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네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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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이네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원래 여성 카이니스로 태어났지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도움으로 남성으로 변신하여 불사의 몸을 얻었다. 그는 켄타우로마키아에서 뛰어난 용맹을 보였으나, 신들을 불경하게 여겨 켄타우로스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스와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다양한 고대 그리스 예술 작품에서 중요한 인물로 묘사되며, 그의 죽음 이후 여성으로 되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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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네우스 | |
---|---|
카이네우스 | |
신화 | |
성별 | 남성 (원래 여성) |
문화권 | 그리스 신화 |
가족 | 엘라토스의 아들, 코로니스의 아버지 |
주요 거주지 | 테살리아 |
관련 장소 | 펠리온 산 |
변신 전 이름 | |
이름 | 카이니스 (Kainis, Καινίς) |
성별 | 여성 |
아버지 | 엘라토스 |
구혼자 | 포세이돈 |
포세이돈과의 관계 | 강간 피해자, 이후 소원 성취 |
변신 후 정보 | |
이름 | 카이네우스 (Kaineus, Καινεύς) |
성별 | 남성 |
특징 | 무적의 전사 칼, 창으로 뚫을 수 없는 몸 |
죽음 | 켄타우로스와의 전투 중 생매장 쇠지렛대로 땅에 박혀 질식사 |
관련 신화 | 켄타우로스와의 전투 (라피타이족과 켄타우로스의 싸움) |
기타 | |
참고 | 일부 기록에서는 카이네우스가 여성으로 되돌아갔다고 함 다른 기록에서는 카이네우스가 새로 변신하여 날아갔다고 함 |
2. 가계 및 변신
카이네우스는 본래 여자였으며, 이름은 카이니스였다.[5] 카이니스는 테살리아 지방 기르톤의 라피테스 왕 엘라토스의 딸이었다.[2] 어머니는 테살리아 지방 라리사 출신의 안티푸스의 딸 히페아였고, 형제로는 이스키스와 아르고호 원정대원 폴리페모스가 있었다.[4] 안토니누스 리베랄리스에 따르면 카이네우스의 아버지는 엘라토스가 아닌 아트락스였다.
카이니스는 포세이돈과의 관계를 통해 남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카이니스는 아름다운 소녀였으나 해변에서 포세이돈에게 강간을 당했다. 이후 포세이돈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카이니스는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남자가 되기를 원했다.[25] 넵투누스(포세이돈)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창이나 칼에 상처 입지 않는 무적의 몸을 만들어 주었다. 다른 전설에서는 포세이돈이 강간이 아니라 카이네우스의 동의를 얻었다고 하며, 카이네우스는 포세이돈의 구애에 응하는 대신 불사신의 남자로 변하게 해 줄 것을 소원하여 이를 이루었다고 한다.[26]
카이네우스에게는 코로누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헤라클레스가 도리아인과 그들의 왕 아이기미우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 죽임을 당했다.[3] 또한 포쿠스와 프리아소스라는 두 아들이 더 있었으며, 이들 역시 아르고호 원정대원이었다.[4]
2. 1. 변신 이전의 삶
카이네우스는 테살리아 지방 기르톤의 라피테스 왕 엘라토스의 딸로 태어났다.[2] 어머니는 테살리아 지방 라리사 출신의 안티푸스의 딸 히페아였고, 형제로는 이스키스와 아르고호 원정대원 폴리페모스가 있었다.[4] 카이네우스에게는 코로누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헤라클레스가 도리아인과 그들의 왕 아이기미우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 죽임을 당했다.[3] 또한 포쿠스와 프리아소스라는 두 아들이 더 있었으며, 이들 역시 아르고호 원정대원이었다.[4] 안토니누스 리베랄리스에 따르면 카이네우스의 아버지는 엘라토스가 아닌 아트락스였다.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카이네우스는 테살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였으며, 많은 구혼자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어느 날 해변을 걷던 중 바다의 신 포세이돈(넵투누스의 로마식 이름)에게 강간을 당했다. 이후 포세이돈이 그녀에게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자, 카이네우스는 다시는 강간을 당하는 고통을 겪지 않도록 남자가 되기를 원했다.
포세이돈은 카이네우스의 소원을 들어주어 그녀를 남자로 변신시키고, 더 나아가 창이나 칼의 어떤 상처에도 끄떡없는 불사신으로 만들었다. 그 후 카이네스는 행복하게 테살리아 북부 평원을 돌아다니며 "모든 남성적인 활동에 몇 년을 보냈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포세이돈은 강간이 아니라 카이네우스의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카이네우스는 포세이돈의 구애에 응하는 대신, 결코 상처 입지 않는 불사신의 남자로 변하게 해 줄 것을 소원했고, 포세이돈은 이 소원을 들어주었다.[26]
2. 2. 포세이돈과의 관계
카이네우스는 원래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 의해 남자로 변신한 카이니스로 알려진 여성이었다.[5] 이와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기록은 신화학자 아쿠실라오스 (기원전 6~5세기)에게서 찾을 수 있다.[6] 아쿠실라오스에 따르면, 엘라토스의 딸(여기서는 카이네라고 불림)은 포세이돈과 성관계를 가진 후, 포세이돈이나 다른 사람과의 아이를 원치 않았다. 이를 막기 위해 포세이돈은 카이네를 다른 어떤 사람보다 강한, 무적의 남자로 변신시켰다.[7] 하지만, 일반적인 전개에 따르면, 포세이돈은 카이니스와 성관계를 가진 후, 카이니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래서 카이니스는 무적의 남자로 변신해달라고 요청했고, 포세이돈은 그렇게 했다.[8]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카이네우스는 테살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였으며, 많은 구혼자가 있었지만, 어떤 남자가 나타나도 카이네우스는 남편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어느 날 카이네우스가 해안을 걷고 있을 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나타나 그녀를 강간했다. 포세이돈이 보상으로 소원을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하자, 카이네우스는 이런 끔찍한 일이 두 번 다시 없도록 남자로 바꿔달라고 소원했다. 그래서 포세이돈은 카이네우스를 불사신의 몸을 가진 남자로 변하게 했다.[25] 넵투누스(포세이돈의 로마식 이름)는 그녀를 남자로 변신시키고, 더 나아가 카이네스를 "창이나 칼의 어떤 상처에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포세이돈은 강간이 아니라 카이네우스의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카이네우스는 포세이돈의 구애에 응하는 대신, 결코 상처 입지 않는 불사신의 남자로 변하게 해 줄 것을 소원했다. 포세이돈은 이 소원을 들어주어 카이네우스를 불사신의 남자로 변하게 했다.[26]
2. 3. 변신과 무적성
카이네우스는 원래 카이니스라는 이름의 여성이었으나, 포세이돈에 의해 남자로 변신했다.[5] 이 이야기는 헤시오도스의 ''여인 열전''(기원전 6세기 전반)에도 언급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신화학자 아쿠실라오스(기원전 6~5세기)의 기록에서 처음으로 구체적인 변신 이야기가 등장한다.[6] 아쿠실라오스에 따르면, 엘라토스의 딸 카이네(카이니스의 다른 이름)는 포세이돈과 관계를 가진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포세이돈이나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포세이돈은 그녀를 누구보다 강한 무적의 남자로 변신시켰다.[7]일반적인 전승에서는 포세이돈이 카이니스와 관계를 가진 후, 그녀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카이니스는 무적의 남자로 변신시켜 달라고 요청하여 포세이돈이 이를 들어주었다고 한다.[8]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카이네우스에 대한 가장 상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12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서는 네스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카이네우스의 변신, 피리토스의 결혼 잔치에서 벌어진 켄타우로스와 테살리아인 간의 싸움, 그리고 카이네우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비디우스는 이전 판본에는 없던 카이네우스가 남자로 변신하기를 원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카이네스는 가장 아름다운 소녀였지만 모든 구혼자를 거절했다. 어느 날 해변을 걷던 중 바다의 신 넵투누스(포세이돈의 로마식 이름)에게 강간을 당했고, 이후 신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하자 다시는 강간당하지 않도록 남자가 되기를 원했다.[25]
넵투누스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어 남자로 변신시켰을 뿐만 아니라, 창이나 칼에 상처 입지 않는 무적의 몸을 만들어 주었다. 이후 카이네스는 테살리아 북부 평원을 돌아다니며 "모든 남성적인 활동"을 하며 몇 년을 보냈다.
네스토르는 이어서 피리토스와 히포다미아의 결혼 잔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잔치에는 켄타우로스와 "테살리아 족장들"(카이네우스 포함)이 초대되었다. 술에 취한 켄타우로스가 히포다미아를 납치하려 하자 싸움이 벌어졌고, 카이네우스는 다섯 명의 켄타우로스를 죽였다. 그 후 켄타우로스 라트레우스가 카이네우스를 조롱했다.
켄타우로스들은 카이네우스가 무적이라 무기로 해칠 수 없었기 때문에, 산더미 같은 나무와 바위로 그를 짓눌러 죽였다. 네스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카이네우스의 최후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타르타로스로 떨어졌다고 믿지만, 그의 무덤에서 노란 새가 나타나자 예언자 몹수스는 카이네우스가 새가 되었다고 말했다. 카이네우스가 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만 등장하며, 오비디우스의 창작이 아니라면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카이네우스는 테살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였으며, 많은 구혼자가 있었지만, 어떤 남자도 남편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어느 날 카이네우스가 해안을 걷고 있을 때, 바다의 신포세이돈이 나타나 그녀를 강간했다. 포세이돈이 보상으로 소원을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하자, 카이네우스는 이런 끔찍한 일이 두 번 다시 없도록 남자로 바꿔달라고 소원했다. 그래서 포세이돈은 카이네우스를 불사신의 몸을 가진 남자로 변하게 했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포세이돈은 강간이 아니라 카이네우스의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카이네우스는 포세이돈의 구애에 응하는 대신, 결코 상처 입지 않는 불사신의 남자로 변하게 해 줄 것을 소원했다. 포세이돈은 이 소원을 들어주어 카이네우스를 불사신의 남자로 변하게 했다.[26]
3. 왕위와 불경 행위
카이네우스는 남성이 된 후 라피테스족의 왕이 되었고, 켄타우로스족과 여러 번 싸웠다.[33] 그는 켄타우로마키 외에는 변신 후의 활동에 대해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왕이 된 후 불경스러운 행위로 신들을 노하게 했다.[9]
카이네우스는 칼리돈 멧돼지 사냥에 참여한 인물로도 언급되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3. 1. 불경 행위의 내용
아쿠실라오스에 따르면, 카이네우스는 당시 가장 강력한 전사였으며, 라피테스의 왕이 되었다.[9] 왕이 된 카이네우스는 불경스러운 행위로 신들을 노하게 했다. 한 ''일리아스'' 주석가에 따르면, 카이네우스는 자신의 창을 아고라에 세우고 백성들에게 그것을 숭배하도록 명령했다. 반면,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에 대한 주석가는 카이네우스 자신이 신 대신 자신의 창을 숭배했다고 한다. 어느 경우든, 카이네우스의 행동은 신들을 크게 불쾌하게 했다.[10] 아쿠실라오스는 카이네우스가 도시 광장에 창을 세우고 그 창을 새로운 신으로 하여 신들의 반열에 포함시키라고 사람들에게 명령했다고 기록했다. 이 행위는 신들의 반발을 불렀고, 특히 제우스는 카이네우스의 행위에 분노하여 켄타우로스족을 부추겼다.[24]3. 2. 신들의 반응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마키 외에는 변신 후의 활동에 대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아쿠실라오스에 따르면, 카이네우스는 당시 가장 강력한 전사였으며, 라피테스의 왕이 되었다.[9] 왕이 된 카이네우스는 불경스러운 행위로 신들을 노하게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여러 가지로 전해진다. 한 ''일리아스'' 주석가에 따르면, 카이네우스는 자신의 창을 아고라에 세우고 백성들에게 그것을 숭배하도록 명령했다. 반면,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에 대한 주석가는 카이네우스 자신이 신 대신 자신의 창을 숭배했다고 한다. 어느 경우든, 카이네우스의 행동은 신들을 크게 불쾌하게 했고, 아쿠실라오스는 제우스가 그를 상대로 켄타우로스들을 보냈다고 말한다.[10]4. 켄타우로마키아와 죽음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마키아에서 켄타우로스들과 싸우다 죽음을 맞이했다. 켄타우로스들은 카이네우스가 창이나 칼에 찔려도 상처를 입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죽이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그들은 카이네우스를 땅에 묻기 위해 나무 줄기와 바위를 사용했다.[12]
카이네우스의 죽음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아쿠실라오스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켄타우로스들이 카이네우스를 "똑바로" (ὄρθιον|오르티온grc) 땅에 박아 돌로 봉인하여 죽였다고 기록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 역시 카이네우스가 수직으로(ὀρθῷ ποδὶ|오르토 포디grc) 땅에 박혔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15]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가 쓴 아르고나우티카에서는 카이네우스가 켄타우로스들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들은 카이네우스를 뒤로 밀어내거나 죽일 만큼 강하지 못했고, 대신 강력한 소나무 아래로 힘껏 망치질당해 땅속으로 가라앉았다고 묘사한다.[16]
오비디우스는 네스토르의 말을 인용하여, 일부 사람들은 카이네우스가 타르타로스로 곧장 내려갔다고 믿었지만, 예언자 몹소스는 카이네우스가 새로 변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오르페우스의 아르고나우티카에 따르면,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스에게 망치질당하면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고, "살아있는 채로 땅 아래 죽은 자들 사이로 내려갔다"고 한다.[17]
히기누스는 카이네우스를 자살한 사람들의 목록에 포함시켰다.[28]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는 아이네아스가 지하 세계의 Lugentes campila (애도의 들판)에서 카이네우스의 그림자를 보았는데, 베르길리우스는 카이네우스가 한때 남자였지만 "운명이 옛 모습으로 되돌렸다"며 다시 여자로 변했다고 묘사한다.
아폴로도로스는 아쿠실라오스와 마찬가지로, 켄타우로스들이 카이네우스를 에워싸고 전나무로 만든 큰 나무로 여러 번 때려 땅에 묻어 질식시켰다고 전한다. 혼란이 가라앉은 후, 카이네우스를 매장하려 하자, 그의 몸은 여자로 돌아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37]
4. 1. 켄타우로마키아에서의 역할
카이네우스가 켄타우로마키아 (피리토스의 결혼 잔치에서 라피테스와 켄타우로스 간의 전투)에 참여한 것은 카이네우스에 관해 전해지는 가장 초기의 이야기로 보인다. 그의 변신과 다른 이야기들은 아마도 후대의 각색일 것이다.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마키아에서 싸웠는데, 대부분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여기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무적성 때문에 켄타우로스의 어떤 무기도 그를 해칠 수 없었기에, 라피테스 왕을 물리치기 위해 그들은 나무 줄기와 바위로 그를 땅에 박아 넣었고, 결국 그를 산 채로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12]
카이네우스에 대한 가장 초기의 언급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며, 네스토르는 켄타우로스와 싸워 그들을 물리친 "가장 강력한" 전사들 중에 카이네우스의 이름을 올렸다. 헤시오도스의 ''헤라클레스의 방패''(기원전 6세기 전반)에는 "그들의 왕 카이네우스 주위의 창을 든 라피테스족"이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켄타우로스는 전나무로 싸웠다.[13]
호메로스나 ''방패''에는 카이네우스의 무적성에 대한 이야기나, 그 무적성이 초래한 켄타우로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독특한 방식에 대한 언급은 없다.[14] 하지만 켄타우로마키아는 그리스 예술에서 인기 있는 주제였고, 카이네우스의 묘사는 이 이야기가 적어도 기원전 7세기 초부터 널리 알려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켄타우로스가 카이네우스를 땅에 박는 모습은 기원전 7세기 중반 올림피아의 청동 부조와 프랑수아 꽃병 (기원전 570–560년경)에서 묘사된다.
카이네우스의 죽음에 대한 문학적 언급은 아쿠실라오스에서 처음 발견되는데, 켄타우로스가 그를 "똑바로"(ὄρθιον|오르티온grc) 땅에 박아 돌로 봉인한 후에 카이네우스가 죽었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 역시 카이네우스가 수직으로(ὀρθῷ ποδὶ|오르토 포디grc) 땅에 박히는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15]
기원전 3세기의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는 더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며, 카이네우스는 비록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켄타우로스의 손에 죽었다고 말한다.
오비디우스는 네스토르가 카이네우스가 타르타로스로 직접 밀려 내려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예언자 몹소스는 카이네우스가 새로 변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오르페우스 아르고나우티카''에 따르면,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스에게 망치질당하는 것을 무릎을 굽히지 않고 견뎌냈고, "살아있는 채로 땅 아래 죽은 자들 사이로 내려갔다."[17]
히기누스는 카이네우스를 자살한 사람들의 목록에 올렸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따르면, 아이네아스는 지하 세계의 Lugentes campila (애도의 들판)이라는 곳을 방문하는 동안 카이네우스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카이네우스에 대한 가장 자세한 이야기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네스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카이네우스의 변신, 켄타우로스와 테살리아인 사이의 피리토스의 결혼 잔치에서 벌어진 싸움, 그리고 카이네우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카이네우스가 왜 남자로 변신하기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버전에는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변신 이야기''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카이네스는 가장 아름다운 소녀였지만, 수많은 구혼자들을 모두 거절했다. 어느 날 해변을 걷던 중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강간을 당했다. 이후 신이 그녀에게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자, 카이네스는 다시는 강간을 당하는 고통을 겪지 않도록 남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넵투누스는 이를 들어 소녀를 남자로 변신시키고, 더 나아가 카이네스를 "창이나 칼의 어떤 상처에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 후 카이네스는 행복하게 떠나 테살리아 북부 평원을 돌아다니며 "모든 남성적인 활동에 몇 년을 보냈다".
네스토르는 다음으로 피리토스와 히포다미아의 결혼 잔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켄타우로스와 "테살리아 족장들"(카이네우스 포함)이 초대되었다고 말한다. 술에 취한 켄타우로스가 히포다미아를 납치하려고 시도한 후 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카이네우스는 다섯 명의 켄타우로스를 죽였다. 그 후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스 라트레우스에 의해 조롱을 받는다.
켄타우로스는 카이네우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여자가 남자인 척한다, 무기도 없이 실 감는 막대나 잡고 있어라 등 모욕했다. 그리고 카이네우스는 창도 칼도 통하지 않는 불멸의 몸이었기 때문에, 그 위에 큰 나무를 여러 겹으로 쌓아 가두었다. 그 자리에 있던 예언자모프소스에 따르면, 큰 나무 산에서 금색 새가 날아올라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것은 카이네우스가 변신한 모습이라고 한다.[25]
아폴로도로스는 아쿠실라오스처럼, 카이네우스를 둘러싸고, 전나무의 큰 나무로 카이네우스를 여러 번 때려 땅에 묻어 질식사시켰다고 한다.
4. 2. 카이네우스의 죽음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마키아에서 싸웠는데, 대부분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여기서 죽음을 맞이했다. 켄타우로스의 어떤 무기도 그의 무적성 때문에 그를 해칠 수 없었다. 그래서 라피테스 왕을 물리치기 위해 켄타우로스들은 나무 줄기와 바위로 그를 땅에 박아 넣어, 결국 그를 산 채로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12]카이네우스에 대한 가장 초기의 언급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며, 네스토르는 켄타우로스와 싸워 그들을 물리친 "가장 강력한" 전사들 중에 카이네우스의 이름을 올렸다.
헤시오도스의 ''헤라클레스의 방패''에는 "그들의 왕 카이네우스 주위의 창을 든 라피테스족"이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켄타우로스는 전나무로 싸웠다.[13]
하지만 켄타우로마키아는 그리스 예술에서 인기 있는 주제였고, 카이네우스의 묘사는 이 이야기가 적어도 기원전 7세기 초부터 널리 알려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켄타우로스가 카이네우스를 땅에 박는 모습은 기원전 7세기 중반 올림피아의 청동 부조와 프랑수아 꽃병(기원전 570–560년경)에서 묘사된다.
카이네우스의 죽음에 대한 문학적 언급은 아쿠실라우스에서 처음 발견되는데, 켄타우로스가 그를 "똑바로"(ὄρθιονgrc) 땅에 박아 돌로 봉인한 후에 카이네우스가 죽었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 역시 카이네우스가 수직으로(ὀρθῷ ποδὶgrc) 땅에 박히는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15]
기원전 3세기의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는 더 자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카이네우스는 "비록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그는 켄타우로스의 손에 죽었다. 다른 영웅들로부터 떨어져 혼자서 그들을 무찔렀을 때, 그들은 그에게 대항하여 집결했지만, 그를 뒤로 밀어내거나 죽일 만큼 강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신, 그는 부서지지 않고 굽혀지지 않은 채, 강력한 소나무 아래로 힘으로 망치질당해 땅 속으로 가라앉았다."라고 전한다.[16]
오비디우스는 카이네우스의 운명에 관해, 네스토르가 카이네우스가 타르타로스로 직접 밀려 내려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예언자 몹소스는 카이네우스가 새로 변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오르페우스 아르고나우티카''에 따르면,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스에게 망치질당하는 것을 무릎을 굽히지 않고 견뎌냈고, "살아있는 채로 땅 아래 죽은 자들 사이로 내려갔다."라고 전한다.[17]
히기누스는 카이네우스를 자살한 사람들의 목록에 올렸다.[28]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따르면, 아이네아스는 지하 세계의 Lugentes campila (애도의 들판)이라는 곳을 방문하는 동안 카이네우스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카이네우스에 대한 가장 자세한 이야기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네스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카이네우스의 변신, 켄타우로스와 테살리아인 사이의 피리토스의 결혼 잔치에서 벌어진 싸움, 그리고 카이네우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카이네스는 가장 아름다운 소녀였지만, 수많은 구혼자들을 모두 거절했다. 어느 날 해변을 걷던 중 바다의 신 넵투누스(포세이돈의 로마식 이름)에게 강간을 당했다. 이후 신이 그녀에게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자, 카이네스는 다시는 강간을 당하는 고통을 겪지 않도록 남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넵투누스는 이를 들어 소녀를 남자로 변신시키고, 더 나아가 카이네스를 "창이나 칼의 어떤 상처에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 후 카이네스는 행복하게 떠나 테살리아 북부 평원을 돌아다니며 "모든 남성적인 활동에 몇 년을 보냈다".
네스토르는 다음으로 피리토스와 히포다미아의 결혼 잔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켄타우로스와 "테살리아 족장들"(카이네우스 포함)이 초대되었다고 말한다. 술에 취한 켄타우로스가 히포다미아를 납치하려고 시도한 후 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카이네우스는 다섯 명의 켄타우로스를 죽였다. 그 후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스 라트레우스에게 "오, 카이네우스, 내가 너 같은 자를 참아야 한다니? 내 눈에는 너는 아직 여자이기 때문이다."라는 등의 조롱을 받는다.
켄타우로스들은 그들의 무기로는 그에게 해를 입힐 수 없었기에, 카이네우스를 산더미 같은 나무와 바위 아래에 묻어 그를 짓눌러 죽였다. 네스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카이네우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하며, 일부 사람들은 그가 타르타로스로 밀려 내려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매장 무덤에서 노란 새가 나타나자, 예언자 몹소스는 카이네우스가 새가 되었다고 말했다.
아폴로도로스는 아쿠실라오스처럼, 카이네우스를 둘러싸고, 전나무의 큰 나무로 카이네우스를 여러 번 때려 땅에 묻어 질식사시켰다고 한다. 히포다미아와 페이리토오스의 결혼식에 초대된 켄타우로스족은 술에 취해 신부와 다른 여성들을 빼앗으려 했고, 결혼식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카이네우스는 영웅들과 함께 켄타우로스족과 싸웠지만, 켄타우로스들은 카이네우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모욕했다. 카이네우스는 창도 칼도 통하지 않는 불멸의 몸이었기 때문에, 켄타우로스들은 그 위에 큰 나무를 여러 겹으로 쌓아 가두었다. 그 자리에 있던 예언자모프소스에 따르면, 큰 나무 산에서 금색 새가 날아올라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것은 카이네우스가 변신한 모습이라고 한다.[25]
4. 3. 죽음 이후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마키아에서 싸우다 대부분의 기록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켄타우로스들은 카이네우스의 무적성 때문에 어떤 무기로도 그를 해칠 수 없었기에, 나무 줄기와 바위로 그를 땅에 박아 넣어 산 채로 제압했다.[12]카이네우스의 죽음에 대한 문학적 언급은 아쿠실라우스에게서 처음 발견되는데, 켄타우로스가 그를 "똑바로"(ὄρθιονgrc) 땅에 박아 돌로 봉인한 후에 죽었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 역시 카이네우스가 수직으로(ὀρθῷ ποδὶgrc) 땅에 박히는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15]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에서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스의 손에 죽었지만, 그들은 카이네우스를 뒤로 밀어내거나 죽일 만큼 강하지 못했고, 대신 강력한 소나무 아래로 힘껏 망치질당해 땅속으로 가라앉았다고 묘사된다.
오비디우스는 네스토르의 말을 인용해 카이네우스가 타르타로스로 직접 밀려 내려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예언자 몹소스는 카이네우스가 새로 변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오르페우스 아르고나우티카''에 따르면,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스에게 망치질당하는 것을 무릎을 굽히지 않고 견뎌냈고, "살아있는 채로 땅 아래 죽은 자들 사이로 내려갔다."[17]
히기누스는 카이네우스를 자살한 사람들의 목록에 올렸다.[28]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아이네아스는 지하 세계의 Lugentes campila (애도의 들판)에서 카이네우스의 그림자를 보는데, 베르길리우스는 카이네우스가 한때 남자였지만 "운명이 옛 모습으로 되돌렸다"며 다시 여자로 변했다고 말한다.
카이네우스의 죽음에 관해, 『변신 이야기』는 라피테스족의 왕 페이리토오스와 히포다메이아의 결혼식 중 켄타우로스족이 신부와 다른 여성들을 빼앗으려 하자, 카이네우스가 영웅들과 함께 켄타우로스족과 싸웠다고 한다. 켄타우로스들은 카이네우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모욕했지만, 카이네우스는 창도 칼도 통하지 않는 불멸의 몸이었기 때문에, 그 위에 큰 나무를 여러 겹으로 쌓아 가두었다. 그 자리에 있던 예언자모프소스에 따르면, 큰 나무 산에서 금색 새가 날아올라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것은 카이네우스가 변신한 모습이라고 한다.[25]
아폴로도로스는 아쿠실라오스처럼, 켄타우로스들이 카이네우스를 둘러싸고, 전나무의 큰 나무로 여러 번 때려 땅에 묻어 질식사시켰다고 한다. 혼란이 가라앉은 후, 카이네우스를 매장하려 하자, 카이네우스의 몸은 여자로 돌아와 있었다는 설도 있다.[37]
5. 예술 작품에서의 묘사
카이네우스는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확실하게 식별할 수 있는 가장 초기의 신화적 인물 중 하나이다.[18] 고대 그리스 도상학에서 카이네우스와 관련된 유일한 사건은 켄타우로마키(켄타우로스와의 전투)에 참여한 것이다. 카이네우스의 원래 여성성과 변형에 대한 예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켄타우로마키는 시각 예술에서 인기 있는 주제였으며, 많은 예시에서 카이네우스가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19]
가장 초기의 묘사는 기원전 7세기 중후반의 올림피아 청동 부조로, 두 명의 켄타우로스가 나무 기둥으로 카이네우스를 땅에 박는 모습이다. 그는 갑옷을 입은 호플리테스로 묘사되어 있으며, 이미 종아리 중간까지 땅에 박혀 있다. 켄타우로마키의 어떤 묘사에서도 이 부분적으로 가라앉은 모티프는 카이네우스를 즉시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20] 카이네우스가 여기에서 방패 없이(대신 손에 칼을 하나씩 들고) 묘사된 것은 불멸성을 암시한다.[21] 두 명의 켄타우로스에 의해 양 옆으로 둘러싸인 카이네우스가 있는 이 부조의 문장학적인 세 인물 구성은 전형적인 것이 되었다.[22]
카이네우스가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모습은 기원전 6세기 중반 프랑수아 항아리의 목에 묘사된 켄타우로마키의 중심 부분이다. 여기에서 허리까지 묻힌 카이네우스는 세 명의 켄타우로스에게 바위와 나무 기둥으로 공격받는 모습이 묘사된다. 카이네우스의 이 묘사는 비문으로 카이네우스를 식별한 최초의 사례이며, 세 번째 켄타우로스 적을 도입한 최초의 사례이다. 다른 묘사들은 기원전 5세기 후반의 사원 프리즈에 나타났으며, 여기에는 아테네의 헤파이스토스 신전, 바세의 아폴론 에피쿠리우스 신전, 수니온의 포세이돈 신전이 포함된다.
6. 후대의 평가 및 유산
카이네우스는 여러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 1690년, 프랑스 작곡가 파스칼 콜라스는 카이네우스 이야기를 바탕으로 5막짜리 서정 비극 《테티스와 펠레우스》를 작곡했는데, 여기서 카이네우스는 "카이네"라는 여성 등장인물로 등장한다.[1]
- 1712년, 이탈리아 작곡가 니콜라 파고는 카이네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3막짜리 오페라 《카이네오》를 작곡했다.[2]
- 1990년, 렉시콘 아이코노그라피쿰 신화학 클라시카이(LIMC)에 카이네우스에 관한 항목이 등재되었다.[3]
- 2023년, 로널드 녹스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관한 강의 모음집이 출판되었는데, 여기에는 카이네우스에 대한 비평 에세이가 포함되어 있다.[4]
그 외에도 카이네우스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작품에서 언급되거나 등장한다.
참조
[1]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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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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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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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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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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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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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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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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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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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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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간행물
[14]
간행물
[15]
간행물
[16]
간행물
Argonautica
https://www.loebclas[...]
Apollonius of Rhodes
[17]
간행물
[18]
간행물
[19]
간행물
[20]
간행물
[21]
간행물
[22]
간행물
[23]
문서
アクーシラーオス断片(オクシュリュンコス・パピルス)
[24]
문서
オウィディウス『変身物語』12巻。
[25]
문서
ヒュギーヌス、14話。
[26]
문서
ヒュギーヌス、172話。
[27]
문서
ヒュギーヌス、242話。
[28]
문서
アポロドーロス、1巻9・16。
[29]
문서
アントーニーヌス・リーベラーリス、17話。
[30]
문서
ロドスのアポローニオス『アルゴナウティカ』1巻57行。
[31]
문서
『イーリアス』第2巻。
[32]
문서
トラレスのプレゴーン『驚異譚』断片37。
[33]
문서
『ヘシオドス 全作品』p.369-370。
[34]
문서
アポロドーロス、適用(E)1・22。
[36]
서적
オウィディウス『変身物語』8巻
[37]
서적
ジョルジュ・ドゥヴルー『女性と神話 ギリシア神話にみる両性具有』
[38]
서적
ヘロドトス、5巻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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