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즙 (15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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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즙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효령대군의 후손이며, 영의정 심강의 처남이자 명종의 외척이었다. 성균관 재랑을 거쳐 평시서 직장, 의금부 도사 등을 역임했으며, 장연, 연일, 재령 군수를 지냈다. 김안로의 문객으로 활동하거나 동생 이량의 정치적 영향력에 기대기도 했으나, 정치적 부침을 겪었다. 1560년 재령 군수 재임 시 지역 주민의 청원으로 가자되었으나 사간원의 반대에 직면하기도 했으며, 말년에는 전주 부윤 겸 병마절제사를 지내다 사망했다. 묘소는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꾀가 많은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조선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보성군의 4대손이자 여양군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증 의정부 영의정 전성군 이대(李薱)이며, 어머니는 정종보(鄭宗輔)의 딸인 동래 정씨이다. 누이 중 한 명은 영의정 심연원의 아들 심강과 혼인하여, 이즙은 심의겸, 심충겸 형제의 외삼촌이 되었고, 외조카딸 중 한 명은 명종비 인순왕후가 되었다. 부인은 별좌 정승효(鄭承孝)의 딸인 하동 정씨이다.
아버지는 증(贈) 의정부 영의정 전성군 이대(全城君 李薱)이고,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 동래 정씨로 내자시정(內資寺正) 정종보(鄭宗輔)의 딸이다.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5대손으로, 보성군의 4대손이며, 할아버지는 여양군 이자겸(呂陽君 李子謙)이다.
2. 생애
생원 시절, 한국 성리학자들의 기록을 모은 <동유사우록(東儒士友錄)>의 간행을 조정에 건의하여 허락받았다. 이 책은 훗날 박세채에 의해 재편집되기도 하였다. 이후 성균관 재랑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한때 권신 김안로의 문객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평시서 직장, 의금부 도사 등을 거쳤으나, 1537년 몰락한 김안로를 호송하는 과정에서 과거 그의 문객이었다는 점이 홍문관에 의해 지적되어 의금부 도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장연군수, 연일군수, 재령군수 등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1560년 재령군수 재임 시, 지역 주민의 격쟁(擊錚, 징을 쳐 억울함을 호소함)으로 치적이 알려져 특별히 품계가 오르고 재령군수직에 유임되었다. 사간원에서는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상을 내리는 것이 부당하다고 반대했으나 명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해 사간원 대사간에 올랐고, 이후 장례원 판결사(1562년, 1564년, 1566년), 남양부사(1563년) 등을 지냈다. 1563년 동생 이량이 권력을 남용하다 몰락하였으나, 이즙은 연좌되지 않았다. 이량의 몰락 후, 연루되었던 8촌 친척 김백균이 이즙에게 복직을 청탁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1580년에는 돈녕부 도정이 되었다. 그해 조정에 입시했을 때 풍병(風病)으로 인해 예를 갖추지 못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으나, 선조의 배려로 무마되었다. 이후 파직되었다가 복관되어 전주부윤 겸 전주진관병마절제사로 부임하였고, 그해 재직 중 사망하였다.
묘소는 선영이 있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왕릉골에 있으며, 후대에 신도비가 세워졌다. 신도비문은 전 성균관 부관장 이수원(李壽源)이 짓고, 글씨는 성균관 전학 김진해(金振海)가 썼다.
2. 1. 가계와 초기 활동
아버지는 증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된 전성군 이대(李薱)이고,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에 추증된 동래 정씨로 내자시정을 지낸 정종보(鄭宗輔)의 딸이다. 조선 태종의 차남인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보성군의 4대손이며 할아버지는 여양군이다. 왕실의 먼 종친이었으나, 누이 중 한 명이 영의정을 지낸 심연원의 아들 심강과 혼인하여 명문가와도 인척 관계를 맺었다. 이 혼인으로 이즙은 심의겸, 심충겸 형제의 외삼촌이 되었으며, 그의 외조카 딸 중 한 명은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가 되면서 왕실과 더욱 가까워졌다. 부인은 증 정부인 하동 정씨로, 별좌를 지낸 정승효(鄭承孝)의 딸이다.
생원 시절에는 한국 성리학자들의 기록을 수집하여 <동유사우록(東儒士友錄)>이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그는 이 책의 간행을 조정에 건의하였고, 승정원의 허락을 받아 간행되었다. <동유사우록>은 훗날 문순공(文純公) 박세채(朴世采)에 의해 다시 편집되기도 했다.
이후 성균관의 재랑(齋郎)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한때 권신 김안로(金安老) 집안의 문객으로 드나들기도 하였다. 평시서 직장, 의금부 도사 등의 관직을 거쳤다. 의금부 도사로 재직하던 중, 몰락한 김안로를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이때 과거 그의 문객이었던 사실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1537년 10월, 홍문관 관원들의 문제 제기로 의금부 도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장연군수, 연일군수, 재령군수 등 주로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2. 2. 관직 생활과 정치적 부침
성균관 재랑(齋郎)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한때 권신 김안로(金安老) 집안의 문객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후 평시서 직장(平市署直長),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거쳐 장연군수(長淵郡守), 연일군수(延日郡守), 재령군수(載寧郡守) 등 지방관을 역임했다.
의금부 도사로 재직하던 중, 1537년 몰락한 김안로를 호송하는 과정에서 과거 그의 문객이었다는 점이 홍문관 관원들에 의해 지적되었다. 이로 인해 그해 10월 의금부 도사직에서 체직(遞職)되었다.
1560년(명종 15년) 5월, 재령군수로 재직할 당시 지역 주민이 궐 앞에서 그의 선정을 칭찬하며 격쟁(擊錚)을 하였고, 이로 인해 특별히 품계가 오르고(가자, 加資) 재령군수직에 유임되었다. 이에 사간원에서는 "지난번 재령(載寧) 사람이, 군수 이즙(李楫)이 정치를 잘 한다고 궐정에서 격쟁하였는데 단지 한 사람이 호소한 말만을 의거하여 성급히 상가(賞加)를 내리라 명하셨으니, 물정(物情)이 온편하지 못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장단(長湍)의 완악한 백성이 그것을 본받아 어가를 놀라게까지 하였으니 몹시 놀랍습니다. 바라건대 이즙에게 상가를 내리시는 것을 개정하소서"라고 아뢰며 그의 가자가 부당하다고 비판하였으나, 명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해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되었고, 1562년에는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지냈다. 1563년(명종 18년) 6월에는 남양부사(南陽府使)로 부임하였다. 그해 10월, 권신으로 부상했던 동생 이량이 몰락하였으나, 이즙은 이에 연좌되지 않았다.
이량의 몰락 이후에도 8촌 친척인 김백균(金百鈞)이 이량의 측근으로 연루되어 몰락하자, 이즙에게 사적으로 다시 등용(敍用)될 수 있도록 청탁하기도 했다. 이즙은 김백균에게 편지를 보내 "명년 을축년(1565년) 정월에 마땅히 대사(大赦, 대사면)가 있을 터이니, 네가 반드시 서용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사실이 알려져 실록에 기록되기도 했다.
1564년과 1566년에 다시 장례원 판결사를 역임하였다. 1580년(선조 13년)에는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음력 윤 4월, 고령과 풍병(風病)으로 인해 조정에 입시했을 때 두 발을 뻗고 앉거나 궐문을 나서다 계단에서 소변을 보는 등 예를 갖추지 못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선조는 그의 병을 이유로 특별히 이를 무마해주었으나, 곧 파직되었다. 이후 복관되어 전주 부윤(全州府尹) 겸 전주 진관 병마절제사(全州鎭管兵馬節制使)로 부임하였고, 그해 전주 부윤으로 재직 중 사망하였다.
3. 가족 관계
여동생 완산부부인 이희경(完山府夫人 李希慶, 1511년 ~ 1559년)은 영의정 심연원의 아들이자 청릉부원군인 심강(靑陵府院君 沈鋼, 1514년 ~ 1567년)과 혼인하였다. 이에 따라 이즙은 심의겸, 심충겸 형제의 외삼촌이 된다. 또한, 이즙의 외조카딸인 심씨는 명종의 왕비 인순왕후(仁順王后)가 되었다. 이처럼 이즙은 왕실 및 당대 유력 가문과 깊은 인척 관계를 맺고 있었다.
명종과는 부계로는 12촌 형제간이며 (태종 → 효령대군 → 보성군 → 율원군 → 여양군 → 전성군 → 이즙 / 태종 → 세종 → 세조 → 의경세자 → 성종 → 중종 → 명종), 처가로는 외삼촌과 생질(甥姪, 조카) 관계가 된다.
4. 평가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꾀가 많은 사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5. 기타
청원군 한경록과도 사돈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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