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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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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구도는 김정호가 제작한 두 책으로 구성된 지도로, 최한기의 제문과 김정호의 범례, 그리고 여러 종류의 역사 지도를 담고 있다. 신라, 고려, 조선의 행정 구역 변천을 보여주는 지도와 색인 역할을 하는 목록, 그리고 인구, 군사, 토산물 등 다양한 지지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획정지도로 제작되었으며, 과학적인 지도 제작 원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지만, 지도의 지점 표현의 불분명함과 산맥 표현의 미흡함과 같은 단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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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도
청구도 정보
청구도
한글청구도
한자靑邱圖
가타카나チョングド
히라가나せいきゅうず
문화재 정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소재 국가대한민국
유형보물
이름청구도(靑邱圖)
지정 번호1594-1
소재지국립중앙도서관
제작 시기조선 시대
비고2008년 12월 22일 지정
문화재 정보 (영남대학교 도서관 소장)
소재 국가대한민국
유형보물
이름청구도(靑邱圖)
지정 번호1594-2
소재지영남대학교 도서관
제작 시기조선 시대
비고2008년 12월 22일 지정
문화재 정보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청구도
소재 국가대한민국
유형보물
이름청구도(靑邱圖)
지정 번호1594-3
소재지고려대학교 도서관
제작 시기조선 시대
비고2009년 4월 22일 지정
참고 문헌
저자이상태
제목한국 고지도 발달사
연도1999
출판사혜안
출판 위치서울
185~242쪽

2. 구성 및 내용

김정호가 제작한 최초의 지도인 청구도는 2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2] 앞부분에는 최한기의 제문과 김정호의 범례가 있으며, 1면 크기의 역사 지도인 〈동방제국도〉, 〈사군삼한도〉, 〈삼국전도〉, 〈본조팔도성경합도〉와 4면 크기의 〈신라구주군현총도〉, 〈고려오도양계주현총도〉, 〈본조팔도주현도총목〉이 포함되어 있다.

지도 내용에는 수계(水系)·지형·성곽·창고·역도(驛道)·봉수·교량·고개·섬·호구·시장·군병·토산(土産)·공납·풍속·능묘·사찰 등 그 지역의 특색을 나타내는 지지 사항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3]

2. 1. 제1책

최한기가 쓴 발문과 김정호가 쓴 범례가 실려있다. 1면 대형의 "사군삼한도", "삼국전도", "본조팔도성경합도"와 4면 대형의 "신라구주군현총도", "고려오도양계주현총도", "본조팔도주현도총목"이 실려 있다.[6]

4면 대형의 신라, 고려, 조선 지도는 행정 구역 및 지명의 시대적 변천을 개관할 수 있으며, "청구도"의 각 지방 지도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색인 역할을 한다. 그 외에 부록으로 "군국총목표"라는 제목의, 당시 행정 구역별 남녀 인구·군보·곡부·방면·전답·민호 등이 기재된 표가 있다. 또한 지도 내용에는 수계·지형·성곽·창고·역도·봉수·교량·고개·섬·호구·시장·군병·제언·토산·공납·풍속·능묘·사찰 등, 그 지역의 특징을 나타내는 지지(地誌) 사항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6]

제1책에는 청구도제, 청구도범례, 본조팔도주현도총목, 도성전도, 제주현도, 동방제국도, 사군삼한도, 삼국전도, 신라주현총도, 고려오도양계주현총도, 본조팔도성경합도, 군국총목표 등이 수록되어 있다.

2. 2. 제2책

김정호가 제작한 최초의 지도이자 2권으로 나뉘어 있는 "청구도"에는 최한기가 쓴 발문, 김정호가 쓴 범례, 1면 대형의 "사군삼한도", "삼국전도", "본조팔도성경합도"와 4면 대형의 "신라구주군현총도", "고려오도양계주현총도", "본조팔도주현도총목"이 실려 있다.[6]

4면 대형의 신라, 고려, 조선 지도는 행정 구역 및 지명의 시대적 변천을 개관할 수 있으며, "청구도"의 각 지방 지도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색인 역할을 한다.[6] 부록으로 "군국총목표"라는 제목의, 당시 행정 구역별 남녀 인구·군보·곡부·방면·전답·민호 등이 기재된 표가 있다.[6] 지도 내용에는 수계·지형·성곽·창고·역도·봉수·교량·고개·섬·호구·시장·군병·제언·토산·공납·풍속·능묘·사찰 등, 그 지역의 특징을 나타내는 지지(地誌) 사항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6]

제2책에는 본조팔도주현도총목, 도성전도, 제주현도, 청구도범례 등이 수록되어 있다.

2. 3. 상세 내용

김정호가 제작한 첫 번째 지도이며[2] 두 책으로 되어 있는 〈청구도〉는 앞머리에 최한기가 쓴 제문 다음에 김정호가 쓴 범례가 있고, 1면 크기의 역사 지도인 〈동방제국도〉, 〈사군삼한도〉, 〈삼국전도〉, 〈본조팔도성경합도〉와 4면 크기의 〈신라구주군현총도〉, 〈고려오도양계주현총도〉, 〈본조팔도주현도총목〉이 들어 있다.

4면 크기의 신라, 고려, 조선 지도는 행정구역 및 지명의 시대적 변천을 개관할 수 있고, 〈청구도〉의 각 지방 지도를 찾기 위한 색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 부록으로 〈군국총목표〉라는 제목의, 당시 행정구획별 남녀인구수·군보·곡부·방면·전답·민호 등이 기재된 표가 있다. 또한 지도 내용에는 수계·지형·성곽·창고·역도·봉수·교량·고개·섬·호구·시장·군병·토산·공납·풍속·능묘·사찰 등 그 지역의 특색을 나타내는 지지사항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3]

군현을 파악하고 통치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수록한 지지적 내용인 호구, 전결, 곡총, 군정의 수와 서울까지의 거리를 각 군현이 표현된 지도 위에 직접 기록해 놓아 통치 정보가 나타난다. 그리고 신라 이후 각 군현 명칭의 변화를 읍치 주위에 신라는 '라(羅)'로, 고려는 '려(麗)'로 구분하여 적고 있어 행정구역 및 지명의 시대적 변천을 개관할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전투 기록 등 당시로서는 중요한 여러 역사 정보를 해당 장소에 간략하게 적고 있어 역사 정보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연지리 정보는 산의 표현에서 크기나 겹쳐진 줄의 수로 지형의 높낮이의 일부 표현한 것에서 찾아 볼 수 있다.[6]

3. 특징

청구도는 전국을 가로 22판, 세로 29층으로 나누어 보기 좋게 책처럼 만든 총 321면의 첩지도(帖地圖)이다. 가로 70리, 세로 100리를 기준으로 모눈을 그린 획정지도(劃定地圖)로, 동서 1,540리, 남북 2,900리로 계산한 것이다. 이는 정조 때 천문 관측으로 정해진 8도의 극고도(경위도)에 근거한 것이다.[5] 남북 3천 리는 세로 30층이지만 제주도전라도를 잇는 한 층이 생략되었다.[2]

김정호는 산과 물을 자르는 기존 지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각 면의 위와 안쪽 또는 오른쪽에 10리 방안을 표시했을 뿐 지도 위에는 방안을 그리지 않았다. 또한 군현의 경계를 확실하게 하였으며, 특히 비지(飛地)와 두입지(斗入地)를 표시하여 이전의 어느 지도보다 실용적이다.

본조팔도주현도총목


도성전도

3. 1. 지도 구성 방법

劃定地圖|획정지도중국어는 전국을 가로 22판, 세로 29층으로 나누어 책처럼 엮은 총 321면의 지도이다. 가로 70리, 세로 100리를 기준으로 모눈을 그렸다.[5] 이는 동서 길이를 1,540리, 남북 길이를 2,900리로 계산한 것이다. 이러한 획정법은 정조 때 천문 관측으로 정해진 8도의 극고도(경위도)에 근거한 것이다.[5] 남북 3,000리는 세로 30층이지만, 제주도전라도를 잇는 한 층이 생략되어 있다.[2]

김정호는 기존 지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각 면의 위와 안쪽 또는 오른쪽에 10리 방안을 표시하고, 지도 위에는 방안을 그리지 않았다. 또한 군현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특히 비지(飛地)와 두입지(斗入地)를 표시하여 실용성을 높였다.

3. 2. 색인도

〈청구도〉에는 색인도(索引圖) 역할을 하는 본조팔도주현도총목(本朝八道州縣圖總目)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지도를 찾아가는 방법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경위선표에는 방안의 가로, 세로에 일련번호가 붙어 있으며, 각 지도의 방안에 써있는 가로 세로의 일련번호를 비교하여 지도를 쉽게 찾을 수 있다.[6]

3. 3. 지지 정보의 결합

군현 파악과 통치를 위해 일반적으로 수록하는 지지적 내용인 호구(戶口), 전결(田結), 곡총(穀總), 군정(軍丁)의 수와 서울까지의 거리를 각 군현이 표현된 지도 위에 직접 기록하여 통치 정보를 나타내고 있다.[6] 신라 이후 각 군현 명칭의 변화는 읍치 주위에 신라는 ‘라(羅)’로, 고려는 ‘려(麗)’로 구분하여 적고 있어 행정 구역 및 지명의 시대적 변천을 알 수 있다.[6] 또한 과거의 전투 기록 등 당시로서는 중요한 여러 역사 정보를 해당 장소에 간략하게 적고 있어 역사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6] 마지막으로 자연지리 정보는 산의 표현에서 크기나 겹쳐진 줄의 수로 지형의 높낮이를 일부 표현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6]

3. 4. 지도식

사방을 12개의 방위로 나누고, 10리 간격의 원을 그렸으며, 지도상에서 직접 바다, 섬, 강, 산, 읍성, 목장, 못, 다리, 고개, 봉수, 누각 등의 기호를 설명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현대 지도에서도 사용되는 방식이다.[6]

3. 5. 범례

동일한 정보를 동일한 기호로 표시하여 지도 정보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이용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방면의 호칭을 '면'으로 통일하고, 진, 사원, 역, 등의 위치 표시를 명확히 했다. 군현읍치는 세로로 길고 큰 사각형으로, 병영, 수영, 통영, 각종 영은 세로 또는 가로로 긴 작은 사각형 안에 명칭을 적어 넣었다. 봉수는 불이 타오르는 삼각형 모양으로 그렸다. 도로는 홍색 실선, 하천은 흑색 쌍선에 청색, 산지는 흑색 연속봉에 녹색으로 채색했다.[6]

3. 6. 과학적인 지도

색인도, 지지 정보 결합, 지도식, 범례를 갖추었고, 지도 구성에서 모눈 획정, 방위 산출, 극고에 따른 지도 보정 등은 당시 청구도가 조선에서 가장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잘 활용한 지도였음을 알 수 있다.[1]

3. 7. 미비점

청구도는 당시의 어떤 지도보다 뛰어나지만 옛 지도에서 가지는 단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도의 도식, 즉 지도식을 전통적 방식을 채택했고, 방위를 12방위를 씀으로써 지도 자체는 정확하지만 지도의 지점(地點) 표현이 보다 불분명하게 되었다.[1] 수계는 정확히 표시한 반면 산맥은 진산 중심으로 표현함으로써 산맥이 많은 동쪽이 실제보다 넓게 그려졌다.[1] 게다가 부기가 많아 지도의 독립성보다는 지리지 동여도지의 부도적 성격이 두드러졌다.[1]

4. 제작 원리

최한기의 〈청구도제〉에 따르면, 청구도는 다음과 같은 제작 원리로 만들어졌다.[7]


  • 획야분주(劃野分州): 산맥과 수계(水系)를 기준으로 지역을 나누는 방식이다.
  • 천문 관측을 통한 위선 결정: 최한기는 "하늘의 1도는 땅의 200리에 해당하며, 시간의 4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1791년(정조 15년) 천문 관측 결과는 1713년(숙종 39년) 청나라 사신 하국주 일행이 한양에서 사분대의로 측정한 값을 바탕으로 지형, 위치, 방위 등을 바로잡는 데 사용되었다. 정조는 정철조, 황엽, 윤영이 편찬한 여지도를 참고하여 8도의 경위도를 조정했다.
  • 기존 지도의 문제점 개선: 정상기가 지적한 것처럼, 종이 크기에 맞춰 주현을 동일하게 그려 좁은 지역은 넓어지고 넓은 지역은 좁아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을 같은 비율로 제작하여 축척을 일정하게 하고 주현의 크기를 실제와 가깝게 표현했다.
  • 배수의 육체(六體): 서진의 지리학자 배수가 제시한 지도 제작의 여섯 가지 원리이다. 분율(지형의 폭), 준망(방위), 도리(거리), 고하(높낮이), 방사(모나고 비뚤어짐), 우직(구부러짐과 곧음)을 포함한다.

4. 1. 획야분주(劃野分州)

지도 제작은 획야분주(劃野分州)에서 비롯된다.[7] 획야분주에서는 산맥과 수계(水系)에 따라 지역을 나누었다.

4. 2. 천문 관측에 따른 경위선 결정

최한기는 "하늘의 1도는 땅의 200리가 되고 또 시간의 4분에 해당한다."라고 하였다.[7] 1791년(정조 15년) 천문 관측 결과로 지형, 위치, 방위 등을 바로잡았다. 이는 1713년(숙종 39년) 청나라 사신 하국주 일행이 한양에서 사분대의를 써서 실측한 북위 37도 39분 15초, 북경 순천부 기준 한양이 편동 10도 30분이라는 실측치를 기초로 했다. 정조1791년 정철조, 황엽, 윤영이 편찬한 여지도에 입각하여 8도의 경위도를 양정(量定)하여 실제와 유사한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4. 3. 재래 지도의 폐단 지적

정상기가 지적하였듯이 종이의 크고 작음에 맞추어 334개 주현을 똑같이 그렸기 때문에 좁은 고을은 넓어지고 넓은 고을은 좁아지게 되었다. 김정호는 이에 유의하여 전국을 같은 비례로 제도함으로써 축척 비례가 정연하고 주현의 분합이 가능하게 하였다.[7]

4. 4. 배수(裵秀)의 6체(六體)

서진의 지리학자이자 정치가인 배수는 〈우공구주지도〉를 그리며 지도 제작의 여섯 가지 원리인 육체(六體)를 제시했다.[7]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분율(分率): 지형의 동서남북 폭원(幅員)

# 준망(準望): 이곳과 저곳의 지형을 바로잡는 방위

# 도리(道里): 이곳과 저곳의 거리

# 고하(高下): 지형의 높낮이

# 방사(方邪): 지형의 모남과 비뚤어짐

# 우직(迂直): 지형의 구부러짐과 곧음

5. 제도 원리

〈청구도〉는 배수의 6체(六體)에 따라 그려졌다. 방안선을 그을 때 가로 70리, 세로 100리로 나누어 분율을 고려하였고, 준망은 동서남북 4방위 대신 12간지의 12방위법을 써서 방위를 바르게 하였다. 거리의 균정을 위해 일정한 지점을 중심으로 10리마다 원을 둘러 그려서 도리(道里)를 바르게 하였는데, 이것이 평환법이다. 그 전에 쓰던 방계법은 네 귀퉁이(四隅)의 리수(里數)가 자(子)‧오(午)‧묘(卯)‧유(酉)의 네 방위(四正)보다 멀기 때문에 거리를 균정하게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천문 관측에 따른 경위선 표식을 적용하고, 《기하원본》을 참고하여 서양 기하학의 원리를 이용해 확대·축소의 정확성을 기했다.

6. 기타

청구도의 저본은 해동여지도[2] 또는 동여[8](東輿)로 본다.

참조

[1] 뉴스 "`대동여지도 목판` 보물됐다" http://article.joins[...] 연합뉴스 2008-12-22
[2] 서적 한국 고지도 발달사 혜안
[3] 백과사전 청구도 http://kr.dic.yahoo.[...] 2008-08-05
[4] 웹인용 소창박물관 https://web.archive.[...] 2008-05-13
[5] 서적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 효형출판
[6] 논문 김정호의 청구도 제작 과정과 지도적 특징에 관한 연구
[7] 문서 하나라 우왕이 대홍수를 다스린 뒤 중국을 9주로 나누어 각 주의 실정에 맞게 공물을 정했다는 데에서 비롯한 말. 이를 기록한 지도가 서진(西晉)의 배수(裵秀)가 그린 〈우공구주지도〉(禹貢九州地圖)이다.
[8] 뉴스 청구도 원형 추정 조선전도 '동여(東輿)' 발간 https://news.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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