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U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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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를린 U반은 독일 베를린의 도시 철도 시스템으로, 1902년 개통 이후 현재 9개의 노선(U1~U9)으로 운영되고 있다. U반은 크게 소형 규격(Kleinprofil)과 대형 규격(Großprofil) 차량을 사용하며, 각 노선은 고유의 번호와 색상으로 구분된다. 베를린 분단 시기에는 노선이 분할되거나 유령역이 생기기도 했으나, 통일 이후 재건되어 현재는 도시 전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U반의 차량 기지는 그뤼네발트, 제슈트라세, 프리드리히스펠데, 브리츠쥐트 등에 위치해 있으며, 차량의 정비 및 관리를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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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U반 - [철도 노선]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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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이름 | 베를린 U반 |
원어 이름 | Untergrundbahn |
종류 | 도시 철도 |
운영 지역 | 베를린 |
일반 정보 | |
운영 주체 | 베를린교통공사 (BVG) |
노선 수 | 9 (U1–U9) |
역 수 | 175 |
일일 평균 이용자 수 | 1,515,342명 (2017년) |
연간 이용자 수 | 5억 5310만 명 (2017년) |
개통일 | 1902년 1월 15일 |
영업 거리 | 155.64 km |
전력 시스템 | 750 V DC 제3궤조 방식 |
차량 길이 | ~100 m |
최고 속도 | 72 km/h |
평균 속도 | 30.7 km/h |
운행 간격 | 4–5분 (주간) |
노선 | |
노선 목록 | 베를린 U반 노선 목록 |
기타 | |
웹사이트 | BVG.de – 공식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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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베를린 U반의 건설 역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25]
# '''최초 개통부터 1913년까지''': 주로 Kleinprofil|클라인프로필de(소형 규격) 노선망이 건설된 시기이다. 당시 베를린과 독립시였던 샤를로텐부르크, 쇠네베르크, 빌머스도르프, 달렘 지역을 중심으로 노선이 놓였다. 소형 규격 노선은 노면 전차와 비슷한 전폭 2.3m의 차량을 사용한다.
# '''1930년까지''': Großprofil|그로스프로필de(대형 규격) 노선망이 도입되고 확장된 시기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베를린 대확장으로 편입된 지역까지 노선이 뻗어 나갔으며, 주로 남북 방향 노선이 건설되었다. 대형 규격 노선은 수송량 증대를 위해 전폭 2.65m의 더 넓은 차량을 사용한다.
# '''1953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노선망 복구와 재건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단되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노선망이 발전했다. 통일 이후에는 분단되었던 노선이 다시 연결되고 새로운 노선 건설이 계속되고 있다.
19세기 말, 베를린과 인근 도시들은 증가하는 교통량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교통 시스템을 모색했다. 지하 철도 건설에 대한 논의 끝에, 1902년 2월 15일 베를린 최초의 공공 지하 전기 철도 노선인 Stammstrecke|슈탐슈트레케de(간선 노선)가 개통되었다. 초기 노선은 주로 고가 구간으로 건설되었으며, 부유한 지역을 중심으로 동서 방향 연결에 중점을 두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소형 규격 노선은 꾸준히 확장되었다. 전쟁 이후 대 베를린이 형성되면서 시는 더 많은 시민에게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남북 노선 건설과 함께 수송 능력이 더 큰 대형 규격 노선 건설을 추진했다. 1920년대에는 Nord-Süd-Bahn|노르트쥐트반de(현재 U6 및 U7 일부)과 GN-Bahn|게엔반de(현재 U8) 등 주요 대형 규격 노선 건설이 시작되었고, 1930년까지 주요 구간이 개통되었다.
나치 독일 시기에는 알베르트 슈페어의 세계수도 게르마니아 계획에 U반 확장 계획이 포함되었으나 실제로 건설되지는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U반은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방공호로 사용되었지만, 연합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전쟁 후 복구 작업이 이루어졌으나, 냉전 시기 베를린 분단으로 인해 U반 노선망 역시 분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일부 노선은 운행이 중단되거나 동베를린 구간의 역들이 폐쇄되어 유령역이 되기도 했다. 서베를린에서는 베를린 S반 보이콧 운동과 맞물려 U반 노선 확장이 활발히 진행된 반면, 동베를린에서는 기존 노선 연장에 집중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이후, 분단되었던 노선들이 다시 연결되고 유령역들이 영업을 재개했다. 이후 S반과의 연계 강화 및 기존 노선 연장(특히 U5의 도심 구간 연장) 등이 이루어지며 현재의 노선망을 갖추게 되었다.
2. 1. 초기 역사 (1902년 ~ 1913년)
19세기 말 베를린에서는 증가하는 교통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베를린시는 지하철 건설이 기존 하수도 시설을 손상시킬 것을 우려하여 고가 철도 건설을 선호했다. 그러나 당시 독립시였던 샤를로텐부르크는 타우엔치엔 거리(Tauentzienstraße)를 따라 고가 철도를 건설하는 안에 반대했다. 수년간의 협상 끝에, 지하철 건설로 방향이 정해졌다.1902년 2월 15일, 베를린 최초의 대중교통용 전기 철도 노선인 Stammstrecke|슈탐슈트레케de(간선 노선)가 개통되었다. 이 노선은 당시 슈트랄라우어 토어역(Stralauer Tor, 현재의 오스트하펜역)에서 동물원역까지 이어졌으며, 포츠다머 플라츠역으로 가는 지선도 함께 건설되었다. 초기 노선의 상당 부분은 고가 구간이었으며, 당시 독립시였던 샤를로텐부르크와 쇠네베르크까지 운행했다. 지하 구간은 포츠다머 플라츠역, 비텐베르크플라츠역, 동물원역, 크니역(Knie, 현재의 에른스트로이터플라츠역) 등 일부에 불과했다. 이 초기 노선들은 Kleinprofil|클라인프로필de(소형 규격)로 건설되어, 노면 전차와 비슷한 전폭 2.3m의 차량을 사용했다.
개통 이후 노선은 빠르게 확장되었다. 1902년 8월 17일에는 동쪽으로 바르샤우어 브뤼케역(Warschauer Brücke, 현재의 바르샤우어 슈트라세역)까지 연장되었고, 같은 해 12월 14일에는 서쪽 종점이 크니역(현재의 에른스트로이터플라츠역)까지 연장되었다.
한편, 당시 독립시였던 쇠네베르크는 베를린과의 교통 연결을 원했지만, 기존 고가 철도 회사는 수익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하여 노선 건설을 꺼렸다. 이에 쇠네베르크 시는 1910년 12월 1일, 독일 최초로 시 자체 재정으로 지하철 노선을 건설하여 개통했다. 이 노선은 현재 U4호선의 일부이다.[6]
초기 노선 건설은 주로 동서 방향으로 이루어졌으며, 수익성을 고려하여 당시 부유했던 지역을 우선적으로 연결했다. 1913년까지 노선은 계속 확장되어, 빌머스도르프 지역(1910년 착공[6]), 남서부의 달렘 지역(현재의 슈테글리츠-첼렌도르프구), 서부의 도이체 슈타디온(Deutsches Stadion, 현재의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인근 올림피아슈타디온역), 그리고 도심 방향으로는 슈피텔마르크트역까지 노선이 연장되었다. 이 시기에 건설된 노선들은 대부분 소형 규격(Kleinprofil)을 따랐다.
2. 2.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1913년 ~ 1930년)
1920년 주변 지역이 병합되어 대 베를린이 형성되면서, 베를린시는 더 많은 노동자 계층에게 대중교통을 제공하기 위해 남북 노선 건설을 추진했다. 또한 시는 승객 수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기존 표준궤를 사용하되 더 넓은 전폭 2.65m의 차량을 사용하는 Großprofil|그로스프로필de(대형 규격) 노선을 의무화했다. 이는 기존의 전폭 2.3m 차량을 사용하는 Kleinprofil|클라인프로필de(소형 규격) 노선과 구별된다.1912년 12월, 베를린 북부의 베딩과 남부의 템펠호프 및 노이쾰른을 연결하는 Nord-Süd-Bahn|노르트쥐트반de(남북 철도)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는 베를린시가 지멘스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공영으로 건설하려던 첫 노선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과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자금 부족으로 1919년까지 공사가 중단되었다. 1923년 1월 30일, 할레셰스 토어(Hallesches Tor)와 슈테틴역(Stettiner Bahnhof, 현재의 나투어쿤데무제움역) 사이의 첫 번째 구간이 개통되었고, 두 달 후 제슈트라세(Seestraße)까지 연장되었다. 자금 부족으로 인해 새로운 대형 규격 전동차 대신 기존 소형 규격 노선의 열차를 사용해야 했다. 차량과 승강장 사이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승객들이 "블루멘브레터"(Blumenbretter|블루멘브레터de, 화분용 널빤지)라고 부르던 나무 발판을 객차 출구에 덧대어 운행해야 했다. 이 노선은 벨알리앙스슈트라세(Belle-Alliance-Straße, 현재의 메링담역)에서 분기되었다. 템펠호프 방면 남쪽 연장 구간은 1929년 12월 22일에 개통되었고, 그렌츠알레 방면 지선은 1930년 12월 21일에 개통되었다.
한편, AEG 역시 1912년에 알렉산더플라츠를 경유하여 게준트브루넨과 노이쾰른을 잇는 자체 남북 노선인 GN-Bahn|게엔반de 건설 계획을 승인받았다. 이 노선 역시 1919년 재정적 어려움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노선 건설 및 운영을 담당할 예정이었던 AEG의 자회사 AEG-Schnellbahn-AG가 청산되었고, 베를린시의 노르트쥐트반 건설 집중으로 인해 1926년까지 공사가 재개되지 못했다. 1927년 7월 17일, 보딘슈트라세와 쇤라인슈트라세 사이의 첫 번째 구간이 개통되었다. 중간 지점인 헤르만플라츠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대형 규격 노선(당시 C선과 D선, 현재의 U7과 U8) 간 환승이 가능한 최초의 역으로 설계되었다. GN-Bahn 전 구간은 1930년 4월 18일에 개통되었다.
1929년, U반 네트워크의 운영권이 BVG로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 기존 노선 운영사였던 Hochbahngesellschaft|호흐반게젤샤프트de(고가 철도 회사)는 마지막으로 대형 규격 노선 건설을 시작했다. 이는 동쪽으로 향하는 노선으로, 1930년 알렉산더플라츠-프리드리히스펠데 구간(현재 U5의 일부)이 개통되었다. 이 시기 이후 주요 노선 개발은 잠시 중단되었다.
2. 3. 나치 독일 시기 (1933년 ~ 1945년)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베를린 U반에도 변화가 있었다. 모든 역에 나치 독일 국기가 걸렸으며, 두 개의 역 이름이 변경되었다. 라이히스칸츨러플라츠역(Reichskanzlerplatzde)은 아돌프히틀러플라츠역(Adolf-Hitler-Platzde, 현재의 테오도어호이스플라츠역)으로, 쇤하우저 토어역(Schönhauser Torde)은 호르스트베셀플라츠역(Horst-Wessel-Platzde, 현재의 로자룩셈부르크플라츠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구상한 세계수도 게르마니아 계획에는 기존 U반 노선을 교차하는 순환선 건설과 외곽 지역으로의 노선 연장 등 광범위한 U반 확장 계획이 포함되었지만, 실제로 이 계획에 따라 건설된 노선은 없었다. 나치 시대에 베를린의 지하 교통에 추가된 유일한 시설은 베를린 S반의 남북 터널로, 1936년부터 1939년까지 개통되었다.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자동차 사용이 줄면서 U반 이용객이 크게 늘었고, 많은 지하역이 방공호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연합군의 폭격으로 U반 시설 상당수가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 피해는 비교적 신속하게 복구되었으나, 전쟁이 계속되면서 복구 작업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란트베어운하 아래를 지나는 베를린 S반의 남북 터널이 폭파되면서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부근의 U반 터널까지 침수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결국 1945년 4월 25일에는 U반에 전력을 공급하던 발전소가 파괴되어 모든 노선의 운행이 중단되었다. 베를린 공방전 이후 나치 독일이 무조건 항복했을 때, U반은 총 437곳의 시설 손상과 496대의 차량 파손 피해를 입었다. 지하 구간 144곳, 지상 구간 33곳이 직접적인 공격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약 400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2. 4. 전후 복구와 분단 (1945년 ~ 1989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베를린 U반 노선망의 상당 부분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었으나, 복구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1945년 말까지 69.5km의 노선과 93개의 역이 다시 사용 가능하게 되었으며, 1950년에는 전후 복구 작업이 완료되었다.[7]그러나 전쟁 이후 베를린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할되면서 U반 운영에도 변화가 생겼다. 노선망 자체는 모든 점령 구역에 걸쳐 있었지만, 서베를린 시민들은 점차 소련 점령 구역 통과를 꺼리게 되었다. 1953년부터는 열차가 동서베를린 경계를 통과할 때 국경 접근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7] 1953년 동독 폭동 사태가 발생한 6월 17일에는 동베를린 영토를 지나는 U반 노선 운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다음 날인 6월 18일, A선(현재의 U2)과 C선(현재의 U6)의 일부 구간(Nordbahnhof-Friedrichstraße) 운행이 재개되었다.[7]
1953년에서 1955년 사이에는 베를린 U반 노선망을 총 200km까지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200km 계획'이 수립되었다.[7] 이 계획에 따라 C선(현재의 U6) 연장이 최우선 과제로 추진되었다. 1956년 5월 3일 쿠르트슈마허플라츠역까지, 1958년 5월 31일에는 알트테겔역까지 북부 연장 구간이 개통되었다.[7] 또한 동베를린을 우회하여 슈테글리츠, 베딩, 라이니켄도르프 등 서베를린의 주요 지역을 남북으로 잇는 새로운 노선인 G선(현재의 U9) 건설이 계획되었다. G선의 첫 번째 구간인 레오폴트플라츠역-슈피헤른슈트라세역 구간은 원래 1961년 9월 2일 개통 예정이었으나, 베를린 장벽 건설 발표 직후인 1961년 8월 28일로 앞당겨 개통되었다.[7]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면서 동서 베를린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었고, U반 노선 운영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동서베를린을 모두 지나던 A선(현재의 U2)은 운행 구간이 동서로 분단되었다. 남북을 운행하던 C선(현재의 U6)과 D선(현재의 U8)은 계속 서베를린 소속으로 운행되었지만, 동베를린 영토에 위치한 역들은 모두 정차하지 않고 통과하는 유령역(Geisterbahnhöfe)이 되었다.[7] 유일한 예외는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으로, 이곳은 국경 통과 지점이자 베를린 S반과의 환승역 기능을 유지하여 정차가 허용되었다.[7] 한편, 서베를린에서는 동독 국영철도가 운영하던 베를린 S반에 대한 보이콧 운동이 일어나면서 U반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고, 노선 확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7]
냉전 기간 동안 서베를린에서는 U반 노선망이 대대적으로 확장되었다. 기존의 남북 노선인 U6와 U8이 각각 남쪽과 북쪽으로 연장되었고, 동베를린을 우회하는 새로운 남북 노선인 U9이 개통되어 확장되었다. 또한 U7 노선은 남동부의 루도역과 서부의 슈판다우 지역까지 길게 연장되었다. 반면 동베를린에서는 기존의 대형 규격 노선인 E선(현재의 U5)을 동부 외곽 지역으로 연장하는 데 집중했다. 1973년에는 동베를린 동물원 인근의 티어파르크역이 개통되었고, 1988년과 1989년에 걸쳐 동부 신시가지 지역을 연결하는 회노역까지의 연장 구간이 개통되었다.
2. 5. 통일 이후 (1989년 ~ 현재)
1989년 11월 9일, 수개월간의 소요 끝에 동독 정부는 주민들의 여행 제한을 해제했다.[7] 이 소식이 전해지자 수만 명의 동베를린 시민들은 국경 검문소로 몰려가 서베를린으로의 통행을 요구했다.[7] 베를린 장벽 붕괴는 U반 운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분단 시기 폐쇄되었던 유령역들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야노비츠브뤼케역(U8)은 장벽 개방 이틀 후에 가장 먼저 영업을 재개한 역이 되었다.[7] 이후 U8 노선의 로젠탈러 플라츠역과 베르나우어 슈트라세역 등 다른 유령역들도 순차적으로 개방되었다.[7] 1990년 7월 1일에는 동서 베를린 간 모든 국경 통제가 완전히 사라졌다.[7]재통일 이후 1990년대에는 동부 지역 역들에 남아있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투의 흔적인 총알 자국 박힌 타일을 제거하는 작업이 진행되어 2004년 12월 21일에 완료되었다. 재통일 이후 노선 개발은 S반과의 환승 편의를 높이는 것과 1930년대부터 계획되었던 U5 노선을 도심 중심부로 연장하는 데 집중되었다.[7]
2009년 8월 8일에는 베를린 중앙역과 브란덴부르크 문역을 잇는 U55 노선이 우선 개통되었다. 이후 브란덴부르크 문역과 알렉산더플라츠역을 연결하는 U5 노선 연장 공사가 완료되어 2020년 12월 4일에 개통했으며, 기존의 U55 구간은 U5 노선에 통합되었다. 이 연장 구간 개통과 함께 U5와 U6 노선 간 환승역인 운터 덴 린덴역이 신설되었고, 인접한 프랑조지셰 슈트라세역(U6)은 폐쇄되었다.
3. 노선
베를린 U반은 현재 9개의 노선으로 운영되고 있다. 개통 초기에는 지선 운행 계통에 별도의 명칭을 부여하지 않았고 알파벳으로 운행 계통을 구분했다.[26] 전쟁 이후 서베를린에서는 운행 계통을 조정하여 겹치는 구간을 최소화했고 숫자로 운행 계통을 구분했다. 동베를린에서는 한동안 전쟁 이전의 알파벳 운행 계통 구분을 사용하다가 통일 이후 서베를린의 체계를 따르게 되었다. 1984년 BVG에서 서베를린 S반 운행을 담당하게 되면서 S반 노선의 "S"와 구분하기 위해서 "U"를 노선 앞에 추가로 붙였다. 예를 들어 1호선은 U1호선이 되었다.
각 노선은 번호(U1~U9)와 고유한 색상으로 구분된다. 노선은 차량 규격에 따라 소형 규격(Kleinprofil)과 대형 규격(Großprofil)으로 나뉜다.
- 소형 규격(Kleinprofil): U1, U2, U3, U4 노선. 주로 초기 노선에서 사용된 규격이다.
- 대형 규격(Großprofil): U5, U6, U7, U8, U9 노선. 비교적 새로운 노선에서 사용된 규격이다.
여러 노선의 운행 계통이 겹치는 구간은 비텐베르크플라츠-바르샤우어 슈트라세역 구간으로, U1과 U3이 같은 노선을 운행한다.
첨두시(RH) 배차 간격은 4분 또는 5분이며, 평상시(NH) 배차 간격은 5분 또는 10분이다. 2003년부터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U4 노선을 제외한 전 노선에서 15분 간격으로 야간 열차를 운행한다. 평일 밤에는 지하철 노선을 따라 30분 간격으로 야간 버스가 운행한다.
노선 | 경로 | 규격 | 개통 시기 | 길이 | 역 개수 | 노선색 (RAL) |
---|---|---|---|---|---|---|
U1 | 울란트슈트라세 – 바르샤우어 슈트라세 | 소형 | 1902–1926 | 8.814km | 13 | 6018 |
U2 | 팡코 – 룰레벤 | 소형 | 1902–2000 | 20.716km | 29 | 2002 |
U3 | 바르샤우어 슈트라세 – 크루메 랑케 | 소형 | 1913–1929 | 18.9km | 24 | 6016 |
U4 | 놀렌도르프플라츠 – 인스브루커 플라츠 | 소형 | 1910 | 2.864km | 5 | 1023 |
U5 | 베를린 중앙역 – 회노 | 대형 | 1930–2020 | 22.1km | 26 | 8007 |
U6 | 알트테겔 – 알트마리엔도르프 | 대형 | 1923–1966 | 19.888km | 29 | 4005 |
U7 | 라트하우스 슈판다우 – 루도 | 대형 | 1924–1984 | 31.76km | 40 | 5012 |
U8 | 비테나우 – 헤르만슈트라세 | 대형 | 1927–1996 | 18.042km | 24 | 5010 |
U9 | 라트하우스 슈테글리츠 – 오슬로어 슈트라세 | 대형 | 1961–1976 | 12.523km | 18 | 2003 |
현행 노선 체계는 서베를린 BVG에서 1966년 3월 1일에 도입한 것이다. 당시의 소형 규격 노선은 1호선(U1), 2호선(U2), 3호선(U3), 4호선(U4)으로, 대형 규격 노선은 6호선(U6), 7호선(U7), 8호선(U8), 9호선(U9)으로 변경되었다. 1966년 당시의 5호선은 도이체 오퍼역과 리하르트바그너플라츠역을 잇는 짧은 셔틀 노선이었으나, 해당 구간이 U7 연장 구간에 편입되어 대형 규격으로 재건축되면서 1970년에 영업을 중지했다. 비어있던 5호선 번호는 당시 동베를린 영토에 완전히 포함되어 있었던 E선(현재의 U5)에 사용될 예비 번호로 남겨두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는 야간 열차 전용으로 U12 운행 계통이 존재했다. 이는 U2의 서부 구간과 U1의 동부 구간을 합친 형태였다. 노선 공사나 대형 행사가 있을 때 임시 운행 계통으로 부활하는 경우가 있으며, 마지막 운행은 2015년이었다.[27]
운행 승객 수가 가장 많은 노선은 대형 규격 노선인 U7, U9, U6 순이다. 소형 규격 노선 중에서는 U2의 승객이 가장 많으며, U4는 승객 수가 매우 적다.[28]
4. 차량
베를린 U반은 전 구간 표준궤(1435mm)로 건설되었으며, 직류 750V 제3궤조 급전 방식을 사용한다. 차량은 크게 두 가지 규격으로 나뉜다.
- 소형 규격 (Kleinprofil|클라인프로필de): 초기 노선(U1-U4)에 사용되는 규격이다. 노면 전차의 차량 한계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전폭은 2.3m이다. 제3궤조 급전 방식에서 급전 궤도가 양극(+), 대지가 음극(-)인 점이 특징이다.
- 대형 규격 (Großprofil|그로스프로필de):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건설된 노선(U5-U9)에서 운행하는 규격이다. 승강장 확장 없이 더 많은 승객을 수송하기 위해 차량의 폭을 2.65m로 넓혔다. 소형 규격과 반대로 급전 궤도가 음극(-), 대지가 양극(+)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도시 철도에서 운행하는 대형 전동차와 중형 전동차의 차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두 규격의 차량은 전폭과 급전 방식의 차이 때문에 기본적으로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 경제적 어려움이나 차량 부족 문제로 인해 소형 규격 차량을 개조하여 대형 규격 노선에서 운행한 사례가 있다.
- 1923년부터 1927년까지 노르트쥐트반(현재의 U6)에서는 AI형 차량을 개조한 AI K 차량이 운행했다.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베를린의 차량 부족 문제로 1945년부터 1968년까지 E선(현재의 U5)에서 AI K 차량이 다시 운행했다.
- 2017년부터는 기존 F형 차량의 노후화 및 개조 불가 문제로 인해, 새로 도입된 소형 규격 IK형 차량 일부를 대형 규격 노선인 U5에서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 차량들은 승강장과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양쪽에 17.5cm 폭의 금속 판자를 덧대고 높이를 7.5cm 높였으며, 급전 장치도 양쪽 규격에 모두 대응 가능하도록 개조되었다.
현재 소형 규격 차량은 U1, U2, U3, U4 노선에서 운행하고, 대형 규격 차량은 U5, U6, U7, U8, U9 노선에서 운행한다. 각 규격별 차량의 종류와 역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베를린 지하철의 차량 문서를 참조할 수 있다.
4. 1. 소형 규격 (Kleinprofil)


소형 규격(Kleinprofil, 클라인프로필) 열차는 전폭 2.3m, 전고 3.1m이다. 이는 베를린 노면 전차의 차량 한계를 기반으로 설계되었으며, 전 구간 표준궤로 건설되었고 직류 750V 제3궤조 급전을 사용한다. 소형 규격은 급전 궤도가 양극이고 대지가 음극이다.
최초의 베를린 U반 노선 개통 당시 바르샤우어 브뤼케 기지에서 동력차 42량과 무동력 객차 21량의 AI형 열차를 제작했다. 이 열차들은 초기 시험 차량과 달리 벽을 따라 좌석이 배치된 롱시트 구조였으며, 최고 속도는 50km/h였다. 1927년까지는 열차 내부에 흡연실과 3등석 객차가 존재했다. 1928년에는 창문 3개와 미닫이 출입문 2개를 갖춘 개선형 AII 차량이 생산되었다.
도시 분단 이후 서베를린은 동베를린에 비해 지하철 차량을 빠르게 현대화했다. 서베를린에서는 1960년에 대형 규격 D형 전동차를 기술적 기반으로 한 A3형을 도입했으며, 이후 A3L, A3L 84, A3L 92 등으로 지속적인 개량을 거쳤다. 반면 동베를린에서는 전쟁 이전에 사용하던 AI 및 AII 전동차를 계속 운용했다. 1974년에 신형 소형 규격 전동차인 G형 전동차 시제차가 등장했고, 1975년부터 양산형인 GI 전동차가 도입되면서 점차 구형 차량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GI 전동차의 개선형이자 전기적으로 호환되지 않는 GI/1 전동차가 도입되면서 AI 및 AII 전동차는 동베를린에서 완전히 퇴역했다.
재통일 이후, A3형의 마지막 개량형인 A3L 92는 교류 유도전동기를 사용하는 최초의 소형 규격 열차가 되었다. 기존의 초기형 A3 전동차 중 일부는 A3L 92 사양에 준하는 개조를 거쳐 A3E라는 이름으로 운행 중이다. 한편, 동서로 분단되었던 U2호선 운행이 재개되면서 소형 규격 차량의 여유분이 생기자, 초기형 GI 전동차는 전량 평양 지하철도로 수출되었다. 베를린에 남은 GI/1 전동차는 추가 개량을 거쳐 GI/1E로 운행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존 2량 1편성 단위였던 것을 2편성 영구 연결하여 4량 1편성으로 운행하게 되었다.
2000년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설계의 HK형 전동차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는 대형 규격인 H형 전동차의 소형 규격 파생형으로, 계획 초기 명칭은 A4였으나 기존 A/A3 계열과의 기술적 차이가 커 새로운 형식명이 부여되었다. HK형 전동차는 4량 1편성으로 구성되며, 편성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 운행 중인 노후 A3L71 전동차를 대체하기 위해 2012년에는 IK형 전동차가 발주되었다. 2015년 시제차가 시험 운행을 시작했고, 양산형은 2018년부터 운행에 투입되었다. IK형은 회생 제동 기능을 갖추어 제동 시 발생하는 에너지의 최대 20%까지 회수할 수 있다.[29]
2019년 기준으로 A3 계열 열차는 평상시에 3편성 또는 4편성을 병결하여 총 6량 또는 8량으로 운행한다. GI/1E, HK, IK 열차는 평상시에 2편성을 병결하여 8량으로 운행한다. 다만, U4호선은 이용객 수가 적어 A3 열차 1편성(총 2량)만으로 운행한다.
소형 규격 차량은 주로 U1, U2, U3, U4 노선에서 운행한다.
소형 규격 열차 유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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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945 | 서베를린 1945–1990 | 동베를린 1945–1990 | 1990— | |||||||
1901–1904 | AI | 1960–1961 | A3 60 | 1974 | G | 1993–1995 | A3L92 | |||
1906–1913 | 1964 | A3 64 | 1978–1983 | GI | 1999-2006 | HK | ||||
1924–1926 | 1966 | A3 66 | 1983 | GII | 2015 | IK 15 | ||||
1928–1929 | AII | 1966 | A3L66 | 1986–1989 | GI/1 | 2017- | IK 17, 18, 19 | |||
1967–1968 | A3L67 | |||||||||
1972–1973 | A3L71 | |||||||||
1982–1983 | A3L82 |
4. 2. 대형 규격 (Großprofil)
(소형 규격 개조)(C 전동차 개조)
(S반 개조)
(소형 규격 개조)
(소형 규격 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