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파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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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전파 경제학은 17세기 중농주의의 영향을 받아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출간으로 시작되어 1870년대 신고전 경제학의 등장으로 대체되기 전까지 서양 경제 사상을 지배한 주요 학파이다. 분업, 가치, 수요와 공급 등 주요 개념을 확립하고 자유 무역을 옹호했으며, 자본주의와 산업혁명 시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요 학자로는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가치 이론, 분배 이론, 국제 무역 이론, '보이지 않는 손'과 자유 방임주의 등 다양한 경제 이론을 발전시켰다. 고전파 경제학은 이후 신고전 경제학에 의해 비판받고 대체되었지만, 조지즘, 마르크스 경제학, 오스트리아 경제학 등 다양한 학파에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에는 신리카르도 학파를 탄생시키며 현대 경제 사상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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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가 1776년에 출판한 국부론은 고전 경제학의 시초로 여겨지며 분업,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자본 축적, 중상주의 비판, 보이지 않는 손 등의 개념을 제시하며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고전파 경제학 - 세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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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파 경제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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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파 경제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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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사상 | 자유방임주의 보이지 않는 손 노동 가치설 리카도의 차액지대론 비교 우위론 세의 법칙 |
주요 학자 | |
창시자 | 애덤 스미스 |
주요 학자 | 데이비드 리카도 장바티스트 세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존 스튜어트 밀 |
기타 학자 | 제임스 밀 헨리 손턴 나소 윌리엄 시니어 로버트 토렌스 프레데리크 바스티아 카를 마르크스 |
발전 과정 | |
형성 시기 | 18세기 후반 ~ 19세기 중반 |
주요 저서 | 국부론 (애덤 스미스, 1776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데이비드 리카도, 1817년) 《정치경제학 원리》(존 스튜어트 밀, 1848년) |
특징 | |
분석 방법 | 연역법 추상적 모델 |
시장의 역할 | 완전경쟁 가정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한 자원 배분 효율성 강조 |
국가의 역할 | 최소한의 역할 수행 (치안, 국방, 법치) |
가치 이론 | 노동 가치설 |
분배 이론 | 차액지대론 (리카도), 임금, 이윤 이론 |
성장 이론 | 자본 축적 및 기술 진보 중시 인구 증가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 (맬서스) |
화폐 이론 | 중립적 화폐관 |
세의 법칙 | 세의 법칙 (장바티스트 세) |
한계 | |
비판 | 현실 설명력 부족 (특히 불황) 노동 가치설의 한계 마르크스 경제학 비판 케인스 경제학 비판 |
영향 | 신고전파 경제학의 발전 마르크스 경제학의 탄생 케인스 경제학 등장 이전 경제학의 주류 |
관련 개념 | |
관련 분야 | 정치경제학 |
관련 학파 | 신고전파 경제학 마르크스 경제학 케인스 경제학 |
2. 역사
고전파 경제학은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출간과 함께 시작되어 데이비드 리카도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와 존 스튜어트 밀도 주요 고전파 경제학자로 꼽힌다.[25]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분업, 가치, 수요와 공급 개념을 제시하며 자유 무역을 옹호했다.[48]
리카도와 제임스 밀은 스미스의 이론을 체계화하여 1815년부터 1848년까지 경제학의 정설로 만들었으나, 이후 유럽 대륙을 중심으로 "반(反) 리카르도 반응"이 나타나 한계효용론과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이어졌다.[8]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론 비판(1859)에서 고전학파 경제학을 언급했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알프레드 마셜 등 신고전학파도 고전학파로 칭하며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23]
고전파 경제학은 주로 영국에서 발전하여 '영국 고전학파'라고도 불리지만,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세, 장 샤를 레오나르 시몽 드 시스몽디 등은 영국 고전학파와는 다른 경제학을 전개했다.
2. 1. 고전파 경제학의 배경
17세기 프랑스의 중농주의 경제학은 고전경제학에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부아기유베르는 농업 생산물이 모든 재화의 기반이며 토지가 부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각 산업 간의 협력적 관계를 강조하며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 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균형발전론은 이후 많은 경제학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프랑수아 케네와 같은 경제학자는 중농주의를 주장했다. 케네는 생산 계급과 비생산 계급을 구분하고, 이러한 사회 관계와 재화의 생산 분배 과정을 '경제순환표'로 설명하고자 하였다.[47]
고전경제학의 출발점은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출간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기존의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분업, 가치, 수요와 공급 등 고전 경제학의 주요 개념을 확립했으며, 자유 무역을 옹호하였다.[48]
고전파 경제학의 탄생에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에 걸쳐 일어난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산업혁명이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중상주의에서 벗어나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제학이 요구되었다. 예를 들어, 대규모 공장을 소유한 산업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하고, 이윤을 목적으로 노동자가 상품을 생산하는 자본주의가 싹튼 시대이기도 했다. 따라서 고전파 경제학에서 가치를 임금, 지대, 이윤의 세 가지로 분해한 것도, 경제 주체를 "노동자 계급", "지주 계급", "자본가 계급"의 세 계급으로 나누어 분석했기 때문이다.[25] 또한 노동가치설과 자유방임 사상은 아담 스미스 이전에 일어났던 중농주의의 영향도 받았다.
2. 2. 고전파 경제학의 발전
17세기 프랑스의 중농주의 경제학이 고전경제학에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아기유베르는 농업 생산물이 모든 재화의 기반이며 토지가 부의 원천이라 역설하였다. 또한 각 산업 간의 협력적 관계를 강조하여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 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균형발전론은 이후 많은 경제학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중농주의는 이후 프랑수아 케네와 같은 경제학자에 의해 주장되었다. 케네는 생산 계급과 비생산 계급을 구분하고 이러한 사회 관계와 재화의 생산 분배 과정을 '경제순환표'로 설명하고자 하였다.[47]
고전경제학의 출발점은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출간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하여 기존의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분업, 가치, 수요와 공급 등 고전 경제학의 주요 개념을 확립했으며, 자유 무역을 옹호하였다.[48]
고전 경제학자들과 그들의 직전 세대는 경제학의 초점을 통치자의 개인적인 이익 분석에서 더 넓은 국가적 이익으로 전환시켰다. 프랑수아 케네를 따른 애덤 스미스는[7] 국왕의 국고 대신 연간 국민소득으로 국가의 부를 규정했다. 스미스는 이 소득이 노동, 토지, 자본에 의해 생산된다고 보았다. 토지와 자본에 대한 재산권이 개인에게 있는 경우, 국민소득은 노동자, 지주, 자본가 사이에 임금, 지대, 이자 또는 이윤의 형태로 분배된다. 그의 견해에서 생산적 노동이 소득의 진정한 원천이었고, 자본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성장을 유도하는 주요 조직력이었다.
데이비드 리카도와 제임스 밀은 스미스의 이론을 체계화했다. 그들의 생각은 1815년에서 1848년 사이에 경제적 정설이 되었고, 그 후 특히 유럽 대륙에서 "반리카르도 반응"이 나타나 결국 한계효용론/신고전파 경제학이 되었다.[8]
헨리 조지는 때때로 마지막 고전 경제학자 또는 다리 역할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학자 메이슨 개프니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고전 경제학과 특히 헨리 조지의 생각을 억압하려는 공동의 노력으로 생겨났다는 그의 논제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이는 원본 자료들을 기록했다.[9]
국가 부의 성장을 분석하고 그러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대부분의 고전 경제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러나 존 스튜어트 밀은 일정한 인구 규모와 일정한 자본량을 가진 미래의 정체 상태가 인류가 달성해야 할 불가피하고, 필요하며, 바람직한 상태라고 믿었다. 이것은 현재 정상 상태 경제로 알려져 있다.[10]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 따르면, 고전학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카를 마르크스라고 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1859년에 출판된 『자본론 비판』에서 고전학파 경제학이 상품을 분석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케인스는 "고전학파 경제학"이라는 용어에 혼란을 가져왔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신고전학파로 여겨지는 알프레드 마셜이나 피구를 포함하여 그 이론을 "고전학파 이론"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23] 현재는 이 용법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지만, 때때로 케인스의 의미에서 "고전학파", "고전학파 이론"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케인스는 고전학파 이론의 본질은 세이 법칙을 전제로 하는 데 있으며, 『일반이론』은 그것을 뒤집는 것이라고 했다.[24]
영국계 경제학자 외에도 카를 마르크스를 고전학파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고전파 경제학 이전에는 (금은의) 국제수지론을 전개한 제럴드 드 마리네스, 에드워드 미셀덴, 토마스 만 등을 대표로 하는 중상주의 경제학이 존재했다.
고전파 경제학의 중심적 경제학자는 애덤 스미스(1723-1790)와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이지만,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와 존 스튜어트 밀도 고려해야 한다.[25]
고전파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리카르도에서 정점에 달했다고 여겨진다.[26]
리카르도의 경제학은 리카르도 사후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다. 1830년대에는 리카르도의 엄격한 지지자는 없어졌다고까지 말해진다.[28] 존 스튜어트 밀은 리카르도의 충실한 계승자임을 자처했지만, 실질적으로 밀은 리카르도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다고 평가된다.[28] 카를 마르크스도 같은 평가를 내렸다.[29]
고전파 경제학은 영국 고전학파라고도 불린다. 주로 영국에서 전개된 경제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카르도와 거의 동시대의 프랑스에는 장 바티스트 세와 장 샤를 레오나르 시몽 드 시스몽디가 있어 영국 고전학파와는 다소 계통이 다른 경제학을 전개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중상주의 경제학자와 고전파 경제학자 사이에는 프랑수아 케네와 제임스 스튜어트도 있다.
1870년대 전반에 기존 경제학의 전통을 일신하는 움직임이 영국, 프랑스, 독일의 세 언어권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영국의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이주한 레옹 발라스, 오스트리아의 칼 멩거 등이 수학적 방법을 구사하여 분석을 수행하는 경제학을 창시했기 때문이다. 각자 한계 개념을 사용한 것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한계혁명이라고 부른다. 발라스의 경제학은 로잔 학파에, 멩거의 경제학은 오스트리아 학파에 계승되어 발전했지만, 제번스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고사한 것도 있어 제번스와는 다소 사고방식이 다른 알프레드 마셜이 영국 신고전파의 집대성자가 되어 케임브리지 학파가 성립되었다.[31]
2. 3. 고전파 경제학의 쇠퇴와 유산
케인스는 '고전학파 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카를 마르크스가 처음 사용했다고 언급했다. 마르크스는 1859년 출판된 『자본론 비판』에서 고전학파 경제학의 상품 분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22]그러나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마셜이나 피구와 같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까지 '고전학파 이론'이라고 칭하며 혼란을 야기했다.[23] 현재는 이러한 용법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지만, 케인스의 의미로 '고전학파', '고전학파 이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케인스는 고전학파 이론의 본질이 세이의 법칙을 전제로 한다고 보았으며, 『일반이론』은 이를 뒤집는 것이라고 주장했다.[24]
리카르도의 경제학은 리카르도 사후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으며, 1830년대에는 리카르도의 엄격한 지지자가 없어졌다는 평가도 있다.[28] 존 스튜어트 밀은 리카르도의 충실한 계승자를 자처했지만, 슘페터는 밀이 리카르도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다고 평가했으며,[28] 마르크스도 같은 평가를 내렸다.[29] 염택용은 밀이 리카르도의 생산비 가치설에서 수요 공급의 법칙으로 회귀한 계기가 국제 가치론 구축의 어려움에 있었다고 지적한다.[30]
1870년대 전반,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기존 경제학의 전통을 일신하는 움직임이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 레옹 발라스, 칼 멩거 등은 수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한계 개념을 도입한 경제학을 창시했으며, 이를 한계혁명이라고 부른다. 발라스의 경제학은 로잔 학파에, 멩거의 경제학은 오스트리아 학파에 계승되었고, 제번스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알프레드 마셜이 영국 신고전파를 집대성하여 케임브리지 학파가 성립되었다.[31]
마르크스 경제학은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에서 탄생했으며,[32] 케인스 경제학은 고전파와 신고전파에 공통되는 생각을 쇄신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고전 경제학은 10년 주기의 공황이나 대규모 실업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리카르도의 이론은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에 의해 비판받았지만,[38] 알프레드 마셜은 리카르도-밀 체계에 대해 온건한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전파 경제학은 마셜 경제학에 의해 극복되었다고 평가된다.
20세기에 피에로 슬라파는 마셜 경제학에 의문을 제기하고,[39] 『리카르도 전집』[40] 편집을 통해 리카르도 재평가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상품에 의한 상품의 생산』을 통해 리카르도를 20세기에 부활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슬라파의 이론은 한계원리에 기반한 신고전파 경제학과 다른 가격이론이 가능함을 보여주었고, 슬라파학파 또는 신리카르도학파라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언 스티드먼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가치론을 비판하고,[41] HOS형 무역이론의 비판을 전개했다.[42] 슬라파의 영향을 받은 경제학자들은 포스트 케인지안의 3대 흐름 중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菱山泉(히시야마 이즈미)가 슬라파를 소개했으며, 塩沢由典(시오자와 요시노리)는 슬라파의 가격이론에 옥스퍼드 경제조사(1930년대 후반)의 완전원가 원리를 연결하여 고전파 가치론을 21세기 이론으로 전개하는 것을 제창하고 있다.[44] 시오자와는 리카르도 무역이론을 발전시켜 새로운 국제가치론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며,[45] 이는 고전파 가치론이 신고전파 가치론에 대항할 수 있는 이론으로 재생되었음을 의미한다.[46]
3. 주요 개념
노동가치설은 1770년대 후반부터 1870년대 전반까지 고전파 경제학의 기본 중 하나였다.[33][34] 이는 인간의 노동이 근원적인 가치의 원천이라는 사상에 바탕을 두었다. 이 개념은 스미스에서 시작하여 리카도와 맬서스에 이르기까지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기초 사상으로 이어졌다.
노동가치설에는 투입노동가치설과 지배노동가치설 두 가지가 있었다.[32] 투입노동가치설은 상품의 가치가 그 생산에 투입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설이며, 지배노동가치설은 상품의 가치가 그 상품으로 구매 또는 교환할 수 있는 다른 상품의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설이다.
18세기까지 주류였던 중상주의에서는 국가의 부를 축적된 재화(스톡)에 있다고 보았지만, 스미스는 부는 “생활의 필수품과 편의품”, 즉 소비재에 있으며 매년 소비되는 “플로우”라고 규정했다.[35] 또한 이러한 부는 농지와 자본설비에 투입된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스미스는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으로 구매 또는 교환할 수 있는 다른 상품의 노동량과 같다는 지배노동가치 개념도 제시했다.
스미스는 국부가 노동자, 지주, 자본가 사이에서 임금, 지대, 이윤이라는 형태로 분배된다고 보았으며, “가치라는 것이 임금, 지대, 이윤의 세 가지로 분해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36]
1776년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37]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자유 시장에서 개인이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궁극적으로 전체적으로 최적의 자원 배분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은 현재 "가격 메커니즘"이라고 불린다. 시장 가격은 항상 변동하지만,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적절한 가격에 이르며, 이 가격을 “자연 가격”이라고 했다. 자연 가격은 임금의 자연율, 지대의 자연율, 이윤의 자연율, 이 세 가지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3. 1. 가치 이론
퍼티는 시장 가격과 자연 가격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가격의 규칙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시장 가격은 일시적인 요인에 의해 변동하지만, 자연 가격은 규칙적이고 항구적인 지점을 나타낸다. 퍼티, 스미스, 리카도 등은 시장 가격이 결국 자연 가격으로 수렴한다고 보았다.[10]자연 가격을 형성하는 요인에 대해 고전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달랐다. 퍼티는 토지와 노동을 동등한 가치 형성의 원인으로 보는 토지-노동가치설을 주장했다. 스미스는 노동가치설을 주장했는데, 이는 신화적인 자본주의 이전 시대로 한정되기도 했다.[3] 리카도는 생산비용설을 가치 형성의 요인으로 보았다. 그는 스미스가 지대를 가격 결정 요인이 아닌 가격 결정 요소로 묘사한 것을 비판했다.[10]
스라파 학파 경제학자들을 포함한 일부 경제 사상사 학자들은 고전적인 가격 이론을 다음 세 가지 주어진 것으로부터 결정되는 것으로 본다.[17][18]
항목 | 내용 |
---|---|
1 | 스미스의 "실질적 수요" 수준의 산출량 |
2 | 기술 |
3 | 임금 |
그러나 리카도나 마르크스도 이 이론을 완전히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고전 경제학은 무역의 이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가치 이론은 한계주의에 의해 크게 대체되었는데, 한계주의는 "사용 가치"가 소비자가 재화에서 발견하는 한계 효용에서 유래하고, "교환 가치"(즉, 자연 가격)가 제품을 구성하는 투입물의 한계 기회 또는 불편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많은 고전 경제학자들이 자유 시장을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형태를 여전히 고수하는 가장 큰 경제 사상 학교는 마르크스주의 학교이다.
가치 이론은 현재 논쟁의 대상이다. 하나의 쟁점은 고전 경제학이 신고전 경제학의 전조인지, 아니면 가치, 분배, 성장에 대한 독자적인 이론을 가진 사상학파인지에 대한 것이다.
1770년대 후반부터 1870년대 전반까지 고전파 경제학의 기본 중 하나는 노동가치설이었다.[33][34] 인간의 노동이 보다 근원적인 가치의 근원이라는 사상이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아담 스미스로부터 시작하여 리카도와 맬서스에 이르기까지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기초가 되는 사상이었다.
노동가치설에는 투입노동가치설과 지배노동가치설 두 가지가 있었다.[32] 투입노동가치설은 상품의 가치가 그 생산에 투입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설이며, 지배노동가치설은 상품의 가치가 그 상품으로 구매 또는 교환할 수 있는 다른 상품의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설이다.
중상주의에서는 국가의 부를 축적된 재화(스톡)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담 스미스는 부는 “생활의 필수품과 편의품”, 즉 소비재에 있으며 매년 소비되는 “플로우”라고 규정했다.[35] 또한 이러한 부는 농지와 자본설비에 투입된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노동가치설, 또는 투입노동가치설에 해당한다. 스미스는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으로 구매 또는 교환할 수 있는 다른 상품의 노동량과 같다는 지배노동가치라는 개념도 제시하고 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가 노동자, 지주, 자본가 사이에서 임금, 지대, 이윤이라는 형태로 각각 분배된다고 생각하여 “가치라는 것이 임금, 지대, 이윤의 세 가지로 분해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36]
3. 2. 분배 이론
애덤 스미스는 국부가 노동자, 지주, 자본가 사이에서 임금, 지대, 이윤의 형태로 각각 분배된다고 보았으며, "가치라는 것이 임금, 지대, 이윤의 세 가지로 분해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36]3. 3. 국제 무역 이론
아담 스미스(아담 스미스)는 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인 『국부론』(국부론)에서 중상주의 사상을 반박했다.[3] 그는 중상주의에 반대하고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을 지지하며, 이것이 자유무역에 참여하는 국가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상주의 정책이 국내 생산자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소비자들이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게 하여 현금 흐름을 비효율적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국가에는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스미스는 자유무역에서 벗어나는 것이 독과점이 시장 경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회에 비용을 부과한다고 믿었다.고전 시대와 아담 스미스 이후, 데이비드 리카르도는 국제 무역에 대한 사상을 가진 저명한 경제학자가 되었다. 리카르도의 가장 유명한 경제 이론은 국제적 분업의 기초로서의 비교우위 이론이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국제 무역이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5] 그의 국제 무역에 대한 주요 아이디어는 국제 무역이 한 국가에서 생산되는 실질적인 산출량을 증가시키는 반면, 주요 이점은 국제적인 규모의 전문화와 분업을 장려함으로써 얻어지며, 이는 모든 관련 국가의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리카르도의 가장 큰 가정과 관찰 중 하나는 생산요소가 국가 간에 이동성이 없고 최종재는 완벽하게 이동성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가정은 국제 무역과 전문화의 이점을 보여주는 데 중요했다. 그의 국제 무역 이론은 노동가치설이 비교우위 이론과 충돌하는 방식으로 약화되었다. 궁극적으로 두 이론 모두 가격이 상대적으로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질문과 충돌하며, 리카르도는 단순히 국제무역이론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나중에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고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존 스튜어트 밀의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에 대한 기여는 그가 방정식에 수요를 도입했을 때 나왔다. 밀은 수요를 도입했고 수요와 공급이 가격의 함수이며, 시장균형은 가격이 공급과 수요 사이에 균형이 있도록 조정되는 곳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시했다.[10] 전반적으로, 아담 스미스와 고전 경제 사조 이전에는 국제 무역에 대한 주된 견해는 부정적으로 여겨졌고 중상주의의 경제 정책으로 국제 무역에 참여하는 국가들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르도, 존 스튜어트 밀이 고전 경제 사조와 함께 등장하면서 국제 무역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궁극적으로 모든 당사자에게 유익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3. 4. '보이지 않는 손'과 자유 방임주의
1776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37]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자유 시장에서 개인이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이기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궁극적으로 전체적으로 최적의 자원 배분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은 현재 "가격 메커니즘"이라고 불린다.4. 주요 학자
-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
-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 따르면, '고전학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카를 마르크스이다.[22] 마르크스는 고전학파 경제학이 상품을 분석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케인스는 "고전학파 경제학"이라는 용어에 혼란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다.[23] 그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마셜이나 피구와 같은 신고전학파 학자들까지 포함하여 "고전학파 이론"이라고 칭했기 때문이다.[23]
장 바티스트 세(Jean-Baptiste Say)와 장 샤를 레오나르 시몽 드 시스몽디(Jean-Charles-Léonard Simonde de Sismondi)는 영국 고전학파와는 다소 다른 경제학을 전개했다. 프랑수아 케네(François Quesnay)와 제임스 스튜어트는 중상주의 경제학자와 고전파 경제학자 사이에 위치한다.
고전파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리카르도에서 정점에 달했다고 여겨진다.[26] 슘페터는 리카르도를 낮게 평가했지만, “명확한 결과를 내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리카르도와 케인즈는 “정신적 형제”라고 칭찬했다.[27]
고전파 비판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이 탄생한 것처럼, 마르크스 경제학도 이 시대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에서 탄생했다.[32]
5. 비판과 한계
고전파 경제학은 여러 비판과 한계에 직면했다. 주요 논쟁 중 하나는 고전 경제학이 신고전 경제학의 전조인지, 아니면 가치, 분배, 성장에 대한 독자적인 이론을 가진 학파인지에 대한 것이었다.[19]
칼 마르크스는 리카르도 경제학을 가리키는 용어로 "고전 경제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지만, 이후 리카르도의 추종자들을 포함하도록 용례가 확장되었다.[19]
스라파학파는 고전 경제학이 17세기 페티의 연구에서 1830년경 리카르도 체계의 붕괴까지 이어진다고 보았다. 그 후 1830년부터 1870년대까지는 "속물 정치 경제학"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조지주의자들과 마이클 허드슨 같은 현대 고전 경제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고전 경제학과 신고전 경제학의 주요 차이점이 경제적 지대의 처리 또는 인식이라고 주장한다.
새뮤얼 홀랜더[20]는 고전 경제학자들에게 마르크스의 독해를 위한 텍스트적 근거가 있지만, 매우 제한적인 텍스트 집합이라고 주장한다.
알프레드 마셜은 고전 경제학과 신고전 경제학이 연속적이라는 견해를 지지했다. W. 스탠리 제번스는 리카르도를 "능력 있지만 잘못된 사람"으로, 경제학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 사람으로 언급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고전 경제학이 리카르도로 시작하여 자신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 출판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고전 경제학의 결정적인 기준은 세이 법칙이다.[19]
케인스는 "고전학파 경제학"이라는 용어에 혼란을 가져왔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신고전학파로 여겨지는 마셜이나 피구를 포함하여 그 이론을 "고전학파 이론"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23] 케인스는 고전학파 이론의 본질은 세이 법칙을 전제로 하는 데 있다고 했다.[24]
힐퍼딩은 『금융자본론』 서문에서 마르크스에게서 고전학파 경제학은 "그 최고의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고 적었다.
리카르도의 경제학은 리카르도 사후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다. 1830년대에는 리카르도의 엄격한 지지자는 없어졌다고까지 말해진다.[28] 존 스튜어트 밀은 리카르도의 충실한 계승자임을 자처했지만, 슘페터는 실질적으로 밀은 리카르도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다고 평가한다.[28] 염택용은 밀이 리카르도의 생산비 가치설에서 보다 오래된 수요 공급의 법칙으로 회귀한 계기가 국제 가치론 구축의 어려움에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30]
마르크스 경제학은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에서 탄생했다.[32]
고전 경제학은 10년 주기의 공황이나 프랑스의 대규모 실업 노동자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6. 현대적 의의
고전 경제학 이론은 여전히 경제학의 기본을 이루고 있지만, 1870년대 이후 신고전 경제학에 자리를 내주었다. 다른 이론들은 케인스 혁명과 신고전 종합을 거치며 케인스 경제학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조지즘과 마르크스 경제학(마르크스와 헨리 조지는 고전 경제학자들과 동시대인이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신고전 경제학에서 갈라져 나온 오스트리아 학파와 같은 다양한 이단 경제학 학파에서 고전 경제학 이론의 일부가 나타난다. 20세기 중반, 신리카르도 학파와 그 파생 학파가 탄생하며 고전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나타났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 따르면, '고전학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카를 마르크스였다.[22]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마셜이나 피구와 같이 신고전학파로 여겨지는 학자들의 이론을 "고전학파 이론"이라고 부르며 용어에 혼란을 가져왔다.[23] 현재는 이 용법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지만, 때때로 케인스의 의미에서 "고전학파", "고전학파 이론"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케인스는 고전학파 이론의 본질은 세이의 법칙을 전제로 하는 데 있으며, 『일반이론』은 그것을 뒤집는 것이라고 했다.[24]
마르크스 경제학은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에서 탄생했다.[32] 피에로 슬라파는 마셜 경제학에 의문을 제기하고,[39] 『리카르도 전집』[40] 편집을 통해 리카르도 재평가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상품에 의한 상품의 생산』에서 리카르도를 20세기에 부활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슬라파의 저서는 한계원리에 기반한 신고전파 경제학과 다른 가격이론이 가능함을 보여주었고, 슬라파학파 또는 신리카르도학파를 탄생시켰다. 일본에서는 현대고전파라고 자칭하기도 한다. 슬라파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은 이언 스티드먼이다. 스티드먼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가치론을 비판하고,[41] HOS형 무역이론의 비판을 전개했다.[42]
루이지 파시네티, 피에란젤로 가레냐니, 하인츠 쿠르츠, 스탠리 메트카프, 네리 살바도리 등 슬라파에게 영향을 받은 여러 경제학자들이 포스트 케인지안의 3대 흐름 중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히시야마 이즈미가 슬라파를 소개했다. 히시야마에게 있어 슬라파는 프랑수아 케네의 경제학을 발전시킨 것이었다.[43] 시오자와 요시노리는 슬라파의 가격이론에 옥스퍼드 경제조사(1930년대 후반)의 완전원가 원리를 연결함으로써 고전파 가치론을 21세기 이론으로 전개하는 것을 제창하고 있다.[44] 시오자와는 또한 리카르도 무역이론을 발전시켜 새로운 국제가치론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45] 국제가치론의 부재는 고전파 가치론의 약점 중 하나였다. 시오자와의 성과는 고전파 가치론이 신고전파 가치론에 대항할 수 있는 이론으로 재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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