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트룰로 공의회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트룰로 공의회는 691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열린 교회 회의로, 교리보다는 교회 규율과 관련된 102개의 교회법을 제정했다. 이 회의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의 주교들이 참석했으나, 로마 교황은 초청받지 못했다. 주요 결정 사항으로는 성직자의 재혼 금지, 유대인과의 교류 제한, 이교 축제 금지 등이 있었으며, 동방 정교회에서는 제5차 및 6차 공의회의 일부로, 개신교에서는 부수적 회의로 받아들여지나, 천주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 회의의 결정은 7세기 로마 문화권 연구에 도움이 되지만, 현대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트룰로 공의회
공의회 정보
공의회 명칭퀴니섹스트 공의회
다른 이름트룰로 공의회
로마자 표기Concilium Quinisextum (콘칠리움 퀴니섹스툼)
그리스어Πενθέκτη Σύνοδος (펜텍티 시노도스)
트룰로τρούλος (트룰로스)
개최 연도692년
인정 교단동방 정교회
이전 공의회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다음 공의회제2차 니케아 공의회
소집자유스티니아누스 2세 황제
의장유스티니아누스 2세
주제교회 규율
문서동방 정교회 교회법의 기초
공의회 모습 (16세기 러시아 묘사)
공의회 모습 (16세기 러시아 묘사)

2. 명칭

트룰로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황제 궁궐 내부 원형 건물 회의실의 이름이다. 공의회에 지역명이 아니라 회의실 이름이 사용된 것은 교리적인 내용이 아니라 교리에 따른 사소한 규정을 정하는 회의였기 때문이다. 일종의 세부 내용 조정 회의였다. 서방 교회인 천주교회에서는 이 공의회를 흔히 '퀴니섹스툼'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라틴어로 5를 뜻하는 'quin'과 6을 뜻하는 'sex'를 합친 말이다. 이전에 열렸던 두 차례 세계 공의회, 즉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제5차 세계 공의회)와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제6차 세계 공의회) 이후에 교리에 따라 해결해야 할 세부적 규정 문제들을 다루었던 회의였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3. 역사적 배경

'''트룰로'''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황제의 궁궐 내부 원형 건물의 회의실 이름이다. 공의회에 지역명이 아니라 회의실 이름이 사용된 것은 교리적인 내용이 아니라 교리에 따른 사소한 규정을 정하는 회의였기 때문이다. 일종의 세부내용 조정 회의였다. 흔히 서방교회인 천주교회에서 '퀴니섹스툼'이라고 하는 것은 라틴어로 5와 6을 뜻하는 quin|퀸lat과 sex|섹스lat를 합친 것으로, 이전에 벌어진 두 차례 세계 공의회 (제5차 세계 공의회제6차 세계공의회) 이후에 교리에 따라 해결해야 할 세부적 규정 문제들을 다루었던 회의였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4. 공의회의 결정 사항

691년 황제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제창하여 이듬해 열린 트룰로 공의회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의 4개 지역교회 주교 165명이 참석하여 총 102조항의 교회법을 제정했다. 이 교회법들은 주로 교리적인 문제보다는 성직자평신도의 구체적인 행동 규범 및 전례 방식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공의회는 기존에 개최된 여섯 차례의 에큐메니컬 공의회의 권위를 재확인했으며, 추가로 여러 지역 공의회와 교부들의 교령을 승인했다.

'''승인된 공의회 및 교령'''

구분목록
사도 교령85개 조항
지역 공의회앙키라 공의회, 네오카이사리아 공의회, 강그라 공의회, 341년의 안티오크 공의회, 세르디카 공의회, 라오디게아 공의회, 카르타고 공의회,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394년)



'''권위가 확인된 교부 및 교령'''

교부교령 수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오4개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구스12개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 1세15개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3개 (아타나시우스의 39번째 축제 서신 포함)[1]
알렉산드리아의 티모테오 1세18개
카이사레아의 바실리오92개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1개
니사의 그레고리오8개
이코니움의 암필로키우스1개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루스 1세14개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5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게나디오1개



또한 공의회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의 일부 관습(성찬례 시 물을 섞지 않은 포도주 사용,[4] 성직자 자녀의 우선적 사제 임명,[5] 사순절 중 특정 음식 섭취[6] 등)과 로마 교회의 일부 관습(부제나 사제 서품 시 영구적 정결 서약 요구, 사순절 토요일 금식[7] 등)을 명시적으로 비판하고 금지했다. 이러한 규정을 위반할 경우 성직자는 파면, 평신도파문에 처해졌다.[10]

전례와 관련해서는 성찬례 봉헌물(포도, 우유, 꿀 금지), 성찬 수령 방식(손을 십자 형태로 모아 받음), 시신에 대한 성찬 금지, 시편 봉독 방식, 삼위일체 찬가 문구 수정 금지, 주교의 설교 방식, 세례받지 않은 이들과 이단자들에 대한 지침 등을 규정했다. 사순절 기간 중 성찬례 거행 가능일도 제한되었다.[9][1][10]

4. 1. 성직자 관련 규정

트룰로 공의회의 많은 규칙들은 기독교 세계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는 의례 준수와 성직자 훈련의 차이점을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공의회는 비잔틴 제국의 후원을 받아 전적으로 동방 기독교 성직자들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관행을 정통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2]

공의회에서 결정된 102개 조항 중 성직자와 관련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결혼 및 여성 관계: 성직자의 재혼은 금지되었다(교회법 3조). 또한 세례 이후 과부, 창녀, 노예, 여배우와 결혼한 남성은 사제가 될 수 없었다(교회법 3조). 부적절하거나 불법적인 여성 관계를 맺은 성직자들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10] 로마의 관습과는 달리, 결혼한 남성이 부제나 사제로 서품될 경우 영구적인 정결을 서약하고 아내와 별거해야 한다는 요구는 비판받았다.[7] 다만, 제단에서 봉사하는 동안에는 정결을 지켜야 했다.
  • 타 종교 관련: 사제는 유대인 의사에게 진료를 받거나 유대인과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교회법 11조).
  • 특정 지역 관습 비판: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의 일부 관습이 명시적으로 비난받고 금지되었다. 여기에는 성찬례에 물을 섞지 않은 포도주를 사용하는 것,[4] 성직자 임명 시 성직자의 자녀를 선택하는 것,[5] 사순절 토요일과 일요일에 달걀과 치즈를 먹는 것[6] 등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규정을 위반하는 성직자는 파면, 평신도파문에 처해졌다.[10] 또한 로마의 관습 중 사순절 토요일에 금식하는 행위도 유사한 처벌 대상으로 비난받았다.[7]
  • 경제 활동: 성직 매매와 성찬을 집행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행위가 규탄되었다. 성직자들은 고리대금 행위도 금지되었다.[10]
  • 생활 태도 및 품위: 성직자들은 주점 출입, 히포드롬에서의 경마 관람, 부적절한 옷차림이 금지되었다. 또한 주교의 동의 없이 사적인 집(''eukterion'')에서 전례를 거행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머리카락을 도발적이거나 유혹적으로 곱슬거리게 한 채 교회 건물에 들어오는 것도 금지되었다(교회법 96조).[10]
  • 금지된 행위 (성직자 및 평신도 공통): 주사위 도박, 연극 관람, 점쟁이에게 상담하는 것이 금지되었다.[10]
  • 음식: 피를 직접 또는 육류를 통해 섭취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이를 어길 시 성직자는 파문 및 면직, 평신도는 파문의 형벌을 받았다.[12]
  • 기타 금지 사항: 매춘 업소 소유, 낙태, 화려하게 땋은 머리 스타일, 음란물 유포 등이 금지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대학교의 법학도들에게는 "일반적인 관습에 어긋나는 의복" 착용 중단이 명령되었다.[11][10]


사순절 기간 동안 성찬례는 토요일, 일요일, 주님 탄생 예고 축일에만 거행하도록 규정되었다.[9][1][10]

4. 2. 신자 생활 관련 규정

691년 황제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제창하여 이듬해 열린 트룰로 공의회에서는 102조항의 교회법을 마련했는데, 신자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세부적인 규정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공의회에서 결정된 102조의 교회법 조항 중 신자 생활과 관련된 몇 가지 예시는 다음과 같다.

  • 교회법 3조: 성직자의 재혼을 금지한다. 세례를 받은 이후에 과부, 창녀, 노예, 여배우와 결혼한 남자는 사제가 될 수 없다.
  • 교회법 11조: 사제는 유대인 의사에게서 진료를 받거나 유대인과 함께 목욕탕에 들어갈 수 없다.
  • 교회법 65조: 초승달이 뜰 때 모닥불 주위에서 춤추는 행위를 금지한다.
  • 교회법 79조: 크리스마스 선물을 금지한다.
  • 교회법 96조: 머리카락을 도발적이거나 유혹적으로 곱슬거리게 한 채로 교회 건물에 들어오지 못한다.


또한 공의회는 이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는 특정 축제와 관습을 금지했다. 이로 인해 기독교 이전의 종교 관습에 대한 일부 정보를 엿볼 수 있다.[2] 성직자나 평신도 모두 Vota|보타la,[3] Kalendae|칼렌다la 또는 Brumalia|브루말리아la와 같은 이교 축제를 지키는 것이 금지되었다.[11]

성직자에 대한 규율도 강화되었다. 부적절하거나 불법적인 여성 관계를 맺은 성직자, 성직매매를 하거나 성찬을 집전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행위가 비판받았다. 성직자는 주점 출입, 고리대금 행위, 히포드롬에서의 경마 관람, 부적절한 옷차림이 금지되었으며, 주교의 허락 없이 사적인 집(''eukterion'')에서 전례를 거행하는 것도 금지되었다.[11][10]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적용되는 금지 사항도 있었다. 주사위 도박, 연극 관람, 점쟁이에게 상담하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또한 매춘 업소 소유, 낙태, 화려하게 땋은 머리 스타일, 음란물 유포 역시 허용되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 대학교의 법학도들에게는 "일반적인 관습에 어긋나는 의복" 착용을 중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11][10] 피를 직접 마시거나 육류를 통해 섭취하는 행위도 금지되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성직자는 파문 및 면직, 평신도는 파문의 처벌을 받게 되었다.[12]

4. 3. 전례 및 신앙생활 관련 규정

692년 트룰로 공의회에서 제정된 102개의 교회법 조항들은 주로 교리 문제보다는 성직자평신도의 구체적인 행동 규범 및 전례 방식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2] 공의회는 동방 기독교, 특히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관행을 기준으로 삼아 기독교 세계 내 다양한 전례 준수와 성직자 훈련의 차이를 통일하고자 했다.[2]

공의회는 이교의 영향으로 간주되는 특정 축제와 관습들을 금지했다. 예를 들어, Vota|보타la, Kalendae|칼렌다이la, Brumalia|브루말리아la와 같은 이교 축제를 지키는 것이 금지되었으며,[11] 초승달이 뜰 때 모닥불 주위에서 춤추는 행위(교회법 65조)도 금지 목록에 포함되었다.[2] 또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관행(교회법 79조)도 금지되었다.

성직자의 생활과 관련된 규정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 결혼 및 서품: 성직자의 재혼은 허용되지 않았고, 세례 이후 과부, 창녀, 노예, 여배우와 결혼한 남성은 사제로 서품될 수 없었다(교회법 3조). 결혼한 남성이 부제나 사제로 서품될 때 영구적인 정결 서약과 아내와의 별거를 요구하는 로마 교회의 관행은 비판받았으나,[7] 제단에서 봉사하는 동안에는 정결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아르메니아 기독교에서 성직자의 자녀를 우선적으로 사제로 임명하는 관습은 금지되었다.[5]
  • 품위 유지: 성직자는 유대인 의사에게 진료를 받거나 유대인과 함께 목욕하는 것이 금지되었고(교회법 11조), 주점 출입, 고리대금 행위, 히포드롬 경마 관람, 부적절한 옷차림 등이 금지되었다. 또한 부적절하거나 불법적인 여성 관계를 맺는 것, 성직 매매, 성찬례 집전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행위도 규탄받았다.[11][10] 주교의 허락 없이 사적인 장소(εὐκτήριον|에우크테리온grc, 사설 기도소)에서 전례를 거행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전례와 관련된 규정들은 다음과 같다.

  • 성찬례: 아르메니아 기독교에서 물을 섞지 않은 포도주를 사용하는 관습은 명시적으로 비난받고 금지되었다.[4] 성찬례를 받을 때는 손을 십자 형태로 모아 받아야 했으며, 시신에게 성찬례를 베푸는 것은 금지되었다. 제단에는 포도, 우유, 꿀 등을 봉헌할 수 없었다.
  • 사순절: 사순절 기간 중 토요일에 금식하는 로마 교회의 관행은 비판받았으며,[7]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사순절의 토요일과 일요일에 달걀과 치즈를 먹는 관습도 금지되었다.[6] 사순절 기간 동안 성찬례는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주님 탄생 예고 축일에만 거행하도록 규정되었다.[9][1][10]
  • 기타 전례 규정: 전례 중 시편은 점잖고 감미로운 음조로 불러야 했으며, 삼위일체 찬가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이라는 구절을 추가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주교는 교부들의 해석에 따라 복음을 설교해야 했으며, 세례받지 않은 사람들과 이단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도 마련되었다.


이 외에도 평신도를 포함한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규정들이 있었다. 머리카락을 유혹적으로 곱슬거리게 꾸미고 교회 건물에 들어오는 것(교회법 96조), 주사위 도박, 연극 관람, 점쟁이 상담 등이 금지되었다. 또한 매춘 업소 소유, 낙태, 화려하게 땋은 머리 스타일, 음란물 유포도 허용되지 않았다.[11][10] 피를 직접 또는 육류 형태로 섭취하는 행위는 성직자에게는 파문 및 면직, 평신도에게는 파문의 형벌로 금지되었다.[12] 콘스탄티노폴리스 대학교의 법학도들에게는 "일반적인 관습에 어긋나는 의복" 착용을 중단하도록 명령했다.[11][10]

이러한 규정들을 위반할 경우, 성직자에게는 파면, 평신도에게는 파문과 같은 처벌이 내려졌다.[10]

다음은 공의회에서 결정된 교회법 조항 중 일부 예시이다.

교회법 조항주요 내용
3조성직자의 재혼 금지 및 특정 여성과의 결혼 시 사제 서품 불가.
11조사제의 유대인 의사 진료 및 유대인과의 목욕 금지.
65조초승달이 뜰 때 모닥불 주위에서 춤추는 행위 금지.
79조크리스마스 선물 금지.
96조유혹적인 머리 모양으로 교회 건물 출입 금지.


4. 4. 기타

691년 황제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제창하여 이듬해 열린 트룰로 공의회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 등 4개 지역교회의 주교 165명이 참석했다. 이 공의회는 교리적인 문제보다는 사소한 행동 규범에 대한 논의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총 102조항의 교회법을 마련했다.

황제는 이 공의회가 중요한 교리 회의가 아니었고, 로마와의 거리가 멀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로마교회 대표를 초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이미 멸망한 서로마 지역의 대표 교회였던 로마교회에서는 주교들을 초청하지 않은 것을 황제가 로마교회를 무시하는 처사로 받아들였다. 또한, 제정된 교회법 중 상당수는 로마교회의 상황과는 무관한 내용이 많았다.

이 공의회에서 결정된 102개 교회법 조항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조항내용
교회법 3조성직자의 재혼을 금지한다. 세례를 받은 이후에 과부, 창녀, 노예, 여배우와 결혼한 남자는 사제가 될 수 없다.
교회법 11조사제는 유대인 의사에게 진료를 받거나 유대인과 함께 목욕탕에 들어갈 수 없다.
교회법 65조초승달이 뜰 때 모닥불 주위를 돌며 춤추는 행위를 금지한다.
교회법 79조크리스마스 선물을 금지한다.
교회법 96조머리카락을 도발적이거나 유혹적으로 곱슬거리게 한 채 교회 건물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한다.


5. 공의회 이후의 논쟁과 수용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 등 보편교회의 주요 4개 지역 교회는 트룰로 공의회의 결정을 찬성하였다. 황제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로마 교회를 공의회에 초청하지 않았으며, 공의회가 끝난 뒤 로마 교회에 일방적으로 결정 사항 수용을 요구했다. 이에 로마 교회 대주교 세르지오 1세는 정치적인 이유 등을 들어 공의회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7세기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였고, 동로마제국이 실질적인 로마제국의 중심이었다.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보편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신약성경의 언어인 코이네 그리스어가 보편교회의 주요 언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 교회는 상대적으로 변방에 위치했기에, 로마 대주교의 반대는 보편교회 전체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공의회 결정은 보편교회 전역에 공포되었다. 이후 11세기가 지나면서 로마 교회는 이 공의회에서 제정된 교회법들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로마 교구가 공의회 결정에 즉각적으로 격렬하게 반대한 데에는 두 가지 주요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공의회 교회법 중 두 조항(13조와 55조)이 명시적으로 로마의 관행을 비판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로마 교회가 이미 결정된 새로운 교회법들을 사후에 승인해야 한다는 점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11년, 교황 콘스탄티누스는 동방 교회가 제정한 교회법의 유효성을 로마가 인정하되, 서방에서는 기존의 다른 관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타협안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교황 하드리아노 1세가 785년경에 보낸 편지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타라시우스 총대주교가 트룰로 공의회의 교회법을 승인했다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 서방에서는 하드리아노 1세 자신이 직접 공의회를 승인한 것으로 잘못 해석되기도 했다. 타라시우스의 편지는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낭독되고 확인되었으며, 이 공의회는 첫 번째 교회법에서 트룰로 공의회의 교회법들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2세기 교회법학자 그라티아누스는 자신의 방대한 교회법 모음집인 그라티아누스의 교령집에 트룰로 공의회의 많은 교회법을 인용했다. 다만, 서방의 교회법이나 관행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동방의 관행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하되 보편적인 구속력은 없다고 보아 제외했다. 그라티아누스의 저서는 1917년 최초의 체계적인 가톨릭 교회법전이 발행될 때까지 서방 교회법에서 중요한 권위를 유지했다.

트룰로 공의회에서 제정된 교회법들은 비잔틴 시대 내내 교회법 수집물에 포함되었으며, 심지어 성상 파괴 시대에도 포함되었다. 이는 공의회 82조에서 그리스도의 성상(이콘)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지된 것이다.

현재 트룰로 공의회에 대한 각 교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교파트룰로 공의회 수용 입장
동방 정교회제5차 세계 공의회와 제6차 세계 공의회의 일부로 받아들임
개신교회제5차 세계 공의회의 부수적인 회의로 수용
천주교회공의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음


6. 현대적 의의 및 평가

21세기 현재 트룰로 공의회의 결정 내용은 7세기 유럽과 소아시아 지역의 로마 문화권 연구에 도움을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항이 7세기의 생활 규칙을 다루고 있어, 오늘날 그대로 적용할 경우 인종적, 문화적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 따라서 21세기 사회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려운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룰로 공의회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7세기 당시 교회가 기존의 로마 문화와 소아시아, 중동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고, 그 기준을 신자들의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정착시키려 했던 노력과 열정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참조

[1] 웹사이트 CHURCH FATHERS: Council in Trullo (A.D. 692) https://www.newadven[...] 2023-08-22
[2] 서적 History of the Byzantine state https://archive.org/[...] Rutgers University Press
[3] 서적 The Oxford Dictionary of Byzantium https://www.oxfordre[...]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4] 문서 Canon 32
[5] 문서 Canon 33
[6] 문서 Canon 56
[7] 문서 Canon 13
[8] 문서 Canon 55
[9] 문서 Canon 52
[10] 서적 Byzantine Rome and the Greek Popes Lexington Books
[11] 문서 Canon 71
[12] 문서 Canon 67
[13] 간행물 The Canons of the Quinisext Council Liverpool
[14] 문서
[15] 서적 비잔티움 제국사 324-1453 까치글방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