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귀손
1. 개요
강귀손은 조선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복시정을 시작으로 관직에 진출했다. 이후 사헌부집의, 동부승지, 우부승지, 홍문관 부제학 등을 거쳐 연산군 때 도승지, 경기도관찰사, 병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무오사화에 연루되었으며, 갑자사화 당시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우찬성, 좌찬성까지 올랐다. 우의정을 지냈으며, 허침, 신수근 등과 함께 난국을 타개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사망했다. 연산군의 총신이었지만, 절제 있는 행동으로 신망을 얻어 정승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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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년 사망 -
에르콜레 1세 데스테
에르콜레 1세 데스테는 1471년 페라라 공작이 되어 베네치아 공화국과의 전쟁, 이탈리아 전쟁 등에 연루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 예술을 후원하고 도시 개발에 힘쓴 인물이다. -
1505년 사망 -
프랑스의 잔
프랑스의 잔은 프랑스의 공주이자 성녀로, 정치적 목적으로 루이 12세와 결혼했으나 이혼 후 수녀회를 설립했으며 사후 시성되었다. -
1450년 출생 -
히에로니무스 보스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15-16세기 네덜란드 출신 화가로, 종교적 주제를 기괴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며 삼면 제단화 형식을 즐겨 사용했고, 후대 화가와 초현실주의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
1450년 출생 -
존 캐벗
존 캐벗은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로, 헨리 7세의 후원을 받아 북미 대륙을 탐험하여 뉴펀들랜드에 상륙, 영국령을 선포했으며, 1498년 탐험 중 실종되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1. 관직 진출과 정치 활동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복시정이 되고 이후 사헌부집의로 승진한다. 경차관으로 파견되어 민심을 다스리다가 동부승지를 거쳐 우부승지가 되고 연이어 홍문관부제학으로 참찬관을 겸한다. 좌부승지와 우승지를 거쳐 연산군 때 도승지로 승진, 경기도관찰사로 외직에 있으며 민정을 다스리다가 병조참판을 거쳐 사헌부대사헌으로 승진한다. 무오사화 당시 노사신, 신승선, 한치형, 윤필상, 정문형, 어세겸, 이세좌, 이극균 등과 함께 사화를 주관했고 대사헌으로써 무오사화에 관여했다. 형조판서로 승진, 산릉도감제조를 겸하다 한성부판윤과 도총관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고 영의정을 하던 한치형이 죽자 후임 영의정인 성준과의 친분으로 병조판서로 임명되었다. 갑자사화로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우찬성이 되고 곧 좌찬성까지 승진한다. 춘추관당상과 사복시제조를 겸하다 곧 우의정이 되고 허침, 신수근, 박숭질, 김수동 등과 난국을 바로 잡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사망한다.
2.2. 연산군 시대의 활동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복시정이 되고 이후 사헌부집의로 승진하였다. 경차관으로 파견되어 민심을 다스리다가 동부승지를 거쳐 우부승지가 되고, 홍문관부제학으로 참찬관을 겸하였다. 좌부승지와 우승지를 거쳐 연산군 때 도승지로 승진, 경기도관찰사로 외직에 있으며 민정을 다스리다가 병조참판을 거쳐 사헌부대사헌으로 승진하였다. 무오사화 당시 노사신, 신승선, 한치형, 윤필상, 정문형, 어세겸, 이세좌, 이극균 등과 함께 사화를 주관했고 대사헌으로써 무오사화에 관여했다. 형조판서로 승진, 산릉도감제조를 겸하다 한성부판윤과 도총관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영의정을 하던 한치형이 죽자 후임 영의정인 성준과의 친분으로 병조판서로 임명되었다. 갑자사화로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우찬성이 되고 곧 좌찬성까지 승진하였다. 춘추관당상과 사복시제조를 겸하다 우의정이 되었으나, 허침, 신수근, 박숭질, 김수동 등과 난국을 바로 잡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사망한다.
3. 평가
강귀손은 연산군의 총애를 받은 총신이지만, 절제 있는 행동으로 조정의 신망을 얻어 정승까지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사홍, 유자광과는 달리 절제 있고 도를 잘 지켜 조정과 백성의 신망을 얻었다.
3.1. 긍정적 평가
연산군의 총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절제 있는 행동으로 조정의 신망을 얻어 정승까지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사홍, 유자광과는 달리 절제 있고 도를 잘 지켜 조정과 백성의 신망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4. 가족 관계
강귀손은 명문가 출신으로, 소헌왕후와 인척 관계이며 여러 명문가와 혼인 관계를 맺었다. 조부는 강석덕, 아버지는 강희맹이다. 어머니는 순흥 안씨이며, 외조부는 안숭효이다. 심온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남동생은 강학손이며, 여동생들은 창녕 성씨 성세명, 김성동, 고령 신씨 신렴, 안동 권씨 권만형과 혼인하였다. 부인은 은진 송씨(송요년의 딸)이다.
4.1. 가계
4.2. 혼인
宋遙年중국어의 딸 은진 송씨와 혼인하였다. 슬하에 딸만 둘을 두었는데, 장녀는 기진에게, 차녀는 이돈에게 출가시켰다. 동생 강학손의 아들 강태수를 양자로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