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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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투피족은 유럽인들이 브라질에 도착했을 당시 약 1백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민족으로, 농경 기술을 갖추고 있었으나 언어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부족 단위로 나뉘어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16세기 포르투갈인과의 접촉 이후, 투피족은 기독교 개종, 노예화, 전염병 확산 등으로 인해 쇠퇴하였으며, 유럽인과의 혼혈을 통해 브라질 혼혈 집단에 영향을 미쳤다. 투피족은 브라질 사회에 언어, 지명,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미쳤으며, 과라니족을 포함한 다른 민족들에게도 문화적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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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피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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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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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역사적으로 1,000,000명, 포티과라족 10,837명, 올리벤사 투피남바족 3,000명, 투피니킨족 2,630명, 그 외 부족은 멸종했지만 파르두 브라질 인구의 혈통 조상 |
거주 지역 | 브라질 중부 및 해안 지역 |
언어 | 투피어족, 이후 링구아 제랄, 훨씬 후에는 포르투갈어 |
종교 | 토착 종교, 이후 기독교 |
관련 민족 | 과라니족 |
역사 | |
기원 | 아마존 지역에서 기원, 약 2,900년 전에 이동 |
2. 역사
투피족은 유럽인들이 브라질에 도착하기 전까지 브라질 해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살았다. 1500년경에는 인구가 약 1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시 포르투갈 인구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들은 투피니킴, 투피남바, 포티과라 등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생활했으며, 각 부족은 300명에서 2,000명 정도로 구성되었다.[3]
투피족은 카사바, 옥수수, 고구마, 콩, 땅콩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농경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통일된 민족이라는 의식은 없었으며, 각 부족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2. 1. 유럽인과의 접촉 및 식민화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에 도착했을 때, 투피족은 이미 광대한 지역에 걸쳐 살고 있었다. 이들은 카사바, 옥수수, 고구마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농경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통일된 민족 의식 없이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3]포르투갈 식민 지배자들은 투피족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유럽식 생활에 동화시키기 위해 '알데이아'(aldeias)라는 정착촌을 건설했다.[4] 그러나 이들의 진정한 목적은 투피족을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투피족은 수출품 재배와 운송에 동원되었고, 결국 노예화되어 농장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5]
유럽에서 건너온 전염병은 투피족 사회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면역력이 없던 투피족 원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고, 대부분의 공동체가 소멸되었다.[5] 살아남은 이들은 유럽인들에게 동화되거나, 소수만이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전통을 이어갔다.[6]
초기 포르투갈 정착민들은 여성을 거의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투피족 여성들과의 사이에서 수많은 혼혈 후손이 태어났다. 이는 브라질 혼혈인(Pardo) 집단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2. 식인 풍습
투피족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으며, 전쟁에서 사로잡은 적을 식인 의식을 통해 죽이는 풍습이 있었다.[6] 다른 투피족 부족에게 포로로 잡힌 전사들은 그들의 힘이 흡수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먹혔다. 약점을 흡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강하고 용감하다고 여겨지는 전사들만 희생되었다. 투피족 전사들에게는 포로가 되더라도 용감하게 죽거나 희생 과정에서 용기를 보이는 것이 큰 영광이었다.[7] 또한, 투피족은 죽은 친척의 유해를 존경의 표시로 먹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8]투피족의 식인 풍습은 브라질을 여행한 독일 군인이자 선원, 용병인 한스 스타덴에 의해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1552년 투피족에게 포로로 잡혔으나, 1557년에 출판된 그의 기록에 따르면, 투피족이 그를 마을로 데려가 다음 축제에서 잡아먹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병을 치료해준 족장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9]
투피족과 브라질 다른 부족들의 식인 의식은 유럽과의 접촉, 그리고 종교적 개입 이후 점차 감소했다. 일례로, 1541년 산타 카타리나 섬에 도착한 스페인 정복자 알바르 누녜스 카베사 데 바카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이름으로 식인 행위를 금지하려 했다.[10]
투피족의 식인 행위에 대한 기록은 주로 유럽 작가들의 1차 자료에 의존하기 때문에, 식인 행위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일부 학계에서는 논쟁이 있다. 윌리엄 아렌스는 그의 저서 《식인 신화: 인류학 & 식인》에서 한스 스타덴을 비롯한 작가들의 식인 행위 묘사를 불신하며, 투피남바족의 경우 "식인 행위에 대한 일련의 기록"보다는 "의심스러운 증언의 한 가지 출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11]
그러나 대부분의 브라질 학자들은 투피족 문화에서 식인 행위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고 주장한다. 투피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연구한 인류학자 다르시 히베이루는 카아포르족이 16세기에 묘사된 것과 유사한 인육 섭취 의식을 조상들이 행했다고 보고했다.[12] 다른 브라질 학자들은 아렌스가 역사적 부정주의를 저질렀으며, 예수회 서한을 비롯한 중요 자료와 역사적, 인류학적 연구를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식인 행위가 사회적, 문화적 관습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지적하며, 특히 유럽인들이 식인 행위와 같은 전통 관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함으로써 투피족을 야만과 연관시키려 했다고 비판한다.[13]
2. 3. 혼혈과 '쿤하디스모'
16세기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브라질에 도착했을 때, 투피족은 그들과 처음 접촉한 원주민 집단이었다. 포르투갈 정착민들은 여성을 거의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원주민 여성들과의 혼혈 과정이 시작되었고, 이들은 "브라질 민족의 번식 모체"가 되었다.[6]
최초의 유럽인들이 도착했을 때, "쿤하디스모" (''cunhado'', 포르투갈어로 "처남") 현상이 식민지 전역으로 퍼졌다. 쿤하디스모는 이방인을 공동체에 통합하는 오래된 원주민 전통이었다. 원주민들은 포르투갈인에게 아내로 원주민 소녀를 제공했고, 일단 그가 동의하면 부족의 모든 원주민과 친족 관계를 형성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 흔히 행해지던 일부다처제는 유럽 정착민들에게 빠르게 받아들여졌다. 이로 인해 한 명의 유럽 남성이 수십 명의 원주민 아내 (테메리코스)를 두는 경우도 있었다.[6]
쿤하디스모는 노동력 모집에도 사용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은 많은 테메리코스를 가질 수 있었고, 이는 곧 그를 위해 일하도록 유도된 엄청난 수의 원주민 친척들을 의미했다. 특히 파우브라질을 베어 해안의 배로 운반하는 데 많은 원주민 노동력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의 혼혈(마멜루코) 인구가 형성되어 브라질을 실질적으로 점령하게 되었다. 쿤하디스모 관행 없이는 포르투갈 식민지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브라질에 있는 포르투갈 남성의 수는 매우 적었고, 포르투갈 여성의 수는 더욱 적었기에, 원주민 여성과의 혼혈을 통한 인구 증가는 영토를 점령하고 이 지역에서 포르투갈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6]
3. 브라질에 미친 영향
투피족은 브라질 사회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브라질 포르투갈어에는 투피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mingau, mirim, soco, cutucar, tiquinho, perereca, tatu'와 같은 단어와, 'arara' (마코 앵무), 'jacaré' (남미 앨리게이터), 'tucano' (투칸) 같은 동물 이름, 'mandioca' (카사바), 'abacaxi' (파인애플) 같은 식물 이름이 투피어에서 파생되었다.[14] 현대 브라질의 여러 지역과 도시 이름(''Itaquaquecetuba'', ''Pindamonhangaba'', ''Caruaru'', ''Ipanema'')과 인명('Ubirajara', 'Ubiratã', 'Moema', 'Jussara', 'Jurema', 'Janaína')에도 투피어의 흔적이 남아있다.[14] 투피족의 성씨도 존재하지만, 이것이 실제 투피족 혈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브라질 민족주의를 나타내기 위해 채택된 경우가 많다.[15]
3. 1. 현대 브라질 사회의 투피족
유럽인들이 브라질에 도착했을 당시, 투피족은 약 1백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었고, 카사바, 옥수수, 고구마 등을 재배하는 농업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통일된 민족 의식 없이 수백에서 수천 명 단위의 부족으로 흩어져 살았으며, 부족 간에는 잦은 전쟁과 식인 풍습이 있었다.식민화 과정에서 유럽인들은 투피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유럽식 생활에 동화시키려 했으며, 이들을 농장 노동에 동원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유입된 전염병과 노예화로 인해 대부분의 투피족 공동체는 소멸되었고, 많은 이들이 유럽 사회에 동화되었다. 특히, 초기 포르투갈 정착민들은 여성을 거의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인 남성과 투피족 여성 사이에서 수많은 혼혈 후손이 태어났다.
오늘날 소수의 투피족만이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나머지는 브라질의 혼혈인(Pardo) 집단에 혈통적 영향을 남긴 채 민족으로서는 사라졌다. 다르시 히베이루에 따르면, 초기 브라질인들의 특징은 포르투갈인보다 투피족에 더 가까웠으며, 18세기까지 브라질의 공용어는 투피어를 기반으로 한 링구아 제랄(Língua Geral)이었다.[6]
상파울루 주 지역의 반데이란치스는 아마존 열대 우림에서 남부 브라질까지 브라질 영토 전체로 퍼져 나가며 이베리아 반도 문화를 확산시켰다. 이들은 고립된 토착 부족들을 동화시키고, 링구아 제랄을 식민지 곳곳에 전파했다. 링구아 제랄은 투피어를 사용하지 않는 지역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17세기에 상파울루 출신 반데이란치스에 의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구(Old)' 파울리스타스('Paulistas')의 생활 방식은 원주민과 거의 유사했으며, 가족 내에서는 링구아 제랄만 사용되었다. 농업, 사냥, 낚시, 과일 채집 또한 토착 전통을 기반으로 했다. 이들이 투피족과 달랐던 점은 옷, 소금, 금속 도구, 무기 등 유럽 물품을 사용했다는 것이다.[6]
시장 경제가 통합되면서 브라질 사회는 점차 투피족의 특징을 잃어갔다. 포르투갈어가 지배적이 되면서 링구아 제랄은 사실상 사라졌고, 수출 능력을 높이기 위해 토착 생산 기술은 유럽식 기술로 대체되었다.[6] 그러나 브라질 포르투갈어에는 투피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mingau, mirim, soco, cutucar, tiquinho, perereca, tatu'와 같은 단어와 'arara' (마코 앵무), 'jacaré' (남미 앨리게이터), 'tucano' (투칸) 같은 동물 이름, 'mandioca' (카사바), 'abacaxi' (파인애플) 같은 식물 이름이 투피어에서 파생되었다. 현대 브라질의 여러 지역과 도시 이름(''Itaquaquecetuba'', ''Pindamonhangaba'', ''Caruaru'', ''Ipanema'')과 인명('Ubirajara', 'Ubiratã', 'Moema', 'Jussara', 'Jurema', 'Janaína')에도 투피어의 흔적이 남아있다.[14] 투피족의 성씨도 존재하지만, 이것이 실제 투피족 혈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브라질 민족주의를 나타내기 위해 채택된 경우가 많다.[15]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의 1971년 영화 ''내 작은 프랑스인이 얼마나 맛있었나''(''Como Era Gostoso o Meu Francês'')에는 투피남바(Tupinambá) 부족이 허구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과학 분야에서도 투피족의 이름이 사용되는데, 브라질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도마뱀 테구 속은 ''Tupinambis''라고 불린다.
2006년 브라질 해안에서 발견된 대규모 투피 유전은 투피족을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
과라니족은 남부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볼리비아, 북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며 과라니어를 사용하는 또 다른 토착 집단이지만, 투피족과 같은 언어족에 속한다.
4. 남아메리카 타 국가들에 미친 영향
칠레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아메리카 국가에 투피족의 흔적이 남아있다.[20][21][22][23][24] 수많은 사람, 거리, 동네, 도시, 강, 동물, 과일, 식물, 축구 클럽, 회사들의 이름이 과라니어로 지어졌다.[16][17][18][19]
국가 | 투피어/과라니어 기원 지명 및 명칭 |
---|---|
베네수엘라 | 카부레(Cabure), 아라쿠아(Ara kua) ("금강앵무의 구멍"), 카구아(Cagua), 마라카이(Maracay 'Mbarakajay) ("살쾡이"), 아라과, 타구아이, 야구아라탈, 카이구아, 카라피타, 야구아라쿠알, 타구아피레, 카루파노, 야구아라파로, 카루페, 이라파(Irapa Yrapa) ("모든 시내"), 타바이(Táva) ("작은 마을"), 우라코아, 아라귀타, 투쿠피타(Tucupita Tuku pytã) ("바닷가재"), 과라포, 차구아라마스(Chaguaramas Jaguaráma) ("재규어의 땅"), 투하, 쿠야과, 치바코아, 우루쿠레('Urukurea) ("땅굴올빼미"), 무쿠라과, 쿠아라, 투카니(Tukã) ("작은 투칸"), 자쿠케, 추루과라, 타쿠아토(Tacuato Taguato) ("매"), 아구아이, 파라과나 반도(Paraguaná Peninsula Paragua na) ("왕관 모양"), 아푸레(Apure Apyre) ("끝, 팁, 종착점 또는 경계"), 아라과(Aragua Ara gua) ("금강앵무"), 라 과이라(La Guaira Guayraka) ("돌고래"), 야라쿠이(Yaracuy Jarara kúi) ("떨어지는 자라라카"), 아라카카, 카리아케이('카리아이 카이사 ("용감한 자들의 장벽"), 이구아파(이구아파'' ("모든 만") |
프랑스령 기아나 | 카옌 (Kỹiña|카옌고추gn를 의미하는 단어의 프랑스화) |
수리남 | 파라마리보 ("바다 아래"를 의미. 카리브해의 일부이지만, 아마존 삼각주와 가까운 남대서양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카리브해를 지칭). |
콜롬비아 | 부리티카(Buriticá Mburiti ka ("모리셔 플렉수오사에서 온 것"), 이투앙고(Ituango), 아피아(Apía), 이바게(Ibagué yvakue ("떨어진 과일 또는 과일 껍질"), 아쿠아타(Acuata), 아라우카(Arauca), 티바쿠이(Tibacuy), 모코아(Mocoa), 엘 자과(El Jagua), 이구암비(Iguambi), 이타귀(Itagüí) ("바위에서"), 야카레(Yacare), 테랑구아라(Teranguara), 차차귀(Chachagüí), 푸엔테 아란다(Puente Aranda), 카탄부코(Catambuco), 아과요(Aguayo) |
파나마 | 이페티 이페티 ("오리의 부리") |
에콰도르 | 엘 아구아이(El Aguay) 아구아이(Aguai) ("과일 나무"), 우르쿠키(Urcuqui), 팀부야쿠(Timbuyacu), 암부키(Ambuquí), 팀비레(Timbiré) |
페루 | 아구아이티아 'Aguaity'' ("아구아이 농장"), 쿠리야카, 임밤바리 |
볼리비아 | 야쿠이바, 파라임리, 이타임베구아수, 타타렌다, 사이푸루, 카피렌다, 이타이, 이바미라게라, 카란다이티, 이파구아수, 아바포, 팀보이, 카라파리, 우루비차, 쿠루구아쿠아, 구아나이, 야구아루, 로가구아 |
우루과이 | 타쿠아렘보, 파이산두, 차피쿠이 ("낡은"), 사란디 델 이 사란디 델 이 ("이 강의 관목"), 발네아리오 이포라 ("아름다운 물놀이 장소"), 엘 옴부, 야쿠이 (살토), 사란디 델 아라페이 사란디 델 아라페이 ("데일리 태스크 강의 관목"), 사란디 그란데, 이투자인고, 아이구아 |
5. 주요 투피족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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