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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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金)은 한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성씨로, 다양한 본관을 가지고 있다. 김씨는 신라 왕족의 후손인 경주 김씨와 가락국 수로왕의 후손인 김해 김씨가 대표적이며, 안동 김씨는 조선 시대에 세력을 떨쳤다. 김씨는 크게 신라, 가야, 고려, 흉노, 여진, 중국, 일본 등 다양한 기원을 가지며, 각 분파는 고유한 시조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김해 김씨는 한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씨족이며, 김씨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물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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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 - 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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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성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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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정보 | |
이름 | 김(金) |
한자 | 金 |
로마자 표기 | Gim, Kim |
의미 | 금, 철, 금속 |
언어 | 한국어 |
지역 | 한국 |
분포 | |
![]() | |
본관 | |
통계 (2015년) | |
인구 순위 | 1위 |
인구 비율 | 21.6% |
2. 역사
김(金)씨 성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다양한 계통이 존재한다. 크게 신라계, 가야계, 그리고 기타(고려, 흉노, 여진, 중국, 일본계 등)로 나눌 수 있다.
김(성씨)을 기록한 최초의 역사적 문서는 636년 (선덕여왕 5) 《북제서》에 진흥왕의 성이 김(金)으로 기록된 것이다. 신라는 한반도 내 다른 국가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싸우고 동맹을 맺었으며, 668년에 대부분의 국가를 통일했는데, 김(金)씨는 신라에서 586년 동안 통치 가문으로 두각을 나타냈다.[5]
2. 1. 신라계
신라 김씨의 시조는 신화에 따르면 김알지이다. 실제로 김씨라는 한자 성씨는 법흥왕 때부터 대내외적으로 사용되었고, 636년(선덕여왕 5)에 《북제서》에 진흥왕의 성을 김(金)으로 처음 기록하였다. 5세기 내물왕 때 석씨 세력이 사라지고 김씨가 집권하였다. 삼국통일 이후 무열왕계인 문무왕의 직계 자손들이 왕위를 세습하였는데, 혜공왕 때 무열왕계 중에서 문무왕의 직계 혈통의 계보가 끊어졌으며, 사다함 후손이자 내물왕의 10세손인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하면서 신라 하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선덕왕이 후사 없이 붕어하자 내물왕의 12대손 김경신이 유력한 왕위 계승 후보인 김주원을 따돌리고 원성왕으로 즉위했다. 그 이후 경순왕까지 원성왕계가 왕위를 이었으므로, 현존하는 신라 김씨는 대부분 원성왕계 김경신의 후손이다.경순왕 이후 신라계 김씨는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조차도 자신을 신라계 김씨로 인식하였을 뿐, 본관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고려 시대만 하더라도 본관은 출신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본관 의식이 생겨나고, 본관별 가계도가 형성되었다. 일부 신라계 김씨에서 본관의 뿌리를 김알지나 무열왕, 신무왕 등으로 삼는 경우가 있지만, 계대를 정확하게 고증할 수는 없고, 이는 후대에 자신들의 본관 시조로 삼은 것일 뿐이다.
고려·조선 왕조 대에 경순왕 후손들에게 군역·부역 면제 등의 특전이 계속 내려졌는데, 이를 기화로 보계(譜系)를 위조하여 경순왕 후손으로서 특전을 누린 이들이 있었다. 이에 따라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족보 위조 현상이 심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일제강점기 1930년대에 극에 달하여,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조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족보를 발간하면서 경순왕대까지 상계를 끌어올려 표기한 경우가 만연했다.
신라시대 이후 신라계 김씨는 600여 관향(貫鄕)으로 나뉘었는데, 이중 소목 관계가 뚜렷하게 현존하는 본관(本貫)은 100여 개로, 김알지계가 28여 개, 경순왕계가 57여 개이다.
2. 1. 1. 김알지계
경주 김씨 시조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이다.강릉 김씨 시조 '''김주원'''(金周元)은 신라 태종무열왕 후예로, 명주군왕에 봉해졌다. 명주는 지금의 강릉이다.[21]
선산 김씨(김선궁계) 시조 '''김선궁'''(金宣弓)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 후예로, 고려 태조가 백제를 정벌할 때 공을 세워 고려 개국 공신으로 벼슬이 대광 시중에 오르고 선주백에 봉해졌다. 순충공 시호가 내렸다.
선산 김씨(김한충계) 시조 '''김한충'''(金漢忠)은 신라 원성왕 후예로, 고려조에 밀원사 상서좌복야를 역임하였다. 원평공 시호가 내렸다.[22]
광산 김씨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왕자로 나라가 장차 어지러울 것을 예지하여 무진주 추성군 서일동(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거처를 정하였는데, 이후 후손들이 이곳을 관향으로 삼았다.[23]
연안 김씨 시조 '''김섬한'''(金暹漢)은 신라 왕자 후예로, 고려 명종 때 사문박사를 역임하였다.[24]
영산 김씨 시조 '''김영이'''(金令貽)는 신라 신무왕 넷째 아들 김익광 후손으로, 고려 때 전객서령을 지내고 죽은 후에 공신으로 검교도첨의찬성사에 추증되고 영산군에 추봉되었다.
순천 김씨 시조 '''김총'''(金摠)은 신라 종성 후예로, 궁예 때 인가별감을 지내고 평양군에 봉해졌다. 사후 향인들이 순천부 성황신으로 추앙하였다. 순천 별호를 평양이라 한다.
많은 학자들은 김알지(알지)가 한국과 만주 "금" (altin한국어) 씨족 족장이었을 것이라고 제안하며, 그의 이야기는 알지 거서간 전설과 유사하다.[6][7]
경주 김씨(경주김씨|慶州金氏|labels=no한국어)[12]는 신라 지배 가문에서 유래한다. 이 씨족 시조는 서기 1세기에 신라 탈해 이사금에 의해 입양된 고아 김알지라고 한다. 알지 7대손은 262년에 신라 미추 이사금으로서 왕위에 오른 이 씨족 첫 번째 구성원이었다. 2015년 대한민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에는 1,800,853명 경주 김씨가 있었다.
연안 김씨는 조선 시대에 고위 관직을 역임한 명문가였다. 이 씨족 출신 6명이 영의정을 지냈다. 연안 김씨 시조는 김알지 후손인 김섬한(김섬한|金暹漢|labels=no한국어)이다.[14]
2. 1. 2. 경순왕계
조선 후기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한 후 맞이한 고려 태조의 딸 낙랑공주 왕씨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김씨들이 경주를 본관으로 하여 분파하였다. 이들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수십 개의 지파로 나뉘었다.- 벽상공신내사령공파: 파조 '''김예겸'''(金禮謙)은 고려 초 삼한벽상공신 내사령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25][26]
- 평장사공파: 파조 '''김봉모'''(金鳳毛)는 고려 신종 때 평장사를 지내고 정평공의 시호를 받고 일파를 이루었다.[27][28]
- 태사공파: 파조 '''김인관'''(金仁琯)은 고려 예종 때 검교태자태사를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29][30]
- 판도판서공파: 파조 '''김장유'''(金將有)는 고려 말 판도판서를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31]
- 장군공파: 파조 '''김순웅'''(金順雄)은 고려 초 장군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32][33]
- 계림군파: 파조 '''김균'''(金稛)은 고려 초 장군 김순웅(金順雄)의 후예로 조선 개국공신으로 계림군에 봉해졌다.
- 호장공파: 파조 '''김위영'''(金魏英)은 고려 초 호장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34]
- 상서공파: 파조 '''김여진'''(金麗珍)은 조선조에 상서를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35]
- 목사공파: 파조 '''김소'''(金邵)는 조선조에 목사를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36]
- 판서공파: 파조 '''김덕재'''(金德載)는 조선조에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37]
- 직장공파: 파조 '''김수구'''(金壽龜)는 조선조에 상의원 직장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38]
- 상호군공파: 파조 '''김중약'''(金仲約)은 조선조에 상호군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39]
- 의성 김씨(義城 金氏): 초기 족보에 시조 '''김용비'''(金龍庇)는 경순왕의 후예로 금자광록대부 태자첨사를 지내고 의성군에 봉해졌다. 의성의 고호가 문소(聞韶)인 관계로 '''문소 김씨'''(聞韶 金氏)라고도 한다.[41] 조선 후기 1784년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후손들이 경순왕의 5자라는 '''김중석'''(金重錫. 개명 김석)을 시조로 하였다. 그는 고려 태조의 외손으로 낙랑공주 왕씨 소생으로 고려조에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42][43]
- 언양 김씨(彦陽 金氏): 초기 족보에 시조 '''김수'''(金壽)는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조에 신호위 별장 동정을 역임했다. 조선 후기 1784년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후손들이 경순왕의 7자라는 '''김선'''(金鐥)을 시조로 하였다. 그는 고려 태조의 외손으로 낙랑공주 왕씨 소생으로 고려조에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 울산 김씨(蔚山 金氏):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 김부의 왕자로 학성부원군에 봉해졌다. 학성은 울산의 고호이다. 935년(경순왕 9) 10월 경순왕이 고려에 신라의 천년 사직을 양국하려 하자 그 불가함을 극력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처자식을 버리고 형 태자와 함께 개골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46]
2. 2. 가야계
가야계 김씨의 시조는 가락국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수로왕이다. 가락국의 아홉 촌장이 구지봉 산정에 모여 나라를 다스릴 지도자를 얻기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하늘에서 붉은 빛이 내려와 금합에 여섯 개의 알이 담겨 있었다. 이튿날 알에서 여섯 동자가 나왔는데, 그중 맨 먼저 나온 동자를 수로라 하고 금합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김(金)씨로 하였다. 이가 바로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이다. 수로왕은 나라 이름을 대가락으로 정하였고, 이는 곧 6가야 중 하나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자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 함창 김씨, 고성 김씨가 가야의 건국 시조왕들을 시조로 한다.[17]김해 김씨는 가락국(금관가야)의 왕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씨족으로, 조선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씨족이다. 함창 김씨는 수로왕과 함께 금합에서 태어난 고령가야 왕의 후손이며, 고성 김씨는 수로왕과 함께 구지봉에서 태어난 6명의 동자 중 막내를 시조로 한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가락국(금관가야)의 왕 수로왕의 조상은 중국황제의 아들 소호 금천씨이며, 그 때문에 '김씨'를 칭했다고 한다.[18]
씨족(지역) | 창시자 | 인구(2015년)[19] | 비고 |
---|---|---|---|
김해 김씨 | 수로왕 | 4,456,700 | |
함창 김씨 | 미상 | 자료 없음 | 고령가야 왕의 후손 |
고성 김씨 | 김말로 | 자료 없음 | 수로왕과 함께 구지봉에서 태어난 6명의 동자 중 막내 |
2. 2. 1. 금관가야계
가야 김씨의 시조는 가락국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수로왕이다. 가락국의 아홉 촌장이 구지봉 산정에 모여 나라를 다스릴 지도자를 얻기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하늘에서 붉은 빛이 내려와 금합에 여섯 개의 알이 담겨 있었다. 이튿날 알에서 여섯 동자가 나왔는데, 그중 맨 먼저 나온 동자를 수로라 하고 금합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김(金)씨로 하였다. 이가 바로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이다. 수로왕은 나라 이름을 대가락으로 정하였고, 이는 곧 6가야 중 하나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자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 함창 김씨, 고성 김씨가 가야의 건국 시조왕들을 시조로 한다.- '''함창 김씨'''(咸昌 金氏): 수로왕과 함께 김해 구지봉에서 금합에 담겨 태어난 고령가야 왕의 후손이다. 금합에서 나왔기 때문에 김(金)씨 성을 사용하였으며, 고령가야의 수도가 후일 함창(현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이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함창으로 하였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알 수 없고, 후손 김종제는 덕원군에, 김종계는 덕양군에 봉해져 중시조로 삼고 있다. 그 후 후손 의산군 김세순과 검교감찰어사 김균은 일파를 이루었다.
- '''고성 김씨'''(固城 金氏): 시조 김말로는 서기 42년 고자국(소가야)을 세워 왕이 되었다. 그는 수로왕과 함께 구지봉에서 태어난 6명의 동자 중 막내이다. 고자국의 도읍은 경상남도 고성군이었으며, 따라서 본관을 고성으로 삼았다. 조선 시대 판서를 지냈고 왜구를 격퇴하는데 공을 세운 김빈길이 고성 김씨이며, 그는 삼도수군도절제사가 되었다. 선략장군 김원량, 병조판서 김희량, 호조판서 김문량 3형제가 고성 김씨 가문을 부흥시켰다. 그 외 1467년 이시애의 난 때 무공을 세운 김경현이 있다.
2. 2. 2. 고령가야계
가야 김씨의 시조는 가야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수로왕이다. 가락국의 아홉 촌장이 구지봉 산정에 모여 나라를 다스릴 지도자를 얻기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하늘에서 붉은 빛이 내려왔다. 그곳에는 금합(金盒)에 여섯 개의 알이 담겨 있었다. 다음날 알에서 여섯 동자가 나왔는데, 그중 맨 먼저 나온 동자를 수로라 하고, 금합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김(金)씨로 하였다. 이가 바로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이다. 수로왕은 나라 이름을 대가락으로 정하였고, 이는 곧 6가야 중 하나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자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와 함창 김씨, 고성 김씨가 가야의 건국 시조왕들을 시조로 한다.- '''함창 김씨'''(咸昌 金氏): 김해의 구지봉에서 수로왕과 함께 금합에서 태어난 고령 가야 왕의 후손이다. 금합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金)씨로 하였으며, 고령 가야의 수도가 후의 함창(咸昌, 현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이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함창으로 하였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알 수 없고, 후손 김종제(金宗悌)는 덕원군(德元君)에, 김종계(金宗繼)는 덕양군(德陽君)에 봉해져 중시조로 하고 있다. 그 후 후손 의산군(義山君) 김세순(金世珣)과 검교감찰어사(檢校監察御史) 김균(金勻)은 일파를 이루었다. 함창 김씨는 고령 가야의 태조왕을 시조로 하며, 16세기에 재발견된 그의 추정 무덤은 오늘날에도 이 씨족 구성원들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 2000년 대한민국 인구 조사에서 함창 김씨는 26,300명이었다.
2. 2. 3. 소가야계
가야 김씨의 상징적 시조는 가야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수로왕이다. 가락국의 아홉 촌장이 구지봉 산정에 모여 나라를 통솔할 군장을 얻기 위해 하늘을 향해 의식을 올리자 하늘에서 한줄기 붉은 빛이 내려와 함께 달려가 보니 금합에 여섯 개의 알이 담겨 있었다. 이튿날 알 속에서 여섯 동자가 나왔는데 그중 맨 먼저 나온 동자를 수로라고 이름 짓고 금합에서 태어났다하여 성을 김씨로 하니 그가 바로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이다. 나라이름을 대가락으로 정하였고 곧 6가야 중의 하나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자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니,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와 함창 김씨, 고성 김씨가 가야의 건국 시조왕들을 시조로 한다.- '''함창 김씨'''(咸昌 金氏): 김해의 구지봉에서 수로왕과 함께 금합에서 태어난 고령가야 왕의 후손이다. 금합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씨로 하였으며 고령가야의 수도가 후의 함창(현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이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관향을 함창으로 하였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알 수가 없고 후손 김종제는 덕원군에, 김종계는 덕양군에 봉해져 중시조로 하고 있다. 그 후 후손 의산군 김세순과 검교감찰어사 김균은 일파를 이루었다.
2. 3. 기타
신라 김씨의 시조는 김알지이다. 법흥왕 때부터 김(金)씨라는 한자 성씨를 대내외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636년(선덕여왕 5) 《북제서》에 진흥왕의 성이 김(金)으로 처음 기록되었다. 내물왕 때 김씨가 집권하였다. 혜공왕 때 문무왕의 직계 혈통이 끊어졌으며, 사다함 후손이자 내물왕의 10세손인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하면서 신라 하대가 시작되었다. 원성왕 이후 경순왕까지 원성왕계가 왕위를 이었으므로, 현존하는 신라 김씨는 대부분 원성왕계 김경신의 후손이다. 이들은 흉노에서 왔다는 문헌이 존재한다.고려사에 따르면 황해도 호족 출신 '''김행파'''가 왕건에게 김씨 성을 하사받았다. 후손으로는 천추태후의 정부 김치양이 있다. 삼별초 장군 김통정은 본래 성씨가 질, 진이었는데 진이 김과 같아서 김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조선에 귀화한 김씨 중 가장 많은 수는 여진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50] 1887년 김창희가 저술한 《김씨 분관록》 및 《증보문헌비고》에는 야인(野人)들이 투항하여 귀화하면서 성씨를 하사받아 갑산(甲山), 부령(富寧)으로 관향(貫鄕)을 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여진족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하나도 없다. 이는 조선 중기 이후 모화사상(慕華思想)이 팽배해 있을 때 만주 오랑캐라고 하면 멸시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여진족이나 거란족 귀화인을 조상으로 둔 귀화인들이 이를 감추었기 때문으로 보인다.[50]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이전에도 김씨 성을 하사받은 여진족들이 있다. 김고시가물(金高時加勿), 김광수(金光秀), 김대첩목아(金大帖木兒), 김동개(金同介) 등이 그들이다. 세종 때 6진(六鎭)을 개척하면서 귀화한 여진족 수백 명에게 김씨 성을 하사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세조 때 기록에 나타난 귀화 여진족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1887년 김창희가 저술한 《김씨 분관록》 및 《증보문헌비고》에 귀화한 사람들이 대원(大元), 공주(公州)로 관향(貫鄕)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귀순한 일본인으로는 김상의(金尙義)라는 사람도 있다. 일본 성명은 전해지지 않지만 일본 이름의 한자를 그대로 쓴 거라면 이름은 '나오요시'였을 가능성이 크다. 김충선이나 김상의에 앞서 귀화한 일본계 김씨들도 있다. 조선 세종 때 귀화한 김호심파(金好心波), 성종 때 귀화한 김삼보라사야문(金三甫羅沙也文)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이름을 보면 일본에서 쓰던 이름에 김씨 성을 붙였음을 알 수 있다.
2. 3. 1. 고려계
고려사에 따르면 황해도 호족 출신 '''김행파'''가 왕건에게 김씨 성을 하사받았다. 후손으로는 천추태후의 정부 김치양이 있다. 삼별초 장군 김통정의 경우 본래 성씨는 질, 진이었는데 진이 김과 같아서 김으로 바꾸었다고 한다.고려 중반에 시작된 본관으로는 연안 김씨(김섬한), 해주 김씨(2계통- 김사렴, 김문동), 해풍 김씨(개풍 김씨, 김숭선)가 있다. 연안 김씨는 김섬한의 형이 강릉에 유배되었다고 전하므로 강릉, 경주 김씨 계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해주, 해풍은 경순왕 후손이라고 한다.
2. 3. 2. 흉노계
신라 김씨의 시조는 김알지이다. 김씨라는 한자 성씨는 법흥왕 때부터 대내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636년(선덕여왕 5)에 《북제서》에 진흥왕의 성이 김(金)으로 처음 기록되었다. 내물왕 때 김씨가 집권하였다. 혜공왕 때 문무왕의 직계 혈통의 계보가 끊어졌으며, 사다함 후손이자 내물왕의 10세손인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하면서 신라 하대가 시작되었다. 원성왕 이후 경순왕까지 원성왕계가 왕이 되었으므로 현존 신라 김씨는 대부분 원성왕계 김경신의 후손이다. 이들은 흉노에서 왔다는 문헌이 존재한다. 몽골의 흉노족 출신 김일제는 김(金)씨를 사용하였다. 김선, 김위는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전한다.2. 3. 3. 여진계
조선에 귀화한 김씨 중 가장 많은 수는 여진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50]1887년 김창희가 저술한 《김씨 분관록》 및 《증보문헌비고》에는 야인(野人)들이 투항하여 귀화함에 성씨를 하사하여 갑산(甲山), 부령(富寧)으로 관향(貫鄕)을 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여진족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하나도 없다. 이는 조선 중기 이후 모화사상(慕華思想)이 팽배해 있을 때 만주 오랑캐라고 하면 멸시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여진족이나 거란족 귀화인을 조상으로 둔 귀화인들이 이를 감추었기 때문으로 보인다.[50]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이전에도 김씨 성을 하사받은 여진족들이 있다. 김고시가물(金高時加勿), 김광수(金光秀), 김대첩목아(金大帖木兒), 김동개(金同介) 등이 그들이다.
조선에 귀순한 여진족들에게 김씨 성을 내린 것은 12세기 여진족 아골타가 세운 금(金)나라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귀화한 여진족으로 김씨 성을 가지고 관직에 나간 사람이 많이 있다. 광해군 때는 여진족이 조선 어디서든 살 수가 있어서 곳곳에서 그들을 볼 수 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 때 6진(六鎭)을 개척하면서 귀화한 여진족 수백 명에게 김씨 성을 하사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세조 때 기록에 나타난 귀화 여진족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1887년 김창희가 저술한 《김씨 분관록》 및 《증보문헌비고》에 귀화한 사람들이 대원(大元), 공주(公州)로 관향(貫鄕)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2. 3. 4. 중국계
여남 김씨 족보에는 6세기 동위 문무관 '''김응'''이 김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기록에는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아 실존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한민족이 이후에 중국 성씨를 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1] 족보에 따르면 755년 김응의 후손 김충(金忠)은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오다가 경북 영덕에 표착하였다. 신라 경덕왕은 김충에게 '''남민'''(南敏)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1] 남민은 영양으로 이주하여 영양 남씨를 창본하였다. 아들 '''김석중'''(金錫中)은 영양에 정착하여 영양 김씨를 창본하였다.[1] 이후 세보가 소실되어 영양 김씨는 '''김충황'''(金忠晃)을 1세조로 하였다. 다른 문헌에 영양 김씨의 시조는 고려조에 전서를 지낸 '''김윤철'''(金允轍)이다.[1]2. 3. 5. 일본계
- '''신 김해 김씨''': 시조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한 '''김충선'''(金忠善)이다. 그의 일본 이름은 사야가(沙也可)이며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워 가선대부를 제수받고, 이어서 도원수 권율과 어사 한준겸 등의 주청으로 성명을 하사받고 자헌대부에 승품되었다.[51] 이후 이괄의 난, 병자호란 때 혁혁한 공을 세워 삼난공신(三亂功臣)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그는 경북 우록동에 정착하였다.[51]
《일월록》(日月錄)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귀순한 일본인으로는 김상의(金尙義)라는 사람도 있다. 일본 성명은 전해지지 않지만 일본 이름의 한자를 그대로 쓴 거라면 이름은 '나오요시'였을 가능성이 크다. 김충선이나 김상의에 앞서 귀화한 일본계 김씨들도 있다. 조선 세종 때 귀화한 김호심파(金好心波), 성종 때 귀화한 김삼보라사야문(金三甫羅沙也文)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이름을 보면 일본에서 쓰던 이름에 김씨 성을 붙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후손도 적지 않겠지만, 현재 일본계 귀화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은 김충선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와 김성인을 시조로 하는 함박 김씨 뿐이다.
3. 본관
2000년 대한민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348개의 현존하는 김(金)씨 문중이 있었다.[8]
'''김해 김씨'''는 가락국(금관가야)의 왕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씨족으로, 조선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씨족이다. '''경주 김씨'''는 신라 왕가의 후손으로, 6세기에 김해 김씨와 혼인 관계를 맺은 인연으로 '김씨'를 칭하게 되었다.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안동 김씨''' 중 '신안동 김씨'는 조선 왕조 후기에 권세를 떨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가락국(금관가야)의 왕 수로왕의 조상은 중국황제의 아들 소호 금천씨이며, 그 때문에 '김씨'를 칭했다고 한다.[17] 이나바 이와키치는, "신라계의 천강 성과 단군 설화를 조화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야 하지만, 그보다 더 문제시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의 조선 내의 거실 명문은 모두 그 조상을 지나 본부의 명족에게 의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조선 성씨 중에 하나도 한성 이외의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그 사상의 영향일 것이다. 단군 설화는 구성되어도, 민족의 각 족보와 이것과의 조화는 더욱 어렵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서는 토성(土姓)과 객성(客姓)의 구별이 있었는데, 조선 내와 동일했지만, 토성은 객성을 종속시켰다. 조선은 이에 반하고 있다. 신라조차 지나 고대의 소호 금천씨 설을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18]
4. 표기 및 발음
한국어로 金의 일반적인 표기와 발음은 “금”이지만, 김포(金浦), 김포국제공항, 김해(金海), 김해국제공항, 김천(金泉)과 같은 일부 지명, 장소나 성씨를 표기할 때는 “김”이라고 발음한다.[16]
중국어로 金을 진(金|jīn중국어), 광둥어로는 金을 감, 또는 김으로 발음한다. 한국 한자음은 일반적으로 한 글자에 한 종류이며, '金' 자는 보통 '금'으로 발음되지만, 성씨 및 지명(김해, 김천, 김포 등)에 사용되는 '金'은 '김'으로 발음된다.
성씨나 지명의 '金'도 옛날에는 '금'으로 발음했지만, 조선 왕조 시대에 발음이 '김'으로 변화했다는 민간 어원이 있다.[16] 이는 왕인 이씨의 성씨에 '木'이 포함되어 있고, 오행 사상에서는 '金'이 '木'을 멸한다고(금극목) 여겨지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성씨나 지명의 '金'의 발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16]
김 씨 성 중, 드물게 '금'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 음악가 금수현(1919년 - 1992년)은, 본래의 발음을 되찾는다는 의미로 성씨의 발음을 '김'에서 '금'으로 고쳤다.[16] 그의 아들로, 함께 지휘자가 된 금난새, 금노상도 '금'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의 로마자 표기는 Kim 외에 Gim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북한에서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기반으로 한 Kim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제정된 문화관광부 2000년식에서는 Gim이 되지만, 인명 표기는 규범화의 예외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로마자 표기가 사용되고 있다.
5. 주요 인물
- 김구: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김영삼: 전 대한민국 대통령.
- 김대중: 전 대한민국 대통령.
- 김병현: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김보경: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 김태균: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김무영: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김연아: 대한민국의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
- 김희철: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 김기범: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전 멤버.
- 김규종: 대한민국의 연예인, SS501의 멤버.
- 김태희: 대한민국의 배우.
- 김남길: 대한민국의 배우, 선덕여왕 등에 출연.
- 김하늘: 대한민국의 배우.
- 김희선: 대한민국의 배우.
- 김현주: 대한민국의 배우.
- 김현아: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포미닛의 멤버.
- 김범: 대한민국의 배우.
- 김종현: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 김기범: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 김민석: 대한민국의 남성 가수이자 EXO의 멤버.
- 김준면: 대한민국의 남성 가수이자 EXO의 멤버.
- 김종대: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EXO의 멤버.
- 김종인: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EXO의 멤버.
- 김남준: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 김석진: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 김태형: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 김민규: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멤버.
- 김다현: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 김용선: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우주소녀의 멤버.
- 김지연: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우주소녀의 멤버.
- 김현진: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이달의 소녀의 멤버.
- 김정은: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이달의 소녀의 멤버.
- 김지우: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이달의 소녀의 멤버.
- 김지수: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 김제니: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 김채원: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아이즈원, 르세라핌의 멤버.
- 김민주: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아이즈원의 멤버.
- 김나영: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LIGHTSUM의 멤버.
- 김채현: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Kep1er의 멤버.
- 김다연: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 Kep1er의 멤버.
- 김기완: 대한민국의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
- 김상욱: 대한민국의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
- 김건우: 대한민국의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
-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하 "북한") 국가 주석, 조선로동당 총비서.
- 김정일: 김일성의 아들, 조선로동당 총비서, 북한 국방위원장.
- 김정은: 김정일의 아들, 조선로동당 총비서 (구: 제1비서·위원장), 북한 국무위원장 (구: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 김해심: 중국 조선족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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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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