데, 한 명은 송무에게 출가했고 다른 한 명은 고려 공민왕의 후궁 혜비 이씨였다. 세 번째 계모인 서원군부인 서씨(瑞原郡夫人 徐氏, 서중린(徐仲麟)의 딸)에게서 태어난 이복 여동생은 김남우(金南雨)와 이유방(李有芳)에게 시집갔다. 아버지 이제현의 첩에게는 서누이 두 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임부양(林富陽)에게 시집갔고 다른 한 명은 미상이다.

일찍부터 글을 잘하였는데, 달존의 절친한 친구였던 이곡에 의하면 그의 성격은 '사치한 습관이 없었고 효도하고 우애하며, 공순하고 검소하였다.[5]'고 한다. 아버지 이제현의 또 다른 성리학 스승이자 당대의 대학자인 상당군(上黨君) 백이정(白頤正)의 딸 백씨(白氏)와 결혼하여 5남매를 두었다.

2. 2. 생애 초반

이달존은 1313년 계림부원군 이제현과 길창국부인 안동 권씨의 3남 4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제현의 5남 9녀 중에서도 차남이다. 자는 천각(天覺)이고 호는 운와(雲窩)이다. 검교첨의정승 임해군(臨海君) 이진의 손자이고, 대학자이자 아버지 이제현성리학 스승인 영가군(永嘉君) 권부(權溥)의 외손자이다. 내외의 집안이 모두 혁혁한 문벌이다. 아버지 이제현의 문하생인 이곡(李穀[4])과 친구였다. 이곡은 성리학자인 이색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의 가계는 신라 개국공신 알평의 후손이며, 고려 건국 후 삼한공신에 녹훈된 이금서의 후손이었다. 그 뒤 가계는 몰락했으나 할아버지 이진이 과거 급제 후 재상을 지내면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웠고, 아버지 이제현백이정과 권부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한 저명한 학자이자 작가였다.

형은 이서종이고 바로 아래 친동생은 요절하였으며, 친여동생으로는 임덕수(任德壽 또는 任德秀)에게 출가한 누이와 이계손에게 출가한 누이, 그리고 김희조와 결혼했는데 의화택주의 작위를 받은 의화택주 이씨(義和宅主 李氏)와 요절한 친누이 한 명이 있었다. 계모 수춘국부인 박씨(壽春國夫人 朴氏)에게는 1명의 이복 남동생과 2명의 이복 여동생이 있는데 한 명은 송무에게 출가했고, 다른 한 명은 고려 공민왕의 후궁 혜비 이씨였다. 세 번째 계모인 서원군부인 서씨(瑞原郡夫人 徐氏), 서중린(徐仲麟)의 딸 김남우(金南雨)와 이유방(李有芳)에게 시집간 이복 여동생 두 명이 있었고, 아버지 이제현의 첩에게는 두 명의 서누이가 있었는데 한 명은 임부양(林富陽)에게 시집갔고 다른 한 명의 서누이는 미상이다.

일찍부터 글을 잘하였는데, 달존의 절친한 친구였던 이곡에 의하면 그의 성격을 이르기를 '사치한 습관이 없었고 효도하고 우애하며, 공순하고 검소하였다.[5]'한다. 아버지 이제현의 또 다른 성리학 스승이자 당대의 대학자인 상당군(上黨君) 백이정(白頤正)의 딸 백씨(白氏)에게 장가들어 5남매를 두었다.

2. 3. 관료 생활과 원나라 방문

1323년(충숙왕 10년) 11세에 문음(門蔭)으로 출사하여 별장에 임명되었다. 1330년(충혜왕 즉위년) 18세에 과거 시험에 을과(乙科)에 급제하여, 사보(思補)를 거쳐 사간원헌납(獻納)으로 승진하였다. 그 뒤 헌납으로 감찰장령(監察掌令) 전의부령(典儀副令)으로 옮겼다. 유교에 소양이 있어서 사보(思補)에서 사간원헌납으로 승진하면서 보문각의 관직(館職)을 겸직하였는데, 그 뒤 여러번 보직이 변경될 때마다 모두 보문각의 관직(館職)을 겸직하였다.

1333년 어머니 길창군부인 안동권씨를 여의었는데, 이곡에 의하면 '슬픔으로 거의 실성한 듯하니, 종족들이 그 효성스러움을 칭찬하였다.'고 하였다.

1339년(충숙왕 복위8) 겨울 아버지 이제현고려를 직할로 편입해야 된다는 원나라 측의 주장을 반박하러 충숙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는데, 이곡에 의하면 그때 고려사회는 '혼란스럽고 인심이 위태하여 믿을 수가 없었다' 한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나는 임금과 아버지가 계신 것만 알 뿐이다” 하고 필마로 수행하였다. 1340년 일이 평정되고 충혜왕이 복위하자 원나라에 체류 중 전리사총랑(典理司摠郞[6])으로 옮겼다.

2. 4. 요절

1340년 6월 고려로 돌아오던 중 병을 얻어 몸져누웠다. 병세가 위중하여 거동이 어려웠으나, 왕의 배려로 의원의 진료를 받으며 수레로 압록강을 건너 귀국하였다.[1] 그러나 6월 29일 상경하던 도중 객사하였다.[1]

시신은 임시로 평안북도 박천군 장림역(長林驛)에 빈소를 차렸다가, 8월 영구를 마차로 운구하여 10월 개경에서 장례를 치르고 그 달에 모 언덕에 안장하였다. 묘비명 탁본 상태가 불량하여 정확한 장지는 알 수 없다.[1] 당시 향년 28세였다.[1]

슬하에 5남매를 두었는데, 맏아들 덕림(德林)은 당시 11세, 차남 수림(壽林)은 9세였고, 딸들은 모두 어렸다.[1]

3. 가족 관계

관계이름
증조부이핵(李翮)
증조모김해 김씨(金海金氏)
조부이진(李瑱)
조모진한국대부인 박씨(辰韓國大夫人 朴氏) - 박인육(朴仁育)의 딸
이제현
길창국부인 권씨(吉昌國夫人 權氏, 1288년 ~ 1332년) - 권부(權溥)의 딸
이서종(李瑞種)
조카요절
부인남포 백씨 - 백이정의 딸
장남이덕림(李德林)
손자이신(李伸) - 안찰사
차남이수림(李壽林)
3남이학림(李學林) - 소부윤
손자이담 (李擔) - 직예문관, 우부대언
장녀미상
사위기인걸(奇仁傑) - 개성윤, 동지추밀원사, 행주 기씨
차녀미상
매부임덕수(任德壽 또는 任德秀)
매부이계손(李係孫)
매부김희조(金希祖)
누이의화택주 이씨(義和宅主 李氏)
누이이씨 - 생몰 기록 미상
계모수춘국부인 박씨(壽春國夫人 朴氏) - 박거실(朴居實)의 딸
동생이창로(李彰路)
조카이보림(李寶林)
누이혜비 이씨(惠妃李氏) - 공민왕의 후궁, 비구니가 됨
누이이씨
매부박동생(朴東生)
누이이씨
매부송무(宋懋)
계모서원군부인 서씨(瑞原郡夫人 徐氏) - 서중린(徐仲麟)의 딸
누이이씨
매부김남우(金南雨)
누이이씨
매부이유방(李有芳)
서모미상
서매이씨
서매부임부양(林富陽)
서매이씨


4. 평가

음서로 관직에 올랐으나 면학하여 과거에 급제하였다. 특히 문장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10] 이곡은 이달존이 학문에 능하고 일처리를 잘하여 가업을 이을 수 있다고 보았으나, 일찍 사망한 것에 대해 애석함을 표현하였다.[5]

참조

[1] 서적 가정집
[2] 서적 제정집
[3] 서적 담암일집
[4] 문서 목은 이색의 아버지
[5] 문서 이달존 묘갈명
[6] 문서 고려의 전리사총랑이다.
[7] 문서 원나라에서는 고려를 속국 또는 제후국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고려왕부를 특별히 설치하고 고려왕부의 관리로 임명했다.
[8] 웹사이트 이제현 묘지명 http://gsm.nricp.go.[...]
[9] 웹사이트 권씨 묘지명 http://gsm.nricp.go.[...]
[10] 웹사이트 이달존 http://koreandb.n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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