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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현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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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태현은 1940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출생한 대한민국의 미술가이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원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60년대 앵포르멜과 네오다다 운동에 참여했으며, 1970년대부터 모더니즘 경향의 작품을, 1980년대 후반부터는 생물학적 유기체의 운동성과 기호를,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자연과 인공, 우연성과 기하학을, 2003년부터는 동양적 우주관을 작품에 담아왔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한국미술협전 대상,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 대한민국미술인상 대상 등이 있으며,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국내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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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현 (미술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태현 화백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태현 화백, 사진 권동철
이름이태현
출생일1940년 12월 29일
출생지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예천읍 왕신동
학력
대학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대학원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경력
분야회화
대표작Space(공간)

2. 생애

'''이태현'''은 1940년 12월 29일 경상북도 예천읍 왕신동에서 아버지 이규목(李圭木, 1920~1992), 어머니 김월순(金月順, 1918~2008) 사이에 4남 5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경주 이씨 평리공파 37세손(慶州李氏 評理公派 37世孫)이다. 1953년 예천서부초등학교(예천초등학교), 1956년 예천중학교, 1959년 안동사범(본과)학교를 졸업했다.

1959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재학 시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을 맞았다. 대학 때 이종우(李鍾禹, 1899~1979),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이봉상(李鳳商, 1916~1970), 손응성(孫應星, 1916~1979), 이종무(李種武, 1916~2003), 김숙진(金叔鎭, 1931~)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1982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원대학교 예술대학교수(1985~2006)로 재직했다. 1970년 반려자 우영희(禹嬰姬, 1948~)와 결혼했고 슬하에 3녀를 두었다.

2. 1.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이태현은 1940년 12월 29일 경상북도 예천읍 왕신동에서 아버지 이규목(李圭木, 1920~1992), 어머니 김월순(金月順, 1918~2008) 사이에 4남 5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경주 이씨 평리공파 37세손(慶州李氏 評理公派 37世孫)이다. 1953년 예천서부초등학교(예천초등학교), 56년 예천중학교, 59년 안동사범(본과)학교를 졸업했다.

1959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재학 시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을 맞았다. 대학 때 이종우(李鍾禹, 1899~1979),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이봉상(李鳳商, 1916~1970), 손응성(孫應星, 1916~1979), 이종무(李種武, 1916~2003), 김숙진(金叔鎭, 1931~)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1982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원대학교 예술대학교수(1985~2006)로 재직했다. 1970년 반려자 우영희(禹嬰姬, 1948~)와 결혼했고 슬하에 3녀를 두었다.

2. 2. 대학 시절과 초기 미술 활동

이태현은 1940년 12월 29일 경상북도 예천읍 왕신동에서 아버지 이규목(李圭木, 1920~1992), 어머니 김월순(金月順, 1918~2008) 사이의 4남 5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경주이씨 평리공파 37세손(慶州李氏 評理公派 37世孫)이다. 1953년 예천서부초등학교(예천초등학교), 1956년 예천중학교, 1959년 안동사범학교(본과)를 졸업했다.

1959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재학 중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을 겪었다. 대학에서는 이종우(李鍾禹, 1899~1979),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이봉상(李鳳商, 1916~1970), 손응성(孫應星, 1916~1979), 이종무(李種武, 1916~2003), 김숙진(金叔鎭, 1931~)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1982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 3. 결혼과 교육 활동

이태현은 1970년 우영희(禹嬰姬,1948~)와 결혼했고 슬하에 3녀를 두었다. 1959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재학 중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을 맞았다. 대학에서 이종우, 김환기, 이봉상, 손응성, 이종무, 김숙진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1982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서원대학교 예술대학교수(1985~2006)로 재직했다.

3. 미술 운동

이태현은 1962년 6월 2~8일까지 ‘국립도서관화랑’에서 열린 ‘무(無)동인’ 창립전 멤버이다.[1] 앵포르멜네오다다를 거치면서 한국현대미술의 전위적인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다.[1] 무동인, 청년작가연립전 등을 통해 데뷔하였으며, 이 시기 그의 작업은 네오다다에 가까운 신현실적인 경향을 다분히 띤 것이었다. 제스쳐 중심의 추상표현주의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일부의 젊은 세대 작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을 무렵 이태현은 그 중심에서 현상극복의 과감한 실험적 방법을 전개해 보여주었다.[2]

섬네일

3. 1. 1960년대: 앵포르멜과 네오다다

이태현은 1962년 6월 2~8일까지 ‘국립도서관화랑’에서 열린 ‘무(無)동인’ 창립전 멤버이다.[1] 앵포르멜네오다다를 거치면서 한국현대미술의 전위적인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다.[1] 무동인, 청년작가연립전 등을 통해 데뷔하였으며, 이 시기 그의 작업은 네오다다에 가까운 신현실적인 경향을 다분히 띤 것이었다. 제스쳐 중심의 추상표현주의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일부의 젊은 세대 작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을 무렵 이태현은 그 중심에서 현상극복의 과감한 실험적 방법을 전개해 보여주었다.[2]

3. 2.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

이태현은 앵포르멜네오다다를 거치면서 한국현대미술의 전위적인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다.[1] 1962년 6월 2일부터 8일까지 ‘국립도서관화랑’에서 열린 ‘무(無)동인’ 창립전 멤버이며, 청년작가연립전 등을 통해 데뷔하였다.[2] 이 시기 그의 작업은 네오다다에 가까운 신현실적인 경향을 보였다.[2] 제스쳐 중심의 추상표현주의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확산될 때, 이태현은 그 중심에서 실험적 방법을 전개했다.[2]

4. 작품 세계

4. 1. 1970~1985년: 모더니즘 경향 흑백대비의 선

1970년대 ‘미로’시리즈는 패턴과 반복에 기초한 모더니즘 경향과 중반에 들어서면서 일루전 효과를 나타낸다. 80년대 들어오면 화면은 단조롭지만 예리한 선조(線條)를 드러낸다. “섬광과도 같은 단음조(單音調)의 선조로 구조를 드러내기 시작 한 색 띠가 수평, 수직, 사선의 연결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이 80년대 초의 작품에 있어서는 ‘어둠’을 암시하는 차폐된 공간 속에서의 ‘열림’을 통하여 일층 선명해진 빛과 어둠과의 극명한 긴장관계, 흑백의 첨예한 대비 관계를 시사하는듯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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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태현 공간구조 역시 엄격한 질서의 틀을 통해 평정(equilibrium)이란 독자적인 개념적 실체를 획득하고 있다. 화면의 공간구조도 지각, 현상적 측면이 아닌 추상적, 상징적 측면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4]

4. 2. 1986~1994년: 생물학적 유기체 운동성과 기호

1980년대 중후반부터 이태현의 작업은 무한 순환 반복 구조의 동심원 패턴과 배열되는 기호들을 포용하는 강한 운동성을 드러낸다. 원은 구심원적으로 좁혀 들어가기도 하고 원심원적으로 바깥으로 분산되기도 하는데, 작가는 정제된 형태의 틀을 점차 ‘지우기’의 방법을 써서 무화(無化)시키려는 계산을 깔고 있다. 이는 ‘작위’에서 ‘무작위’로의 이행이며, 일체의 자연이 지닌 ‘생성’과 ‘소멸’의 법칙을 명암의 효과와 지우기로서 화면에 성취시키려는 작업이다.[5]

섬네일


화면은 형상 내부에 그라데이션의 매스를 불규칙한 방향으로 난무하듯 배열하거나 아예 나이프로 긁어 표현된 짧은 막대 형태들을 일정한 패턴 아니면 자유분방하게 으깨어 결합하는 등 여러 가지 양상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그가 가졌던 세계(자연)에 대한 인식의 방법을 크게 수정하고 새로운 접근의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6]

4. 3. 1995~2002년: 자연과 인공, 우연성과 기하학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이태현의 작업은 우연성을 바탕으로 한 비정형적, 비결정적 마블링 수법과 색막대로 집약된다. 색막대는 기계적이며 가공적인 느낌을 주며, 바탕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대조를 이룬다. 작가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자연(自然)과 인공(人工)의 긴장을 환기시키고자 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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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링이 만든 화면은 결정된 것이 없는 흑암, 혼돈, 태초, 카오스의 공간을 연상시킨다. 그 위에 중첩되는 기하학은 이성과 질서, 논리와 개념을 의미한다.[8]

4. 4. 2003년~현재: 일루전과 실재, 동양적 우주관

2003년에 들어 이태현의 작품은 부유하는 우주기호들을 포용하고 자연의 질서가 투영된 화면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동양인의 우주관인 주역(周易)의 괘(卦)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토막의 검은 선조는 다름 아닌 8괘를 원용한 것이다. 부표처럼 화면에 부상하던 작은 점획의 기호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띠를 만든다. 그것은 단순한 기호의 원용이란 차원을 넘어서 동양인의 사유의 체계를 평면이란 공간 속으로 유도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9]

섬네일


"면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테이프 작업에 의해 여러 번으로 나뉘어 행해짐으로써 사각의 형태들이 본래의 바탕 위에 겹쳐지게 된다. 그의 이러한 실험은 다소 복잡한 변형과정을 거쳤지만, 일루전과 실재에 대한 관계의 증명이라는 점에서 매우 논리적이며 초기의 조형실험의 연장선상에 있다."[10]

5. 평가

이태현 작가의 회화는 평면이라는 고집을 꺾지 않고, 화면에 평면적 해석과 중성화(中性化) 문제에 집착하며 도전한다.[11] 색채의 금욕적인 절제와 엄격한 조형 논리가 자기 통어의 수단으로 작가의 전체적인 시대 진행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미니멀리즘 지향과 방법적인 측면에서 모노톤 구사가 일관된 기조로 이어진다는 것을 반영한다.[12]

6. 주요 연혁

이태현은 1940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출생하였다. 1959년 안동사범(본과)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82년에는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5년부터 2006년까지 청주 서원대학교 예술학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예술대학장 및 예술문화연구소장을 역임하였다. 2003년에는 교토세이카대학(京都精華大学) 객원연구교수를 역임하였다.

1978년 제14회 한국미술협전 대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과 1981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하였다. 2006년에는 녹조근정훈장을 수훈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초대동문회장을 역임하였으며, 2012년에는 경기도 문화예술진흥표창을 받았다. 2019년에는 한국미술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인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7. 개인전 및 단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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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 2022 통인화랑 서울
  • 2021 영은미술관, 경기광주
  • 2019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 2014 갤러리 그리다, 서울
  • 2011 한가람미술관 MANIF, 서울
  • 2010 한원미술관, 서울
  • 2006 신미술관, 청주
  • 2006 인사아트센터, 서울
  • 2003 중화갤러리(中和ギャラリー), 도쿄
  • 2001 청주예술의전당, 청주
  • 2000 조선화랑, 서울
  • 1998 종로갤러리, 서울
  • 1995 종로갤러리, 서울
  • 1991 금호미술관, 서울
  • 1989 백송화랑, 서울
  • 1984 관훈갤러리, 서울
  • 1980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단체전'''

  • 1962 무(無)동인회 창립전(국립도서관화랑, 서울)
  • 1967 현대미술의 실험전 및 한국청년작가연립전(중앙공보관화랑, 서울)
  • 1972 제1회 앙데팡당전(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1973 판화8인전(한국예술화랑, 서울)
  • 1974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계명대학교미술관). 서울비엔날레(한국아방가르드협회주최,국립현대미술관). 제1회 서울현대미술제(국립현대미술관)
  • 1976 제2회 무한대 협회전(문예진흥원미술회관, 서울). 제12회 아시아현대미술전(동경도미술관)
  • 1978 제4회 인도트리엔날레(뉴델리). 제1회 중앙미술대전(중앙일보주최,국립현대 미술관)
  • 1979 에콜 드 서울전(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베네수엘라 대표작가전(베네수엘라)
  • 1980 한국판화드로잉대전(국립현대미술관). 제7회 한국미술대상전(한국일보,국립현대 미술관)
  • 1982 한국현대미술위상전(교토시미술관, 일본)
  • 1983~1992 현대미술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 1986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국립현대미술관)
  • 1989 한국현대미술 80년대의 정황전(갤러리 동숭아트센터개관기념, 서울)
  • 1990 한국미술 오늘의 상황전(예술의전당미술관개관기념, 서울). 제1회 충북추천작가초대전, (국립청주박물관)
  • 1991 한국현대미술의 ‘한국성’모색2–환원과 확산의 시기(한원미술관개관기념, 서울)
  • 1994 94서울미술대전(서울시립미술관). 서울정도600주년기념(국립현대미술관)
  • 1997 선화랑 개관20주년기념 200인전(서울)
  • 1998 제2회 김복진미술제(청주예술의전당)
  • 2001 대청현대미술제(국립청주박물관). 프랑스국립미술협회전(까루셀 뒤 루블, 파리)
  • 2003 박수근을 기리는 작가들(박수근미술관, 양구)
  • 2004 대구·경북지역 출향작가초대전(대구문화예술회관)
  • 2008 한국추상회화 1958-2008전(서울시립미술관)
  • 2009 C. KOAS 한·중 수교17주년기념 특별기획교류전(상상국제미술관, 북경)
  • 2015 한국추상화가 15인의 어제와 오늘(안상철미술관, 양주). 백두에서 한라까지-광복 70주년기념 KOREA 평화통일기념전(서울, 센양, 베를린, 뉴욕, 평양)
  • 2020 국립현대미술관 개관50주년기념전,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 2부 1950~2019 출품(국립현대미술관)
  • 2021 제19회 너른고을미술제(영은미술관, 경기광주)

7. 1. 개인전


  • 2022 통인화랑 서울
  • 2021 영은미술관, 경기광주
  • 2019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 2014 갤러리 그리다, 서울
  • 2011 한가람미술관 MANIF, 서울
  • 2010 한원미술관, 서울
  • 2006 신미술관, 청주
  • 2006 인사아트센터, 서울
  • 2003 중화갤러리(中和ギャラリー), 도쿄
  • 2001 청주예술의전당, 청주
  • 2000 조선화랑, 서울
  • 1998 종로갤러리, 서울
  • 1995 종로갤러리, 서울
  • 1991 금호미술관, 서울
  • 1989 백송화랑, 서울
  • 1984 관훈갤러리, 서울
  • 1980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7. 2. 단체전

1962년 무(無)동인회 창립전(국립도서관화랑, 서울)에 참여했다. 1967년 현대미술의 실험전 및 한국청년작가연립전(중앙공보관화랑, 서울)에 참여했다. 1972년 제1회 앙데팡당전(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참여했다. 1973년 판화8인전(한국예술화랑, 서울)에 참여했다.

1974년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계명대학교미술관), 서울비엔날레(한국아방가르드협회주최, 국립현대미술관), 제1회 서울현대미술제(국립현대미술관)에 참여했다. 1976년 제2회 무한대 협회전(문예진흥원미술회관, 서울), 제12회 아시아현대미술전(동경도미술관)에 참여했다. 1978년 제4회 인도트리엔날레(뉴델리), 제1회 중앙미술대전(중앙일보주최, 국립현대미술관)에 참여했다.

1979년 에콜 드 서울전(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베네수엘라 대표작가전(베네수엘라)에 참여했다. 1980년 한국판화드로잉대전(국립현대미술관), 제7회 한국미술대상전(한국일보, 국립현대미술관)에 참여했다. 1982년 한국현대미술위상전(교토시미술관, 일본)에 참여했다. 1983년부터 1992년까지 현대미술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에 참여했다.

1986년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국립현대미술관)에 참여했다. 1989년 한국현대미술 80년대의 정황전(갤러리 동숭아트센터개관기념, 서울)에 참여했다. 1990년 한국미술 오늘의 상황전(예술의전당미술관개관기념, 서울), 제1회 충북추천작가초대전(국립청주박물관)에 참여했다. 1991년 한국현대미술의 ‘한국성’모색2–환원과 확산의 시기(한원미술관개관기념, 서울)에 참여했다.

1994년 94서울미술대전(서울시립미술관), 서울정도600주년기념(국립현대미술관)에 참여했다. 1997년 선화랑 개관20주년기념 200인전(서울)에 참여했다. 1998년 제2회 김복진미술제(청주예술의전당)에 참여했다. 2001년 대청현대미술제(국립청주박물관), 프랑스국립미술협회전(까루셀 뒤 루블, 파리)에 참여했다.

2003년 박수근을 기리는 작가들(박수근미술관, 양구)에 참여했다. 2004년 대구·경북지역 출향작가초대전(대구문화예술회관)에 참여했다. 2008년 한국추상회화 1958-2008전(서울시립미술관)에 참여했다. 2009년 C. KOAS 한·중 수교17주년기념 특별기획교류전(상상국제미술관, 북경)에 참여했다.

2015년 한국추상화가 15인의 어제와 오늘(안상철미술관, 양주), 백두에서 한라까지-광복 70주년기념 KOREA 평화통일기념전(서울, 센양, 베를린, 뉴욕, 평양)에 참여했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50주년기념전,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 2부 1950~2019 출품(국립현대미술관)에 참여했다. 2021년 제19회 너른고을미술제(영은미술관, 경기광주)에 참여했다.

8. 미술관 소장

이태현의 작품은 리움미술관, 서귀포시립 기당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미술관, 환기미술관, 한원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참조

[1] 간행물 자기 내면에 질서의식의 성소를 짓다 2021
[2] 간행물 질서와 생성의 공간 1998
[3] 간행물 '어둠’에서 ‘열림’으로의 그라데이션' 1989
[4] 간행물 개념공간 구조공간 1991
[5] 간행물 '어둠’에서 ‘열림’으로의 그라데이션' 1989
[6] 간행물 해체창조(解體創造)로서의 공간(空聞) 1991
[7] 간행물 자연(自然)과 인공(人工)의 콘트라스트 1995
[8] 간행물 자기 내면에 질서의식의 성소를 짓다 2021
[9] 간행물 생성과 질서, 이태현의 조형과 그 편력 2006
[10] 간행물 일루전과 실재에 대한 관계 증명 2000
[11] 간행물 '어둠’에서 ‘열림’으로의 그라데이션' 1989
[12] 간행물 생성과 질서, 이태현의 조형과 그 편력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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