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옹
1. 개요
간옹은 탁군 출신으로, 유비와 어려서부터 친분을 맺고 그를 따라다니며 여러 임무를 수행했다. 황건적의 난 때 의용군으로 참전했고, 형주에서 종사중랑을 지내며 사신 역할을 했다. 211년 유비가 익주로 갈 때 동행했으며, 유비와 유장이 대립하자 유장을 설득하여 항복을 이끌어냈다. 익주 평정 후 소덕장군에 임명되었으며, 유머와 재치를 보여주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간옹을 미축, 손건, 이적과 함께 조화롭고 기품 있는 인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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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유비 휘하의 정치인 -
제갈량
제갈량은 삼국 시대 촉한의 정치가이자 전략가로, 유비의 삼고초려로 촉한에 합류하여 승상이 되었고, 섭정으로서 남정을 통해 촉한의 기반을 다졌으며, 북벌을 통해 위나라를 공격했으나 실패했으며, 법치주의와 인재 등용을 중시하고 경제 정책을 통해 국력을 강화했다. -
유비 휘하의 정치인 -
마량
마량은 촉한의 관료이자 유비의 측근으로, 형주에서 등용되어 종사, 시중을 지냈으며 이릉 전투에서 전사했고, 뛰어난 재능을 칭송하는 '백미'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2. 생애
간옹은 훌륭한 변론가이자 웅변가였다. 그의 글과 연설은 노자 철학을 따랐다. 그는 자유분방했고 형식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유비 옆에 앉을 때도 장비나 미축과 같은 유비의 오랜 신하들은 항상 격식을 차렸지만, 간옹은 대담하게 행동했고, 적절한 예절을 무시하며 편안하게 앉았다. 제갈량이 주최한 연회에 참석했을 때는 소파 전체를 차지하고, 베개에 기대어 편안한 자세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거만하게 굴지 않았다.
한 번은 익주에 가뭄이 들어 주류를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었다. 술을 빚는 사람들은 처벌을 받았다. 지나치게 열성적인 관리들은 집에서 술 빚는 도구를 압수하고, 도구 소유자들을 술을 빚는 사람만큼 죄가 있는 것처럼 처벌할 것을 제안했다. 간옹과 유비가 땅을 순찰할 때, 어떤 부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간옹은 유비에게 말했다. "저들은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려 합니다. 체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유비가 물었다. "어떻게 아는가?" 간옹이 대답했다. "그들은 그렇게 할 도구를 갖추고 있습니다. 마치 술 빚는 도구 소유자들이 술을 빚을 도구를 가진 것과 같습니다." 유비는 웃으며 술 빚는 도구를 소유한 가족들을 사면했다. 이것이 간옹의 재치였다.
2.1. 초기 생애와 유비와의 만남
간옹은 탁군(涿郡중국어), 즉 현재의 허베이성줘저우시(涿州市)에서 태어났다. 본래 성은 경(耿)이었으나, 고향 유주에서는 간(簡)과 발음이 같았기에 성을 간으로 바꿨다. 어려서부터 유비와 친했고, 유비를 따라다니며 주선 업무를 보았다. 황건적의 난이 발생하자 유비, 관우, 장비, 전예 등과 함께 의용군을 결성하여 교위 추정을 따라 참전했다. 이후에도 유비를 따라 각지를 전전했다. 유비가 형주에 의탁했을 때 미축, 손건과 함께 종사중랑(從事中郎)을 지냈으며, 유비의 사신 또는 특사 역할을 수행했다.
2.2. 형주에서의 활동
유비가 형주에 의탁했을 때, 간옹은 미축, 손건과 함께 종사중랑(從事中郎)을 지냈다. 그들은 유비의 사신 또는 특사로 파견되는 것 외에 정치적인 활동가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211년, 유비가 장로에 맞서 관할 지역을 방어하도록 돕겠다는 명분으로 익주(현재의 쓰촨성과 충칭시를 포함)에 들어갔을 때, 간옹을 사신으로 보내 유장을 만났다. 유장은 간옹을 매우 총애했다. 이후, 유비와 유장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유비가 우위를 점하고 익주의 수도 성도를 포위했을 때, 간옹은 유장을 설득하여 항복하게 했다. 유장은 이에 동의했고, 간옹과 함께 수레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가 항복했다. 214년 익주를 점령하고 성도에 새로운 근거지를 세운 후, 유비는 간옹을 소덕장군(昭德將軍)의 자리에 임명했다.
2.3. 익주 평정과 촉한 건국
간옹은 어려서부터 유비와 친했고, 여기저기 따라다니며 주선 업무를 보았다. 유비가 형주에 들어가자 미축, 손건과 함께 종사중랑(從事中郞)에 임명되었고, 여전히 사자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211년(건안 16년) 유비가 유장의 요청에 따라 익주로 갈 때 함께 갔으며, 유장은 간옹을 매우 아꼈다. 이후 유장과 유비는 사이가 벌어져 전쟁을 벌였고, 마침내 214년 유비가 성도를 포위하면서 간옹을 항복 권고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유장은 간옹의 설득에 따라 같은 수레를 타고 나와 항복하였다. 익주가 평정되자 소덕장군(昭德將軍)에 올랐고, 미축에 버금가는 대우를 손건과 같이 받았다.
2.4. 사망 시기
이후의 행적은 불명이며, 건안 24년(219년)에 유비를 한중왕으로 추대한 군신이나, 장무 원년(221년)에 유비를 황제로 추대한 군신 중에도 간옹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3. 성품과 평가
간옹은 뜻이 크고 오만하며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유비와 함께 있을 때도 다리를 뻗고 비스듬히 앉는 등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제갈량 등을 대할 때는 평상에 누워 말할 정도였다.
익살과 재치가 뛰어나, 가뭄으로 금주령이 내려져 술 빚는 도구를 가진 사람도 처벌받던 시기에, 길 가던 남녀를 보고 유비에게 "저들이 간음하려 하는데 왜 체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유비가 이유를 묻자 "저들에게 그 도구가 있으니 간음하려는 자와 같다"고 대답하여, 유비를 크게 웃게 하고 도구를 가진 사람들을 석방하게 하였다.
진수는 미축, 손건, 간옹, 이적을 조화롭고 기품이 있어 그 시대에 대우받았다고 평가하였다.
3.1. 자유분방함과 유머
간옹은 뜻이 크고 오만하며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유비와 함께 있을 때도 다리를 뻗고 비스듬히 앉는 등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제갈량 등을 대할 때는 아예 평상에 누워 말할 정도로 거리낌이 없었다. 이러한 성격은 그의 글과 연설에도 반영되어, 노자 철학을 극단적으로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간옹은 익살과 재치가 뛰어났다. 한번은 가뭄으로 금주령이 내려져 술 빚는 도구를 가진 사람도 처벌받게 되었는데, 간옹은 길 가던 남녀를 보고 유비에게 "저들이 간음하려 하는데 왜 체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유비가 이유를 묻자 "저들에게 그 도구가 있으니 간음하려는 자와 같다"고 대답하여, 유비를 크게 웃게 하고 도구를 가진 사람들을 석방하게 하였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간옹을 미축, 손건, 이적과 함께 조화롭고 기품이 있어 그 시대에 대우받았다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