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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도교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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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도교 의식은 단군 신화에서 기원하며, 고대 사회의 제천 의식에서 시작되어 애니미즘적 자연 숭배 사상으로 발전했다. 삼국 시대에 도교와 불교가 전래되면서 무속 신앙과 융합되었고, 신라 초기에는 샤머니즘과 유사한 형태를 띠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아 왕실과 지배층은 다양한 초제를 지냈으며, 서민들은 무속 신앙과 결합된 형태의 민간 의식을 행했다. 현대에는 맹인들의 도술적 복점과 독경이 민간에 널리 퍼졌으며, 신흥 종교와 불교 사찰에서도 도교적 의식과 수행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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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고시대

한국의 단군 신화에는 선도적 설화가 나타난다. 인간이 되기를 원한 호랑이환웅에게 빌어 한 줌의 신령한 쑥[3]마늘을 얻어 먹고 동굴에서 햇빛을 보지 않기를 삼칠일(21일) 동안 지켰는데, 곰은 웅녀라는 이름의 사람으로 변했지만 호랑이는 금기를 어겨 실패했다. 사람이 된 웅녀는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고, 이에 환웅이 잠시 인간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단군왕검이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동물이 인간으로 변하기 위해 주술이 사용되고, 신시를 열어 아들 낳기를 기원했다는 점은 당시 사회가 무축시대(巫祝時代)였음을 보여준다.

고대 사회에서는 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나, 점차 대상을 넓혀 모든 귀신[4]에게 제사하는 애니미즘적 자연 숭배 사상이 나타났다. 이는 소원을 하늘뿐만 아니라 여러 귀신에게도 비는 제의 형태로 발전했다.

상고시대의 제천 의식은 대부분 부족 집단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였으며,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祭主)는 도사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무당의 직능을 가진 신읍(神邑)의 장이 맡았다.

삼국 시대에 들어 도교불교 같은 외래 종교가 전래되면서 한국 고유의 민족 신앙은 점차 이를 수용하며 쇠퇴하였고, 무속적 신앙의 형태로 도교[5]화되어 민중 사이에 깊이 퍼져나갔다. 특히 신라 초기에는 샤머니즘이 강하게 나타나, 하늘의 명을 받은 지도자(尊長)는 무자(巫者)로 여겨졌다. 이들의 직능은 제사를 지내는 사제(司祭者), 병을 고치는 무의(巫醫), 미래를 예언하는 예언자로 나뉘었는데, 이는 중국 도교의 무축(巫祝), 참위(讖緯), 의방(醫方), 신선술(神仙術)과 유사한 형태였다. 이러한 유사성은 훗날 두 신앙 체계가 서로 융합하는 기반이 되었다.

3. 고려·조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도교적 수행이나 의식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했다. 하나는 중국 문화의 본격적인 유입과 함께 왕실과 지배층이 중국 도교의 수행 방법과 의식을 받아들인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서민 대중 사이에서 기존의 무속 신앙과 결합하여 민간 의식으로 흡수된 흐름이다.

왕실과 지배층은 중국 도교 의례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고려 조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초제(醮祭)를 지냈다.

'''고려 시대 주요 초제'''
종류
궐정초제(闕庭醮祭)
노인성제(老人星祭)
본명성수초(本命星宿醮)
북두초(北斗醮)
태일초(太一醮)
성변기도초(星變祈禱醮)
백신초(百神醮)
삼계신초(三界神醮)
오온신제(五瘟神祭)
단성제천(檀城祭天)
수경신(守庚申)
조병육정초(助兵六丁醮)



이러한 초제는 중국의 재초(齋醮) 및 교사(敎司)와 유사한 성격을 띠었다. 주로 이름난 산이나 큰 강가에 제단(壇)을 쌓고 제사를 지냈으며, 이때 도교를 상징하는 푸른 종이에 축문(祝文)을 적어 올렸는데 이를 초제청사(醮祭靑詞)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도 고려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청관(大淸觀)과 소격전(昭格殿)을 설치하고 여러 초제를 거행했다. 또한, 조선단학파(朝鮮丹學派)로 불리는 일부 선비들은 중국에서 전래된 도교 서적을 통해 수행에 힘썼다. 수행에는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기본으로 삼았으며, 《주역참동계》, 《포박자》, 《황정경(黃庭經)》 등 방술(方術)[1] 관련 서적들도 참고하였다.

이러한 상류층의 도교 의식 및 수행과는 별개로, 서민 대중 사이에서는 도교가 기존의 무속 신앙과 결합하여 다양한 민간 의식과 수행법으로 흡수되어 전승되었다. 특히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가택 행사(家宅行事) 등이 조선 시대 민간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조선 왕실에서는 소격전(昭格殿)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초제를 지냈다.

'''조선 왕실 소격전 주요 초제'''
종류
개복신초(開福神醮)
청명초(請命醮)
도병초(禱病醮)
기우초(祈雨醮)
본명초재(本命醮齋)
진병초(鎭兵醮)
오도태일초(五道太一醮)
마리산제천(摩利山祭天)


4. 현대

현대에 들어서는 조선 중엽부터 성행했던 맹인들의 도술적인 복점(卜占)과 독경(讀經)이 민간에 널리 퍼졌다. 이는 연례 행사로서 집안의 평안을 비는 안택(安宅)이나, 마을 단위의 단체 행사인 동제(洞祭), 당산제(堂山祭), 성황제(城隍祭) 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제사들은 대부분 노천제(露天祭) 형식을 따르는데, 이는 고대 중국의 교사(郊祠)나 왕실의 초제(醮祭)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여러 신흥종교에서도 도교적인 의식과 수행 방법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불교 사찰 안에 칠성원군(七星元君)을 모시는 칠성각(七星閣)이 있는 것 역시 도교의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일관도(一貫道) 계열인 대한도덕회(大韓道德會)나 국제도덕협회(國際道德協會)에서는 중국 고대 요순시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의식인 구오대례법(九五大禮法)을 그대로 행하기도 한다.

참조

[1] 문서 도술(道術)
[2] 문서 "300년∼550년"
[3] 문서 쑥
[4] 문서 정령(精靈)
[5] 문서 선도(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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