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제1차 후나 전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제1차 후나 전쟁은 496년부터 515년까지 굽타 제국과 헵탈 훈족, 알촌 훈족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굽타 제국의 쇠퇴 속에서 훈족은 펀자브를 장악하고 굽타 제국 영토를 침공했으며, 코삼비를 약탈하고 말와를 정복했다. 510년 에란 전투에서 굽타 제국은 패배했지만, 515년 다샤푸라 전투에서 아울리카라 왕조의 프라카샤다르만이 토라마나를 격파하면서 전쟁은 훈족의 패배로 끝났다. 훈족은 불교를 수용하기도 했으나, 미히라쿨라는 불교를 박해하기도 했으며, 태양 숭배와 힌두교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굽타 제국이 참전한 전쟁 - 찬드라굽타 2세의 발흐 원정
    찬드라굽타 2세의 발흐 원정은 굽타 제국 시대에 훈자 비문과 델리의 철 기둥 비문을 통해 펀자브, 방가 왕국, 신두강 유역, 발흐(박트리아)를 정복한 군사적 활동으로, 굽타 제국의 승리로 끝났다.
  • 굽타 제국이 참전한 전쟁 - 굽타-사카 전쟁
    굽타-사카 전쟁은 4세기 굽타 제국이 서사트라프와의 갈등 속에서 팽창 정책을 통해 경제적 이익 확보, 정치적 지배력 강화, 외세 간섭 억제를 추구한 전쟁으로, 굽타 제국의 승리를 통해 영토 확장과 경제적 번영을 이루며 강력한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 에프탈 - 준빌
  • 에프탈 - 부하라 전투
    부하라 전투는 6세기 중반 사산 제국과 돌궐 연합군이 에프탈 제국을 공격하여 에프탈 제국을 멸망시키고 사산 제국이 아무다리야 남쪽 지역을 병합한 전투이다.
제1차 후나 전쟁 - [전쟁]에 관한 문서
분쟁 개요
분쟁제1차 후나 전쟁
부분굽타-훈족 전쟁
날짜502년–515년
장소말와, 카우샴비, 에란
결과굽타 제국의 승리
영토알촌 훈족 군대가 펀자브 지역으로 후퇴함
교전 세력
교전국 1굽타 제국
지원군아울리카라 왕조
교전국 2알촌 훈족
지휘관
굽타 제국 지휘관나라심하굽타
굽타 제국 지휘관바누굽타
굽타 제국 지휘관부다굽타
굽타 제국 지휘관고파라자
굽타 제국 지휘관프라카샤다르마
알촌족 지휘관토라마나

2. 훈족의 인도 침입 배경

"후-인도 볼커반데룽(post-Indic Völkerwanderung)"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J. 토인비가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당시 굽타 제국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의 이전 침략은 찬드라굽타 2세스칸다굽타에 의해 격퇴되었지만, 지속적인 침략은 제국을 약화시키고 내정을 뒤흔들어 그들을 훈족의 단순한 속국으로 만들었다.

최대 영토에서의 그레코-박트리아 왕국 지도, 기원전 180년경.




인도 역사의 고대 및 중세 시기를 살펴보면, 갠지스 계곡의 제국이 공개적으로 직면한 가장 큰 압박은 인도 아대륙의 북서쪽 관문에서 비롯되었다. 지적했듯이, 인더스 분지는 중앙 및 서아시아의 무리들에게 큰 매력적인 지역이었으며, 그들은 약화된 갠지스 제국을 착취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마우리아 제국의 멸망은 박트리아인과 인도-그리스인의 제국 내륙으로의 잇따른 침략과 관련이 있었다. 비록 일부 갠지스 제국이 이러한 외세의 침략을 막으려 노력했지만, 예를 들어, 슝가는 인도-그리스 침략을 막았지만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옛 영광을 유지할 수 없었고, 이는 사카, 쿠샨, 훈족 무리의 잇따른 외세 침략으로 이어졌다.

훈족의 맹공은 마우리아 시대 이후의 인도-그리스인과 중세 시대의 튀르크 민족이 준수했던 일관된 지리적 패턴을 따랐다. 인도-그리스인과 튀르크 민족처럼, 훈족은 먼저 펀자브에서 그들의 세력을 통합했다. 스칸다굽타에게 패배한 후, 그들은 다시 페르시아에 주목했다. 그들이 서기 456년에 침략했을 때, 우리는 야즈데게르드 2세가 그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싸우는 것을 발견한다. 그가 서기 457년에 사망한 후, 피루즈사산 제국의 황제가 되었지만, 헵탈 왕 아크슌와르는 그를 좌절시키고 조공을 바치도록 강요했다. 서기 484년, 피루즈는 헵탈족에 대항하는 원정을 감행했지만 패배하고 죽었다.

빈센트 아서 스미스는 "이 성공으로 훈족의 세력은 최고조에 달했고, 5세기 말에는 그들은 발흐에 조상의 수도를 둔 광대한 제국을 지배했다."라고 하였다.

차반에 따르면, 서기 500년경 훈족 제국은 토카리스탄, 카불리스탄, 자불리스탄 지역에 있었지만, 인도의 영토는 간다라와 치트랄을 제외하고 제대로 통합되지 않았는데, 이들은 인도 아대륙의 북서쪽 가장자리였다.

숭윤은 "이것은 예-타가 파괴하고, 그 후 이 나라의 왕으로 첵레(테긴, 왕자 또는 왕족)를 세운 나라이며, 그 이후 두 세대가 지났다."라고 하였다.

숭윤의 진술에 따르면, 그의 서기 520년경 간다라 방문보다 적어도 두 세대 전에 간다라까지 확장되었음이 분명하다. 비록 이 훈족이 누구의 지도력 하에 간다라를 정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S.R. 고얄에 따르면, 그것은 간다라를 정복한 라마닐라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의 후계자는 토라마나였다.

나중에 토라마나가 등장하여 훈족 무리를 펀자브에 통합하고 훈족의 세력을 펀자브까지 확장했다. 펀자브에서 통합한 후, 그는 제국이 내분으로 인해 흔들리고 많은 황제들이 살해되거나 속국에 의해 밀려났을 때 굽타 영토에서 잇따른 원정을 시작했다. 예를 들어, 서기 778년에 쓰여진 자이나교 작품은 "토라마다 (한 필사본에는 토라라야로 쓰여짐)는 세계 또는 우타라파타를 누렸고 찬드라바가 (체나브) 강둑의 파브바이아에 살았다."라고 하였다.

게다가, 굽타 가문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하리굽타가 토라마나의 스승이었다고 한다. 하리굽타의 제자인 데바굽타는 라자르시(왕족 현자)라고 하며, 라술 나가르와 판찰라의 구리 동전은 하리굽타의 확실성을 재확인한다.

최근 코삼비에서 발견된 토라마나의 두 개의 봉인은 그가 적어도 코삼비까지 도달했음을 나타낸다. S.R. 고얄은 이 추측에 동의하며, 인도 역사의 고대 시기부터 북서쪽에서 온 침략자들이 항상 갠지스 계곡까지 쓸려 내려갔다는 사실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토라마나가 코삼비를 통합하지 않고서는 말와까지 진군할 수 없었음을 고려할 때, 이는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에란까지 진격하기 전에 갠지스 상류 계곡의 대부분이 토라마나에게 정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 1. 굽타 제국의 쇠퇴

4세기 후반부터 굽타 제국은 내부 분열과 잦은 왕위 계승 다툼으로 인해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찬드라굽타 2세스칸다굽타 시기에 잠시 안정을 되찾았으나, 지속적인 훈족의 침입은 제국의 국력을 약화시키고 내정을 뒤흔들어 굽타 제국훈족의 단순한 속국으로 만들었다. 지방 세력의 성장과 봉건제의 발달은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인도 역사의 고대 및 중세 시기를 살펴보면, 갠지스 계곡의 제국이 공개적으로 직면한 가장 큰 압박은 인도 아대륙의 북서쪽 관문에서 비롯되었다. 인더스 분지는 중앙 및 서아시아의 무리들에게 큰 매력적인 지역이었으며, 그들은 약화된 갠지스 제국을 착취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마우리아 제국의 멸망은 박트리아인과 인도-그리스인의 제국 내륙으로의 잇따른 침략과 관련이 있었다. 비록 일부 갠지스 제국이 이러한 외세의 침략을 막으려 노력했지만, 예를 들어, 슝가는 인도-그리스 침략을 막았지만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옛 영광을 유지할 수 없었고, 이는 사카, 쿠샨, 훈족 무리의 잇따른 외세 침략으로 이어졌다.

훈족의 맹공은 마우리아 시대 이후의 인도-그리스인과 중세 시대의 튀르크 민족이 준수했던 일관된 지리적 패턴을 따랐다. 인도-그리스인과 튀르크 민족처럼, 훈족은 먼저 펀자브에서 그들의 세력을 통합했다. 스칸다굽타에게 패배한 후, 그들은 다시 페르시아에 주목했다. 서기 484년, 피루즈는 헵탈족에 대항하는 원정을 감행했지만 패배하고 죽었다.

숭윤의 진술에 따르면, 그의 서기 520년경 간다라 방문보다 적어도 두 세대 전에 간다라까지 확장되었음이 분명하다. 비록 이 훈족이 누구의 지도력 하에 간다라를 정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S.R. 고얄에 따르면, 그것은 간다라를 정복한 라마닐라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의 후계자는 토라마나였다.

나중에 토라마나가 등장하여 훈족 무리를 펀자브에 통합하고 훈족의 세력을 펀자브까지 확장했다. 펀자브에서 통합한 후, 그는 제국이 내분으로 인해 흔들리고 많은 황제들이 살해되거나 속국에 의해 밀려났을 때 굽타 영토에서 잇따른 원정을 시작했다.

2. 2. 인도-그리스 왕국과 슝가 왕조

2. 3. 훈족의 서진과 페르시아 침공

훈족은 중앙아시아에서 서진하여 페르시아사산 제국을 공격했다. 484년, 페르시아의 페로즈 1세는 헵탈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사했다. 이 승리로 훈족의 세력은 최고조에 달했고, 5세기 말에는 발흐에 수도를 둔 광대한 제국을 지배했다. 훈족은 페르시아를 압박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이후 인도 방면으로 진출했다.

3. 제1차 훈족 전쟁 (496-515년)

496년부터 515년까지 굽타 제국과 에프탈 훈족, 알촌 훈족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502년 에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토라마나가 이끄는 훈족이 승리하여 굽타 제국의 지역 총독 마트르비슈누를 살해하고 그의 형제 다냐비슈누를 에란에 임명했다.[26][27][28] 497년에서 500년 사이에는 코삼비를 약탈했다.[26][27][28]

510년 훈족은 말와를 점령했다. 같은 해 에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굽타 제국의 황제 반구프타는 토라마나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그의 장군 고파라자가 전사하며 패배했다.

515년 다샤푸라 전투에서 제2 아울리카라 왕조의 다샤푸라 왕 프라카샤다르만이 토라마나를 상대로 승리했다. 결과적으로 '''굽타 제국이 승리'''했으며, 훈족 왕은 제2 아울리카라 왕조에게 패배했다.

3. 1. 훈족의 간다라 정복

3. 2. 토라마나의 굽타 제국 침공

토라마나는 펀자브 지역을 장악하고 굽타 제국의 영토를 침공했다. 자이나교 문헌 '쿠발라야말라'에는 토라마나가 찬드라바가 강변의 파브바이아를 통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굽타 가문의 하리굽타가 토라마나의 스승이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아리아 만줄스리 물라 칼파에 따르면, 바누굽타의 아들로 확인된 프라카샤디티야가 고파라자 왕에게 투옥되었다가 토라마나에 의해 석방되었고, 토라마나는 갠지스 강 유역을 따라 지배권을 확장했다. 이는 바누굽타가 토라마나의 진격을 막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토라마나는 정복자이자 외교관으로서 굽타 제국 황제를 종속적인 지위로 전락시켰다. 화폐 증거는 우타르프라데시, 라자스탄, 펀자브, 카슈미르를 포함한 지역에 대한 토라마나의 통치를 보여주며, 문헌 자료는 그의 원정이 가우다 왕국까지 확장되었음을 시사한다. 토라마나는 굽타 제국 내부의 분열을 활용하여 중앙 지역에서 권력을 강화했으며, 기존 행정 구조를 보존하고 고대 굽타 제국 관리 가문의 지원을 요청했다. 토라마나의 통치는 고대 인도에서 정치적 격변과 재정렬의 중요한 시기를 나타냈으며, 이 지역의 권력 역학을 재편했다.

3. 3. 코삼비 약탈과 말와 정복

토라마나는 카우삼비를 약탈하고[18][19][20] 말와 지역까지 진출하여 굽타 제국을 압박했다.[16] 에란에서 발견된 비문들을 통해 훈족의 말와 정복 과정을 추정할 수 있다.[6] 484년 부다굽타 통치 기간에 마하라자 마트리브슈누와 그의 형제 다냐비슈누가 건축물을 세웠다는 비문이 있는데, 이후 마트리브슈누 사후 다냐비슈누가 토라마나에게 충성을 바쳐 사원을 건설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484년 이후 훈족에게 충성을 바꿨음을 알 수 있다.[19]



510년, 바누굽타는 에란에서 훈족과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했고, [6] 이로 인해 말와의 서부 굽타 지방이 훈족의 손에 넘어갔다.[6] 6세기 불교 저작인 '''만주스리-물라-칼파'''에 따르면, 바누굽타는 말와를 "슈드라" 토라마나에게 잃었고, 토라마나는 마가다까지 정복을 계속하여 나라심하굽타 발라디티야가 벵골로 후퇴하게 만들었다.[8][9]

굽타로부터 말와 지역을 정복한 토라마나는 에란의 비문에 언급되어 이 지역에 대한 그의 통치를 확인했다.[6] 즉위 첫 해에 작성된 '''토라마나의 에란 멧돼지 비문'''은 동부 말와가 그의 지배하에 있었음을 나타낸다.[19] 이 비문은 멧돼지 목 아래에 산스크리트어로 8행에 걸쳐 브라흐미 문자로 새겨져 있으며, 토라마나를 '마하라라자디다자'(대왕 중의 왕)로 소개한다.[19] 굽타 황제의 양식으로 인도에서 주조된 금화에서 토라마나는 자신을 "세상을 정복한 토라마나, 하늘을 얻다"라고 칭했다.[12][13]

제1차 훈족 전쟁 (496–515년)에서, 알촌은 최대 영토를 확장하여 토라마나 왕이 인도 영토 깊숙이 진출하여 구자라트와 중앙 인도의 마디아프라데시에 도달했으며, 결국 굽타 제국의 멸망에 기여했다.[16] 남쪽으로, 산젤리 비문은 토라마나가 적어도 북부 구자라트까지, 그리고 아마도 바루카차 항구까지 진출했음을 나타낸다.[17] 동쪽으로, 중앙 인도 깊숙이 들어간 카우삼비는 토라마나의 이름이 새겨진 인장이 발견된 곳으로, 아마도 그들이 말와를 점령하기 전에 497~500년에 알콘족에 의해 약탈되었을 것이다.[18][19][20] 특히, 카우삼비의 고시타라마 수도원은 토라마나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의 인장이 여러 개 발견되었으며, 그 중 하나는 수도원의 공식 인장 위에 ''토라마나''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후나라자''("훈족의 왕")라는 칭호와 함께 파편과 화살촉이 발견되었다.[21]

3. 4. 바누굽타와 토라마나의 전투

바누굽타는 말와의 에란에 있는 석주 비문으로 알려져 있다.[5] 1888년 존 페이스풀 플리트가 처음 번역했고, 1981년에 다시 번역되면서 서로 다른 해석을 낳았다.[5]

남성 두상, 북부 인도, 서기 5~6세기


최초 번역에 따르면, 바누굽타는 510년에 특정 전투에 참여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6] 이 전투는 알촌 훈의 통치자 토라마나와의 전투로 추정되며, 바누굽타가 패배하여 말와 서부 지역이 훈족의 지배하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6]

|thumb|left|upright=0.79|토라마나의 초상화. 그는 카우삼비를 약탈하고 말와를 점령했다.[7]]]

그러나 1981년의 새로운 번역에 따르면, 바누굽타는 마이트라카와 전투를 벌였고, 토라마나와의 전투를 암시했다는 주장은 힘을 잃게 되었다.[5]

|thumb|upright=1.36|마이트라카는 구자라트와 서인도 지역을 통치했다. 1981년 번역에 따르면, 그들은 굽타 통치자 바누굽타의 적이었을 수 있다.[5]]]

510년 에란 전투에서 바누굽타의 군대는 심각한 피해를 보았고, 그의 장군 고파라자가 전사했다.[6] 비문에는 바누굽타가 "마하라자"나 "마하라자디라자"가 아닌 "라자"로만 언급되어, 굽타 제국 통치자 나라심하굽타 치하의 말와 지역 총독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6세기 불교 저작인 '''만주스리-물라-칼파'''에 따르면, 바누굽타는 말와를 토라마나에게 잃었고, 토라마나는 마가다까지 정복하여 나라심하굽타를 벵골로 후퇴하게 만들었다.[8][9]

{{multiple image

| align = right

|direction=vertical

| total_width =220

| image1 = Eran Boar.jpg

| caption1 = 에란의 "바라하" 멧돼지 조각상으로, 그 목 아래에서 토라마나의 에란 멧돼지 비문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토라마나의 통치를 언급하고 있다.[10]

| image2=Maharajadhiraja Sri Toramana on Eran boar inscription.jpg

| caption2=

| image3 = Toramana gold coin circa 490-515.jpg

| caption3 = 굽타 양식의 토라마나 금화. 앞면에는 "세상을 정복한 토라마나, 하늘을 얻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12][13]

}}

말와를 정복한 후, 토라마나는 에란의 비문을 통해 자신의 통치를 확인했다.[6] 그의 즉위 첫 해에 작성된 '''토라마나의 에란 멧돼지 비문'''은 동부 말와가 그의 지배하에 있었음을 나타낸다.[19]

3. 5. 아울리카라 왕조의 반격

515년, 아울리카 왕조의 프라카샤다르마 왕은 리스탈 석판 비문에 기록된 바와 같이 토라마나를 격파했다.[17][25] 이로써 제1차 훈족 전쟁은 훈족의 패배로 끝났으며, 훈족 군대는 펀자브 지역으로 물러났다.[25] 만주스리-물라-칼파에 따르면, 토라마나는 바라나시에서 사망했다고 한다.[6] 한편, 510 CE 에란 비문에서 바누굽타가 "대 전투"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22][23][24] 이 전투가 토라마나를 물리친 전투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무케르지를 비롯한 학자들은 이 비문과 ''만주스리-물라-칼파''를 근거로 바누굽타가 에란 전투에서 토라마나에게 패배하여 말와 서부 굽타 영토가 훈족의 손에 넘어갔다고 보기도 한다.[6]

4. 훈족의 종교적 영향

킨길라, 토라마나, 자부카, 메하마 등 4명의 알촌 왕들은 서기 492년 또는 493년에 제작된 탈라간 동판 비문에 불교 탑에 기증자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훈족 전쟁이 인도에서 시작되기 전의 시점이다.[29] 이는 알촌이 북서부 인도의 불교 지역 중심지인 탁실라를 (서기 460년경) 최근에 장악한 시기와 일치한다.[29] 다수의 알촌 주화가 아프가니스탄 하다의 "토페 칼란" 탑의 헌납실에서 발견되었다.[30]



붓카라 탑 (붓카라 I, 건설 4단계)의 불교 단지에서 발견되는 벽화에는 알촌 신봉자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는데, 서기 5세기로 추정되는 이 그림들은 알촌 훈족이 지역 불교 문화에 참여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31]

4. 1. 초기 불교와의 관계

킨길라, 토라마나, 자부카, 메하마 등 4명의 알촌 왕들은 서기 492년 또는 493년에 제작된 탈라간 동판 비문에 불교 탑에 기증자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훈족 전쟁이 인도에서 시작되기 전의 시점이다.[29] 이는 알촌이 북서부 인도의 불교 지역 중심지인 탁실라를 (서기 460년경) 최근에 장악한 시기와 일치한다.[29] 다수의 알촌 주화가 아프가니스탄 하다의 "토페 칼란" 탑의 헌납실에서 발견되었다.[30]

붓카라 탑 (붓카라 I, 건설 4단계)의 불교 단지에서 발견되는 벽화에는 알촌 신봉자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는데, 서기 5세기로 추정되는 이 그림들은 알촌 훈족이 지역 불교 문화에 참여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31]

4. 2. 미히라쿨라의 불교 박해

미히라쿨라는 북부(현재의) 파키스탄 간다라에서 불교를 "끔찍하게 박해한 자"였다고 불교 자료에 기록되어 있다.[32] 그의 통치 기간 동안 간다라 전역의 천 개가 넘는 불교 사원이 파괴되었다고 한다.[33] 630년경 중국 승려 현장의 기록에 따르면 미히라쿨라는 불교 파괴와 승려 추방을 명령했다.[16] 현장은 630년경 북서 인도를 방문했을 때, 불교가 급격히 쇠퇴하여 대부분의 사원이 버려지고 폐허가 되었다고 보고했다.[34]

전통적으로 힌두교 왕조였던 굽타 왕조는[35] 알촌의 침략 시기에 불교를 옹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 작가 파라마르타에 따르면, 미히라쿨라의 숙적인 나라심하굽타 발라디티야는 대승 불교 철학자 바수반두의 영향 아래 자랐다.[35] 그는 날란다에 승가람을 세웠다. ''만주스리물라칼파''에 따르면, 나라심하굽타 왕은 불교 승려가 되었고, 명상(선)을 통해 세상을 떠났다.[35]

12세기의 카슈미르 역사학자 칼하나 또한 미히라쿨라의 잔혹함과 불교 박해에 대해 암울한 기록을 남겼다.[38]

4. 3. 태양 숭배와 힌두교

알콘족은 일반적으로 스텝 유목민의 전통적인 숭배 대상인 태양 숭배자로 묘사된다. 이는 일부 주화에 태양 기호가 나타나는 것과 그들이 인도에서 수르야 숭배로부터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향에서 비롯된다.[39] 힌두교 비슈누교의 여신인 락슈미는 일부 통치자, 특히 킹길라[40][41]와 토라마나의 주화에 나타난다.
힌두 여신 락슈미가 새겨진 킹길라의 주화.
미히라쿨라는 시바의 열렬한 숭배자였으며,[42][43] 스리나가르에 있는 시바에게 헌정된 사원인 샹카라차르야 사원의 창건자라고 한다.[44]

5. 결론 및 한국사의 관점

참조

[1] 서적 The Aulikaras of Central India: history and inscriptions https://books.google[...] Arun Pub. House
[2] 서적 A Historical atlas of South Asia https://dsal.uchicag[...]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
[3] 서적 Ancient Indian History and Civilization
[4] 서적 Encyclopaedia of Indian Events & Dates
[5] 간행물 Corpus Inscriptionum Indicarum Vol.3 (inscriptions Of The Early Gupta Kings) https://archive.org/[...]
[6] 서적 The Gupta Empire https://books.google[...] Motilal Banarsidass
[7] 논문 Three Hunnic Bullae from Northwest India https://www.jstor.or[...] 2003
[8] 서적 The Hūṇas in India https://books.google[...] Chowkhamba Sanskrit Series Office
[9] 서적 The Hūṇas in India https://books.google[...] Chowkhamba Sanskrit Series Office
[10] 웹사이트 Coin Cabinet of the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http://pro.geo.univi[...] 2017-07-23
[11] 서적 Inscriptions Of The Early Gupta Kings And Their Successors https://archive.org/[...] 1960
[12] 웹사이트 CNG: Feature Auction Triton XIX. HUNNIC TRIBES, Alchon Huns. Toramana. Circa 490-515. AV Dinar (18 mm, 9.53 g, 12h). https://www.cngcoins[...] 2023-04-02
[13] 웹사이트 The Identity of Prakasaditya by Pankaj Tandon, Boston University http://coinindia.com[...] 2023-04-02
[14] 논문 The Identity of Prakāśāditya http://coinindia.com[...] 2015-07-07
[15] 서적 Indian Archaeology 1954–55 A review http://nmma.nic.in/n[...]
[16] 서적 Early Buddhist Transmission and Trade Networks: Mobility and Exchange Within and Beyond the Northwestern Borderlands of South Asia https://books.google[...] BRILL 2010-11-19
[17] 서적 The World of the Skandapurāṇa https://books.google[...] BRILL 2014-07-16
[18] 서적 Indian History https://books.google[...] Allied Publishers
[19] 서적 Dynastic History of Magadha, Cir. 450-1200 A.D. https://books.google[...] Abhinav Publications
[20] 서적 Geography from Ancient Indian Coins & Seals https://books.google[...] Concept Publishing Company
[21] 서적 Geography from Ancient Indian Coins & Seals https://books.google[...] Concept Publishing Company 1989
[22] 서적 Archaeological Excavations in Central India: Madhya Pradesh and Chhattisgarh https://books.google[...] Mittal Publications
[23] 서적 Encyclopaedia of Indian Events & Dates https://books.google[...] Sterling Publishers Pvt. Ltd 2009-05-01
[24] 서적 The Classical Age https://books.google[...] Discovery Publishing House
[25] 서적 The Aulikaras of Central India: history and inscriptions https://books.google[...] Arun Pub. House
[26] 서적 Indian History https://books.google[...] Allied Publishers
[27] 서적 Dynastic History of Magadha, Cir. 450-1200 A.D. https://books.google[...] Abhinav Publications
[28] 서적 Geography from Ancient Indian Coins & Seals https://books.google[...] Concept Publishing Company
[29] 논문 A Note on the Schøyen Copper Scroll: Bactrian or Indian? https://ja.scribd.co[...] 2018-07-08
[30] 서적 Charles Masson and the Buddhist Sites of Afghanistan: Explorations, Excavations, Collections 1832–1835 https://zenodo.org/r[...] British Museum 2017
[31] 웹사이트 The Countenance of the other (The Coins of the Huns and Western Turks in Central Asia and India) 2012–2013 exhibit: 7. ALKHAN: KING KHINGILA AND THE CONSOLIDATION OF HUNNIC POWER IN NORTHWEST INDIA http://pro.geo.univi[...]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2017-07-16
[32] 서적 The Empire of the Steppes: A History of Central Asia https://archive.org/[...] Rutgers University Press
[33] 서적 Handbuch der Orientalistik BRILL 2004
[34] 서적 The Spread of Buddhism https://books.google[...] BRILL 2007-05-11
[35] 서적 A History of Ancient and Early Medieval India: From the Stone Age to the 12th Century https://books.google[...] Pearson Education India
[36] 서적 The University of Nālandā https://archive.org/[...] B. G. Paul & co.
[37] 서적 Buddhist Monks And Monasteries of India: Their History And Contribution To Indian Culture https://books.google[...] George Allen and Unwin Ltd.
[38] 서적 The First Spring: The Golden Age of India https://books.google[...] Penguin Books India
[39] 서적 Faiths Across Time: 5,000 Years of Religious History: 5,000 Years of Religious History https://books.google[...] ABC-CLIO 2014-01-15
[40] 서적 Dokumente zur Geschichte der iranischen Hunnen in Baktrien und Indien https://books.google[...] Otto Harrassowitz Verlag 1967
[41] 서적 Alchon und Nēzak: Zur Geschichte der iranischen Hunnen in Mittelasien
[42] 서적 Foreign Influence on Ancient India https://books.google[...] Northern Book Centre
[43] 서적 Studies in the Buddhistic Culture of India During the Seventh and Eighth Centuries A.D. https://books.google[...] Motilal Banarsidass
[44] 서적 "He is credited with the building of the temple named Jyeshteswara on the Gopa (Sankaracharya) hill in Srinagar" in Kashmir and Central Asia https://books.google[...] Light & Life Publishers 1980
[45] 서적 History and Culture of the Indian People, Volume 03, The Classical Age http://archive.org/d[...] Bharatiya Vidya Bhavan 1970
[46] 서적 History Of The Imperial Guptas http://archive.org/d[...]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