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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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숙은 삼국지 시대의 인물로, 192년 왕윤과 여포의 동탁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 기조위였던 그는 동탁 암살을 위해 헌제의 쾌유 연회를 이용하려 했으며, 여포와 함께 동탁을 습격하여 죽였다. 이후 우보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여포에게 처형당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여포와 동향이라는 설정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추가되어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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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 (삼국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원어 이름 | 李肅 |
출생지 | 오원군 |
사망일 | 192년 |
사망 원인 | 사형 |
국적 | 후한 |
관직 정보 | |
관직 | 기도위 (騎都尉) |
임관 시작 | 알 수 없음 |
임관 종료 | 192년 |
군주 | 한 헌제 |
기타 정보 | |
직업 | 군인 |
관련 활동 | 동탁 주살에 참여 |
2. 생애
이숙은 오원군 출신으로, 현재의 바오터우 (내몽골 자치구) 일대에서 기도위를 지냈다. 189년부터 192년까지 동탁 휘하에서 복무하며 한나라 중앙 정부를 장악하고 헌제를 옹립하였다.[2]
192년 동탁 사후, 홍농군 섬현(陝縣)에 주둔하고 있던 동탁의 사위 우보를 공격했다가 홍농현으로 패주하여 여포에게 처형되었다.[1]
2. 1. 동탁 암살 (192년)
192년(초평 3년) 왕윤과 여포의 동탁 주살 계획에 가담하여 10여 명의 용사를 궁문의 위사(衛士)로 꾸몄다. 동탁이 헌제의 병이 나은 것을 하례하러 여포 등을 거느리고 궁궐로 들어설 때 용사들과 함께 습격하였다. 동탁은 속에 갑옷을 입은지라 팔에만 부상을 입고 수레에서 떨어졌다. 이내 여포 등과 힘을 합쳐 죽였다.[1] 이숙은 극으로 그를 찌르려 했지만, 동탁의 갑옷이 그를 보호했다. 그러자 여포가 다가와 동탁을 죽였다.[2]왕윤, 사손서, 여포 등은 미앙전에서 열리는 헌제의 쾌유 연회를 이용하여 동탁 암살을 꾀했다. 왕윤 등은 몰래 헌제에게 암살 계획을 알리고, 사손서가 쓴 조서를 여포에게 전달했다. 이숙 외에 진의, 진위 등 용사 10여 명에게 위사의 옷을 입혀 북액문에서 동탁을 매복했다. 도중에 마차가 멈추는 바람에 동탁은 불안함을 느껴 돌아가려 했지만, 여포의 권유로 문에 도착했고, 거기서 이숙이 창으로 동탁을 찔렀지만, 평소에 갑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팔꿈치에 상처를 입고 낙마한 동탁이 "여포는 어디 있느냐"라고 외쳤지만, 여포는 "조서에 따라 적을 토벌한다"라고 말하며 창으로 동탁을 죽였다.[3]
2. 2. 우보 공격과 최후
192년(초평 3년) 왕윤과 여포의 동탁 주살 계획에 가담하여 10여 명의 용사를 궁문의 위사(衛士)로 꾸몄다. 헌제의 병이 나은 것을 축하하러 여포 등을 거느리고 궁궐로 들어설 때 용사들과 함께 습격하였다. 동탁은 속에 갑옷을 입은지라 팔에만 부상을 입고 수레에서 떨어졌다. 이내 여포 등과 힘을 합쳐 동탁을 죽였다.[1]이후 여포는 이숙에게 군대를 이끌고 동탁의 사위인 우보를 공격하여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우보는 전투에서 이숙을 격파하고 그를 홍농군 (현재의 링바오 시, 허난성 남쪽에 위치)으로 후퇴하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여포는 이숙의 실패를 이유로 처형했다.[3]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삼국지연의》에서 이숙은 여포와 동향이라는 점을 이용해 여러 이야기에 등장한다. 정원의 양아들인 여포에게 적토마와 온갖 재물을 주며 동탁의 편으로 끌어들인다.[4] 동탁 토벌전의 서전인 사수관 전투에 참전하여 손견을 패주시켰으나, 이후 여포에게 죽임을 당한다.
한편, 『삼국지연의』의 전신에 해당하는 『삼국지평화』에서는 묘사가 약간 다르다.
3. 1. 여포와의 관계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이숙은 여포와 동향이라는 점을 바탕으로 여러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정원의 양아들인 여포에게 적토마와 많은 재물을 주며 동탁의 편으로 끌어들인다.[4] 동탁 토벌전의 시작인 사수관 전투에 참전하며,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동탁에게 불만을 품고 왕윤의 동탁 암살 계획에 동참한다.선양을 핑계로 동탁을 궁궐로 데려오는 역할을 맡는다. 얼마 못 가 수레바퀴가 부서지고 말이 고삐를 끊자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징조라 둘러댄다. 다음 날, 몰아치는 광풍과 하늘을 가린 안개는 제왕의 위엄이라 포장한다. 그날 밤, 아이들의 ‘천 리 풀이 암만 푸르러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겠구나!’[3]란 노래는 유씨(劉氏, 한나라의 황실 성씨)가 망하고 동씨(董氏)가 흥할 뜻이라 왜곡한다.
14세기 역사 소설인 ''삼국지연의''에서 이숙은 여포가 양아버지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귀순하도록 설득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숙이 여포를 방문했을 때 가져온 많은 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적토마라는 말이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호분중랑의 신분으로 등장하며, 정원 (및 여포)에게 이길 수 없어 고민하는 동탁에게 적토마를 증정할 것을 진언하고, 스스로 배반 공작을 수행했다. 여포와 동향으로 구면이었던 이숙은 그를 설득하여 정원을 참수하게 했다 (이때 이숙이 연상인지 여포를 현제(賢弟)라 부르고, 여포도 이숙을 형이라 불렀다).
반동탁 연합군 (손견)이 사수관에 육박하자 화웅의 부장으로 이숙, 호진, 조잠 등이 따랐다. 도중 정보에게 호진이 죽임을 당했지만, 이숙의 야습 책략으로 손견을 패주시켰다.
동탁 암살 부분에서는 여포에게 협력을 맹세하고, "선양(禪讓)"을 행하는 조서가 나왔다고 말하며 미오에서 동탁을 유인했다. 도중에 수많은 흉조가 나타났지만, 교묘하게 속여 동탁을 안내하고, 북예문에서 여포와 함께 동탁을 살해했다. 또한 이유를 사로잡고, 여포, 황보숭과 함께 미오를 공략했다.
그 후, 이각 등과 합류한 우보가 장안에 육박하자, 이를 격퇴하고 패주하게 했다. 그러나 우보는 야음을 틈타 이숙의 부실함을 이용했고, 붕괴된 부대는 30리 이상 패주하게 되었다. 이를 본 여포는 격노하여 이숙을 참수하고 군문에 머리를 효수했다.
한편, 『삼국지연의』의 전신에 해당하는 『삼국지평화』에서는 취급이 약간 다르다. 서량부를 점령한 황건적 (이각 등)을 토벌하기 위해 동탁이 50만을 동원했을 때 "좌방에는 의붓아들 여포 ~ (중략) ~ 우방에는 이광의 후예 이숙, 은색 투구에 은사슬 갑옷, 백포를 입고, 1장 5척의 갈고리 창과 활을 십자로 등에 맨다. 문관은 이유, 무관은 여포와 이숙, 이 세 명이 동탁을 보좌했다"라고 묘사된 것처럼 동탁 휘하에서 여포와 쌍벽을 이루는 무장으로 소개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조조로부터 "여포와 이숙은 만부부당의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곳마다 적이 없다"라고 평가받는다. 그 후 여포가 동탁을 암살하자, 칼을 들고 원수를 갚기 위해 여포에게 향했지만, 왕윤과 여포로부터 동탁의 실정을 듣고 그 무도함에 분노했다. 그 후 여포는 서주로 도망가지만, 이후의 묘사는 없다.
3. 2. 동탁 암살에서의 역할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이숙은 여포와 동향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여러 이야기에 등장한다. 정원의 양아들인 여포에게 적토마와 온갖 재물을 주며 동탁의 편으로 끌어들인다.[3] 동탁 토벌전의 초반 전투인 사수관 전투에 참전하며,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동탁에게 불만을 품고 왕윤의 동탁 암살 계획에 동참한다.이숙은 선양을 핑계로 동탁을 궁궐로 데려오는 역할을 맡는다. 얼마 못 가 수레바퀴가 부서지고 말이 고삐를 끊자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징조라 둘러댄다. 다음 날, 몰아치는 광풍과 하늘을 가린 안개는 제왕의 위엄이라 포장한다. 그날 밤, 아이들의 ‘천 리 풀이 암만 푸르러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겠구나!’라는 노래는 유씨(劉氏, 한나라의 황실 성씨)가 망하고 동씨(董氏)가 흥할 뜻이라 왜곡한다. 다음 날, 口(입 구) 두 개를 쓴 베[布]를 장대 끝에 달아놓은 도인은 심양(心恙)에 걸렸다며 쫓아낸다.[4]
이후 이숙은 여포에게 협력을 맹세하고, "선양(禪讓)"을 행하는 조서가 나왔다고 말하며 미오에서 동탁을 유인한다. 도중에 수많은 흉조가 나타났지만, 교묘하게 속여 동탁을 안내하고, 북예문에서 여포와 함께 동탁을 살해한다.
3. 3. 그 외 묘사
삼국지연의에서 이숙은 여포와 동향이라는 점을 바탕으로 여러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이숙은 정원의 양아들 여포에게 적토마와 많은 재물을 주어 동탁의 편으로 끌어들인다.[3] 동탁 토벌전 초반 전투인 사수관 전투에 참전하며,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동탁에게 불만을 품고 왕윤의 동탁 암살 계획에 동참한다.선양을 핑계로 동탁을 궁궐로 데려오는 역할을 맡는다. 얼마 못 가 수레바퀴가 부서지고 말이 고삐를 끊자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징조라 둘러댄다. 다음 날, 몰아치는 광풍과 하늘을 가린 안개는 제왕의 위엄이라 포장한다. 그날 밤, 아이들의 ‘천 리 풀이 암만 푸르러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겠구나!’라는 노래는 유씨(한나라의 황실 성씨)가 망하고 동씨(董氏)가 흥할 뜻이라 왜곡한다.[4] 다음 날, 口(입 구) 두 개를 쓴 베[布]를 장대 끝에 달아놓은 도인은 심양(心恙)에 걸렸다며 쫓아낸다.
14세기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이숙은 호분중랑 신분으로, 여포가 양아버지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귀순하도록 설득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때 이숙이 가져온 많은 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적토마였다. 여포와 동향으로 구면이었던 이숙은 그를 설득하여 정원을 참수하게 했다 (이때 이숙은 연상인지 여포를 현제(賢弟)라 부르고, 여포도 이숙을 형이라 불렀다).
반동탁 연합군 (손견)이 사수관에 육박하자 화웅의 부장으로 이숙, 호진, 조잠 등이 따랐다. 도중 정보에게 호진이 죽임을 당했지만, 이숙의 야습 책략으로 손견을 패주시켰다.
동탁 암살 부분에서는 여포에게 협력을 맹세하고, "선양(禪讓)"을 행하는 조서가 나왔다고 말하며 미오에서 동탁을 유인했다. 도중에 수많은 흉조가 나타났지만, 교묘하게 속여 동탁을 안내하고, 북예문에서 여포와 함께 동탁을 살해했다. 또한 이유를 사로잡고, 여포, 황보숭과 함께 미오를 공략했다.
그 후, 이각 등과 합류한 우보가 장안에 육박하자, 이를 격퇴하고 패주하게 했다. 그러나 우보는 야음을 틈타 이숙의 부실함을 이용했고, 붕괴된 부대는 30리 이상 패주하게 되었다. 이를 본 여포는 격노하여 이숙을 참수하고 군문에 머리를 효수했다.
한편, 『삼국지연의』의 전신에 해당하는 『삼국지평화』에서는 묘사가 약간 다르다. 서량부를 점령한 황건적 (이각 등)을 토벌하기 위해 동탁이 50만을 동원했을 때 "좌방에는 의붓아들 여포 ~ (중략) ~ 우방에는 이광의 후예 이숙, 은색 투구에 은사슬 갑옷, 백포를 입고, 1장 5척의 갈고리 창과 활을 십자로 등에 맨다. 문관은 이유, 무관은 여포와 이숙, 이 세 명이 동탁을 보좌했다"라고 묘사된 것처럼 동탁 휘하에서 여포와 쌍벽을 이루는 무장으로 소개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조조로부터 "여포와 이숙은 만부부당의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곳마다 적이 없다"라고 평가받는다. 그 후 여포가 동탁을 암살하자, 칼을 들고 원수를 갚기 위해 여포에게 향했지만, 왕윤과 여포로부터 동탁의 실정을 듣고 그 무도함에 분노했다. 그 후 여포는 서주로 도망가지만, 이후 묘사는 없다.
3. 4. 삼국지평화
『삼국지평화』에서는 동탁이 서량부를 점령한 황건적(이각 등)을 토벌하기 위해 50만을 동원했을 때, "좌방에는 의붓아들 여포, (중략) 우방에는 이광의 후예 이숙, 은색 투구에 은사슬 갑옷, 백포를 입고, 1장 5척의 갈고리 창과 활을 십자로 등에 맨다. 문관은 이유, 무관은 여포와 이숙, 이 세 명이 동탁을 보좌했다"라고 묘사되어 동탁 휘하에서 여포와 쌍벽을 이루는 무장으로 소개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조조로부터 "여포와 이숙은 만부부당의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곳마다 적이 없다"라고 평가받는다. 그 후 여포가 동탁을 암살하자, 칼을 들고 원수를 갚기 위해 여포에게 향했지만, 왕윤과 여포로부터 동탁의 실정을 듣고 그 무도함에 분노했다. 그 후 여포는 서주로 도망가지만, 이후의 묘사는 없다.참조
[1]
문서
Sanguozhi indicated that Li Su died soon after Dong Zhuo, who died in May 192. Thus, Li Su's death date should be circaJune 192
[2]
서적
헌제기(獻帝紀)
[3]
문서
千里草 何靑靑, 十日上 不得生. 千里草(艸)를 합치면 董이란 글자가, 十日上을 합치면 卓이란 글자가 되어 동탁(董卓)을 가리킨다.
[4]
문서
여포(呂布)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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