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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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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사(太師)는 주나라에서 천자에게 국정을 자문하는 삼공 중 하나였으며, 이후 중국, 한국, 베트남 등 여러 국가에서 사용된 관직 명칭이다. 주나라에서는 천자의 스승이나 악관의 지위로도 사용되었고, 전한 시대에는 태부, 태보와 함께 사보로 불리며 왕을 보좌했다. 이후 시대에는 명예직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고려와 조선 왕조에서도 관직으로 존재했다.

2. 역사

태사는 주나라 때부터 시작된 관직으로, 태부, 태보와 함께 삼공(三公)으로 불리며 천자에게 국정 방향을 자문하는 역할을 했다.[1] 상나라기자가 태사 직책을 맡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주 성왕 때에는 주공 단이 이 지위를 맡았다.[1]

전한 평제 원시 원년(서기 1년)에는 평제의 보좌와 교육을 위해 태사, 태부, 태보가 설치되었는데, 이들은 태사, 태부, 태보 및 소부(少傅)를 포함하여 사보(四輔)라 불리며 삼공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다.[1] 후한 헌제 초평 2년(191년)에는 동탁이 태사가 되기도 했다.[1]

에서는 '사'(師) 자가 경제의 휘를 범하여 태재(太宰)로 불리기도 했다.[1] 이후 중국 왕조들에서는 태사, 태부, 태보가 명예직으로 설치되기도 했다.[1]

고려조선, 베트남 왕조에서도 중국의 제도를 본떠 태사를 두었다.

2. 1. 중국

한서》 백관지(百官志) 공경표(公卿表) 상(上)에 따르면 왕조에서는 태사와 태부(太傅), 태보(太保)를 '''삼공'''(三公)이라 불렀고, 천자에게 국정 방향을 자문하는 직책이었다. 왕조의 마지막 왕인 주를 피해 고조선으로 달아났다는 기자가 상나라에서 태사를 지냈다고 알려져 있다.[1] 성왕 때에는 주공 단이 처음으로 이 지위를 맡았다.[1] 한편 주나라에서는 천자의 스승 이외에 악관(樂官)의 지위로써도 '태사'라는 이름이 보인다.[1]

전한 평제 원시(元始) 원년(서기 1년), 어린 나이로 왕망 등에게 옹립된 평제의 보좌와 교육을 위해 태사, 태부, 태보가 설치되었다.[1] 금인자수(金印紫綬)로 지위는 대사마(大司馬), 대사도(大司徒), 대사공(大司空)의 삼공보다도 높았고, 태사는 태사, 태부, 태보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지위였다.[1] 태사, 태부, 태보 및 소부(少傅)의 네 관직을 '''사보'''(四輔)라 불렀다.[1] 신 이후로 태사는 두어지지 않았으나, 후한 헌제 초평 2년(191년)에 동탁이 태사가 되었다.[1] 지위는 여러 제후왕보다도 높은 것이었다(《후한서》 동탁전).[1]

에서 다시금 태사와 태부, 태보를 두었으나, '사'(師)라는 글자가 경제(추존)의 휘를 범한다 하여 이를 피해 '''태재'''(太宰)라고 부르게 되었다.[1] 이후의 중국 왕조에서도 태사, 태부, 태보가 설치되었으나, 적합한 자가 없으면 비워두기도 하는 명예직이었다.[1]당육전》에는 태사 등 '사부지관(師傅之官)'은 한나라 애제(哀帝), 평제 때 '삼공'의 위에 있어 '상공'(上公)이라고 부르던 것이 북위에서는 태사, 태부, 태보를 '''삼사'''(三師)라 불렀다고 되어 있으며, 북주(北周) 때 다시 한 번 '삼공'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 시대에는 '삼사'라고 불렸다.[1]

2. 2. 한국

한서 백관지(百官志) 공경표(公卿表) 상(上)에 따르면 왕조에서는 태사와 태부(太傅), 태보(太保)를 '''삼공'''(三公)이라 불렀고, 천자에게 국정 방향을 자문하는 직책이었다. 왕조의 마지막 왕인 주를 피해 고조선으로 달아났다는 기자가 상 왕조에서 태사를 지냈었다고 알려져 있다. 성왕 때에는 주공 단이 처음으로 이 지위를 맡았다고 한다. 한편 주 왕조에서는 천자의 스승 이외에 악관(楽官)의 지위로써도 「태사」라는 이름이 보인다.

전한 평제 원시(元始) 원년(서기 1년), 어린 나이로 왕망 등에게 옹립된 평제의 보좌와 교육을 위해 태사, 태부, 태보가 설치되었다. 금인자수(金印紫綬)로 지위는 대사마(大司馬), 대사도(大司徒), 대사공(大司空)의 삼공보다도 높았고, 태사는 태사, 태부, 태보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지위였다. 태사, 태부, 태보 및 소부(少傅)의 네 관직을 '''사보'''(四輔)라 불렀다. 신 이후로 태사는 두어지지 않았으나, 후한 헌제 초평 2년(191년)에 동탁이 태사가 되었다. 지위는 여러 제후왕보다도 높은 것이었다(《후한서》 동탁전).

에서 다시금 태사와 태부, 태보를 두었으나, 「사」(師)라는 글자가 경제(추존)의 휘를 범한다 하여 이를 피해 '''태재'''(太宰)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후의 중국 왕조에서도 태사, 태부, 태보가 설치되었으나, 적합한 자가 없으면 비워두기도 하는 명예직이었다. 《당육전》에는 태사 등 「사부지관(師傅之官)」은 한 애제(哀帝), 평제 때 「삼공」의 위에 있어 「상공」(上公)이라고 부르던 것이 북위에서는 태사, 태부, 태보를 '''삼사'''(三師)라 불렀다고 되어 있으며, 북주(北周) 때 다시 한 번 「삼공」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 시대에는 「삼사」라고 불렸다.

2. 2. 1. 고려

고려조선, 베트남 왕조에서도 중국 제도를 본떠 태사(太師)를 두었다.

2. 2. 2. 조선

조선에서도 중국 제도를 본떠 태사(太師)를 두었다.

2. 3. 베트남

베트남 왕조에서도 중국의 제도를 본떠 태사(太師)를 두었다.

3. 역대 태사

고려와 조선 시대 역대 태사(太師) 관직 역임자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성명재임 기간관직
이방(李方)태자태보(太子太保)
이중육(李仲育)고종 재위 기간(1192년~1259년)태자태사(太子太師)
이신육(李信育)원종 재위 기간(1219년~1274년)태사(太師)
이지공양왕 재위 기간(1389년~1392년)태사(太師)
이양환(李陽煥)태사(太師)
이지태종 재위 기간(1408년~1414년)섭태부(攝太傅)


3. 1. 고려

고려 시대에 태자태사(太子太師)는 이중육(李仲育)이 고종 재위 기간(1192년~1259년)에 역임하였고, 태사(太師)는 이신육(李信育)이 원종 재위 기간(1219년~1274년)에, 이지공양왕 재위 기간(1389년~1392년)에 역임하였다.[1] 이양환(李陽煥)은 고려 시대에 태사(太師)를 역임하였다.[2]

성명재임 기간관직
이방(李方)태자태보(太子太保)
이중육(李仲育)고종(1192년-1259년)태자태사(太子太師)
이신육(李信育)원종(1219년-1274년)태사(太師)
이지공양왕(1389년-1392년)태사(太師)
이양환(李陽煥)태사(太師)


3. 2. 조선

성명재임 기간관직
이지태종 (1408년-1414년)섭태부(攝太傅)


참조

[1] 웹사이트 Official Titles of the Han Dynasty: A Tentative List Compiled for The Han Dynasty History Project https://web.archive.[...] University of Washington 2013-03-04
[2] 서적 To Establish Peace: being the Chronicle of the Later Han dynasty for the years 189 to 220 AD as recorded in Chapters 59 to 69 of the Zizhi tongjian of Sima Guang https://digitalcolle[...]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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