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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보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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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패티 보이드는 1960년대 모델로 활동하며 조지 해리슨, 에릭 클랩튼 등 유명 음악가들과의 관계로 널리 알려졌다. 1962년 모델로 데뷔하여 보그, 베니티 페어 등 여러 잡지에서 활동했으며,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과 결혼하여 1960년대 런던의 '스윙잉 런던' 시대를 대표하는 커플이 되었다. 해리슨과의 이혼 후에는 에릭 클랩튼과 결혼했으나, 1980년대 후반 이혼했다. 보이드는 1960년대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하여 사진 작가로도 활동하며, 2007년에는 자서전 '원더풀 투나잇'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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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보이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패티 보이드 (2018년 리버풀 비틀즈 컨벤션)
본명패트리샤 앤 보이드
출생일1944년 3월 17일
출생지잉글랜드 토턴
직업모델, 사진가
머리 색깔금발
눈 색깔파란색
168cm
활동 시작1961년
웹사이트pattieboyd.co.uk
결혼
배우자조지 해리슨 (1966년–1977년, 이혼)
에릭 클랩튼 (1979년–1989년, 이혼)
로드 웨스턴 (2015년–현재)

2. 초기 생애 및 모델 경력

패티 보이드는 1944년 3월 17일 서머싯주 타운턴에서 콜린("조크") 이언 랭던 보이드와 다이애나 프랜시스 보이드의 첫째 아이로 태어났다.[1] 가족은 스코틀랜드 웨스트로디언으로 이사해 남동생 콜린을, 이후 길드퍼드에서 여동생 제니를 낳았다. 1948년부터 1953년까지 영국 왕립 공군에서 제대한 아버지와 함께 케냐 나이로비에서 살았고, 1951년에는 막내 여동생 폴라가 케냐 나쿠루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부터 나이로비 인근 나쿠루 스쿨에서 기숙 생활을 했으며, 1953년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 새 남편 밥비 게이머-존스와 함께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데이비드와 로버트라는 이복 형제가 생겼다.

퍼트니의 헤이즐딘 스쿨, 이스트 그린스테드의 세인트 애그니스와 세인트 마이클 수녀 기숙학교, 해들리 우드의 세인트 마사 수녀원에서 공부했다. 1961년 GCE O 레벨 세 과목을 통과하고 런던으로 이사, 엘리자베스 아덴 본드 스트리트 살롱에서 미용사 견습생으로 일했다.[2] 이후 ''허니'' 잡지 고객의 권유로 패션 모델 일을 시작했다.

2. 1. 어린 시절

Patricia Anne Boyd영어는 1944년 3월 17일 잉글랜드 타운턴에서 콜린 이언 랭던 보이드와 다이애나 프랜시스 보이드 사이에서 태어났다.[1] 가족은 스코틀랜드 웨스트로디언으로 이사하여 남동생 콜린이 태어났고, 이후 길드퍼드에서 여동생 제니가 태어났다. 1948년부터 1953년까지 가족은 영국 왕립 공군에서 제대한 아버지와 함께 케냐 나이로비에서 거주했다. 막내 여동생 폴라는 1951년 케냐 나쿠루의 병원에서 태어났다.

보이드는 여덟 살 때부터 나이로비 근처 나쿠루 스쿨에서 기숙 생활을 했다. 1953년 부모님의 이혼 후, 보이드는 어머니와 새 남편 밥비 게이머-존스와 함께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데이비드와 로버트라는 두 명의 이복 형제가 생겼다.

보이드는 퍼트니의 헤이즐딘 스쿨을 거쳐 이스트 그린스테드의 세인트 애그니스와 세인트 마이클 수녀 기숙학교, 해들리 우드의 세인트 마사 수녀원에서 수학했다. 1961년, GCE O 레벨 3과목을 통과했다.[2]

2. 2. 모델 데뷔 및 활동

보이드는 1962년 런던과 파리에서 모델로 일하며 패션계 경력을 시작했다.[3] 당시 그녀의 주요 업무는 영국판 ''보그'', ''베니티 페어'', 프랑스판 ''엘르'', ''허니(Honey)'' 잡지, 그리고 ''데일리 텔레그래프''와 ''더 타임스''와 같은 신문의 패션 기사 등이었다.[3] 데이비드 베일리, 테렌스 도노반, 브라이언 더피 등 여러 유명 사진작가들과 작업했으며,[3] 영국판 보그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3] 당시 인기 모델이었던 트위기를 비롯한 다른 모델들이 보이드의 스타일을 모방하기도 했다.[43] 언론인 톰 히버트의 묘사에 따르면, 보이드와 진 슈림프턴은 미니스커트, 긴 생머리, 큰 눈의 사랑스러움을 특징으로 하는 "영국 여성의 스타일"을 구현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스타일은 1964년 이후 비틀즈와 다른 영국 침공 음악 그룹들의 국제적인 인기에 힘입어 여성 서구 패션을 정의했다.[4]

A young man is seated in front of a microphone near the centre of the picture, smoking a cigarette. Behind him, partially visible, stand several young women.
1964년 6월 비틀즈 기자회견에서 조지 해리슨. 보이드와 해리슨의 연애는 그녀의 모델로서의 수요를 크게 증가시켰다.


1964년 초, 보이드는 스미스 감자칩의 리처드 레스터 감독 광고에 출연했다.[5] 레스터는 이후 비틀즈의 1964년 영화 ''어 하드 데이즈 나잇''에서 그녀를 여학생으로 캐스팅했다.[5] 그곳에서 그녀는 비틀즈의 리드 기타리스트인 조지 해리슨을 만났다. 해리슨과의 연애는 보이드의 모델 경력을 급상승시켰다.[4] 그녀는 ''보그''와 ''베니티 페어''의 추가 의뢰와 ''태틀러''(사진작가 장루프 시에프와 함께), 스미스와 로레알의 도프 샴푸 브랜드 등 더 많은 TV 광고, 그리고 신문 패션면 광고를 얻었다고 회상한다.

보이드와 해리슨은 1966년 ''데일리 익스프레스'' 기사에 따르면, 배우, 팝 가수, 미용사, 모델이 런던의 새로운 "특권 계층"이었던 스윙잉 런던 시대의 대표적인 커플이었다. 영국 언더그라운드 작가 배리 마일스는 나중에 그녀를 비틀즈의 아내들과 여자친구들 중 "압도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사람으로 묘사했고, 작가 션 레비는 1960년대 대부분 폴 매카트니의 여자친구였던 런던 출신 여배우 제인 애셔보다 더욱 보이드가 "60년대 스타덤이 선택받은 자에게 부여하려 했던 것"을 구현했다고 썼다. 1966년에 글을 쓴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메리 퀀트는 당대 여성들에게 "마를레네 디트리히보다는 패티 보이드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수적이 되었다고 말하며 "그들의 목표는 어린아이처럼 어리고, 순진하게 세련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며, 그런 모습을 만들어내는 데는 초기의 세련되려던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세련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로리아 스테이벌스의 요청으로, 보이드는 미국의 십대 잡지 ''16''에 "런던에서 온 패티의 편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42] 히버트에 따르면 "그녀는 카나비 스트리트의 최신 유행을 보도하고, 비틀즈와 스톤스가 현재 무엇을 입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어둡고 곱슬거리는 머리를 어떻게 곧고 금발로 만들 수 있는지 조언했다."[4] 그러나 비틀즈의 여성 팬들의 적개심의 표적이 된 보이드에게 해리슨은 사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경력을 포기하라고 주장했다. 1968년 7월, 그녀와 역시 모델이었던 여동생 제니는 런던의 세련된 첼시 마켓에 부티크를 열었다. 그들은 도노반의 동명의 노래를 따서 "제니퍼 주니퍼"라고 이름 지었다. 제니가 가게를 관리했고, 보이드는 구매 담당이었다.

보이드는 1970년대 초 모델 일을 "사실상 그만두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 무렵 경력을 재개하여 오시 클락의 디자인을 홍보했다. 그녀와 트위기는 사진작가 저스틴 드 빌뇌브와 함께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보그'' 표지 촬영을 했고, 다시 베일리와 함께 작업하며 영국 ''보그''의 여러 표지에 등장했다. 후자 잡지의 또 다른 촬영에서 보이드와 그녀의 자매들은 패트릭 리치필드에게 사진을 찍혔다.

3. 조지 해리슨과의 관계

보이드는 1964년 3월, 19세(20세 생일 2주 전)에 사진작가 에릭 스웨인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영화 촬영장에서 조지 해리슨을 만나 그의 첫 데이트 제안을 거절했다.[15] 며칠 후 스웨인과의 관계를 끝내고,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안내를 받아 가릭 클럽이라는 사교 클럽에 해리슨과 함께 갔다.[15] 비틀즈가 콘서트 투어로 자주 자리를 비우는 동안, 그녀와 해리슨은 직업적인 약속이 허락하는 한 자주 만났다. 1964년 7월, 해리슨은 런던 중심부에서 팬들의 끊임없는 관심을 피하기 위해 서리주 이셔에 있는 집 킨펀스를 샀고, 보이드는 곧 그 집으로 이사했다.[15]

1965년 초, 보이드는 해리슨, 존 레논, 신시아 레논과 함께 처음으로 LSD를 접했다. 당시 커플의 치과의사 존 라일리가 그의 집에서 저녁 파티 중 손님들의 커피에 몰래 약물을 탔기 때문이다.[17] 밖으로 나가자, 보이드는 약물 때문에 불안한 상태였고 상점 창문을 깨려고 했지만, 해리슨이 그녀를 잡아끌었다. 나중에, 보이드와 그녀의 일행이 애드립 클럽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그들은 잘못해서 엘리베이터가 불이 났다고 믿었다.[17]

두 사람은 1965년 12월 25일에 약혼했고, 1966년 1월 21일에 엡섬 등록 사무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15] 1966년 3월 ''이브닝 스탠다드''지에 실린 "비틀즈의 삶"이라는 기사에서 해리슨은 그들의 관계의 평등성을 강조하고 보이드가 그의 시야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1966년 9월과 10월, 비틀즈의 마지막 콘서트 투어 이후, 보이드와 해리슨은 인도에서 6주를 보냈는데, 인도 고전 음악가 라비 샹카르의 손님으로 초대받았다.[15] 봄베이에 있는 동안, 해리슨이 샹카르의 지도 아래 시타 연주를 계속하는 동안, 보이드는 활로 연주하는 현악기인 딜루바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15] 팬과 언론의 관심 때문에 그들은 샹카르와 함께 그 도시를 떠나 카슈미르의 달 호수에 있는 보트에서 머물렀다.[15] 영국으로 돌아온 후, 보이드와 해리슨은 요가채식주의 생활을 계속했고, 보이드는 시브 다얄 바티쉬에게 딜루바 레슨을 받았다.[15]

1967년 6월 25일, 보이드는 비틀즈의 ''우리의 세계'' 방송에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한 전부야"에 참여한 친구들 무리에 속해 있었다. 보이드는 남편의 동양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을 공유했다.[16] 1967년 2월 영적 재생 운동의 일원이 된 그녀는 그 운동의 지도자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만나고 싶어했고, 8월 24일 런던 힐튼에서 그의 초월 명상 강의에 해리슨과 함께 참석할 것을 제안했다.[16] 마하리시에게 감명을 받은 해리슨과 보이드는 다른 비틀즈와 그들의 파트너들과 함께 다음 날 그가 웨일즈 뱅거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했다.[17] 그 후 보이드와 그녀의 여동생 제니는 1968년 2월 마하리시의 아슈람이 있는 인도 리쉬케시에 있는 비틀즈 방문에 해리슨과 동행했다.[15]

보이드는 "나는 당신이 필요해", "내가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러브 유 투", "섬씽" 그리고 "포 유 블루"를 포함한 해리슨의 비틀즈 작곡에 영감을 주었다.

1970년 3월, 비틀즈 해체 한 달 전, 보이드는 해리슨과 함께 헨리온템즈에 있는 빅토리아 양식의 신고딕 저택 프라이어 파크로 이사했다. 이 시점에서 해리슨의 인도 영성, 특히 하레 크리슈나 운동에 대한 헌신은 부부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가정을 꾸리는 데 실패했고, 해리슨은 입양을 고려하지 않았다. 보이드는 1971년 5월 해리슨의 영적 신념에 반항하여 모델 경력을 재개했다. 1973년, 그녀는 해리슨이 론 우드의 아내 크리시와 로맨스를 즐기는 동안 페이시스의 기타리스트 론 우드와 불륜을 저질렀다. 보이드는 1974년 7월 해리슨과 헤어지기로 한 결정은 그의 반복적인 불륜, 특히 링고 스타의 아내 모린과의 불륜이 "마지막 짚"이었다고 말했다.

해리슨의 1973년 노래 "소 새드"에 대해 논의하는 저자 이언 잉글리스는 보이드를 음악가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자 그의 "승리와 비극"을 공유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3. 1. 만남과 결혼

1964년, 19세였던 패티 보이드는 영화 헬프!에서 비틀즈 팬 여학생 역으로 출연하며 조지 해리슨을 만났다.[44] 하지만 보이드는 1년간 교제하며 약혼 직전이었던 에릭 스웨인(Eric Swayne)과의 관계 때문에 처음 해리슨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다.[43][50] 며칠 후, 보이드는 영화 촬영에 다시 불려갔고 해리슨은 다시 그녀를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스웨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의 첫 데이트는 코벤트 가든에 있는 게릭 클럽(회원제 신사 클럽)에서 비틀즈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함께였다.[45]

1965년, 보이드는 해리슨, 존 레논, 신시아 레논과 함께 처음으로 LSD를 접했다.[46] 런던 경찰의 아들이자 치과의사인 존 라일리(John Riley)가 그들의 커피에 LSD를 몰래 넣었던 것이다.[53][47] 흥분한 상태에서 보이드는 가게 창문을 깨려고 했지만 해리슨이 그녀를 붙잡았다.[48]

1965년 12월, 런던을 드라이브하던 중 해리슨은 보이드에게 청혼했지만, 비틀즈의 투어 일정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먼저 엡스타인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49] 1966년 1월 21일, 서리주 엡섬에서 폴 매카트니(주례)와 엡스타인의 참석하에 보이드는 해리슨과 결혼했다. 존 레논링고 스타는 아내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한 언론의 취재를 피했다.[50] 패티는 조지와 함께 킨펀스에서 생활을 시작했다.[51]

3. 2. 결혼 생활과 인도 문화

조지 해리슨과 패티 보이드가 1965년부터 1970년까지 살았던 집, 킨펀스


보이드는 1964년 3월, 19세(20세 생일 2주 전)에 사진작가 에릭 스웨인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영화 촬영장에서 조지 해리슨을 만나 그의 첫 데이트 제안을 거절했다.[15] 며칠 후 스웨인과의 관계를 끝내고,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안내를 받아 가릭 클럽이라는 사교 클럽에 해리슨과 함께 갔다.[15] 1964년 7월, 해리슨은 런던 중심부에서 팬들의 끊임없는 관심을 피하기 위해 서리주 이셔에 있는 집 킨펀스를 샀고, 보이드는 곧 그 집으로 이사했다.[15]

1965년 초, 보이드는 해리슨, 존 레논, 신시아 레논과 함께 처음으로 LSD를 접했다.[17] 당시 커플의 치과의사 존 라일리가 그의 집에서 저녁 파티 중 손님들의 커피에 몰래 약물을 탔기 때문이다.[17]

두 사람은 1965년 12월 25일에 약혼했고, 1966년 1월 21일에 엡섬 등록 사무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15] 1966년 9월과 10월, 비틀즈의 마지막 콘서트 투어 이후, 보이드와 해리슨은 인도에서 6주를 보냈는데, 인도 고전 음악가 라비 샹카르의 손님으로 초대받았다.[15] 봄베이에 있는 동안, 해리슨이 샹카르의 지도 아래 시타 연주를 계속하는 동안, 보이드는 활로 연주하는 현악기인 딜루바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15] 팬과 언론의 관심 때문에 그들은 샹카르와 함께 그 도시를 떠나 카슈미르의 달 호수에 있는 보트에서 머물렀다.[15] 영국으로 돌아온 후, 보이드와 해리슨은 요가채식주의 생활을 계속했고, 보이드는 시브 다얄 바티쉬에게 딜루바 레슨을 받았다.[15]

1967년 2월 영적 재생 운동의 일원이 된 그녀는 그 운동의 지도자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만나고 싶어했고, 8월 24일 런던 힐튼에서 그의 초월 명상 강의에 해리슨과 함께 참석할 것을 제안했다.[16] 마하리시에게 감명을 받은 해리슨과 보이드는 다른 비틀즈와 그들의 파트너들과 함께 다음 날 그가 웨일즈 뱅거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했다.[17] 그 후 보이드와 그녀의 여동생 제니는 1968년 2월 마하리시의 아슈람이 있는 인도 리쉬케시에 있는 비틀즈 방문에 해리슨과 동행했다.[15]

3. 3. 이혼

보이드는 1974년 7월 해리슨과 헤어졌다. 해리슨의 반복적인 외도, 특히 모린과의 불륜이 결정적인 계기였다.[18] 보이드는 결혼 생활의 마지막 해를 "알코올과 코카인에 의해 연료가 공급되었다"고 묘사하며, "조지는 코카인을 과도하게 사용했고, 나는 그것이 그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의 감정을 얼어붙게 하고 그의 마음을 강하게 했다"고 주장했다.[18]

1969년 3월 12일, 보이드와 해리슨은 대마초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후 유죄를 인정받아 각각 250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19][20][21]

두 사람의 이혼은 1977년 6월 9일에 확정되었다.[19]

4. 에릭 클랩튼과의 관계

에릭 클랩튼조지 해리슨의 부인이었던 보이드를 짝사랑했고, 1970년대 후반에 보이드를 향한 구애가 거절되자 헤로인 중독에 빠져 3년간 은둔 생활을 하기도 했다.[17] 1974년 클랩튼은 다시 보이드에게 구애했고, 결국 보이드는 해리슨과 이혼하고 1979년 클랩턴과 결혼했다.[23]

클랩턴과 보이드는 시험관 수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보이드는 클랩턴의 알코올 중독과 불륜을 이유로 1989년 이혼했다.[31] 보이드가 이혼 후 해리슨과 결혼했을 때 클랩턴이 자신을 쫓아다녔던 것이 두 음악가의 우정에서 비롯된 경쟁 심리 때문이며, "에릭은 그냥 조지가 가진 것을 원했던 것"이라고 의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롤링 스톤은 보이드를 해리슨과 클랩턴의 음악에 영감을 준 "전설적인 록 뮤즈"라고 언급했고,[27] 뉴욕 타임스는 보이드-클랩턴-해리슨의 사랑의 삼각관계를 "로큰롤 역사상 가장 신화적인 로맨틱한 얽힘 중 하나"라고 묘사했다.[28] 멘탈 플로스도 그녀를 "로큰롤 역사상 가장 중요한 뮤즈 중 한 명"으로 인정했다.[29]

"레이라" 외에도 보이드는 클랩턴의 사랑 노래 "벨 바텀 블루스"와 "원더풀 투나잇"의 영감이 되었다. 클랩턴은 1978년 해리슨이 올리비아 아리아스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보이드를 위해 "골든 링(Golden Ring)"을 작곡했고, 보이드의 음주 문제를 다룬 1983년 곡 "더 셰이프 유어 인(The Shape You're In)"을 작곡했다.

4. 1. 만남과 구애

1960년대 후반, 에릭 클랩튼조지 해리슨은 절친한 친구가 되어 함께 음악을 작곡하고 녹음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와 사랑에 빠졌다.[17] 클랩턴은 자신의 열정을 채우기 위해 잠시 보이드의 여동생 폴라와 데이트하기도 했다. 1970년 클랩튼이 데렉 앤 더 도미노스와 함께 발매한 앨범 ''레이라와 다른 여러 사랑 노래들''은 특히 히트곡 "레이라"를 통해 보이드에 대한 그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17] 이 곡은 페르시아 작가 니자미 간자비의 ''레이라와 마주눈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17]

4. 2. 결혼과 이혼

1977년 무대 위 클랩턴


1960년대 후반, 에릭 클랩턴과 조지 해리슨은 절친한 친구가 되어 함께 음악을 작곡하고 녹음하기 시작했다. 이때 클랩턴은 패티 보이드와 사랑에 빠졌다.[17] 클랩턴은 자신의 열정을 채우기 위해 잠시 보이드의 여동생 폴라와 데이트하기도 했다.[50] 1970년 클랩턴은 더렉 앤 더 도미노스와 함께 앨범 ''레이라와 다른 여러 사랑 노래들''을 발매했는데, 특히 히트곡 "레이라"는 보이드에 대한 그의 사랑을 표현한 곡이었다.[17] 보이드가 1970년 후반 그의 구애를 거절하자 클랩턴은 헤로인 중독에 빠져 3년 동안 은둔 생활을 하기도 했다.[53]

1974년, 클랩턴은 다시 보이드에게 구애했다. 보이드는 1974년 7월 4일 해리슨과 헤어졌고, 1979년 3월 27일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클랩턴과 결혼했다.[23]

보이드는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클랩턴과의 관계는 좋아 보였다.[60] 하지만 클랩턴은 결혼 생활 중에 그녀를 학대했고 자신이 "완전한" 알코올 중독자였다고 인정했다.[24] 클랩턴과 보이드는 1984년과 1987년에 시험관 수정을 시도했지만 아이를 갖는 데 실패하고 유산을 겪었다.[69]

보이드는 1987년 4월 클랩턴과 헤어졌고 1989년에 이혼했다. 그녀는 클랩턴의 수년간의 알코올 중독과 여러 불륜[31] (이탈리아 여배우 로리 델 산토와의 관계 포함)[26]을 이혼 사유로 밝혔다. 1989년, 그녀의 이혼은 "불륜과 부당한 행위"를 이유로 허가되었다.[69]

5. 사진작가 및 작가 활동

보이드는 1960년대부터 음악가들과 친구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며, 왕립사진협회 회원이었다.[6] 2008년 인터뷰에서 2004년이 되어서야 사진들을 다시 볼 "감정적 준비"가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비전문가적 지위가 피사체들이 편안하게 있어서 더욱 친밀하고 진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7]

2005년 발렌타인 데이에 샌프란시스코 예술 교류처에서 해리슨과 클랩튼의 사진을 "뮤즈의 눈을 통해"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17][53] 이 전시회는 샌프란시스코, 런던, 캘리포니아 라호야, 모리슨 호텔 등 여러 곳에서 개최되었다. 또한 더블린[7], 토론토그레이트 홀 갤러리,[9] 시드니의 블렌더 갤러리,[10]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도 전시되었다.[11][12]

2011년에는 캘리포니아 산타 카탈리나 섬과[13] 워싱턴 D.C.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본부에서 "어제와 오늘: 비틀즈와 에릭 클랩튼" 전시회를 열었다.[14]

2007년, 보이드는 저널리스트 페니 주너와 함께 자서전 《Wonderful Today》(원제)를 출간했다.[27][31] 미국에서는 《Wonderful Tonight: George Harrison, Eric Clapton, and M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며, 보이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 다수 수록되었다.[31][32] 보이드는 출판 홍보를 위해 여러 인터뷰를 진행했으며,[27] 에릭 클랩튼은 책 내용 중 일부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28]

데일리 텔레그래프 지의 린 바버는 《Wonderful Today》를 "매우 흥미진진하다"고 평가하며, "내가 읽었던 어떤 책보다도 록스타의 기이한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33] 이 책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위를 차지했다.[34] 2007년 8월 23일 호더 헤드라인 출판사에서 《플루크》와 《Wonderful Today》, 8월 28일 미국 하모니 북스에서 《Wonderful Tonight》이 출판되었고, 자서전 계약금은 950000GBP였다.[55][64]

5. 1. 사진작가 활동

보이드는 1960년대부터 음악가들과 친구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며, 왕립사진협회 회원이었다.[6] 2008년 인터뷰에서 2004년이 되어서야 사진들을 다시 볼 "감정적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비전문가적 지위가 피사체들이 편안하게 있어서 더욱 친밀하고 진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7]

2005년 발렌타인 데이에 샌프란시스코 예술 교류처에서 해리슨과 클랩튼의 사진을 "뮤즈의 눈을 통해"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17][53] 이 전시회는 2006년 샌프란시스코와 런던, 2008년 캘리포니아 라호야와 모리슨 호텔에서 열렸다. "뮤즈의 눈을 통해"는 더블린[7], 2008년 토론토그레이트 홀 갤러리,[9] 2009년 시드니의 블렌더 갤러리,[10] 2009년-2010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도 전시되었다.[11][12]

2011년에는 캘리포니아 산타 카탈리나 섬과[13] 워싱턴 D.C.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본부에서 "어제와 오늘: 비틀즈와 에릭 클랩튼" 전시회를 열었다.[14]

5. 2. 자서전 출간

2007년 8월, 보이드의 자서전 《Wonderful Today》(원제)가 헤드라인 퍼블리싱 그룹의 헤드라인 리뷰에서 출판되었다.[27]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인 페니 주너와 공동 집필했다.[31] 미국에서는 《Wonderful Tonight: George Harrison, Eric Clapton, and M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며, 보이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 다수 수록되었다.[31][32] 보이드는 출판 홍보를 위해 여러 인터뷰를 진행했다.[27] 당시 그녀는 자신의 책이 에릭 클랩튼의 자서전과 경쟁하는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31] 클랩튼은 책 내용 중 일부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28]

데일리 텔레그래프 지의 린 바버는 《Wonderful Today》를 "매우 흥미진진하다"고 평가하며, "내가 읽었던 어떤 책보다도 록스타의 기이한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33] 미국에서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위로 데뷔했다.[34] 같은 해 8월 23일 호더 헤드라인 출판사에서 《플루크》와 《Wonderful Today》, 8월 28일 미국 하모니 북스에서 《Wonderful Tonight》이 출판되었고, 자서전 계약금은 950000GBP였다.[55][64]

이 계획을 들은 보이

6. 자선 활동

보이드는 1980년대 후반 클랩턴과 별거한 후 자선 활동에 참여했다. 1991년, 전 비틀즈 멤버 링고 스타의 두 번째 부인인 바바라 바흐와 함께 약물 중독 회복 지원 단체 SHARP(Self Help Addiction Recovery Program)를 공동 설립했다.[1]

7. 영감을 준 노래

보이드는 조지 해리슨의 노래 "나는 당신이 필요해",[18] "내가 누군가가 필요하다면",[18] "러브 유 투", "섬씽",[18] "포 유 블루"[18] 등에 영감을 주었다. 특히 "섬씽"은 프랭크 시나트라로부터 지난 50년간 최고의 러브송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66] 해리슨의 대표곡으로 불린다. 보이드는 해리슨이 이 곡을 자신을 위해 썼다고 말했지만, 두 사람이 헤어진 후에는 레이 찰스를 위한 곡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67]

에릭 클랩턴은 데렉 앤 더 도미노스와 함께 1970년에 발매한 앨범 ''레이라와 다른 여러 사랑 노래들''의 히트곡 "레이라"를 통해 보이드에 대한 그의 사랑을 표현했다.[17] 이 곡은 페르시아 작가 니자미 간자비의 ''레이라와 마주눈''에서 영감을 받았다.[53] "레이라" 외에도 보이드는 클랩턴의 사랑 노래 "벨 바텀 블루스"와 "원더풀 투나잇"의 영감이 되었다.[67] 클랩턴은 1978년 해리슨이 올리비아 아리아스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보이드를 위해 "골든 링(Golden Ring)"을 작곡했고, 보이드의 음주 문제를 다룬 1983년 곡 "더 셰이프 유어 인(The Shape You're In)"을 작곡했다. 1976년 9월 7일, 클랩턴은 폴 매카트니린다 매카트니의 연례 버디 홀리 파티에 참석하는 길에 보이드가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원더풀 투나잇」을 작곡했다.[69]

7. 1. 조지 해리슨

보이드는 1964년 영화 《헬프!》에서 비틀즈 팬 여학생 역으로 출연하며 조지 해리슨을 만났다.[44] 당시 보이드는 에릭 스웨인과 1년간 교제하며 약혼 직전이었기 때문에 해리슨의 첫 데이트 제안을 거절했다.[43][50] 해리슨이 처음으로 한 말 중 하나는 "결혼하지 않겠어?"였고, 보이드가 웃자 "그럼 결혼 안 한다면 오늘 저녁 식사는 어떻겠어?"라고 말했다고 한다.[43][50] 며칠 후, 보이드는 스웨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해리슨과 데이트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첫 데이트는 코벤트 가든에 있는 게릭 클럽에서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함께였다.[45]

1965년, 보이드는 해리슨, 존 레논, 신시아 레논과 함께 LSD를 처음 접했다.[46] 런던 경찰의 아들이자 치과의사인 존 라일리가 그들의 커피에 LSD를 몰래 넣었던 것이다.[53][47] 흥분한 상태에서 보이드는 가게 창문을 깨려고 했지만 해리슨이 그녀를 붙잡았다.[48]

1965년 12월, 해리슨은 보이드에게 청혼했지만, 비틀즈의 투어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엡스타인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49] 1966년 1월 21일, 서리주 엡섬에서 폴 매카트니와 엡스타인의 참석하에 보이드는 해리슨과 결혼했다. 존 레논링고 스타는 아내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 언론의 취재를 피했다.[50] 보이드는 해리슨과 함께 킨펀스에서 생활했다.[51]

1966년 9월, 해리슨과 보이드는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르의 손님으로 봄베이에 머물렀으며 1966년 10월 23일 런던으로 돌아왔다.[52] 1967년 8월 24일, 동양 신비주의에 관심이 있었던 보이드는 비틀즈를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와 만나게 해주자는 생각을 했다. 그 결과 그들은 리시케시를 방문하여 그와 교류하게 되었다.[53][54][55] 1967년 6월 25일, 보이드는 우리들의 세계에서 올 유 니드 이즈 러브 방송에 참여했다.[56] 1968년, 비틀즈가 인도 리시케시에 있는 마하리시의 아쉬람을 방문했을 때에도 함께했다.[57]

보이드는 해리슨의 비틀즈 곡 "섬씽"에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한다.[66] 이 곡은 프랭크 시나트라로부터 지난 50년간 최고의 러브송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66] 해리슨의 대표곡으로 불린다. 보이드는 해리슨이 이 곡을 자신을 위해 썼다고 말했지만, 두 사람이 헤어진 후에는 레이 찰스를 위한 곡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67]

해리슨의 노래 "나는 당신이 필요해",[18] "내가 누군가가 필요하다면",[18] "러브 유 투", "섬씽",[18] "포 유 블루"[18] 등이 보이드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

7. 2. 에릭 클랩튼



1960년대 후반, 에릭 클랩턴과 조지 해리슨은 절친한 친구가 되어 함께 음악을 작곡하고 녹음하기 시작했다. 이때 클랩턴은 패티 보이드와 사랑에 빠졌다.[17] 클랩턴은 자신의 열정을 채우기 위해 잠시 보이드의 여동생 폴라와 데이트하기도 했다.[50] 그러나 레이라영어를 듣고 클랩턴이 폴라를 언니의 대용으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폴라는 클랩턴의 곁을 떠났다.[67]

클랩턴은 데렉 앤 더 도미노스와 함께 1970년에 발매한 앨범 ''레이라와 다른 여러 사랑 노래들''의 히트곡 "레이라"를 통해 보이드에 대한 그의 사랑을 표현했다.[17] 클랩턴은 페르시아 작가 니자미 간자비의 ''레이라와 마주눈''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7세기 네즈드 베두인 시인 카이스 이븐 알-뮬라와와 그의 연인 레이라 빈트 마흐디(Layla bint Mahdi) 또는 레이라 알-아미리아(Layla al-Aamiriya)에 대한 것으로, 얻을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미쳐버린 한 남자에 대한 내용이다.[53] 레이라영어의 두 가지 버전 모두 히트했다.[53] 보이드가 1970년 후반 그의 구애를 거절하자 클랩턴은 헤로인 중독에 빠져 3년 동안 자발적인 은둔 생활을 했다.[67]

1974년, 클랩턴은 다시 보이드에게 구애했다. 배우 존 허트는 나중에 해리슨과 클랩턴이 프라이어 파크(Friar Park)에서 보이드를 두고 기타 "결투"를 벌였다고 회상했다. 허트는 "대단했습니다… 공기가 전기처럼 흘렀습니다. 아무도 감히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28] 보이드는 이 이야기를 지지하지만,[22] 클랩턴은 그 중요성을 일축했다.[28] 그해 7월 4일, 보이드는 해리슨과 헤어졌고, 1979년 3월 27일 애리조나 주 투손에서 클랩턴과 결혼했다.[23] 그들은 해리슨과 계속해서 친밀한 친구로 지냈고, 해리슨은 클랩턴을 "사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보이드는 곧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클랩턴과 함께한 그녀의 대중적 이미지에 가려졌다. 보이드는 음주와 약물 사용을 인정했지만, 클랩턴과 달리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중독에 빠지지는 않았다.[60] 클랩턴은 나중에 결혼 생활 중에 그녀를 학대했고 자신이 "완전한" 알코올 중독자였다고 인정했다.알코올 중독영어 치료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자 클랩턴의 곁을 떠났다고 보이드는 말한다.[69] 클랩턴과 보이드는 1984년과 1987년에 시험관 수정을 시도했지만 아이를 갖는 데 실패하고 유산을 겪었다.[63]

보이드는 1987년 4월 클랩턴과 헤어졌고 1989년에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클랩턴의 수년간의 알코올 중독과 여러 불륜[31] (이탈리아 여배우 로리 델 산토와의 관계 포함)[26]이었다. 1984년 클랩턴은 이본느 켈리와 1년 동안 관계를 맺었고, 1985년 1월 그녀와의 사이에 딸 루스가 태어났다.[61] 딸의 탄생은 1991년 클랩턴의 아들 코너의 장례식 때까지 밝혀지지 않았다.[62] 보이드는 "가장 상처받은 것은 에릭이 처음부터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 나를 사랑한다며 복원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이본느에게 6년 동안이나 양육비를 지불하고 있었죠."라고 말했다.[69] 결국 클랩턴과 이탈리아모델 로리 델 산토와의 불륜이 결정타가 되어 1989년에 이혼했다. 1986년에 로리 델 산토는 코너를 출산했다.[63] 보이드 자신은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하지 못했다.[69] 보이드와 클랩턴은 이혼 사유를 "불륜영어(infidelity and unreasonable behavior)"으로 밝혔다.[69] 그녀는 이후 해리슨과 결혼했을 때 클랩턴이 자신을 쫓아다녔던 것이 두 음악가의 우정의 경쟁적인 측면과 더 관련이 있었고, "에릭은 그냥 조지가 가진 것을 원했던 것"이라고 의심했다.

2007년, ''롤링 스톤''은 보이드를 해리슨과 클랩턴의 음악에 영감을 준 "전설적인 록 뮤즈"라고 언급했고,[27] ''뉴욕 타임스''의 앨런 라이트는 보이드-클랩턴-해리슨 사랑의 삼각관계를 "록 앤 롤 역사상 가장 신화적인 로맨틱한 얽힘 중 하나"라고 묘사했다.[28] ''멘탈 플로스''의 로저 코미어(Roger Cormier)도 그녀를 "록 앤 롤 역사상 가장 중요한 뮤즈 중 한 명"으로 인정했다.[29] "레이라" 외에도 그녀는 클랩턴의 사랑 노래 "벨 바텀 블루스"와 "원더풀 투나잇"의 영감이 되었다.[67] 그는 또한 1978년 해리슨이 올리비아 아리아스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보이드를 위해 "골든 링(Golden Ring)"을 작곡했고, 보이드의 음주 문제를 다룬 1983년 곡 "더 셰이프 유어 인(The Shape You're In)"을 작곡했다. 1976년 9월 7일, 클랩턴은 폴 매카트니린다 매카트니의 연례 버디 홀리 파티에 참석하는 길에 보이드가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원더풀 투나잇」을 작곡했다. 「원더풀 투나잇」에 대해 보이드는 "나는 수년 동안 그 노래에 상처받았어요. 에릭, 그 전에는 조지에게 그런 곡을 쓰도록 영감을 준 것은 나에게 매우 기뻤어요. '원더풀 투나잇'은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강하게 떠올리게 해요. 그래서 지금처럼 잘 안 되는 상황에서는 듣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워요"라고 말했다.[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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