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카 마코토
1. 개요
고사카 마코토는 미야기현 출신으로, 1996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하여 유격수로서 활약한 일본 프로 야구 선수이다. 1997년 신인왕과 월간 MVP를 수상했고, 56개의 도루로 신인 최다 도루 기록을 세웠다. 1998년 도루왕을 차지했으며,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골든 글러브상을 받았고,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거쳐 2010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활동하며, 뛰어난 수비 능력과 주루 플레이로 '고사카 존'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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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 | 미야기현와타리군야마모토정 |
|---|---|
| 신장 | 167 |
| 체중 | 63 |
| 利き腕 | 오른쪽 |
| 타석 | 왼쪽 |
| 수비 위치 | 유격수, 2루수, 3루수 |
| 프로 입단 년도 | 1996년 |
| 드래프트 순위 | 드래프트 5위 |
| 첫 출장 | 1997년 4월 5일 |
| 최종 출장 | 2010년 8월 12일 |
| 아마추어 | JR 동일본 도호쿠 |
|---|---|
| 프로 | 지바 롯데 마린스 (1997 ~ 2005)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 ~ 2008)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9 ~ 2010) |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1 ~ 201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14 ~ 2016)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7) 지바 롯데 마린스 (2018 ~ 2023) |
| 타이틀 | 1997년 퍼시픽 리그 신인왕 2× 퍼시픽 리그 도루왕 (1998년, 2000년) |
|---|---|
| 골든 글러브 | 4× 퍼시픽 리그 골든 글러브상 (1999년–2001년, 2005년) |
| 일본 시리즈 우승 | 2× 일본 시리즈 우승 (2005년, 2008년) |
| 올스타 | 5× NPB 올스타 (1997년, 1999년-2001년, 2003년) |
| 타율 | .251 |
|---|---|
| 안타 | 1,069 |
| 타점 | 303 |
| 도루 | 279 |
| 포지션 (선수/코치) | 내야수 / 코치 |
|---|---|
| 투구/타격 | 우투/좌타 |
| 로마자 | Makoto Kosaka |
|---|
-
미야기현 출신 야구 선수 -
곤노 류타
곤노 류타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2014년 라쿠텐에 입단하여 2020년부터 야쿠르트에서 활동하다 2024년 다시 라쿠텐으로 복귀했으며, 최고 구속 153km/h의 강속구를 주 무기로 컷 패스트볼, 포크볼, 커브 등을 구사하는 투수이다. -
미야기현 출신 야구 선수 -
오카노 유이치로
오카노 유이치로는 최고 149km/h의 직구와 포크볼을 던지는 우완 투수로, 세이코가쿠인 고등학교,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 도시바 야구단을 거쳐 2019년 드래프트에서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했으며, 2023년 시즌 후 은퇴하여 현재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손자로 태어나 124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에 관여했다는 논란이 있으며, 전후에는 상징적인 천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1973년 출생 -
박노자
박노자는 러시아 태생으로 대한민국에 귀화한 한국학 연구자이자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며, 오슬로 대학교 한국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하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
1973년 출생 -
박주민
2. 선수 경력
미야기현 출신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소년 야구팀에서 활약했다. 소년 야구 시대에는 팀 후배로 오노 준이치가 있었다. 야마모토 정립 야마시타 중학교를 졸업했다. 미야기현 시바타 고등학교 시절에는 고시엔 대회 출전 경력은 없었다. 고교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인 JR동일본 도호쿠 경식 야구부에 5년간 재적했다. 1995년에는 도시 대항 야구에 팀 53년 만에 출전, 이듬해도 연속 출전하여 1번 타자를 맡았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스카우트였던 사토 타카오가 그 재능을 간파하고 획득을 추천했지만, 작은 키를 이유로 거절당했다. 사토는 지바 롯데 마린스의 GM 히로오카 타츠로에게 고사카를 추천했고, 히로오카는 즉시 획득을 결의했다. 199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로부터 5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등번호는 00번이었다.
1997년 입단 첫 해, 고사카 마코토는 신인이면서 유격수 주전 자리를 꿰차며 3, 4월 월간 MVP를 수상했다. 시즌 전 경기(135경기)에 출전하며 맹활약하여 퍼시픽 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56개의 도루를 기록, 사토 다카오의 신인 최다 도루 기록(45개)을 경신했다.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음)
1998년 등번호를 1번으로 변경하고, 43개의 도루로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고의성 보크 의혹에 의한 도루 저지 문제도 발생하였다)
1999년 골든 글러브상을 처음 수상했고, 이후 2001년까지 3년 연속 수상했다. 2000년 33개의 도루로 통산 두 번째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2년 오른 다리 골절로 인해 연속 시즌 100안타 기록이 5년 만에 중단되었다. 2003년에는 개인 통산 50개의 3루타를 달성했다.
2004년 바비 밸런타인 감독의 지시에 따라 타격 스타일을 변경했다.
2005년 팀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고,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시즌 후, 현금 트레이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2006년 요미우리의 감독으로 복귀한 하라 다쓰노리의 구상으로 인해 내야 수비진이 확정되어 있었지만, '신생 하라 교진'(新生原巨人일본어)의 캠프에서 ‘내야 수비·주루의 스페셜리스트’로서 2루수로 기용되었다. 그해 4월 1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개인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등번호는 2번을 사용했다. 그러나 1할 대의 타율과 극심한 부진으로 후반기에는 와키야 료타가 우선적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구단 측의 대폭적인 연봉 삭감 조치를 받아들였고, 10월에는 교육 리그에 참가했다. 10월 27일 시즌 도중에 취득한 FA권을 행사하지 않고 요미우리에 잔류하겠다는 표명을 했다.
2007년 등번호를 6번으로 변경하고, 3월 30일에 센트럴 리그 개막전인 요코하마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통산 250 희생타를 달성했다. 하지만 팀의 극심한 빈타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1시즌 동안 안타는 3개에 그쳤다. 하반신에 불안을 안고 있는 니오카의 백업 요원으로서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지만 갑작스런 어깨 부상으로 인해 8월 3일 이후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2008년에는 3루를 지키는 일도 많아졌지만, 젊은 선수들의 활약과 타격 부진으로 인해 출전 경기 수는 개인 최저인 13경기에 그쳤고,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1군에서의 무안타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11월, 현금 트레이드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했고, 등번호는 32번으로 결정되었다. 요미우리로부터 2군 코치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현역을 고집하고 싶다는 마음에 스스로 이적을 신청했다”라고 말했다.
(2008년 9월 13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고사카 마코토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이적 후 구단 최초의 미야기현 출신 선수가 되었다. 지바 롯데와 요미우리 시절에 계속 불리던 응원가는 라쿠텐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새롭게 만들어진 응원가에는 《미야기의 별》(미야기의 별/宮城の星일본어)이라는 구절이 사용되었다.
2009년 5월에는 주전 선수 두 명이 연달아 부상당하면서 출전 기회가 증가했다. 5월 3일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8회 1아웃 상황에 3루에서의 대주자로 출전, 내야 전진 수비 중 내야 땅볼 사이에 결정적인 주루 플레이로 홈을 빠뜨리는 등 결승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5월 2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톰 마스트니로부터 4년 만에 홈런을 쳤고, 8월 16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는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는 등 팀의 상위권 진출에 기여했다.
2010년에는 훈련 도중 허리 부상으로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았고, 7경기에만 출전했다. 10월 1일자로 방출 통보를 받음과 동시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프로 입단 전
미야기현 출신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소년 야구팀에서 활약했다. 소년 야구 시대에는 팀 후배로 오노 준이치가 있었다. 야마모토 정립 야마시타 중학교를 졸업했다. 미야기현 시바타 고등학교 시절에는 고시엔 대회 출전 경력은 없었다. 고교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인 JR동일본 도호쿠 경식 야구부에 5년간 재적했다. 1995년에는 도시 대항 야구에 팀 53년 만에 출전, 이듬해도 연속 출전하여 1번 타자를 맡았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스카우트였던 사토 타카오가 그 재능을 간파하고 획득을 추천했지만, 작은 키를 이유로 거절당했다. 사토는 지바 롯데 마린스의 GM 히로오카 타츠로에게 고사카를 추천했고, 히로오카는 즉시 획득을 결의했다. 199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로부터 5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등번호는 00번이었다.
2.2.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1997년 ~ 2005년)
1997년 입단 첫 해, 고사카 마코토는 신인이면서 유격수 주전 자리를 꿰차며 3, 4월 월간 MVP를 수상했다. 시즌 전 경기(135경기)에 출전하며 맹활약하여 퍼시픽 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56개의 도루를 기록, 사토 다카오의 신인 최다 도루 기록(45개)을 경신했다.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음)
1998년 등번호를 1번으로 변경하고, 43개의 도루로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고의성 보크 의혹에 의한 도루 저지 문제도 발생하였다)
1999년 골든 글러브상을 처음 수상했고, 이후 2001년까지 3년 연속 수상했다. 2000년 33개의 도루로 통산 두 번째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2년 오른 다리 골절로 인해 연속 시즌 100안타 기록이 5년 만에 중단되었다. 2003년에는 개인 통산 50개의 3루타를 달성했다.
2004년 바비 밸런타인 감독의 지시에 따라 타격 스타일을 변경했다.
2005년 팀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고,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시즌 후, 현금 트레이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2.3.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06년 ~ 2008년)
2006년 요미우리의 감독으로 복귀한 하라 다쓰노리의 구상으로 인해 내야 수비진이 확정되어 있었지만, '신생 하라 교진'(新生原巨人일본어)의 캠프에서 ‘내야 수비·주루의 스페셜리스트’로서 2루수로 기용되었다. 그해 4월 1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개인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등번호는 2번을 사용했다. 그러나 1할 대의 타율과 극심한 부진으로 후반기에는 와키야 료타가 우선적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구단 측의 대폭적인 연봉 삭감 조치를 받아들였고, 10월에는 교육 리그에 참가했다. 10월 27일 시즌 도중에 취득한 FA권을 행사하지 않고 요미우리에 잔류하겠다는 표명을 했다.
2007년 등번호를 6번으로 변경하고, 3월 30일에 센트럴 리그 개막전인 요코하마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통산 250 희생타를 달성했다. 하지만 팀의 극심한 빈타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1시즌 동안 안타는 3개에 그쳤다. 하반신에 불안을 안고 있는 니오카의 백업 요원으로서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지만 갑작스런 어깨 부상으로 인해 8월 3일 이후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2008년에는 3루를 지키는 일도 많아졌지만, 젊은 선수들의 활약과 타격 부진으로 인해 출전 경기 수는 개인 최저인 13경기에 그쳤고,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1군에서의 무안타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11월, 현금 트레이드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했고, 등번호는 32번으로 결정되었다. 요미우리로부터 2군 코치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현역을 고집하고 싶다는 마음에 스스로 이적을 신청했다”라고 말했다.
(2008년 9월 13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2.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2009년 ~ 2010년)
고사카 마코토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이적 후 구단 최초의 미야기현 출신 선수가 되었다. 지바 롯데와 요미우리 시절에 계속 불리던 응원가는 라쿠텐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새롭게 만들어진 응원가에는 《미야기의 별》(미야기의 별/宮城の星일본어)이라는 구절이 사용되었다.
2009년 5월에는 주전 선수 두 명이 연달아 부상당하면서 출전 기회가 증가했다. 5월 3일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8회 1아웃 상황에 3루에서의 대주자로 출전, 내야 전진 수비 중 내야 땅볼 사이에 결정적인 주루 플레이로 홈을 빠뜨리는 등 결승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5월 2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톰 마스트니로부터 4년 만에 홈런을 쳤고, 8월 16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는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는 등 팀의 상위권 진출에 기여했다.
2010년에는 훈련 도중 허리 부상으로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았고, 7경기에만 출전했다. 10월 1일자로 방출 통보를 받음과 동시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2010년 11월 1일, 라쿠텐의 2군 육성 코치(야수 담당)로 발탁됐고 이듬해 2011년 5월 15일에 2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보직 이동됐다. 2012년에는 육성 코치(야수 담당)로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후임이었던 다네다 히토시가 1월에 라쿠텐을 퇴단했기 때문에 계속 2군에서의 내야 수비 주루 코치를 맡게 됐다. 2013년 11월 5일에 라쿠텐을 퇴단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군 내야 수비 코치를 맡았고 2017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를 역임했다.
2017년 12월, 13년 만에 친정팀 지바 롯데 마린스에 2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복귀했다. 2018년 5월 10일에는 토리고에 유스케 수석 코치 겸 1군 내야 수비·주루 코치가 수석 코치에 전념하기 위해, 1군 내야 수비·주루 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2019년에는 다시 2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 2020년에는 육성 코치 겸 주루 코치, 2021년에는 육성 수비·주루 코치, 2022년에는 2군 타격 겸 내야 수비 겸 주루 코치를 맡았다. 2023년에는 다시 1군 내야 수비 겸 주루 코치를 담당했으나, 요추 급성기 압박 골절 등의 영향으로 코치 업무가 어려워져 2023년 11월 29일, 수비 코디네이터로 보직 변경될 것이 발표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프로 선수로는 작은 체격이었지만, 뛰어난 주루 및 수비 기술을 보유했다. 통산 4차례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수비 능력을 자랑했다. 그의 넓은 수비 범위는 고사카 존(小坂ゾーン일본어)이라고 불렸다. 당시 고사카와 같은 리그에 소속되어 있던 조지마 겐지는 "고사카 씨가 있으면 매 경기마다 안타를 하나 손해 본다"라고 말했다.
타율은 낮지만 뛰어난 선구안과 잔기술로 높은 출루율을 기록했고, 통산 267개의 희생타를 기록했다. 빠른 발을 바탕으로 통산 279개의 도루와 63개의 3루타를 기록했다. RCAA는 100 이상의 마이너스를 기록한 반면, 수비 득점은 200을 넘어서 합계는 플러스가 되었다.
레인지 팩터는 유격수로서 1997년부터 7년 연속으로 양 리그 1위를 기록했으며, 그 중 1998년부터 2003년까지는 6년 연속으로 수치가 5를 넘었다. 수비 Win Shares에서는 롯데의 유격수로서 역대 1위의 수치를 기록했다(2010년 종료 시점).
5. 상세 정보
5.1. 수상·타이틀 경력
* 도루왕: 2회(1998년, 2000년)
* 신인왕(1997년)
* 골든 글러브상: 4회(1999년 ~ 2001년, 2005년)
* 월간 MVP: 1회(1997년 4월)
* JA 전농 Go·Go상: 1회(Magic Glove상: 2001년 6월)
5.1.1. 타이틀
* 도루왕: 2회(1998년, 2000년)
* 도루왕: 2회 (1998년, 2000년)
5.1.2. 수상
* 신인왕(1997년)
* 골든 글러브상: 4회(1999년 ~ 2001년, 2005년)
* 월간 MVP: 1회(1997년 4월)
* JA 전농 Go·Go상: 1회(Magic Glove상: 2001년 6월)
* 신인왕(1997년)
* 골든 글러브상: 4회 (유격수 부문: 1999년 - 2001년, 2005년)
* 월간 MVP(1회 (야수 부문: 1997년 4월)
* JA 전농 Go・Go상: 1회 (호수비상: 2001년 6월)
5.2. 개인 기록
통산 1371경기 출장, 1069안타, 19홈런, 303타점, 279도루, 타율 .251를 기록했다.
| 연도 | 소속팀 |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희생타 || 볼넷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
|---|---|---|---|---|---|---|---|---|---|---|---|---|---|---|---|---|---|
| 1997 | 롯데 | 135 | 595 | 66 | 130 | 14 | 7 | 1 | 161 | 30 | 56 | 16 | 38 | 5 | 49 | 4 | .261 |
| 1998 | 124 | 527 | 51 | 100 | 12 | 8 | 3 | 137 | 33 | 43 | 48 | 40 | 6 | 48 | 3 | .233 | |
| 1999 | 130 | 586 | 64 | 135 | 18 | 10 | 3 | 182 | 40 | 31 | 15 | 42 | 2 | 59 | 2 | .280 | |
| 2000 | 135 | 559 | 57 | 110 | 17 | 4 | 1 | 138 | 30 | 33 | 11 | 23 | 5 | 69 | 4 | .238 | |
| 2001 | 140 | 657 | 79 | 144 | 16 | 8 | 1 | 179 | 35 | 32 | 9 | 22 | 7 | 77 | 8 | .262 | |
| 2002 | 93 | 380 | 35 | 82 | 13 | 6 | 1 | 110 | 15 | 11 | 3 | 18 | 0 | 54 | 2 | .246 | |
| 2003 | 134 | 592 | 67 | 133 | 21 | 7 | 3 | 177 | 40 | 27 | 7 | 19 | 3 | 53 | 1 | .258 | |
| 2004 | 89 | 300 | 33 | 61 | 9 | 3 | 1 | 79 | 26 | 6 | 8 | 21 | 3 | 37 | 1 | .252 | |
| 2005 | 118 | 367 | 64 | 91 | 14 | 6 | 4 | 129 | 31 | 26 | 11 | 10 | 1 | 29 | 0 | .283 | |
| 2006 | 요미우리 | 92 | 255 | 24 | 40 | 5 | 2 | 0 | 49 | 12 | 4 | 4 | 8 | 2 | 41 | 3 | .183 |
| 2007 | 56 | 31 | 13 | 3 | 1 | 1 | 0 | 6 | 3 | 2 | 0 | 1 | 1 | 8 | 0 | .125 | |
| 2008 | 13 | 7 | 1 | 0 | 0 | 0 | 0 | 0 | 0 | 1 | 0 | 0 | 0 | 2 | 0 | .000 | |
| 2009 | 라쿠텐 | 105 | 213 | 19 | 40 | 3 | 1 | 1 | 48 | 8 | 7 | 4 | 17 | 1 | 31 | 1 | .227 |
| 2010 | 7 | 0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 |
| | || 1371 || 5069 || 574 || 1069 || 143 || 63 || 19 || 1395 || 303 || 279 || 99 || 267 || 36 || 475 || 11 || .251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 첫 기록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1997년 4월 5일, 닛폰햄 1차전(도쿄 돔), 2번·유격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석·첫 안타: 상동, 1회초에 니시자키 유키히로로부터 중전 안타
* 첫 타점: 상동, 2회초에 니시자키 유키히로로부터 우중간 2점 적시 2루타
* 첫 도루: 1997년 4월 8일, 긴테쓰 1차전(오사카 돔), 3회초에 2루 안착(투수: 다카무라 히로시, 포수: 마토야마 데쓰야)
* 첫 홈런: 1997년 8월 22일, 대 긴테쓰 20차전(오사카 돔), 1회초에 오카모토 아키라로부터 솔로 홈런
; 주요 기록
* 통산 200도루: 2002년 7월 22일, 대 오릭스 15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6회말에 2루 안착(투수: 모토야나기 가즈야, 포수: 히다카 다케시) ※역대 63번째
* 통산 200희생타: 2003년 7월 12일, 대 오릭스 18차전(Yahoo! BB스타디움), 3회초에 가네다 마사히코로부터 투수 앞 희생타 ※역대 25번째
* 통산 1000경기 출장: 2005년 4월 22일, 대 라쿠텐 3차전(풀캐스트 스타디움 미야기), 1번·유격수로서 선발 출장 ※역대 401번째
* 통산 250도루: 2005년 6월 3일, 대 한신 타이거스 4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1회초에 2루 안착(투수: 안도 유야, 포수: 야노 아키히로) ※역대 36번째
* 통산 1000안타: 2006년 4월 15일, 대 요코하마 5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9회초에 니시 도시히사의 대타로 출장, 기즈카 아쓰시로부터 좌중간 2루타 ※역대 239번째
* 통산 250희생타: 2007년 3월 30일, 대 요코하마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4회초에 미우라 다이스케로부터 투수 앞 희생타 ※역대 10번째
; 기타 기록
* 신인 시즌 56도루: 1997년 ※역대 최다
* 40도루·40희생타: 1998년 ※역대 최초
* 신인부터 5년 연속 30도루(1997년 - 2001년) ※역대 2번째
* 시즌 수비율 .994: 2002년 ※퍼시픽 리그 유격수 기록
* 올스타전 출장: 5회(1997년, 1999년 ~ 2001년, 2003년)
* 통산 3루타: 63개 ※역대 17위 타이(2011년 종료 시점)
* 통산 희생타: 267개 ※역대 10위(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