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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타 도모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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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보타 도모유키는 일본의 전 야구 선수로, 투수로서 한신 타이거스에서 2002년부터 2014년까지 활약했다. 고등학교 시절 투수와 포수를 겸했으며, 도키와 대학을 거쳐 2002년 드래프트에서 한신 타이거스에 5순위로 지명되었다. 프로에서는 중간 계투로 주로 활약하며, 'JFK' 필승 계투조의 일원으로 2007년과 2008년 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상을 수상했다. 2014년 은퇴 후에는 한신 타이거스 구단 직원, 타격 투수, 스카우트를 거쳐 2020년부터 2군 투수 코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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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타 도모유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구보타 도모유키
이름구보타 도모유키
로마자 표기Tomoyuki Kubota
출생일1981년 1월 30일
출생지사이타마현 히키군 요시미정
신장181cm
체중95kg
선수 경력
포지션투수 / 코치
투타우투우타
프로 입단2002년
드래프트 순위드래프트 5순위
첫 출장2003년 5월 11일
마지막 출장2013년 9월 28일
선수한신 타이거스 (2003년 – 2014년)
지도자 경력
코치한신 타이거스 2군 투수 수석 코치 (2021년 – 현재)
국가대표 경력
대표팀일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6년
수상
수상 내역2× 센트럴 리그 최고 셋업맨 (2007년, 2008년)
기록
리그NPB
승패41승 34패
평균 자책점3.16
탈삼진612
세이브47
홀드117

2. 프로 입단 전

사이타마현 히키군 요시미정 출신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신팀에서 주전 선수로 발탁되어 5번 타자 겸 포수로 활약했다. 나메가와소고우 고등학교 시절 감독의 권유로 투수를 겸임하며 '토네이도 투구법'을 선보였는데, 이때 노모 히데오를 참고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고교 3학년 때인 1998년 제80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 '나메가와의 대마신'(滑川の大魔神|나메가와의 대마신일본어), '토네이도 구보타'(トルネード久保田|토네이도 구보타일본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도키와 대학 진학 후 본격적으로 투수로 전향, 프로 구단의 주목을 받았고, 2002년 가을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드래프트 5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1]

2. 1. 고등학교 시절

사이타마현 히키군 요시미정 출신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에 신팀에서 주전 선수가 되어 주로 5번·포수로 활약했다. 그 후 나메가와소고우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포지션을 맡았지만, 감독에게 투수를 하고 싶다고 요청하여 투수를 겸임하게 되었다. 이때 노모 히데오를 참고한 적은 없다고 한다.[2]

1998년 고교 3학년 때 주전 포수, 4번 타자, 팀내 두 번째 투수로서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학교 최초로 출전했다.[1] 사카이고등학교와의 1차전에서는 7회에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등번호 2번을 타자에게 보여주는 '토네이도 투구법'을 선보여 화제가 되었다. 다음 날 스포츠 신문에는 '나메가와의 대마신'(滑川の大魔神|나메가와의 대마신일본어), '토네이도 구보타'(トルネード久保田|토네이도 구보타일본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2] 구보 야스토모가 이끄는 간사이 대학 제1 고등학교와의 3차전에서 패했지만, 총 3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2. 2. 대학교 시절

도키와 대학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투수로 활약했다. 2학년부터 주전 선수가 되었고, 3학년 때 도카이 대학과의 연습 경기에서 153km/h의 강속구를 기록하며 프로 야구 구단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2년 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캠프에 초대 선수로 참가했다. 대학 리그 통산 22승을 기록했지만, 전국 대회 및 국제 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3. 프로 선수 시절

한신 타이거스에서 2003년부터 2014년까지 프로 선수 생활을 했다.

2003년 신인으로 입단하여 중간 계투와 선발 투수를 오가며 활약했다. 리그 우승 직전 부상으로 일본 시리즈에는 등판하지 못했다. 2004년에는 선발로 기용되었으나 부진과 부상으로 중간 계투로 전환했고, 팀 사정상 마무리 투수를 맡기도 했다.

2005년부터 제프 윌리엄스, 후지카와 규지와 함께 'JFK'라고 불리는 필승 계투조를 이루어 팀의 핵심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2006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나 등판 기회는 없었다. 시즌 중에는 딸을 보호하려다 오른손등 골절 부상을 입기도 했다.

2007년에는 셋업맨으로 기용되어 NPB 시즌 최다 등판 기록을 세우는 등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최우수 중간 계투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8년에도 2년 연속 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가 되었지만, 과다 등판의 여파로 전년보다 안정감이 떨어졌다.

2009년 선발 투수로 전환을 시도했으나 어깨 부상으로 실패했고, 2010년에는 다시 중간 계투로 복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2011년부터 부진에 빠졌고, 2012년에는 구속 저하로 어려움을 겪었다. 2013년에는 구속을 회복하며 후반기에 복귀했지만, 시즌 전체 평균 자책점은 좋지 않았다.

2014년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은퇴를 결심했다.

3. 1. 2003년 ~ 2004년: 신인 시절과 첫 승리

2003년 5월 11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9회말에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데뷔전을 치렀다.[1] 같은 날, 후루키 가쓰아키를 상대로 데뷔 첫 탈삼진도 기록했다.[1] 5월 24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는 후쿠하라 시노부가 가지고 있던 구단 최고 구속 기록을 경신하는 156 km/h를 기록했다. 6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데뷔 첫 선발로 등판하여 6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1] 6월 1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10회초에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리를 따냈다.[1]

2004년에는 선발 투수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부진으로 인해 중간 계투로 보직을 변경했다. 이후 제프 윌리엄스, 안도 유야2004년 하계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되고, 제러드 리건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팀 사정상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되었다.

다음은 구보타 도모유키의 2003년 ~ 2004년 주요 기록이다.

기록 종류경기 일자상대팀구장비고
첫 등판2003년 5월 11일요코하마요코하마 스타디움9회말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첫 탈삼진2003년 5월 11일요코하마요코하마 스타디움9회말 후루키 가쓰아키 상대
첫 선발2003년 6월 1일요미우리 자이언츠도쿄 돔6이닝 1실점
첫 승리2003년 6월 15일요미우리 자이언츠한신 고시엔 구장10회초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첫 선발 승리2003년 7월 30일요코하마한신 고시엔 구장6과 2/3이닝 2실점
첫 완투 승리2004년 5월 4일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시민 구장9이닝 1실점
첫 세이브2004년 8월 28일히로시마 도요 카프한신 고시엔 구장8회초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


3. 2. 2005년 ~ 2008년: JFK와 전성기

2005년, 제프 윌리엄스, 후지카와 규지와 함께 ‘JFK’라고 불리는 필승 계투조를 결성했다.[23] 그 해부터 시작된 세・퍼 교류전에서는 5월 18일 세이부전에서 시즌 5세이브를 기록했다. 팀이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9월 29일 요미우리전에서는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23] 또한, 그 해에는 자신의 구단 최고 속도 기록을 경신하는 157km/h를 기록했다. 그러나 구원 투수로서 약간 안정감이 부족하여, 주자를 내보내고 간신히 막는 장면이 많았다. 정규 시즌은 5승 4패 27세이브, 평균 자책점 2.12의 성적으로 종료되었고, 일본 시리즈에서는 1경기에 등판하여 타자 4명을 상대로 1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2006년 개막 전 3월에 개최된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직전에 부상당한 구로다 히로키의 대체 선수로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어, 구로다가 착용할 예정이었던 등번호 ‘15’번으로 선수 등록되었다. 등판 기회는 없었지만, 팀은 우승을 달성했다. 시즌에서는 5월 4일 요미우리전에서 동점인 연장 10회초부터 등판하여 그 이닝 공격에서 볼넷을 골라 출루했고, 야노적시타로 본인이 말하길 ‘인생 처음’이자, 마무리 투수로는 드문 사요나라 홈을 밟았다. 한신에서는 계속 마무리 투수를 맡았지만 초반부터 안정감이 부족한 등판이 이어졌고, 6월 21일 유모차에서 떨어질 뻔한 딸을 감싸다가 오른손등을 땅에 강하게 부딪혀 골절되어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 행동은 팬들뿐만 아니라 후지카와 등 동료들로부터 ‘아버지로서 당연한 행동’이라고 평가받았지만, 당시 구단 시니어 디렉터였던 호시노 센이치는 ‘자신의 장삿거리인 손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시즌 후반에 복귀했지만 부진한 투구가 눈에 띄었고, 앞서 언급한 부상으로 인한 장기 이탈의 영향도 있어 5승 7패 16세이브, 평균 자책점 3.96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2007년부터는 후지카와가 마무리 투수로 전환하고, 구보타는 셋업으로 기용되었다. 선발 투수진의 부진도 있어 시즌 내내 풀가동되었고, 8월에는 월간 최다 타이 기록인 17경기에 등판했다. 9월 15일에는 2005년에 후지카와가 기록한 시즌 최다 등판 80경기를 경신하는 81경기 등판을 달성했다. 최종적으로 NPB 시즌 최다 등판 수를 90까지 늘렸다. 평균 자책점 1.75, NPB 기록 시즌 46 홀드, 일본 신기록 55 홀드 포인트를 수립했다.[23] 시모야나기 쓰요시의 10승에 이어 팀 2위인 9승을 거두었고, 구원 투수임에도 팀 2위, 리그 22위인 108이닝을 던졌으며, 리그 15위인 101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프로 입문 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어, 첫 타이틀인 최우수 중간 계투를 획득했다. 올스타전에도 감독 추천으로 처음 출전하여 7월 20일 1차전에 등판하여 1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아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08년에는 2007년 시즌의 과다 등판과 연장을 포함해 1경기에서 4이닝을 던진 영향으로 평균 자책점이 2배 가까이 악화되었다. 특히 시즌 종반에는 불안정한 투구가 잦아, 대타로 스코트 앳치슨이 셋업맨이 되었다. 올스타전에도 팬 투표로 선출되어 두 번째 출전을 했다. 12개 구단 최다인 69경기, 을 등판하여 37홀드 포인트를 기록하여 2년 연속 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가 되었지만, 전년보다 안정감이 떨어진 것이 마이너스가 되어 12월 22일 계약 갱신에서는 추정 1000만의 삭감이 되었다.

3. 3. 2009년 ~ 2014년: 부상과 부진, 그리고 은퇴

2009년, 본인의 희망과 신임 감독인 마유미 아키노부의 의향으로 선발로 재전환할 예정이었지만, 캠프 중에 어깨 부상으로 이탈했다.[23] 7월 16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5년 만에 선발로 1군에 복귀했지만 3이닝 4실점으로 강판되었고, 다음 날 17일자로 2군으로 강등된 후에는 1군에서 등판하지 않고 시즌을 마쳤다.

2010년에는 다시 중간 계투로 기용되었지만 5월에 재조정을 위해 2군으로 강등되었다.[23] 복귀 후에는 57과 2/3이닝을 던져 평균 자책점 1점대, WHIP 0점대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어 팀 최다인 71경기에 등판, 28홀드, 34홀드 포인트를 기록했다.[23] 또한 9월 2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서는 선발 시절인 2004년 5월 4일 이후 6년 만에, 구원 투수 전향 후 첫 적시타를 쳤다.

2011년에는 극심한 부진으로 셋업맨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1군에서는 23경기 출전에 그쳤으며, 시즌 대부분을 2군에서 보냈다.[23]

2012년에도 부진이 이어져, 1군에 올라와도 속구 구속이 130km/h대로 떨어져 예전의 위력적인 투구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곧바로 2군으로 강등되었다.[23]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2013년에는 구속이 140km/h대 후반까지 회복되었다.[23] 4월 23일 주니치전에서 1이닝 8실점을 기록한 후에는 2군 생활을 했지만, 후반기 이후에는 귀중한 중간 계투 전력으로 복귀했다.[23] 그러나 시즌 전체 평균 자책점은 시즌 초반의 실점이 영향을 미쳐 5.57로 좋지 않았다.

2014년에는 2월에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은 영향으로 1군 등판은 없었다.[23] 이후에도 팔꿈치 상태가 회복되지 않아, 현역 선수로서 계속하기 어렵다고 판단, 9월에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23] 10월 3일에 은퇴를 발표했고, 11월 6일에 임의 은퇴 공시되었다.

4. 은퇴 후

한신 타이거스에 구단 직원으로 계속 재적하며, 2015년부터 2년 동안은 주로 2군에서 타격 투수를 맡았다.[2] 2017년부터는 구단 본부로 이동하여 관동 지역 담당 프로 스카우트로 활동했다.[2]

2020년 11월 12일, 한신 타이거스의 2군 투수 코치로 취임했다.[2] 등번호는 '''90'''번이다.[2] 2022년까지 2군 투수 코치를 맡았고, 2023년부터는 1군 투수 코치를 맡고 있다.[2]

5. 플레이 스타일

고교 시절보다 비틀기가 적은 토네이도 투구폼에서 최고 구속 157km/h, 평균 구속 약 148km/h의 강속구를 던졌다.[18] 구원 등판 시에는 최고 157km/h를 기록했다.[19] 주무기로는 종횡 2종류의 슬라이더, 포크볼을 사용하며, 커브체인지업도 섞어 던졌다. 마운드 위에서는 기본적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9회까지 계속 투구할 정도의 연투 능력도 뛰어났다.[20]

6. 논란 및 평가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직전에 구로다 히로키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구보타 도모유키가 대체 선수로 일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그러나 구보타는 경기에 등판하지는 못했다. 같은 해 6월 21일, 구보타는 유모차에서 떨어질 뻔한 딸을 보호하려다 오른손 골절상을 입어 전력에서 이탈했다. 동료 선수들은 "아버지로서 당연한 행동"이라고 평가했으나, 구단 시니어 디렉터 호시노 센이치는 "자신의 장사 도구인 손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있다"라며 비판했다.[1] 시즌 후반에 복귀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진으로 7패를 기록했다.[1]

7. 수상 및 기록


  • 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 : 2회(2007년, 2008년)[23]
  • 시즌 최다 등판 기록 : 90경기(2007년)
  • 야나세·한신 타이거스 MVP상 : 1회 (2007년[22])
  • 와카바야시 타다시상 : 1회 (2014년)


2007년에는 후지카와 큐지가 마무리 투수를 맡으면서 구보타는 두 번째 투수로 기용되었다. 선발 투수진의 부진으로 시즌 내내 90경기에 등판하여 시즌 최다 등판 일본 기록을 경신했다. 평균자책점 1.75, 일본 타이 기록인 시즌 46홀드, 일본 신기록인 55홀드 포인트를 기록했다.[23] 시모야나기 쓰요시의 10승에 이어 팀 내 2위인 9승을 올렸고, 중간 계투 투수임에도 리그 22위의 투구 이닝(108이닝)과 리그 15위의 탈삼진 (101개)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 타이틀을 차지했다. 올스타전에서도 감독 추천으로 첫 출전하여 7월 20일 1차전에 등판, 1회를 삼자 범퇴로 막아내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7. 1. 개인 기록

연도소속등판선발완투완봉무4구승리패전세이브홀드승률타자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고의4구몸에 맞는 볼탈삼진폭투보크실점자책점평균자책점WHIP
2003년한신2610000550--.50038389.189527261002035313.121.30
2004년286101444--.50029869.071101921692033314.041.30
2005년68000054273.55633080.27381522975020192.121.09
2006년47000057162.41722150.05841911575026223.961.54
2007년90000093046.750448108.097632201014026211.751.19
2008년69000063031.66737385.18783422758034303.161.42
2009년110000100.000152.1702003004415.433.86
2010년71000063028.66732981.272111710686037293.201.09
2011년2300001206.3339721.2272910263013135.401.66
2012년400000000----133.030100200226.001.33
2013년1700000201.0009421.01721311140015135.571.48
통산: 11년44417101413447117.5472601612.06015618814136123502452153.161.31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 첫 기록

;; 투수 기록

  • 첫 등판: 2003년 5월 11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9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9회말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1이닝 무실점
  • 첫 탈삼진: 상동, 9회말에 후루키 가쓰아키에게서 루킹 삼진
  • 첫 선발: 2003년 6월 1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2차전(도쿄 돔), 6이닝 1실점
  • 첫 승리: 2003년 6월 15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4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10회초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1이닝 무실점
  • 첫 선발 승리: 2003년 7월 30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9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6과 2/3이닝 2실점
  • 첫 완투 승리: 2004년 5월 4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4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9이닝 1실점
  • 첫 세이브: 2004년 8월 28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2회전(한신 고시엔 구장), 8회초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2이닝 무실점
  • 첫 홀드: 2005년 6월 5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6회전(한신 고시엔 구장), 9회초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3이닝 무실점


;; 타격 기록

  • 첫 안타: 2003년 8월 12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1회전(삿포로 돔), 2회초에 크리스 홀트에게서 중전 안타
  • 첫 타점: 2004년 5월 4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4회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2회초에 오타케 간에게서 중전 적시타


; 기타 기록

  • 시즌 90경기 등판: 2007년 ※역대 최다

참조

[1] 서적 プロ野球人名事典 2003 日外アソシエーツ 2003
[2] 간행물 まわり道で得たそれぞれの収穫 角川書店 2003-07-25
[3] 잡지 フォトメモリーズ 久保田智之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08-05-12
[4] 서적 週刊ベースボール増刊 大学野球2000秋季、2001秋季リーグ戦展望号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5] 문서 関甲新学生野球リーグ選手名鑑
[6] 뉴스 ダウンやて~?久保田無念の一発サイン http://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2008-12-23
[7] 뉴스 阪神・久保田、6年ぶり適時打! http://www.sanspo.co[...] サンケイスポーツ 2010-09-03
[8] 웹사이트 久保田智之選手が現役引退を発表 http://hanshintigers[...] 2014-10-03
[9] 뉴스 阪神・久保田引退会見 12年間のプロ生活「幸せだった」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4-10-03
[10] 웹사이트 2014年度 任意引退選手 http://www.npb.or.jp[...] 2014-11-06
[11] 뉴스 阪神引退の久保田は打撃投手に、日高はスカウトに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4-12-26
[12] 뉴스 【第二の人生】阪神・久保田智之投手(33) https://web.archive.[...] スポーツ報知 2014-12-30
[13] 뉴스 久保田氏、阪神のプロスカウト転身!金本監督を補強面で支える https://www.sanspo.c[...] サンケイスポーツ 2016-12-05
[14] 뉴스 阪神 久保田智之氏は球団本部プロスカウト担当に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6-12-28
[15] 웹사이트 2021年度 監督・コーチについて https://hanshintiger[...] 2020-12-26
[16] 웹사이트 久保田智之ファーム投手コーチ就任会見 https://hanshintiger[...] 2020-12-26
[17] 뉴스 阪神 来季組閣を発表 水口打撃コーチ、馬場内野守備走塁コーチが新入団 https://www.sponichi[...] 2023-01-17
[18] 서적 2011プロ野球オール写真選手名鑑 日本スポーツ企画出版社
[19] 뉴스 リーソップ157キロ!岡田監督うなった https://www.nikkansp[...] 2008-07-24
[20] Youtube 【プロ入り94名】森本稀哲が選ぶ松坂世代ベストナイン【ホームラン打つのにフライが捕れない男?】【謎の強打者シャーパって誰?】【もはや家族同然SP 2/4】【巨人】 https://www.youtube.[...] 2021-07-05
[21] 뉴스 久保田“名誉卒業”常磐大の修了生に http://osaka.nikkans[...] 日刊スポーツ 2011-01-20
[22] 뉴스 2台目ベンツゲット!虎・福留「来年優勝」してEクラス頂く(5)ヤナセ・阪神タイガースMVP賞歴代受賞者 https://www.sanspo.c[...] 産業経済新聞社 2018-03-01
[23] 문서 주니치 드래건스의 아사오 다쿠야가 홀드와 홀드 포인트 기록을 경신했다. 주니치 드래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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