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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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3제국은 여러 사상적, 정치적 맥락에서 사용된 개념이다. 중세 시대 사상가 요아킴 데 피오레는 세계사를 세 시대로 나누며, 세 번째 시대를 이상적인 '성령의 나라'로 묘사했다. 19세기에는 헨리크 입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등이 제3제국을 이상 국가로 언급했으며, 특히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를 세 번째 로마 제국으로 칭했다. 20세기 초 독일에서는 보수혁명 사상가 아르투어 묄러 판 덴 브루크가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잇는 제3제국을 주장했고, 나치당은 이 용어를 자신들의 통치 체제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제3제국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일본에서는 카야하라 카잔이 민본주의 제국을, 한국에서는 독재 정권 비판과 민주주의 열망 속에서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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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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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제3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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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제3제국 독일국 나치 독일 천년 제국 세번째 제국 세 번째 라이히 세 번째 왕국 세 번째 영역 천년 왕국 |
기본 정보 | |
존속 기간 | 1933년 1월 30일 ~ 1945년 5월 8일 |
수도 | 베를린 |
공용어 | 독일어 |
정치 체제 | |
정치 체제 | 전체주의 독재 국가 |
정부 | 나치당 일당제 독재 |
총통 | 아돌프 히틀러 (1933년-1945년) |
총리 | 아돌프 히틀러 (1933년-1945년) 요제프 괴벨스 (1945년) 카를 되니츠 (1945년) |
입법부 | |
입법부 | 국회 |
역사 | |
주요 사건 | 나치당 권력 장악 (1933년 1월 30일) 재무장 선언 (1935년) 라인란트 재무장 (1936년) 오스트리아 합병 (1938년) 뮌헨 협정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1939년) 폴란드 침공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1939년 9월 1일) 프랑스 침공 (1940년) 소련 침공 (1941년) 노르망디 상륙 (1944년 6월 6일) 베를린 전투 (1945년) 독일 항복 (1945년 5월 8일) |
경제 | |
통화 | 라이히스마르크 |
인구 | |
추정치 (1939년) | 80,000,000명 |
기타 | |
국가 코드 | DE |
시간대 | CET/CEST |
인터넷 최상위 도메인 | .de |
2. 중세 시대의 "제3의 나라"
중세 이탈리아의 사상가 요아킴 데 피오레는 세계사를 세 시대로 구분하는 '삼시대설'을 주장했다. 여기서 "세 번째 나라"는 다가올 이상적인 나라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7]
2. 1. 요아킴 데 피오레의 삼시대설
요아킴 데 피오레는 세계사를 “삼시대설”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세 시대로 구분했다. 그는 먼저 “율법 아래 속인이 사는 ‘아버지의 나라’ 시대”, “예수 그리스도 아래 성직자가 사는 ‘아들의 나라’ 시대”, 최후의 심판 후에 도래하는 “자유로운 정신 아래 수도승이 사는 ‘성령의 나라’ 시대”로 나누었다. 여기서 “세 번째 나라”는 다가올 이상적인 나라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요아킴 데 피오레는 1260년부터 영원한 복음의 시대가 시작된다고 했다.[7]3. 러시아와 북유럽의 제3제국
19세기 러시아와 북유럽에서는 '제3제국' 개념이 종교적, 문학적 맥락에서 논의되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성스러운 러시아가 세 번째 로마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의 사상은 아르투어 멜러 판 덴 브룩에게 영향을 주었다.[7] 나치 정권에서 국민계몽·선전장관을 지낸 요제프 괴벨스도 도스토옙스키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8] 헨리크 입센은 1873년 희곡 《황제와 갈릴리인(영어판)》에서 "제3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디트리히 에카르트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7] 드미트리 메레슈코프스키도 유사한 의미에서 "제3제국"을 지향했다.
3.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제3제국론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이 신앙 부족으로 멸망했다고 보았고, 성스러운 러시아가 세 번째 로마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7] 도스토옙스키의 사상은 독일의 도스토옙스키 연구가 아르투어 묄러 판 덴 브루크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묄러 판 덴 브루크는 《제3제국》(Das Dritte Reich)을 저술했다.[7]3. 2. 헨리크 입센의 제3제국
헨리크 입센은 1873년 희곡 《황제와 갈릴리인(영어판)》에서 중세 기독교 문명을 "영혼의 제국", 고대 그리스 사상 문명을 "고기의 제국"이라며 이 두 가지를 가진 이상 국가를 "제3제국"이라고 말했다. 입센에 따르면, 헬레니즘 단계와 기독교 단계를 종합하는 황제 율리아누스에게서 실현되는 "고귀한 인간"의 제3제국이 출현한다.[7] 독일의 극작가이자 나치당 정치인 디트리히 에카르트는 입센의 영향을 받았다.[7]3. 3. 드미트리 메레슈코프스키의 제3제국
러시아의 시인 드미트리 메레슈코프스키(Дмитрий Сергеевич Мережковский)도 유사한 의미에서 "제3제국"을 지향했다.4. 독일의 제3제국
20세기 초, 독일에서는 '제3제국'이라는 개념이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르투르 묄러 판 덴 브루크는 1923년에 쓴 《제3제국론》에서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의 정통성을 잇는 세 번째 제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7]
나치당은 '제3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나치당의 기관지 푈키셔 베오바흐터는 전권위임법이 통과된 다음 날 "제3제국의 날이 온 것이다."라고 썼다.[14]
4. 1. 디트리히 에카르트의 반유대주의와 제3제국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의 전신인 독일 노동자당(Deutsche Arbeiterpartei) 창립자 중 한 명이자 극작가였던 디트리히 에카르트(Dietrich Eckart)는 헨리크 입센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반유대주의 잡지 Auf gut Deutschde 1919년 7월호에 발표한 논문 Luther und der Zinsde에서 독일 민족이 제3제국을 실현하여 구원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7][9][10] 에카르트는 입센보다 노골적인 반유대주의를 앞세워 악마 같은 유대인이 이자율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7]
에카르트의 보호를 받은 제자로는 알프레트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있다.[11]
4. 2. 아르투어 묄러 판 덴 브루크의 제3제국론
아르투르 묄러 판 덴 브루크(Arthur Moeller van den Bruck)는 1923년에 저술한 《제3제국론》에서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계승하는 제3제국의 창설을 주장했다.[7] 그는 민족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유주의를 혐오했고, 정치 지도자에 의한 독재인 "지도자 원리"를 옹호했다.[7]
묄러의 사상은 나치즘과 공통점이 많지만, 나치당은 묄러의 "제3제국"과 자신들의 "제3제국"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7] 묄러의 "제3제국" 이념은 신비롭고 모호했으며, 묄러 자신도 이 점을 문제라고 생각했다.[12] 그럼에도 묄러는 이 사상이 현실적인 사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상을 "제3제국" 사상으로 극복하려 했다.
묄러의 저서는 나치가 제3제국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하는 데 영향을 주었지만, 이 이념은 특정 프로그램을 위한 구호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했다. 나치당은 묄러의 저서가 나치즘 세계관 발전에 중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제3제국 슬로건의 대중 선전 효과를 더 중시했다.[13]
4. 3. 나치당의 제3제국
나치당은 '제3제국'이라는 용어를 자신들의 통치 체제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나치당 기관지 푈키셔 베오바흐터는 전권위임법 통과 다음 날, '제3제국의 날'이 왔다고 선언했다.[14] 그러나 이 용어는 반나치 운동의 풍자에 사용되면서, 1939년 아돌프 히틀러는 사용을 금지했다. 요제프 괴벨스도 국민계몽선전성에서 선전 문구로 사용하는 것을 삼가도록 했다.[16] 그러나 이 조치는 완전히 지켜지지 않았고, 괴벨스는 이후에도 자신의 연설 등에서 인용했으며, 히틀러 자신도 1941년 12월 17일부터 18일에 걸친 담화에서 "지금 독일이라고 할 때, 그것은 '제3제국'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5. 한국과 일본에서의 제3제국
한국에서도 '제3제국'과 유사한 개념이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가야하라 가잔이 메이지 유신 이전의 "패자의 제국"과 유신 이후의 "판벌관료의 제국"을 극복하는 민본주의 제국의 출현을 주장했다.
5. 1. 일본의 제3제국
일본에서는 가야하라 가잔이 메이지 유신 이전의 "패자의 제국"과 유신 이후의 "판벌관료의 제국"을 극복하는 민본주의 제국의 출현을 주장하며, 1913년에 《제3제국》이라는 평론 잡지를 발간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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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帝国」世界大百科事典 第2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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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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