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순이
1. 개요
고순이는 1798년 한양에서 태어난 한국 천주교 신자이다. 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신앙을 지켰으며, 18세에 박종원과 결혼하여 3남매를 두었다. 남편의 자선 사업을 돕고, 냉담 교우를 격려하는 등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하였으며, 선교사들을 통해 성사를 받으며 순교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1839년 남편이 체포되자 자수하여 체포되었으며, 포도청과 형조에서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지만 신앙을 지켰다. 같은 해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1925년 복자,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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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출생 -
쥘 뒤포르
쥘 뒤포르는 프랑스 제3공화국 초기에 총리를 지낸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웅변과 법률 지식을 바탕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여러 장관직을 거쳐 온건 공화파로서 활동하며 정치적 안정과 배심원 제도 법 통과 등의 업적을 남겼다. -
1798년 출생 -
아담 미츠키에비치
아담 미츠키에비치는 폴란드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이자 국민 시인으로, 폴란드 독립 염원과 민족 정체성을 담은 《판 타데우시》, 《디아디》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반러시아 활동으로 추방 후 유럽에서 활동하다 콜레라로 사망하여 크라쿠프에 안장되었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 -
김효주 (종교인)
김효주 아녜스는 1816년 밤섬에서 태어나 언니 김효임 콜룸바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이며,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 -
김대건
김대건 안드레아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이자 순교자로, 천주교 신앙을 가진 가문에서 태어나 사제의 길을 걸으며 마카오와 필리핀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26세에 순교하였고, 그의 순교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2. 생애
고순이는 1798년에 한양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4살 때에 신유박해로 천주교 신자였던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신앙을 지켰다.
18세에 박종원(바오로)과 혼인하여 3남매를 두었다. 그녀의 가족은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자녀들을 천주교 교리에 따라 교육하고, 교우들에게 모범이 되는 신앙생활을 하였다. 고순이는 남편의 자선 사업을 돕고, 냉담교우들을 교회로 돌아오도록 격려하며, 문맹자들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돌보는 등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하였다.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들을 통해 성사를 받을 수 있게 되자, 고순이는 매우 기뻐하며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덕행을 실천하였다. 그녀는 순교에 대한 열망을 키워나갔다.
1839년 10월 27일, 고순이는 남편 박종원이 체포되자 남편과 고통을 함께하기 위해 자수하였고,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녀는 체포된 것을 특별한 은총이라 여겨 하느님께 감사하였다. 그 부부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혹독한 형벌과 고문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였다. 포장은 심문을 위해 그 부부를 함께 불러내 배교를 요구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고, 따라서 격심한 고문을 받았다. 고순이는 여섯 차례 고문을 받았고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결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약 20일 후, 고순이는 남편과 함께 다시 매질을 당했다. 그녀는 격심하게 얻어맞아 살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하느님을 위해 죽기를 원했고, 동료 수감자들에게 성령의 축복으로 더 이상 두렵지 않으며 행복하다고 말했다.
1839년 12월 29일, 고순이는 41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의 형장에서 여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됨으로써 남편보다 한 달 앞서 순교하였다.
2.2. 결혼과 가정생활
18세에 박종원(바오로)과 혼인하여 3남매를 두었다. 그녀의 가족은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자녀들을 천주교 교리에 따라 교육하고, 교우들에게 모범이 되는 신앙생활을 하였다. 고순이는 남편의 자선 사업을 돕고, 냉담교우들을 교회로 돌아오도록 격려하며, 문맹자들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돌보는 등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하였다.
2.3. 선교사와의 만남과 순교의 열망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들을 통해 성사를 받을 수 있게 되자, 고순이는 매우 기뻐하며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덕행을 실천하였다. 그녀는 순교에 대한 열망을 키워나갔다. 고순이는 남편 박종원의 자선 사업을 도왔고, 냉담교우들을 교회로 돌아오도록 격려하였으며, 문맹의 예비신자들을 가르쳤고, 병자들을 보살폈다.
2.4. 체포와 투옥
1839년 10월 27일, 고순이는 남편 박종원이 체포되자 남편과 고통을 함께하기 위해 자수하였고,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녀는 체포된 것을 특별한 은총이라 여겨 하느님께 감사하였다. 그 부부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혹독한 형벌과 고문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였다. 포장은 심문을 위해 그 부부를 함께 불러내 배교를 요구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고, 따라서 격심한 고문을 받았다. 고순이는 여섯 차례 고문을 받았고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결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약 20일 후, 고순이는 남편과 함께 다시 매질을 당했다. 그녀는 격심하게 얻어맞아 살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하느님을 위해 죽기를 원했고, 동료 수감자들에게 성령의 축복으로 더 이상 두렵지 않으며 행복하다고 말했다.
2.5. 혹독한 고문과 신앙 증거
고순이는 1798년 한양에서 태어나 4살 때 신유박해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신앙을 지켰다. 18세에 박종원과 혼인하여 3남매를 두었으며, 가족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생활하였다. 남편 박종원이 체포되자, 고순이는 남편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자수하였고, 1839년 10월 27일에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녀는 체포된 것을 특별한 은총으로 여겨 하느님께 감사했다.
고순이는 남편과 함께 포도청과 형조에서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포장은 심문을 위해 부부를 함께 불러 배교를 요구했지만, 그들은 거부했고 격심한 고문을 받았다. 고순이는 여섯 차례의 고문으로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결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약 20일 후, 고순이는 남편과 함께 다시 매질을 당했고, 살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심하게 얻어맞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하느님을 위해 죽기를 원했으며, 동료 수감자들에게 "저는 고문이 두려웠지만, 지금은 성령께서 저 같은 죄인을 축복해 주시므로,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저는 죽기가 이렇게 쉬운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격려했다.
2.6. 순교
고순이는 1798년 한양에서 태어나 4살 때 신유박해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신앙을 지켰다. 18세에 박종원과 혼인하여 3남매를 두었으며, 가족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선교사들이 입국하였을 때, 그녀는 성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 하며 순교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1839년 10월 27일, 남편 박종원이 체포될 때, 고순이는 남편과 고통을 같이하기 위하여 자수하였으나, 다음 날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녀는 체포된 것을 특별한 은총이라 여겨 하느님께 감사하였다. 부부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혹독한 형벌과 고문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였고, 배교를 거부하여 격심한 고문을 받았다. 고순이는 여섯 차례 고문을 받았고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결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약 20일 후, 고순이는 다시 남편과 함께 매질을 당했다. 격심하게 얻어맞아 살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튀어나왔지만, 하느님을 위해 죽기를 원했다. 그녀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성령의 축복으로 더 이상 두렵지 않으며, 죽기가 이렇게 쉬운지 몰랐다며 행복하다고 말했다.
1839년 12월 29일, 고순이는 41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의 형장에서 여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됨으로써 남편보다 한 달 앞서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